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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뉘른베르크> 감상문
    영화 「뉘른베르크」를 보고우리는 초등교육을 통해 ‘역사는 거울과도 같다’고 배워왔다. 그것은 역사를 습득한다는 것이, 인류의 과거사에 투영된 사실을 인지함으로써 현재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또한 다가오는 미래에 있어 인류가 더욱 더 발전하고 진보할 수 있는 변화를 사유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그 ‘거울’이 빛을 완벽하게 반사시키지 못하고 내 얼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렴풋이 읊어주는 것에 그쳐 버린다면, 그것을 진정 ‘거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주입되고 암기를 강요하여 ‘교과서 속에서 습득되는 상식선의 한 두 문장’에 그치고 있는 현재의 역사교육이 그러한 반쪽짜리 ‘거울’과 같다고 생각해왔다. 그에 반해, 시각적 자극을 통해 우리를 과거 역사의 한 가운데로 생생하게 인도해주는 영화는 과거를 인식하고 현재와 미래를 사유하는데 큰 인식의 틀을 제공한다. 잘 만든 역사적 영화 한 편이 단순히 역사 교과서를 외우는 것보다 더 좋은 교육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이러한 사실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이번 강의를 통해 감상한 영화 는 이러한 나의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해준 영화라 평할 수 있다. 내 머릿속에 존재하였던 ‘뉘른베르크의 재판’에 대한 얇은 상식은 그저 ‘2차 세계대전의 종전 후, 승자인 연합국이 독일의 전쟁영웅들을 승자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전쟁의 책임을 물려 처형시킨 사건’이라는 단편적인 것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를 감상하고 난 후, 나에게 ‘뉘른베르크의 재판’은 ‘독일인은, 아니 인간은 어째서 전쟁을 일으키며, 전쟁 중에 인간성은 어느 선까지 훼손될 수 있는가.’ ‘인륜이라는 인류 보편적인 타당성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지켜질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또한 전후에 승전국이 전쟁 중에 일어나는 그 모든 죄를 한 개인에게 묻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라는 근원적이며 역사적인 의문을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사건으로 변모하였다.이 영화를 통해 나는 그저 수치상으로 막연하게 알고 있던 ‘나치독일의 유태인 학살’이라는 하나의 사실을 현실적으로 -너무나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영화의 주인공인 미국의 수석검사 로버트 잭슨 검사가, 무죄를 주장하는 헤르만 괴링 원수 등 나치 전범들의 과오를 증명하기 위해 공개한 ‘유태인 수용소에 관한 필름’ 장면을 통해서였다.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이 침묵 속에서 경악하고 눈물을 흘렸듯, 나 역시 문장으로 차마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장면을 외면하고 싶었지만 결코 그것에 눈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것은 결코 잊거나 무시할 수 없는 인간의 역사, 그리고 인간의 한 단면이며, 지난 2차 세계대전이 인류의 유전자에 남긴 트라우마이자 교훈이기 때문이리라. 영화 속에서 나치의 비밀조직인 SS대원이자 아우슈비츠 유태인 수용소의 소장은 말했다. “하루 평균 만 명을 ‘소각’하였으며, 전쟁 중 총 250만 명의 유태인을 유럽에서 소멸하였다. 나는 명령에 의해 그들을 ‘제거’하였을 뿐, 고문이나 집권 남용이 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나는 무죄다.” 그는 잔악무도한 학살을 자행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가정생활에는 충실하였으며, ‘유태인은 독일의 적’이라고 교육받고, 그러한 명령에 의의를 달지 않은 것을 떳떳해 했다. 나는 그 인물의 덤덤한 표정을 보면서 한 개인의 잘못을 평하는 것을 뛰어넘어, 권력의 비정상적인 광기가 평범한 일인(一人)에까지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오는 것인지, 인간의 비판적 사고가 반영되지 못한 잘못된 신념이 ‘나’와 같은 인간을 ‘인간’으로 볼 수 없게 한다는 사실에서 큰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오점으로 기록될 나치의 ‘악(惡)’은 나의 상상 속의 이미지, 그 강렬한 인간의 어두운 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토록 덤덤하고 평범한 눈빛을 가진 가장에 의해서 수행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사람을 죽인 것보다 죽이기 전까지 고문하지 않았다는 것을 더욱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인간의 무지한 판단은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심리학자이자 전범들의 자살 방지를 위해 말동무로 투입되는 유태계 미국인 길버트 대위는 권력을 의심하지 않고 복종하는 독일인의 특성과, ‘유태인은 열등하며 유해하다’며 나치에 계속 인식시켜 왔던 선전활동에서 그 끔찍한 유태인 학살의 원인을 찾았고, 전쟁과 유태인 학살을 유발시킨 ‘악의 원천’은 ‘감정이입의 부재’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길버트 대위에게 헤르만 괴링 원수는 미국이 일본을 혐오하여 히로시마에 무시무시한 원자폭탄을 투하한 일, 전쟁 중 미국의 일본계 미국인을 감금하고 재산을 몰수한 일, 미국군 내의 흑백 차별 등을 꼬집으며, 감정이입의 부재는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주장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이것이 바로 60년 남짓한 과거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고작 60년 전에 전쟁의 승자인 미국도, 패자인 독일도 모두 ‘우리’와 ‘타인’을 구분하고 분열하고 서로 배척하며, 심지어 타민족을 지구상에서 ‘소멸’시키는 것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그 잘못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단정질 수 있는가? 현재 우리는 표면적으로 나마 평화의 가치, 평등과 자유의 가치를 실현해 내었다고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문화의 다양성은 그 어느 시대보다 존중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서는 차별과 탄압의 논리가 여전히 팽배하다. 우리 역시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채, 너무나도 쉽게 민족주의, 국수주의적인 사고를 통하여 우리와 남을 구분해내고 있다. 단지 과거 나치와 다른 점은 우리가 실제로 물리적, 군사적인 무력을 쓰지 않은 것일 뿐, 인간 본연의 심리 속에 자리한 증오와 악의 차이는 없는 것이 아닐까. 권력이 이러한 인간의 증오를 자극하게 된다면, 또 다시 비극이 재발되지 않으리라는 가정은 보장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러기에 더욱 더 우리는 역사 속 교훈에 대해서 지식을 갖추고, 비판적 사고의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독후감/창작| 2008.01.16| 2페이지| 1,000원| 조회(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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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나라야마부시코를 보고
    살아있다. 는 것에 대하여-이마무라 쇼헤이의 나라야마부시코 를 보고-평소에 일본문화에 흥미를 많이 가졌고 즐거움을 향유했던 사람으로써 최근 결정되었던 일본대중문화 완전개방의 논의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메가박스에서 개최된 일본영화여행 은 문화개방 전, 이질감의 문제를 논하거나 흥행 성공도를 예측하기 이전에 팬의 입장에서는 그저 반가운 소식이었다. 흥미가 있던 , 같은 액션 호러 작품이 보고싶었으나, 가는 날이 안 좋았는지 아쉽게도 이미 비디오로 접했었던 개봉작인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를 다시 보게되었다. 물론 극장 스크린에서 접하는 느낌은 확실히 달랐다는 점이 위안이 되긴 했지만.이 영화는 생존에 관한 영화이다. 시대와 공간의 미지성에 가려져 존재하는 일본의 산골부락에서 겨울 은 부락민에게 낭만이나 미적관념은 눈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생존을 위협하는 투쟁과 고통의 계절이다. 이곳 사람들의 유일선은 생존이며, 이를 위협하는 행위는 유일한 악이다. 그러기에 생산능력을 상실한 70세 이상의 늙은 노인들은 나라야마 에 버려진다는 집단의 암묵적 동의는 그들의 도덕에서는 오류가 아니다. 여아를 낳으면 한줌의 소금에 팔아버리거나 죽은 자식의 시체를 논바닥에 버리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짐승과의 수간과 유아살해는 용인하지만 식량을 훔치면 산채로 매장된다. 현재의 도덕, 혹은 우리가 전통적이라고 인식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존재하는가? 생존에 대한 강박관념이 칠십이 지나도록 목숨이 붙어 있는 노인을 양식을 축내지 않기 위해 산에다 버리는 풍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상황에서.영화에서 버려지는 존재 오린은 사회의 규칙에 순응한다. 69세이자 고령에도 불구하고 양호한 건강상태를 가진 그녀는 자신의 나약함, 생존능력의 상실을 표출하여 버리는 존재 자식 다츠헤이의 괴로운 마음에 단호한 해결책을 내려 주려한다. 부모의 사랑. 순리. 인간 내부에 남아있는 갈등. 생존. 일부러 절구통에 부딪혀 생니를 빼내버리는 극단적 행위는 영화내에서 이 모든 것을 표현하는 행위가 아닐까.죽은 남편의 유언으로 마을 남자와 차례로 관계를 갖는 오에이, 심한 몸 냄새로 오에기로부터도 건너뜀을 당하는 둘째 아들 리스케의 삽화는 '생존'의 큰 줄기를 받쳐 주는 가지와도 같이 그들 삶의 모습을, 살아간다 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분명 생존을 위협하는 겨울이라는 계절, 산골마을이라는 후진성이 역으로 가져다주는 순백의 아름다움, 자연의 아름다움의 한 모서리에서 우린 이와 함께 항상 존재하는 동물적인 본성을 본다. 그것이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 뱀, 개구리, 새 등이 간간이 비추어지는 것은, 지금 우리들이 잃어버린 자연성, 원시성 혹은 생태계의 원리가 그들 사회의 운동원리임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자연과도 일체화가 되어 있다.
    예체능| 2003.10.02| 2페이지| 1,000원| 조회(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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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프랑스인에게 알려주고 싶은 한국-한국의 IT 산업-
    프랑스인에게 알려주고 싶은 한국-한국의 IT 산업-최근 한국영화 '오아시스'의 베니스국제영화제 수상, '취화선'의 칸영화제 수상, '파이란'의 프랑스 내 개봉 등의 호재로 프랑스 내에서 한국 영화, 한국 영화인에 대한 위상이 커지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월드컵 때 보여준 붉은 악마들의 단합과 응원의 함성이 프랑스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커다란 인상을 남겨준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한국의 대외적인 위상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IT강국이라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한국의 모습이기도 하다.아직도 일부 외국인들은 삼성과 LG가 일본의 재벌이며, 한국은 좌우대립의 6.25전쟁 후유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농업후진국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한국은 D램 매출액, TFT LCD생산량,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수, DVD롬 시장점유율, 월중 페이지뷰 집계에서 모조리 세계 1위를 석권한 IT산업의 강국으로 국제사회에 각인되고 있다.(UN과 ITU의 집계자료) 주로 반도체, 인터넷 부분에서 수위를 차지하면서 'IT코리아'의 위상은 점차 커지고 있다.이처럼 한국의 IT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한 데에는 수준 높은 인프라스트럭쳐를 구축한데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국민들의 높은 교육수준, 과학과 지식에 근거한 연구개발, 정부의 투자, 인터넷의 신속한 보급, 수익성을 가진 가치의 창출 등의 이유로 한국의 IT 산업은 미래에도 그 전망이 매우 밝다고 할 수 있다.반도체, 인터넷 부문 외에 이동 통신 부문에서도 한국은 세계 수위권의 기술력,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유선망을 이용한 통신계 뉴미디어의 발달과 동시에 무선통신계 뉴미디어의 발전이 함께 이루어졌다. 단말기 개발부터 시작하여, 개인 휴대통신, 범세계 위성 이동통신, 미래 육상 공중 이동통신(IMT2000)의 개발, 발전과 이를 수용하는 전세계에서 제일 IT문화를 잘 받아들이며 생활화되어있는 한국인의 결합으로 이동통신 부문에서도 한국은 기술력과 사업성을 모두 갖출 수 있는 강국이 되었다.
    인문/어학| 2003.05.01| 1페이지| 1,000원| 조회(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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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역사] <독후감>'새로운 황제들'을 읽고 평가A좋아요
    '변화하는 중국'이라는 문구는 이제 낯설지 않다. 개혁과 개방의 바람을 타고 순간순간 변모해가는 현대의 중국을 이데올로기로 대립했었던 과거의 주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없다고 봐도 무관하지 않을까. 교과서 속의 중국은 18c 제국주의 열강의 반식민지였던 '종이 호랑이'라고 기술되어 있었음을 생각해 볼 때 현재의 변화는 혼란을 가져다 주기 충분하다. 지금 중국은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도달하게 된 것일까. '중국'이라고 하면 고운 차 향기가 풍길 듯한 문인들의 먹물냄새나 책사들의 지략싸움, 창칼을 휘두르며 용맹히 싸웠던 늠름한 무장들의 로망스가 살아있는 1000여년 전만이 떠오르던 내게 '중공', 그리고 현대 중국은 분명히 내 지식과 관심 외의 세계였다.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신청한 중국연구 수업에서 나는 을 접했다.이 책, 은 지도자의 이름, 큰 사건만을 기억하고 있던 나의 단편적인 지식에 숨결을 불어넣어 또렷한 실체를 느끼게 해주었다. 타의로 읽게 된 책이지만 흥미진진하면서 사실적인 전개에 빠져들어서 어느 때보다 긴장감을 유지한 채 책을 읽게 되었고, 자세한 역사적 상황과 인물들의 일화를 알아가면서 더 넓은 관점에서 중국을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현대 중국을 다룬 다른 서적과 마찬가지로, 의 주인공은 모택동(마오쩌둥)과 등소평(덩샤오핑)이다.-사실상 이들을 빼놓고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놓고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항일전쟁, 대장정, 국민당 정부와의 싸움에서 동지들을 이끌며 승리를 거둬들인 천재적인 군사지휘관의 모습과 이후 문화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동지들을 잔혹하게 처단하는 그의 이중성. 시인이며 논객이며 철학자인 모습을 가졌던 그가 모든 공산권국가의 영도자와 같았던 스탈린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지고 있었던 권력 편집증 환자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일화들은 나의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마오와 덩은 어떻게 다른 길을 가게 되었던 것일까? 왜 대장정 이후 끝내 베이징 점령을 성공하고 입성하였을 때 그들의 모습은 아바나 입성 뒤 함께 시가를 나누던 체와 카스트로의 사진을 거부감 없이 연상케했고 그들의 맹세와 의리, 그리고 이상이 실현되던 그 곳, 그 순간에서 막이 내려져야만 하는 하나의 감동스러운 이야기인것만 같았다. 이러한 로망스와 아름다운 결말은 역시 판타지에서나 허용되는 것일까. 그 후의 역사는 잔인하게도 마오의 규율을 지켰던 군사지휘관이자 그들의 혁명을 건설했던 많은 주역들을 마오에 의해 '주자파'라는 불명예의 굴레에 씌워진 채 참혹하게 처단당했다. 덩은 생명을 잃진 않았지만 좌천과 재등용을 거듭하는 고난의 세월을 겪어야만 했고 마오는 독재자로서 생이 끝나는 때까지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는 점이 슬플 뿐이었다. 마오는 자신이 좋아하던 격언인 '너는 너의 전투를 해라. 나는 나의 전투를 할 것이다'처럼 덩과 다른 동지들과의 함께 한 자신의 전투를 끝낸 이후, 자신'만'의 전투에선 그들을 적으로 돌리게 된 것이 아닐까. 이른바 '문화혁명'으로 알려져 있는 마오의 광신도, 분신들이 전 중국을 휘몰아 치던 그 시대를 저술한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정치외교학과를 지망하기 위해 읽었던 책들 중에서 흔히 보여지던 그 어떤 보복과 배신 중에서도 단연 제일 가슴이 아픈 것은 솔즈베리의 생생하고 사실적인 구성 때문이었다. 단순히 과거의 중국의 황제들이 자신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동지들을 창업이후 숙청해버린 것처럼 '새로운 황제'였던 마오 역시 그 절차를 밟은 것 뿐이었을까? 그러나 그렇게 단순히 치부해보기에는 문화혁명의 폐해는 너무나 컸다. 후에 덩샤오핑이 지적한 것 같이 그것은 중국을 20년 이상 퇴보시킨 대혼란이라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었다.솔즈베리는 마오쩌둥 중심으로 한 정치구도의 변화를 집중하면서 대약진운동과 펑떠화이의 축출, 그리고 이후 권력을 완전 쟁취하기 위한 문화혁명의 촉발을 순서대로 기술하고 있다. 이 구성은 사실상 권좌에 오른 마오가 전형적인 자아망상을 시작하게 됨을 느낄 수 있는어마어마한 인력자원을 투입하여 서구 자본주의의 경제력을 따라 잡으려 한 그의 투쟁적인 경제 개발 계획은 결국 무수한 실패만을 남겼다. 소련과의 관계악화로 그나마 공산권에서 제일 발전된 소련의 기술력은 도입할 수 없었으며, 철강증산을 위해 곳곳에 만든 용광로에서 녹여버린 쇠붙이들은 쓸모 없는 폐철이 변해 버렸으며, 노동력과 자금,자재등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한 인민공사는 개인 능력 차이 무시, 노동자들의 의욕상실, 사생활의 금지로 인한 불만등으로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거기다 겹쳐진 홍수와 한발 등의 자연재해는 수천만명을 기아로 목숨을 잃게 만드는 재앙이 되어 다가왔는데, 결정적인 것은 이에 대해 비판을 하는 세력을 우파기회주의자로 몰아서 숙청함으로써 더욱 더 마오의 정치적 입지가 약해졌다는 점이다.이 책에는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 티엔쟈잉의 일화를 보여주면서 마오의 잔혹한 면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마오의 비서였던 티엔은 평소 마오와의 친분이 두텁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마오의 장남인 안잉의 친구이자, 차남 안칭의 스승이기도 했다. 대약진운동 이후 황폐해져가는 농촌의 실상은 마오의 측근으로 구성된 인의 장막에 걸러져 마오에게 전해지지 않게 되었는데-그것이 정말 전달되지 않았는지, 마오가 듣기 싫어한건지 모르겠지만- 티엔은 이 진상을 낱낱이 사실 그대로 보고하는 데 힘썼다. 그는 농촌의 실상을 직접 느끼고 마오에게 직언을 하여서 마오의 심기를 흐트려 놓았고, 결국 다른 비판자들과 같은 취급을 당한 후, 우파성향이라는 오명과 반당 집단과의 관계가 깊었다는 누명을 쓴 채 결국은 스스로 목숨을 끝게 함으로써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아무도 군주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게 되는 순간, 그는 몰락한다는 것을 마오는 몰랐던 것일까? 열성당원이자 마오의 헌신적인 지지자였었던 티엔쟈잉의 비참한 최후가 오히려 마오의 고도의 정치적인 성격의 것이라고 평가받고 있음을 볼 때 참으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마오쩌둥은 정치 권력을 숭배하고 권력을 통한 의 순전히 중국이민의 자력으로 다시 말해서 전 중국 인민의 집단화된, 단결화된 노동의 힘으로 영국을 따라 잡겠다는 대약진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대약진운동은 중국이 처한 국가적 능력과 경제성장을 위한 객관적인 조건들, 이를테면 체계적이고 균형적인 산업전반의 계획,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배분, 적절한 기술인력자원의 효율적인 배치, 생산성 향상에 대한 타당한 검토 등 전반적인 불균형, 무계획성, 비효율성의 문제는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함께 대장정을 마친 오래 된 동지이자 6.25전쟁에서 중공군 총사령관으로도 참가했던 펑떠화이의 비판이 있게되자 마오는 그를 우파기회주의자로 몰아서 그의 직위를 박탈하고 모든 군수통제권을 몰수한 뒤 추방하게 된다. 주언라이, 류사오치, 덩샤오핑 모두 펑떠화이의 결백함, 그리고 그의 주장을 옳음을 알고 있었다고 솔즈베리는 저술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지도자 앞에서 사실의 진술은 곧 생명의 위협을 뜻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모두 침묵하게 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곧 닥쳐올 광란의 소용돌이 속의 희생되기 전 잠시 위험을 모면한 것에 불과함을 우리는 볼 것이다. 사실상 문화혁명은 이념적인 계급투쟁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이는 인민 내부의 모순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당내 주자파-우파기회주의자로 누명씌워진-와 인민 대중과의 투쟁이었던 것이다. 마오를 우상숭배하는 사회적 환경속에서 자라난 학생들은 마오와 그의 수하 캉성이 심어놓은 공작원들에 의해 교묘히 개조되고 봉기하여 그들의 적으로 교육받은 마오의 적을 무참히 학살하게 되는 사건인 것이다. 이른바 인민 대중의 사회주의 교육과 그를 통한 대중동원의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반대 세력을 견제하고 선전을 하기 위해선 인민 해방군의 조직체계 역시 필요로 했다. 결국 문화 혁명이 지향했던 목표는 당내 주자파에 의해 조성된 자본주의 경향과 인민 대중 일부에 잔존해 있는 유교주의 문화와 자본주위 문화를 동시에 제거하고 마오쩌뚱 사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 위병'이라 이름 붙여진 집단의 광기-들에게 잔혹하게 희생당하는 마오의 적들(라오서, 펑떠화이, 류사오치같은 고위간부급부터 누명을 쓴 일반 농민들, 이방민족들까지)의 참상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는데, 광기에 무참히 희생당하는 이들의 모습은 비통한 심정을 갖기에 충분하다. 하루 아침에 사회 지도층에서 반동분자로 전락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까지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마오에게 도움을 청해 보지만 모든 것은 마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잔혹한 상황.. 어쩌면 솔즈베리는 마오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띈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마오의 적들을 동정적으로 묘사하고 마오를 상대적인 악인으로 묘사하는데, 그것은 마오쩌둥이 아편중독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드는 대목과 자신이 곧 처단하기로 마음먹은 적에게는 늘 처단하기 전 함께 만나 웃으며 좋은 격언을 남겨주었다는 대목에서 더욱 확실시해진다-실로 섬뜩하지 않은가-. 어쨌든 마오가 주도한 문화 혁명운동은 모든 중국의 생산을 중단시키고 인민들을 서로 투쟁과 감시의 대상으로 만들어 온 국민들 사이에 깊은 골을 남겨 주게 되었다. 당시 투쟁을 위해 같이 근무하던 동료의 잘못을 들춰내어 비판하여 노동을 통한 개조를 시키고, 자기의 상사를 비판하여 그 자리를 차지하고, 평소에 불만이 쌓여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있지 않는 이유를 갖다 붙여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 멀리 유배를 보내기도 하는 등 서로를 불신하게 되었고 그로 인한 경제적인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광신적인 집단행동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마오의 붉은색 어록을 외우고 또 외우면서 그것을 이용하여 마오의 분신이 되어 파괴하고 또 파괴하여 중국을 퇴보시킨, 비난받지 않기 힘든 사건인 것이다. 평소 마오는 '총체적인 해결'을 선호하는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그에게 변화는 '난(亂)'의 상태에서 생겨나고 안정이란 것은 정체를 의미했던 것이다. 평화가 사람들의 발전에 도움이 안되며 격동속에서 진보와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가.
    독후감/창작| 2003.05.01| 4페이지| 1,000원| 조회(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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