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흐마니즘.기원전 7세기 말엽 아리아족이 갠지스강 유역을 점령하면서 아리아인이 상위층을 차지하고 그 밑에 다른 종족들이 자리잡았다. 이 계급 구조는 사제계급 Brahmin, 지배계급 Kshatriya, 평민 Vaisya, 노예 계급 Shudra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지배 귀족층과 브라흐만 사이의 권력다툼이 치열했으나 점령 과정에서 귀족층의 분주함을 틈타 브라흐만이 권위를 증진시켰다. 나중에는 브라흐만들이 신보다도 더 중요한 지위에 있다고 주장하기조차 했다. 聖語는 일단 낭송되면 강력한 주술 효과를 발휘하므로 신도 거기에 복종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제들은 권력의 중심은 자신들이라고 주장했다.브라흐마나는 네 가지 베다에 붙는 사제들의 지침서이다. 원래는 사제학교의 사제 지망생들이 암기해야 하는 구술 지침이었다가, 기원전 300년 또는 그 이후에 문자로 기록된 후 자주 개정되었다. 일종의 브라흐만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으며, 예배에 대한 철학적 사상을 보여준다. 이 브라흐마나는 사제들이 자기의 제의를 발전시키고 해석하는 일에 몰두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제의가 강제력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창조의 힘까지도 갖는다고 생각했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공식적 의례는 곡식 추수 때, 보름과 초승, 초봄, 긴 우기, 가을, 戰勝 축제에서 왕을 승화할 때, 신을 불러 위무할 때 행해진다. 가장 긴 공희는 말(馬)의 공희인 아스바메다(Asvamedha)로 1년 이상 동안 걸려서 609마리의 동물을 모아 바친다. "아스바메다를 행하는 이는 모든 죄를 탕감받는다"라고 한다.후대에 올수록 우주의 통일된 원칙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의식이 공희제의 절차에 대한 지침과 뒤섞였다. 뿐만 아니라 점점 제의가 강화되어 신앙의 중심이 제의로 옮겨간다.리그-베다 끝부분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창조관이 생물의 주재자 플라자파티가 우주의 인격적 창조자 브라흐마 스바얌부(Brahma Svayambhu, 自存하는 브라흐마)로 되는 등 다분히 일신론적인 내용으로 변화했다. 사색적 성향의 사제들은 기도문의 성스그 힘은 신과 인간 모두를 복종시킨다고 할 수 있으므로 결국 우주의 궁극적 원리는 그 힘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쳐 우주의 궁극적 원리를 브라흐만이라고 상정하게 되었다.우파니샤드의 철학.우파니샤드는 "스승 가까이에 앉음", 즉 "궁극적인 지혜에 관한 토론"이라는 의미이다. 이 우파니샤드는 회상을 더듬어 얘기하는 대화형식으로 구성되며 반복되는 특징을 갖는다. 크샤트리아와 여성도 브라흐만과 함께 토론에 참여하는 것으로 극화되어있다. 이는 우파니샤드가 브라흐만에 의해서만 씌어진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이원론적 색채가 있는 부분은 크샤트리아 계급이 쓴 것일 지도 모른다.우파니샤드는 금욕주의의 경향과 제의주의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의식을 없애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제의를 대신할 어떤 것을 찾아냄으로써 실제로는 제의주의에 반발한 셈이다. 제의 대신 찾아낸 것은 고행자와 현인 리시스(rishis)의 행동, 몸가짐, 신성이었다. 공희제의의 제물은 한편으로는 생물의 주관자 Prajapati(만물을 창조할 때에 제물이 되었던 Purusha가 제의 때마다 다시 제물로 바쳐지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플라자파티 자신이 제주로서 자기 몸을 스스로 제물로 바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사타파타-브라흐마나]에 이미 씌어 있다. 즉 '공희자=공희물=플라자파티' 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힌두교의 신앙생활을 관통하는 하나의 관념은 숲속 은자가 마음속에 간직한 종교적 열정 타파스(tapas)와 제장에서 타오르는 불은 같은 것이고, 베다의 송가를 마음속으로 되뇌이는 것도 그것을 제장에서 실제로 소리내어 음송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바깥에 존재하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부터 자아 내면에서 마음속으로 제의를 올리는 것으로 전환함으로써 제의의 내면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 결과 정신이나 자아, 인간 내면의 자아 아트만(atman)을 중시하는 경향이 대두했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는 최선의 길은 자연계 및 그 안에서 감각과 정신으로 겪는 체험을 깨버리고 나.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우파니샤드의 부분적 가르침이다. 그런 관점은 프라크리티 아트만의 이원론에 머무는 셈이므로 우파니샤드 사상가들은 아트만과 프라크리티를 대등하게 놓았다가 다시 그것을 하나로 묶는 관점(일원론)에 도달했다. 즉 사물 사이의 내적 연관성 모색에서 동등성, 동일성을 발견한 것이다. 최초의 사람, 또는 암소나 말이 자기 몸을 희생해서 해체함으로써 우주 삼라만상이 이뤄졌고, 이제는 역으로 그 각 부분을 다시 모음으로써 전체를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물은 결국 하나로 묶인다. 그 존재의 근원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떤 근원의 존재, 또는 실재 속에서 만물이 하나가 된다는 점을 깨닫고 그런 신비로운 합일을 몸소 성취해서, 삼라만상의 겉모양만을 보고 그것이 모두 서로 다른 개체라고 여기는 환상에서 벗어나고자(moksha를 이루고자) 했다.우파니샤드에는 브라흐만에 대한 분명한 정의 없이 매우 풍부하고 다양하게 묘사했다. 브라흐만은 모든 객체, 우리 외부의 모든 것, 감각에 의해 주어지는 모든 자연계의 구성요소가 되며 그 모두에 편재한다. 동시에 브라흐만은 내면세계 전체를 의미하므로, 인간의 영혼 자체, 영혼의 활동도 모두 그 유일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여러 가지 모습 중의 하나이다. 여기에서 내면의 자아는 atman이다. atman은 철학용어로, 육신, 감각기관, 정신상태와는 구별되는 깊고 안 보이는 자아이다. 즉 육신을 통해 활동하는 경험적 자아 jiva가 아니라 육신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초월적 자아이다. Brahman과 Atman은 사실상 하나이다.이런 추론의 마지막 결론은 인간의 진정한 자아와 세계의 영혼 paramatman(보편적 아트만)은 하나라는 것이다.근본 영혼인 브라흐만이 인간 영혼을 형성하는 재료가 된다. 브라흐만은 모든 sat(존재)이며 cit(의식)이고 ananda(至福)인 동시에 그 정반대이기도 하다. 개개 자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브라흐만에 근거해 일어난다. 그러므로 외부의 실체인 브라흐만과 내부의 자아인 아트만을 동일시할 이 궁극적 실재이다. 주객 일치이다.우파니샤드 사상가들은 신비주의를 바탕으로 했다. 세계와 자아 모두가 왜곡과 환상을 떨쳐버린 순수한 본질 그대로의 상태에서 브라흐만-아트만의 합일체와 합치되는 체험이다. 이 의식상태의 체험이 moksha이자 마지막 해탈이며 윤회로부터의 탈피이다.우파니샤드에서 윤회사상과 업사상이 출현했다. 원래 아리아인에게는 윤회나 업 이념 없었으므로 그런 사상은 인도땅 자체에서 싹텄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의 윤회 samsara 개념은 죽은 사람의 영혼은 브라흐만과 합일하는 상태로 돌아가는 한 경우만 제외하고는 모두 천상, 지옥 혹은 그 밖의 곳에 가므로 영원히 같은 모습으로 있지는 못하다. 다른 형태로 수없이 거듭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러한 내생을 결정짓는 것이 업이다. 즉 내생은 업 karma(행실,업적)의 법칙에 따라 결정되므로 전생의 업이 이승에서 일어나는 일의 원인이 된다. 우파니샤드는 현세에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내생에서 브라흐만이나 크샤트리아 아니면 바이시아로 태어나게 될것이고, 현세에서 좋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은 개나 돼지, 카스트에도 못드는 천민으로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카스트 체계는 윤회와 업의 관념에 완벽하게 부합했다.불교.상당수의 신흥종교인들은 고행(苦行)에 전념하였다. 인간의 삶 자체를 고로 보았기 때문에 세속적인 삶으로부터의 해탈을 추구했다. 불교는 우빠니샤드의 수행자들과는 달리 집단적인 생활을 하며 교단을 형성하였다. 그들은 보시로 먹고살았으며 일을 하지 않고 수행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사회 이탈적인 요소가 강했지만 대승불교가 성행함에 따라 점점 사회 참여적이고 현세적인 종교로 변해갔다.불교의 세계관은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창조론을 부정하고 그리고 세상을 물질적 요소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적취론도 부정하는 입장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것은 어떠한 신적인 외적요소나 물질적 요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름대로 상호 연관구조에 의해서 연기적 관계로 형성된다는 것이다.연기란 불교에서 하나(一) 속에 하나(一)가 다 들어 있다 이렇게 보는 것이다. 즉 일(一)과 다(多)를 대립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사과하나와 그것을 자른 수 많은 조각으로 이해 될 수 있다. 또 인(因)과 과(果)를 대립적으로 보지 않고 별개로 보지도 않습니다. 인(因)과 과(果)는 상호 의존적으로 존재하고, 인으로 의해서 과가 되지만 그 과는 그 인의 의미를 새로 규정하게 되고, 또 그 과는 새로운 원인이 된다.이렇게 끊임없이 불교는 일(一)과 다(多)를, 그리고 인(因)과 과(果)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긴밀한 연관구조 속에서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붓다는 이렇게 관념적 요소로서의 인간관과 유물적 요소로서의 인간관 모두 다를 부정했다.불교는 우빠니샤드의 아뜨만은 부정했지만 윤회를 받아들였다. 윤회를 받아들인 것은 현실에서 더 좋은 업을 쌓도록 하는 동기로 이해 될 수 있다. 내세에 더 낳은 삶을 살기 위해현생에서 선업을 쌓는다. 그러나 여기서 아뜨만의 존재가 부정되면 윤회의 주체가 무엇이냐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래서 후에 여래장사상이 제시된다.자이나교.불교가 그랬듯이 자이나교 역시 고행(苦行)에 전념하였다.‘고행’이란 일종의 자기를 학대한다는 것인데, 자신이 욕심을 내는 건 바로 몸이 있기 때문이고, 모든 욕심의 근원인 이 몸을 다스려야 한다는 차원에서, 욕심을 일으키는 원흉인 몸을 학대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을 가장 잘 대표하는 가르침이 바로 자이나교였는데, 자이나교는 불교와 더불어 당시에 일어난 신흥종교를 대표하는 쌍두마차의 하나였다. 이 종교의 가르침을 간단히 정리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자아는 아주 맑고 깨끗한 것인데, 미세한 물질들이 몸밖에서 들어와서 아주 청정한 자아를 꽁꽁 묶어놓아 온갖 고통을 겪게 한다는 것인데 우선 외부에서 들어오는 미세한 물질들은 차단하고, 그 다음에 이미 들어와 있는 불순한 세력은 고행을 통해서 녹여 버린다는 것이다. 본래 청정한 자아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본래의 청정한 자아 즉 지바를 아지바(업에 의해 형성된 미세한 물질
호황과 거품 - 로버트 브레너호황의 성질1990년대의 경기 팽창은 강력했지만, 1980년대(1979-90) 혹은 1970년대(1973-79)보다 강력하지는 못했다. 더욱이, 1990년대가 이전 시기보다 좀더 높은 성장을 보인 주요한 이유는 1995년 이후의 급속한 성장에 기인한다. 1995년과 2000년 중반사이 4년 반동안의 호황기만이 1950년부터 1973년 사이의 23년 동안의 경제학적 팽창에 비교될 수 있을 정도이다. GDP의 연평균 성장으로 두 시기를 비교해 보면 4.15%(1950-73) 대 4.2% (1995-2000)였으며, 노동생산성으로 비교해 보면 2.7% 대 2.7% 이며, 실질임금으로 비교해 보면 1.8% 대 2.7%이며, 실업율로 비교해 보면 4.7% 대 4.2%이다.1990년대 미국의 일자리 창출 속도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경기 호황기 보다 늦었는데, 1990년대 실업률이 이전 시기보다 낮았던 이유는 단지 팽창이 [1970년대와 1980대에 비해]좀더 나은 노동시장 환경에서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실질임금 성장은 1998년 이후에야 가속화되었다. 사실, 1997년에 이르러서야 비농업 경제부문의 시간당 실질임금 수준이 1992년과 비슷해 졌다. 생산 노동자와 비감독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1999년 이들의 시간당 실질임금율은 1970년대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으며, 1979년 정점 수준보다 5%이하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에, 잘 알려진 것처럼, 1990년대에 부의 분배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1989년과 1997년 사이에 상위 1%의 사람들은 10%의 부를 축적하였으며, 상위 10%는 4.1%를 늘인 반면, 하위 90%는 부의 성장이 -4.4%에 머물렀다.아마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993년이후 미국 제조업에서의 노동생산성 성장인데 [이것은 '신경제' 출현의 근거로 많이 인용된다], 이러한 노동생산성 성장률 조차 미국의 주요한 경쟁자인 일본, 독일 보다 높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1993년과 1999년 사성 연평균 성장률은 4.7%였는데, 독일과 프랑스 제조업은 1998년까지 각각 평균 5%, 4.25%로 성장하였다. 동일한 기간동안, 일본의 제조업 생산성은 약간 뒤떨어져 평균 3.7% 수준에 머물렀으며, 이는 경기불황으로 이시기 몇 년 동안에 노동생산성 성장이 0%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사실, 1990년과 1998년 사이에, 유럽지역 전체에서 비농업 노동생산성의 성장률은 미국의 성장률과 비슷한 수준으로 연간 2%정도 였으며, 총요소생산성은 좀더 높은 수준이었다.이러한 것을 염두에 둔다 하더라도, 1996년의 급성장을 고려해 볼 때, 1990년대 경기순환이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경기순환 보다 좀더 완만한 개선을 보였다는 것은 사실이며, 또한 최근 4∼5년동안 미국의 호황은 지난 25년간의 장기 침체와는 다른 명백히 구분되는 회복의 조짐으로 해설될 수도 있다. 1990년대의 미국경제는 분명히 많은 활력을 가졌는데, 이러한 활력은 [매우 긴 투자 정체 시기와 낮은 생산성 시기 이후] 비농업 부문 경제에서 이루어진 투자와 생산성간의 상호 연관된 성장으로 나타났다. 공장과 장비가 GDP에서 차지하던 비중은 팽창기가 9년이었던 1960년대 각각 13.4%, 3.4%, 팽창기가 8년이었던 1980년대는 14.6%, 6%였던 것이 1995∼2000년 사이에는 17%, 9.7%를 차지하였다. 또한 비농업 부문 노동생산성 성장률은 1973년과 1990년 사이 1.4% 수준이던 것이, 1995년과 2000년 사이에 평균 2.7%를 기록하였다. 자본축적의 이와 같은 성장을 고려한다면, 위의 수치들은 실제로 노동생산성 향상이 이루어 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제조업에서 이러한 양상 [자본의 축적이 가속화되고, 노동생산성이 성장하는 것]이 더 명백하게 나타나는데, 제조업에서는 생산성의 상승과 투자의 상승이 매우 높았다. 1993년과 1999년 사이 제조업 생산성은 1982-1990년 팽창기 보다 3분1정도 높게 성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괄목할만한 생산성 성장은 100% 자본 였다.1990년대의 인플레이션의 둔화는 앞의 분석과 일관되게 설명될 수 있다. 1990년 초반의 안정적인 가격은 쉽게 설명될 수 있다. 이 시기동안, 실질임금율 성장은 사실상 0 이었기 때문에 비용의 가격에 대한 압박은 거의 없었다. 또한, GDP 성장 또한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수요의 성장은 1970년대와 1980년대 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연준은 1994년 이자율을 급격히 상승시켰다. 따라서, 1990년대 전반기 인플레이션이 낮은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설명이 필요한 것은 1990년 후반의 낮은 인플레이션율인데, 이 시기에 GDP는 급속히 성장하였으며, 실업은 급감하였고, 실질임금 성장은 가속화되었다. 분명히 노동자들의 약화된 지위는 가격상승을 억제하는데 중요한 요인이었다.1990년대 후반기의 민간부문 노조 조직율은 노동력의 평균 10% 수준이었고, 낮은 실업율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위치는 계속 불안정하였는데, 일시적 해고(layoff)와 이직(job turnover)은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대규모 존재한다는 사실은 좀더 나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협상 지위를 계속 깎아 내렸다. 경직된(tight) 노동시장이 임금 성장을 상당한 수준까지 상승시켰지만, 이윤을 압박하거나 가격을 상승시키지 않았다. 이는 당시의 기업이 실질임금 상승을 생산성 향상에 맞출 수 있는[초과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1990년대 하반기에 인플레이션율을 낮출 수 있었던 중요한 힘은 아마도 세계 제조업 제품가격과 미국의 수입품 가격의 느린 성장[미국 수입품 가격의 느린 성장은 높은 달러와 외국의 공황상황에서부터 비롯되었다]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동아시아 경제가 정체상태에 있으면서, 산업 중간재[투입물]의 수입가격은 계속 안정적이었다. 더욱이 1997년부터 1999년 까지 세계 경제의 수요가 침체되면서, 원재료 특히 원유의 가격은 가장 최근까지 낮은 수준을 유지하였다. 마지막으로함에 따라 외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온 생산품의 가격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미국 제조업에서는 빠른 생산성 성장의 반인플레이션적인 효과 또한 존재하였는데, 생산성의 급속한 성장은 1995년부터 1999년 사이에 단위당 노동비용 연평균 성장을 -1.2%로 낮추는 역할을 하였다.마지막으로, 그리고 주요하게, 팽창 기간동안에 급속히 증가한 자본 스톡은 가동률 상승 억제를 통해 비용과 가격의 상승을 막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심지어, 1990년대 팽창이 기록적으로 장기간 유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99년 초반 공장의 가동율은 지난 30년전 평균보다 1%이상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달리 말하면, 자본 가동율은 1999년에 1993년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이처럼 가동율이 낮았기 때문에, 1997년부터 2000년 상반기까지 2년반 동안, 비농업 부문에서의 실질임금 성장은 평균 2.9%에 머물렀으며, 동일한 시기의 단위 노동비용의 상승은 평균 1.6%로 생산품 물가 성장률인 1.4%보다 약간 높은 수준을 유지하였다.정리하면, 기록적인 저축의 감소와 민간 부채의 증가에 기반한, 폭발적인 가계 소비의 성장은 1996년에 미국 팽창을 확대하기 시작하였으며, 1998년까지 이러한 팽창이 계속 지속되게 하였다. 이시기에 미국의 경제를 특징짓는 것은 급속한 수요성장이 빠른 공급의 증가와 낮은 인플레이션 [즉, 가격 상승 대신 산출 증가로]으로 충족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경제 성장에 책임이 있는 것은 [1985년과 1995년 사이에 제조업에서 시작하여, 1995년과 1997년 사이에 다른 산업으로 파급되었던, 수익성의 상당한 회복과 같은] 세전 그리고 세후 이윤율 상승이다. 1990년 초반부터 중반 동안의 세전 수익성 그리고 세후 수익성은 1960년대 중반의 정점 수준에 달했으며, 이는 1990년대 후반기 동안 투자의 가속화, 산업의 설비 증가와 생산성의 증가를 낳았는데, 이에 따라 국내 공급은 부채 주도적인 수요 성장에 보조를 맞출 수 있었다. 가격 상승은 억제되었업 이외의 부문에서 임금상승은 이윤율에 압박을 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인위적인' 부채 기반의 수요 증가가 [즉, 상승하는 주식가격에 근거를 한 수요증가] 1995년 이후의 경제 호황(boom)을 이끌었고, 경제는 이전시기 보다 더욱 많은 활력을 가졌다.호황은 유지될 수 있는가?이제까지 붐을 유지시켰던 과도한 거품은 1990년 초반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래로의 과잉조정 과정을 통하여 응분의 댓가를 치룰 것인가? 이와 같은 위험을 잘 알고 있는 미국 정부는 1997-1998년 세계 경제 공황이 활황(upturn)으로 전환되기를 촉진하면서, 경제를 좀더 건전한 바탕에 기반하게 하기 위해 열풍적인 가계 소비의 팽창을 이용하려 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출 주도의 팽창에 활력을 부여함으로써, 그리고 반사적으로 미국의 상품에 대한 해외 수요를 가속화시킴으로써, 미국 소비 성장은 [좋은 시나리오에 따르면] 미국 제조업의 수출 증가 수준을 1997년까지 누렸던 높은 수준으로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이윤율을 이전수준으로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이다.2000년 중반 미국 경제는 미국당국의 바램처럼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다. 경기 팽창의 후반기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빠른 속도로, 그리고 독특한 방식으로 경제는 호황을 맞았다. 지난 12개월 동안 GDP는 6.1%로 성장하였다. 동일한 시기에, 비농업 부문의 노동생산성은 7%라는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계속 증가하는 투자에서 비롯되었는데, 투자는 2000년 상반기에는 연평균 18%로 증가하면서 2000년 한해 동안 14%로 증가하였다. 반면에, GDP와 생산성의 큰 상승에도 불구하고, 2000년 중반까지 실질임금율은 단지 1.4% 상승하였다.반면에 기업은 특히 2000년 상반기 동안 전년보다 더 빨리 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었으며, 실제로 가격은 연평균으로 2.7% 증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본에는 더 사정이 좋았는데, 2000년 상반기 동안 기업이윤[이자를 제한 것]은 연간 14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