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껏 우리가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어왔던 역사라는 것이 사실 남성의 역사였다. history 속의 여성의 모습은 나약하고 무지하며 때로는 악의 상징으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남성중심적인 해석이 가장 극명하게 두드러진 분야가 바로 미술영역이다.20세기이전까지만 해도 미술에서 여성의 모습은 남성에 의해 해석되고 보여지는 하나의 모델, 대상에 불과했다. 여성은 누드의 모습으로 오랜 시간동안 남성들이 원하는 미의 대상으로 그려졌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은 항시 그 시대의 남성들이 원하는 누드의 여자로 그려졌고 남성들은 아무꺼리낌 없이 누드의 여인을 감상할 수 있었다.반면 미의 상징과 대조적으로 악의 상징으로도 여성은 그려졌는데 이러한 경우 남성들의 경계의 대상이 되어 그림 속에 그려졌다. 그 당시에는 그림을 감상하고 구입할 수 있는 사람이 모두남자였기 때문에 그들의 입맛에 맞는 여성상이 당연 그림의 여인 속에 반영되었다. 당시 그림은 지금의 대중매체와 같은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남성들이 만들어낸 허구의 미인을 따라가기 위해 살을 빼기도 찌우기도 하면서 항시 남성들이 원하는 미의 기준에 도달하기를 갈망했다.이처럼 미술이라는 영역 속의 여성의 모습은 남성들의 볼거리에 불과했다.그렇다면 20세기 이전의 여성은 과연 그 동안 그림 밖에서 피사체 노릇만 해왔단 말인가? 변변한 여성화가 하나 없고, 미술사가 하나 없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여성화가들 역시 힘든 상황 속에서 그림을 그렸고, 나름대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미술사라는 것이 남성중심적인 가치관에 의해 평가, 해석되어 왔기 때문에 많은 여성화가들이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하고 남성의 역사 속에 파묻혀 버렸다.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린다 노클린은 1971년 「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는 없는가?」 라는 글을 발표하여 왜 미술사에 여성의 이름이 없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는 위대한 여성미술가가 없는 이유를 미술이라는 것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개인들이 전적권한은 남성들에게만 허용된 권리였으므로 현대 이전의 많은 여성들은 붓조차 잡을 권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여성미술가들은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현대에 들어와서 페미니즘 미술은 큰 성장을 거둔다. 하지만 기존의 미술계를 주도하던 남성미술가들은 여성화가들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외친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권익을 주장하며 많은 페미니즘 작가들을 비판한다. 도대체 뭘 그만 하라는 걸까? 평등사회가 되었으니 이제 그만하라는 건지 아님 남성들의 권익을 더 이상 뺏앗지 말라는 뜻인지 도대체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페미니즘을 반대하는 남성들의 주장은 비단 미술뿐 아니라 사회 여러분야에 걸쳐 여성들을 비판한다. 그 대표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미디어인데 남성들은 근대 이전에 미술이 담당했던 미디어매체를 이용하여 또 다시 여성을 미화하고 포장하여 자신들의 소유물로 전락시키려 한다.근대이전의 그림 속에 볼거리에 불과했던 여성들이 이제 붓을 들고 당당히 자신들의 권익을 주장하자 남성들은 그림이 아닌 대중매체를 이용해 여성들을 다시금 소유하려든다. 대중매체에서 보여지는 여성의 모습은 남성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왜곡되어 그려진다. 잡지, 광고, TV속의 여성의 모습은 성의 노예와 상품으로 그려지고 때로는 부드럽고 따뜻한 모습으로 보여진다.과연 그것이 여성의 참된 모습인가? 여성들은 자기반성의 틈도 없이 누구나 할거 없이 대중매체가 만들어내는 바보여성을 따라가기 바쁘다. 이전 시대와 다를 바 없이 살을 빼고 화장을 하며 사회가 만들어내는 여성을 모방하지 못해 안달이다.이처럼 대중매체는 진정한 여성의 모습을 왜곡하여 표현한다. 열심히 일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기는 커녕 드센여자 또는 팔자쎈 여자 로 표현하기 일쑤다.특히 미디어는 20세기에 가장 괄목한 성장을 한 여성화가에 대해 매우 적대적으로 반응한다. 현대에 들어와 재조명을 받은 여성화가들에 대해 미디어는 페미니즘 미술가들을 비웃기라도 한 듯 여전히 다소 희한한 분야를 창조하여 추상미술의 새장을 연 미국의 대표적인 추상표현주의 화가이다.{미국인들에게 폴록이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는 이유는 세계2차 대전이전까지만 해도 미국미술은 한마디로 황무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계에서 미국은 소비만 담당하는 나라에 불과했다. 일찍이 예술을 주도한 곳은 유럽이였기에 미국화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였지만 그들의 그림이 세계적으로 각광받을 수준은 아니였다.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뉴욕이 세계적인 예술도시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뉴욕에 거주했던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성장과 발전에 기초한다. 이러한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대표적 인물이 잭슨 폴록이며 그로 인하여 세계미술시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즉 잭슨폴록은 미국인들의 우상이며 미국미술의 가장 큰 공헌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은 너무나 대중적이여서 고흐 다음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뿌리기, 흘리기 기법은 액션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탄생시키며 미술사에 추상표현주의라는 영역을 새롭게 탄생켰다.{) 김광우, ,p6∼8{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오면 이 영화는 한마디로 미국인들의 우상인 잭슨폴록의 일대기를 서술한 영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잭슨 폴록이라는 화가를 말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알아야할 인물이 바로 리 크래스너(폴록의 부인) 이다. 리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 가운데 유일한 여성화가이며 교육학과 미술사를 공부하던 지성인이다. 그녀는 폴락을 만나기 이전부터 그림에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재능있는 여성이였다. 리는 폴록을 만나게 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때부터 자신의 그림보다 폴록을 더 사랑하게 된다. 영화는 리와 폴록이 만나는 기점을 시작으로 폴록의 성공과 몰락을 주된 테마로 하고 있다.필자가 이 영화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은 리에 대한 영화의 남성중심적 표현이다. 당시 리는 뉴욕추상표현주의에 유일한 여성화가 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는 천재 폴록의 아녀자로만 그려지고 있다.앞에서 언급했듯이 미려진다. 리는 폴록을 사랑하게 됨과 동시에 모성애라는 것을 발휘하여 알콜중독에 쩔여 가족들이 모두 등져버린 폴록을 따뜻하게 받아 준다. 그녀는 폴록이 심리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에 나타나 그를 따뜻하게 보살피고 돌봐준다. 여기서 그녀는 누구나 바라는 성모마리아와 같은 아름답고 따뜻한 여성의 이미지로 그려진다.하지만 그녀는 영화후반부로 갈수록 폴록에게 집착만 하는 신경질적이고 고약한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영화 속에서 리는 폴록에게 애기처럼 그만 칭얼대고 당신은 그림에만 열중해! 라고 한다. 폴록은 울면서 자기를 그만 닦달하라고 한다.이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는 리의 집요한 집착으로 인해 폴락이 몰락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실제 폴락의 그림이 날이 갈수록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자연스러운 시대적 흐름이며 가장 큰 원인은 폴락의 과음으로 인한 알콜중독 때문이였다.{{이렇게 여성의 모습을 선과 악의 이중적 모습으로 그려진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 아니다. 근대 이전에 그림을 보면 여성의 모습의 주로 선의 상징인 성모마리아의 모습과 악의 상징인 마녀로 그려졌다. 미디어(영화)는 이전시대에 그림이 범했던 여성에 대한 잘못해석을 또 다시 하고 있는 것이다.두 번째로 리는 이 영화 속에서 화가라는 이미지 보다 폴락의 보조자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영화 전반부에서 리는 자신의 집에 온 폴락에게 차 마실래요? 라고 묻는다. 폴락이 네 라고 대답하자 리는 우리 나가요. 라고 하는데 폴락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왜요? 라고 묻자 리는 단번에 그럼 내가 끓여 줄까봐? 라고 대답한다. 이 대화에서 리는 손님에게 차조차 끓여주지 않는 현대적 여성으로 표현된다.하지만 그것도 잠깐 리는 폴락과의 동거가 시작된 후 180°로 바뀐다. 화면은 바로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폴락의 전시를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리의 모습을 그린다. 반면 폴락은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며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며 때론 술에 잔득 취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마치 예술에 심취한 천재의 모습으로. 들어간다. 어정쩡하게 입구에 서있던 폴록은 잠깐 서성이며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한 모습을 취한다. 곧이어 폴록은 모자를 벗고 침실로 들어간다. 침실로 들어온 폴록을 리는 마주하고 폴록의 옷을 벗기며 입을 맞춘다.어떻게 보면 이 장면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폴록은 아직 성관계를 맺으면 안될 것 같은, 약간은 도덕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약간 주춤거리며 고뇌하는 듯한 모습에서) 반면 리는 그를 적극적으로 유혹하며 잠자리를 요구하는 요부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즉 리가 그에 대한 사랑도 없이 폴록의 천재성만을 보고 적극적으로 그를 유혹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과연 그럴까?폴록과 리에 대한 여러 책을 보면 여기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성적으로 폴록이 아주 문란했다라는 것은 공통된 의견이다.{) 김광우, , p207∼그는 실제로 지나가는 여자를 보고 너는 젖가슴이 크구나. 나와 씹하러 가자 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술집에서 여자와 대화하다가 강제로 키스하려던 적도 있었으며 이러한 그의 여벽은 끝이 없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의 모습은 많이 정제된 듯한 그냥 고뇌하는 예술가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가 다른 여자를 만지거나 탐하더라도 그것은 천재이기 때문에 용납되는 행위인냥 표현되고 은연중에 영화를 본 관객들은 리를 더 성적으로 대담하고 자신의 성을 이용해 폴록을 유혹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생각한다.이처럼 영화 속의 여성화가 리 크래스너 는 어디에도 없다.◎나(필자) & 리 크래스너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나 역시 리에 대해 전혀 몰랐다. 영화를 보고나서 왠지 모를 씁씁함을 느꼈는데 그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왜 폴록을 닦달할까? 그냥 내버려 뒀으면 죽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하지만 친구와 리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문뜩 그녀도 화가였음을 깨달았다.이유는 실제 영화가 잭슨폴록 위주로 전개됐기 때문에 너무 그에게 심취한 나머지 그녀가 화가였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