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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문화] 일본 공연 문화와 대중 음악에 대해서
    일본 대중 음악에 대해서포커스● 일본 대중음악에 대해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공존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철저한 공연 기획으로 많은 관객을 동원하여 성공적인 공연을 치러 내는 기획능력● 일본의 뮤지션들의 음악성● 일본인들의 공연 문화에 라이프스타일의 관계● 일본이 근대화를 맞이하면서 일본인들의 변화된 인식● 일본음악이 인정받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아시아권에 있는 서양인'이라는 말이 말해주듯 일본이라는 나라는 독특한 성격을 띠고 있으며, 언제나 일본이라는 틀 안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기네들만의 것을 만들어낸다. 기술개발은 미국이 하고 상품은 일본이 만들어낸다고 흔히들 말하듯이 음악 또한 서양적 사운드에 그들만의 아기자기한 멜로디 라인을 융합시켜 서양의 음악도 아니고 동양의 음악도 아닌, '일본음악'이라는 또 하나의 자기네들만의 것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음악을 가지고 아시아권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아티스트들- 사카모토 류이치, 와이엠오(Y.M.O), 피치카토 파이브(Pizzicato Five), 이시이 켄 등-을 배출해냈으며 일본을 세계 제2위의 음반시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도대체 일본음악의 이러한 파워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 나라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일본음악계의 또 하나의 세상 '인디'일본에는 오래 전부터 라이브 하우스라는 곳이 존재해왔다. '라이브 하우스'란 말 그대로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아마추어 밴드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며 선보일 수 있는 곳으로 음악인에게 있어 최고의 자유의 장이다. 우리 나라의 홍대나 신촌 근처에 있는 클럽들이 바로 이러한 형태인데 일본에는 이와 같은 라이브 하우스가 전국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그만큼 많은 라이브 하우스에서는 연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룹이나 팀을 이끌고 연주를 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양의 인디 그룹들이 포진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엑스 재팬이나 대부분의 비주얼 록 그룹들이 그랬듯이 라이브 하우스이지 않는 그들만의 음악을 하고싶어 하고, 이러한 인디 음악은 메이저 못지 않게 체계적인 조직망을 갖고있는 인디 레이블이나 인디 미디어 등을 통해 배출된다. 기존의 메이저나 미디어에 식상해진 팬들은 이러한 하나의 거대한 인디 세계 속에서 돌파구를 찾기도 한다.● 한국의 라이브 클럽 실정한국에 락 클럽은 대부분이 홍대부근이나 신촌에 포진해 있다. 이러한 락 클럽에는 소위 말하는 인디 밴드들이 연주를 하는 장소로 역할을 매김을 하고 있다.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처럼 다양한 장르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하는 실정에서 인디 밴드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악기와 자신들의 노래를 라이브로 연주할 수 있는 장소와 여건이 희박하다고 볼수 있다. 한국에도 90년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홍대 부근 락 클럽들이 호황을 이루었던 적도 있다. 이 시기에는 수많은 인디 밴드들이 이 클럽에서 연주를 하였고 수반은 관객들이 이 인디 밴드들의 연주를 들으려고 클럽을 찾아 오기도 하였다. 이러한 90년대부터 현재까지 인디 클럽에서 연주를 하면서 현재까지 자신들의 인디 메니아들 사이에서 추종(?)을 받고 있는 밴드들은 CRASH, 크로우, 퍼필, 셀카운팅, 사혼, 피아, 디아블러, 넬....이들은 오랜 시간동안 인디 클럽에서 연주를 해옴으로 그들의 입지를 굳힌 밴드들이다.한국의 클럽의 실정은 2000년도에 들어오면서 파티를 위주로 술마시면서 춤을 추는 클럽들이 홍대 주변에 새롭게 들어서면서 차차 락 클럽을 찾아주는 매니아들이 파티를 하는 클럽쪽으로 즐김을 옴김에 따라 락 클럽의 관객이 줄어들어 하나 둘씩 문을 닫는 실정이 되어있다.또한 인디 밴드들이 설 자리가 하나 둘씩 줄어 듬에 그들의 주머니 사정은 더욱 힘들게 되어가고 있다.인디 클럽의 활성화가 그 불꽃이 꺼져감에 우리의 대중 음악의 다양성의 불꽃 또한 꺼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하는 다양한 음악 장르의 공존위와 같은 인디의 활성화로 인해 파생된 일본음악계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가 바로 장르의 다양화이다. 인디 뮤지하는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이렇게 다양하게 활성화된 인디 음악은 알게 모르게 팬들의 음악적 수준을 향상시켜 놓았다. 이러한 상황은 메이저에도 영향을 미쳐 일본의 차트 프로그램을 보면 댄스 일변도인 우리 나라와는 달리 상업성 짙은 아이돌 가수에서부터 코무로 사단을 필두로 하는 댄스, 거기에 록, 포크, 힙합, 일본음악에만 존재하는 특수 장르(비주얼 록 등)까지 마치 춘추 전국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수많은 장르가 공존하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이와 같이 우리 나라 대중 매체에서 다루고 있는 일부 가수들이 일본음악의 전부가 아닌 것이다.● 수십만의 관객 동원을 자랑하는 콘서트 문화 그 공연 기획 능력일본의 가요 프로그램을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사회자가 게스트로 나온 아티스트에게 늘상 묻곤 하는 "이번에 콘서트는 언제부터입니까?"라든가 "몇 지역을 순회합니까?"같은 질문이다. 실제로 일본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콘서트만으로 1년치 스케줄이 빽빽하게 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양의 콘서트를 강행한다. 게다가 인기 아티스트라면 콘서트 관객 몇 십 만쯤은 우습게 동원하곤 한다. 우리 나라 유명 가수가 콘서트 관객 몇 만 동원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것과 비교해 보면 그 수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일본음악에도 물론 비디오형 가수나 아이돌 가수처럼 미디어 음악 산업이 만들어낸 가수 아닌 가수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아이돌 가수에서부터 20년이 넘게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실력 있는 아티스트,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았을 때 실력 있는 가수들은 수명이 길다. 결국 이러한 아티스트들에 의해 그 나라의 음악적 뿌리는 지탱되어지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인디 문화와 다양한 장르, 탄탄한 콘서트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일본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꾸준히 생성되고 탄탄한 실력을 다져 나가고 있다.일본의 대중길고 산업 규모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이를 테면 뉴욕에 본사를 둔 소니뮤직의 한국 지사는 직원이 30명이고, 일본 지사는 3000명이다. 작년 우리 음반산업 규모가 1800억원인 데 비해 일본 기획사인 에이벡스 한 곳의 연매출이 8000억원이라고 한다. 그들이 우리보다 얼추 100배는 앞서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단적인 예로 일본 록밴드 라르칸시엘의 공연이 열렸다 하면 축구장 만한 대형 실내체육관에 1만6000명이 가득 들어찬다. 인파가 몰리는 콘서트장 주변 앞 대형 전광판에는 쉴 새 없이 음반 홍보용 뮤직비디오가 돌아간다. 콘서트와 동시에 앨번 판매에도 전념을 다하는 마케팅.기획사가 가수를 만들고 키워내는 것은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그들이 시장을 휩쓸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아무로 나미에 같은 아이돌 댄스가수와 수십년 경력의 록밴드, 실험정신 강한 인디밴드가 대중의 사랑을 고르게 나눠 먹고 자라는 곳이 일본이다.● 일본 음악의 특징일본 음악이 우리나라에 처음 유입이 되었을 때 대부분 놀랐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이제껏 보아왔던(편견을 가지고 있던) 일본의 그것과는 다른 꽤나 조용한 음악, 우리나라 음악보다 거치지 않은 록 음악이나 힙합 음악, 꽤 고급스럽고 맛깔스럽게 분위기를 자아내는 퓨전재즈 등은 기존 편견을 가지고 들춰보던 일본음악과는 다른 느낌의 것이었다. "이전에 아이돌 음악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이런 것도 있네." 하는 분위기를 어림잡아 피부로 느낀다. 물론 4차 개방 이전 3차 개방이 되었을 때 일본어 가사가 없는 영어판 앨범등은 수입이 가능했으므로 일본의 뉴에이지 음악, 드라마 음악을 통해 기존의 빠른 음악, 아이돌 음악만이 난무한다는 편견을 버리기에 충분한 분별력을 심어주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가요시장이 이제는 댄스와 발라드만을 취급하지 않는 토양이 형성되었고 장르의 분파를 말미암아 듣는 영역이 다양해짐을 반영했는지 모르지만, 원래 일본 음악 내에서 아이돌만을 위한 음악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실제 일본에서 20여년이상 활동경력이 있는 밴드나 가수들이 꽤 많고 이들은 아직도 그들의 음악세계(트렌드에 휩쓸리지 않는)를 진척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점을 빌어 일본 대중음악의 장인성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추세다. 그리고 일본에서 유통되는 음반들 가운데 약 5분의 1이 인디 음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미 일본은 대중음악 인프라의 기반이 탄탄하다고 봐야한다. 즉 인디의 실험적인 음악과 주류의 대중성이 서로 교류를 통해 지속적으로 음악적 스타일이 변하고 다양화 되는 것이다.● 일본 대중 음악의 힘일본 대중음악의 힘은 깊고도 넓은 '수용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비틀즈가 공연을 했던 나라. 재즈를 비롯한 몇몇 장르에서는 세계 최고의 시장을 가진 나라. 특유의 '오타쿠'(매니아) 문화로 어떤 음악이든 일단 들어 오면 유행을 탄 후 사라지는 게 아니라 축적되는 나라. 이런 특징들이 일본 대중음악을 발전시켜온 힘이 아닐까.세상만사가 들어온 게 있으면 나오는 게 있는 법. 수십년간 서구의 대중 음악을 쌓아온 일본이다보니 그들이 행하는 음악의 폭도 실로 광대하다. 인터넷의 발달로 국내에 일본 대중음악이 더욱 활발히 소개되면서 각광받는 음악이 시부야 케이다. 특정한 장르가 아닌, 유행의 거리 도쿄 시부야 일대에서 인기를 끄는 음악을 가리키는 시부야 케이는 브라질의 보사노바. 재즈. 훵크, 프랑스 스타일의 팝 등 다양한 장르를 섞어 일본식으로 표현한다.여기서 '일본식'이란 '왜색'과는 달리 고도성장기 이후 세계 각국의 문화가 섞여 국적을 짐작할 수 없어진 문화를 말한다. 어렵고 심각한 걸 싫어하는 일본 젊은이의 성향을 대변하듯, 시부야케이에서 소화되는 음악은 태생의 계급성을 묻지 않는다. 훵크에 묻어 있는 흑인의 애환이나 일렉트로니카에 담긴 하위 백인 청년문화는 시부야케이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각각의 요소는 단지 '듣기 좋고 세련된 음악'을 위해
    인문/어학| 2005.05.26| 8페이지| 1,000원| 조회(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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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학과,인문사회] 북한사회의 식량난과 경제난에 대하여
    2002년 경제관리 개선조처물가, 임금, 환율 현실화 기업 경영의 자율권 확대 인센티브 제도 배급제 폐지북한 사회의 상행위주민들 생존 위한 상행위 노동당 간부 가족들의 상행위 돈의 힘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음 평양을 포함한 38곳에서 상거래농민들이 더 살 만하다협동농장(700만명) 1인당 연간 219kg(1인당 하루600g) 텃밭이나 경사지 밭 개간 근로자가구 도시빈민들 전국의 70%의 근로자 가구 주곡의 대부분을 공공배급제도에 의존 경제개혁 이후 더욱 어려워진 삶인플레이션임금 근로자 50~100원⇒1700~2500원(월평균 2100원) 농산물 가격은 임금 인상폭보다 높은 비율 2004년 6월 쌀가격 1kg 270원 ⇒ 500~600원 ※세계식량계획(WFP)의 평양사무소 환율상승(2004년 4월) 암시장 환율 : 1유로 : 3천원, 1달러 : 2600원 북한공식환율 : 1유로 : 1400원, 1달러 : 1200원7.1 경제관리 조치 이후 주민생활상행위, 부업 없이 생계 유지 불가능 중간상인출현, 고용관계발생,머슴조개,짐꾼, 소작인 중국 상품의 범람 의류, 자전거, 텔레비전, 냉장고 등등 상업화에 따른 부정 부패증가 2004년 개인 소유권 보호 등을 위한 형법 개정{nameOfApplication=Show}
    인문/어학| 2005.05.26| 6페이지| 1,000원| 조회(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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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토] 세계화시대의 도시와 국토- 강화도
    강화도위치 : 인천 강화군면적 : 302.4㎢크기 : 남북길이 27km, 동서길이 16km, 해안선길이 99km, 최고점 468m인구 : 6만 5698명(2004)면적 302.4㎢, 남북길이 27km, 동서길이 16km, 해안선길이 99㎞이다. 2004년 4월 현재 2만 3459세대에 6만 5698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가장 큰 섬으로, 최고점은 마니산(摩尼山:468m)이다.강화군면적 : 411.24㎢인구 : 6만 5698명(2003.1)인구밀도 : 159명/㎢(2003.1)가구수 : 2만 3459세대(2003.1)행정구분 : 1읍 12면군청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163군의 꽃 : 백일홍군의 나무 : 감나무군의 새 : 종달새면적은 411.24㎢, 인구는 6만 5698명(2003)이다. 한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인 강화도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15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으로 경기도(북한) 개풍군과 황해도 연백군, 동쪽으로 경기도 김포시, 남쪽으로 옹진군·서구(西區)에 접하고, 서쪽으로 황해와 만난다.지형특색서쪽과 남쪽은 경기만에 열려 있고, 북쪽으로는 한강 및 예성강 하구를 사이에 두고 북한 개풍군·연백군과 마주하며, 동쪽으로는 염하(鹽河)를 끼고 김포반도와 마주본다. 강화도는 본래 김포반도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오랜 침식으로 평탄화된 후 침강운동으로 육지에서 떨어졌으며, 마리산(摩利山:467m)·혈구산(穴口山:466m)·고려산(高麗山:436m) 등의 잔구성 산지가 섬의 골격을 이룬다. 따라서 저위침식 평탄면이 비교적 넓게 분포하여 경지율이 높다.기후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으로, 연평균기온 11.2℃, 1월 평균기온 -4.7℃, 8월 평균기온 24.6℃로 온난한 편이며, 연교차도 크지 않다. 연평균강수량은 1,200mm 정도이다. 같은 위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기후가 온난하다. 이러한 기후 때문에 남부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난대식물이 분포하여 특이한 식물경관을 보인다.강화군 연혁강화군은 단군신화에도 나오는 유년(고려 태조 23) 이래의 것으로, 고려시대 몽골 침입 때와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는 임시수도의 역할을 하면서 강도(江都)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수도 방위상 중요시되어 사진(四鎭)의 하나가 되었으며, 연안에 포대(砲臺)를 구축하고 마리산 정상에 봉수대를 설치하였다. 수도의 관문에 위치하기 때문에 근세에 이르러서는 병인양요·신미양요·운요호[雲揚號]사건 등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었다.오늘날에도 군사분계선이 북쪽에 지나기 때문에 수도방위상 중요시되고 있다. 행정상의 지위는 고려시대 이래 군·부(府)·도호부(都護府)·도(都) 등으로 여러 번 변경되다가 1906년 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통폐합으로 교동군(喬洞郡)을 편입시켰으며, 1973년 강화면이 읍(邑)으로 승격하였다.1995년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다. 2003년 현재 강화읍 및 선원(仙源)·불은(佛恩)·길상(吉祥)·화도(華道)·양도(良道)·내가(內可)·하점(河岾)·양사(兩寺)·송해(松海)·교동·삼산(三山)·서도(西島)면 등 1읍 12면으로 이루어져 있다.강화군 산업경지면적은 1만 6745ha로 전체면적의 40%를 차지하며, 전체주민의 21.5%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외에 무·배추 등 원예작물과 왕골·깨 등 특용작물 및 보리·콩·감자 생산도 많다. 강화의 특산물로는 강화쌀·인삼·순무·약쑥·화문석·꽃삼합 등을 들 수 있다.인삼의 경우, 강화도의 토양이 인삼재배에 적당한 화강암 풍화토인 데다 기후조건도 적당하여 많이 재배한다. 게다가 6·25전쟁 이후 개성지방 피난민의 재배기술과 결합, 현재 전국 생산량의 약 40%를 차지하는 특산물이 되었다. 주산지는 남부의 불은면·양도면·길상면·하점면이다.화문석은 왕골을 원료로 한 고려시대 이래의 특산물로서, 강화도에서 생산되는 왕골은 길이가 길고 우수하다. 또한 화문석 이외에 골풀(또는 조리풀)이라는 일년생 풀을 원료로 한 꽃방석과 꽃삼합의 제조도 성한데 화문석은 하점면과 송해면, 꽃방석과 꽃삼합은 교동면이 주산지이다.섬 지방임에도 불구하. 제조업체수는 109개로 섬유·음식업이 주종을 이루며, 하점면 부근리 일대에 하점지방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강화군의 교통관광강화도 주변에 있는 섬들과는 내과면 외포리(外浦里)에서 연결된다. 강화도는 많은 역사적 사건을 겪은 곳으로 문화·역사 유적 등 풍부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강화군 내의 문화재로는 2003년 현재 보물 9점, 사적 15점, 천연기념물 4점 등 국가지정 문화재 28점과 유형문화재 23점, 무형문화재 1점, 기념물 31점, 민속자료 1점, 문화재자료 12점 등 지방문화재 68점을 포함하여 총 96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선사시대 유적으로 하점면의 고인돌을 비롯해 곳곳에 122기의 고인돌이 흩어져 있다. 이 고인돌은 ICOMOS(Internatioa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국제기념물유적회의)를 통해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마리산에는 단군신화와 관련된 참성단(塹星壇)·삼랑성(三郞城:일명 鼎足山城) 등이 있는데, 특히 참성단은 지금도 개천절과 전국체전 때 성화가 채화되는 곳으로 유명하다.그 밖에도 정족산에는 신라시대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전등사(傳燈寺)가 있다. 강화읍에는 옛 강화산성의 서문인 담화루(膽華樓)와 남문인 안파루(晏波樓)를 비롯한 고려궁지(高麗宮址) 등이 1977년 복원·보수되어 옛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또한 강화도는 석모도(蓆毛島)의 보문사(普門寺), 화도면의 정수사(淨水寺) 등 오래된 절과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이 많아 관광객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그 밖에 갑곶돈대(甲串墩臺)·용두돈대(龍頭墩臺)·광성보(廣城堡)·초지진(草芝鎭)·덕진진(德津鎭) 등이 복원·보수되어 있다.2000년 7월에는 서도면 말도리의 강화개펄 및 저어새번식지를 천연기념물 제 419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으며, 개펄은 학생들과 일반인들의 살아 있는 자연학습장이 되고 있다강화군의 사회 문화강화군에는 2002년 현재 초등학교 22개교, 중학교 10개교, 고등학교 8개교와 인천가톨릭대학교·가천의과대학 최후격전지로 조상들의 굳센 우국충정을 기리고자 1970년부터 매년 광성제를 개최하고 있다. 주요 민속놀이로는 시선뱃놀이·성돌이놀이·용두레질놀이 등이 있다.1876년(고종 13) 조선과 일본간에 체결된 수호조약.일시 : 1876년 고종13년장소 : 조선 강화도목적 : 수호조약해당국가 : 조선, 일본한 ·일수호조약(韓日修好條約)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이라고도 한다. 이 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조선과 일본 사이에 종래의 전통적이고 봉건적인 통문관계(通文關係)가 파괴되고, 국제법적인 토대 위에서 외교관계가 성립되었다. 이 조약은 일본의 강압 아래서 맺어진 최초의 불평등조약이라는 데 특징이 있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맞서 개화론자들은 부국강병을 위해서 개화사상을 도입하고 문호를 개방하여 대외통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이즈음 조선 조정 내에서의 권력투쟁으로 대원군이 하야하게 되자 이러한 국내의 정황을 탐문한 일본은 1875년 통교교섭을 위해 조선에 사신을 파견해왔으나 교섭은 성립되지 않았다. 이에 일본 정부는 측량을 빙자하여 군함 운요호[雲揚號]를 조선 근해에 파견하여 부산에서 영흥만(永興灣)에 이르는 동해안 일대의 해로측량과 아울러 함포(艦砲)시위를 벌였다. 또한 운요호를 강화도 앞바다에 재차 출동시켜 초지진(草芝鎭)의 수비병들이 발포하는 사태를 유발하게 하였다. 1876년 정한론(征韓論)이 대두되던 일본 정부에서는 전권대신(全權大臣) 일행을 조선에 파견하여 운요호의 포격에 대하여 힐문함과 아울러 개항을 강요하였다. 2월에는 일본 사신 일행이 군함 2척, 운송선(運送船) 3척에 약 400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강화도 갑곶(甲串)에 상륙하여 협상을 강요해왔다. 이에 조선 정부는 국제관계의 대세에 따라 수호통상의 관계를 맺기로 결정하고 신헌(申櫶)을 강화도에 파견하여 일본 사신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와 협상하게 한 결과, 수호조약이 체결되었다.일본의 무력시위 아래 체결된 조약은 모두 12개조로 되어 있는데, 그 내용에는 일본의 정치적 ·경제적 세력을 조선에 침투의 간섭없이 조선에 대한 침략을 자행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데 있다. 제2조에서 조약이 체결된 후 조선 정부는 20개월 이내에 부산과 그 밖의 2개 항구를 개항할 것을 규정하고, 2개 항구의 선정은 일본의 임의에 맡길 것을 주장하였다. 그 결과 동해안에는 원산이, 서해안에는 인천이 각각 선정되었으나, 다만 인천항으로부터의 미곡 수출만은 금지되었다.또한 제4조와 제5조에서는 개항장 내에 조계(租界)를 설정하여 그곳에서의 일본 상인의 자유로운 무역과 가옥의 조영(造營) 등 거주의 편의를 제공할 것을 규정하였다. 제7조에서는 일본이 조선의 연해(沿海) ·도서(島嶼) ·암초(岩礁) 등을 자유로이 측량하고 해도(海圖)를 작성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제8조와 제10조에는 개항장에서의 일본인 범죄자들에 대해 현지에 파견된 일본영사가 재판한다는 치외법권의 조항이 명시되었다. 이 조약에 규정되어 있는 바와 같이 일본은 개항장을 통해서 일본인을 조선에 침투시키고, 여기에 조차지(租借地)를 확보하여 일본세력의 전초지로 삼고자 하였다. 아울러 치외법권을 설정하여 일본인 상인들의 불법적이고 방자스런 행동에 대해서 조선의 사법권(司法權)이 미칠 수 없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불평등한 조약으로 하여 조선은 서양 여러 나라와 통상을 시작하게 되고,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서양의 신문명을 수입하는 반면에 열강의 침략을 받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강화도 역사강화도는 삼국시대에서부터 백제·고구려의 중요한 요충지로서 자리잡아왔다. 특히, 고구려와 백제의 최대 격전지로 생각되는 관미성이 강화군 교동도로 추정될 정도 강화도는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백제 개로왕이 죽고 수도인 한성이 함락되었는데, 이로써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완전히 차지하게 되었고, 강화도 또한 이때 고구려에 귀속되었으며, 당시 군 이름은 穴口(혈구) 혹은 甲比古次(갑비고차)라고 하였다. 그리고 인접 교동도는 고구려의 高木根縣(고목근현)이 되었다.그 후 백제와 신라가 동맹을 맺어 한강 유역을 되찾았고,했다.
    인문/어학| 2005.05.26| 7페이지| 1,000원| 조회(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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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시장
    9장 노동 시간과 생활 시간● 현 노동시간의 나라별 비교(1995년)나 라덴마크독 일미 국일 본한 국시 간31.5시간37.6시간41.4시간43시간48.9시간● 주 5일 근무제에 대한 나의 생각우선 이 제도와 관련하여 나오는 우려의 목소리는 형평성이 없다고 생각을 하며 보는이의 입장에 따라서 다르게 판단이 되는 것 같습니다.일을 더 시키고자 하는 사의 입장이나 더 쉬고자 하는 노측의 입장이나 다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하지만 그 기본 취지로 돌아가서 문제를 생각하면 오히려 쉬운 결론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우선 하루 더 쉬는 만큼 그만큼 평소에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미국에들 평일에 일 진짜 열심히 한다고 들었습니다. 괜히 토요일날 거져 쉬는게 아닙니다)그리구 주 5일 근무제로 인하여 소비의 확대..과소비...이 부분은 우리가 아직 여가 생활에 대하여 경험이 없어서라는 생각을 합니다.. 쉬라고 시간은 주었는데 마땅히 무엇을 하면서 놀아야할 지를 모르니 당연히 쇼핑이나하는 소비생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이는 차차 건전한 여가 활동쪽으로 유도를 해서 고처 나갈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주 5일 근무로 인한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가족과 자신의 발전에 투자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의 확보롤 들고 싶습니다.(이 제도를 시행하는 미국인들 주말에 혼자서 어디 놀러 다니면 바로 이혼 당한고 합니다. 가족에 무관심 하다고) 오늘날 삶의 질은 물론 물질적인 풍요도 중요하지만 가족과 개인에 대한 배려가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다고 판단 합니다...그렇기 때문에 가족과 자신에 대한 배려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11장 노동 유연화가 노동자 삶에 미치는 영향● 노동시장의 유연성노동 시장이 유연하다는 것은 노동력을 마음대로 변형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슨 말이면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쉽게 하기 위하여 인력을 감축시키거나 활용하는 것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1> 정리해고 : 경영이 악화된 기업이 경쟁력 강화와 생존을 위해서 구조조정을 할 때 종업원을 해고할 수 있는 제도.2>근로 파견제 : 파견사업주가 노동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당해 노동자를 사용사업주의 지휘 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형태. 예를 들어 한 사업장이 파업을 하였을 때 사용주가 다른 노동자들로 하여금 조업을 하게 해 파업의 의미를 무색케 하는 제도.3>비정규직 노동자의 확대 : 이것은 정규적으로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임시로 고용된 노동자로 어느 때나 계약을 취소하면 해고할 수 있고 임금도 정규직에 비해서 낮은 대우를 받는 노동자를 말하며 이의 증가는 근로 조건 차별과 고용불안ㅁ이라는 문제점으로 노조의 쟁점이 되고 있음.이상들이 노동 유연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하여 행해지는 제도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 유연화 정책은 기업가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조치지만, 노동자에게는 삶이 직결된 문제이므로 이 문제로 노조와 사업가들의 분쟁의 첫 요소입니다.● 수량적 유연성과 기능적 유연성개념적으로 볼 때 수량적 유연성은 기업의 수요 변동에 따라 신축적으로 고용 수준을 조절하여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과 실제 고용된 인력의 수를 일치시키려는 전략이다. 즉, 필요한 최소 수준의 노동력만큼을 고용하고 경기변동에 따라 임시적·단기적 노동력을 탄력적으로 활용하는 유연화 전략이다. 수량적 유연화 전략은 다시 고용형태의 유연화, 작업의 외부화, 그리고 근무형태의 유연화로 구분된다.
    사회과학| 2003.06.30| 2페이지| 1,000원| 조회(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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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만식님의 논이야기 감상평
    채만식님의 논 이야기 감상평이 작품은 1946년 {해방 문학 선집}에 수록된 농촌 소설이다.그의 다른 작품 [도야지]와 함께 과도기의 사회상을 풍자한수작으로 꼽힌다.해방 직후 혼란기의 사회상을 냉소하는 듯한 태도로 묘사함으로써독특한 풍자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 소설은 8.15 직후 과도기의사회상 중 국가의 농정을 풍자한 소설로 두 개의 중심 사건이 기둥을이룬다. 지식인으로서 당대 농민의 참상을 관찰하여 객관적으로 폭로하고, 농민을 수탈하는 사회 제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개혁 의지가냉소적인 태도로 묘사되어 독특한 풍자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언제나 그렇듯이 세상은 평범한 사람을 평범하게 살아가도록 내벼려두질 않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환경은 많이 변해왔지만 사람들이살아가는 법칙은 여전히 그러하다 채만식님의 논이야기는 그저 소설로가 아니라 그 당시 그러한 일들이 허다하게 일어난 것을 한생원이라는 등장인물로 대신하여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역설한 것이다배운 것 없이 소작농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꼭 소작농민이 아니라도 어리석은 사람들의 각성을 일으키고, 냉정한 사회에 대한 고발의 메시지한생원의 나라에 대한 불신나 또한 한생원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난 분명 태어나면서 내 조국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조국을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조국이 나에게 해주는 것이 정말로 무엇일까...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는 것이 오히려 나를 보호해주고 있는것일까...도처에 널려 있는 부정 부패와...바꾸어 볼수 없는 빈부의 격차...말도 안돼는 정당성을 내세우면서 정권을 유지하는 세력가들....더 나아가서...한민족 몸속에 뿌리 박혀서 시대가 변하여도 변하지 않는 유교적인 고리 타분한 몸짓들..그로 인하여 행하여 지는 여러 좋지 않는 모습들....
    독후감/창작| 2003.06.30| 2페이지| 1,000원| 조회(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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