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그리스 건축으로의 접근그리스는 서양건축의 모태가 되는 곳이다. 그리스 건축의 대부분은 종교적인 성격을 띤다. 건물이 가지는 사람을 보호하는 물리적인 역할만이 아니라. 신전의 형태로 나타나면서 정신적인 영향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스의 신전은 형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군을 이루지 않고 매우 개별적인 형태로 분포되어 있다. 또한 신전안의 내부공간도 작아서 어떤 이들은 비건축적이다 혹은 조각이라고 결론짓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공간의 개념을 국부적으로만 보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리스 건축은 전체적으로 보고 공간을 배치한 것이라 할 수 있다.이처럼 그리스 인들은 그들의 소망을 건축물에 나타내면서 건축의 생성이 자연으로부터의 보호라는 원초적인 동기를 넘어 미적인 감각을 구체적으로 도입하게 된다. 이것은 현대의 건축가들에게 건축물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가르쳐 주면서 더 나아가 건축미라는 또 다른 기능을 발견하게 된다.또, 그들의 철학과 종교적인 개념은 건축의 자유로운 분포와 규칙적인 건물의 양상에서 그리고 그 건축물의 위치가 수행하는 목적에 합당해야 한다는 것을 주시함으로써 그 개념이 발전하고 외부에 영향을 주며 전개된다.게다가 그리스의 다양한 대지의 형상은 건축의 다양성으로 이어지는 계기를 만들어 주게 된다. 이집트의 경우처럼 모든 환경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건축물이 아닌 지역을 안배한 건축물을 만든 것이다.그리스의 경관은 강렬한 햇빛과 에게 해에서 불어 오는 해풍 속에서 모습이 하나의 독립된 형태로 존재하는 듯이 보이며 인간의 지배가 아닌 스스로의 질서를 잡으며 다양성을 표현한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은 서로가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기를 바라며 지배하지 않고 당하지도 않는 서로가 접근하여 사는 형태를 이루게 한다.다양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 자연의 형체나 기능의 요소 들이 질서의 표현이며 인간과의 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은 이미 알았던 것일까? 우연의 일치인지 그들은 이러한 경관의 특징을 신들로 의인화 시켜 자연과의 관계를 지배나 표류도 아닌 결정성을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신전은 한편에 얼굴을 지닌 조상처럼 환조를 닮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자체의 환경과 관계한다.직교구조는 수평면과 중력의 경험에 관하여, 인간의 조직력에 대한 상징이라 해석될 수도 있다. 이집트인 들은 전자를 강조하고 수직과 수평의 절대 질서를 추상했었던 반면에, 그리스인들은 상인방식 구조로 전달하고 전달되는 활력있는 힘들을 표현하면서 자신들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인간적이 측면이었다.그리스의 신성한 건축이 위하는 장소들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하나의 공간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의미를 상징한다. 단일건물의 형태와 여러 건물의 무리지미 서로 다른 조직원리에 근거한다. 더욱이 그리스의 정주지들이 여러 가지의 질적으로 다른 영역들로 이루어 져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인들은 개개의 장소들을 한정하고자 했을 뿐 아니라 서로 다른 기능들 은 다른 종류의 공간을 요구했다.따라서 그리스의 공간개념은 다원적이다. 그리스인들 에게 공간은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많은 사물이었으며, 그리스의 언어는 "공간"에 대한 단일어를 지니고 있지 않다. 이러한 다원성은 그것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체계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고 우연적인 즉흥성의 세계를 초월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에, 인간의 환경에 의미있는 구조를 제공하는 문제에 매우 중요한 해결책이었다.고전 그리스 건축에서 서로 다른 수법의 공간조직들이 취한 조화로운 상호작용은 역사적 발전 의 산물이었다. 조직의 수법들은 고대에 있어서 덜 분명히 정의되었거나 아예 존재 한지도 않았다. 그것들이 통상 지하에 거하는 옛날의 신령들의 힘 및 여신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일은 의미있다.단순한 울이 특별한 장소나 영역의 구체화로서 중요한 역할을 행하며, 외부와 내부의 공간관계 는 따라서 환경 분화의 주된 수단으로서 인식되었다. 지세에 의한 집단들은 신성한 건축에 서 근본적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각 요소의 개성을 보존하기 때문이었다.Ⅰ.The Acropolis of Athens아폴로의 행렬 때 엄숙하게 꺼내왔다.④파르테논-Parthenon (B,C.448-432)-익티노스와 칼리크라테스 조각가 피디아스의 지휘로 만들어졌다. 크기가 30.9×69.5m인 아크로 폴리스에서 건축된 가장 큰 건축물이다. 평면은 정면 8주, 측면 17주로 종전의 정면 6주의 정형을 벗어난 것이다. 사면에 열주가 있는 페리테럴 형식의 건물이다. 셀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좁은 쪽의 건물 폭은 건물길이의 절반이 약간 못 된다. 셀라 큰 쪽은 아테나 파르테노스의 제사의식용 조상 위치하고 작은쪽은 보물 창고 역할로 이오니아 기둥이고 외부는 도리아기둥이다. 착시교정을 위해 수평선은 그 중앙부를 약간 올렸으며 열주도 상부를 약간 안쪽으로 기울여 시각적인 안정감을 부여. 또한 모서리 기둥은 약간 굵게하고 주신에는 인타시스 양식 사용하였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마지막 장에서 하겠다.재료가 된 펜텔릭 대리석은 빛에 의해 다양한 색으로 반응)한다. 언덕 위에 위치하여 아테네의 부와 힘을 명백하게 표현한다. 그리스인은 신상만을 신전에 안치하고 제전은 신전 외부에서 거행하였으므로 평면계획의 기능화나 구조기술의 합리화보다는 조망되어지는 형태미에 치중한 형식미를 갖춘 건물이다. 헬레닉 시대 도리아 양식 건축을 완전하게 구현해 내고 있다.아크로폴리스를 건립함으로써 페리클레스는 아테네를 그리스 세계 전역에 알리려는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고자 했다. 그는 이 도시의 수호 여신 아테나에게 역사에 남을 획기적인 신전을 바치고자 했다. 이 엄청난 계획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그는 페르시아와의 전쟁 동안 아테네의 동맹 도시들이 매년 내는 조세를 횡령하기까지 했다.▷파르테논과 에렉테이온◁에렉테이온이 비대칭적이고 종교의식을 인간화한 서민적인데 반하여 파르테논은 대칭적 통일감과 신을 우러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그리스와 로마의 건축◀그리스는 외부적 공간 중요시하고 동향으로 건물배치를 한다. 가구식 구조이며 사면으로 진입 가능한데 반하여 로마는 내부 공간 중요시하고 임의의 방향으로 건물 배치8.75m이다. 원주로 둘러싸인 이 건물엔 16개의 측면 기둥과 6개의 정면 기둥이 있으나, 원래 나무로 만들어진 이 기둥들은 수 세기가 흐르는 동안 석조 기둥으로 교체 되었다. 제우스의 부인 헤라에게 바쳐진 이 신전은 수많은 조각장이 서 있는데, 그중에서 조각가 프락시텔레스의 유명한 헤르메스가 있다. 바실리카 제 1신전의 기둥은 지나칠 정도로 불룩하게 과장된 배불림 모양과 주두로 만들어졌고, 또 기둥 사이가 촘촘하고 지나치게 수형으로 긴 형태를 갖고 있다.②바실리카 제 2신전-포세이돈신전(혹은 헤라 2신전) (B.C.460)그리고 2번째 헤라신전은 완전히 도리아 식으로 통합된 조각적 몸체의 힘을 지니고 있고 첫 번째의 신전보다는 크지만 기둥은 오히려 6 X 14 개로 감소되었다. 양쪽의 현관 입구에 두 기둥을 첫번째 신전은 한편에만 3개의 기둥을 갖고 있음 두고 균형잡힌 고전적 배치를 하고 있다. 전체비례는 통합과 통일에 대한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할 정도로 껑충한 비례감과 신상안치실의 두겹으로 놓인 둥근 기둥에서 당시 돌 구조에 대한 기술적 불안을 나타내고 있다. 이 신전은 평면상으로 특이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셀라 내부에 있는 2열의 기둥들은 두 개의 기둥이 상하로 조합되어 있는데, 단일한 높은 기둥으로 구성하는것은 전체의 비례에 맞추기가 어렵다고 느꼈음이 분명하다. 후에, 이 지지의 문제는 실내에 이오닉이나 코린티안 기둥을 사용함으로서 해결되었는데 그것은 이 기둥들이 주신의 직경에 비해 길기 때문이다.▷포세이돈 신전과 헤라 신전의 비교◁첫 번째 신전이 수직과 수평의 투쟁이 있었다면 두 번째 신전에서는 연속적인 상승운동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신전 사이에 나타난 구조 기술의 발전 과정은 파르테논 신전에 이를 때까지 그리스 건축가들이 아름다움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예로 평가 된다.Ⅳ.기타 지역①미케네아틀레우스 보고미케네 시대의 가장 큰 굴식 무덤으로, 안지름 14.6m, 높이가 1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신전이 파괴되지 않은 것은 비잔틴 시대에 이르러 교회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또 수니온에 있는 포세이돈 신전과 그 구조와 모양이 거의 흡사하여 포세이돈 신전의 모습을 알고 싶으면 이 신전을 보면 된다고 한다. 헤파이스토스 신전을 보고 나서 동쪽에 펼쳐진 아고라)를 내려다보면 한마디로 폐허다. 젊은이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던 소크라테스가 자주 들리던 곳이기도 했고, 아테네의 민주정치가 그 싹을 틔운 곳이기도 했다. 신들이 거주하는 아크로폴리스와 달리 떠들썩하고 자유분방한 시민들의 활동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헤파이스토스 신전에서 제법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서 아고라의 페허로 걸음을 옮겨 본다. 왕궁에 해당하던 바실레우스 주랑 터가 있고, 의회의 기능을 하던 협의회관 터도 있다.④에트루리아 신전에트루리아 신전은 대개 돌로 만든 기단위에 나무로 짓고 벽은 벽돌을 사용하여 그 모양새가 언뜻 그리스 신전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건물 너비가 신상안치실)보다 넓지 않고 계단이 남쪽에만 있으며, 그리스 신저의 기단과는 다르게 하나의 넓은 기단으로 되어 있다. 또한 신전의 앞쪽에만 기둥이 4개씩 두 줄로 서 있어 신전의 정면만을 강조하고 있다. 기둥의 양식은 도리아 양식과 비슷하나 밑에 주춧돌이 놓여 있고 기둥에 홈이 없어 터스칸 양식이라 불리기도 한다. 신상안치실은 세공간으로 나뉘는데, 이것은 에트루리아의 종교가 제우스, 헤라, 아테네를 함께 섬기기 때문이다. 현관 위의 박공에 있는 데라코타 조각상 무리들은 기원전 4세기 경부터 나타났다.3.그리스 신전 건축이 주는 의의Ⅰ.신전건축의 분류기원전 1세기에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그리스 건축을 크게 세 가지로 정의했다. 그 각각의 건축을 기둥머리의 형태에 따른 양식으로 분류하였다. 가장 오래된 소위 도리아식 기둥머리는 제법 육중한 기둥 위에 단순한 돌 원반이 올려져있다. 초기의 기둥은 시간이 지나면서 세련된 형태로 바뀌어 이오니아식 기둥머리는 훨씬 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