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문학 산책 레포트고전 '죄와 벌' 과 현대 사회, 그리고 나-전체적 감상-고전 '죄와 벌'은 특별히 읽은 기억은 없어도 어렸을 적부터 들어 온 전설 이야기처럼 언제부터인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아마도 어렸을 적 내가 읽었던 어린이 용.혹은 청소년을 위한..'죄와 벌'은 단순히 한 청년이 굶주림에 못 이겨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죽이고 괴로워 하다가 창녀인 소냐의 사랑의 힘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짤막한 줄거리 위주의 책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인지 이렇게 훌쩍 커져서 다시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접했을 때 내가 느낀 당황스러움, 그리고 놀라운 감동은 매우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이 소설은 지금까지 내가 알던 상투적이라고 까지 생각했던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는 '흥부와 놀부'같은 전래동화는 결코 아니었다. 사회에 대한 성찰과 인간 내면을 파헤친 탁월한 분석력은 그동안 내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프로이트 이상의 것이었다.라스콜리니프가 내면적으로 번민하고 살인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 낸 첫 200페이지의 분량 정도만으로도 나는 이 소설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의 머리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치밀하고도 섬세한 내면의 분석과 주인공의 독백에서 느껴지는 방대한 사상의 깊이, 그리고 지극히 사실적이고 ,긴박하며, 숨을 멈출 수 없을 정도의 논리를 펼치는 작가의 문체는 어떤 스릴러 영화보다도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사람들이 왜 고전을 높이 평가하는지를.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줄거리-소설이란 줄거리만으로는 이야기 할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이 작품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이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해 보면 방대한 분량에 비해 턱없이 간단 명료하다. 한 범죄자의 정신적인 고행과 그에 맞서는 거룩한 영혼의 이야기, 즉 살인을 저지르는 라스콜리니프와 그를 종교적 사랑의 힘으로 구원하는 소냐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주된 요점이다.라스콜리니프는 사회악의 하나였던 고약한 고리대금업 노파를 살해한다. 그러나 살해의 순간, 마음 착한 노파의 동생까지 살해하고만 라스콜리니프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그는 영웅적 인간, 즉 인류의 발전을 위해 범죄의 행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비범한 인간이 왜 사회악으로 대변되는 '이' 같은 존재인 노파를 처단해야 했는지는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렇게 긴박한 살인을 저지른 라스콜리니프는 자신의 범죄에 대해 회의하고 괴로워하기 시작한다.라스콜리니프는 자신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영웅이 된 나폴레옹이 아니라, 단순히 한 살인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괴로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주위에서는 끊임없는 사건이 생겨나 그의 신경을 날카롭게 한다.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누이의 약혼자 문제로 그를 찾아오고, 그를 의심하는 치안판사와 두뇌게임을 하고 주정뱅이와 얽혀들어 그들의 가족과 관계하게 되며, 점차적으로 극도로 혼란스러운 의식의 바다로 빨려 들어간다.라스콜리니프에게 다가온 가장 큰 혼란은 '소냐'의 존재였다. 소냐는 지적으로 뛰어나거나 라스콜리니프의 의식을 대변할 만한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신앙은 라스콜리니프의 '신념'과도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 또한 그녀에게 있어 신앙이란 삶 그 자체이며 그녀를 빛나게 하는 태양이었다. 라스콜리니프는 소냐의 성서낭독에 감흥 하여 마침내 자수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라스콜리니프는 유형지에서 마지막 순간에 신의 존재에 다시 눈뜬다.-심층 감상-1.삶의 진정성라스콜리니프는 병적인 인간, 혹은 자아의식이 거대하며 관념적인 인간의 전형으로 그려지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엄청난 사고의 체계를 가진 끔찍하게 민감하고 정신병적인 살인마에 불과하지만 그를 미워할 수만은 없다. 그가 갖고 있는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고뇌와 성찰은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의 젊은이들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대중화 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삶과 인간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라스콜리니프처럼 당장 학업을 이을 수 없고 생계를 잇는 문제 마저 불가능한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지도 않을뿐더러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면 깊은 곳의 사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라스콜리니프가 저지른 살인과 그에 대한 자신의 정당화가 불합리하다 하더라도 목숨을 내걸고 삶의 진정성에 뛰어 드는 그의 모습에서 내게 ,그리고 우리에게 부족한 열정과 집착의 생명력을 느꼈다.나는 곧잘 생각 없이 살고 있다는 말을 중얼거리곤 한다. 사실 머리 속은 언제나 사색과 사유의 끝없는 이어짐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것이 라스콜리니프가 고뇌하고 번민하는 부조리한 삶에 대한 고찰과 양심의 가책에 비교했을 때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삶의 진정성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절박한 상황에서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비판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요즘의 시대에 가장 요구되는 것은 삶과 인간에 대한 치열함일 것이다.2.무의식의 세계: 꿈꿈은 무의식의 세계이다. 유명한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의식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로 구분하였다. 프로이트는 여기서 의식세계의 사고가 꿈과 같은 무의식의 세계를 통해 드러난다고 하였다. 즉 라스콜리니프의 꿈은 그의 의식세계를 표출하고 있다.이 작품에서 라스콜리니프는 많은 꿈들을 꾸는데 그 꿈들은 노파를 죽이고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그의 심리 상태를 효과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나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무의식, 즉 꿈의 세계를 매우 존중하는 데 특히 프로이트가 꿈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분석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평소에도 스스로 꿈을 꾼 것을 기억하고 분석하는 습관이 있지만 특히 이번에 읽은 '죄와 벌' 속에 나타나는 라스콜리니프의 꿈은 작가가 그의 내면을 낱낱이 풀어 해석해 주는 것 이상의 효과를 가졌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늙은 말을 죽이는 꿈은 라스콜리니프의 혼란스러운 의식세계 속에서 노파가 살해될 것을 암시하는 중요한 복선이 된다. 또한 그는 자기가 죽인 노파가 그를 보며 웃고 있는 걸 바라보며 계속 때리는 꿈을 꾸는데 때리면 때릴수록 주위사람들의 웃음과 소리들이 커져만 간다. 이런 주위사람들의 시선을 경계하는 꿈을 통해 작가는 라스콜리니프의 살인이 폭로될 것을 알리고자 했던 것 같다.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의 꿈을 해석하듯 한 구절 한 구절 빠져들다 보면 도대체 이 작가의 사유의 끝은 어디일까 하는 경이로움에 다다르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주인공 라스콜리니프의 사유를 파헤치는 동시에 그걸 받아들이는 독자의 머리 속까지 훤히 꾀 뚫어 보고 있는 것 같다.3.나폴레옹의 오류이 소설에서 라스콜리니프의 죄는 현실의 많은 독재자나 지도자들이 저지르는 공통적인 죄와 닮아 있다. 과연 더 큰 대의를 위해 인간의 목숨을 거두어 가는 특권이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을까? 라스콜리니프의 죄는 단순히 노파를 살해했다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