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한 학기 동안 ‘상상과 현실’ 수업 시간에 배운 작품들 중 두 작품을 골라 작품 속에 나타나는 여성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우리가 배운 여러 작품 중에서도 나는 조각달과 우리 조에서 다루었던 동화 신데렐라와 영화 Ever After를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이 두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여성들은 당시 시대의 여성상을 나타내 주고 있다.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들의 지위는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시대적인 면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라 하더라도 사회의 경제적인 면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그러므로 그 시대를 반영해 준다는 문학 작품들을 통해 당시의 여성들의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여성들의 삶은 그 시대의 분위기를 또한 쉽게 느끼고 알 수 있다.2. 본론2-1. 조각달 에 나타난 여성.조각달 은 우리 나라의 소설이 아닌 중국의 소설이다. 중국의 어려운 사회상을 반영해주면서 그 사회에서의 여성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이 소설은 한 여자 아이의 시점으로 바라본 자신의 어머니의 삶과 자신이 어린 여자 아이에서 한 여자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병들어 집안을 꾸리지 못하게 되자 주인공의 어머니는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 된다. 하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된 중국의 사회는 너무 어려운 시절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어머니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도 가족의 생계와 아버지의 약값을 벌기 위해 주인공의 어머니는 궂은 일이라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어머니가 힘들게 얻게 된 일거리가 남의 빨래를 대신 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생활이 유지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주인공의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주인공의 어머니는 다른 일을 하게 되셨는데 주인공의 눈에 비쳐 묘사되는 어머니의 모습은 전과는 다른 모습이었고, 주인공에게 새 아버지가 생기게 된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주인공의 친구가 되어주던 ‘조각달’을 주인공은 더 이상 보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세월이 흐른 후에 새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어머니가 만두집 아저씨에게 시집을 가게 되면서 어머니와는 이별을 하게 된다. 특별한 재능이나 학력이 없었던 주인공은 마음씨 좋은 교장을 만나 학교에서 숙식을 제공 받으면서 일을 하게 되지만, 그것도 잠시 새로운 교장이 오게 되면서 갈 곳이 없어진다. 주인공이 원래의 교장에게 일자리를 얻으려 교장의 집에 찾아가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바뀌게 된다.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길을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주인공이 었으나,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느 새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길을 걸어가게 된 것이다. 새 아버지가 생긴 후 본 적이 없었던 조각달은 주인공은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한다.조각달이란 소설에서는 여성들이 혼자서 살아가기에 얼마나 힘이든지 그리고 여성들이 직업을 갖기란 얼마나 힘든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젊고 예쁜 여자들이 혼자서 살아가기에는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준다. 조각달에 등장하는 두 여성들은 모두 젊고 예쁜 여자들이었다. 물론 주인공의 어머니는 결혼을 한 상태였지만, 남편이 죽게 되자 자신의 몸을 팔아가면서 살아가게 된다. 주인공은 자신의 어머니와는 달리 자신이 선택한 길이 아니기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길을 가게 된 것이다. 다만 자신의 어머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주인공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정당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상대 남자의 아내를 만나고 나서 자신의 생각을 자신이 가던 길을 멈추게 된다는 점이다. 반면, 주인공의 어머니는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딸과 그리고 생계유지를 위하여 그 길을 계속해서 간다.2-2. 동화 신델렐라와 영화 Ever After에서 나타난 여성.동화 신데렐라는 우리가 어린 시절에 누구나 읽었던 동화이다. 그 동화를 읽으면서 여성이라면 누구나 신데렐라와 같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주인공 ‘신데렐라’가 부럽기만 하였다. 하지만 ‘신데렐라’의 소극적인 모습에 답답해하기도 하였을 것이다.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여성은 남성에 비하여 사회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런 모습이 이 두 작품 속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동화 신데렐라가 쓰여졌던 시기에는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하며 살았던 시기이다. 남성에 의하여 선택을 받고, 여성은 오로지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과 남성을 위해 한 평생을 다 받친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조차를 알지 못하면서 살아가던 시대였다. 한 마디로 여성은 남성에 의한 수동정인 삶을 살던 시대인 것이다. 그런 시대를 동화 신데렐라에서는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신데렐라’가 자신의 유리 구두의 주인을 찾으러 온 왕자의 부하들에게 자신의 구두라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속상해 했던 것이 그런 사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요즘 시대의 여성이라면 자신의 구두라 당당히 말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자신이 먼저 구두를 찾아 나섰을 것이다. 반면, 영화 Ever After는 동화 신데렐라를 각색하여 만든 영화이다. 하지만 각각의 작품 속에서 비추어지는 여성의 모습은 다르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주인공인 ‘다니엘’은 ‘신데렐라’와는 달리 자신의 의견을 뚜렷이 나타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고 있다. 또한 왕자를 왕자라는 신분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왕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므로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또한 영화 Ever After에서는 영화의 배경은 신데렐라에 두고 있지만, 현대의 작품이라 여성의 능동적인 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Ever After가 신데렐라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사회가 변하였기 때문에 여성의 의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신데렐라에서 다니엘까지..프랑스의 페미니스트 작가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제 2의 성‘에서 사람은 여자로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진다고 지적했다. 즉 여성은 남성들이 여성을 규정하며 만들어 놓은 '신화'를 학습하고 내면화하기 때문에 제 2의 성이자 타자가 되었다는 말이다.여성은 수많은 시대에 걸쳐 억압되었고, 타자에 의해 왜곡되어 왔으며 본질이 아닌 단지성에 의해 제한 받았다.남녀 불평등 또는 여성 억압에 대한 인식은 길게는 100년, 짧게는 급진적 대중 운동이 전개된 최근 20년 전부터 있어왔고, 그 사이 여성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형성해가는 주체가되고자 하는 노력 역시 인류사를 통해 끈질기게 있어왔다. 우리 역사에 나타난 비근한 예로황진이 라던가 신사임당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지금까지 극히 개인적 차원에서만 있어 왔을 뿐이다. 근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집단적인 여성들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각 사회 여러 분야 에서찾아볼 수 있는데 그 쉬운 예로 어릴 때 누구나 읽어왔고 들어왔던 동화책 를각색한 영화 를 들 수 있다. 이 영화의 제목 는 일반적인 선과 악, 여성과 남성 같은 구분이 뚜렷한, 옛날 옛날에(Once upon a time)으로 시작해서 그리하여 그들은 잘먹고 잘살았다는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 라는 막연한 인과응보를 풍자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의 신데렐라는 어떻게 비춰지는지 원작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자.동화 와 영화 는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한 여자가 왕자를 만나 신분 상승을 하게 되는 이야기라는 면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이 두 작품의 주인공이다. 과거에 쓰여진 동화책에서는 책이 쓰여졌을 당시의, 남성이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되던 상황에 맞게 여주인공이 굉장히 나약하고 수동적인 인물로 비춰지고 있다. 계모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고, 새 언니들에게도 아무소리 안하고 복종하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이끌어 나가려 하지 않고 타인에 의해서 이끌려 가는 여인이 바로동화책 속의 이다. 반면, 현대에 새롭게 쓰인 의 주인공은 착하고인정 많긴 하지만, 무조건 희생하기 보다는 한 인간으로써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그대로 행하고 계모와 새 언니들에게 때로는 반항도 하는,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씩씩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즉, 동화 속 의 주인공은 어렸을 때부터 누적되어온 억압과 차별에 순응하면서 무기력하게 어딘가에 기대려는 의존성에 빠져있는 반면, 영화의 다니엘은 사회가 여성과 노예를 부자유스럽게 구속하는 것과 남성에게 매이는 굴욕적이고 안이한 것들에 반박할 줄 안다. 또, 무도회 장에 갈 때에도 과거의 신데렐라는 무도회에 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그저 울고만 있다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무도회장에 갈수 있었지만, 의 다니엘은 무도회에 가기 위해 스스로 애쓰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여성이 자신의 주장을 잘 펼 수 없고 남성들이 우월하다고 판단되던 그 시대에도, 의 다니엘은 토마스 모어의 책을 즐겨읽고 그 한 부분인 "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죄가 죄인 줄 모르고 죄를 지었다면, 그것을 처벌하시겠습니까? " 를 인용해서 하인을 멋지게 구해내기도 한다. 그리고 다니엘은 왕자에게사람은 모두 똑같다고 강조하며, 왕자와 데이트하러 도서관에 들렀을 때도 무지한 백성들을위해서 모두를 위한 대학을 설립하라고 권유하는 당찬 모습을 보인다. 이런 당당하고 똑똑했던 다니엘의 모습에 반한 왕자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왕자와의 결혼에 있어서도, 동화속 신데렐라는 왕자를 잘 알지 못하지만 무도회에 가서 왕자에게 선택을 당하고, 그 당시무도회에 온 다른 여자들이 그러하듯 왕자와의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의 다니엘은 왕자를 만나 신분상승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왕자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고, 계모의 계략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팔려 가는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맞서서 그 사랑을 용기 있게 쟁취해 나가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도 동화속 신데렐라는 자신을 괴롭혀왔던 계모와 언니들을 모두 용서해주는 전형적인 착한 여인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영화의 다니엘은 자신들의 죄를 반성하지 못하고 서로의 탓만 하고 있는 계모와 첫째 언니 마가레트 에게 자신이 당한 만큼 똑같이 당하도록 벌을 내린다. 이렇게 두 주인공의 달라진 모습은, 동화책에서는 즉, '재투성이 아가씨' 라는 표현으로 주인공을 나약하게 표현하는 반면, 영화에서는 신데렐라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고 '다니엘' 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과거보다 주체적인 모습을 표현하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이처럼 영화나 문학 작품 속에서 우리는 많은 여성들을 접하게 된다. 이 여성들의삶은 그 시대의 여성들의 삶을 대변한다. 동화 와 영화 가 같은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그것은 서로 다른, 변화된 시대를 반영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여성들의 삶은 동화 에서 신데렐라처럼 나약하고 수동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현대 여성들의 모습은 영화 의 다니엘처럼 자신의 의사를 당당하게 표현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자신의 삶에 대하여 적극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신데렐라 컴플렉스'라는 말이 생길정도로 많은 여성들은 신데렐라를 꿈꾼다. 실제로 여성들은 신데렐라 동화책을 읽으며 자랐고, 은연중에 백마탄 왕자님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된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본능 ’인간에게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본능이 있다. 영국 문학 중 제프리 초서의 켄테베리 이야기에서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초서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라고 말하며, 인간의 이런 본능과 금기에 대해 통쾌하게 글을 썼다.어떤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 자신의 운명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또한, 새로움에의 갈구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해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본능에 따라 섣불리 행동하지 못하지만, 영화 세렌디 피티에서의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두 주인공은 새로운 것에 대한 환상과 운명을 믿고 이 운명을 이루려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사라와 조나단은 각자가 오랫동안 만나고 사랑한다고 믿어온 사람이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7년전 단 한번 마주쳤던 상대방을 만나려고 찾아다닌다. 그들은 서로가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며 상대방의 흔적들을 찾아다니는 것이다.운명이란 무엇일까? 그들이 서로가 운명이었기 때문에 끌렸던 것일까? 처음에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시간이 지난 후에, 또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운명을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러나,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운명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사람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것을 처음 맛 볼 때와 같은 느낌을 운명이라고 믿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주면 그 전에 것은 뒤쪽 한켠으로 밀어놓는 어린아이의 모습과 유사하다.세렌디 피티처럼, 새로운 이성에 대한 추구에서 나타나는 차이점을 진달래꽃과 켄터베리의 이야기를 가지고 동양과 서양의 차이로 비교해 보았다. 동양의 경우는 이별한 경우에 남겨지는-즉, 차이는 사람-에 초점이 맞춰지고, 서양의 경우에는 떠나는 사람-차는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진달래꽃은 ‘이별에 대한 정한을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반면에 켄터베리 이야기는 바람을 피는 아내를 보고도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본능' 이라며 단지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다. 다시 말해, 진달래꽃은 상대방의 반응으로 인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환기시키고, 캔터베리 이야기는 행위자의 초점으로 행위에 대한 책임보다는 인간의 본능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동양은 농업을 기반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 문화가, 서양은 산업화에 기반을 두고 발전했기 때문에 개인을 중시하는 문화가 문학과 영화에 반영된 것 같다.
< 우리나라 폐기물 재활용의 문제점 >1. 폐기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폐기물이라 함은 쓰레기, 연소재, 오니, 폐유, 폐산, 폐알카리, 동물의 사체 등으로서 사람의 생활이나 사업활동에 필요하지 아니하게 된 물질을 말한다. 폐기물도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 폐기물의 종류에 따라 처리 방법도 다르다.폐기물에 따라 크기가 너무 커서 재활용이 안되는 경우도 있고, 분리 자체가 안되서 재활용을 할 수 없는 경우도 물론 있다.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폐기물을 생각해보면 핵 폐기물을 들 수 있다. 핵 폐기물이란, 핵무기 실험과 핵발전소 운영의 결과 배출되는 폐기물로서, 방사능 물질로 되어 있어서 인간 건강에 치명적이다. 핵실험에 의해 발생하는 방사능 낙진은 대기 중에 확산되어 환경을 오염시키고, 핵 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 후 연료를 비롯한 방사성 폐기물 역시 바람과 물을 통해 급속히 환경에 전파됨으로서 조금만 노출되어도 인간에게 위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방사성 물질은 화학변화에 의해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원자핵 붕괴로 인해 자연적으로 소멸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일단 방출되면 장기적인 오염이 불가피하다. 핵 폐기물은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데 수십만년 또는 수백만년이 걸리기 때문에 이를 안전하게, 영구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커다란 과제로서 제기되고 있다. 현재로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추진하고 있는 방식은 밀봉하여 땅속 깊이 매장하는 하는 것이지만, 이들이 자연 분해될 때까지 땅속에서 안전하게 남아있게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이 문제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논란이 일고 있다.2. 사회적인 문제점.앞에서 예를 든 핵 폐기물의 경우, 핵 폐기물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이 인체에 해롭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핵 발전소가 자신의 집 근처에 생기는 것조차 꺼린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다 꺼려하므로 핵 발전소에서 나오는 핵 폐기물을 처리할 곳을 찾는다는 것에는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핵 발전소가 우리 생활에 도움을 주는 면이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우리가 받는 도움에 비해 그에 따른 피해가 더 크므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3. 경제적인 문제점.경제적인 문제점은 우리의 실생활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폐기물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일단 우리 나라는 재활용 가능 페기물의 경쟁력이 떨어진다. 국내 재활용가능 폐기물자원은 천연자원이나 수입 재활용가능 폐기물에 비해 가격과 안정적 공급 및 품질이라는 측면에서 경쟁력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이는 재활용 업체의 영세성과 기술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페기물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이 폐기물의 운반 문제와 시설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의 실정은 운반할 차량, 장비, 재활용 시설 여기다가 설상가상으로 인력까지도 모자라고 있다. 현실이 이러하기 때문에 재활용이 될 수 있는 폐기물들도 모두 쓰레기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4. 수요자의 문제점.우리 나라는 영토가 넓은 편도 아니고, 자원이 많은 편도 아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은 재활용의 현실을 확연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우리의 현실들 깨닫지 못해서인지 재활용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가정이나 시민들에게는 쓰레기를 재활용해 봐야 별로 경제적으로 이득이 될 것이 없다. 그러니 각 가정이 쓰레기 재활용에 열을 올릴 리가 없다. 업체들에게도 재활용이 경제적으로 이익을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제도적으로 폐기물 재활용이 수지가 맞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재활용업체가 영세할 수밖에 없고 기술이 낙후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비록 각 가정이 재활용에 열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도 만일 쓰레기 재활용이 매우 수지맞는 장사가 된다고 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들이 가만히 앉아 있을 리가 없다.하루 빨리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봐야 할 것 이다.5. 생산자의 문제점.수요자의 문제점과 생산자의 문제점은 우리들이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조그만 관심마저 기울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