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를 읽고..20030181 동양어문학부, 박주원이 책의 내용은 맨 처음 ‘향수’라는 단어에서 받을 수 있는 첫 느낌과 달리 다소 섬뜩하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맨 처음 이 책을 읽었던 것은 고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였는데 그 당시에는 단순히 잔혹한 한 살인마의 이야기정도로 밖엔 여겨지지 않았었다. 유명한 작품이라는 말도 들었던 데다가 제목의 느낌에 의지해서 골랐던 책이라 약간 실망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대학교에 들어와서-비 과제 때문이었긴 하지만-다시 내용을 접했을 때는 느낌이 좀 달랐는데 그건 객관적인 독자로서의 시각이 아니라 좀 더 감정적으로 접근했던 이유에서 였을까? 살인마라는 전제를 하지 않은 채로 그냥 한 인간으로서의 그르누이를 읽어 내려가는 것은 좀 더 흥미로웠다. 태어나면서부터 사회로부터, 모든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는 불행한 운명을 짊어졌던 그르누이. 그는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향해 아무런 이유나 계산된 조건 없이도 끊임없이 손을 뻗을 수 있을 만큼 아이 같다. 단순히 갖고 싶다-라는 원초적인 소유욕 하나만으로도 그가 살아가는 모든 이유를 단번에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순진무구하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더욱 완벽하게 잔인해질 수 있었다. 그의 그 살인마적 기질은 주변의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감정에도 동요되지 않으며 자신의 탐욕을 채워가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 성격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 속의 그르누이는 때론 한없이 가련하고 나약한 인간이지만 때론 모든 인간들을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힘이 세다. 보통 소설책에서는 보기 드문- 뭐라고 딱히 정의할 수 없는 인간형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의 내면에 대해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신비스럽고, 매력적인 악역으로 다가오는 지도 모르겠다. 마치‘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의 홍경인처럼 말이다. 물론 그르누이는 외면적으로 호감이 가는 인물도 아니고, 성격이 보통 사람과는 무언가 다른 색을 띈 인물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악역이지만 미워할 수만은 없는 그런 인물이라는 사실이 나를 이 소설 속에 더 매료되게 했다. 또한 책을 읽어 내려가다가 문득 그와 꽤 흡사하기도 한 내 모습도 찾을 수 있었는데 그 덕분에 그르누이의 심정을 조금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향긋하면서도 왠지 마음을 놓이게 하는 커피 향에 매료되어 매일같이 커피를 마시게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커피를 마신 직후에는 그 은은하면서도 독특한 향이 나 자신에게서 배어나온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지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더 향긋하고 좋은 느낌이 나는 커피를 찾겠다고 여러 가지 종류를 바꿔가며 주문해 마셨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은 내가 그 중 제일 마음에 들어 하는 향과 맛을 가진 커피에 정착해 있지만 말이다.어쨌든 이 소설의 주제인 ‘향기’는 누구든지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법한 추억거리를 꺼내보게 만드는 흔한 소재다. 그래서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고, 개인 나름의 추억을 바탕으로 해서 한층 주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같다.차츰 이 감상을 적어 내려가면서 맨 처음에 책을 읽었을 때 갖게 되었던 의문을 새삼스럽게 다시 떠올려보게 되었다. 그르누이- 그는 왜 그 많은 수의 여자들을 죽여야만 했을까? 향기를 채취하는 것만으로는 그의 ‘향수’를 완성하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일까? 복잡하게 생각하자면 풀기 힘든 대답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답은 의외로 간단해진다. 그건 그들의 향기를 혼자 소유하기 위해서 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집착하는 향기를 누군가와 공유하기 싫어하는- 굳이 비유하자면 단순한 어린 아이의 욕심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나는 이 부분에서 또 한 가지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소설 속에서 현실화되는 ‘인간의 냄새를 소유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리고 그것은 그르누이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라는 내용들을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그 어떤 냄새도 갖지 못한 채로 태어났던 그에게 있어서 아마도- 향수를 만드는 일은 단순히 직업에 의한 책임감이나 장인 정신 같은 것을 훨씬 넘어서서 그의 방식대로‘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지만 자신에게만 없는- 바로 그 ‘냄새’라는 것을 만들어낸다면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불분명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게다가 후각이 남들보다 훨씬 발달되어 있는 그로써는 그 일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잔혹스러운 결말로 보건대, 그것이 자신에게 결과적으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결국 그토록 원했던- 모든 이를 매료시킬 수 있는 향수를 갖게 되고, 그 향수로 인간마저도 그의 손 안에 넣었지만 끝내 자신의 정체성은 가질 수 없었던 공허감과 더 이상의 목적마저도 상실해버린 것이 두려웠던 이유에서 였을까? 그는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향수를 온 몸에 뿌린 채로 부랑자들 사이에서 갈갈이 찢긴 채로 죽음을 맞이한다. 왠지 모르게 이 마지막 대목에서 그의 향기를 맹목적으로 갈구하는, 처절해보이기까지 했던 그 부랑자들이 마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초조한 긴장감 속에서 조여진 채로 살아가면서도 이상이라는 향수를 손에 넣으려고 바둥거리는..어쩌면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해왔던 인간이라는 존재가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순간이었다.또한 어쩌면 사람들 사이에서 배척되고 소외당해온 그르누이의 모습은 사회속의 병든 사람들의 모습-꾸며지지 않은 채, 가장 본질에 가까운-일지도 모른다. 내 경우도 예외는 아니지만 대개 많은 사람들이 나약하고 미완성인 부분은 최대한 감춘 채로, 이상적인 보통의 모습만 내보이려고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태로 내면의 모습을 잊고살아가다가 갑작스럽게 자신이 감추려했던 부분의 모습-이 소설속의 그르누이와도 같은 내 자신의 본질-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그 부분을 쉽게 인정하기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몇 번인가 경험한 일이지만, 감추고 싶었던- 사실은 나에게서 제일 흡사한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곤 했었다. 마치 그르누이를 대하던 다른 사람들처럼 말이다. 아마도 이 소설 속에서 영원한 아름다움은 없을 것만 같다. 영원할 것만 같던 그의 향수마저도 다수의 인간들 속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사랑이란 감정을 통해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퇴색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적인 책의 내용들 속에 묻혀서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이야기기도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그르누이의 이야기 말고도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관심을 갖게 된 부분은 나름대로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을 갖고 살아온 발디니가 사회 속에서 변화되어가는 모습이었는데- 사회적 명예와 부라는 달콤한 조건 앞에서 자신의 일에 대한 주체성과 독특한 그만의 ‘무언가’를 잃고 무너져버리는 내용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전통 있고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이들은 변덕스러운 대중이 요구하는 대로, 겉치레에 불과한 그럴싸한 상품들을 만들어내고- 능력 있는 아마추어들은 자신의 이름도 내걸지 못한 채로 묻혀져가 버리는……. 이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싶어서 한층 더 안타까웠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장인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작품은 단순히 모조품의 수준밖에는 그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남겨져 있는 물건만이 그 나라의 문화가 아니라 기술 또한 그 일부가 되어야 할 텐데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와 사람들의 욕구에 맞추어져 가서는 안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직 이 소설의 모든 부분을 이해하고 읽어내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아있지만 다른 때와는 달리 작가의 의도대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내 주관적인 느낌에 충실하게 감상해 볼 수 있어서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인간의 본질에 가장 가까울 것 같은 한 남자와 허구성을 띄는 소설이라는 특징 속에서도 반영되어 있는 현실 그대로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번 감상은 나에게 있어서는 조금은 특별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