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의 구조와 가람배치1. 절의 구조(1) 절의 뜻절이란 중국에서 원래 외교사절을 관장하는 관청을 뜻하는 것이었던는데, 인도의 스님들을 처음에 이 사에 맞이해서 거주케 한데서 차츰 스님이 거주하는 곳을 사로 불렀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사는 불교의 스님들이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다른 뜻으로 가람(伽藍)이라고도 불려지는데 원래 인도말 Samgharama 를 중국말로 번역해서 승가람(僧伽藍)이라 했는데 줄여서 흔히 가람이라 부른다. 여하튼 절의 총체적인 뜻은 스님이 살면서 수도하고 예배드리고 교화하는 장소 즉 불교의 사원이라는 뜻이다.(2) 절의 구조{절의 구조물들에는 각각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일주문에서 시작하는 사찰의 경계를 통해 우리가 세속의 때를 벗고 부처의 길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게 점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배열되어 있다. 먼저 절의 영역을 표시하는 당간지주가 보이고 일주문·천왕문·불이문·범종각이 있고 석등과 탑 그리고 그 뒤에 법당이 있으며 그 뒤로 명부전과 독성각·산신각·칠성각등이 자리잡고 있다.절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승원(僧院)과 당(堂)이다. 당은 일반적으로 사원의 중심이 되는 불당(佛堂)을 말하는 것으로 다른 말로는 금당(金堂) 또는 법당(法堂) 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래 당이라는 것은 불상을 봉안한 불당이나 법당뿐만 아니라 경전을 보관하는 장경각(藏經閣)과 강당(講堂) 등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불당은 불상을 봉안하고 불교의 각종 행사를 봉행하는 장소이기도 하며, 강당은 경과 율을 강설하고 연구하는 장소이다.우리나라의 전통적 사찰구조는 탑을 중심으로 건축물이 배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건축물들의 이름은 그곳에 모셔진 부처님에 따라 다르게 부르고 있다.1)당간지주절로 가는 길목에는 이제 곧 부처의 세계로 진입하게 됨을 알리는 당간지주가 우뚝 서 있다. 그것은 깃발을 거는 막대기와 받치기 위한 돌기둥으로, 찰간지주(刹竿支柱)라고도 한다. 깃발을 거는 막대기라는 의미의 당간과 이 당간을 세우는 기둥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형태는 두 기둥을 반하여 뒷면은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고 둥글며 옆에는 당간을 받치기 위해서 2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그 아랫부분에는 당간을 세우는 간대(竿臺)나 기단이 마련되어 있다.2) 사찰의 문절 입구에 있는 일주문, 중간에 있는 문을 사천왕문, 법당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불이문이라고 하는데 이들을 삼문(三門)이라 한다.1 일주문(一柱門)절에 들어가는 곳에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것이 일주문으로 산문(山門)이라고도 한다. 대개 어떤 산의 어떤 절이라는 내용의 편액(간판)을 걸어 두는 곳이다.일주문의 기둥은 절대 진리를 상징한다. 일주문에 들어설 때는 오직 일심(一心)으로 불법에 귀의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이 곳을 기준으로 승(僧)과 속(俗),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 생사윤회의 중생계(衆生界)와 열반적정의 불국토(佛國土)가 나누어진다.2 사천왕문(四天王門)수미산 중턱에 있는 사왕천의 주인으로 불국의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신 문이다. 이것은 불법을 수호하고 사악한 마군을 방어한다는 뜻에서 세워졌다.사천왕은 33천 중 욕계 6천의 첫 번째인 사천왕천(四天王天)의 지배자로서 수미의 4주를 수호하는 신이다. 오른손에 칼을, 왼손은 주먹을 쥐고 있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동쪽을 수호하는 데 선한 이에게는 복을, 악한 자에게 벌을 준다. 또 서쪽을 수호하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오른손에 삼지창을, 왼손에는 보탑을 들고 악인에게 고통을 줘 구도심을 일으키게 한다고 한다. 오른손에 용을, 왼손에는 여의주를 들고 남쪽을 수호하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덕을 베푼다. 그리고 비파를 들고 있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북쪽을 수호하며 어둠 속을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해 준다.3 불이문(不二門)절의 중심인 불전 앞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이 문을 통해서 불교의 진리가 전개되는 것으로 문 안과 밖의 세계가 별개임을 상징한다.곧, 불이(不二)란 둘이 아닌 경계를 말하며 절대 차별 없는 이치를 나타낸다. 불이는 진리로 삶과 죽음, 현재와 미래가 둘이 아니며 있음둘이 아니며, 중생계와 열반계 역시 둘이 아니니, 일체중생이 저마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어 이 문을 들어서면서 부처님의 이치를 깨우치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문을 해탈문(解脫門)이라고 하기도 한다.3) 범종각{범종각 불이문으로 들어오는 구도자를 환영하고 그가 불이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입증하는 하늘의 주악을 연주하기 위하여 있는 것으로 범종각은 일반적으로 불이문과 일직선상에 놓이다. 이는 불이문을 통과한 구도자의 기쁨이 범종을 비롯한 사물을 통해 울려 퍼진다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이다. 보통 범종각 안에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 이렇게 네가지 타악기가 있는데, 이를 총칭하여 '불전사물'이라 부른다.부처님의 진리를 중생들에게 전해 깨달음과 해탈을 염원하는 중생구제의 의미로 아침, 저녁 예불(禮佛)과 모든 불교행사 의식 등에서 이용되는 이 네 가지 악기는 각기 고유한 음색을 지니고 있으며 의미 또한 독특하다. 먼저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범종, 가축이나 짐승을 제도하기 위한 법고, 물고기들의 영혼을 제도하기 위한 목고, 공중을 떠도는 영혼 특히 새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한 운판이 있다.{4) 석등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 이라고도 하며 대개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자리한다. 일반적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을 이루는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5) 법당법당이란 부처님을 모신 집으로 인도에서는 부처님을 금빛 나는 분이라고 해서 신라 때에는 불전을 금당(金堂)이라고도 했다. 법당의 경우 석가모니부처님을 봉안한 대웅전·삼신불(三身佛) 사상에 따라 중앙에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고 왼쪽에 보신(報身) 노사나부처님, 오른쪽에 화신(化身)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신 대적광전·아미타부처님을 봉안한 극락전·미륵부처님이나 미륵보살을 주불로 모신 미륵전,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모신 관음전 등으로 법당에 모신 부처에 따라 법당의 종류가 북두칠성을, 산신각은 우리 고유의 토속신인 산신을, 독성각은 말세 중생에게 복을 베푸는 나반존자를 모신 전각이다. 이들 세 분을 함께 모신 전각을 삼성각(三聖閣)이라 한다.각(閣)이라고 한 이유는 불교 본연의 것이 아닌 불교가 전파되면서 수용된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는 음양오행에 의한 탑의 층수, 성리학에 뿌리를 둔 태극문양의 사용 등에서도 볼 수 있다.2. 가람배치(1) 삼국의 가람배치{1) 고구려의 가람배치고구려 초기의 불사(佛寺)에는 남북축선상에 주건물과 탑을 배치한 일탑식 가람이 이루어졌는데, 이와 같은 배치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주택건축에서 사용해왔던 사합원(四合院)배치를 그 기본으로 하여 폐쇄적이고 좌우대칭적인 건물의 배치이다. 우리나라의 사찰가람으로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것은 평양 부근의 청암리 절터와 원오리 만덕사터, 정릉사터인데 그 가람의 형태는 중앙부에 8각 건물터를 중심으로 동,서, 북쪽에 금당이 놓이고 남쪽에 중문을 둔 삼금당일탑식 가람이다. 금강사터로 추정되는 청암리 건축군지는 일본의 최초사찰이었던 비조사와 같은 배치임이 밝혀졌고 이러한 배치는 소위 중국 사기 천관서에 나오는 오성좌의 배치와 같은바 이는 분명 천문오행사상에 입각하여 중심축을 설정, 좌우대칭되는 배치를 이룬 것임을 알 수 있다.2) 백제의 가람배치{발굴조사를 통하여 백제 절터임이 밝혀진 곳은 주로 부여지방과 익산지역의 몇 곳만이 있으며, 대표적인 미륵사의 가람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륵사 가람은 삼원병렬식의 가람으로 동, 서 및 중원으로 구획되어 있는데, 각 원(院)에서는 중문과 탑, 금당을 1동씩 두어 일탑식 가람을 동서축선상에 나란히 배치하고, 또 동, 서원에는 석탑을 두고 중원에는 목탑을 두어 삼탑삼금당을 이룬다. 이외 백제시대의 절터로는 정림사, 금강사, 군수리 절터, 동남리 절터 등이 있다. 이들 사찰지의 모습은 중심축이 설정되고 좌우대칭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남북자오선을 중심으로 하여 중앙에 금당을 두고 그 남쪽있는 중문에 연결시키는 배치이다. 이들 건물에 종루, 경루 등을 포함하여 백제식 칠당가람제라고 부른다.3) 신라의 가람배치{신라시대에 가장 먼저 조영된 불사건축은 흥륜사와 영흥사였다. 이들 사찰에 뒤이은 중요한 불사로는 황룡사, 기원사, 실제사, 삼랑사, 분황사, 영묘사 등이 창건되었고, 현재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흥륜사, 황룡사, 분황사 등이다. 그 중 황룡사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황룡사는 발굴결과, 여러 차례 가람의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초기가람은 백제의 일탑식 가람에 동, 서구에 다시 금당을 한 개씩 나란히 놓아 삼금당일탑식을 이룬다. 그후 제 2차, 제 3차의 변화가 있었으나 결국 고려 때 몽고란에 의하여 전부 소실되었다. 최근의 발굴조사에 의하면, 남북자오선을 중심축으로 하여 중앙에 금당, 그 좌우에 또 다른 전각, 그 남방에 탑, 북방에 강당, 탑 전방좌우에 또 다른 건물, 그리고 중문과 강당 좌우로 장방형으로 회랑을 두른 이른바 고구려시대 삼금당 형식의 변형된 배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2) 남북조시대의 가람배치1) 통일신라의 가람배치{통일신라시대의 사찰가람은 신라 초기 백제의 영향을 받은 평지 일탑식 가람에서 차츰 구릉으로 위치를 바꾸어 이탑식으로 변하거나 산지가람으로 바뀐다. 또 탑에 있어서 이탑식으로 변하면서 통일 직후의 사찰인 사천왕사나 망덕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석탑으로 변모하는데, 이탑식 가람의 특징은 불상을 안치한 금당을 중심으로 이 금당의 전방 좌우대칭되는 위치에 동, 서 양탑을 배치하고 남북축선상의 남쪽으로부터 중문, 금당, 강당을 놓는다. 가람의 예로는 사천왕사, 감은사, 불국사, 화엄사 등이 있으며, 불국사에 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불국사는 이탑식 가람으로 동쪽에 대웅전을 중심으로 배치된 구역과 서쪽에 극락전을 중심으로 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동쪽의 대웅전 전방 동, 서 양측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놓이고, 정면에 석등과 자하문이 있다. 후측에는 강당인 무설전이 놓였으며 다시 그 뒤쪽 높은 지대에
高麗事 崔忠獻 封事 10條━━━━━━━━━━━━━━━━━━━━━━━━━━━━━━━━━━━━━━━━━━今一二浮圖 山人也 常徘徊王宮 而入臥內금 일 이 부 도 산 인 야 상 배 회 왕 궁 이 입 와 내지금 한 두 (중) 뫼 사람 항상 노닐 노닐 임금 집 말이을 들 침실 안부도(浮圖) : 부처, 또는 중을 달리 일컫는 말산인(山人) : 깊은 산 속에서 세상을 멀리하고 사는 사람, 산속에 사는 중이나 도사배회(徘徊) : 목적없이 이리저리 거닐━━━━━━━━━━━━━━━━━━━━━━━━━━━━━━━━━━━━━━━━━━陛下惑佛 每優容之 浮圖者 旣冒寵 屢以事 干穢聖폐 하 혹 불 매 우 용 지 부 도 자 기 모 총 누 이 사 간 예 성미혹할 불교 매양 후할 용서할 (중) 이미 덮을,쓸 총애할 자주 ~로써 일 구할 더럽힐성스러울미혹(迷惑) : 마음이 흐려서 무엇에 홀림━━━━━━━━━━━━━━━━━━━━━━━━━━━━━━━━━━━━━━━━━━德 而陛下 內臣 勾當三寶 以穀取息於民 其弊不細덕 이 폐 하 내 신 구 당 삼 보 이 곡 취 식 어 민 기 폐 불 세덕 말이을 안 신하 굽을 맡을 석 보물 ~로서 곡식 취할 (이식) 백성 그 폐단 아니 작을내신(內臣) : 왕조 때, '대궐에서 임금을 가까이에서 받드는 신하'를 이르는 말삼보(三寶) : 부처와, 부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과, 그 가르침을 펴는 중. 곱, 불(彿)·법(法)·승(僧)이식(利息) : 남에게 금전을 꾸어 쓴 대가로 치르는 일정한 비율의 금전으로 빚돈에 덧붙어 일정한 푼수로 느 는 돈을 말함. 길미. 이자(利子). 변리(邊利)━━━━━━━━━━━━━━━━━━━━━━━━━━━━━━━━━━━━━━━━━━惟陛下 斥群 使不跡于宮 毋得息穀유 폐 하 척 군 사 불 적 우 궁 무 득 식 곡오직 물릴칠 무리 하게할 아니 자취 ~에 집 말라 얻을 (이식) 곡식━━━━━━━━━━━━━━━━━━━━━━━━━━━━━━━━━━━━━━━━━━比聞 郡國吏 多逞貪 廉恥道息 諸道使 置不問焉비 문 군 국 리 다 영 탐 염 치 도 식 제 도 사 치 불 문 언견줄 들을 고을 나라 벼슬아치 많을 즐겁다 탐할 청려할 이치,근원 모든 길 (안찰사) 아니 물을 이에부끄러워할 버려두다제도(諸道) : 행정 구역의 모든 도안찰사(按察使) : [특히 행정 따위에 대하여] 자세히 조사해서 잘잘못을 밝히는 사람設有仁而淸者 亦不之知 使其惡肆 而淸無益 柰戒설 유 인 이 청 자 역 불 지 지 사 기 악 사 이 청 무 익 내 계베풀 있을 어질 탐욕이없다 또한 아니 알 하여금 그 악할 방자할 탐욕이없다 유익 어찌 경계할(설혹) 사람 (청백) 없을━━━━━━━━━━━━━━━━━━━━━━━━━━━━━━━━━━━━━━━━━━勸何 惟陛下 兩界都統 五道按察使 按吏能否 具以권 하 유 폐 하 양 계 도 통 오 도 안 찰 사 안 리 능 부 구 이권장할 어찌 오직 둘 경계 도읍 큰줄기 다섯 길 살필 벼슬아치 잘할 아니 갖출양계(兩界) : 고려 현종 때 정했던 지방 행정 구역인 동계(東界)와 서계(西界)도통사(都統使) : 고려 때, 각 도의 군대를 통솔하기 위하여 두었던 무관 벼슬━━━━━━━━━━━━━━━━━━━━━━━━━━━━━━━━━━━━━━━━━━狀聞 能者擢之 否者懲之장 문 능 자 탁 지 부 자 징 지(장계) (주문) 잘할 사람 발탁할 아니 사람 징계할장계(狀啓) : 감사나 왕명으로 지방에 파견된 벼슬아치가 글로 써서 올리던 보고주문(奏聞) : 임금에게 아룀. 주달(奏達). 주어(奏御). 주품(奏稟)━━━━━━━━━━━━━━━━━━━━━━━━━━━━━━━━━━━━━━━━━━今之廷臣 不節儉 修第宅 理服玩 飾以珍寶 而 異금 지 정 신 불 절 검 수 제 택 리 복 완 식 이 진 보 이 이지금 ~의 조정 신하 아니 마디 검소할 고칠 차례 집 다스릴 옷(의복) 장난할 꾸밀 ~로써 진귀할 보물 자랑할 이상할(기이)절검(節儉) : 절약하고 검소하게 함제택(第宅) : 살림과 정사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之 風俗傷敗 亡無日矣지 풍 속 상 패 망 무 일 의바람 풍속 상처 깨뜨릴 망할 없을 날 어조사(과거,단정)풍속(風俗) : 예로부터 지켜 내려오는 생활에 관한 사회적 습관. 풍기(風氣).━━━━━━━━━━━━━━━━━━━━━━━━━━━━━━━━━━━━━━━━━━惟陛下 具訓于百僚 禁華侈 尙儉嗇유 폐 하 구 훈 우 백 료 금 화 치 상 검 색오직 갖출 훈계할 일백 벼슬아치 금할 번성할 사치할 숭상할 검소할 아껴쓸백료(百僚) : 모든 벼슬아치. 백공(百工). 백규(百揆). 백관(百관(官)).在祖聖代 必以山川順逆 創浮圖祠 隨地以安 後代재 조 성 대 필 이 산 천 순 역 창 부 도 사 수 지 이 안 후 대있을 조상 성스러울 대 반드시 ~로써 뫼 하천 순할 거스를 비롯할 (부처) 사당 따를 땅,지리 ~로써 편안할 뒤 대(태조)성대(聖代) :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세대. 성세(聖世)순역(順逆) : 순리(順理)와 역리(逆理).순리(順理) : 도리에 순종함역리(逆理) : 도리나 사리에 어그러지는 일━━━━━━━━━━━━━━━━━━━━━━━━━━━━━━━━━━━━━━━━━━將相群臣 無僧尼等 無問山川吉凶 營立佛宇 名爲장 상 군 신 무 승 니 등 무 문 산 천 길 흉 영 립 불 우 명 위장차 서로 많은 신하 없을 승려 여승 무리 없을 물을 뫼 하천 길할 흉할 짓다 세울 부처 집 이름짓다 할(무례)장상(將相) : 장수(將帥)와 재상(宰相).장수(將帥) : 군사를 지휘 통솔하는 장군재상(宰相) : 임금을 보필하며 모든 관원을 지휘·감독하는 자리에 있는 이품이상의 벼슬을 통틀어 이르던 말무례(無禮) : 예의가 없거나 예의에 맞지 않음. 버릇없음승니(僧尼) : 승가(僧伽)와 비구니(比丘尼). 곧,남자 중과 여자 중불우(佛宇) : 부처를 모신 집. 범전(梵殿). 불각(佛閣). 불당(佛堂). 불전(佛 殿)━━━━━━━━━━━━━━━━━━━━━━━━━━━━━━━━━━━━━━━━━━願堂 損傷地 變屢作 惟陛下 使陰陽官檢討 凡裨補원 당 손 상 지 변 루 작 유 폐 하 사 음 양 관 검 토 범 비 보빌 집 상할 다칠 땅(지맥) 재앙 자주 일어날 생각할 하여금 음기 양기 벼슬관직 다스릴 무릇 도울 도울조사할지맥(地脈) : 풍수설에서,정기가 순환한다는 땅속의 줄을 이르는 말━━━━━━━━━━━━━━━━━━━━━━━━━━━━━━━━━━━━━━━━━━外 輒削去勿留 無爲後人觀望외 첩 삭 거 물 류 무 위 후 인 관 망밖 번번이 빼앗을 버릴 말다 머무르다 없을 할 뒤 사람 볼 바라볼━━━━━━━━━━━━━━━━━━━━━━━━━━━━━━━━━━━━━━━━━━省臺之臣 主言事故 上或不逮 則有敢諫 雖干逆鼎성 대 지 신 주 언 사 고 상 혹 불 체 즉 유 감 간 수 간 역 정대궐 성문 ~의 신하 주로하다 섬기다 일 (주상) 혹 아니 미칠 곧 있을 감히 간할 비록 범할 거스를 바야흐로여쭈다역정(逆鼎) : 불유쾌한 충동으로 왈칵 치미는 노여움. 성의 높임말━━━━━━━━━━━━━━━━━━━━━━━━━━━━━━━━━━━━━━━━━━━━━━━━━━━━━━━━━━━━━━━━━━━━━━━━━━━━━━━━━━━━所甘心焉 今皆低昻 以苟合爲心 惟陛下 擇其人而소 감 심 언 금 개 저 앙 이 구 합 위 심 유 폐 하 택 기 인 이~바 달 마음 어찌 지금 모두 낮을 높을 구차할 합할 할 생각 오직 택할 그 사람(적임자)━━━━━━━━━━━━━━━━━━━━━━━━━━━━━━━━━━━━━━━━━━後 使直言在庭 臨事或折후 사 직 언 재 정 임 사 혹 절뒤 하여금 곧을 말씀 있을 조정 임할 일 있을 (면절)면절(面折) : 바로 마주 대하여 잘못이나 결점을 꾸짖음━━━━━━━━━━━━━━━━━━━━━━━━━━━━━━━━━━━━━━━━━━
━━━━━━━━━━━━━━━━━━━━━━━━━━━━━━━━━━━━━━━━━━弓裔 新羅人 姓金氏 考第四十七憲安王誼靖) 신라의 제47대 왕(재위 857∼860)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의정(誼靖) 혹은 우정(祐靖)이다. 신무왕의 이복동생으로, 아버지는 성덕대왕(成德大王)으로 봉해진 균정(均貞)이고, 어머니는 충공(忠恭)의 딸 조명부인(照明夫人, 혹은 昕明夫人) 김씨이며, 할아버지는 예영(禮英)으로 원성왕의 아들이다. 슬하에 딸이 둘 있었는데 모두 다음 왕인 경문왕의 비가 되었다. 그리고 궁예(弓裔)는 왕의 서자로 알려져 있다.母憲安王궁 예 신 라 인 성 김 씨 고 제 사 십 칠 헌 안 왕 의 정 모 헌 안 왕활 후손 나라이름 그물 사람 성 성 성 아버지 차례 넷 열 일곱 법도 편안할 임금 옳을 꾀할 어미 법도 편안할 임금━━━━━━━━━━━━━━━━━━━━━━━━━━━━━━━━━━━━━━━━━━嬪御 失其姓名. 或云 “四十八景文王膺廉) 신라 제48대왕(재위 : 861∼875) 성은 김씨, 이름은 응렴(膺廉), 혹은 의렴(疑廉)으로 부르기도 한다. 아버지는 계명(啓明)이며, 어머니는 광화부인(光和夫人)이다. 할아버지는 희강왕이며, 할머니는 충공(忠恭)의 딸인 문목부인(文穆夫人)김씨이다. 왕비는 헌안왕의 큰 딸인 영화부인(寧花夫人)김씨이고, 뒤에 헌안왕의 작은 딸도 왕비로 삼았다. 아들은 황(晃: 정강왕), 정(晸: 헌강왕), 윤(胤)이고, 딸은 만(曼: 진성여왕)이며, 동생으로 위홍(魏弘)이 있었다.之子”빈 어 실 기 성 명 혹 운 사 십 팔 경 문 왕 응 렴 지 자궁녀 어거할 일다 그 성 이름 혹은 이르다 넷 열 여덟 빛 글월 임금 가슴 청렴할 어조사 아들※嬪御(빈어) : 천자의 침석에서 시중드는 궁녀·천자의 첩━━━━━━━━━━━━━━━━━━━━━━━━━━━━━━━━━━━━━━━━━━以五月五日 生於外家 其時屋上有素光 若長虹 上屬天.이 오 월 오 일 생 어 외 가 기 시 옥 상 유 소 광 약 장 홍 상 속 천다섯 달 다섯 날 태어날 어조사 외가 집 그 때 지붕 들━━━━━━━━━━━━━━━━━━━━━━━━━━━━━━━━━━━━━━━━━━予不忍竊養 以至今日 而子之狂如此 必爲人所知 則予與여 불 인 절 양 이 지 금 일 이 자 지 광 여 차 필 위 인 소 지 칙 여 여나 아니 차마 몰래 기를 이를 오늘 날 당신 경망할 같을 이 반드시 이를 사람 바 알 곧 나 더불어못하다 ~하면━━━━━━━━━━━━━━━━━━━━━━━━━━━━━━━━━━━━━━━━━━子俱不免 爲之奈何” 弓裔泣曰 “若然則吾逝矣 無爲母자 구 불 면 위 지 내 하 궁 예 읍 왈 약 연 칙 오 서 의 무 위 모당신 함께 아니 면할 할 어찌 어찌 활 후손 울다 말하되 만일 그러할 곧 나 갈 어조사 없을 할 어머니━━━━━━━━━━━━━━━━━━━━━━━━━━━━━━━━━━━━━━━━━━憂”便去世達寺 今之興敎寺是也. 祝髮爲僧 自號善宗.우 변 거 세 달 사 금 지 흥 교 사 시 야 축 발 위 승 자 호 선 종근심할 곧 갈 인간 통할 마을 오늘 일으킬 가르칠 절 이 ~라 이르다 끊을 머리털 할 중,승려 스스로 이름 착할 근본※祝髮(축발) : 머리를 깎음━━━━━━━━━━━━━━━━━━━━━━━━━━━━━━━━━━━━━━━━━━及壯不拘檢僧律 軒 有膽氣. 嘗赴齋行次 有烏鳥銜物급 장 불 구 검 증 률 헌 지 유 담 기 삼 부 재 행 차 유 오 조 함 물미칠 장성할 아니 구애 법식 중 법령 높을 있을 쓸개 기운 일찍 갈 재계 갈 버금 있을 까마귀 새 물다 물건굽힐 (기백,용기)※僧律(승률) : 중이 지켜야 할 계율 ※軒 (헌지) : 올라감과 내려감, 높낮이, 우열※齋(재) : 재계(제사 지내기 전 며칠 동안 심신을 깨끗이 하며 부정한 일을 가까이 하지 않는 일)━━━━━━━━━━━━━━━━━━━━━━━━━━━━━━━━━━━━━━━━━━落所持鉢中. 視之 牙籤書王字. 則秘而不言 頗自負.낙 소 지 발 중 시 지 아 첨 서 왕 자 칙 비 이 불 언 파 자 부떨어 바 가지다 바리때 안 볼 어조사 상아 제비 글 임금 글자 곧 숨길 아니 말하다 자못 스스로 힘입을,믿을뜨릴 (짐을)지다※籤━━━━━━━━━━━━━━━━━━━━━━━━━━━━━━━━━━━友. 景福元年壬子 投北原賊梁吉 吉善遇之 委任以事.우 경 복 원 년 임 자 투 북 원 적 량 길 길 선 우 지 위 임 이 사벗 빛 복 근원 해 아홉째 첫째 의탁할 북쪽 근원 도둑 들보 길할 착할 좋을 대접할 맡길 맡길 일천간 지지※景福(경복) : 당소종 연호 ※壬子(임자) : 진성왕 6년(892년)※北原(북원) : 지금의 원주 ※양길 : 통일 신라 말기의 반란자━━━━━━━━━━━━━━━━━━━━━━━━━━━━━━━━━━━━━━━━━━遂分兵 使東略地. 於是出宿雉岳山石南寺 行襲酒泉·奈수 분 병 사 동 략 지 어 시 출 숙 치 악 산 석 남 사 행 습 주 천 내드디어 나눌 병사 하여금 동쪽 범할 땅 이 나올 숙을 꿩 큰산 뫼 돌 남쪽 절 지날 엄습할 술 샘 어찌갈※石南寺(석남사) : 울산 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의 석남산이라고도 불리는 가지산에 있는 사찰, 824년에 창건※酒泉(주천) :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城·鬱烏·御珍等縣 皆降之.성 울 오 어 진 등 현 개 항 지내성 막다 까마귀 다스릴 보배 같을 고을 모두 항복받을※奈城(내성) : 지금의 영월 ※鬱烏(울오) : 지금의 평창 ※御珍(어진) : 지금의 울진━━━━━━━━━━━━━━━━━━━━━━━━━━━━━━━━━━━━━━━━━━乾寧元年 入溟州 有衆三千五百人 分爲十四隊.건 녕 원 년 입 명 주 유 중 삼 천 오 백 인 분 위 십 사 대하늘 평안할 근원 해 들어갈 바다 고을 있을 무리 석 일천 다섯 일백 사람 나눌 할 열 넉 군대※乾寧(건녕) : 당소종 연호, 진성왕 8년(894년) ※溟洲(명주) : 지금의 강릉━━━━━━━━━━━━━━━━━━━━━━━━━━━━━━━━━━━━━━━━━━金大·黔毛·昕長·貴平·張一等爲舍上 [舍上謂部長也]금 대 검 모 흔 장 귀 평 장 일 등 위 사 상 사 상 위 부 장 야쇠 큰 검다 털 새벽 길 귀할 평평할 베풀 하나 같을 할 집 윗 집 윗 이를 江兩縣. 四年丁巳 仁物縣降.영 임 강 양 현 사 년 정 사 인 물 현 항고개 임할 물이름 둘 고을 넉 해 넷째 여섯째 어질 물건 고을 항복받을천간 지지※僧嶺(승영) : 연천군 인목면 ※臨江(임강) : 지금의 장단※四年丁巳(사년정사) : 진성왕 11년 ※仁物(인물) : 지금의 개풍군━━━━━━━━━━━━━━━━━━━━━━━━━━━━━━━━━━━━━━━━━━善宗謂 松岳郡漢北名郡 山水奇秀 遂定以爲都.선 종 위 송 악 군 한 북 명 군 산 수 기 수 수 정 이 위 도이를 소나무 큰산 고을 큰 북녘 이름 고을 뫼 물 기이할 빼어날 드디어 정할 할 도읍━━━━━━━━━━━━━━━━━━━━━━━━━━━━━━━━━━━━━━━━━━擊破孔巖·黔浦·穴口等城. 時梁吉猶在北原 取國原等三격 파 공 암 검 포 혈 구 등 성 시 량 길 유 재 북 원 취 국 원 등 삼칠 깨뜨릴 구멍 바위 검을 물가 구멍 입 무엇 내성 때 들보 길할 같을 있을 북녑 고을 취할 나라 고을 같을 석※孔巖(검포) : 지금의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黔浦(검포) : 지금의 김포 ※북원(北原) : 지금의 원주※穴口(혈구) : 지금의 강화 ※國原(국원) : 지금의 충주━━━━━━━━━━━━━━━━━━━━━━━━━━━━━━━━━━━━━━━━━━十餘城有之. 聞善宗地廣民衆 大怒 欲以三十餘城勁兵襲십 여 성 유 지 문 선 종 지 광 민 중 대 노 욕 이 삼 십 여 성 경 병 습열 나머지 내성 있을 들을 땅 넓을 백성 많을 클 노할 하고자할 석 열 나머지 내성 굳셀 병사 엄습할※勁兵(경병) : 강한 군사━━━━━━━━━━━━━━━━━━━━━━━━━━━━━━━━━━━━━━━━━━之. 善宗潛認 先擊大敗之. 光化元年戊午春二月 葺松岳지 선 종 잠 인 선 격 대 패 지 광 화 원 년 무 오 춘 이 월 즙 송 악몰래 알 먼저 격파할 큰 무너뜨릴 빛 될 근원 해 다섯째 일곱째 봄 둘 달 기울 소나무 큰산천간 지지 (수선함)※光化元年戊午(광화원년무오) : 신라 효공왕 2년(서기 898년)━━━━━━━━━━━━━━━━━━━━━━━━━━━━━━━━어 숨기고 말을 하지 않았으나 자못 자부하였다. 신라가 쇠약하여진 말기에 정치가 잘못되고 백성이 흩어져 왕기(王畿) 밖의 주현들이 반란세력에 따라 붙는 자가 거의 반에 이르고 먼 곳과 가까운 곳에서 뭇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나 그 아래 백성이 개미처럼 모여드는 것을 보고 선종은 이런 혼란기를 타서 무리를 모으면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여 진성왕 즉위 5년 즉 대순(大順) 2년 신해년(891)에 죽주(竹州)의 도적 괴수 기훤(箕萱)에게 의탁하였다. 기훤이 얕보고 거만하여 예로서 대접하지 않자, 선종은 속이 답답하고 불안해하여 기훤의 휘하에 있었던 원회(元會), 신훤(申煊)과 몰래 결합하여 벗으로 삼았다.경복(景福) 원년 임자년(진성왕 6: 892)에 북원(北原)[현재의 강원도 원주시]의 도적 양길(梁吉)에게 의탁하니 양길이 잘 대우하여 일을 맡기고 드디어 병사를 나누어 주어 동쪽으로 땅을 점령하도록 하였다. 이에 [선종은] 치악산(雉岳山) 석남사(石南寺)에 머물면서 주천(酒泉)[현재의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나성(奈城)[현재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울오(鬱烏)[현재의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어진(御珍)[현재의 경북 울진군 울진읍] 등의 고을을 습격하여 모두 항복시켰다.건녕(乾寧) 원년(진성왕 8: 894)에 명주(溟州)[현재의 강원도 강릉시]에 들어가 거느린 무리 3천5백 명을 14개 부대로 편성하고 금대(金大), 검모(黔毛), 흔장(長), 귀평(貴平), 장일(張一) 등을 사상(舍上)으로 삼아 병졸과 더불어 어려움과 편함을 함께 하였고, 관직을 주고 뺏음에 있어서도 공정하게 하여 사사로움이 없게 하였다. 이로써 뭇 사람의 마음이 [선종을] 두려워하고 사랑하여 추대하여 장군이 되었다.이에 저족(猪足)[현재의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성천(川)[현재의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부약(夫若)[현재의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금성(金城), 철원(鐵圓) 등의 성을 격파하니 군세가 매우 불어났다. 패서(浿西)[현재의 황해도 일대]의 도적들 중 와서 항복하는 다.
I. 서론한 마을이 내륙 산지에 위치하느냐 혹은 해안 평야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그 마을의 주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또한 마을이 농사를 영위하는 평야 지대에 위치하느냐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 주변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인문적으로 그 마을의 특성과 기능이 달라진다. 이와 같이 한 국가도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특성과 역할이 다르게 나타난다.한 나라의 위치는 경·위도 상으로 보는 수리적 위치와 자연 지물과의 관계에서 보는 지리적 위치, 그리고 주변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인 면에서 본 관계적 위치가 있다. 수리적 위치와 지리적 위치는 항상 변하지 않기 때문에 절대적 위치이고, 관계적 위치는 주변 정세가 변함에 따라 바뀌어지기 때문에 상대적 위치이다.우리나라의 지리적 위치의 특징을 살펴보고 그 활용에 대해 알아보자II. 본론1. 수리적 위치수리적 위치는 경,위도로 표시되는 위치로서 위도는 한 나라의 기후, 식생 분포 등에 영향을 미치며, 경도는 시간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우리 나라는 위도상으로 북위 33도~43도에 속하며 중위도이므로 열교환이 왕성하여 전선대가 자주 형성되고 고,저기압대의 빈번한 통과로 일기변화가 심하다. 또한 온대기후를 나타내며, 계절의 변화가 뚜렸하다. 경도상으로는 동경 124도~132도에 속하고 표준시로 동경 135도를 사용하므로 그리니치 표준시 보다 9시간이 빠르다.(GMT+9) 그러나 실제로 우리나라의 중앙을 지나는 중앙 경선은 127.5도로서 표준경선(135)과 7.5도의 차이가 나므로 실제로 우리 나라의 중앙 경선에 태양이 남중하는 시간은 12시 39분이 된다.이로써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특히 위도상 북반구의 중위도(30~60) 지역에 자리잡고 있어서 기후가 우선 온난하다. 헌팅턴과 같은 사람은 기후에너지면, 즉 기후가 안겨주는 정력면에서 볼 때 중위도 지역이 인간활동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평가한 바 있거니와 다량의 기후 에너지와 온난한 기후가 갖다주는 농업, 기타 옥외산업, 정신활동 등에서의 이익은 국부의 증대와 직통한다. 한국인들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중에 이 위치가 주는 개인적인 부와 국부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2. 수륙배치상 위치수륙배치상의 위치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국토는 세계 최대 대양인 태평양과 세계 최대 대륙인 아시아에 접해있는, 3면이 바다에 접한 반도의 땅이다, 반도의 해안선의 길이는 8,693km이고 도서까지 합하면 그 길이는 17,269km에 이른다. 반도는 기능상 결합과 분리의 양기능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다. 물론 어느 기능을 발휘하는 가는 그 땅위에 사는 사람들에 달려 있다., 국력이 강하여 사람들이 진취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면 결합-연결의 기능이 잘 발휘될 것이고 그 반대가 되면은 고립되거나 분리되어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양 세력으로부터 압력을 받는 처지가 될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오랫동안 후자의 위치에 있으면서 결국에는 민족분단이라는 처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이래 반도적 위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북방외교를 통해서 북방으로 진출하고 기존의 남방외교 또한 계속적으로 실시하였다. 그리고 1960년대부터 자원의 수입을 통한 제품의 수출이라는 가공무역을 통해서 반도적 위치를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다.과거에는 우리 선인들이 당시 선진의 대륙문화들을 반도통로를 통해 들여 왔고, 들여온 문화를 국토내에서 토착화하였으며 일부는 다시 섬나라 일본에 전수해주었다.기후와 관련해서 보면, 이 위치가 겨울에는 인접 대륙의 영향을 받아 춥고 건조하며, 여름에는 인접 해양의 영향을 받아 많은 비가 내리는 등의 계절 변화와 건우기 교대가 국토 위에 전개되어 주민들에게 좋은 자극과 생산력을 제공하고 있다.3. 관계적 위치관계적 위치로 보면 우리의 국토는 북쪽에는 중국과 러시아 두 나라에 인접해 있고 삼면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일본은 바다로 격리되어 있지만 가까운 나라이기 때문에 인접 관계에 있는 나라로 볼 수 있다. 거리상 가까울 뿐 인접국은 아니다는 말이다. 한 나라의 관계적 위치, 즉 인접국각에 관계되어진 위치는 그 나라의 국제정치 진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상린관계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나라의 대외정치 특히 인접국들에 대한 정치는 복잡다기해질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 인접국들이 제국주의나 팽창주의를 지니고 있는 나라들이거나, 이념상 크게 대립적인 나라들이면 자국의 안전이나 보전은 상당히 위협을 받게 된다.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이웃 나라들과 선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인접 국가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를 세력 확장의 발판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근세에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일본과 청, 러시아 등이 한반도에서 충돌하였고, 20세기 초에 일본은 우리 나라를 강제 합병하고 36년간이나 식민 통치를 하면서 한반도를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이용하였다.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우리 나라는 일제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였으나, 자유·공산 세력이 한반도에서 38°선을 사이에 두고 대립하게 됨으로써 자유주의의 전초 기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후 오랫동안 중국·러시아와는 이념의 차이로 적대 관계에 있었고, 일본과도 상당 기간 국교가 정상화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1965년에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88 서울 올림픽 이후 적극적인 북방 외교 정책을 실시하여 1990년대에는 중국, 러시아와 국교를 수립하면서 우리 나라는 각 방면에 걸쳐 이웃 나라들과의 상호 협력을 증진시켜 나가고 있다.인접국들이 친선적이고 경제-문화상으로도 상호의존적이라면, 자국 발전에 큰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오늘날의 유럽공동체(EC)의 경우에서 그 대표적인 사례를 발견할 수 있겠다. 장차 우리의 경우에도 이같은 방향으로 간다면 이 관계적 위치는 이익을 안겨주는 쪽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여성들의 이공계 분야로의 진출이 그리 활발한 편이 못 된다. 당장 대학에서도 ‘공대생’하면 일단은 ‘남성’의 이미지를 우선해서 떠올리게 마련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탓에 우리는 여성과 과학 또는 성과 과학의 문제를 동떨어진 별개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이 남성 과학기술인력에 비해 너무 소수라는 사실은 여성이 고도의 지적 능력을 요하는 전문직에 부적합하다는 담론을 생산하여 남녀평등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은 남성 중심으로 형성되어 온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 기능도 담당한다고 주장하며 페미니즘과 과학과의 소원했던 관계의 복원을 역설하고 있다.근대 이후 우리는 진리의 근거를 과학에서 찾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성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마 남녀가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자연적' 사실일 것이다. 제1부 과학과 성에서 하정옥은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 그 역사와 함의'이라는 논문을 통해 성차별의 근거로 널리 사용되어온 두개골학·사회생물학·성호르몬이라는‘과학적’설명들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회적 성차를 증명한다. 다양한 차이를 가진 존재들을 남성,여성 혹은 주체,대상이라는 이분법적인 틀에 끼워 다시 우,열로 재해석하는 것, 그리고 자연과학에서 가치중립적 관찰과 실험적 방법의 강조 속에 '이분법적이고 차별적인 성차 개념'에 대한 성찰없이 '진리'임을 강변하는 것을 통하여, 성차에 대한 사회·문화적 지식과 자연과학 지식이 상호형성 및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철저히 가리고 있다고 주장한다.또한 20여 년 전 '젠더와 과학'을 처음 얘기했던 에블린 팍스 켈러는 논문 '과학과 성 연구'에서, 과학의 구조에서 성적인 언어·문화·이데올로기 등에 주목하여 이들의 구성적인 역할을 해명하고자 한다. 특히 발생학에 주목하여, 남녀의 차이에 의존하는 성의 상징적 담론이나 메타포가 실험실에서 과학자들의 연구에 영향을 미치며 작동되고 있었음을 밝히고, 이로써 새로운 과학의 가능성을 전망한다. 얼마 전 책에서 가부장제와 관절염의 상관관계에 대한 짧은 글을 읽었다. 가사노동의 고착화된 성차별과 성분업에 따라 우리나라 여성의 류머티스 관절염 발병률이 높다는 주장이었다. 제2부 의료와 기술에서는, 오조영란은 '페미니즘 시각으로 본 의료와 여성의 건강', 그리고 박진희·홍성욱의 '생물학적 기술론과 사회적 결정론을 넘어'를 통해 바로 이러한 맥락의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다.제3부 과학과 여성의 현실에서 이은경은 '역사 속의 과학과 여성'이라는 논문으로 서구과학사 속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았던 여성 과학자들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여성이 과학에서 배제된 것과 여성에 대한‘과학적’편견이 과학에서 여성의 소외를 정당화해온 것 사이의 순환고리를 지적한다. 한편, 윤정로·김명자의 '한국 여성과학자들의 현실과 과제'는 한국 여성 과학기술인력의 현황을 분석하고 그 다양한 개선책을 제시한다. 나와 선후배 및 동료들이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인 통계 자료로 등장하여, 우리나라 과학 관련 연구소들에서의 여성 문제의 열악한 현실을 드러내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또한, 모혜정은 '한 여성 과학자의 회고'에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앞서 윤정로·김명자가 제시했던 제도적 차원의 개선책과 더불어, 교편을 잡고 있는 여성 과학기술자들이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할 많은 일들을 시사하고 있다.마지막 제4부 14인의 여성 과학자들에서는 한 명의 한국인을 포함한 14명의 대표적 여성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다. 누누이 지적해 온 과학의 여성 억압적 구조 속에서도 부단히 노력하여 근현대 과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그러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이들의 공통적인 모습들을 보면서 지금 나와 선후배 및 동료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그려진다.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해왔다. 이제까지 살펴보았듯 성차에 관한 과학적 담론조차 진실을 추구하는 객관적 탐구의 결과이기보다 남성중심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일 때가 더 많았다. 오늘날 여성의 과학 활동의 증가와 남성 고유의 활동으로서의 과학이라는 인식의 퇴조는 서로 연관되어 분명하게 진행되고 있다. 또한 다른 영역에서의 여성에 대한 인식에 비해 좀 늦은 감이 들지만, 과학과 여성의 문제도 점점 관심이 증대하고 있다.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 책의 저자들은 '현대 과학기술이나 의료가 가치중립적이거나, 과학기술이나 의료체계 전부가 성차별주의적이다 혹은 아니다'라는 식의 논의 모두를 비판한다. 그들은 젠더와 과학·기술·의료를 모두 열린 체계로 보며 이들간의 상호작용 또는 상호형성의 변증법적 관계를 지적하고 있다. 문화적 실천이 생리적 차이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다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며 변증법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이 새로운 인식은 젠더, 섹스 구분 강조에 따른 '자연적 사실' 비판에 한계를 딛고서 1970년대 후반 등장한 페미니즘의 조류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과학·기술·의료와 여성의 문제의 한계와 가능성을 이해한다는 것이야말로 젠더를 더 깊이 이해하는데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막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과학·기술·의료에 대한 이해도 한층 더 깊게 할 것이라는 이 책의 기대에 나 또한 상당히 동의한다. 그러므로 홍성욱 이외에 남성 저자가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지만 과학과 여성의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이는 물론이고 반대하거나 무관심한 이에게조차도 좋은 출발 지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끝으로 제3부를 관심있게 읽으며 과학이라는 분야에서 여성인 내가 어떻게 지내왔는지가 문득 떠올려진다. 주체적인 여성으로서보다는 인간이라 표방된 남성으로 살아왔다는 기억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아직까지도 과학에는 루스 이리가라이가 주장했던 남성과 결핍된 남성이 있을 뿐, '성차'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엔, 과학은 종종 결핍된 남성에 대한 남성의 호기로 가득 찬 환타지가 존재하는 천국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 이 땅에서조차 과학 안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으며, 이 책처럼 이미 과학과 페미니즘의 논의들은 출발되어 다양하고 풍성하게 진행되고 있다. 근대성 문제의 최전선, 여성의 문제를 과학도 더 이상 피할 수만은 없다. 그것은 '과학을 넘어서' 민주주의의 시발점이기도 하다.여성 과학기술자들이 자신이'여성'임을 자각해서'남성'과학기술자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전문 과학기술자로서 자신의 커리어에 별반 유리할 것이 없다는 인식을 알게 모르게 체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학위를 받고 직장을 잡는 과정에서 남성 과학기술자들에 비해 불이익을 당했다고 해도, 직장을 잡은 다음에는 주변의 남성 과학기술자들이 경쟁의 대상이지 배척하거나 극복해야할 대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성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같은 능력을 보여야 하는, 아니 남성보다 더 낫다는 것을 보여야 하는 여성 과학기술자들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여성으로서 남성과는 다르게 겪는 개인적인 경험의 정치적인 성격을 이슈화하고 이를 중요시하는 페미니즘의 주장이 이들에게는 좀체로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현대라는 문화속에 만들어진 현대과학은 모든 문화와 사회를 무력화하면서 많은 경우 우리사회의 남녀 불평등을 '과학적'으로 정당화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이 이런 현대과학기술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자 역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여성)과학자들의 실천과 페미니스트 이론이 만났을 때 '과학' 의 이름을 걸고 돌아다니는 담론 중에 어떤것이 과학적으로 더 타당하고 어떤것이 정치적으로 더 남녀평등의 사회에 기여하는지를 판별해낼 수 있다. 여성과학자들은 새로운 언어와 방법론으로 기존의 차별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과학적 담론을 해체하고 좀더 평등한 과학으로 재구성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과 과학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하게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과학이라는 것은 언제나 남성적인 것으로 규정되어졌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과학도 그 당시의 정치적 배경에 따라 규정되었다. 약학은 마녀의 것이 아니었던가. 점성술은 한때 결정 수단이었고, 지금은 미신에 불과하다. 연금술은 한때 서양에서 신이 아닌 주제에 '창조'한다고 설치는 이단자의 소행이었고, 그 이후에는 화학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하긴 대부분의 과학은 언제나 남성의 것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수를 다루는 것 은 배운자의 몫이었고 여성은 배움에서 소외되었으니 당연한 것인가. 근대에 들어서 더더욱 과학은 남성의 전 유물이 되었다. 과학은 모든 것을 만들어 줄 것 같은 요술 방망이였다. 그 요술 방망이 역시 산업의 수단을 갖고 있던 남성들, 교육받은 남성의 것이 되는 것도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남성의 영역에 그 남성의 과학이 이제 서서히 무너지려한다. 아니 재정의 되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