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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정책]한국 문화정책의 발전방향에 관한 연구
    ≪문화기획 입문 소논문≫한국 문화정책의 발전방안에 관한 硏究문화기획 10기312105109전 지 훈추계예술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목 차 ◇제1장 서 론------------------------------------------------- 3제1절 연구의 목적과 의의------------------------------------------ 3제2절 연구의 내용과 방법------------------------------------------ 4제2장 이론의 연구 및 검토--------------------------------- 5제1절 문화예술 정책과 사회---------------------------------------- 51. 문화예술의 가치와 공공지원 근거분석--------------------------- 51) 예술의 철학적 가치2) 예술의 사회적 가치3) 예술의 경제적 가치4) 예술의 공공지원 근거2. 문화예술지원의 史적 배경-------------------------------------- 9제2절 세계 각국 문화예술정책의 유형 분석-------------------------- 111. 문화부 모델--------------------------------------------------- 122. 예술위원회와 연방주의 모델------------------------------------ 123. 국립예술기금 모델--------------------------------------------- 13제3장 한국 문화정책의 변천과 특징------------------------ 14제1절 제1기(1948~1972년)------------------------------------------ 14제2절 제2기(1973~1980년)------------------------------------------ 15제3절 제3기(1981~1990년)------------------------------------------ 17제4절 제4기(1990 분출하게 되며 이와같은 원리는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무마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원리를 도출하여 정신분석과 함께 병리치료에 효과를 보이고 있는 예술치료로 연결될 수 있다. 현재 미술치료, 음악치료 연극치료, 무용치료 등을 통해서 예술치료의 기능이 발전하고 있다.또한 가시적인 예술의 중요성을 논하자면 우리나라 헌법 제8조에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문화예술은 복지차원에서 개인의 ‘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삶의 질적 차원에서 논의되는 부분이다. 또한 문화예술은 가시적 이익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가치있는 가치재(價値財)이기에 정부는 개인에게 최소한의 문화예술의 기본권을 향유할 수 있게 해 줄 의무가 있다.)그리고 문화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민족의 문화정체성은 그 어느때보다 중요성이 증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정체성은 국가의 구성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사회에 귀속감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타국가와의 문화적 차이를 심하게 느끼게 되거나 하면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으며 자칫 국가의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이러한 국민적 정체성 형성은 특히 프랑스에서 강조된 것이다. 프랑스는 1789년 대혁명이후로 단일공화국 수립을 목표로 내세웠을 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 국민과 프랑스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강조였다. 지금 프랑스의 문화적 역량이 대단한 듯 보이지만 이는 19세기 중후반사이에 형성된 제도와 정체성에 불과하다.) 이러한 문제는 전통과도 연결될 수 있다. 전통이란 과거로부터 우리가 물려받은 것이며 우리의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분신과도 같은 것이다. 물론 세계화의 물결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화와 함께 전통문화와의 융합으로서 우리만의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 내는 힘이 필요하다. 우리 전통문화를 잃어버린 다는 것은 우리의 기반과 정체성을 상실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통문화는 시장기능을 하지 못하기에 국가정책적인 도움이 절실하다.또한medii aevi)란 뜻)으로 중세시대라는 명칭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다. 중세는 종교의 힘으로 유럽을 통치해 나가던 시기라고 거칠게 규정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시기였기에 문화예술 또한 종교세력에 의해 후원과 제약을 받게 되었다. 즉 종교와 제례의식에 공연활동이 포함되었고 이러한 의식들속에 포함된 음악, 미술, 연극등에 의해 예술계가 다양한 작품들을 양산하게 되었다. 하지만 14세기 경에 이르면 대중예술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은 단절되고 길드조직이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스폰서로 등장하여 전문적인 예술경영인의 역할이 부각)되기 시작한다.유럽에서의 근대는 인간중심의 사상과 과학에 의한 이성중심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에서 시작되었다. 도시의 번영에서 비롯된 문화의 개화와 교회의 쇠퇴 등에 힘입어 토스카나 일대가 피렌체와 더불어 르네상스의 무대가 되었다.) 이제 예술은 종교계의 거대한 후원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창조와 역량을 통해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키려는 귀족과 정치세력들의 후원을 얻게 되었다. 대표적인 가문으로서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메디치가문과 같은 르네상스시기의 후원자들은 자신의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작품의 제작을 예술가들에게 의뢰했을 뿐 아니라 예술가들을 위한, 또는 예술가와 과학자의 만남을 위한 장(즉 'salon')을 제공하고, 다양한 분야의 천재들이 서로 자극을 주고받도록 함)으로써 문예의 발달에 공헌했다. 15세기로 넘어오면서 신대륙의 발견으로 유럽의 경제력은 팽창하였고 프랑스를 비롯하여 많은 유럽국가들은 부와 군사력을 바탕으로 절대군주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절대군주들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거나 극장건립등을 통하여 후원해 나갔다.하지만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경제적으로, 프랑스대혁명 등의 정치적 혁명을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사회의 구조는 재빠르게 변해갔으며 두 혁명을 통하여 근대시민사회가 성립됨으로써 부르주아들의 등장은 예술계에도 많은 변화를 초래했다. 우선 이제까지 예술가와 후원자가 1대1 확대되어 가는 시기로 문화정책의 성장기로 구분한다. 제4기는 1990년 전담부서인 문화부가 설립되고 문화발전10개년 계획이 수립된후 현재까지의 시기로 문화정책의 성숙기라 보고 있다.제1절 제1기(1948~1972년)해방이후 미군정시절 학무국 문화과에서 예술행정을 추진한이래 1948년 제1공화국수립 이후도 마찬가지로 이시기는 문화정책의 정비시기라 할 수 있다. 해방이후의 정국 불안정,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사업등으로 사실상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다른 이데올로기와 경제정책에 밀려 관심을 가지지 않는 시기였다. 당시의 정치지도자나 관료들은 국가발전을 물론 전쟁등의 이유로 소실된 문화유산의 복구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조차도 마련하지 못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사실상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정책을 기대하기란 불가능 하였다.)해방이후 이승만정권의 주요 통치이념은 반공주의와 민족주의로 집약된다. 문화예술은 이러한 이념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요소로 고려되었으며 결국 문화정책도 반공주의와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수립될 수 밖에 없었다. 50년대까지도 예술부문에 대한 정부의 지원사업은 취약하였으며 문화정책 부문도 전통문화유산과 전통예술에 국한된 것이었다. 그 뒤의 박정희 정권 또한 이는 마찬가지이다. 1962년 문화공보예산을 보면 문화예술예산과 문화재관리예산이 각각 3.9%와 15.5%를 차지하였으며 1972년에는 각각 9.5%와 31%로 나타난 문화재 관리예산이 문화예술예산보다 훨씬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1961년 ‘공연법’을 필두로 1962년 ‘문화재 보호법’이 제정?공포되어 이에 관한 법률적 기반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이러한 입법들은 행정절차법 위주로, 문화정책은 문화의 진흥보다는 통제를 목적으로 한 규제정책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이러한 통제와 함께 정부가 주도했던 문화정책은 전통문화의 보급을 통한 민족주의정신의 전파였다. 비록 전통문화에 관한 정부정책이 70년대 주도적으로 추진되었지만 민족적 자각기운과 민족주체성확립을 위한 노력은 민족문화예술의을 조성하는데 있다. 이처럼 문화정책의 목표가 창조계층에서 향수계층으로 옮겨가고, 규제보다는 자율을 강조하여, 문화정책의 추진방향 또한 전문예술인 중심에서 일반인 중심으로, 중심계층 중심에서 취약계층 중심으로,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전환하게) 되었다.90년대 말부터는 이제 전통문화 대신 국민의 문화향수권 신장이 우선적인 문화정책의 목표로 내새워 문화정책의 대상이 향수자 중심으로 변화되었다. 이제는 전통문화의 보호 예술의 육성차원이 아니라 삶의 질 향상과 문화를 통한 지역발전과 같은 새로운 개념들이 떠오르게 된 것이다. ‘국민의 정부’ 문화정책은 문화의 세기라는 21세기를 대비하는 ‘새문화정책: 문화의 힘으로 제2건국’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정책을 수립하게 된다. 이러한 새문화정책의 특징은 이전의 문화정책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검토하여 국가적 경제위기의 원인을 지식과 정보가 바탕이 되는 문화적 측면에서 진단하고 ‘문화를 통한 위기극복’이라는 접근방법을 모색하였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또한 문화예술지원의 방향에서도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 문화정책을 권위주의정치의 도구로 활용하지 않고 규제와 통제를 지양)하겠다는 방침을 실천하고 했다.결국 국민의 정부 문화정책의 상징적인 결실로 역대 정부 최초로 1999년 국정지표에 ‘문화관광의 진흥’이 포함되어 문화예술진흥이 국정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으며 문화의 세기를 맞이하는 첫 해 2000년에 문화예산 1%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제6공화국 이후 연도별 정부예산 및 문화부문예산 비율)(단위: 억 원/%)구분연도정부예산문화부처 예산 합계문화부문 예산비고예산전년대비점유율예산전년대비점유율제3공화국29,913353-1.18141-0.47제4공화국235,8721,442-0.61769-0.33제5공화국821,4693,534-0.432,242-027제 6공화국1988182,4917569.80.4153312.40.29문화공보부1989192,28488316.70.4666825.30.351990274,55787다.
    인문/어학| 2005.10.27| 28페이지| 2,500원| 조회(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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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분석] 영화 매트릭스 분석
    극단적인 인식론적 회의주의와 극복의 가능성- 영화 MATRIX를 중심으로철학과 4학년 199702766 전지훈2003년 5월 22일 밤. 드디어 4년간 기다려온 매트릭스의 후속 작 'Reloaded'가 우리나라에서 일제히 개봉을 시작했다. 개봉 첫 주에 우리나라에서만 121만명을 돌파하였으며 이제까지 헐리웃 역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는 등(136.000.000$) 기록의 수립이 그 꼬리를 따라다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영화는 지금 매트릭스의 열풍에 휩싸여 있으며 근 한달 여 동안 다른 영화들은 거론되지도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는 비단 영화계에서 뿐만 아니다. 과학적인 측면에서도,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4년 전의 1편서부터 이 영화는 꾸준히 연구되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1999년도에 개봉한 전편을 한번보고 그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이 않았다. 2시간 남짓한 한편의 영화에 너무나 많은 내용을 함축하려 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매트릭스 리로디드의 상영에 앞서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거장들에 의해 탄생한 'Ani-Matrix'가 출시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 후속편이 개봉을 한 것이다.이러한 매트릭스라는 영화에 가장 기본적인 핵심 테마는 무엇일까? 영화 매트릭스 안에는 많은 사상들을 연결할 수 있는 '코드'가 있다. 단적으로 이 영화의 사상적 베이스는 서양철학에서 주요한 테마 중 하나인 '이성과 감성의 대립'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성적 회의주의에 대한 감성의 대응'인 것이다.어느 신문기사를 보니 각본을 맡은 워쇼스키 형제가 주연배우인 키아누 리브스에게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장 보드리아르의 『시물라시옹』이라는 책을 읽기를 요구 하였다고 한다. 영어로 '시뮬레이션'은 말 그대로 가상의 현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무엇에 대한 가상의 현실인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 현실세계를 가상의 현실로 보고 이를 시뮬레이션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론적 회의의 기초에는 서양근대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이해된다.데카르트는 주지의 '방법적 회의'를 통해 그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을 창안해낸 철학자이다. 방법적 회의를 통해 그는 감각적 지식들은 가변적(可變的)인 것이므로 신뢰할 것이 못되며, 수학같은 연역적인 법칙마저도 악한 영(靈)의 영향으로 우리의 인식은 '조작'되어 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현대로 들어오면 퍼트남의 '통속의 뇌'라는 이론이 등장한다. 통속의 뇌라는 이론은 대충 이러하다. 이는 어떤 인간이 사악한 과학자에 의해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그 사람의 뇌는 육체에서 분리되어 뇌를 계속 살아 움직이게끔 해줄 영양분이 가득 담긴 통 속에 옮겨진다. 신경 조직은 그대로 초과학적 컴퓨터에 연결되어 이 컴퓨터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것이 완벽히 정상적인 듯이 보이는 환각을 일으키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사람들, 사물들, 하늘 등은 모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이 경험하는 모든 것은 컴퓨터로부터 신경 세포에로 이어지는 전기 자극의 결과가 된다. 그뿐 아니라 그 사악한 과학자는 여러 가지로 프로그램을 변형시킴으로써 그 사람으로 하여금 과학자가 원하는 어떠한 상황이나 상태일지라도 경험하도록 할 수 있다. 과학자는 또한 뇌수술을 하였다는 기억을 삭제해 버림으로써 그 사람이 항상 그러한 상황에 있어온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데카르트의 악한 영은 바로 사악한 과학자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이러한 이론들의 완벽한 구성을 응용한 것이 바로 '매트릭스'의 설정이다. 그렇다면 이제 매트릭스의 영화로 돌아가 보자. 애니메이션인 'Ani-Matrix'의 내용 중 매트릭스의 과거에 대한 내용이 삽입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기계는 인간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인간의 몸과 정신에 대한 뇌적 구조를 파악한 후 인간의 생체 에너지를 기계들의 에너지로 쓰기 시작한다. 그럼으로써 기계는 자연적인 에너지 없이도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의 에너지를 계속 쓰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재의 사고를 없애버려야 한다. 항상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은 계속 생각하고 지각함으로써 언제든지 기계들에 대항하여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십억의 인구는 기계의 자궁(matrix)에 갇히게 되었고 인간의 몸은 온통 감각의 자극을 연결할 수 있는 구멍을 뚫고 이를 모두 컴퓨터에 연결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이 1999년의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환상을 만든 것이다. 기계는 이에 대하여 인간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 종족을 모두 나에게 넘겨라. 그럼 너희들은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그럼 여기에서 이러한 기계의 지배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기계는 오로지 인간의 감각기관과 뇌의 활동을 지배함으로써 인간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위의 데카르트의 이론도 그렇고 퍼트남의 '통속의 뇌'라는 이론 또한 위의 매트릭스와 같이 인간의 이성적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인간의 사고능력인 이성의 능력을 지배당하면 인간으로서의 생명은 끝인 것인가? 우리는 이성의 논리로서 설명되지 않는 우리 자신속에 들어있는 노여움, 사랑, 증오, 기쁨 같은 '감정'이란 것을 느끼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이론들은 서양근대 철학이후 인간의 이성에 대한 맹신과 자연과학의 법칙들의 회의를 근본적으로 지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기계들의 프로그램인 matrix는 이러한 인간의 이성적 회의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예시를 상정하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3.11.04| 3페이지| 1,000원| 조회(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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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윤리] 생태학적환경과 문화적환경
    생태학적 환경과 문화적 환경들어가는 말푸는 말1. 생태학과 생태학적위기2. 문화의 개념과 자연과의 관계3. 환경에 대한 입장의 비교1) 생태중심적 환경관점2) 인간중심적 환경관점4. '야생'의 논의로 생태와 문화의 비교나가는 말교과목:담당교수: 교수님대학과들어가는 말"오늘날 우리는 환경오염, 환경위기, 생태계의 위기, 자연파괴, 지구의 종말이라는 말을 항다반사처럼 듣고 있다.인간은 자연(환경)에서 태어나서 자연 속에서 살고 있다. 인간은 자연을 떠나서는 잠시도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교섭은 오늘날 당초에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즉 자연환경의 위기를 가져왔다. 그래서 자연환경의 위기는 인간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진교훈 저, 『환경윤리』 대우학술총서, 1998 p.17인간도 처음에는 여타 다른 동물과 다를바가 없었다. 자연 의 일부분이었으며 생태계적 흐름과 법칙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이러한 인간이 불을 사용하고 문자를 만들어 내었으며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면서 소위 '문화'라는 것을 형성해 나가면서 자연을 극복하고 뛰어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존재로까지 다다르게 되었다.생태학적 환경이나 문화적 환경같은 이분법적인 단어도 인간에 의해 자연을 대자적인 존재로 보게 되면서 지어진 말들이다. 하이데거가 말했듯이 이제 인간이라는 존재에 의해서 우주, 자연 이라고 불리는 대자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보통 생태학적 환경과 문화적 환경은 서로 상반되는 개념으로 규정지어 진다. 이 환경을 자연의 시각에서 바라보느냐, 인간의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틀려지는 의미인 것이다. 이제 본문에서는 환경윤리와 철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생태와 문화의 개념에 대한 정의를 알아볼 것이며, 현재 우리 주위에서 여겨지는 생태학적 위기에 대해서도 진단해 볼 것이다. 그리고 문화의 개념을 일원론적 형이상학과 이원론적 형이상학의 개념을 서로 비교할 것이고 인간에 대한 자연의 관계를 고찰할 것이다. 그후에는, 생태중심주의 적으로 본 환경을 논함으로써 생태학리고 모든 생물과 자연환경과의 연대가무너지기 시작함에 따라 지구 자체를 유지시켜 주는 동적 상호작용이 와해되면서 시작되었다.이러한 생태학적 위기에 관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킨젤바흐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고 주장하였다. 문제의 근원은 과학이나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생각 속에 있다는 것이다.멕헤일(J. Mchale)은 "인간이 지구를 우주의 역사에서 가장 위험스런 유기체가 되게 만든 것은 가장 최근에 발생한 것으로서, 극히 짧은 기간에 일어났다"라고 말했다. 또한 인간의 자연 남용에 따른 경고를 한 모리슨(J.F. Morrison)과 공해에 관하여 경고한 부헤이(A.S. Boughey)등 많은 사람들이 생태학적 위기에 관하여 경고하고 있다.) 진교훈 『환경윤리』 대우학술총서, 1998, p.30이러한 생태학적 위기는 많은 사람들이 서양철학의 본류중 하나인 유대 그리스도교에서 유래한다고 보고 있다. 화이트(L. White)에 의하면 유대 그리스도교의 전통은 인간을 온갖 창조물의 군주자리에 앉혀 놓고 자연을 모독하게 하는 정신적 기반을 제공했다. 는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던 곳에서는 인간중심의 세계관이 형성되고 자연을 무제한으로 약탈하고 훼손시키는 만행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이 계약을 인간의 영역으로 축소시켜 인간 중심적으로 이해했고 여기서 인간의 자기 중심적 이기주의적 사고와 삶의 태도가 발전되어 인간의 끝없는 욕구충족을 위한 자연의 무제한적 이용과 약탈이 합리화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자연에 대한 인간 중심적인 사상은 전 세계에 퍼져 마치 보편적인 관념처럼 세계인들에게 각인 시켰고 무분별한 자연파괴와 정복활동으로 인하여 생태학적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그러나 몰트만(J. Moltmann), 리트케(G. Liedke), 크롤직(Krolzic)같은 신학자들은 생태적 위기의 원인이 그리스도교의 창조신앙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생태적 위기는 전적으로 인간의 정복욕과 진보에 대한 맹신에 근거하며, 성는 인간과 환경간의 관계에 대한 상호작용적인 설명들에 의해 도전을 받게 되었고(Anderson 1973), 그러한 도전의 일익이 바로 환경결정론이다. 몽테스키외와 인류지리학자 라첼(Ratzel)의 환경결정론(environmental determinism)은 헌팅턴(Huntington 1945)에 의해 금세기로 이어졌다.(Netting 1971).) "문화연구의 생태학적 조망", 「가정문화총론」 5: 103이러한 입장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진 인간과 환경간의 관계에 대한 지배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기후나 지리적인 환경요인들이 특수한 문화의 결정인지로 간주되는 것이 환경결정론으로 개념화 된 것이다.오랫동안 행해진 결정론에 대한 수정은 1920년대와 30년대에 환경을 제한요소로 보는 환경가능론(environment possibilism)을 출현시켰다. 결정론은 비교문화적인 자료를 범세계적으로 접하게 된 인류학자들에 의해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었으며, 인간에 대한 환경요인의 결정적 입장은 '제한적'영향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가능론자들은 환경이 문화의 형성에 결정적 요인이라는 주장이 지나친 독단이라고 생각하여, 유사한 환경 하에서 서로 다른 인간집단들이 각기 다른 문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들을 제시한다.) 전경수 『문화의 이해』 일지사, 1994, p.92환경에 대한 이원론적인 관점과는 달리 힌두교, 불교, 도교등의 대표적 사상에서 볼 수 있는 동양을 대체로 지배한 것은 일원론적인 형이상학이었지만 근대이후 서양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세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원론적 형이상학의 테두리 속에서 살아왔다. 근대 서양사상과 과학기술의 세계적 확산과 지배로 동양을 비롯한 전 세계는 알게 모르게 이원론적 즉 서양적 세계관 속에 묶여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이원론적 형이상학의 산물로 인해서 이원론적 형이상학의 근거가 흔들리게 되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다윈의 진화론은 성서가 주장하는 바와는 반대로 인간과 그 밖의 다른 동물이 형이상학적으로 구별될 수 없음니이다.또 하나의 문제점은 자연이 자기 목적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일관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인간성이 인간의 기본적 요구와 갈등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은 자기 주장의 필연성과의 갈등에 빠져있다. 생물세계에는 먹이사슬이 존재한다. 자신이 생존하려면 적을 공격해야 한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퀴벌레를 죽여야 하며 쥐를 잡아야 한다. 또한 인간의 양식도 다른 동물이나 식물의 생명을 파괴함으로써 얻어진다. 이러한 상태에서 어떤 상태에서든지 삶을 멸절시키거나 손상을 주는 모든 행위는 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이러한 문제점에서 볼 때 환경위기의 해결은 기술 발전을 억압하는 데서 찾아서는 안 된다. 기술을 자연으로 대치시키려고 하는 것은 낭만주의자의 단순할 꿈일 뿐인 것이다.결국 인간과 자연의 대립에 의해 기술발전의 병폐를 지적하기 보다는 인간들의 자연에 대한 윤리적인 의무를 강화시킴으로써 기술에 대한 병폐를 막아보고자 하는 것이고, 또한 자연 없이는 인간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가능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자연과 함께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는 것이 두 번째의 주장이다.3. 환경에 대한 입장의 비교환경을 규정하고 평가하는 것이 대상에 대한 평가의 주체의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달라진다면 어떠한 평가의 주체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하는가?오늘날 환경위기는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에서 문명의 위기와 동일한 것으로 전제된 채 논의되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에 대항하여 생태중심적 관점이 대두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가치성을 인정받으려고 한다. 생태학적 환경과 문화적 환경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환경에 대한 인간의 반대적인 두 입장을 알아볼 필요성이 있다.1) 인간중심적 환경관점과거나 현재에 있어서나 일반사람들은 믈론 최근 나타난 생태주의자들이나 환경운동가들도 일부 심층 생태주의자(Deep Ecologist)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의도적이든 아니든 인간중심주의를 자명하게 옳은 세계관으로 전제하고 있다의가 하나의 형이상학적 신념이다.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모든 물질은 물론 생물과도 형이상학적으로 구별되는 유일한 존재이다. 보통 동물과 그 외적 조건의 관계가 생물학적, 인과적인 데 반하여, 인간으로서의 동물과 그 외적 조건의 관계는 상징적, 문화적 윤리적이라는데 있다.환경문제는 필연적으로 평가, 가치의 문제이다. 그런데 동물 세계는 비록 생명체들의 세계이지만 인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생물학적 원리에 의해서 물리적, 기계적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의미나 가치라는 개념은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생명체가 가치가 부여될 경우에도 인간에 의해서 부여된 가치이므로 인간을 떠한 가치, 인간 이외의 가치는 존재할 수 없다. 인간만이 자율적이고 주체성을 가진 동물이고, 그 밖의 모든 존재는 인과적으로 작동하는 타율적 존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이러한 인간중심주의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신념은 오랫동안 우리의 생각을 지배해왔다. 이러한 신념은 인간의 자연정복과 지배를 정당화해주고, 인간의 자존심을 심리적으로 만족시켜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등을 비롯한 현대의 첨단과학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현상에 대해 물리적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두 번째 신념은, 오직 인간만이 자율적 존재로서 가치 선택을 피할 수 없는 윤리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환경문제는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즉, 인간 이외의 어떠한 존재도 그 자체로서 내재적 가치를 갖지 못하며, 그것들의 아픔과 즐거움은 논리적으로 윤리적 고려의 대상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이외의 고등동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은 윤리적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같은 책, p.1032) 생태중심적 환경관점) 같은 책, p.129~169생태중심적 세계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탈인간중심적 가치관이다.우선 인간중심적 가치관을 살펴보자. 오로지 안간의 세계에서만 기차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궁극적, 내재적
    인문/어학| 2003.05.07| 12페이지| 1,000원| 조회(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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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세의 사상과 교육제도] 중세교육의 사상과 특징 평가A좋아요
    중세 교육의 사상과 특징Ⅰ중세 교육 개관Ⅱ중세 교육사상1) 교부철학2) 스콜라 철학Ⅲ중세 교육 제도1) 수도원 교육2) 대학의 교육3) 기사도 교육4) 일반시민의 교육Ⅳ 맺음말학과목:담당교수:제출일: 20년 월 일제출자Ⅰ 중세 교육의 개관) 페르디난트 자입트 『중세의 빛과 그림자』 차용구 옮김, 까치글방, 2000, p.21흔히 우리가 중세라고 지칭하는 시기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A.D 476)으로부터 동로마 제국의 멸망(A.D 1453)과 르네상스 운동직전의 약 1000년간의 시기를 의미한다) 문화사적으로 529년 동로마의 Justinianus 황제에 의한 아테네 대학 폐쇄에서 15세기 인문주의 운동의 시작까지로 보며, 시대적 특징은 신중심의 시기이다중세(Middle Age)라는 용어는 르네상스 시대의 지식인들이나 계몽주의자들이 고대와 그들의 시대 사이에 끼어 있는 암흑과 야만의 중간시대(medii aevi)란 뜻으로 사용하였다.) 강기수 저 『교육사상사』 세종출판사 1978 p.207위 저자는 물론 중세초기의 게르만 민족의 이동에 따른 로마 문화의 파괴와 초기 혼란기에 있었던 통일적 질서의 붕괴, 그로 인한 사회적 불안 등의 제 요소는 중세를 암흑기로 불 수 있는 요소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그러나 사실 중세 초기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암흑시대라고만 볼 수는 없다. Legoff, Neuainger, Max Weber 등에 의하면 게르만 민족의 초기 이동의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결과적으로 로마 문화를 보존 전승하여 이후 서양 근대 문화를 계승시켰다는 점에서 그리고 로마 멸망자체도 게르만 민족에게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로마사회 자체의 내부적 문제가 더 심각했다는 점에서 중세를 암흑시대라 규정 지우기보다는 역사의 진정한 출발기로서 발전과정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상우 저 『교육의 역사와 사상』 교육과학사, 1998 p.208중세) 중세의 명칭과 그의 반인간적 성격에 대한 의미는 이탈리아 인문주의지들에 의해 부정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인문주의자들은철학사고는 고대와의 단절이 아니라 그리스도교란 매체를 철학에 가미하여 고대 철학의 혼란했던 사고를 보편적으로 해석하려는 의도에서의 출발이었다고 볼 수 있다.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던 중세 사람들은 정신적 위안을 얻기 위해 기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나게 되었다. 초기에는 로마의 왕들의 탄압이 심하였지만 4세기경 Constantinus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됨으로써 신학은 철학적 체계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한 교부철학은 신학이 스스로 체계를 이룩하여 철학적 내용으로 구성되어 가는 시기로써 보통 2세기에서 9세기까지의 사상적 흐름을 말한다.) 강기수 저 『교육사상사』 세종출판사, 1998, p.216처음에는 동방정교의 영향과 헬레니즘의 개인적인 요소를 가미한 신앙에 의한 지혜와 신비적 체험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믿었던 그노시스파(The gnostics)) 이방인 승인을 둘러싼 논쟁에 이어 예수의 인성론 논쟁이 있었고, 다시한번 기독교 전체를 뒤흔드는 커다란 위기가 다가온다. 이 위기는 기독교의 메시지를 재해석하는 데서 생긴 것으로 그노시스(기독교 이단의 일파인 그노시스파가 추구하던 영적지식)에 관한 것이다. 유태교의 전통 신비 교를 선호하던 당시 취향 다 많이 알고자하는 신자들의 자연스러운 호기심 등이 모여서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관하여 현세와 천국에 관하여 전혀 근거가 없는 사변들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가짜 복음서 가짜요한 계시록 사도들의 가짜 서신들이 수없이 범람했다 따라서 진정한 기독교의 메시지는 잡다한 사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 이를 사람들은 '그노시스의 위기'라 부른다.프란체스코 키오바로, 제라르 베시에르 『교황의 역사』김주경 옮김, 시공사, p.20의 영향이 매우 컸다. 그러나 교부들의 노력에 의해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나 헬레니즘에서부터 벗어나 자주적인 인식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강기수 저 『교육사상사』 세종출판사, 1998, p.21mas Aquinas의 개념론인데 그는 본질자로서의 보편자는 개물 안에 존재한다고 보았다.강기수 저 『교육 사상사』 세종출판사, 1998, p.219스콜라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무엇보다 먼저 인식론을 수립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 인식론에서 출발하여 본체론, 즉 유의 원리를 규정하고 해석하며 또 이미 증명된 원리를 근거로 하여 인생 및 우주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노력한다. 그래서 스콜라 철학의 논리학, 심리학, 우주론 역시 형이상학과 긴밀히 연결된다. 이런 견지에서 형이상학은 다른 철학 부분의 기초이며 중심으로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스콜라 철학은 그 보편성을 가진 형이상학 때문에 '논리학적으로 형성되는 전제 철학'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교의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려는 철학, 중세 초기에 샤를 대제는 유럽 각지에 신학원을 설립하고 학문 육성에 전력하였다. 스콜라학은 이 때문에 중세의 신학 철학 연구 전반을 총괄하는 것으로 매우 다방면에 걸친 것이지만 거기에는 전체적으로 공통되는 몇 가지 특징도 있다. 그것은 중세의 학문연구방법(스콜라적 방법)에서 오는 것인데 이것에 의하여 중세철학의 본연의 자세가 근본적으로 규정되었다.이러한 스콜라철학의 왕자라 불리며 대표하는 이는 도미니크 수도회 대표적인 수도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그는 철저한 경험적 방법과 신학적 사변을 양립시켰는데, 이와 같이 독자적인 종합을 가능하게 한 것은 창조의 가르침에 뿌리박은 존재의 형이상학이었다. 그는 거의 모든 학문 영역에서 비길 데 없는 종합화를 이룩함으로써 중세사상의 완성자가 되었지만 동시에 그가 신 중심의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상대적 자율을 확립한 일은 곧 신앙과 신학을 배제하는 인간 중심적 세속적인 근대 사상을 낳는 운동의 기점이 되었다.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최초의 근대인이며 그 영향은 그의 이름을 붙인 학파를 훨씬 초월하여 현대 사상 전역에 미치고 있다.이처럼 신학을 논증하여 교리로 체계화하려는 스콜라 철학에 있어서의 교육의 목적은수도사들에게 있어서 노동의 규정은 교육에 있어서 노작의 가치를 최초로 인정한 것으로서 의의가 크며, 또한 사회적인 공헌도 아울러 하였다. 문화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것은 수도사의 필사작업으로서 후에 가서는 필사실이 따로 마련되기도 했다. 수도사들은 토지의 경작법에 대해 농민을 가르쳤고 금공, 목공, 건축 등의 방법을 공인에게 가르쳤다. 모든 수도원은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데 충분하고도 남는 토지를 소유하고 자급자족하였다.수도원에서는 수도사에 대한 훈련 말고도 연소자에 대한 예비교육이 행해졌다. 그들은 수도사가 될 아이들과 되지 않을 아이들에게 동일한 교육을 행하였다. 물론 교육수준은 낮은 편이었으나, 그때의 일반대중의 교육수준을 감안했을 때, 수도원의 학문을 보존, 유지하고 교육을 수행한 공적은 큰 것이었다.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내용은 종교적인 것이었으며, 초등과 고등으로 구분하였다. 즉 초심자에게는 읽고, 쓰고, 셈하는 것과 성경을 가르쳤다. 그 다음으로는 자유 7학과) 자유7학과는 고대에서 내려온 3학과(trivium)인 문법, 수사학, 변증법과 Platon이 제안한 4학과(quadrivum)인 산수, 기하, 천문학, 음악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자유7학과란 말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Cassiodorus였고, 최초에 3학과 혹은 4학과란 말을 사용한 것은 Isidore였다.(seven liberal arts)를 가르쳤다.) 손인수 저 『교육사 교육철학의 이론과 실제』 문음사, 1997, p.127수도회의 새로운 대학들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미니쿠스가 그의 제자들을 대학에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학의 명성이 입증되었고 본래 숭고한 단순성에 자신을 봉헌했던 프란체스코 역시 내적으로 충만한 종교생활을 위해서 학문의 이용을 배제하지 않았다.이런 의미에서 도미니크회는 무엇보다도 파도바에서 수도회의 총장이 개인적으로 발탁한 한 법학도(마르실리우스)를 기초교육이 끝나자 더 많은 공부를 하도록 파리로 보냈고 후에 널리 알려진 알베명한 칙서 '학문의 아버지들(Parens scientiarum)'로써 대학에 새로운 학칙을 부여하며 이는 대학의 대헌장(Grande Charte)으로 불리게 된다.그러나 그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학을 이끌어가고 규제하기 위함이었다. 대학과의 협력은 여러 중파의 교단과 확장되어 가는 이교세력, 같은 교계에서도 예리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 반대세력들에 대한 대응할 만한 세력을 기르는 일이었다. 또한 황제와 세속군주들의 세력에 대항하여 교황청의 기준 우위를 어떻게 확보해 가느냐 하는 상황에서 법률과 교리, 세상의 흐름에 익숙한 인재의 필요는 점증하였다. 교황청의 자체인력보강을 위해서도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필요했다. 교황은 또한 대학들을 도움으로써 그들의 지지를 얻어 낼 뿐 아니라 자기 영향권 아래 두었다.) 중세의 모든 교회조직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걱정하였다. 이는 대학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학들은 학생들의 수업료에 의존하고 있었으나, 피에르 아벨라르(1070~1142)처럼 유명한 학자들의 '개인학교'에 의해서 학생들 또한 감소하면서 금전적인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게 되었다. 대학들은 교수들에게 성직록을 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으며 1265년 이후에는 교황들이 매년 주임 신부 혹은 보좌신부의 수입과 같은 성직록을 필요로하는 교수들에게 하사했다. 몇몇 대학들은 매년 교황청에 장학생들을 추천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런 식으로 이미 당시에 대학과 교황청과의 종속적인 관계가 형성되었다.페르디난트 자입트 『중세의 빛과 그림자』 차용구 옮김, 까치글방, 2000, p.255황제를 비롯한 왕과 제후들은 교황청에 비교할 때 비교적 일관된 보호의 자리에 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적극적 의미의 지원이라기보다는 사안이 발생했을 때 대학 편을 들었다는 얘기이다. 도시들은 처음에는 대학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13세기 후반부터 보통법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법률문제를 해결하는 법 전문가와 군주의 권위와 맞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시의 관리들을 필요로 했다 수도회
    인문/어학| 2003.05.07| 14페이지| 1,000원| 조회(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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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서서평] 신과 인간의 교차점에서 평가B괜찮아요
    신과 인간의 교차점에서..)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강성위 옮김 『서양 철학사 上』p.515 중세 서양정신사를 주도 하였던 스콜라철학의 왕자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관여사상에 대한 그의 의견이다. 인간의 사상과 능동이성은 신의 관념이 관여한 것이라고 보고 이러한 신의 형상 즉 보편적 이성을 깨달은 후에야 인간은 감각적인 세계를 인식한다고 보았다14세기 중반, 십자군운동의 실패와 날이 갈수록 타락해 가는 교회, 자연과학과 계몽주의를 통한 이성의 발달로 인하여 교회의 세력은 날이 갈수록 쇠퇴하여 가고 있었다. 또한 14세기 초반 이루어진 80년간 교황청의 아비뇽 유수는 교황권의 쇠락과 유럽에서의 카톨릭의 퇴보를 보여주는 극명한 예라고 볼수 있다. 보나파키우스 8세가 발표한 칙서 에서 표명된 '교황의 神政政治'의 위대함은 교황이 정치적, 종교적으로 갖는 무게와 반비례했다. 교황은, 교황 앞에서 땅이 꺼져 갈라지는 순간까지도 "모든 인간이 로마 교황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선언한) 프란체스코 키오바로, 제라르 바시에르 공저, 김주경 옮김, 이문출판사 『교황의 역사』p.61사실은 꺼져가는 교황권의 몸부림치는 발악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같은 자연과학자들의 출현은 이제 카톨릭신앙이 세계 만물의 법칙을 모두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서서히 일깨워 주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에 대항하여 교황청 및 카톨릭의 기득권 세력은 이시기부터 불이 붙은 소위 '마녀사낭'이라 불리는 무시무시한 근거 없는 탄압을 통해 이러한 자유사상을 억압하려 발버둥을 쳤고 이러한 사상을 담은 서책들은 모두 '금서'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이러한 시대와 분위기가 배경이 되는 소설이 바로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다. 결국 신을 중심으로 모든 보편적 원리가 설명되고 이에 복종해야 했던 중세의 시대 와 인간중심, 인간적 사유의 인식론이 중심이 되어 하나의 사상을 형성했던 르네상스시대와의 교차점의 역동적인 시대를 움베르트 에코는 소설의 무대로 삼았다. 진리와 학문탐구에 목말라 하고 새로운 지식을 계속 습득하려는 젊은 수도사, 이에 따라 주님에 대한 신앙심이 떨어지고, 카톨릭의 세력 약화를 두려워하여 접근을 금지한 노수도사의 염려와의 관계는 결국 수도원안에서 대형 연쇄살인사건을 벌어지게 하고 말았다. 이러한 관계와 과정에서 카톨릭의 敎義主義의 지나친 맹신을 드러내며 납득할수 없는 극단적 생각으로 까지 치닫게 된다. 호르헤 노 수도사는 주님의 뜻으로 장서관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러한 사건까지 저지르게 된 것 이다. 그는 마지막 월리엄 수도사와의 대화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나는 이 서책을 안다. 네가 못보는 것도 능히 볼 수 있는 눈으로 이 견고무비하게 씌어진 서책을, 본 듯이 안다. 나는 이것이 주님 뜻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주님 뜻대로 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대로 행하였다." 과연 이러한 맹신이 옳은 것인가? 그것은 주님만이 아실 듯 하다.하지만 중세의 과거는 이러한 맹신으로 많은 희생이 뒤따랐다는 것, 이것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이 '장미의 이름'이 이러한 종교역사, 철학적인 요소만을 지니고 있었다면 전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지 못했을 것이며 인문학 전공자들이나 읽는 책으로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위소설은 전문적인 인문학 지식 뿐 아니라 추리소설로서의 완벽한 플롯과 트릭을 지니고 있다. 번역자 이윤기씨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소설은 20세기 초 추리소설의 전성기 시절 대표적 영국의 여류작가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비슷한 추리소설적 구성을 지니고 있다. 섬과 수도원이라는 한정되어 있는 장소, 열꼬마 인디언이라는 동요와, 요한 계시록의 내용대로 그대로 범행이 구현된다는 모방성 범죄는 그 맥락에서 일치한다. 다만 소설의 성격과 목적이 다른지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에필로그에 사건 종료후 범인의 편지를 통해서 독자는 그가 범인이었다는 사실을 '통보'받는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또한 위 소설의 주인공은 철학, 역사 뿐아니라 화술, 과학의 부분에서도 대단한 카리스마를 발휘하여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에게 흠뻑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을 만들어 낸다. 이는 독자들에게 코난도일의 '셜록 홈즈', 애드가 모랭의 '괴도 루팡', 애거서 크리스티의 '포와로'와 견줄만한 명탐정으로 등극시킨 것이다. 덕분에 웃음이나, 그리스도의 청빈에 관한 논쟁을 보면서 너무나 난해하고 학문적 내용에 지루해 가던 독자들도 한명씩 죽어가고 급박한 상황의 반전에 끝까지 읽는 재미를 느끼게 되는 듯 싶다.또한 작가 움베르트 에코의 해박한 지식 때문인지는 몰라도 위 소설을 읽으면 중세시대의 시대적 문화상이 아주 자세히 그려져 있다. 수도원에서의 식사예절과 성서를 봉독하며 먹는 모습, 당시 장서관과 문서사자실 등의 수도원 내부의 모습은 직접 보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을 정도 이다.하지만 '장미의 이름'을 통해서 가장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은 중세 교회의 흐름과 13세기 당시의 교리의 방향, 신학과 철학이다. 이는 무대가 13세기이고 장소가 수도원 이다보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추리소설적인 요소를 끌어들이면서도 역사적 중요한 사실의 개입을 잊지 않았다. 바로 황제와 교황의 대립이며, 대표적 중세의 수도원 세력인 프란체스코회와 도미니크 회의 대립이 그것이다. 단순히 외부적인 면에서만 본다면 '장미의 이름'은 수도원이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 이지만 이 작은 수도원에 사절단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소설의 작품에 포함 된 것은 교황 요한 22세와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대립,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교황권을 꺽으려는 독일 황제 루드비히의 생각이 서로 맞물려서 이다. 그래서 프란체스코 수도회 총 대표자 미켈레, 황제 측 사절단, 델 포제토 추기경을 위시하여 베르나르 기가 중심이 된 교황측 사절단의 큰 3세력은 이 수도원에서 충돌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긴박하고 정치적 복잡한 이해관계가 소설에 가미 됨으로서 소설의 재미는 그 속도를 더하게 된다.
    독후감/창작| 2003.05.07| 3페이지| 1,000원| 조회(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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