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晩 路線의 재검토"를 읽고.- 民族統一史觀의 立地에서 -ⅰ.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역사에 대한 편협했던 이해와 편견을 새삼 느낄 수 있었으며, 이승만(李承晩)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크게는 우리 민족사에 그가 미쳤던 영향과, 작게는 한 개인으로서의 협소(狹小)했던 정치적/역사적 민족운동가로서의 가치에 대해 중점적으로 전개해 나갈까 한다. 물론 글의 성격상 '이승만 노선의 재검토'라는 글을 바탕으로 작가가 표현하려 했던 의도에 따라 중심적인 내용을 뼈대로 해서 간략히 서술해 보기로 하겠다.ⅱ.우리 민족의 역사라는 입지(立地)에서 볼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이 시대의 가장 기본적인 역사적인 사실은 민족이 남(南)과 북(北)에서 서로 다른 국가적 조직을 이루고 대립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 이 분단 대립을 극복하려는 통일 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언젠가는 통일이 이루어져 통일 민족 국가가 서는 날, 지금의 이 시대를 또는 그 무엇이라고 부르든 위에 말한 사실이 역사적 기본성격을 이룰 것임은 틀림없다. 이 시대의 기본 뼈대를 만든 계기를 내부에서 찾는다면 한반도 남북에서 각기 다른 국가적 정치조직을 성립시키고 대결을 강화해온 것이며, 한편에서는 이를 민족사적 모순으로 받아들이고 극복을 위한 통일 운동이 있은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 양면 가운데 어느 편이 전진적인 것이고 어느 것이 반민주적인 것인가는 민족사의 흐름에 따라 판가름 날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통일 민족국가를 지향하는 쪽에서 본다면 대답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인물과 사태를 민족사적 입장에서 평가한다면 결국 그 어느 측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기준으로 해야 할 것이다.91세의 긴 생애를 산 이승만도 역사적 기준으로 본다면 결국 그 어느 편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를 따져야 할 것이며, 그 밖의 다양한 평가는 민족사적 의미와는 별개의 것이 될 것이다. 한반도 남쪽에서 오늘 이 시대의 기본 성격의 양면 가운데 한 면인 분단을 만든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이승만과 그 지지자들이 정치적 지배력을 확립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승만은 한반도 남쪽에서 오늘 이 시대를 형성함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이승만은 1875년 3월 26일 황해도 平山군 陵內동 이경선(李敬善)과 김해 김씨 사이의 6대 독자로 태어나 19세까지 전통적 교육을 받는다. 1894년 배제학당에 입학, 영어를 배우는 것으로 시작하여 개화의 물결에 접하고 독립협회에 참가, 7년의 옥고를 겪으며 사회적 생애를 시작하여 민족사적 사건과 연관을 맺기 시작한다. 1904년 장로교란 종교를 갖고 독립호소의 밀사로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톤 대학에서 수학과 박사학위를 받고 일생의 생활내용이 될 와 를 익히고 빠져든다. 1919년 3 . 1 운동의 결과로 생긴 임시 정부의 임시 대통령, 구미위원 부위원장 또는 한국위원회 부위원장의 직함으로 특유의 외교활동을 하여 임정에서 탄핵을 받기도 하며 분열을 일으키기도 한다. 1945년 해방과 함께 귀국하여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 1948년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여 분단체제를 확립하기에 이른다. 1950년 전쟁을 거치면서 분단체제를 더욱 강화하며 독재로 질주하다가 1960년 4월 혁명으로 실각, 65년 7월 19일 하와이에서 사망 유해로 귀국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그의 파란만장했던 일생 중에서 가장 우리가 중요하게 다시 평가해 보아야 할 시기는 '해방을 전후한 단독정부 수립과 남북 분단체제를 확고이한 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 그가 의도했던 생각과 그의 행적/후대의 역사적인 평가를 토대로 하여 이 글에서는 중점을 두고 있다.이승만은 제일주의자였다. 그의 독립운동 기간 중 유일무이한 독립운동 수단과 전략은 호소를 통한 외교활동 이였다. 1904년 도미하여 한미우호조약을 발동하여 미국이 일제의 한국침략을 막아줄 것을 탄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 그의 대미외교활동은 1960년 하와이 망명을 위한 입국사증을 얻는 것까지 장장 56년에 걸친 일이지만 그 노력에 비하면 성과는 실로 미미한 것이었다. 이처럼 그의 외교 활동은 실질적으로 한국의 독립운동에는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격렬한 비판까지 불러일으키기에 이르렀다. 또 그는 만주와 중국에서의 무장항일 운동에 무지하였으며, 국내에서 발전한 계속적인 민중의 저항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이렇듯 해방 후만 하더라도 '대미(對美)의존' 이외에는 아무런 국제적인 지위를 얻지 못한 것이 그의 외교의 전부였다. 그를 두고 혹은 라는 의론이 있기는 하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입지에서 한국을 바라보았다는데 그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이승만을 두고 라고도 하고 라고도 평가하는데, 그는 3 . 1운동의 결과로 생긴 임시정부의 임시 대통령을 지냈고,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말하자면 한반도에서 가장 크게 민주주의의 덕을 현실적으로 본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민주주의적 이념이 철저하지 못했음은 사실이다.이런 가운데서도 이승만을 가장 높이 평가할 점은 불요불굴의 항일의 태도이다. 이승만은 한국전쟁중 맥아더가 일본군의 전선투입을 권고하자 극구반대하는등 그가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의미는 앞으로도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결국 이승만은 항일운동가였음에는 틀림없지만, 민족사의 진보에 대해서는 너무나 인식이 부족했다.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그는 정략만을 품고 귀국하기에 이른다. 그는 귀국 첫 연설에서 모두 감격이나 세계관이나 경륜 같은 것은 표출되지 않은 정략과 야망만이 깔린 그런 것이었다. 다만, 아직 감격에 들떠 있던 국민들이 실망을 가져오고야 말 냉정한 분석이 없었던 것이 그에게는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민족의 통일과 대중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용해할 수 있다는 태도가 김구와 여운형의 태도라면, 권력획득을 위해서라면 그 무슨 태도라도 꾸밀 수 있다는 것이 이승만의 태도였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국내적 기반이 없었던 그로서는 한만당을 주축으로 정치적 기간조직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는 공산당과 건.준등 이른바 좌익계와 결별하고 임정 및 한민당의 지지 위에서 대권을 잡으려고 노력하기에 몰두한다. 그리고 일제하의 부와 명예를 누렸던 친일계열의 인사들 마저 포섭하여 경제적인 측면까지 마련하게 된다. 결국 친일세력을 보호함으로써 건국 뒤까지 그들은 이승만 지지의 핵심세력이 된다.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는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가 거론되어지고 다시 정국은 혼란으로 치닫는 한편, 좌 . 우익이 갈라서게 되고 미 . 소간의 정치적 마찰로 인해 대립되어지는 상황에서 이승만은 재빠르게 남한 단독정권 수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 이승만은 당초부터 남북분단이라는 사태에 대해서 반공 이외에는 아무런 대책도 갖고 있지 않고 노력도 없었다. 이승만은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자는 외교활동을 벌이기에 이르렀고, 미 . 소간의 냉전이 확실해지자 이것으로 인한 한반도의 변화가 자기의 외교적 성과로 심기를 잊지 않았다. 11월 5일 유엔 정치위원회는 한국 전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할 것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을 구성하자는 안을 소련대표의 퇴장 하에 가결하고, 유엔위는 한국에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김구와 김규식은 끝까지 반대하였으며, 특히 김구는 "3천만 동포에 읍 고함"이라는 비장한 결의를 보이며 단독정부를 반대하고 나섰다. 이에 이승만은 모윤숙 등을 시켜 유엔 학위를 설득시켜 이승만을 국민적 지도자로 부각시키고 단독정부를 추진하는 쪽으로 한위의 보고서를 작성토록 한다. 미국의 절대적 영향아래 있던 당시의 유엔은 2월 26일 소총회에서 유엔 한위가 임무를 수행 할 수 있는 지역, 곧 남한에서 총회결의대로 실행토록 하자는 미국 안을 통과시킨다. 이승만은 백범의 암살( 48 . 6 . 26)과 조봉암(曺奉岩)의 제거로 통일 세력의 정권에 대한 도전을 피할 수 있게 되었고, 계속 술수와 탄압으로 한민당계를 주축으로 한 야당의 공격을 이겼지만, 결국 1960년 학생을 선봉으로 한 국민적 연합세력과 미국의 지지가 끝남에 따라 실권하고 말았다. 어떻든 이렇게 하여 유엔의 승인을 받은 정부가 수립되기에 이르렀다. 또 하나 이승만에 있어서 가장 기이한 것중의 하나가 경제정책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평론가들은 지적하는데 미국에서 원조를 얻는다는 것이 아마도 유일한 정책이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같이 분단체제의 확립 강화에도 불구하고 명분상 통일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백범의 표현대로 분열이 강화될수록 통일 열망도 시간과 함께 성장 할 것이다. 다만 이승만은 협상배제 . 무력통일 이외의 일체의 통일 운동은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통일론은 1972년 7 . 4 성명으로 공식적으로 부정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목 차 ]Ⅰ. 서론 1Ⅱ. 본론 1-61> 신화의 기원 1-3① 성서설 1② 역사설 1③ 우화설 2④ 자연 역사설 22> 그리스ㆍ로마신화 3-43> 신과 인간의 이야기 54> 로마의 신과 실용주의 6Ⅲ. 결론 6-7※ 참고문헌 7그리스ㆍ로마신화를 읽고Ⅰ. 서 론『그리스 로마 신화 (Greek Roman Mythology)』를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호기심이 지나쳐 경고를 무시하고 상자를 열어본 판도라의 이야기, 메아리가 된 에코의 이야기, 아테나 여신에게 도전하다 거미가 된 아라크네의 이야기 등이 오래도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영웅들의 모험담이나 한 개의 사과가 원인이 된 트로이 전쟁까지 꽤 열심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었던 기억난다. 초ㆍ중등학생 때 열심히 읽었던 셜록홈즈나 뤼팡이 등장하는 추리소설 못지 않게 그리스 로마 신화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고, 그것은 신화 속의 신들은 모두 아름답고 강하고 전지전능하면서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민하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싸움을 하는 모습이 재미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이룰 수 없는 능력과 전지전능한 그들의 모습에 인간의 상상력을 대입하여 신적 존재로 신성하게 살고픈 인간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되어 진다.첨단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시대적 반역 속에 살고있는 요즘 세대에게 오래 전의 옛날 신화적인 이야기가 흥미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만약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지 않았다면 인간이 신이 될 수 도 있는 마지막 권리를 포기한 것이라 생각된다. 모든 세대는 신화(神話)를 가지고 있고 그 신화야말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자신만의 신화를 꿈꾸며 살아가는 세상에 다소 터무니없고 진부한 내용이 될 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난다면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세상과 오늘날 찬란한 사상적 과학적 이성적인 서양문명을 이끌어온 그들의 배후에 이러한 뿌리 깊은 전통적 바탕이 존재하고 있다는하고 또 믿고 있던 것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든 아니면 공상에 의하여 꾸며진 이야기이든 그 속에는 시사(示唆)나 암시가 포함되어 있다. 신들이나 초자연적인 요소가 일상적 사실은 아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에 있어서는 이 모든 것이 당대인들 특유의 미화작용(美化作用)을 거쳐 인간화된다. 이렇게 하여 이상한 기원을 가진 신들도 그리스 조각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유연한 아름다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신화(神話)는 우주의 기원, 인류의 탄생, 신이나 영웅의 업적, 민족의 역사 등 고대인의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이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지 자신들의 신화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끊임없이 후대에게 전해져 내려왔다. 신화의 최초이야기는 신의 개입과 인류의 탄생으로 시작하고 영웅의 출현과 인류의 진보, 전쟁들로 계속된다.그리스 로마 신화 역시 우주최초의 혼돈상태인 카오스(chaos)에서부터 시작되며, 하늘과 바다와 땅의 생성과 신들의 등장, 인류의 탄생 등을 그리고 있다. 그리스인은 상상력이 왕성하였으므로 모든 자연물에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자를 거주시켰고 태양과 바다로부터 가장 작은 샘물이나 시냇물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세상은 어떤 특별한 신의 지배 아래에 있다고 상상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속에는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이야기들이 많고 고정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억지로 맞추었다고 느껴질 만한 이야기들도 많다. 그렇다면 이런 신화속의 이야기는 실제로 어떤 근거가 있으며,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궁금해진다. 철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여러 학설을 주장했다.① 성서설(聖書設) : 이 설에 의하면 모든 신화적 전설은 사실이 위장되고 변형되기는 했으나 모두 성서의 이야기에 유래한다는 것이다.② 역사설 : 이 설에 의하면 신화의 등장인물은 다 실재 인물이었고 그들에 관해 이야기되고 있는 신화나 전설은 모두 후세의 사람들이 부가하거나 장식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③ 우화설(寓話設) : 이 설에 의하면 고대인의 모든 신화는 우화적이고 상 더 옳은 견해일 것이다. 또 이행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에 기인한 신화도 많다는 것과 지명이나 인명의 유래를 설명하려는 같은 욕망에서 발생한 신화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2> 그리스ㆍ로마신화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요 부분은 이미 선사시대에 형성되었다. B.C. 3000년이래 지중해에는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하는 크레타 문명이 있었고 이것이 커다란 세력이 되어서 그리스 본토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한편 B.C. 2000년경부터 아카이아 인이라고 하는 그리스 민족이 북방으로부터 그리스 반도의 각지로 남하하여 문화적으로도 세력을 뻗쳐서 미케네 문화를 구축하였다. 다시 B.C. 12세기에는 도리스 인이라고 하는 그리스 민족이 침입하여 먼저 그리스에 들어온 민족은 새로 들어온 민족에게 정복당하기도 하고 또 지중해로 도망쳐 소아시아로 이동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이주민과 그리스 본토의 선주민(先住民)들이 섞여 고대 그리스 문화나 신앙을 이룸으로써 신화에 있어서도 자연히 여러 가지 요소가 혼합되게 된다. 그래서 신화의 내용도 복잡해져 여러 가지 불일치나 모순을 포함한 점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커다란 특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는 그리스 신화를 체계적으로 얘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신과 영웅의 생생한 모습을 전했다. 그 외에도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그리스의 삼대 비극 시인인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등도 그리스 신화를 전해준다.오늘날 그리스 로마 신화속에 등장하는 올림포스의 신들을 믿는 현대인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문학으로 미술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고 그들의 지위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그리스 로마 신화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문학이나 미술 등 각 분야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가 단순히 재미있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인간 심리의 비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신화의 가치는 인간 생림포스의 신들· 제우스 : 올림포스의 최고신· 헤라 : 제우스의 아내이자 누이. 여신중의 최고신. 가정의 수호신· 아테나 : 지혜의 여신이자 전쟁과 평화의 여신.· 아프로디테 : 사랑과 미(美)의 여신.· 아폴론 : 태양의 신. 궁술(弓術)과 예언과 음악의 신· 아르테미스 : 달의 여신. 수렵(사냥)의 여신.· 데메테르 : 농업의 여신.· 헤스티아 : 화로의 여신· 헤르메스 : 신들의 전령이며 나그네의 수호신.· 헤파이스토스 : 화산(火山)과 대장간의 신. 천상(天上)의 명공(名工).· 아레스 : 전쟁의 신.· 디오니소스 :술의 신.· 에로스 : 사랑의 신. 큐피드· 포세이돈 : 바다의 신· 하데스 : 지하세계의 신㉢ 올림픽 경기그리스 남서부의 엘리스(Elis)라는 지역에서는 제우스를 모시기 위해서 4년마다 특별한 경기를 열었다. 올림포스산을 경배하기 위한 이 경기는 바로 올림피아(Olympia)라는 계곡에서 개최되었다. 몇 년 뒤 그리스 최고의 조각가 피디아스는 이 경기의 개최지에 《올림피아의 신 제우스》라는 동상을 세웠다. 이 동상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기록에 남아 있는 최초의 올림피아 게임은 기원전 776년에 열렸다. 이 경기는 그리스 문화권에서는 대규모행사였다. 그리스인들은 우승자를 존경했으며, 이 경기를 기준으로 연도까지 계산했다. 즉 매 4년은 1올림피아드가 되는 식이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들어오고나서 이 경기는 이교도의 축제로 여겨져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결국 서기 394년 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약 300회 정도 개최된 이 경기를 폐지시켰다. 그러나 1896년 이 경기는 다시 부활했다. '올림피아 경기'(Olympian Games)대신 '올림픽 경기'(Olympic Games)라는 현대적 명칭으로 개칭된 이 경기의 부활 첫 개최지는 그리스의 아테네였다. 그후 이 경기는 여러 나라에서 개최되었다. 제 1, 2차 세계대전 때문에 잠시 중단되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 4년마다 개최되고 있다. 결국 제우스는 이 았던 것이다.㉥ 레테 Lethe그리스어로 '망각'이라는 뜻. 죽은 자들의 영혼은 하데스에 있는 레테의 강에서 물을 마시고 전생의 기억을 잊어버린다.㉦ 카오스 Chaos그리스어로 '광활한 구멍'이라는 뜻이다. 무한의 우주공간속에 자리잡은 '부동의 덩어리 카오스'. 카오스는 우주최초의 혼돈상태, 무질서를 뜻한다.㉧ 죽은 자들을 배로 건네주는 카론하데스(지하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스틱스강을 건너야 하는데 카론(Charon)이라는 험상궂은 노인 뱃사공은 은전 한닢을 받고 죽은 자들의 영혼을 실어다 준다.㉨ 크레타문명에게해의 남쪽 끝에 있는 크레타(Crete)섬은 제우스가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며, 그가 에우로파를 납치해 데려간 곳이기도 하다. 에우로파의 아들 미노스(Minos)는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국왕이 되었다. 신화에서는 미노스 왕의 크레타섬에는 수백 개나 되는 거대 도시가 있었다고 전해졌다. 크레타섬의 영화는 이후 단순한 전설로 취급되었으나 1890년 영국의 고고학자 에반스의 발굴로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크레타섬의 고도로 발전된 문명은 세상사람들을 놀라게했다. 크레타문명은 그리스의 전성기보다 몇 세기나 더 거슬러 올라간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고대문명은 '미노스 문명'이라고도 불린다.㉩ 호메로스 HomerosB.C. 800∼B.C. 750 그리스 최고의 서사시 『일리아드』(Iliad)와 『오디세이아』(Odysseia)의 저자로 전해지고 있다. 호메로스는 늙은 장님 음유시인으로 이곳저곳 방랑하면서 때로는 왕의 궁중에서, 때로는 미천한 농가에서 하프 소리에 맞춰 그 자신의 시를 읊으며 청중이 베풀어주는 선물에 의해 생활했다고 전해진다.㉪ 일리아드트로이의 또다른 명칭인 일리오스(Ilios)에서 유래한 것으로 '일리오스 이야기'라는 뜻이다. 십 년 간에 걸친 그리스군의 트로이 공격 중 마지막 해에 일어난 사건을 노래했다. 트로이전쟁을 중심으로 아킬레우스(Achilles)의 무공과 그의 분노들이 빚어내는 전쟁의 이야기이다.㉫ 오디세이아'오디 있다.
환경보전형 농업과 농업환경(農業環境)에 농약(農藥)이 미치는 영향.xxx (xx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화학과 xxxxxx)Ⅰ. 서 론농업이 산업의 주체이고 공업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시대에서는 의 . 식·주·건강·교육·보건 등 생활 환경에서는 문제가 많았으나 자연 환경이 오염될 우려는 없었다. 농업은 지구상의 현존하는 자연 조건을 전제로 성립하고 발전되어 왔으므로 자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시키는데는 유리하며, 농업의 초기 단계에서 토양 침식과 같은 자연환경 파괴 요인이 전혀 없지는 않았으나 농업 자체가 가지는 환경 보전 기능이 크고, 농업 이외의 산업으로부터의 오염 파괴 요인이 적었기 때문에 인류의 생활이나 농업에 좋은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자연의 은혜를 받아서 자연 속에서 발전해 온 인류는 근대 과학의 발전에 따라서 자연으로부터 벗어나서 이의 정복을 시도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와 같은 효율적인 사회제도와 근대 과학이 결합되면서 인간의 생산력은 급속히 높아져서 경제 성장의 속도가 빨라졌다. 특히 20세기 후반기의 고도 경제 성장 단계에 이르러서는 공업화, 도시화의 급진전에 따른 자연 환경 오염 파괴의 정도가 극심하게 되어 인류는 대기오염, 수질오염을 위시한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인하여 직접적인 생존 위협을 느끼게 되었으며, 이들 공해로 인한 환경 위기의 인식과 대책이 범세계적인 과제로 되었다. 특히 우리 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비교적 짧은기간 내에 공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으므로 심각한 환경오염과 자연 파괴를 가져왔다.농업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이므로 자연이 파괴되면 생산의 기반을 잃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도 경제 성장정책 하의 농업은 일정한 경영 면적으로부터 가능한 많은 수확을 얻기 위해서 기계, 비료, 농약을 많이 사용하는 산업으로 변모하였다. 그 결과 자연을 오염시키고 인간의 식량인 생산물도 유독 물질을 함유하게 되었다. 농업이란 원래 자연 생태계에서 에너지의 흐름이나 물질의 순환을 인위적으로 조절하여, 생물의 생산력을 높이려고 하자연 파괴가 급속히 진행하는 곳에서는 농업이 가지는 환경보전적인 역할은 실로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따라서, 이 글에서는 주로 농업과 관련된 환경 분야,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는 측면에서 농약이 우리 농업에 미치는 영향과 앞으로 우리가 관심을 두고 역량을 집중시켜야 할 환경 지향적인 농업의 구체적인 방향을 되짚어 보고자 함에 중점을 두고 기술해 가려 한다.물론 자료의 미숙함과 문체의 어눌함, 그리고 다소간의 어설픔으로 인해 불투명한 논리(論理)를 전개하더라도, 지극히 주관적인 무지(無智)함에서 오는 개인적인 사정에 의한 것임을 밝혀둔다.Ⅱ. 농약이 농업환경에 미치는 영향1. 농약의 국내 사용 현황우리나라의 농약 사용을 5년 내지 10년 간격으로 계산한 결과는 아래의 표와 같다. 이에 따르면 1970년 까지는 조방농업(粗放農業)을 하는 나라의 소비 수준인 2kg/ha 이하 였으나, 그 이후에는 매년 20%씩 증가하여 최근에는 집약농업(集約農業)을 위해 농약을 많이 사용하기로 알려진 일본, 이태리, 이스라엘의 소비 수준에 따라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표 1. 농약의 연도별 국가별 소비추세(단위; 농경지 1ha 당 유효성분 kg 수)국 명 기 간 농약 사용량한 국 1951 - 60 (0.4)1961 - 70 (1.4)1971 - 80 4.51981 - 85 7.51986 - 90 10.81991 - 93 12.9 일 본 13.4 31.8이태리 11.7 13.8이스라엘 11.4 -미 국 2.2 3.1서 독 2.1 2.6* ( ) 안의 숫자는 농약제제 또는 기준 약제 사용량으로 부터의 측정치임.농약의 1981년 이후 사용량을 보면 활성(activity)별 사용 목적과 살포지역에 따라 변화되고 있으며, 최근 3 년간(1991-93)의 사용량과 1993년 품목수를 보면 아래의 표 2 와 같이 나타나고 있다.농약의 사용별을 활성별로 보면 살균제 34%, 살충제 35%, 제초제 20%를 차지하고 있고, 답작용(논) 38%, 전작용(밭) 51%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국내의 논:논(답작용) 10,041 37.6 168밭(전작용) 13,742 51.4 337기 타 2,947 11.0 25합 계 26,730 100 5302. 토양의 농약오염 실태식량 생산을 위해 농경지에 살포된 농약의 대부분은 토양으로 이행하여 변화, 소실된다. 예컨데 벼 이화명충 방제를 위하여 분제(粉劑) 농약을 살포한 경우 1/3은 작물체에 부착하고, 1/3은 토양에 떨어지며 나머지 1/3은 비산(飛散)한 다음 인접한 지역의 농산물이나 토양에 떨어진다. 농약의 체제형태나 농작물의 생육상태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만 상당한 양의 농약이 토양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더욱이 토양에 직접 사용하는 농약은 전부 토양에 잔류하여 농산물로 수확되어 식품이나 사료로 이용되는 것을 뺀 작물체(부산물)는 궁극적으로 토양에 다시 들어가게 된다. 가령 10a 당 100g의 농약이 깊이 10 cm 까지의 토양에 균일하게 분포된다고 가정하고 토양의 가비중을 1이라고 하면 토양중 농도는 1 ppm이 되며 실제 농약 살포시의 분석 결과도 이 값에 근접하고 있다.토양으로 들어간 농약은 농작물 체내로 흡수되어 식품이나 사료로 이용될 때 인체나 가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토양에서 흡수하여 농작물에 잔존하는 농약의 양은 살포시 작물체에 직접 부착하여 잔류하는 양과 비교하면 매우 적다. 그러나, 유기 염소체인 dieldrin과 같이 토양중의 잔류기간이 긴 성분일 경우에는 살포시의 농작물 뿐만 아니라 후작물(後作物)에 까지 오염되어 문제를 일으킨 예도 있다. 농약이 토양에서 흡수되는 비율은 농약의 종류와 농도, 작물의 종류와 부위, 그리고 토양의 성질에 따라 달라진다.일반적으로 농약은 식물의 뿌리에서 흡수되어 줄기, 잎을 거쳐 과실부분으로 이행되므로 농약 오염의 농도는 식물의 뿌리 - 줄기 - 잎 - 과실의 순서가 된다. 따라서 근채류나 감자류는 토양중에 있는 농약 성분에 오염되기 쉽다. 예컨데 유기염 소계 살충제의 흡수율은 작물에 따라서 0 - 54%로 그 범위가 넓은데, 평균못하고 있는 실정이다.표 3. 농경지 토양중 농약 잔류량 조사결과(1982년, 단위 ; mg/kg)농약성분논 토양과수원 토양Total BHCDDTDieldrinHeptachlorDiazinonFenitrothionFenthionIprobenfos평균치최고치평균치최고치0.0030.002흔 적0.0010.010불검출흔 적0.0200.020.03흔 적0.010.10불검출0.060,200.0090.1000.0020.0090.0010.0030.004-0.061.000.080.010.010.060.21-표 4. 시설재배 토양중 농약 잔류량 (1991년)재배작물토양 시료수검출 농약수검출범위(%)잔류량(mg/kg)딸 기풋고추오 이토마토상추5*************2115202 - 983 - 973 - 988 - 1003 - 83불검출 - 15.7불검출 - 12.43불검출 - 2.29불검출 - 0.99불검출 - 2.973. 육상 생태계(terrestrial ecosystem)에 미치는 영향육상 생태계는 우리의 식량 생산을 책임지고 있는 농업, 산림자원의 보호 그리고 자연보호라는 관점에서 중요하다. 높은 생산성을 추구하는 농업은 자연적 생태계를 천이(遷移)의 초기 단계로 되돌려 그대로 머물게 하려는 인위적 행위이다. 높은 생산성을 유지히기 위하여 유전적으로 균일한 단일 종목을 동시에 넓은 면적에 재배 하면서 농약이나 다른 수단을 동원하여 농작물 이외의 것을 전부 제거하려고 한다. 그 결과 농업 생태계 안에서 먹이 연쇄는 단순하고 짧으며 단층적(單層的) 구조를 이루어 외부 요인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 즉, 농업 생태계에는 생물상(生物相)의 교란이 크게 일어나기 쉽다. 이러한 농업 생태계의 단순화와 불안정화는 병충해나 잡초의 이상(異常) 발생을 초래하게 되며, 많은 양의 농약 사용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생산성을 요구하는 산림에서도 최근에는 많은 양의 농약을 공중 살포하는 경향이 있다.생태계에서 농약의 사용은 생물종(生物種)의 감소와 생물종 간의 균형을 깨뜨리게 된다. 이와 칠면조포식성 진드기류잎진드기 - 포식성 천적담수 플랑크톤상수생 곤충상7년5년 이상5년4년 이상4년1년 이상1.5년Kiritani (1974)Johnson & Hanson (1969)Clawson (1958)Edward & Lofty (1969)Hoyt (1969)Bays (1971)Moye & Luckman (1964)육상 환경생물에 대한 독성 자료로서는 야생동물(wild life)중에서 조류(鳥類)인 물오리(mallard duck)나 메추리의 일종인 bog-white에 대한 경구 급성독성치( LD50 ) 또는 반수치사 먹이농도( dietary LC50 )가 요구된다. 농약의 용도나 살포시기 등을 고려하여 비표적 생물에 대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면 꿀벌 (경제 곤충), 거미류 (포식성 천적), 지렁이 (토양 비옥도 지표생물, 야생 조류의 먹이), 토양 미생물 등에 대한 독성 자료가 필요하다. 미국(FIFRA)이나 유럽연합(EC Council Directive 91/414/EEC)에서는 이미 농약 등록시에 이러한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육상 생태계에 대한 독성 시험도 수권 생태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급성 독성시험 뿐만 아니라 만성 독성시험, 모의 생태계 시험, 야외시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독성과 실제 노출량과의 관계를 보아 가며 시험 수준을 결정하게된다.우리 나라에서 토양오염은 농업의 타 환경문제와는 달리 국가적인 관심 하에 관리되고 있다. 즉 토양 중에서 분해되지 않고 오랫동안 잔류하는 물질로서 농작물의 생육을 저해하고 사람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중금속, 석유류, 농약, 발암물질(PCB), 기타 독성물질(CN, Phenol) 등 11개 항목을 토양오염 물질로 지정하여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다.그러나 토양 오염의 원인은 거의 대부분 공업 측에 있으므로 토양 위에서 가축을 기르거나 작물을 재배하는 농업은 피해자의 입장이다. 따라서 이전의 대부분의 연구에서도 그렇지만 토양 오염에 대한 연구는 농작물의 피해를 계량하고, 오염 토양에서 생산된 농작물의 식품으로서
사랑의 기술 을 읽고.(Erich Fromm, The Art of Loving)내가 기억하는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저명한 사회심리학자로서, 예전에 읽었던 소유냐 존재냐 라는 책을 통해서부터였다. 그때 나는 이렇게 흥미없고 딱딱한 책도 있었구나 라고 투덜거린 기억이 지금도 선하게 남아있다. 그래서 더더욱 그를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중, 사랑의 기술 을 읽고 그에 대한 나의 편견의 골이 얼마나 깊었었는지도 깨달았다. 소유냐 존재냐 는 그의 사상의 단면을 두드러지게 보여 주는 대표적인 저서로서, 삶의 두 가지 양식 즉 소유 와 존재 의 차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새로운 향유와 참된 인간성 회복을 위한 근원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하는 프롬의 사상적 노력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에 반하여, 사랑의 기술 은 사랑이란 얼마나 성숙했느냐 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쉽게 빠져 들 수 있는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씌어졌다.자신의 전체적인 인격을 발달시키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사랑을 위한 모든 시도가 결국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을 독자들에게 확신시켜 주려는 의도로 이 글을 썼다 라고 그는 서두에 밝힌바 있다. 지극히 이성적인 사랑을 피력하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사랑의 원리와 기술의 논리 정연함에 놀라움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4단계에 걸쳐 사랑의 기술과 그에 대한 이론들, 현대 산업사회에서의 사랑의 해체와 그에 따른 문제의 극복과 사랑의 실천 이라는 주제를 두어 논리 정연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그의 글에 동감하는 내용이 있는 반면에 의구심을 제기하고픈 내용들도 있었다. 물론 이 글은 타인의 글을 읽고 느낀 점과 내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므로, 자료의 미숙함과 문체의 어눌함, 그리고 다소간의 어설픔으로 인해 불투명한 논리(論理)를 전개하더라도, 지극히 주관적인 무지(無智)함에서 오는 개인적인 사정에 의한 것임을 밝혀둔다Ⅰ.사랑은 하나의 기술인가? 라는 만족을 얻는 것도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이는, 그리고 진정한 겸손과 용기, 신념과 철저한 훈련이 없이는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행동의 특성이 그리 흔하지 않은 문화권에서는 사랑하는 능력을 얻는 것도 역시 흔치 않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사람들은 행복한 사랑 이야기나 불행한 사랑 이야기를 펼쳐놓는 수많은 영화를 구경하고, 사랑을 노래한 수많은 노래를 듣는다. 그렇지만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러한 특별한 태도는 몇 가지 전제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 전제들은 단독으로 혹은 서로 결합해서 그 태도를 뒷받침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 즉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사랑 받는 문제로 보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 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들은 몇 가지 경로를 밟는다. 그중 한 가지는, 특히 남자들은 성공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즉 자신의 지위가 지니는 사회적인 한계 내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다. 또한 여성들이 사용하는 또 다른 방법은 자신의 몸매를 가꾼다거나 옷치장을 함으로써 자기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길이다. 매력적인 사람이 도기 위해서 남녀 모두 사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유쾌한 태도, 흥미 있는 대화를 몸에 익히고 유능하고 겸손하며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태도를 취하는 일이다. 자기를 사랑스럽게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은 성공하기 위해, 즉 친구를 얻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들과 비슷하다. 사실 우리 문화권 내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랑스럽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기와 성적 매력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사랑에 대해서 배울 것이 아무 것도 없경험이 전혀 아니었다. 그와 반대로 결혼은 관습에 의해서, 즉 양쪽 집안에 의해서, 중매인에 의해서, 혹은 그러한 중개자의 도움 없이 이루어지는 계약이었다. 결혼은 사회적인 고려를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며, 사랑은 결혼이 성립된 후에 생겨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살다보면 정든다 라는 말이 있듯이. 서구 사회에서 낭만적인 사랑이라는 개념이 거의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지난 수세대 동안의 일이었다. 외국의 경우 전통적인 성격을 지낸 배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낭만적인 사랑 을 곧 결혼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개인적인 경험을 추구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세대도 마찬가지지만, 이렇듯이 사랑에서의 자유라는 새로운 개념은 기능 의 중요성과는 반대되는 것으로서 대상 의 중요성을 매우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사랑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는 태도는, 그렇지 않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많이 산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이 되어 버렸다. 사랑처럼 엄청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시작했다가 실패할 확률이 많은 활동이나 사업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다른 활동의 경우라면, 사람들은 실패의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하며 배우고자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활동을 아쉬움 없이 포기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서는 포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실패의 원인을 살펴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하는 일이다. 여기서 해야할 첫 번째 작업은 삶이 하나의 기술인 것처럼 사랑도 기술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만약 우리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우고자 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기술, 예를 들자면 음악이나 그림, 건축, 의학이나 공학의 기술을 배우고자 할 때 시작하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밟아야만 할 것이다.사랑에 관한 이론이라면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인간에 관한 이론으로부터, 즉 인간 존재에 관한 이론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동물에게 자신의 이성을 발달시키고 새로운 조화, 인간적인 조화를 찾음으로써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인간은 이성(理性)을 부여받았다. 이성은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있는 생명 이다. 그는 자신, 동료, 자기의 과거, 미래의 가능성을 알고 있다. 자신을 따로 떨어진 실체로 인식하고 자기의 생명이 매우 짧음을 알며,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어나고 죽는다는 사실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먼저 또는 그들이 자기보다 먼저 죽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 그리고 고독과 분리, 자연과 사회의 힘 앞에서는 자신이 무력하기 짝이 없다는 것에 대한 자각 등, 이 모든 것은 인간의 분리되고 분산된 존재를 참을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인간은 이 굴레로부터 빠져 나와 자기를 타인이나 외부 세계와 어떠한 형태로든 결합하지 않으면 곧 타락해 버리고 말 것이다. 분리되어 있다는 경험은 불안감을 자아낸다. 확실히 그것은 모든 불안의 근원이다.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인간적인 능력을 사용할 기회를 잃어버린 채 단절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무력함을 의미하며, 이 세계, 즉 사물과 인간을 능동적으로 파악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내가 이 세계에 대해 반응하지 못한 채 세계가 나를 침범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한 가지 동일한 문제의 해결에 직면해 왔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분리감을 극복하고 일치를 이룩하는가, 어떻게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초월해서 합일을 찾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 문제는 원시인, 유목민, 농부, 상인, 군인, 사무원, 직공에게도 마찬가지로 동일하다. 즉 그 문제는 인간이 놓인 상황, 즉 인간 존재의 조건이라는 동일한 근거에서 나오기 때문에 동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해답은 다양하다. 그 문제는 동물 숭배에 의해, 인간의 희생이나 군사적 정복에 의해, 사치에의 탐닉에 의해, 금욕적인 포기에 의해, 강제 노동에 의해, 예술적 창조에 의해, 신에 대한 사랑에 의해 그리고 인간 그러면서도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자신인 채로 있도록 허용해주며 그의 인격을 보호하고 유지시켜준다. 사랑 속에는 두 개체가 하나가 되면서도 또 둘인 체로 남아 있을 수 있는 패러독스가 일어난다. 예를 들자면, 어머니의 사랑은 아이에게 삶에 대한 사랑을 불어 넣어주고, 또 아이에게 살아있는 것이 즐겁고 아이인 것이 행복하며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이 즐겁다는 느낌을 주는 태도이다. 사랑, 기쁨 그리고 행복의 경험을 아이에게 주는 것. 사랑만이, 결합의 형태만이 나의 탐구에 대한 해답을 주는 유일한 지식이다. 사랑을 하고, 나 자신을 베풀고, 다른 사람을 꿰뚫어보는 행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새로이 발견하고 우리 둘 다를 발견하며 인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연애는, 만약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하나의 전제와 의미를 갖게 된다. 그것은 내가 나의 본질로부터 남을 사랑하고 또 그나 그녀의 본질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본질에 있어서는 우리 모두는 커다란 하나의 일부분인 것이다.따라서 우리 모두는 커다란 하나이면서 동시에 우리 개개인은 독특한 하나의 개체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는가 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사랑은 의지의 행위이어야만 하고 다른 사람의 생활에 자기 생활을 완전히 바칠 결심을 하는 행위이어야만 하는 것이다.진정한 사랑은, 생산성의 표시이고 배려, 존중, 책임 그리고 지식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는 그런 의미에서의 영향이 아니고 자신의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에 뿌리를 박고 사랑하는 사람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가리킨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실현이며 집중이다. 사랑에 함축된 기본적인 확신은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자질들의 화신으로서의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인간은 그 기술적인 사랑에 있어서 무척 서둔다고 느낀다. 그리고 돌발적이고. 자신을 제어 하기가 힘들 정도라고 생각이 된다. 예를 들면, 나는 그다지 내가 좋아하지.
* 범 민족주의를 표방한 세계화.ⅰ지금 인류는 개별적인 국가들이 민족국가를 중심으로 존재하면서도, 지역을 중심으로한 지역주의, 그리고 전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국제주의와의 중복된 연결 속에서, 경제교류의 증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마치 이미 국경의 개념이 사라진, 아니 약화되어진 것같이 전개되어진 가칭 범세계화 시대 에 살고 있다. 그래서 국가들은 총알 없는 경쟁 속에서 민족주의의 생존을 위해 보이지 않는 생존경쟁과 국가경쟁력강화를 위해 모든 전략을 분출해내고 있다. 너나할것없이 국제화 세계화를 표방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보고, 그 바탕에 내포되어있는 민족주의 민주주의, 또한 우리민족이 풀어야 할 대과제인 분단현실과 연계하여 서술해 보기로 하겠다. 물론 참고자료의 미숙함과 문체의 어눌함, 그리고 다소간의 어설픔으로 인해 불투명한 논리를 전개하더라도, 지극히 주관적인 무지함에서 오는 개인적인 사정에 의한 것임을 밝혀둔다.ⅱ오늘날 세계질서의 특징중 하나는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독립과, 통일운동이 재배하는 시대라는 점이다. 그리고 세계화 시대라 불리울 수 있는 기본적인 구성조건은 협력과 경쟁이 상호 중복적으로 교차하고 있고,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논리가 팽팽하게 맞서면서 이중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국제질서의 기초는 국가간의 관계이며 이것은 다시 경쟁, 갈등, 협력관계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국제질서를 움직이는 가장 역동적인 요인의 하나로 민족주의가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지난 200년간은 대부분의 국가들에게서 민족주의라는 가치아래 정책이 수립되어졌고 추진되어 졌으며, 국가들끼리 서로의 과도한 민족주의를 내세워 연대하고 분열하는 등, 국제질서의 원만한 흐름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크게 작용하던 때도 있었다. 극단적이고 이기적인 민족주의를 내세운 나머지 제국주의를 표방하며 희생을 강요당한 예를, 우린 그 누구보다도 역사의 지울 수 없는 상처로 간직하고 있음이 그러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민족주의의 의미는 무엇인가. 민족주의는 언어, 문화, 종교, 종족 등의 비교적 함축성을 내포한 의미로서, 인류 역사상 가장 합리적이고 그에 따른 통치능력을 보유한 최대의 공동체이다. 민족국가는 강제력도 어느 정도 지니고 있고, 국민들이 비교적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해서 그들의 자발적인 일체감으로 형성된 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긍정적인 측면만 지니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민족간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의 독립과정에서 오는 갈등이, 민족분쟁으로 확산되어 고통을 받고 있는 경우도 많이 산재해 있다. 아직까지도 한치의 양보도 허용치 않으며 피를 흘리고 있는 예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서 기인하였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통합과 분열을 계속하면서 서서히 발전해 나간 것이 민족국가이다. 사회나 국가가 처음 통합 할 때는 강제력에 의해 성립되며, 그것에 의해서 질서가 유지되고 법이 집행된다. 국민들은 특정한 공동체에 속하게 됨으로써 여러 가지 혜택을 받게 된다. 즉, 재산의 보호, 경제적인 번영, 교육의 기회 등 여러 가지 혜택은 국민들로 하여금 공동체에 참여하고 복종하는 전통을 만들어 준다. 물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도 개별국가이며 단일민족주의 국가이다. 이러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해서 국제질서는 최근에 와서 과거와는 다른 냉전체제의 와해, 공산국가의 붕괴와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화변혁에 기인하여 새로운 경제체제를 앞세운 국가간 무역장벽을 허무는 경제행위의 형태로 변하고 있다. 물론 국가간의 교역과 경제행위에 대한 규제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형태로 말이다. 이처럼 국가간의 협력과 화해가 증대되고 있으나 국제질서의 양상은 여전히 민족 국가적 성격을 완전히 떨쳐 버리진 못하고 있다. 혈연과 문화적 계속성에 바탕을 둔 민족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민족국가는 새로운 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국제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고 있으며, 전쟁과 평화, 갈등과 타협 등 모든 국제질서의 행위 또는 기본적인 국가간의 행위에 아직까지도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더욱이 내외의 정세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지난날의 냉전적이고 폐쇄적 형태로서의 격동하는 국내외적 상황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을 자각시켜 왔다. 외적 상황은 구소련을 위시한 공산권 국가들을 봉쇄하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간의 단합을 통해 번영을 도모하려 했던 정치 경제적 국제조직들이 이제는 더 이상의 존재 가치가 상실된 채,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개별국가들의 국가이익 도모를 위한 지역경제조직 내지는 범 세계적 경제조직의 출현이라는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시켜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민족국가의 존재가, 크게는 세계 공동체의 건설과 작게는 세계화의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보고 마치 민족주의를 구시대적인 유물로 취급하는 경향이 없진 않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민족국가와 세계화는 결코 배타적인 관계라고는 볼 수 없으며, 민족 국가간의 협조와 협력을 통해서 만이 세계평화가 이룩될 수 있는 것처럼, 민족 국가의 기능이 국제사회의 안정과 번영에 합목되어져 작용할 때, 이는 충분히 세계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할 것이다.ⅲ우리도 이와 같은 세계 조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 민족은 한민족의 세계화 를 표방하며 동분서주 하고 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분단상황의 민족적인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채, 무리한 세계화정책의 강행으로 인해 부작용을 낳고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가장 시급한 우리의 세계화는 무엇보다도 남북분단의 극복 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린 결코 분단모순이 극복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세계화 정책이란, 기초 없는 무모한 도전에 불과하고 본다. 그리고 그 과정상의 통일방법에 있어서도 일류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어 진다. 이것이 바로 통일의 세계화이다. 통일에 관한 한 세계에서 최고의 권위와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해야할 세계화의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남북 통일의 지름길은 점차적으로 남북간의 이질감을 최소화하고 동질 감을 회복하여야 가능하며, 남북한 각 체제내의 민주화 실현이 곧 남북통일의 필요충분 조건이 되는 것이다. 민주화는 다양화, 자유화, 평등화, 민간화, 문민화, 균등화, 제도화, 인간화 등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으며 국가간의 관계도 민주주의 원리 하에서 고려되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앞으로 닥쳐올 새정부의 강력하고 일보 진보한 보다 적극적인 통일정책이 필요하다 하겠다. 결국 남북문제는 어느 누구의 문제도 아닌 바로 우리의 현실 앞에 놓인 크나큰 과제이다. 집안살림을 제대로 거들지도 못하면서 명분만을 내세운 세계화란 밑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의 허무함만을 안겨줄 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세계화 정책의 핵심은 내실을 다지는 기본인 분단된 조국의 통일 이라는 주체를 잊지 말아야한다. 분명 분단은 우리 민족의 세계화의 걸림돌이나 그것의 극복이 곧 우리민족의 최대목표 인 것이다.일 예를 들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하였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에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주된 얘깃거리는 우리가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할 것인가. 하는 군사적인 힘의 초점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어른에서 아이할것없이 지금의 우리의 현실을 의식하던 아니 그러하던 간에 우리의 뇌리 속에는 지극히 같은 내용으로 가득하다. 4,000만을 육박하는 전국민 어느 누구도 군사적인 힘에 의한 통일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우리측 정부나 언론이 주장하기에는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다고 홍보하기에 바쁘다. 식량이 부족한 가운데 전쟁이란 백전백패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오히려 전쟁의 실패는 북쪽에 있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정신자세에 있는 것이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볼 때이다. 그렇다고 여유 만만하게 방관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군은 군에 전념하기만 하면 전쟁의 공포는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자신 있게 대처하고, 정부는 끊임없는 관심과 적극성을 가지고 능동적인 자세로 북한과의 대화를 이끌어나가야 한다. 그들도 우리와 한 민족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구원의 손길을 받아준 것도 어찌 보면 그같은 아픔을 나누고자하는 동족애에서 나왔다고 본다. 경제적이든 물질적이든 우리는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러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본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관심을 보여주며 원조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변변치 않게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어 대화 한번 못하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