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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UCC란 무엇인가?User Created Contents 전문가나 기관 등 콘텐츠 제공자가 아닌 일반 사용자들이 직접 만들어낸 콘텐츠 상업적인 의도를 배제하고 흥미와 재미위주로 개인적인(사용자) 유희를 즐기기 위해 제작하는 영상2. Market research- UCC의 이용분야 및 성장요인 - UCC를 활용한 광고의 장점과 단점 - TV/신문 광고 수익 현황 vsUCC 광고 수익 창출현황 - 성공한 UCC 광고 사례UCC 이용분야Market research사회 전반에 걸 쳐 UCC 사용성장요인인터넷 환경의 급속한 변화기업의 신 비즈니스 모델로 각광받음Web 진 화안정적인 인터넷 환경 및 미디어 발달UCC에 대한 호감 상승Market research장유저들의 참여 용이 손쉽게 접근 가능 호기심 자극장 점자극적 콘텐츠 저작권, 명예회손 미디어의 왜곡단 점UCC의 장단점Market researchTV/신문 광고 수익 현황 vs UCC 광고수익 창출현황Market researchTV/신문 광고UCC 광고VSTV/신문 광고Market research* 출처 : 제일기획 2007.2.11Market research성공한 UCC 광고사례Market research3. UCC광고 성공 전략수립ㄱ. 고객과의 접점 확장 ㄴ. 기술적 확장 ㄷ. 새롤운 문화와 라이프스타일 창조감사합니다!!!- THE END -{nameOfApplication=Show}
    사회과학| 2008.12.09| 15페이지| 2,000원| 조회(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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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인지문을 다녀와서
    흥인지문(興仁之門)을 다녀와서먼저 흥인지문에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1. 개요조선시대 서울을 한양으로 정하고 그 경계를 성으로 쌓고 성문을 내었다. 성문은 동서남북에 대문(大門)을 내었고 그 사이에 소문(小門)을 내었다. 대문의 이름을 유교에서 사람이 지켜야할 덕목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따라 지었다. 동대문을 흥인지문(興仁之門), 서대문을 돈의문(敦義門), 남대문을 숭례문이라 하고 북대문은 지(智)를 정(靖)으로 고쳐 숙정문 (肅靖門)이라 하였다.동대문인 흥인지문은 전체 형태와 규모가 남대문인 숭례문과 유사하지만, 조선초기작품으로서 드러나는 숭례문의 위풍당당함에 비해서, 조선후기의 섬세하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지닌다. 현재는 좌우의 성벽이 모두 헐려져 나가 도로 가운데 성문만 남았다.2. 건축물의 구조 및 특징화강석으로 쌓은 성곽 육축에 아치형의 홍예문을 만들고, 그 상부에 2층의 목조 문루(門樓)를 세웠다. 성문 밖으로 반원형의 옹성(甕城)을 두르고, 옹성 상부에 요철(凹凸)이 있는 여장(女墻)을 쌓아 방어용 기능에 치중했다. 옹성은 성문에 근접한 적을 포위 섬멸하기 위한 용도이다. 옹성을 가진 성문은 서울에서 흥인지문뿐이며, 이는 축성시(태조)부터 있었던 것이다. 서울의 동쪽 산인 낙산은 형세가 낮고 평탄하다. 동대문 일대의 지형도 낮아서 적을 방어하기에 부적절한 형세이다. 동대문이 옹성을 쌓은 이유는 적을 방어하기에 부적절한 지형을 인공적으로 보충하려던 의도로 볼 수 있다. 중층문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이며, 가운데 칸은 다른 칸보다 2배에 가깝게 넓게 잡혔다. 바로 아래에 나있는 홍예문의 크기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문루의 아래층은 주위 4면을 모두 개방했고, 내부 중앙에 고주를 일렬로 배치해 대들보와 위층 누마루를 받고 있다.구조형식은 다포계 구조로서, 하층이 외2출목, 내3출목이고, 상층은 내외모두 3출목이다. 구조부재들이 섬세하고 복잡하게 장식화 되고 있어서, 조선후기의 조형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지붕은 상하층 모두 겹처마 지붕이며, 두 층 모두 우진각형의 모양이다. 사래 끝에는 토수를, 추녀마루에는 잡상과 용두를, 용마루 양끝에는 취두를 올려 왕성의 대문으로 손색이 없다.종목 : 보물 제1호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수량 : 1동(棟)지정일 : 1963.01.21소재지 : 서울 종로구 종로6가 69시대 : 조선시대소유자 : 국유관리자 : 종로구< 흥인지문의 안내판 앞 전경 >< 안내판 확대 모습 ① >< 안내판 확대 모습 ② >① Designation : Treasure NO. 1→ Designation : Treasure( Bomul ) NO. 1★ 보물을 한글로 표기 보충② was built in 1397→ was built in 1397 ( Taejo of Joseon )★ 한글 설명에는 조선 태조 시대에 세웠다고 자세히 나와있으나영문표기에 표기되어 있지 않아서 보충 설명 합니다.③ was rebuilt in 1869→ was built in 1869 ( HYPERLINK "http://en.wikipedia.org/wiki/Gojong_of_the_Korean_Empire" o "Gojong of the Korean Empire" Gojong of the Korean Empire )★ 한글 설명에는 고종 시대에 다시 지었다고 자세히 나와있으나영문표기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아서 보충 설명 합니다.④ The style is fypical of the late Joseon era.→ The style ( Dapo ) is fypical of the late Joseon era.★ 한글 설명에는 다포 ( 多包 ) 양식의 건물이라 나와있으나영문표기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아서 보충 설명 합니다.⑤ a semicircular wall→ a semicircular wall ( Ongseong)★ 한글 설명에는 옹성(甕城) 이라고 나와있으나영문표기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아서 보충 설명 합니다.⑥ In the center is a hongyemun→ In the center is a Hongyemun★ 홍예문 ( Hongyemun )은 고유명사로서 단어의 첫 글자를소문자에서 대문자로 대체 하였습니다.레포트를 마치며..처음 레포트를 시작 할 때는 그냥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라서 무작정 소재만 찾고 있었습니다. 마침 서울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남대문화재사건도 있었기에 동대문(흥인지문)에 대해 조사를 해보자 마음 먹었습니다. 소재를 정하고나니 동대문(흥인지문)에 대한 설명이 궁금해졌다. 성문을 중심으로 360도를 돌아봤지만 접근이 용이한 곳에는 안내판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로 건너편에서 동대문(흥인지문)을 바라보면 '복원공사'라고 적힌 현수막과 가림막 만을 볼 수 있습니다. 동대문(흥인지문)은 차량으로 고립된 섬이 되어 있었고 접근이 어려운 곳에 안내 표지판이 보였습니다.가까이 찾아가 안내 표지판을 보니 로마법 표기가 대부분 정확하게 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글로는 설명이 되어있는 부분이 영문 표기에는 나타나있지 않은 것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제 생각엔 뜻이 통(通)한다고 생략하거나 영어식 표현으로만 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우리의 고유명사 표기법과 발음을 외국인에게 제대로 가르쳐 주어야 그들에게 제대로 된 우리나라 문화를 가르쳐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동대문(흥인지문)은 인근에 패션타운이 조성되어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접근이 용이한 곳에 제대로 된 보물 1호의 안내판을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은 문화 행정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개선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인문/어학| 2008.12.09| 4페이지| 1,000원| 조회(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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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RCY BYSSHE SHELLEY
    PERCY BYSSHE SHELLEYPERCY BYSSHE SHELLEYPercy Bysshe Shelley 1792∼1822 영국 시인.G.G. 바이런·J. 키츠와 함께 19세기 초의 낭만주의문학을 대표한다. 원래 괴이한 것을 동경하는 기질이 강하여 당시 유행하던 공포소설(고딕소설)로 상상력을 키웠다. 학창시절에 심취한 자연과학과 플라톤 등의 형이상학에서 일생의 사상적 원천이 배양되었다. 준남작이며 국회의원인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에서 기성의 권위나 도덕을 증오하였으며, 1811년 《무신론의 필연성》이라는 소책자를 출간한 일로 인해 대학 1년 만에 퇴학당하였다.이러한 몽상과 반항의 성벽은 W. 고드윈의 《정치적 정의》를 읽게 되면서부터 차츰 대(對)사회적인 이상주의로 성숙하여갔다. 퇴학 후 해리엇이라는 소녀와 도피하여 결혼한 사실은, 그 뒤 둘이서 구교도해방운동 등에 참여한 일과 함께 의협적 이상주의의 한 발현이었다. 13년 사회개량의 꿈을 노래한 최초의 장시 《마브여왕》이 나올 무렵부터 해리엇에 대해 차츰 냉담하게 되었고, 고드윈가의 장녀 메어리가 새로운 <이상미(理想美)>의 여성이 되었다.14년 메어리와 동거를 하며 이상미 탐구를 주제로 한 초기 대표작 《앨러스터》를 썼다. 16년 스위스에서 바이런과 교유하였는데 그 겨울에 상심한 해리엇이 자살하자 메어리는 정식 아내가 되었다. 18년에 셸리부부는 세번째로 유럽대륙에 건너갔고, 이탈리아를 전전하는 동안 시극 《속박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1820)》와 《서풍의 노래》 《종달새에게》 등 뛰어난 서정시를 잇따라 발표하였다. 20년부터 피사에 거주하였는데, 21년에는 키츠의 요절을 애도하는 명상시 《아도네이스》와 낭만파 시관(詩觀)의 최고 선언이라고 할 수 있는 에세이 《시의 옹호》를 내놓았다.그 뒤 단테의 《신곡》을 모방한 대서사시 《삶의 개가(凱歌)》를 집필중이던 셸리는 1822년 7월 8일 요트로 항해하다가 폭풍우를 만나 이탈리아 스페치아만에서 익사하였다. 셸리의 일관된 이상미에 대한 진지한 탐구의 자세는 함께 낭만주의의 정수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출처:daum★ 대 표 작 품교과서에 나온 대표작품 Alastor, or The Spirit of Solitude The Revolt of Islam Adonais Ozymandias The Cloud To a Skylark Ode to West Wind★ 대 표 작 품그 밖의 작품 Love's philosophyOde to the West WindO wild West Wind; thou breath of Autumn's being, Thou, from whose unseen presence the leaves dead Are driven, like ghosts from an enchanter fleeing, - Yellow, and black, and pale, and hectic red, Pestilence-stricken multitudes: O thou, Who chariotest to their dark wintry bed - The winged seeds, where they lie cold and low, Each like a corpse within its grave, until Thine azure sister of the Spring shall blow - Her clarion o'er the dreaming earth, and fill (Driving sweet buds like flocks to feed in air) With living hues and odors plain and hill: - Wild Spirit, which art moving everywhere; Destroyer and preserver; hear, oh, hear! -Ode to the West Wind 해석오 거친 서풍이여..그대 가을의 숨결이여.. 마치 마법사에게서 도망치듯.. 그대 보이지 않는 형상 앞에 죽은 잎새들은 몰려가도다.. 오,, 그대.. 누르고 검고 창백하고.. 치명적인 폐결핵에 걸린 선홍의 붉은 무로 나르는 마부여.. 그들의 소유,, 초록의 누이..봄이 그녀의 낭랑한 나팔을 불 때까지.. 하늘에서 먹고자란 양떼처럼 다정한 꽃봉오리를 몰고 와.... 생기있는 색채와 향기로 초원과 언덕을 채우고. 거친 정령이 어디든 돌아다니며 봄을 지을 때까지..; 날개 달린 씨앗은 그 차갑고 낮은 대지 속에,, 무덤 속의 시체처럼 눕도다.. 파괴자이자 보호자여 들을지어다.. 오.. 들을지어다..Love's PhilosophyThe fountains mingle with the river And the rivers with the Ocean, The winds of Heaven mix for ever With a sweet emotion; Nothing in the world is single; All things by a law divine, In one spirit meet and mingle. Why not I with thine? See the mountains kiss high Heaven, And the waves clasp one another; No sister-flower would be forgiven If it disdained its brother; And the sunlight clasps the earth, And the moonbeams kiss the sea: What is all this sweet work worth If thou kiss not me?Love's Philosophy 해석샘물은 강물과 하나 되고 강물은 바다와 하나 되며 하늘의 바람은 끊임없이 다정한 정으로 뒤섞인다 세상에 홀로인 것 없으니 만물이 신의 섭리 따라 한 마음으로 만나 섞이기 마련이라 내가 왜 그대와 섞이지 못하랴 보라 산이 높은 하늘과 입맞추고 파도가 서로를 껴안는다 누이꽃이 아우꽃을 경멸하면 누이꽃은 용서받지 못하리라 햇빛이 대지를 얼싸안고 달빛은 바다와 입맞춘다 허나 달디단 이 모든 것 무슨 소용있으랴 그대 내게 입맞추지 않으면.OzymandiasI met an antique land Who said--- Two vast and trunkless legs of stone Stand in the desert . . . Near them, on the sand, Half sunk, a shattered visage lies, whose frown, And wrinkled lip, and sneer of cold command, Tell that its sculptor well those passions read Which yet survive, stamped on these lifeless things, The hand that mocked them, and the heart that fed: And on the pedestal these words appear: My name is Ozymandias, king of kings: Look on my works, ye Mighty, and despair! Nothing beside remains. Round the decay Of that colossal wreck, boundless and bare The lone and level sands stretch far away.Ozymandias 해석 1고대의 나라에서 온 한 나그네 만났는데 그이가 이렇게 말했다. 동체 없는 두 거대한 돌 다리가 사막에 서 있다. 가까운 곳 모래 속에 부서진 두상이 반쯤 묻혀 있는데 그 찌푸린 표정 주름잡힌 입술, 싸늘한 명령이 담긴 냉소를 보면 조각가가 그 격정들을 잘 읽었음을 알 수 있거니와 그것들은 생명 없는 물체에 찍혀 그것들을 비웃은 손과 그것들을 키운 심장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있다. 그리고 받침대에는 이런 말이 새겨져 있다. 나의 이름은 오지만디어즈, 왕중의 왕. 너희 힘센 자들이여, 내 위업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 옆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폐허뿐인 거대한 잔해의 사방에는 한없이 황량하게 외롭고 평평한 모래만이 멀리 뻗어 있을 뿐.Ozymandias 해석 2 친구 Horace Smith와 경쟁하기 위해 쓴 Sonnet이다. 1817년 쓴 시로서 그 운율의 구상이 전통적인 점에서 매우 벗어나 있다. 이 시는 폭정과 야망의 헛됨을 나타내고, 시간과 사막은 어떻게 Ozymandias같은 강력한 왕의 자부심에 아무런 존경을 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Ozymandias는 이집트의 왕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출애굽 하려 할 때 반대한 왕으로, 그는 많은 거대한 건물들과 기념물들을 명예를 높이기 위하여 지었던 것이다. 절단되고 깨어진 거대한 왕의 석조는 Ozymandias왕의 공허함을 강조한다. 몸통이 없는 사막에 서 있는 다리는 우스꽝스럽게 보이고 그 몸통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왕의 얼굴은 부서진 채 반쯤 모래사장에 파묻혀 있었다. 얼굴의 보기 흉한 찌그러진 입술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한 때는 천하를 호령하던 그 무서운 입, 폭정의 무서운 정열의 힘은 모두 꿈같이 사라져 버리고, 석상의 얼굴 모습에 그림자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석상의 주춧대에 새겨진 비문- 그 거만스런 비문은 자부심 강한 Ozymandias에 대한 아이로닉칼한 말로만 생각된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그 옆엔 남아있는 것이 없고, 거대한 잔해의 부식 주위에는 다만 풀 한 포기 없이 쓸쓸한 끝없이 보이는 사막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나의 업적을 보라 한 말에 무색하게도 오늘날 아무 것도 볼 것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Nothing beside remains)또한 아이로닉칼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셸리는 좀더 불규칙적인 운율을 사용했으나, 전통에 얽매여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구사한 점은 진보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Shelley는 이 시 첫 행에서 한 여행자를 끌어들임으로서 시인의 주관적인 생각을 떠나서 객관적인 입장을 택하려는 기교를 썼다는 점도 주의해서 보게 된다. 권력의 무상함을 나타낸 이 시는 인간들로 하여금 헛된 야망에 매달리는 어리석은 삶을 지양하라는 Shelley의 인간사랑 메시지인끝.식사하십쇼{namhow}
    인문/어학| 2008.01.14| 15페이지| 1,000원| 조회(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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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평가A+최고예요
    제1장의 주제는 “역사란 무엇인가?” 이다.역사에는 적어도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즉, ‘발생한 사건’이라는 객관적 의미와 ‘탐구하여 얻어진 지식’이라는 주관적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객관적 의미는 ‘과거로서의 역사’, 즉 과거의 역사적 사건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것은 ‘사실로서의 역사’이며 과거 역사의개별적인 사건 과정을 말한다. 주관적 의미로는 ‘기록으로서의 역사’, 즉 과거 사실에 대한기록을 의미한다. 이 경우 역사란 말은 기록된 자료 혹은 역사서를 의미하는 것으로역사가의 평가와 해석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지는 것이다.역사는 의식과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인간에 의해 창조되어진다. 따라서 의식과목적을 가진 인간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발전해 가면서, 물질적이며 정신적으로 활동을 영위해 가는 것이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의 역사의시간이란 인간이 사회적 행동들과 그에 따른 인류 사회의 변화로 채워진 시간이다. 역사의 시간은 사회적인 발전의 정도의 따라 그 중요성이 측정되는 시간을 말한다. 역사의 시간은인류 사회가 진보하듯 발전하는 시간이다. 역사에서의 공간이란 지리나 물리에서의 공간처럼 단순히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시간의 발전에 따라 인류가 진보하며,이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져 온 인간의 삶의 영역인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공간은 인간과환경의 상호 매개의 세계에서만 현실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역사적 공간은 지리적공간과는 달리 점차 확대되는 특성을 지닌다. 그것은 사회적 발전에 비례하여 인간들의사회적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의식’ 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인간개개인이 서로 따로 떨어진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시간적(종적)으로나 공간적(횡적)으로서로 연결된 고리들 중에 한 고리로 존재한다는 결속 의식 혹은 뿌리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시대의 역사적 좌표를 이해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설정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역사의 흐름을 통하여 자기은 자료들을 수집, 자료, 분류 하는 경험을 얻게 하며, 이를 통하여 문제 해결에적절하게 응용하게 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준다. 그리고 체계적인 서술 작업을 통하여 개별적이고 세부적인 사실들을 체계화, 일반화 시키는 능력을 훈련시킨다. 광범위하고 다양한가치를 지닌 자료들을 조직화시키는 과정을 통하여 세부적인 사실에 매몰되지 않고, 어떤주제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역사는 또한 시간 개념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준다. 어떤 사건이나 어떤 인간의 행위를 바라볼 때 편향되게 한 시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여러 각도에서 균형 있게 조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종합적으로 말해보면 역사는 학생들에게 과거 인류의 경험을 전달하고 민주 시민으로서바람직한 생활 태도를 형성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제3장의 주제는 “역사는 무엇을 위하여 기록하는가?” 이다.인간이 역사를 기록하여 온 목적은 무엇보다도 과거 인류의 업적이나 생활상을 후대에 남기기 위한 것이다. 역사를 서술하는 목적이 후대에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에서 출발하였으나, 많은 역사가들 나름대로의 다른 목적을 위하여 역사를 서술하여 왔다. 이를 일반적으로 실용적 역사라고 일컫는다. 실용적 역사는 그 목적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국민의 윤리, 도덕 또는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교훈적 역사, 둘째, 현실 정치의 귀감으로 삼으려는 통치를 위한 역사, 셋째, 민족의 우수성과 의식을 고취시키려는 민족주의 역사(약소민족의 지배를 정당화 시키려는 식민 사관 포함)등이 그것이다.투키디데스, 폴리비오스, 리비우스, 타키투스는 교훈적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이 역사가들이 말하는 주 내용은 인간의 생활과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찾아내어 현재의 문제 해결에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통치적 역사는 윤리나 도덕, 애국심의 고취라는 소극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면에서 국가 경영에 활용되었다. 이것은 중국의 역사나프랑스의 보쉬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민족주의적 역사에서는 특정 민족의 혈통적 우수간의 활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셋째, 역사와 사회 과학의 가장 큰 차이는 연구의 목적에 있다. 넷째, 역사는특수한 것들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에 일반 법칙을 찾아낸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에는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제5장의 주제는 “사료란 무엇이며 어떻게 다루는가?” 이다.역사란 과거의 인식이며 과거의 흔적을 통해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을 추리한다. 따라서 과거의 흔적인 사료가 없이는 역사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콜링우드는 역사 인식이란 곧“증거로부터의 추리”라고 하였다. 과거는 이미 사라지고 없어졌으니, 그 흔적인 사료를통해서 과거 사실을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사료란 역사적 자료에서 나온 개념으로 독일어로는 ‘원천(source)' , '샘(quellen)’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역사학의 원천이 되는사료로부터 과거 역사에 관한 지식을 얻으며, 이 지식을 근거로 하여 과거 자체를 재구성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료는 크게 ‘말하는 사료’ 와 ‘벙어리 사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말하는 사료’는 문자나 그림의 형태로 성문화된 자료이고, ‘벙어리 사료’는 건물, 기념물,주거지, 토기, 동전 등을 일컫는다. 사료 비판은 어떤 사료의 정확성과 타당성을 검증하여진위 여부를 판독하는 작업이다. 사료는 역사 연구의 가장 기초적인 수단이 되기 때문에 사료의 진위를 철저히 가려야만 비로소 올바른 역사 해석과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사료 비판은 외적 비판과 내적 비판으로 구분된다. 외적 비판이란 사료의 필적, 언어, 서체, 출처 등외형적 상태의 점검을 통하여 사료의 손상이나 진위 여부를 밝히는 것이다.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원전의 비교와 전거의 비판 있다. 내적 비판은 사료의 내용이나 진술이 신빙성이 있는지를 검증하는 작업이다. 이것은 외적 비판을 거친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제6장의 주제는 “역사에서 시대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이다.역사의 시대 구분은 각 시대가 갖는 독특한 특징이나 성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제공한다. 그러나 는 것이 더의미가 있다. 시대별 고찰을 통해 각 국가들이 겪은 공통의 역사적 경험과 내용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형태에 따른 역사 구분법에는 크게 6개로 나뉜다. 시대별로 나누기, 조직체나 제도에 따른 역사 구분, 사상이나 이념에 따른 구분, 국가별 역사 구분, 논쟁이 되는 이슈나 문제에 따른 구문, 역사상 중요한 인물이나 그들의 업적을 기록하는 전기의 형태가 있다.제7장의 주제는 “왜 역사는 계속 새롭게 쓰여 지는가?” 이다.역사는 현재적 입장에 있는 역사가의 서술 작업을 필히 거쳐야 한다. 역사가 역시 자신이처한 사회적 환경과 시대적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는 현재적 관점에서 다시 쓰여 질 수밖에 없다. 역사는 현재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현재적 요구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다시 쓰여 지게 된다. 이런 역사의 현재성 이외에도 역사가들은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나 자료가 발굴되었을 때, 역사가들은 역사를 다시 쓰려는 지적인 욕구와 도덕적인 의무감을 갖게 될 때, 이미 발굴된 자료를 이용하여 역사가가 어떤저술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역사가는 동일한 자료를 가지고도 다른 각도에서 증거를 분석하고,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평가할 때, 셋째, 인접 학문, 즉 고고학이나 사회학으로부터의 새로운 물적 증거나 통계 자료 혹은 새로운 이론이 제기될 경우 등의 이유로 과거 역사 서술에 대한 수정이나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 역사에 있어서 현재란 과거 인간 생활양식이나 사건들이 축척되어, 이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여 왔다. 따라서 역사는 항상 새롭게 이해되고 기술되었던 것이다.제8장의 주제는 “지리, 자연적 요인은 역사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이다역사 변동에 관한 요인(기후, 지형, 토양, 음식, 자원)은 인류의 문화 창조와 역사 발전에영향을 끼쳤다. 지형은 자연 환경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서 인간이 땅을 딛고 그 위에서삶을 전개하는 활동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자연의 형세가 한 사회의 문화, 종교적인 성농업 혁명은 중쟁기 도입, 여러 농기계 및 영농법 보급으로인하여 생산량 증가와 경작지를 확대 시켰다. 1450년 구텐베르크에 의한 활판 인쇄술의 발명은 서적을 염가에 제공하여 서적의 대중화 이루게 하였다. 벨의 전화 발명으로 물리적거리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시대가 오는 등 여러 영향을 끼쳤다.발명과 기술 발전은 일류의 생활양식과 삶의 질을 더욱 풍요롭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의 발전 단계를 규정하였던 것이다.제10장의 주제는 “역사에서 민족과 인종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다.앞서 역사를 움직이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지리, 자연적 요인과발명 , 기술적 요인으로 나누어 살폈지만, 역사 발전의 주체로서 인간적 요인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왜냐하면 역사와 문화는 바로 인간의 주체적 의지와 활동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백인, 황인 , 흑인 등은 그들의 피부색이나생김새만큼 이나 각기 다른 민족성이나 인종적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그들의 역사 발전과문화의 형태 역시 다른 모습을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종간의 유전적 차이는 기후,토양, 음식, 지형 등이 주는 차이보다 훨씬 강하고 영속적임을 지적하였다.교육은 인종적인 차별과 반감을 처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 교육은 문명이 하나의 협력적 산물이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류 문명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문명은 우리의 공통 유산이자 부채이다. 민족이나 인종 간에 편견을가질 만한 생래적인 차이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식과 전체 인류가 한 식구로 공존해나가야 한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제11장의 주제는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는 누구인가?” 이다역사를 움직이는 주체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접근하기 위하여 영웅 사관, 사회 결정론,그리고 민중 사관을 중심으로 살펴보아야한다. 영웅사관은 모든 인간이 어떠한 형태로든지역사에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하나 각 개인은 타고난 능력과 자질, 그리고 실천적 의지와 기회의 면에서 겼다.
    인문/어학| 2008.01.14| 6페이지| 1,000원| 조회(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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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림사를 다녀와서
    새로운 발견과목명 : 삶속에 깃든 우리의 생활 문화담당교수 : 박노석 교수님학과 : 영어교육과학번 : 200243030이름 : 황덕상목차? 향림사(香林寺)로 향하며? 향림사(香林寺)를 느끼며? 향림사(香林寺)를 등지며향림사(香林寺)로 향하며삶속에 깃든 우리의 생활문화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레포트를 작성해서 제출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다른 레포트와는 무언가가 달랐다. 주제가 없었다. 처음 듣고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또는 문화재관련 레포트들은 중요한 사건들이나 유명한 문화재에 대해 조사를 하라는 것이었는데, 이번 레포트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각자 집 주변에 있는 문화재에 대해 조사를 해서 레포트를 써오라고 하셨다.몇일동안 고민에 빠졌다. ‘어떠한 문화재를 선정해서 써야하나?’, ‘과연 내가 택한 이 문화재가 레포트 주제로 적절한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화재 같은데..’ 라는 잡념에 사로 잡혔다. 어려웠다. 그래서 쉽게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은 내가 살고 있는 전남 순천의 문화재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머릿속에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그동안에 가보았던 사찰이나 유명한 사람이 묻힌 무덤, 탑 등등을 생각해 보았다. 그 중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가끔씩 소풍도 가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갔었던 향림사(香林寺)가 떠올랐다. 문득 어린 시절 스치듯이 들었던 기억에 이 절이 유서가 깊은 사찰이라고 하였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가까이에 있었지만 그동안 너무 모르고 있었던 향림사(香林寺)를 찾아 떠나볼까 한다. 지금의 심정은 무덤덤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두근거린다.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무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하다.향림사(香林寺)를 느끼며오랜만에 와보는 곳이다. 추억 속에서 기억을 꺼내어 지금의 내 눈에 비친 풍경과 비교해보니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내려앉은 고풍스러움을 빼고는 달라진 점이 없었다. 입구에 서니 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오른쪽 큰 나무 밑의 돌에 녹색 표시로 새겨져 있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향림사(香林寺)는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 되었다. 절 주위에 향기로운 차(茶)가 많이 재배되고 있어 절 안 가득 그 향내가 머무르고 있다하여 향림사(香林寺)라 하였다. 를 살펴보면 향림사(香林寺)는 신라 경문왕 5년(865)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고 조선 현종 10년(1669)에 다시 고쳐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이곳은 풍수지리상, 나는 새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는 비봉포란형(飛鳳抱卵形)으로 용의 정기가 한꺼번에 모여 있는 땅기운이 강한 곳이어서 그 땅기운을 누르기 위해 절을 세우고 불상과 탑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또한 광해군 10년(1618)에 지붕 이수광이 편찬한 사찰조를 살펴보면-향림사(香林寺)는 순천 북5리에 있으며 겨울이면 동백이 무성하였다. 갑신년에는 순천 사람들이 공동으로 돈을 모아 공동으로 절을 고쳐지었는데 이는 산세의 맥을 진압하기 위함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현재 향림사(香林寺)는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인 대웅전과 요사채 등 다섯 동의 건물이 있고 삼층석탑(전라남도유형문화재 116) 2기가 있다. 이 석탑은 두 기 모두 단층 기단으로 옥개석의 층급 받침이나 물 흐르는 면의 평박한 수법, 상륜부의 노반 등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통일 신라 말 9세기 경 도선국사(道詵國師)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기록을 뒷받침할 유적과 유물이 없는 점을 고려한다면 향림사(香林寺)에서 가장 연대가 거슬러 가는 유물은 이 석탑이다.?? 향림사(香林寺) 입구 모습 ?입구를 통과하여 절의 마당에 들어서니 절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만큼 작은 절이었다. 바로 정면에 대웅전(大雄殿)이 위치하고 있었다. 가을이라서 그런지 뒤편의 산세의 울긋불긋한 전경과 어우러져 아담하지만 제법 운치가 있었다.? 대웅전(大雄殿)의 모습 ?대웅전으로 가는 길목 계단 양옆에 2개의 석탑이 있었다. 상태를 보니 이끼도 끼어있고 여러 부분이 헐어있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래된 석탑들 같았다. 이름을 보니 향림사 삼층석탑(향림사 삼층석탑)이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116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대웅전(大雄殿)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위치한 석탑 앞에 탑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탑이란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불교의 상징적인 신앙대상이다. 탑은 대웅전 앞에 2기가 동서쪽에 마주하고 서 있는데, 그 크기와 형식, 그리고 제작기법이 같다. 한 층으로 된 밑단(基壇)과 삼층의 탑 몸부분(塔身部), 그리고 탑 머리부분(相輪部)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형식의 석탑이다. 밑단의 각 면에는 3개의 기둥이 돋을새김 되었고, 갑석(甲石)밑면에는 한단의 받침을 두었다. 갑석 윗면에 3단의 괴임을 두어 탑 몸 부분을 받치고 있는데 각 층의 몸돌 좌우 모서리에 기둥을 돋을새김 하였다. 지붕돌(屋蓋石)밑면에는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으며, 윗면에는 1단의 괴임을 두어 윗층의 몸돌을 받치고 있다. 탑 머리부분에는 노반(머리장식받침)과 보주(구슬모양의 장식)가 있다. 두 탑의 조성 시기는 고려 후기로 추정된다.?? 향림사 3층석탑 中 서탑 ? ? 향림사 3층석탑 中 동탑 ?‘고려 후기’ 라는 글귀에서 눈이 번쩍였다. 고려시대 석탑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점이 나를 너무 작게 만들어 버렸다. 중요한 문화재는 꼭 유명한 곳이나 박물관 같은 곳에 있는 줄만 알았던 나였다. 절 내 관람객은 나뿐이었지만 괜스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향림사 3층석탑 中 동탑 ? ? 향림사 3층석탑 구성도 ?절 내 중앙 마당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범종을 치는 공간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수업시간에 범종에 대하여 배운터라 금방 알아 볼 수 있었다. 기쁜 마음에 그곳으로 뛰어갔다.? 향림사 범종 ?유심히 범종을 살펴보았다. 한글이 새겨져 있었다. 현대에 와서 만들어진 범종인거 같았다. 그러나 범종의 형식을 보아하니 수업시간에 배운 우리나라 범종의 특징을 그대로 살려 만든 것 같았다. 우리나라 범종의 특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용뉴, 음관, 유곽과 유두가 있는 것이다. 위의 사진들을 보면 알겠지만 3가지 특징이 모두가 갖추어져 있다.중앙 마당의 왼쪽에는 요사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엔 무슨 건물인지 몰랐다. 그냥 집처럼 생겼었다. 그래서 핸드폰을 이용하여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아래와 같았다.?사찰에서 승려들이 거주하는 건물이다. 요사는 사찰 안의 전각이나 산문을 제외하고 승려들의 생활과 관련된 모든 건물인데, 승려들이 참선하고 정진하며 거처하는 집으로 쓰이는 요사를 통틀어 승당 혹은 승방이라고 한다. 승려들이 참선하는 선방을 비롯해 승려들의 식생활이 이루어지는 부엌과 식당, 일반 신도들이 음식을 먹거나 쉬면서 거처할 수 있는 장소 등을 포함하고 있다. 절의 법당보다 규모가 작은 한옥 형태로 법당 앞 좌우나 법당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향림사 內 요사체 ?스님들이 불공을 드리고 있어서 요사체에 들어 갈수 없었다. 최근에 보수 공사를 하였는지 페인트 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이렇게 절 안에 위치한 건물들을 다 돌아보고 먼가가 아쉬워서 담장을 따라 걸어보았다. 단풍나무들이 많이 우거져 있어서 그런지 운치가 있었다. 그러는 도중에 먼가를 발견했다. 아마도 절을 찾았던 불자(佛子)들이 하나하나 쌓아올린 돌탑이 있었다. 돌탑들 사이에 조그만 불상이 있었다. 사람들의 정성을 부처님께서 하나하나 알아주시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향림사 內 돌탑 ?향림사 탐사를 마치고 절 밖으로 나왔다. 절 앞에는 꽤 긴 세월 이곳 향림사와 함께 동고동락한 나무들이 절을 감싸는 듯한 형세로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근처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약수터도 있었고, 운동기기도 있었다. 또한 행인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의자들도 곳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향림사 外 전경 ?향림사(香林寺)를 등지며이번 레포트를 준비하면서 많이 부족한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까이에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는 내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소중한 문화재가 곳곳에 있다. 다만 그것이 근처에 있어서, 박물관에 있지 않아서, 유명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아닌 문화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소중한 문화나 문화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가까이에, 우리 근처에 있다. 가까이에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보존하여야 우리 다음 세대가 또 그 다음 세대가 그것들을 후대에 전하여 소중한 문화와 문화재의 뿌리를 알릴 수 있다.
    인문/어학| 2008.01.14| 12페이지| 1,000원| 조회(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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