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빗빗 (comb)이란? 머리털을 가지런히 빗어내리는 데 사용하는 도구 -빗은 남녀용에 따라 크기가 달랐다 -용도에 따라 빗살이 촘촘한 참빗과 성근, 얼레빗이 있었다 -머리털을 빗는 데만 사용하지 않고 머리에 꽂아 장식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대나무나 참죽나무와 같은 나무를 사용하여 만드나 대모 혹은 화각 장식을 한 고급스런 빗도 있다.빗〈서양〉 BC 5000년 또는 그 이상으로 추정되는 스위스 호반의 유적에서 빗이 발견된 일이 있고, 고대 이집트의 유적에서도 정교하게 만든 목제와 골제의 빗이 발견되었다. 또한 그리스 ·로마 등에도 상아로 만든 빗이 있었는데, 점차 재료가 풍부해지고 장식성을 더하였다. 18세기 중반 이후 빗이 기계생산되면서부터는 여러 형태의 빗이 출현하였다. 〈중국〉 중국에서는 은(殷)나라 때부터 문물(文物)이 역사적으로 밝혀졌는데, 그 시대의 왕도 허난성[河南省] 안양[安陽]의 유적에서 많은 유물과 함께 머리장식용 빗과 비녀가 출토되었다. 또, 허난성 정저우[鄭州]에 있는 같은 시대 유적에서도 상아 ·골제의 빗, 골제 ·동제 ·옥제의 비녀가 발굴되었다. 목제 ·죽제의 빗도 당시에 사용한 것으로 생각되나 썩기 쉬운 물질이므로 남아 있는 것이 없다.빗한(漢)나라 이후 금 ·은 ·수 ·정 ·대모(玳瑁) 등의 빗이 있었음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고, 당(唐) ·송(宋) 시대 것은 유물로서 다수 남아 있다. 빗은 형태에 따라 빗살이 굵은 것을 소(梳), 가는 것을 비(枇)라고 하며, 또 머리를 정리하는 빗과 비녀와 같이 머리장식에 이용되는 빗의 두 종류가 있다. 〈한국〉 일찍이 낙랑유적에서 목제 머리빗이 발견되었고, 삼국시대 고분에서도 대모로 만든 빗이 발견되었다. 또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서 특이한 형태의 대모제 장식빗이 전해진다. 이 빗은 옛 가야 지방에서 출토된 것으로서 빗살과 손잡이가 직각을 이루었고, 직각으로 꺾인 부분에는 청옥(靑玉)을 끼워 넣은 금제화형장식(金製花形裝飾)을 여러 개 매달았는데, 이들 장식은 가운데가 길고 양옆은 짧게 달려 역삼각형의 모양을 이룬다. 《삼국사기》 흥덕왕 복식금제조 에 의하면 이 때에 이미 대모 ·아(牙) ·각(角) ·목제의 빗이 계급에 따라 달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빗도 나무를 재료로 사용했고, 모양은 반월형으로 옻칠을 하였다.빗조선시대에 사용한 빗은 주칠(朱漆)을 하고 화각(畵角) ·조각 등을 아로새긴 것들이 다수 전해진다. 이 중에서 특히 화각장식을 한 빗은 문양이나 세공이 정교한데, 이것은 여인네들의 애완용 물품으로서의 구실도 하였다. 종류는 얼레빗 ·참빗 ·면빗 ·상투빗 ·음양소 등 다양했고 용도가 각기 다르며, 크기와 모양도 다채로웠다.빗빗의 종류 ① 얼레빗:빗살이 굵고 반원형의 큰 빗. 월소(月梳)라고도 하는데, 엉긴 머리를 대충 가리는 데 사용한다. 대체로 반월형 또는 각형의 등마루에서 빗살이 한쪽으로만 성기게 나 있다. 주칠을 하거나 화각을 장식한 것, 또는 대모로 만든 것도 있으나 목제가 대부분이었다. 오늘날에는 주로 셀룰로이드로 만들며, 자루가 달린 것, 빗살이 양면에 있는 것 등 모양이 다양하다.빗② 참빗: 빗살이 가늘고 촘촘하여 머리를 정갈하게 다듬는데 사용하는 빗 이다. 진소(眞梳)라고도 부르는데, 크기에 따라 대소(大梳), 중소(中梳), 어중소(於中梳), 밀소의 4 가지로 분류한다. 참빗의 양 끝에 대는 넓적한 부분을 마구리라고 하는데 마구리의 재료에 따라 중소의 경우, 우골(牛骨)로 만든 것은 골중소, 나무로 만든 것은 목중소, 대로 만든 것은 대중소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1세기경에 조성된 낙랑고분(樂浪古墳)에서 빗이 출토되었고, 조선시대에는 공조(工曹)에 참빗을 만드는 죽소장(竹梳匠)을 두었다. 예로부터 영암, 담양, 나주, 남원 등지에서 만들었으나 현재는 영암과 담양에서 만들고 있다.빗③ 면빗:살쩍을 빗어 넘기는 빗살이 가늘고 고운 작은 빗. 면소(面梳)라고도 하며, 머리를 마지막으로 정갈하게 다듬는 데 사용한다. ④ 상투빗:상투를 틀 때 머리털을 정리하던 조그마한 얼레빗 모양의 빗이다. ⑤ 음양소:빗살이 한쪽은 성기고 한쪽은 빽빽한 빗. 다용도로 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빗은 머리모양과 더불어서 변화 발달하였다. 머리를 땋거나 쪽을 찌던 조선시대에는 긴 머리채를 처음에는 얼레빗으로 슬슬 가리고, 다음에는 참빗으로 정성을 다해 빗어내려 땋거나 쪽을 찌고, 면빗으로는 살쩍을 빗어 넘겨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쇼트컷이나 퍼머넌트웨이브가 일반화됨에 따라 참빗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빗오늘날에는 종전의 빗을 대신하여 머리털을 손질하는 데 브러시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헤어브러시는 엉킨 머리털을 자연스럽게 고르고 광택을 내며, 웨이브의 모양을 가다듬는 외에 먼지와 비듬을 제거하고 두피에 자극을 주어 피지의 분비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다.빗특수빗 -일본에서는 비듬을 없애 준다는 빗이 판매 -우리나라에서는 헤어젤을 손에 묻힐 필요없는 특수빗 손잡이부분에 헤어젤이나 크림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빗부분에서 젤이나 크림이 나와 끈적끈적하게 손에 묻힐 필요없이 머리손질을 할수있는 빗 제러시 . 젤 펌프의 버튼을 누르기에 따라 양을 조절할 수있다. 일반 시중에서 파는 젤이나 크림을 보충해 사용하며 반영구적이다.빗빗에 대한 상식 ① 소독 -빗을 소독할 때는 석탄산수, 크레졸수, 포르말린수, 자외선, 역성 비누액을 사용한다. ② 빗을 고를때 올바른 선택방법 빗 몸 : 울통 불퉁하거나 비뚤어지지 않은 것 빗살 : 끝이 가늘고 전체가 균등하게 똑바로 나열된 것 빗살 끝 : 너무 뽀족하거나 무디지 않는 것 빗 눈 : 간격이 균등한 것 빗살 뿌리: 약간 둥그스름한 것 전체적으로 비뚤어지거나 휘지 않고 두께가 균등한 것빗빗에 대한 상식 ③ 정전기로 인한 모발 손상 방지 빗의 종류도 정전기와 관련이 있는데 손잡이나 몸판이 플라스틱이나 금속소재면 정전기를 일으켜 제대로 빗질을 할 수 없고 세게 빗질을 하다보면 두피도 상한다. 되도록 나무 손잡이로 된 브러시를 사용하고 나일론이나 플라스틱 소재의 브러시는 사용하기 전에 물에 살짝 담갔다 쓰면 정전기를 막을 수 있다 뻣뻣한 돼지털로 만든 빗이 좋다 ④ 모발 관리의 기초 브러싱 빗질은 두피의 혈행을 자극해서 모근을 튼튼하게 해주는 가장 기초적인 손질법. 두피의 영양분이 머리카락까지 가기위해서는 하루에 1백 번 정도 브러싱을 하는 것이 적당. 머리 감기 직전에도 브러시로 머리를 한번 빗어주는 것이 좋다. 이때 빗은 끝이 둥글고 매끄러운 것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단, 젖은 상태에서 빗질하는 것은 머릿결 손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므로 절대 삼갈 것.{nameOfApplication=Show}
면도기면도기의 유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해왔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로마 시대 그 전부터 사람들은 턱수염이나 머리를 깎을때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가지 도구, 벽화, 그 밖의 여러가지 증거가 아직도 남아있다. 증거로는 - 선사시대의 동굴벽화에서 대합껍질,상어이빨, 날카로운 돌 조각 으로 면도를 하고 있는 남자들을 발견할 수 있다. - 유물에 의하면 이집트에서 청동제 도끼모양의 면도칼 이 사용되었다. - 고대그리스에서 사용했던 초생달 모양의 면도칼 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고대인이 면도를 했다면 그것은 벌레가 수염에 서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전쟁이나 사냥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구 한다)면도기면도기상어이빨, 날카로운 돌 조각-전투를 위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백병 전에서 자기부하들이 유리하게 싸울 수 있도록 수염을 자르라고 명했다고 전해지고, 이집트인들은 전투 에서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수염이나 구레나룻을 깍았다. 고대 로마인들이 처음 사용했던 이러한 면도칼은 15C에 이르러 편리하게 목에 칼집이 달린 편리한 면도 칼이 나왔다.그 후에도 면도칼의 변천과정은 -프랑스인 장 자크 페레는 목공구 대패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목재 보호 틀의 면도기 를 제작 -18세기 말 영국 쉐필드에서는 오늘날 업소용으로 대중화된 자루 달린 면도기 를 생산면도기그리고 변천과정은 그 이후에도 상상을 초월해서 발전을 거듭해서 오늘날의 안전면도기에 이르게 되었다. -1895년 병마개 제주회사의 외판원으로 근무하던 미국인 질레트는 갈아 끼우는 면도날'안전면도기'를 특허를 받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시 군납의 기회로 특수를 맞게된 1회용 면도기는 이후 남성에게 부과된 새로운 일상의 업무를 생활에 정착시키면서 현대인의 얼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면도기최초의 안전 면도기의 발명한 계기 이 면도기를 발명한 질레트는 자신이 면도를 하다가 얼굴을 베어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얼굴을 베이지도 않으면서 안전하게 면도를 할 수 있는게 없을까 하고 고민하게 되는데, 어느 날, 이발을 하러 갔다가 이발사가 머리에 빗을 대고 머리카락만 안전하게 자르는 모습을 보고 질레트는 칼날을 얇은 철판 사이에 끼워서 털만 칼날에 닿도록 하면 살을 베일 염려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즉시 집으로 돌아와 신제품을 만들어 실험에 성공하였다. 그는 곧 특허를 출원하였다.면도기그후 질레트 안전면도기는 사업 자금 부족, 소비자의 인식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1904년 11월 5일 특허 를 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안전 면도기는 남성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 후, 안전 면도기는 몇 번의 개량을 거쳐 오늘날 질레트 면도기에 이르렀고, 20세기 주요 발명품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면도기면도기질레트가 개발한 안전면도기, 국내에도 상륙하다!안전면도날면도기깡통면도기,1960년대2중날면도기,1970년대면도기전기면도기,1970년대-면도가 훨씬 쉬워졌다면도기현재 질레트면도기 시장 질레트는 전세계 면도기 시장의 65%를 장악하고 있는 다국적기업으로 100년 가까이 쌓은 마케팅 노하우와 전세계에 뻗친 유통망, 세계화된 조직, 여기에 과감한 기술개발 투자까지 갖추고 있다. 지금은 지구촌 1억 3000여만명의 남성들이 질레트면도기를 매일 사용하고 있다. 질레트가 오랫동안 강한 이유는 끊임없는 신제품 개발 로 소비자들의 욕구에 부합한다는 사실이다. 질레트 지금도 연평균 20여개의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고 총 매출액의 40% 정도가 최근 5년 이내에 개발된 신제품에서 나온다.{nameOfApplication=Show}
..PAGE:1우리나라와 몽골의 의식주 비교..PAGE:2우리나라와 몽골의 의식주 비교의생활(우리나라)우리 민족의 역사와 얼이 담긴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의상은 한복이다.한복의 역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한복의 흔적을 발견한 것은 고구려 시대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 속 벽화에서였다. 고구려는 중국 당나라시대의 의상과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 후 한국의 왕과 몽골족 공주와의 혼사로 중국 용안시대의 옷이 한국에 들어왔고, 그것이 한복의 시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오랫동안 한복은 시대에 따라 저고리 길이, 소매통 넓이, 치마폭이 약간씩 달라질 뿐, 큰 변화는 없었다. 즉 한복은 둥글고, 조용하고, 한국의 얼을 담고 있다. 실크나 면, 모시로 주로 만들어졌으며, 고름의 색상이나 소매통 색상이 여자의 신분을 나타낸다. 또한 나이와 사회적 지위, 계절에 따라 색상에 변화를 줄뿐 옷의 모양은 안동의 시골아낙이나 대통령부인이나 모두 똑같다. 18m의 원단에도 불구하고 가볍고, 입기 쉬운 점이 한복의 장점이다. 명절과 결혼식같은 특별한 날 주로 입혀진다. 그리고 결혼과 같은 특별한 예식에는 평민들도 귀족이 입는 화려한 빛깔의 옷과 장신구로 한껏 멋도 내었다.신석기 시대 유적지에서 바늘이나 실을 잦던 도구들은 가장 오래된 우리 옷의 자료이다. 또 농경문 청동기에는 저고리와 바지의 기본 복식에 성인 남자는 상투를 하고, 미혼남자는 머리를 풀어 헤친 모습이 나타난다. 그 뒤 부족국가시대를 거쳐 삼국시대에 이르면 두루마기를 중심으로 저고리, 바지, 치마, 두루마기를 중심으로 모자, 허리띠, 화 또는 이를 착용하는 고유의 식 양식으로 이루어 진다. 우리 옷은 아한대성 기후로 삼한 사온이 계속되는 자연 조건과 북방 유목민 계통의 문화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그래서 속옷부터 겉옷인 두루마기에 이르기까지 몸을 싸는 형식이다. 또 저고리와 바지가 떨어져있고, 앞이 트여 있는 활동적인 옷이다.복식이란 사람의 몸위에 표현되는 것이다..PAGE:3우리나라와 몽골의 의데 이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말을 탈 때 충격으로부터 내장을 보호하는 기능적 역할을 한다.1)의복재료몽골족이 의복재료는 가축으로부터 얻는 것이 특징이다.양털로 만든 펠트를 비롯해 5종가축의 털은 저마다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 또한 그 가죽을 발효된 젖으로 무두질하여 의복을 만든다. 모피 외에는 무명이나 비단도 의복의 재료로 널리 쓰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들은 주로 중국과 무역을 통해 수입되었으며, 유목민들은 말을 비롯한 그 밖의 가축과 그 부산물을 제공하고, 농경민들로 부터 주로 비단을 가져왔다. 이른바 이었다. 유목민측에서 보면 이러한 교역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가축 때문이었다. 가축 외에 사냥에서 얻은 흑단비를 비롯한 야생동물 모피도 외 복재료로서 중요시되었다.2)의복의 특징몽골족은 부족마다 옷 색깔과 디자인, 만드는 방법이 다르다.의복의 문양은 각 부족집단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 예컨대 부리야트 몽골족은 모자 위에 바느질로 꿰맨 줄을 11개~13개 정도 넣는다. 이것은 그들의 씨족집단 수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집잔적 유대를 강조한 것이라 할수 있다.3)모자와 머리장식몽골 남자들은 옛날부터 끝이 뾰족한 모자를 썼다.모자 위에는 다시 붉은 술을 장식하는데, 이 붉은 술은 몽골족과 기타 민족을 구별하는 상징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몽골국 서부 우량하이족등 일부 집단 사이에서만 전통적인 모자를 쓰는 습관이 확인되는 상황이다. 여자들은 결혼하면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선명한 색상의 머리장식을 하는데, 진주나 금,은,산호,터어키석,마노등 보석을 붙인 머리장식은 호화찬란하고 그 무게가 수㎏이나 되는 것도 있다.여자 아이들은 모자 맨 위에 보석장식이 달린 ‘토르촉’이라고 하는 모자를 쓰는데 부잣집 아이들은 모자 끝에서부터 길게 내려온 끈에 진주를 다는 경우도 있고. 출가한 여자들은 자주색 모자에 은으로 장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PAGE:4우리나라와 몽골의 의식주 비교의생활(몽골)4)고탈(장화)여름용 고탈(장화)은 가죽과 천을 재료 넥타이이다.- 명절때는 몽골 전통옷인 델을 입는 것도 괜찮다.- 명절때(신찔, 차강사르) 방문시 항상 모자를 착용한다. 이들은 명절때 손님이 올경우 주인이나 손님이나 모자를 쓰고 상대방을 맞는것이 예의이다.- 몽골인과 밖에서 만날때는 절대로 반바지를 입지 말며 부득이한 경우에 츄리닝을 제외하고는 삼가는 것이 좋다...PAGE:5우리나라와 몽골의 의식주 비교식생활(우리나라)한국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음식 김치는 한국인에게는 매 끼니마다 없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음식이며 맛과 영양, 저장성 등을 고루 갖춘 자랑스러운 음식이다.각 나라마다 식품을 조리하고 저장하는 고유한 문화가 있지만 채소를 저장하는 방법에 있어서 김치는 단연 세계 으뜸이라 할 수있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전통적으로 채소 위주의 식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채소를 조리하고 저장하는 방법이 매우 발달되었다. 채소를 재배할 수 없는 겨울철 3∼4개월 동안 신선한 상태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소를 먹을 수 있기 위해서 우리 선조들은 김치라는 매우 유용한 채소저장법을 개발해내었던 것이다.김치는 사용하는 재료와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다르며, 사용하는 소금의 양과 양념도 다르다또, 우리나라대표음식으로 외국에 가장 잘 알려진 우리 음식 중하나가 바로 불고기이다. 1950년대 이전에는 '너비아니' 라고 불렸다구한다. 1950년대 이후에 와서야 불고기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요즘의 불고기는 과거의 너비아니보다 얇게 썰어 만드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PAGE:6우리나라와 몽골의 의식주 비교식생활(몽골)1)몽골음식전통적으로 몽골의 음식은 그들이 사는 환경과 매우 밀접해 있다.고기, 유제품, 밀을 주식으로 삼는데 여름에서 가을까지 풍성한 우유로 유제품을 만들고 이를 1년 내내 먹는다. 육식이 가장 풍성한 계절은 겨울로 여기에서 제공되는 지방으로 겨울 추위를 이겨낸다. 몽고 음식의 특징은 고기가 요리의 주요 재료가 되고, 유제품으로 다양화하게 응용하고, 야채 요리가 많지 않으며별다른 양념 없이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는 것이할 수 있다.먼저 보드카는 스미르노프 등의 러시아산 보드카나 칭기스칸 등의 몽골산 보드카를 즐겨 마시며 알콜도수가 40도 정도로 독한 편이다. 반면 아이락(6~7 도) 이나 아르히 등은 비교적 알콜 도수가 낮아 편하게 마실수 있으나 이것도 은근히 취할 수 있기 때문에 과음하는 것은 금물이다.아이락은 말젖을 발효시킨 술로 한국의 막걸리와 비슷한 맛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몽골인들은 어려서부터 거의 식사처럼 아이락을 마시고 자라기 때문에 아이락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또한 아르히는 가축의 젖으로 만든 요구르트를 끓여서 증발시킨 후 액화시킨 술로써 투명하며 알코올 농도가 약하고 맛이 고와 정종과 비슷하지만 젖냄새가 나며 은근히 취하는 고급 술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전통적으로 몽골인들은 술을 상당히 즐기는 편이고 가정형편에 상관없이 손님에게 술 대접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으며, 손님이 술에 취할 때 까지 술을 권하는 습관이있다.따라서 몽골에서 술을 마실땐 적절히 자기의 주량을 조정해 가면서 술을 마시는 요령이 필요하며 술자리에 초대받게 되면 비록 술을 못한다 하더라도 어느정도의 예의는 갖추는 것이 중요하고, 정말 술을 못할 경우는 사전에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좋다.또한 한국은 술잔을 완전히 비우면 술을 따르지만 몽골에서는 술잔이 조금만 비워도 술을 따른다. 참고로, 몽골인들은 보드카나 마유주를 잘 받아 마시면 무척 대견스러운 듯 흡족해 하며 아주 좋아한다...PAGE:7우리나라와 몽골의 의식주 비교식생활(몽골)3)식사시 예절몽골사람들은 수태차라고 하는 차를 즐겨 마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이 몽골인들은 수태차를 마시는 것이다.수태차는 끓는 물에 우유가루와 짭짤한 맛을 내는 약초를 섞은 것으로 익숙해지면 보리차 마시듯이 마시게 된다. 유목생활을 하던 몽골인들은 물이 가깝고 건초가 많은 곳에 겔을 짓고는 가축을 방목하였다. 따라서, 항상 물을 길어다가 조금씩 아끼며 사용했으며 겨울에는 아예 얼음덩어리를 집에다 갖다놓고 그것을 깨인들은 먼저 상대방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한다음 수태차를 사기그릇에 따라주며 두손으로 건내준다. 이때, 받는 사람 역시도 두손으로 정중하게 받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한다그리고는 바로 입에다 대고 조금이라도 마셔야 하는데 한번에 다 마실 필요는 없지만 남겨서는 안된다. 실례가 되는 것이다.몽골인들은 차나 술을 상대방에게 권할때 항상 오른손가락을 모아 잔 밑부분을 받쳐 들고 왼손으로는 오른 팔꿈치를 받들면서 권한다. 하지만, 권하는 사람이 왼손잡이 일때는 반대로 해도 상관 없지만 받을때는 항상 왼손으로 오른팔꿈치를 받들며 잔을 받아야 한다. 나름대로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몽골의 전통옷인 델은 소매가 길어 가만히 팔을 내려놓으면 소매가 손을 덮는다 이는 추운겨울에 손을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가운데 고기들과 술잔이 놓여있는 상위에서 음식을 먹거나 술을 따르고 권할때 소매가 유난히 크고 길어 중간부분을 끌어당기며 받쳐주지 않으면 음식을 먹는데 아주 불편할 뿐 아니라 옷이 음식물에 닿아 옷과 음식이 더러워 진다.음식을 먹을때도 주인이 권하면 역시 두손으로 받아 감사의 표시를 하는데 이때는 잔이 아니라 그릇이므로 두손을 내밀며 그릇을 정중하게 받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PAGE:8우리나라와 몽골의 의식주 비교주생활(우리나라)한옥은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가 공존하는 한반도의 더위와 추위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한국의 독특한 주거 형식이다.한옥의 가장 큰 특징은 난방을 위한 온돌과 냉방을 위한 마루가 균형있게 결합된 구조를 갖추고 있는 점이다.한옥의 형태는 지방에 따라 구조가 다르다. 북부 지방에서는 외부의 냉기를 막고, 내부의 열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구조로, 방을 두 줄로 배열하는 형태의 겹집 구조와 낮은 지붕의 한옥이 발달했다. 이에 비하여 남부 지방에서는 바람이 잘 통하도록 방을 한 줄로 배열하는 홑집 구조와 마루 구조가 발달했다.또한, 한옥은 상류주택과 민가에 따라서도 구조를 달리한다. 대가족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