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고려대학교서어서문학과우선 영화를 본 소감은 지루할거라는 나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정말 오래간만에 잔잔하고 아름다운 영화를 봤다는 느낌이다. 어떻게보면 진부하고 또 빼놓을수 없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참 재미있고 또 생각할 거리도 만들어 주는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느낌이다. 물론 원작에서는 2명의 작가가 남자주인공 준세이의 시점과 여자주인공 아오이의 시점에서 써내려가는 독특한 구성이지만 영화에는 주로 남자주인공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줄거리 전개상 분석우선 이 둘은 20살 때 만나서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을 나누다가 아오이의 임신과 낙태로 인한 오해로 헤어지게 된다. 아오이는 태어나고 자란 밀라노에서 새로운 연인과 지나간 과거는 다 잊은 듯 행복한척 살아가고 준세이는 아오이를 잊지 못하고 피렌체에서 미술 복원사로 살아가고 있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준세이는 아오이 때문에 이탈리아로 건너간 것이 아닌가 한다. 아오이는 30살 자신의 생일에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 같이 가자고 하곤 했다. 이 약속이 준세이에게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30살이 되기 이전에 이 둘은 밀라노에서 재회를 하게 된다. 준세이는 밀라노에 아오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오이를 찾아가지만 지난 일을 다 잊은 듯 새로운 연인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오이를 보고 다시 피렌체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오이는 준세이에게 냉정하게 지난일을 다 잊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겉으로만 그러는척 하는 것이다. 아오이 역시 준세이를 그리워 하고 있었다. 영화는 준세이 시점에서 그려져서 이 장면에서 아오이가 준세이를 잊지 못한다는 것을 알수 없으나 나중에 준세이의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리며 준세이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을 통해 아오이 역시 준세이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제목이 ‘냉정과 열정 사이’이듯이 아오이와 준세이 둘다 냉정과 열정의 서로 상반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냉정한척하지만 아직 열정이 남아있는 아오이와 아직 사랑했던 시절의 열정이 그대로 남아있지만 아오이 앞에서 냉정해져야만 하는 준세이. 이 둘의 첫 번째 재회에 이런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방황하는 두 주인공의 심리가 잘 나타나 있다.다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이 둘은 30살의 두오모성당에서의 약속을 기억하며 살고 있다. 준세이는 자신이 복원하던 그림이 누군가에 의해 찢어진 사건으로 복원사 일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동경은 아오이와의 추억을 더듬기에는 너무나 많이 변해있었다. 준세이는 친구로부터 예전에 자신이 아오이를 오해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아오이에게 사과의 편지를 쓴다. 영화에 나오는 편지의 내용과는 약간 다르다.■ 쥰세의 편지 - Rosso 9장 편지(手紙) 발췌아오이.갑자기 편지 쓰는 것을 용서해 주었으면 좋겠어. 꽤 오랜만이지. 이 편지를 도대체 어떤 식으로 쓰기 시작해서, 어떤 식으로 끝내면 좋을지, 나 아까 전부터 머리를 쥐어싸고 있었어. 애당초 편지는 잘 쓰지 못하잖아. 다른 사람보다 배로 일본어를 좋아하고, 독서광인 아오이앞으로 쓰는 것이 것이라 오죽하겠어.바보같이. 그렇게 말하면서 아오이는 웃을려나.밀라노로 돌아와 있다지. 타카시한테서 들었어. 그곳에서 완전히 새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도. 마음이 놓였다,라고 해야될테지.주소는 내가 억지로 캐물었어. 타카시에게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초여름이구나.밀라노의 초여름은 아름다워.자랑하듯이 그렇게 말하던 너의 얼굴이 생각이 나.나는 지금 우메가오카에 살고 있어. 네가 잘 아는, 그 아파트지. 학교 다닐 적과 같은 이 방에서, 학생일 때처럼 빈둥빈둥거리고 있어. 아오이가 있었다면,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르겠군.타카시가 얘기했어. 너의 남자친구가 좋은 사람이라고. 그 사람이 너를 무척이나 소중이 여기고 있다는 것을, 그 녀석도 알 수가 있었대.아오이. 난 너에게 사과하야 해. 그것 때문에 이 편지를 쓰고 있어.벌써 지난 일이고, 지금 변명 썩인 말은 듣고 싶지 않을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꼭 들어주었으면 해.몰랐어. 여기에 아버지가 왔다는 것도, 아버지가 너에게 말했을 믿겨지지 않는 말들도.미안해.젊음과 미숙함을 탓할 생각은 없지만, 나의 바보스러움이 싫어져. 계류유산이라고 한다고 하더군. 어차피 아기는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어.너에게 낙태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감정에 따라 너를 비난하고 매도했었지. 할 말이 없어.사진에 나와있는 아오이가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리며 준세이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말도 못하고 계속 눈물만 흘리다 전화를 끊는 장면이 여자들이 가장 많이 운 장면이다. 물론 나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이 조금 아프기는 했다. 재회했을때 준세이에게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냉정한척을 해야했던 아오이가 더 아련하고 아프게 느껴졌다.준세이는 다시 밀라노로 돌아가 미술복원사의 일을 하게 된다. 두오모 성당의 약속을 가슴속에 간직한채 살아간다. 드디어 아오이의 30번째 생일이 오게되고 준세이는 두오모성당의 지붕으로 향하고 여기서 둘은 다시 재회하게 된다. 여기서도 이 두사람의 감정표현은 서로 엇갈린다. 아오이는 그냥 지나던 길에 들렀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니다. 아오이는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국으로 같이 가자던 연인과도 헤어졌다. 아오이는 속마음을 끝까지 준세이에게 말하지 않는다. 누가그런 어린시절 유치한 약속을 기억하겠냐고 말한다. 하지만 준세이는 자신은 기억했다고 한번도 잊은적이 없다고 얘기한다. 아오이는 여기서 분명히 감동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둘은 그동안 떨어져 있던 시간의 벽을 없애려는 듯 격렬히 사랑을 나눈다. 다음날 아오이는 다시 밀라노로 떠나야 한다고 말하고 준세이는 아오이를 잡지 않는다.아오이는 밀라노행 기차를 타고 기차안에서 다시 울기 시작한다. 영화에서는 아오이의 눈물로 아오이의 심리를 표현하지만 소설에 나오는 아오이의 독백이 더 애절하다.
욕망의 모호한 대상 -루이스 부뉘엘-▲ 욕망의 모호한 대상 줄거리영화는 스페인의 세비아 역에 정차해있는 파리행 열차에서 시작된다. 돈많은 중년 아저씨의 배와 얼굴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마티유 와 그를 찾아 이리저리 플랫폼을 오가는 아가씨 는 콘치타 이다.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그가 그녀를 먼저 발견하고는 물세례를 퍼 붓는다. 같은 칸에 동승한 승객들은 놀라서 그 이유를 물어보고 마티유는 사연을 풀기 시작한다.마티유는 커다란 저택과 많은 하인들을 거느리며 혼자 사는 부자이다. 물세례를 당한 그 매혹적인 아가씨는 그의 집에서 새로 일하게 된 하녀이다. 그녀에게 홀딱 반한 마티유는 그녀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 프로포즈를 하지만 여지없이 거절 당하고 그녀를 유혹해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마티유는 그녀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해주지만 콘치타는 넘어올듯 넘어올듯 하다가도 결정정인 大事(?)는 허락하지 않아 마티유를 더 애타게 만든다. 콘치타의 변명은 자신은 처녀이고 자신의 모든 것을 가지면 마티유가 자기를 떠날것이라는 것이다. 흔히 남녀사이에서 남자가 여자의 모든 것을 가지면 그여자에게 실증을 내는 인간의 허무한 욕망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오로지 그녀를 차지하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마티유는 거의 노예와 다름없는 굴욕적인 모습까지 보이고 마티유의 별장에서 그녀는 무수히 많은 끈이 달린 정조대를 입고 나타나 마티유를 더욱 애타게 만든다. 이런 콘치타에게 마티유가 학을띠고 결국 콘치타를 포기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거의 모든 영화에서도 그러하듯이 마티유는 콘치타에게 콘치타 명의의 집을 사주게 된다. 이런 경우 여자는 반드시 남자를 배신하게 된다. 처녀인줄만 알았던 콘치타는 마티유가 사준집 철문 앞에서 다른남자와 보란 듯이 정사를 벌인다. 콘치타가 원하는 것은 마티유의 돈이었던 것이다. 이에 크게 낙심한 마티유는 하인 한명과 첫장면의 기차를 타고 멀리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었다. 마티유에게 물벼락을 맞고 콘치타는 떠나는 기차에 올라타 그에게 다시 물세레를 퍼붓는다. 둘이 어떻게 화해를 했는지 모르지만 둘은 다정히 기차에 내리게 되고 다시 마티유는 콘치타에게 매어 버리게 된다.▲감상후기영화 속 콘치타는 2인 1역이다. 청순하고 우아한 모습의 콘치타와 창녀의 모습을 한 콘치타 둘이 한 역할을 나누어 출연했다. 나름대로 두 배우가 출연하는 장면의 규칙을 정해본다면.정조대를 입고 마티유의 유혹을 거절하는 장면은 청순한 콘치타가 마티유 앞에서 다른남자와 정사를 벌이는 장면은 창녀 콘치타가 그리고 물세례를 맞는 장면은 청순한 콘치타가 마티유에게 물세례를 퍼붓는 장면은 창녀 콘치타가 또 관광객들 앞에서 춤을추는 장면은 창녀콘치타가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장면은 청순한 콘치타가 출연했다.
돈후안을 읽고........파우스트처럼 전유럽에 전파되어 있던 전설상의 인물로 티로소 데 몰리나가 창조한 돈 후안 을 들 수 있다. 호색한 또는 난봉꾼 으로 잘 알려진 돈 후안 은 세계 문학에 공헌한 하나의 전형적인 인간상이다. 블랑카 데 로스 리오스 등 많은 비평가들은, 돈 후안 은 그 위대한 세계적인 보편성 에 있어서 셰익스피어의 작중 인물들보다 앞서고, 인간적인 면모 와 극적인 깊이 에 있어서는 괴테의 파우스트 를 능가하며, 덕성과 용기에 있어서는 돈키호테 보다 뛰어나다고 지적하였다.티로소 데 몰리나의 『세빌랴의 난봉꾼 돌부처에 맞아죽다』는 전설 속의 인물이었던 돈 후안 을 문학상의 한 성격으로 정착시킨 희곡인데, 여가서는 방탕자 와 식사에 초대된 죽은 사람 이라는 2가지 요소가 내포해 있다. 전자는 여인을 농락하고 정복한 후에 아무런 미련없이 버린다. 즉, 오늘날의 여성 편력가의 대명사가 된 돈 후안 이다. 후자의 죽은 사람은 신을 상징한 것으로, 죽은 사람의 돈 후안 에 대한 복수는 그의 못된 직에 대한 신벌을 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돈 후안 극은 찰나적인 향락과 이에 따른 응보적인 위협이라는 종교적 측면과의 긴장관계에서 전개되어 나간다. 티르소 이후, 돈 후안 은 산문 ·시 ·음악 등에서 많은 작가가 취급하여, 여러 변모를 겪으면서 세계 문학상의 일대 성격으로 존속하고 있지만, 그 작품의 다양성 때문에 한 마디로 돈 후안 의 속성을 표현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그가 명문 출신이며 매력적이고 또 방랑벽을 지녔으며, 기성도덕에 대립하는 반사회적인 인물이라는 점은 일반적으로 공통된다.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돈 후안'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팔난봉 이라 부르니,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즐거움은 여자를 농락하고서 사정없이 그 여자를 차 버리는 일이지너는 상전에게 봉사를 하면서 게임 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중에 게임 에서 이기고 싶다면 항상 게임 에 도전을 하라구, 게임 에서 도전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은 역시 더 많이 이기는 법이야.이런 그의 대사로 미루어 볼 때 돈 후안은 여자를 농락하는 것을 단지 일종의 게임으로써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쾌락을 추구한다. 그에게 있어 섹스(SEX)는 단지 게임일 뿐이다. 그에게 있어서 게임의 법칙은 간단하다. 그는 여자를 욕보임으로써 여자의 권위를 실추시키면 그는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중세시대에는 정조를 잃은 데에 대한 자기 자신의 책망보다 자신의 권위가 실추되는 것이 더욱 혹독한 처벌이다. 그것은 돈 곤살로의 대사에서 쉽게 알 수 있다.이렇게 대담한 짓을 함부로 하다니, 명예에 먹칠을 당했다고 했나? 아이구, 내 집안에 이거 큰 이 났군! 저 아이의 말이 저렇게 경박할 수가 있나,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들으라는 종소리처럼 외치다니, 원!……나의 명예의 탑에서 떨어진 망루야, 이 놈아! 역도같은 네 놈이 이 요새를 지키는 사령관이 있는 데에서 생명을 땅바닥에 내던진 것이야……명예가 더렵혀진 판국에 그 목숨을 두었다가 어디에 쓸려구?돈 후안은 도냐 아나와의 멋진 하룻 밤을 보내는 것을 실패하였다. 그렇지만 돈 곤살로는 하룻 밤을 보냈다는 사실보다도 자신의 딸을 능욕하러했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 참기 힘든 분노였던 것이다. 실제로도 돈 후안이 농락한 여자들 가운데 실제로 섹스까지 연결된 경우는 절반 정도이다. 하지만 돈 후안은 자신이 그 네 명의 여자를 모두 농락하는데 성공했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이에 만족해한다. 이는 모든 여자들에 대한 자신의 행각이 사람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이러한 돈 후안의 모습을 보며 난 요즘 우리 주변에 만연된 타락한 성 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의붓아버지에 의해 강간당한 딸, 자신의 쾌락을 위해 자신의 자식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과 성관계를 갖는 사람들, 채팅으로 만난 사람들과의 번섹, 몰카의 유행 등등 겉으로는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이니 뭐니 하면서 체면을 차리면서도 뒤로는 각종 음탕한 짓을 다하고 다니는 이중적인 모습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다. 이들에게 있어서 성 은 돈 후안의 경우에서처럼 게임의 일종이며, 쾌락의 도구일 뿐이다.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순간은 만족을 느낄지 모르지만, 결국은 더욱 강력한 쾌락을 찾아다니게 마련이다.얼마 전에 구성애의 아우성 이라는 프로그램이 전 국민적인 호응을 얻으며 방영되었던 적이 있다. 언제나 금기시 되어오던 소재를 밖으로 끌어냈다는데 우선 큰 의의를 둘 수 있다. 그동안 어두운 곳에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알 수 없어 왜곡된 모습만을 봐야했던 우리이기에 그 분의 올바른 성에대한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분의 말에 따르면 요즘 성 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남자들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알 건 다 안다고 이야기하고 여자는 얼굴이 빨개지며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이는 성을 단순히 쾌락의 대상, 아니면 성행위 그 자체로서 보는 경향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건강한 성 을 이루는 요소로 성행위와 쾌락적 요소가 빠질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중요한 요소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다. 바로 생명이다. 자식을 원하는 부부의 성행위에 누가 음흉한 미소를 지을 것이며 음탕한 생각을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만큼 우리는 올바른 성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그나마 이런 기회를 통해 음지에 있던 성 이 밖으로 나와 올바르게 인식된 기회를 맞이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취 화 선고려대학교취화선은 조선후기 천재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면서 조선후기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록영화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역사적 사건 중심으로 시간전개가 이루어 졌다. 지루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였기 때문에 영화를 보기 전날 잠을 못잔 것이 걱정이 되었으나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빨려든 내 자신이 신기했다. 그림을 소재로 한 영화라서 그런지 영화 속 장면들이 다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우리나라 4계절의 아름다움이 한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영상미가 아주 돋보였다. 그리고 사용된 용어 중 어진 이나 지도화 등 수업시간에 들었던 용어들이 나와 무척 반가웠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내가 한국인이면서도 그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감상을 하는데 어느 정도 지장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잘 모르는 용어들도 간간히 나왔는데 자막이라도 설명이 나왔다면 감상하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다.영화는 어느 한 마을의 그림에 남다른 재주를 가진 거지소년(장승업:최민식분)의 모습이 나오면서 시작된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김선비(안성기분)가 매 맞던 소년을 구해주고 집으로 데리고 간다. 소년의 재능을 알아보고 김선비는 역관 이응헌의 집으로 데리고 가고 이응헌의 도움으로 대화원 유숙의 문하에서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다. 장승업은 이응헌의 여동생인 소운을 짝사랑하게 된다. 소운이 병에걸려 죽기전에 소원으로 장승업의 그림을 갖고 싶어하자 장승업은 학 한 마리를 그려주고 방랑을 떠나게 된다. 사이사이에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처음 붓을 데었을 때는 무엇을 그리는지 몰랐으나 마지막으로 붓을 뗄 떼에는 와! 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서양식 그림에만 길들여져 있던 나에게 동양화의 묘미를 제대로 맛보게 해주었다.장승업의 재능은 더욱 빛을 발해서 왠만한 양반들 중에 장승업의 그림을 가지지 못하면 대접을 못 받을 정도로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장승업은 자신만의 혼을 담은 그림을 위한 예술가적 고뇌에 빠지게 된다. 김선비는 장승업에게 단원과 혜원을 능가하라는 의미에서 오원이라는 호를 붙여준다. 그리고 장승업의 그림을 보고 항상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좋은말을 아낀다. 다른 사람에게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망나니처럼 제멋대로 구는 장승업도 김 선비에게 만은 깍듯하다. 장승업의 예술적인 스승이며 비판자인 김선비도 중요한 인물이지만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기생 매향이도 장승업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는 인물이다. 당시 천주교가 박해받던 시기에 천주교도인 기생 매향이는 다른 기생과는 다른 비범한 기생임을 보여주듯이 신분도 양반의 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영화의 극적 재미를 위해 감독이 꾸며낸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장승업이 매향의 치마폭에 매화를 그려주자 매향은 역시 양반집 딸답게 글을 모르는 장승업을 대신해 梅畵一生不賣香이라는 글을 써놓는다.장승업의 이름은 더욱 널리 알려져 궁궐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지만 갑갑한 궁궐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궁궐에서 달아나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 지방에서 지방 양반들의 그림을 그려주고 돈을 받고 생활을 하다가 동학농민운동 때 사람들에게 양반에 빌붙어서 사는 기생충이라는 욕을 먹고 번민한 장승업은 다시 유랑길에 오른다. 마음속의 안식처인 매향을 찾아서 제주도까지 간 장승업은 우연히 김선비를 만나게 되고 처음으로 김선비의 그림에 대한 칭찬을 받게 된다. 그러나 장승업은 자신이 이루고자하는 경지에 이루지 못함을 토로하고 눈물을 흘린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장승업은 다시 우연히 매향이를 만나게 되고 매향의 집에있는 못생긴 도자기를 보고 매향이 한 말에 충격을 받고 다시 길을 떠난다. 매향이 도자기를 보고 한말은 돈도 안 되는 것을 아무런 욕심을 가지지 않고 빚어낸 도공의 손길이 담담하고 편안하다는 것이다. 이 말이 장승업의 마음에 어떻게 다가왔을까. 그가 진정 원하는 그림이 바로 그 도자기 같은 그림이 아니었나 한다. 매향의 집을 떠난 장승업은 도자기 빚는 곳에가서 도자기 위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화로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나게 된다. 장승업이 정말로 화로에 몸을 던졌는지 사실여부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예술가의 혼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