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문화그리스문화는 아테네 지역을 중심으로 기원전 8세기경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기 전인 2세기경까지 번창한 지중해 중심의 문화이다. 외형적으로는 유럽식이나 오스만 투르크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들의 생활양식에는 동양적 요소가 많았다. 이들은 개성적인 것을 중요시하여 문화와 예술품, 그림 등에서 개성적인 것이 많이 드러났으며 인간은 오래 전부터 자신의 생각, 이념을 예술품으로 표현했는데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에 대해 알고 그것을 표현했고 인간들의 모습을 충실히 표현하려했다. 이것에서 그리스인들이 미적인 추구를 강조한 것과 인간중심주의를 주장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인간중심주의를 잘 알 수 있는 것으로는 파르테논 신전에 있는 프리즈 조각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신과 인간을 같이 표현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라 여겨졌었는데 프리즈 조각에는 신과 인간이 같이 표현되어 있어서 그 당시 이것을 조각하는 사람들의 무엇인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있다. 고대 그리스 문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파르테논 신전이다. 수많은 조각이 있었지만 침전에 의해 거의 없어진 상태이며 그 대부분을 대영 박물관에 보존하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에는 인간의 착시를 생각하여 일부로 바닥의 가운데 부분을 약간 올라온 곡선으로 만든 것처럼 과학적 기법이 많이 쓰였고 현재의 흰색 대리석이 아니라 메토프의 한 부분과 박공 조각에서 채색의 흔적이 발견되어 원래는 굉장히 화려한 색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의문이 아직 남아있다. 그리스 인들은 균형, 비례, 조화의 세 요소를 예술의 기본 요소로 삼고 미술 양식에 엄격히 적용하였다. 이렇게 고대 그리스 인들은 미적인 추구를 강조하였으며 시민의 평등, 민주정부, 인간중심주의를 표방하여 이를 문화 예술품에 표현하였다.5세기 중엽, 페르시아전쟁을 승리로 이끈 페리클래스 시대는 아테네의 전성기이며, 문화적으로 황금기였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파르테논신전은 바로 이때 건립되었고, 아름다운 열주식 기둥을 뽐내고 있었고 그리스도 교도들의 피난을 겸한 예배 장소였던 카타콤 유적, 보르게제, 시칠리아 성당, 바티칸 박물관,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이 있는 성 베드로 성당, 성 바울의 상등이 있다.로마인은 정치, 법률, 군사, 토목, 건축 등의 실용적 방명에 훌륭한 유산을 많이 남겨 놓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법률이다. 로마에는 법률사상이 발달하여 처음에는 최초의 성문법인 12표법을 위시하여 국내법인 시민법(Jus Civile), 만민법(Jus Gentium)이 완성되었다. 로마법의 모든 성과는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에 집대성되어 있다. 이는 동로마 황제 Justinianus (483-565)가 16명의 학자를 동원하여 6년의 세월을 들여 완성시킨 것인데 3부로 되어있다. 보통 이를 로마 법전이라 한다. 종교는 그리스인과 교섭이 잦아지자 올림프스의 12신을 이름을 바꾸어 숭배하였다. 이를테면 제우스를 Jupiter, 아폴론을 Appollo, 헤라를 Juno로 한 것 등이 그것이다. 로마가 동방세계를 정복한 뒤에는 헬레니즘 세계에서 유행한 군주 신격화 경향이 황제 숭배교를 낳아 황제를 강제로 숭배하게 하였다. 이 황제 숭배교에 대립한 것이 기독교로서 주로 민간에 퍼져 드디어 국내의 모든 종교를 압도하기에 이르렀다. 문화분야에서도 Cicero(BC 106-43)는 산문가로서 Vergil(BC 70-19), Horatius(BC 65-8), Ovidius 등은 시인으로서 유명하다. 특히 베르질은 호머의 본을 받아 Aeneis를 지어 로마 흥기의 역사를 서사시를 읊었다. 철학역시 발달했다. 스토아 철학은 로마 사상계를 휩쓸어 그 극기 및 금욕 사상은 로마인의 도덕 및 처세의 기준이 되었고 세계 보편적 사상은 제국의 세계 동포사상의 발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Seneca, Epictetus, 『명상록』을 지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의 대가가 나왔다. Epicurus학파에는 Lucretius가 유명하였다. 이밖에 Plotinos(204-270)가 신 플라톤 학파를 열어 중세의 사상계에 큰부터 나타난 고딕양식은 하늘 높이 솟은 첨탑, 경건한 조각들은 천국을 향한 중세 유럽인들의 염원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세 유럽인들의 생활과 그 문화에서는 이렇듯 그리스도교가 계속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들의 생활과 문화를 완전히 지배한 것은 아니다. 문화의 세속적인 측면도 상공업과 도시의 발달 등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더욱 두드러진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교는 고대 로마인과 게르만인들의 세속적이며, 이교적인 생활방식을 불식하지 못했으며, 양자는 중세를 통하여 계속 공존하였던 것이다.중세는 암흑시대?민족이동 후 10세기까지 고대 로마의 빛나는 문명이 파괴되어 유럽세계는 일시적으로 "暗黑"상태로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유럽세계에서의 문명의 빛이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었다. 비록 희미하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중세 초기의 혼란의 와중에서도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사회가 안정을 되찾자 새로운 활력을 얻어 다시 빛나기 시작하였다. 중세 유럽문화가 처음 활력을 되찾은 것은 9세기 초 샤를마뉴의 문화보호정책에 의하여 카톨릭 르네상스가 일어남으로써 문화의 등불이 비쳐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중세문화의 전성기는 역시 중세사회가 그리스도교와 봉건제라는 새로운 체제하에서 안정과 번영이 절정에 달했던 11세기 후반부터 13세기 후반까지의 200년 동안이었다. 이 기간 동안 유럽세계는 고대 로마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게르만적 요소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특색을 지닌 중세 유럽문화를 발전시켰던 것이다중세 유럽의 문예민족 이동 이후 수세기 동안의 문학은 민족 舊來의 신화, 전설, 영웅의 사적에 취재한 서사시가 유행하였다. 영국의 『베오울프』(Beowulf), 독일의 『니벨룽겐의 노래』(Nibelungenlied)가 대표적 작품이다. 이러한 직업적, 게르만적 서사시는 라틴 문화와 기독교의 영향을 받고 낭만정신을 보태어 기사도 문학으로서 발달하였다. 영국의 『아더왕의 이야기』, 프랑스의 『롤랑의 노래』가 대표작이등의 걸작을 남겼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가로의 활동 이외에도 해부학, 수학, 토목, 기계공학 등 실용적인 분야에 관심이 많았으며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고대에 추구했던 이상미를 되살려 내었다. 그의 작품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와 같은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원근법, 투시도법, 명암법 등에서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볼 수 있다. 이들과 더불어 르네상스 3대 화가인 라파엘로 또한 르네상스의 목표인 조화와 균형을 아름답게 구현하였다. 라파엘로는 자연을 닮게 그리려는 것보다 고전적인 이상미의 전형을 만들어 내었고 ‘앉아있는 성모’, ‘마돈나’, ‘아네테 학당’ 등의 걸작을 남겼다. 또한 보티첼리는 만테냐처럼 분석적인 면보다는 화면의 법칙에 충실하여 원근법과 명암법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비너스의 탄생’, ‘봄’ 등의 걸작을 남겼다. 르네상스로 인한 변화는 단지 문화·예술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종교와 교육에도 영향을 주었다. 중세의 어둡고 답답한 분위기와는 달리 르네상스 시대는 밝고 모든 것에 대해 열려있는 분위기이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알프스 이북으로 옮겨져서는 성격이 바뀌는데 인간중심을 표방했지만 모방의 차원을 넘어서서 교회를 비판하고 주로 성서나 크리스트교의 고전을 연구하며 초기 크리스트교로 돌아가려 하여 후에 이것이 종교개혁으로 발전하게 되고 국민문학의 발달했으며 사회를 비판했다. 이때의 유산물로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농촌의 현실을 비판하고 이상적 평등사회 추구)’, 에라스무스의 ‘우신 예찬’,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중세의 기사도 풍자)’, 몽테뉴의 ‘수상록(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표현)’ 등이 있다.중세의 미술은 교회 건축을 주로 하고 회화와 조각은 그 부속물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 시대에 각각 독립하여 발전하였다. 건축에서는 중세 말에 유행한 고딕식대신에 고대 그리스 신전의 간명한 직선과 로마의 돔의 우아한 곡선이 즐겨 쓰여 원주를 중심으로 건물을 십자형으로 배치한 장대한 르네상스 양식이 유행하였다. 최고의 걸제군주로서 정권을 쥐고 학문과 예술을 보호, 장려한 까닭에 더욱 발달하였다. 16세기 초에는 로마가 중심이 되어 Julius 2세, Reo 10세 등의 이른바 '르네상스 교황'이 나타나 문화를 보호하였다. 그 후 르네상스는 활판 인쇄술의 발달에 의해 全이탈리아에 보급되어 나폴리, 베네치아, 밀라노 등에서도 번영하였다.알프스이북에서의 르네상스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일찍부터 알프스 이북의 유럽각국에 전해졌으나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 그러나 15세기 말 이후 중앙 집권적 국민 국가가 발달하고 지리상의 발견에 의해 상공업이 번영하고 도시의 시민 계급이 성장하게 되자 르네상스의 영향은 각국의 국민적 특질과 결합하여 독자적인 발전을 하였다. 이리하여 르네상스의 중심지는 16세기이후 알프스 이북의 유럽각국으로 옮아갔다. 프랑스의 르네상스 : 프랑스는 16세기 전반의 프랑스와 1세, 앙리2세 때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프랑스의 르네상스는 귀족적 궁정문화로서 발달하여 17세기의 루이왕조 때 그 절정에 달하여 프랑스 고전주의로서 완성되었다. 프랑스와 1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의 名匠을 초청하여 퐁덴블로 궁전을 만들고 미술가를 양성하였다. 문학에 있어서는 Montaigne(1533-1592)와 Francios Rabelais(1494-1553)의 두 대표자를 낳았다. 몽테뉴는 자기를 성실히 관찰하고 묘사함으로써 인간 본래의 자태를 보여 주어 인간성의 탐구를 주로 하는 프랑스 문학의 전통을 열었다. 라블레는 장편소설 『 가르간투아 이야기』 가운데서 풍부한 경험과 관찰에 의해 사회 각층의 인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익살을 섞어 경쾌하게 풍자하여 근대 리얼리즘 소설에의 길을 열었다. 프랑스와 1세의 누나인 나바르 여왕 Marguerite도 Heptameron을 쓰서 프랑스 근대소설을 창시하였다.에스파니아의 르네상스 : 건축에는 사라센식 장식을 가미한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이 발달하고 회화에는 Valezquez(1599-1660), 문학에는 Donquixote라는 걸작
그리스 로마 신화란?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요 부분은 이미 선사시대에 형성되었다.B.C. 3000년이래 지중해에는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하는 크레타 문명이 있었고 이것이 커다란 세력이 되어서 그리스 본토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한편 B.C. 2000년경부터 아카이아 인이라고 하는 그리스 민족이 북방으로부터 그리스 반도의 각지로 남하하여 문화적으로도 세력을 뻗쳐서 미케네 문화를 구축하였다. 다시 B.C. 12세기에는 도리스 인이라고 하는 그리스 민족이 침입하여 먼저 그리스에 들어온 민족은 새로 들어온 민족에게 정복당하기도 하고 또 지중해로 도망쳐 소아시아로 이동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이주민과 그리스 본토의 선주민(先住民)들이 섞여 고대 그리스 문화나 신앙을 이룸으로써 신화에 있어서도 자연히 여러 가지 요소가 혼합되게 된다. 그래서 신화의 내용도 복잡해져 여러 가지 불일치나 모순을 포함한 점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커다란 특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는 그리스 신화를 체계적으로 얘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신과 영웅의 생생한 모습을 전했다. 그 외에도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그리스의 삼대 비극 시인인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등도 그리스 신화를 전해준다. 오늘날 그리스 로마 신화속에 등장하는 올림포스의 신들을 믿는 현대인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문학으로 미술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고 그들의 지위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문학이나 미술 등 각 분야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가 단순히 재미있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인간 심리의 비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신화의 가치는 인간 생존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 - 전쟁과 평화, 삶과 죽음, 선과 악 등 - 에 필요한 지식의 끊임없는 원천이 된다는 것에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신화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리스 로마 신'페르세우스'의 증손자가 된다.알카이오스(Alcaeus)와 엘렉트리온(Electryon)은 모두 페르세우스의 아들들인데, 알카이오스의 아들 암피트리온(Amphitryon)은 엘렉트리온의 딸 알크메네(Alcmene)와 결혼했다. 알크메네는 미모와 덕성과 지혜가 뛰어난 여인이었다. 제우스 신은 인간의 영웅 중에서 가장 훌륭항 영웅을 인간 세계에 내보내려고 궁리하다가 결국 알크메네의 몸을 빌리기로 했다.암피트리온은 늘 싸움터에 나가 있었는데, 그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날 제우스 신이 암피트리온으로 변신해서 알크메네를 찾아와 그간의 여행, 전쟁 이야기 등을 그럴듯하게 늘어놓는 바람에 감쪽같이 속아 남편이 싸움터에서 돌아온 줄 알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룻밤을 보냈다. 그런데 다음날 진짜 암피트리온이 돌아왔다. 알크메네도 암피트리온도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9개월이 지난 뒤 알크메네는 쌍둥이를 낳았는데, 제우스 신의 아들인 '헤라클레스'와 암피트리온의 아들인 '이피클레스(Iphicles)'가 그들이다.헤라클레스가 태어나던 날 제우스 신은 페르세우스의 후손이 그리스를 통치하게 하리라고 서약했다. 그러나 분노와 질투심이 끓어올라 헤라 여신은 페르세우스의 또다른 후손인 '에우리스테우스(Eurystheus)'를 헤라클레스보다 먼저 태어나게 해 놓았다. 그 결과 헤라클레스 대신에 에우리스테우스가 왕이 되었다. 화가 난 제우스 신은 헤라에게 조건을 제시했다. 만일 헤라클레스가 에우리스테우스를 위해 열 두 가지 시련을 다 견디어 낸다면 헤라클레스를 신으로 만드는 데 동의하라는 것이었다.헤라클레스가 태어난 지 1년쯤 지나서 헤라 여신은 헤라클레스의 요람에다 독사 두 마리를 보내 헤라클레스를 물어 죽이도록 했다. 이피클레스는 기겁을 하고 달아났는데, 헤라클레스는 뱀 두마리를 양손으로 꽉 쥐어 죽여버렸다.성장해가면서 헤라클레스는 검술, 투기, 마차 모는 든 법 등등 힘으로 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다 잘했다. 그러나 생각이 깊지는 못했다. 하도 지각없이 행동하는지라 왕은 그에게 키타이론(Cithaeron) 산으로 보냈다. 그는 사자를 잡아 그 가죽을 어깨에 걸치고, 사자의 머리를 모자처럼 머리에 쓰고, 사자를 잡은 올리브 나무 곤봉을 늘 가지고 다녔다.키타이론 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헤라클레스는 테에베로 보상물을 거두러 온 사신들을 만났는데, 그에게 무례하게 대하는지라 귀와 코와 손을 잘라 자기 나라로 돌려보냈다. 이때문에 에르기노스(Erginus)왕과 테에베의 크레온(Creon)왕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헤라클레스는 아테나 여신의 도움으로 전쟁을 테에베의 승리로 이끌었다. 그 전공을 치하하여 크레온 왕은 딸 메가라(Megara)를 헤라클레스의 아내로 삼게 했다.헤라클레스가 결혼하고 자식까지 두고 행복하게 사는데다 거친 성품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자 헤라는 심술이 났다. 그래서 헤라는 헤라클레스를 미치게 해 놓았다. 미쳐 버린 헤라클레스는 아내 메가라와 아들들을 죽여 버렸다. 제정신이 되돌아오자 그는 죄책감과 두려움에 어쩔 줄 몰랐다. 테세우스나 그를 아는 사람들의 위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고민끝에 델피 신전에 가서 그가 속죄할 수 있는 길이 있는가를 알아 보았다. 미케네(Mycenae)의 '에우리스테우스(Eurystheus)'왕의 종이 되어 그가 시키는대로 다하면 죄를 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에우리스테우스는 용기나 힘에 있어서 헤라클레스보다 훨씰 못했지만 아주 교활한 자였다. 그는 헤라클레스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열 두 가지나 부과했다. 이것이 헤라클레스가 12년 동안에 해야 하는 열 두 가지의 과업이었다.[1번째 과업 : 네메아의 사자]첫째, 네메아(Nemea) 숲속의 사자를 잡아 그 가죽을 벗겨오는 일이었다. 헤라클레스는 그 사자를 동굴 속에 몰아넣고 맨손으로 잡아 그 가죽을 벗겨 가지고 돌아왔다. 그 뒤부터 에우리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가 무서워 그를 성내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부하를 시켜 명령만 전달했다.[2번째 과업 : 레르네의 히드라]두번째는 레르네(Lurnae) 늪에 사는 히드라(Hydra)를 없애는 그 자리에서 머리가 곧 새로 생겨났다. 그러자 조수로 따라온 헤라클레스의 조카 이올라오스(Iolaus)에게 장작개비에 불을 붙여 목을 자를 때마다 그 자리를 모두 지지게 했다. 죽은 히드라의 배를 갈라 그 독액을 화살촉에 적셔 놓았다.[3번째 과업 : 케리네이아의 사슴]세번째 과업은 케리네이아(Ceryneia) 산에 살고 있는 황금 뿔이 달린 암사슴을 잡아오는 것이었다. 이 암사슴은 아르테미스 여신을 따라다니는 성스러운 동물로 청동 발이 달렸다. 헤라클레스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양해를 얻은 후 꼭 일년을 쫓아다니다가 잡아 왔다.[4번째 과업 : 에리만토스의 멧돼지]네번째 과업은 들에 내려와 행패를 부리던 에리만토스(Erymanthus) 산의 산돼지를 사로잡아 오는 일이었다. 이 산돼지를 잡으러 가다가 켄타우로스 플로스(Centaus Pholus)의 집에 묵어 신세를 졌다. 플로스는 고기며 술을 잘 차려 대접했는데 다른 마은들이 들어와 자기들에게도 술을 달라고 생떼를 쓰는 바람에 헤라클레스가 화살을 쏘아 그들을 쫓아 버렸다. 이 때 그가 쏜 화살이 마인족의 현자 케이론의 무릎에 맞았다. 아킬레우스(Achileus)등 유명한 용사들을 길러낸 현자이고 불사의 몸이며 의술에 능한 사람이었지만 히드라의 독이 묻은 화살을 맞고는 살아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불사성을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에게 넘겨주고 자기는 동굴을 찾아가 죽고 말았다. 헤라클레스가 산돼지를 끌고 왕 에우리스테우스에게 보이자 무서워서 숨어 버렸다고 한다.[5번째 과업 : 아우게이아스의 축사]다섯번째 과업은 아우게이아스(Augeas) 왕의 마구간을 하루 동안에 청소하는 것이었다. 아우게이아스 왕은 소를 수 천 마리나 가지고 있었는데 수년 동안 한번도 청소해 본 일이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알페이오스(Alpheius) 강의 물줄기를 끌어다가 외양간으로 흐르게 하여 단번에 깨끗이 청소해 버렸다.[6번째 과업 : 스팀팔리데스의 괴조]여섯번째는 스팀팔로스(Stymphalus) 사람들을 괴롭히는 새떼그 중에는 주둥이와 발톱이 무쇠 같고 사람 고기만 먹고 사는 새들도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아테나 여신의 조언으로 청동 꽹과리를 만들어 요란하게 두드렸다. 그는 놀라 달아나는 새들을 화살로 쏴 죽였다.[7번째 과업 : 크레타의 황소]일곱번째로 해야 할 일을 포세이돈 신이 미노스 왕에게 선물로 준 크레타의 미친 황소를 붙잡아 오는 일이었다. 미노스 왕이 제물로 바치겠다고 해놓고 아까워서 다른 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자, 포세이돈은 화가 나서 소를 미치게 한 것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이 소를 잡아다가 에우리스테우스에게 바쳤다. 그 후 소는 석방되어 돌아다니다가 영웅 테세우스의 손에 죽었다.[8번째 과업 : 디오메데스의 식인마]여덟번째는 디오메데스(Diomedes)의 암말을 잡아오는 일. 이 말은 사람의 고기를 먹고 살았다. 헤라클레스가 이 암말을 지키고 있는 파수꾼들과 디오메데스를 죽여 먹이로 던져 주었더니 온순해졌다. 이 말은 그 후 풀려 나와 올림푸스 간으로 가서 뛰놀다가 야수들한테 잡아 먹혔다 한다.[9번째 과업 :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의 띠]아홉번째 시련은 아마존 여족의 왕 히폴리테(Hippolyte)의 허리띠를 가져오는 것. 그 허리띠는 무신 아레스가 그녀에게 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정중하게 그 허리띠를 헤라클레스에게 주기로 했다. 그런데 심술이 난 헤라 여신은 헤라클레스가 히폴리테를 납치하러 왔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여기에 분개한 아마존 여인들이 무장하고 헤라클레스에게 달려들었다. 헤라클레스는 여왕이 뒤에서 조종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여왕과 여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인 뒤 허리띠를 가지고 돌아왔다.[10번째 과업 : 게리온의 소]열번째는 게리온(Geryon)의 소를 훔쳐 오는 일. 서쪽 끝 어는 섬에는 몸뚱이는 하나이자만 머리가 세 개, 팔다리가 여섯 개인 괴인 게리온이 살고 있었다. 그는 붉은 소떼를 갖고 있었는데 사나운 개를 시켜 이 소떼를 지키게 했다. 헤라클레스가 서쪽으로 가는 길에 유럽과 아프리카 양쪽 산에다 거기를 지나간 기념으로 돌기둥을 하아왔다.
● 마이크로마우스 동작 순서도● 마이크로마우스 미로 탐색 알고리즘미로 탐색 알고리즘이란 16*16의 미로의 출발점에서 종점을 찾기 위해 미로 상을 탐색 주행하는 알고리즘을 말합니다. 미로의 형태를 전혀 알지 못하는 1차 주행 시에 수행되는 알고리즘입니다. 아주 간단한 좌수법(or 우수법)에서부터 확장 좌수법, 등고선법에 이르기까지 길을 찾기 위한 수많은 방법들이 있습니다.1) 좌수법(Left Weight Method)말 그대로 왼손으로 왼쪽 벽을 짚고 따라가는 방법입니다. 갈림길에 이르거나 정면에 벽이 있을 경우 최우선 순위는 좌회전이며 2순위는 직진, 3순위는 우회전, 4순위는 U턴입니다. 일단 좌벽의 유무를 판단한 후 없으면 좌회전, 있으면 정면벽의 유무를 판단하고, 정면벽이 없으면 현재 방향을 유지, 있으면 우벽의 유무를 판단하고, 우벽이 없으면 우회전, 있으면 U턴합니다. 그 다음 1 블록을 직진한 후, 종점이 아니면 이를 다시 반복합니다. 종점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종점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점입니다. 좌수법을 사용하면 어떤 미로든지 탈출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마우스 대회의 미로와 같이 중앙에 종점이 있는 경우에는 도착하지 못하고 같은 경로를 무한히 순환할 수도 있습니다. 즉, 종점을 둘러싼 벽이 최외각의 벽과 접속해 있지 않은 경우에는 종점에 이를 수 없게 됩니다. 우수법(Right Weight Method)은 좌수법과 반대의 우선 순위를 갖는 방법으로, 탐색 시간이나 구현 방법에 있어서 좌수법과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좌수법으로 완주할 수 없는 미로라면 우수법으로도 역시 완주할 수 없습니다.2) 확장좌수법 (Enhanced Left Weight Method)좌수법을 보완하여 반드시 종점을 찾을 수 있도록 개선한 알고리즘입니다. 즉, 한 번 갔던 블록은 다시 가지 않게 함으로써 무한 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한 번 갔던 블록에 못 들어가게 한다면 어느 곳으로도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블록을 빠져나갈 때의 방향을 기억해 두었다가 진입 방향과 탈출 방향이 반대인 경우에는 진입을 허용해야 합니다. 이 알고리즘은 구현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각각의 블록에 대응하는 변수를 만든 후, 미로를 탐색하기 전에 이 변수들을 가보지 않았음을 뜻하는 임의의 수(ex:255)로 초기화합니다. 이 변수는 블록을 빠져나갈 때마다 그 탈출 방향(동서남북)으로 바꿔 줍니다. 주행 시 회전 방향의 우선 순위는 좌수법과 같으나, 진입하려는 블록이 이미 갔던 블록이라면 진입 방향과 그 블록의 탈출 방향을 비교하여 정반대 방향이면 진입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순위의 블록에 대해 다시 반복합니다. 다음 두 그림을 보면, 좌수법으로는 완주하지 못하지만 확장좌수법으로는 완주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확장우수법(Enhanced Right Weight Method)은 확장좌수법을 반대로 적용한 것으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3) 구심법 (Euclidean Algorithm Method)구심법은 갈림길이 나오면 종점에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가는 알고리즘입니다. 일단 미로에 벽이 하나도 없다고 가정한 후, 종점의 우선순위를 0으로, 종점에서 한 블록씩 멀어질수록 우선순위를 1씩 추가합니다. 각 블록에 대응하는 변수를 만들어 위의 우선순위 값으로 초기화합니다. 주행 시에 갈림길이 나타나면 변수의 값이 작은 쪽으로 갑니다. 이 때, 한 번 갔던 블록을 다시 가지 않기 위해서 각 블록을 지날 때마다 그 블록의 우선순위 값을 매우 큰 값으로 바꾸어 줍니다. 갈림길에서 한 쪽을 선택해서 갈 때는 그 블록을 스택에 저장하면서 주행하고, 막다른 길에 이르렀을 때 스택에서 최근의 갈림길을 읽어 이동한 후,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블록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직진과 회전의 우선순위가 같다면 직진을 선택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회전을 하기 위해서는 정지 또는 감속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 광검출기 [ 光檢出機 , photodetector ]광신호를 검출하여 이를 같은 정보를 가진 전기적인 신호로 바꾸어 주는 역할을 하는 소자.광(光)이란 전자기파의 일종으로 파장이 사람의 눈에 의해 감지되는 가시광선(파장:약 0.3~0.9μm, 1μm는 백만분의 1m)과 그 파장에 가까운 자외선(파장:약 0.003~0.2μm) 및 적외선(파장:약 0.9~1,000μm)을 통칭한다.종류에는 입사한 적외선을 전압의 형태로 변환시켜 광검출이 가능하도록 하는 파이로일렉트릭(pyroelectric) 효과를 이용한 검출기, 광흡수에 의한 반도체 내에서 반송자 생성을 이용한 반도체 광검출기 등이 있다. 반도체 광검출 소자로는, 다이오드형 광검출소자와 광전도체형 광검출소자가 있다. 검출기를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는 반도체 재료로는 실리콘과 갈륨비소 등이 있다.광전도체형 광검출기는 단순히 박막(薄膜)이나 후박(厚薄) 반도체의 양쪽에 금속접합을 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 저항성 반도체 면에 입사하는 빛이 흡수됨으로써 가전자대 전자가 들뜨게 되어 전도대 전자와 가전자대 정공이라는 반송자를 생성시킨다. 이렇게 생성된 반송자는 반도체막의 전기적 저항을 감소시킴으로써 외부회로에서 광신호가 검출되었음을 판명하게 해준다.반도체 다이오드형 광검출기는 동종 혹은 다른 종류의 반도체 접합면에서 반송자 생성과 전송특성을 이용한 소자이다. 반도체 위에 pn접합을 만들고 접합계면에 빛을 쬐면, 광자 에너지를 흡수한 반송자가 생성된다. 광검출기에서 발생한 반송자의 흐름이 전류를 발생시키고 이는 외부회로와 상호작용에 의해 입사한 광신호에 상응하는 전기적인 신호가 된다.이런 광검출기 종류는 pn 다이오드, pin 다이오드, 금속반도체금속다이오드, 양자우물형 다단계 다이오드 등이 있다. 레이저다이오드, 발광다이오드 등과의 결합형태로 사용되는 광검출기는 광통신 수단에서는 광섬유로부터 전송된 광신호를 감지한다. 컴퓨터의 주변기기, 산업분야에서 안전 및 정밀제어, 리모콘, 광디스크, 연기감지, 온도검출 등의 일상분야에 많이 응용된다.● 발광다이오드 [ luminescent diode ]반도체의 p-n 접합구조를 이용하여 주입된 소수캐리어(전자 또는 양공)를 만들어내고, 이들의 재결합(再結合)에 의하여 발광시키는 것.LED(light emitting diode)라고도 한다. 반도체에 전압을 가할 때 생기는 발광현상은 전기 루미네선스[전기장발광]라고 하며, 1923년 탄화규소 결정의 발광 관측에서 비롯되는데, 1923년에 비소화갈륨 p-n 접합에서의 고발광효율이 발견되면서부터 그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960년대 말에는 이들이 실용화되기에 이르렀다.발광다이오드에 적합한 재료로는 ① 발광파장이 가시(可視) 또는 근적외영역(近赤外領域)에 존재할 것, ② 발광효율이 높을 것, ③ p-n접합의 제작이 가능할 것 등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으로서 주로 비소화갈륨 GaAs, 인화갈륨 GaP, 갈륨-비소-인 GaAs1-x Px, 갈륨-알루미늄-비소 Ga1-xAlxAs, 인화인듐 InP, 인듐-갈륨-인 ln1-xGaxP 등 3 B 및 5 B족인 2원소 또는 3원소 화합물 반도체가 사용되고 있는데, 2 B, 6 B족이나 4 A, 4 B족인 것에 대하여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1. 중세 미술● 바로크 BAROQUE1600년부터 1750년 까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가톨릭 국가에서, 르네상스의 이성적 규칙에 의한 지나친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부터 발전한 미술양식을 뜻한다. 바로크는 포르투칼어의 '비뚤어진 진주'라는 뜻으로 르네상스가 지닌 단정하고 우아한 고전양식에 비해 장식이 지나치고 과장된 미술양식에 대한 경멸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혹은 르네상스가 지니고 있는 고전적인 균형, 조화의 세계에 비하여 유동적이고 강렬한 남성적인 감각이 강조되어 붙어진 이름이라 한다.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으로 카라밧지오, 베르니니, 루벤스, 램브란트 등을 들 수 있다.● 프랑스식 고전주의 CLASSIC IN FRANCE17세기 중엽의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풍요롭고 강력한 국가였다. 그 결과 예술의 중심지는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파리로 옮겨오게 되었다. 데카르트의 합리론 적 철학의 영향과 루이14세에 의한 정치적, 경제적 안정은 프랑스를 바로크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독자적인 양식을 갖도록 하였다. 대표적인 작가로 니콜라 푸생을 들 수 있는데 그의 작품 을 보게 되면, 감상보다는 지성에 호소하는 방식을 취하였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구도나 형태만이 강조되고, 색채는 아예 뒷전에 밀리게 되었다. 영웅적인 인물들은 일반화 되었으며, 동작은 조각처럼 굳어져 있다. 이들의 묘사는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에서 빌려온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로코코 ROCOCO로코코는 바로크 시대의 호방한 취향을 이어 받아 경박함 속에 표현되는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 건축의 유행을 말한다. 바로크 양식이 수정, 약화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로코코는 왕실예술이 아니라 귀족과 부르조아의 예술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희와 쾌락의 추구에 몰두해 있던 루이14세 사후,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귀족계급이 추구한, 사치스럽고 우아한 성격 및 유희적이고 변덕스러운 매력을, 그러나 동시에 부드럽고, 내면적인 성격을 가진 사교계 예술을 말하는 것이다. 귀족계급의 주거환경을 장식하기서의 표현이라는 표현론으로 바뀐 것 에 그 의미가 있다. 따라서 예술이 다양해지는 계기가 된다.● 사실주의19C 이전까지는 자연주의로서 사실주의가 정의되어왔다. 그것은 성실하고 정확한 '자연의 모방' 더 나아가 그것의 '완벽한 이상화된 재현'으로서 사실주의였다. 19C 이르러 사실주의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사실주의 등장 이전의 낭만주의는 그 개념적인 면에서 대조가 된다. 낭만주의는 '감정'이 중요하고 따라서 작가의 상상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결과 낭만주의 회화는 격정적이며 현실을 떠난 이상향을 쫒거나 이국적인 소재 등에 깊은 관심을 회화로 표현한다. 표현에 있어서는 색채에 비중을 두고 화려하고 열정적인 화면을 구사한다. 현실을 떠난 상상력을 부추기는 소재는 따라서 시적이며 신화적인 주제를 취했다. 사실주의는 낭만정신에 전적인 반대 표명과 비판을 가한다. 특히 19C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쿠르베, 도미에, 밀레로 집약할 수 있는데, 이들의 공통관심사는 [현실을 보는 눈] 이라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쿠르베는 '천사를 보여주면 그리겠다.'는 공언으로 사실주의의 개념을 대변하며 '상상력'으로 집약되는 낭만주의와는 대조를 보인다. 공간 구성에 있어서도, 소재자체가 대조적인데서 비롯되어서 [사르드나팔르의 죽음] [메뒤즈의 뗏목]은 내용 자체가 극적이며 등장인물도 격정적인 자세의 불안할 정도의 공간배치가 나타난다. 반면 사실주의는 [돌깨는 사람] [만종]등에서 일하는 농민들의 정적인 모습과 그들의 현실공간을 재현해서 단순하고 차분한 구성을 나타낸다. 19C는 과학과 기술의 태동 이성주의의 팽배를 부른 계몽주의가 지배적 이었다 특히 실증주의는경험과 관찰에 입각한 과학적인 지식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시민정신에 평등사상을 고취하는데 역할 하였고 민주사상에 이어지는 요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더 이상 고고한 가식적 주제가 아닌 평범한 삶의 세속성이 주제로 등장하는데 정신적인 역할을 했다.● 인상주의 IMPRESSIONISM인상주의는 빛의 변화에 따른 순간적인 형그들은 광학이론과 색채학에 따른 과학적 이론에 기초한 색채분할을 구현하였다. 이들은 인상주의가 사용한 기법을 과학적으로 발전시키는 동시에 인상주의의 경험주의적 사실주의에 반발하였다. 인상주의가 본능적, 감각적이라면, 신인상주의는 과학적이며 분석적이라 할 수 있다.● 후기인상주의 Post impressionism인상주의의 단계를 거치면서도 그 양식의 한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갖가지의 방향으로 인상주의를 넘어선 일군의 화가들을 가리킨다. 인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독자적으로 해결책을 추구하던 이들 작가 군을 인상주의 이후의 세대라는 포괄적인 관점에서 `후기인상주의 화가'라는 명칭을 얻게 된다. 이들은 이상주의가 지나치게 순간적인 시각세계에만 사로잡혀 있다고 믿었기에 보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에 근거한 미술을 추구해야함을 표방했다. 세잔느, 고갱, 고흐로 대표 된다.3. 현대 미술●야수파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회화 운동으로 수년간 유사한 테크닉에 관심을 보였던 화가들에 의해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미술운동이다. 이 운동은 순수 색채의 고양에 주력했다. 이 새로운 화법은 1899년, 그룹에서 주도적 인물이었던 마티스에 의해 시작되었다. 야수파라는 명칭은 당시의 비평가 루이 복셀이 1905년 가을 마르케의 15세기풍의 청동조각을 가리켜 마치 "야수의 우리 속에 갇혀있는 도나텔로 같다"라고 평한 데서 유래되었다. 이 운동의 동인은 귀스타프 모로의 문하생이었던 마티스, 마르케, 루오, 앙리 샤를르 망갱, 샤를르카무엥 그리고 장 퓌이 등과 '샤토'로부터 블라맹크와 앙드레 드랭, 그리고 프리츠, 브라크, 뒤피의 그룹이 융합된 것이었으며 네덜란드 화가 반동겐도 참여 했다. 그들은 고호, 고갱, 신인상주의, 세잔느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 작품들의 특징은 강렬한 순수 색채에 있었으며 색채는 때로는 세잔느 처럼 공간 구성에도 사용했지만 대부분 감정 및 장식적 효과를 위해 임의적으로 사용했다.● 입체파1900년부터 1914년까지 파리에서 일어났던 미술 혁 청기사 그룹의 미술가들은 더욱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작품을 제작했고 후배 세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래파 FUTURISM미래파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전위예술 운동을 일컫는다. 이 운동은 시인 필립포 마리네티가 효시인데, 마리네티는 기존의 낡은 예술을 모두 부정하고 기계 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다이내믹한 미를 창조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자극되어 이듬해 2월 카를로 카라, 옴베르토 보치오니, 지노 세베리니, 루이지 루솔로, 쟈코모 발라의 5인의 화가가 연명으로 미래주의 화가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미술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미래주의의 커다란 공적은 기계가 지닌 차가운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조형 예술의 주제로까지 높였다는 것과 스피드감이나 운동을 표현하기 위해 회화에 시간의 요소들을 도입하려고 시도한데 있다. 이 유파가 뛰어난 조형작품을 낳았다고 할 수 없지만, 현대에 있어서 예술의 소재에 대해 새로운 문제제기를 한 의의는 크다.● 다다이즘 DADAISM다다이즘은 1915~22년경 스위스,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났던 반문명, 반합리적인 예술운동을 일컫는다. 제1차 세계대전을 낳게 했던 전통적인 문명을 부정하고 기성의 모든 사회적·도덕적 속박에서 정신을 해방, 개인의 진정한 근원적 욕구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 이 운동의 근본정신이었다. 이 운동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또는 전후에 세계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독일에서는 반전운동과 코뮤니즘에 결합된 베를린 다다가 1919년에 결성되었다. 미국에서는 1912년경부터 프랑스의 화가 마르셀 뒤샹이 만 레이와 함께 뉴욕의 화랑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뉴욕 다다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적인 경향으로는 소위 레디메이드의 오브제 또는 움직이는 오브제, 콜라주 또는 앗 상블라주로 통하는 메르츠 빌트 등이 시도되었던 점이다. 기계적, 성적인 이미지의 사용도 특색이다. 이들 수법은 다다의 강렬한 가치 부정적 관념과 함께 추상미술, 초현실주의 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60년대 예이 경향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엘즈워드 캘리, 프랭크 스텔라, 도널드 주드, 케네드 놀런드, 잭 영거맨, 래리 푼즈, 모리스 루이스 등을 들 수 있다.● 팝 아트 POP ART1960년대 초기에 미국에서 발달하여 미국 화단을 지배했던 구상 회화의 한 경향이다. '팝'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포플러(popular)'의 약자로 보는 것이 유력하다. 통속적인 이미지, 다시 말해서 일상생활에 범람하는 기성의 이미지에서 제재를 취했던 이 경향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국의 팝 아트는 1950년대 초기의 미국 화단을 휩쓸었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났다. 미국의 팝 아트는 미국으로 상징되는 현대의 테크놀로지 문명에 대한 낙관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다. 미국 팝 아트의 선배 작가로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재스퍼 존스를 들 수 있다. 미국의 팝 아트는 흔히 발견되는 일상적인 이미지나 물체를 미술 작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목표로 하고 있다. 팝 아트의 작가들은 일상의 이미지를 인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기호나 기호체계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앤디 워홀, 로히 리히텐스타인 등은 사회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 - 예를 들면 마릴린 먼로의 얼굴, 미키 마우스의 이미지를 작품 속에 도입함으로써 기초 체계와 그들 자신의 테마를 겹쳐서 표현하고 있다.● 극사실주의 HYPER REALISM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경향의 회화와 조각을 일컫는다. 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극히 생생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특징으로 한다. 주관을 적극 배제하고 어디까지나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과 같이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는데 주로 의미 없는 장소, 친구, 가족 등이 대상으로 취급된다. 극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사실주의로, 특히 팝 아트의 강력한 영향 아래서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팝 아트처럼 평상의 생활 즉 우리의 눈앞에 늘 있는 진부한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팝 아트와는 달리 그것은 극히 억제된 것으로써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