1) 근본불교의 불타관산스크리트의 ‘붓다(buddha)'는 깨달은 사람을 뜻하는 보통명사였다. 따라서 이론상 붓다로 불릴 수 있는 인격은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석존께서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붓다란 말은 일반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 한 사람만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는 대부분의 아함경전들이나 여래십호설 등이 입증해 주고 있는 바다.한편 석존 자신도 ‘붓다' 혹은 ‘여래' 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더러 있다. 이 경우 ‘붓다, 여래'란 말은 석존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경우도 있고, 석존이라는 인격을 초월한 제 3자적 의미의 ‘붓다, 여래'를 가리킨 경우도 있다. 전자의 예로서는 초전법륜을 설하기 직전 자신을 “벗이여“라고 부른 다섯 비구에 대해 “비구들이여, 여래에게 이름을 부르거나 ‘벗이여'라고 하며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남전, 제3권).”라고 타이르고 있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리고 후자의 예로서는 “사문, 바라문 및 사람, 하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견문각지(見聞覺知) 6,4,8하고, 통달하고, 구하고 뜻에 따라 사유해야 할 모두를 여래는 정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래라고 불리는 것이다(남전, 제8권).”라고 한 경우나 “여래는 청정하여, 초인적인 천안(天眼)으로 죽어 가고 있고 재생하고 있는 모든 중생을 보며, 업(業) 6,4,8에 의해 움직이는 중생에게 비천함이 있고 또 고귀함이 있으며, 아름다움 또 추함, 행복 또 불행이 있다는 것을 안다(남전, 제9권).”라고 한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서 보이는 ‘붓다' 또는 ‘여래'라는 말은 분명히 인간 석존의 한계를 벗어나는 어떤 초월적 존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붓다' 또는 ‘여래'라는 말이 가리키고 있는 대상이 이와 같이 둘이라면 두 대상 상호간의 관계는 어떻게 규정될 수 있을까? 이 둘의 관계를 밝히는데 있어서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은 붓다(buddha)와 법(dharma)이라는 개념의 상호연관성이다.주지하다시피 석존은 일체에서도 우리는 석존의 탁월한 인격성과 감화력을 엿볼 수 있다.앞에서 우리는 석존 재세시 ‘붓다'의 본질을 둘러싸고 두 가지 입장이 상존하고 있었음을 암시한 바 있다. 그 중 하나가 법 중심의 불타관이라면다른 하나는 부처 중심의 불타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입장이 결코 별개의 것으로 인식될 수 없음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다.한편 이러한 두 입장의 불타관은 석존의 입멸을 계기로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게 된다. 전자의 입장은 불신(佛身)의 영원성을 구하여 그 속에서석존의 위치를 재조명하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후자의 입장은 석존의 입멸 후 인간 석존을 대신할 다른 불타를 탐구하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법 중심의 불타관은 법 그 자체를 붓다의 실신(實身)이라고 생각하는 법신(dharma kaya)사상을 낳았으며, 부처 중심의 불타관은 입멸한 석존을 법신의 현실신인 색신(rupakaya)으로 여기려는 경향을 띠었다. 후자의 입장은 석존을 이상화하고 초인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과거불사상과 미륵의 하생성불사상 그리고 동방의 아촉불 및 서방의 아미타불사상 등은 이러한 사유경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런 불타관을 이신설(二身說)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근본불교의 이와 같은 이신설은 그 뒤 유식학파에 이르러 삼신설로 정립될 때까지 각 단계별로 얼마간의 내용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에서는 대승불전을 중심으로 이러한 과정을 간략히 추적해 보기로 한다.2) 대승경전에 나타난 불타관일반적으로 경전은 당대의 시대상황이나 교리상의 쟁점들을 수용하고, 정리하는 기능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전의 형식이나 내용은 그 성립시기에 따라 어느 정도 편차를 보이게 마련이다. 여기서 살펴볼 대승의 불타관도 당시 불교계 내에서 논의되던 붓다의 본질에 관한 견해들을 종합하고 요약하는 과정에서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승경전 속에 나타나고 있는 붓다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먼저 초기경전으로 분류되는 《반야경》?《법화경》?《화엄경》?《성불한 붓다라든가 또는 단지 과거불이라고 하는 의미가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초역사적인 불타가 생각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아미타불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이 경우 아미타의 원어는 Amitayus(無量壽)'이다. 이처럼 붓다가 시간을 초월하여 상주한다고 말하는 것은 여래가 쉴 사이 없이 중생을 교화하고 포섭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법화경》에서는 초역사적인 붓다가 역사적인 붓다 즉 석존이라는 두 종류의 붓다를 서로 구별하고 있는 셈이다.그 중 초역사적인 불타에 대해서는 서방의 아미타불로만 한정하지 않고, 시방(十方)의 각 불토에 상주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에“시방의 각 불토에서 나의 본래 몸에 의해 나타난 분신여래(分身如來)"라는 언급이 보이는 것은 바로 이를 말해 준다. 이에 따르면 석존이 본신이며, 타불토의 불타는 그 분신이라고 말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나의 본래 몸'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는 석존의 입멸 후, 석존을 대신할 불타를 찾으려고 한 결과 모든 방향의 불토에 각각의 불타를 상정하게 되었고, 이에 대해 다시 석가모니불을 근본으로 하여 그 통일을 기하려고 했던 당시 불교계 내의 사상적 동향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 때 그 통일불로서의 석가모니불은 단순한 역사적인 불타가 아니라,오히려 그 통일불인 석가모니불이야말로 영원한 수명을 지닌 구원불 그 자체인 것이다.이처럼 《법화경》은 앞의 《반야경》에서와는 달리 구체성을 가진 불타관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법화경》의 구원불사상은, 말하자면 앞서 살펴본 근본불교의 부처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에 비해 《화엄경》의 불타관은 《법화경》의 그것과도 다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그 동안의 사상적 발전을 반영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즉《법화경》의 부처들이 개별적이며 한정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구상적인, 그래서 ‘통일불'이라는 개념이 나올 수 있었던 데 비하여 《화엄경》의 비로자나불은 시방편만불(十고있는 바와 같이 불성과 여래장은 같은 뜻으로서 내재적 불타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불신편만(佛身遍滿)의 사상은 앞서 서술한 법 중심의 법신사상과도 결부된다. 즉 보편인 법을 부처의 본래 몸으로 하여, 법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법신의 사고방식과 그 법의 구현자인 부처 자신에게서 보편성을 찾으려는 사고방식이 서로 연결되고, 그것이 다시 여래장 및 불성사상과 융섭되면서 불신의 보편성은 한층 더 철저해진 것이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여래장경》에는 “여래 법신은 일체 모든 중생의 몸에 편재하여 있다.”, “여래, 진여는 차별이 없다.”, 또 “일체 중생이 모두 진여불성을 갖고 있다.”라는 표현이 자주 보이며 또한 《부증불감경》에서도 “중생계는 곧 여래장이며, 여래장이란 곧 이 법신이다.”라고 하여 여래장과 법신의 동일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승만경》에서는 여래장과 법신을 동일하게 보면서도 이 양자를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한 예로 “무량번뇌장에 얽히는 것은 여래장이며, ……무량번뇌장을 풀어내는 것은 법신“이라고 하는 언급 등이 이를 말해 준다. 다시 말해 번뇌에 덮여 있는 것은 여래장이요, 번뇌를 여 ?것은 법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승만경》에서는 “여래법신이 번뇌장을 여의지 않은 것을 여래장이라 이름한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번뇌에 덮임과 여읨에 있어서 그 중심이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법신임을 말하는 것이다.이상으로 우리는 전?후기 대승경전에 나타난 불타관의 성격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 즉 어떤 입장의 불타관에 서더라도 불신의 본질로서의 법신과 석존과 같은 구체적인 불신으로서의 색신이라는 두 몸[二身]을 내세우는 사고방식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제2기 대승경전까지의 불타관은 법신과 색신 중 어느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설명하느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일 뿐 이른바 이신설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3) 삼신설(三身說)의 성립지금까지 살 이른바 삼신설의 성립을 보게 된 것이다.이 삼신설이 보다 구체적으로 종합된 것은 유가행유식학파의 논사들에 의해서였다. 미륵?무착?세친 등의 논사들이 바로 그들에 해당한다.이를 언급하고 있는 대표적 논서들로서는 미륵송(彌勒頌), 세친석(世親釋)으로 알려진 《대승장엄경론》과 《구경일승보성론》을 들 수 있다. 전자에서들고 있는 삼신은 자성신(自性身, svabhavika_kaya)?수용신(受用身, sambhogika_kaya) ?변화신(變化身,nairmanika_kaya)이며, 후자에서 들고 있는 삼신은 실불(實佛, svabhavika_kaya)?수법락불(受法樂佛, sambhogika_kaya)?화신불(化身佛, nairmanika_kaya)과 법신(法身, dharma_kaya)?보신(報身, sambhoga_kaya)?화신 또는 응신(化身, 應身, nairmanika_kaya)이 곧 그것이다. 이 두 논서에 언급되고 있는 삼신은 그 원어에서 알 수 있듯이 전적으로 중복되는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내용적으로는 반드시 일치한다고 볼 수 없는 부분도 있으나 대체로 그것이 뜻하는 바는 대동소이한 것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법신?보신?화신이라고 이름한 《보성론》의 삼신관을 따르고 있으나 이론적 명확성은 오히려 《장엄경론》에서 더 잘 드러나고 있다.《장엄경론》의 설명에 따르면 “자성신과 수용신과 변화신은 실로 모든 부처의 몸을 구분한 것이며, 제1신은 다른 두 신의 소의(所依)이다.” 이를다시 세친은 “모든 부처에는 삼신이 있다. 자성신은 법신으로서 전의(轉依)를 특질로 한다. 수용신은 이에 의해 회중륜(會衆輪)에 있어서 법의 수용을 이루는 것이며, 변화신은 그 변화에 의해 중생을 이익케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섭대승론》은 “이 중에 자성신이란 여러 여래의 법신이다. 모든 법에 있어서 자재전(自在轉)의 소의(所依)이기 때문이다. 수용신이란 부처의 각종 회중륜에 나타나는 것으로서 법신을 소의로 하여, 청정한 불토와 대승의 법을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