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보고 나서...물건을 사러가는데 뜻밖에 좋은 물건을 건졌을때의 기분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을 본 나의 기분이 그러했다. 원래 그곳에 가려 했던 것이 아닌데 햇볕이 너무 강하게 내리쬐어 그늘로 가려고 하다가 우연히 보게된 이 전시회는 생각지도 못한 횡재를 한 것 마냥 나를 들뜨게 했다.일단 들어가자 마자 큰 켄버스위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고 한번 놀랐다. 어두운 배경에 산만하게 그려진 듯 하지만 시선을 집중시키는 사물... 거의 모든 작품들은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말로 표현하니 그 효과가 반은 줄어드는 듯 한데 그 느낌은 눈을 크게 뜨고 가까이 가볼 정도 였다. 가까이 가서 본 작품은 더욱 나를 놀라게 하였다. 그것들이 물감을 긁어내서 그린 그림들 이었다는 것이다. 보통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얹어 놓음 으로써 진행되는 작업방식을 이 작가는 반대로 물감을 얹어 놓고 긁으면서 그림을 그려 나간 것이다. 이 방법은 틀에 박힌 교육을 받고 사물을 재현시키는 방법에 식상해 있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한 이 방법은 사물을 사실그대로 완벽하게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으로써 그 사물 자체 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나타내고 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느낄수 있게 하였다.The time 이라는 작품은 화면 가운데 큰 시계가 그려져 있는데 그 시계는 시계 그 자체라기 보다 작가의 관점에서 보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은 면이 아닌 선으로 그것도 속도감 있게 일필로 그려진 선으로 재현되고 있었다. 복잡한 유선형의 선도 있고 파이프를 연상시키는 평행한 짧은 선들의 연속된 선도 있고, 이리저리 꼬여서 하나의 면처럼 보이는 선도 있고...그런데 그것들은 모두 그을 때 '슉~숙~' 하고 소리가 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속도감이 느껴지는 선들이었다. 작가 박영근씨는 그런 빠른 선들로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 버리고, 또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어린시절에 콧수염 기르던 미술학원 원장선생님께서 선 하나로도 감정을 표현할수 있다고 말씀 하신 것이 기억났다. 그때는 그것이 이해가 안되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다. 선 하나 아니 점 하나로도 표현할수 있는 것은 무한할 것이다.만찬 이라는 작품에는 잘 차려진 식탁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도 일정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였다. 작가가 나타내려고 한 것 또한 잘 차려진 음식의 형태는 아니였을 것이다. 가만히 그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음식의 냄새나 그 만찬을 하는 분위기 그리고 만찬을 준비한 사람의 정성 이런것들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형태를 알아볼수 있는 완변한 재현보다 훨씬 더 먹음직 스럽고 분위기 좋은 만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필요한 묘사를 버림으로써 더욱 먹음직 스러운 만찬을 그릴수 있었던 것 이번 작품을 보면서 앞으로 내가 작업을 해 나갈때도 나타내고자 하는 것 이외의 것들은 버릴줄 아는 태도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들은 나타내고자 하는 것들을 가리는 것에 불과한 것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