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르껭은 사회와 사회적 사실에 대해 설명하면서 아노미, 사회변동, 사회분업론, 도덕, 자살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이들 각각의 이론과 개념에 대해서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고, 의문이 생기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평소에도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고, 이번 수업시간에도 의문이 생겼던 자살론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뒤르껭은 "사회상태는 강한 자살 추세를 보이기도 하고, 약한 추세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특정 개인이 이 추세에 휩쓸리게 되는 정도는 전적으로 사회적 유대의 본성과 사회집단에 개인이 통합되는 정도에 달려있다."라고 말했다. 즉, 뒤르껭은 개인들이 행하는 자살의 원인에 대해서 개인의 심리적, 개인적인 측면보다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설명했다.그리고 사회를 설명하면서 대체적으로 사회구조와 집단의 집합의식에 비중을 많이 둬서 개인의 성장과 그에 따른 집합의식의 약화를 경계했다.다시 자살론으로 돌아가서, 뒤르껭의 특정 개인이 사회의 자살 추세에 영향을 받고, 그 정도는 개인이 사회집단에 통합되는 정도에 달려있다는 말은 현대 사회에 적용해도 사회를 설명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 예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사회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던 인터넷 '자살 사이트'에서의 동반자살을 들 수 있겠다. 그때 우리 사회에는 자살이 유행처럼 성행해서, 자살을 하지는 않았더라도 그 사이트에 들어가 본 사람이 상당수였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사회분위기에 휩쓸린 면도 있고, 또한 그들이 속한 사회집단과의 유대감과 그 사회에 통합되는 정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곳에 들어 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엔 뒤르껭이 주장한 것처럼 자살을 한 사람도 있었다.여기에서 뒤르껭의 이론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자면 이렇다.
맑스는 역사 유물론에서 역사의 변화를 물질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사용한, 이데올로기의 개념에 대해서도 말을 했다. 맑스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조건의 규정에 대해 이데올로기가 갖는 관계를 정의하여 사회의 물적 토대(경제적 하부구조)가 필연적으로 상부구조(법, 제도, 정부, 종교)를 발생시키는 과정을 설명했다. 맑스에 의한 이러한 이데올로기 이론은 사회구조와 사상체계간의 대응 관계를 가정한다. 관념은 단지 외적인 경제 질서의 수동적 반영에 불과하다. 지식이란 부수현상일 뿐이며 객관적인 사회적 이해관계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사회와 사회변동에 능동적 역할을 행할 수 없다. 단정적으로 맑스는 계급 갈등의 측면에서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이익과 계급이익에 직접적으로 결부되어있는 부수현상이며, 이데올로기의 기능은 모순을 은폐하고 사회관계를 신비화시키고 현상의 세계를 물신화시키는 것이라고 해서, 그의 이데올로기 이론은 소외개념의 연장선상에서 전개된다.위의 이론적 배경을 토대로 해서 맑스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저의 생각을 말해보고자 합니다.맑스는 경제로 이루어진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발생시킨다고 하였으며, 여기서 말하는 경제란 생산 수단과 이런 수단을 소유한 자본가 계급을 말한다. 이런 관계로 인해서 법, 제도, 종교, 정부 등으로 이루어진 상부구조는 자연스럽게 지배계급의 사상, 즉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형성된다고 말했다. 맑스의 이런 주장은 자신이 주장했던 국가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맑스는 국가론에서 조금 모호한 주장을 하기는 하지만, 국가를 가진 자(자본가)들의 이익을 지켜주는 자본가들의 심부름꾼으로 설명했었다. 맑스의 이론이 현대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하나의 이론으로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저는 맑스가 주장한 위의 내용은 현재의 한국사회에 대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해보겠습니다.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정치와 경제가 연결되어서 서로 부정을 저지르고 그로 인해서 나라의 경제가 타격을 받는 예는 있습니다. 한국 역시 오랜 정경유착으로 인해서 나라의 경제가 위기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1998년 IMF사태를 예를 들 수 있겠습니다. 정부가 자본가의 편의를 봐주고, 대기업에 유리하게 법률을 운영해서 부실한 기업이 더욱 부실해지게 방치했으며, 그 결과 국가 부도라는 IMF사태를 맞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맑스가 주장한 것처럼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하고, 상부구조가 하부구조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이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는 국가 경제위기 이후부터 정부가 강력하게 대기업을 규제하고, 부실한 기업에게는 더 이상 특혜를 주지 않으며 그 기업을 살리기 위해 소위 '밑 빠진 독 에 물 붓기' 식의 지원을 하지 않고, 오히려 기업의 규모를 축소시키고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도산을 해도 상관이 없다는 자세입니다. 대표적으로 한보철강이나 대우그룹의 부도, 그리고 현대 그룹의 분리 등이 있겠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제 기업들 자신이 스스로 살기 위해서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으며, 국가 정책에 따라 기업 경영의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남자가 되고 싶어하는 여성과 그녀를 둘러싼 세상과 그녀를 사랑하는 또 한명의 여성과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지금까지 수업시간에 성 정체성과 사회의 성에대한 고정관념, 편견에 대해서 많이 배웠지만 크게 실감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 한편을 보고 나서, 비록 우리나라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남녀 성 고정관념, 성 정체성의 문제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티나 브랜든, 그녀는 남자가 되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신이 남자라고 느끼고 있는듯하다. 항상 남장을 하고 다니고 남자같이 보이기 위해서 양말을 말아서 남성의 심벌처럼 보이기 위해서 바지에 넣고 다니기도 한다. 물론 그녀의 꿈은 성 전환수술을 통해서 진짜 남자가 되는 것이다.그녀는 절도죄로 법원의 출두 명령을 받았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여행을 떠난다. 도망가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여행도중 그녀는 시골의 술집에서 일하는 한 여자를 도와주게 되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서 그녀의 친구들과 어울려서 생활하게 된다. 물론 그들은 티나를 남자로 알고 있다. 티나 역시 자신을 브랜든으로 소개하고 그 새로운 사회에서 남자로 대접 받으며 남자로 거침없는 생활을 한다. 마치 자신이 진짜 남자가 된 것처럼 생활하며 그 생활에 아주 만족해서 생활한다. 자신을 남자로 대해주는 사회가 좋고, 그 생활에 너무 도취되어서 이제는 그곳을 떠날 수 가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그리고 티나는 그곳에서 라나라는 여자와 사랑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게 되면서 이제 티나는 더 이상 티나가 아니고 브랜든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그곳을 떠날 수 없다. 적어도 그 곳에서는 자신이 남자이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브랜든은 불가능할 것 같은 라나와의 섹스도 한다. 그러나 라나에게는 브랜든 말고도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그의 질투에 의해서 브랜든이 남자가 아니고 여자인 티나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그 사실은, 티나가 사람들 앞에서 옷이 벗겨지고 그녀의 치부가 드러나면서 확실한 사실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녀를 남자로 대하던 그곳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브랜든을 남자로 보지 않고 티나라는 여자로 생각하고, 그녀를 레즈비언이라며 더러운 짐승을 대하듯이 대한다. 심지어 티나는 그녀가 브랜든이던 시절, 같이 남성들의 야성의 세계를 경험했던 남자들에게 강간까지 당하면서 더 이상 남자도 아니고, 남자이기를 바라는 강한 여자도 아니다. 그저 너무나 연약한 한 명의 여자일 뿐이다. 물론 그녀를 사랑하는 라나가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 커플도 더 이상 정상적인 커플이 아닌, 사회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레즈비언 커플로 한 순간에 변해버린다. 그리고 그녀들은 둘이서 사랑을 위해서 도망을 가려고 하지만, 라나를 좋아했던 남자에 의해 티나가 죽게 됨으로써 그녀들의 사랑은 끝나게 되고 이 영화도 막을 내린다.영화의 주인공 티나는 자신을 남자라고 생각했고, 또한 남자로 생활했다.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이 남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즉 티나는 그녀의 sex는 여성이었지만 그녀가 여행 중에 있었던 시골 마을에서는 남성이었고, 그녀는 자신의 gender뿐만 아니라 sex까지도 남성으로 변해버린 듯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사회의 사람들이 모두다 그녀를 남자인 브랜든으로 대해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브랜든이 아니라 티나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상황은 완전히 변해 버린다. 주변의 사람들의 시선 뿐만 아니라 브랜든 자신도 티나가 되어 버린다.티나는 자신이 남자라고 생각하고 남자로 생활했다. 즉 자신의 성 정체성을 남성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살았는데 사회가 그녀를 여자로 대하고 그녀의 성을 여성이라고 규정 지어 버리자 그녀는 한 순간에 한없이 나약한 한명의 여성이 되어버린다. 여기서 ‘보봐르’가 말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다.”라는 말이 생각이 났다. 이 말의 예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이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남자의 성 정체성을 가지고, 한 남자로 잘 지내던 한 인간이, 사회에 그의 생식기가 남성의 것이 아닌 여성의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 지면서 한 순간에 여성이 되기를 강요 당하고,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에 동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회는 아직까지는 사회에서 주어지는 성 정체성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