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노동자간의 불평등 문제■ 서 론한국사회는 지난 1997년 IMF 이후 임시직, 계약직, 사내하청공, 파견근로자등 다양한 비정규 고용이 급증하면서 고용불안이 심화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근로조건의 격차가 사회적 쟁점으로 대두되었다. 특히나 동일한 기업의 생산현장에서 함께 작업을 하면서도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는 모기업 노동자들에 비해서 열악한 근로조건을 강요당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생활여건은 과거 어느때보다도 열악한 상태이다. 사내하청노동자들에게는 노동의 기본권조차 보장되지 않아, 이들의 사회적 조건은 노동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로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최근의 노동자간 불평등은 우리사회의 불평등구조를 더욱 더 심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차후 불평등을 개선시킬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봉쇄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노동자의 단합된 투쟁과 정치적인 영향력은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의 생활기회를 향상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이러한 노동자의 계급의식은 근대사회의 형식적인 평등을 지속적으로 공격해왔던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명제에서 기인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가와 노동자는 필연적으로 각각의 계급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으며,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성숙할 때, 그들은 그들 공동의 이익을 위해 투쟁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기본 명제는 자본주의의 초기(경쟁 자본주의 단계)에서 독점자본주의를 거치는 동안 자본의 논리를 비판하는 가장 큰 무기가 되어왔다. 하지만 노동자들간의 불평등과 상호간의 대립(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노동자들의 단합된 힘을 분열시키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그것은 앞으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노동자간의 불평등문제는 우리 사회의 발전과 자본주의의 모순적 성격의 극복에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한국사회의 노동자간의 불평등 (비정규직/정규직) 문제는 2002빈곤층의 확산은 국가 정책의 실패와 부패정치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으나, 가징 근본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글로벌 자본주의의 경제법칙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러면 노동자간의 불평등 구조를 더욱 더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적 글로벌 자본주의의 이념형적 모델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겟다.경제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볼 때, 신자유주의 글로벌 자본주의의 특성은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완전성을 신봉하여 모든 사안을 시장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시장근본주의의적 시각에 기초해 있다. 시장 근본주의는 생산물 뿐만 아니라 노동력, 토지, 화폐와 같은 생산요소, 그리고 노동시장과 금융시장에 대한 국가의 규제 철폐를 주장한다. 즉 신자유주의의 시장근본주의는 경제와 사회에 대한 국가 혹은 정부의 개입이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작은 정부론으로 귀결된다.신자유주의의 두 번째 특성은 사유재산권과 영리추구 활동의 자유를 주창하는 자유기업주의는 확산이다. 자유기업주의는 사유재산권과 기업의 이윤추구활동에 대한 무한한 자유를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며, 이 두가지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노동력 사용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즉 자본가가 노동자를 자유롭게 채용하고 해고할 권리, 노동과정에서 잉여가치 생산을 위해 노동력을 자유롭게 이용할 권리를 의미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시각은 소유권과 경영권을 극대화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경시하는 현상을 가지고 오게 되는 것이다.세 번째로, 신자유주의는 생산성 향상과 효율성 증대를 통해 경제 성장을 극대화하는 것을 경제 정책의 최대 목표로 삼는다. 글로벌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성장지상주의는 생산성과 효율성 향상은 시장경쟁에 의해 촉진되는 혁신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경쟁과 경쟁력이 가장 존중하는 규칙과 덕목이 된다. 이러한 경제 성장지상주의는 사회구성원들간의 평등한 분배와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의 원리가 부정된다.,이러한 세 가지의 신자유주의의 기본 이데올로기는 19세기에 근대사회의 태동과 과 비정규직 모두 월평균 임금총액이 꾸준히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2000년 53.7%, 2001년 52.6%, 2002년 52.7%, 2003년 51.0%로, 그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그림2참조)다음으로 노동시간 변화를 살펴보자. 노동자들의 주당 노동시간은 2000년에 47.3시간, 2001년 46.2시간 2002년 44.8시간, 2003년 43.1시간으로 빠른 속도로 단축되고 있다. 그러나 정규직은 2000년 47.1시간에서 2003년 41.8시간으로 5.3시간 단축된데 비해, 비정규직은 2000년 47.5시간에서 2003년 44.1시간으로 3.4시간 단축됨에 따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노동시간 격차는 0.4시간에서 2.3시간으로 확대되었다. 주5일제 등 법정 노동시간 단축운동의 성과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골고루 향유되고 있지 못 한 것이다.{위의 (그림4)를 살펴보면 2003년 8월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 평균은 5,855원으로 정규직(12,039원)의 48.6%밖에 안 된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2002년 52.7%에서 2003년 51.0%로 하락했음에도, 시간당 임금은 51.1%에서 48.6%로 더 크게 하락한 것은, 정규직 노동시간이 비정규직보다 빠른 속도로 단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시간과 임금의 차이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분열과 이권다툼으로 전이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특히나 동일한 기업의 생산현장에서 함께 작업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이 받는 임금의 차이는 노동현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과 대립이라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 연도별 임금소득 불평등은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가? 이러한 물음은 우리나라의 노조를 통한 노동운동이 일부 독점대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노동운동이 수 많은 비정규직 혹은 경쟁중소기업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는 형태로 성장하여 왔음을 알 수있게 한다.{(그림5)는 연도별 임금소득 불평등을 나타개고 있다의 구성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고용조정에 대한 내부노동시장의 규칙과 절차를 제도화하려는 암묵적 장기고용계약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합의의 암묵적 특성은 고용조정의 일반적인 원칙과 절차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고용관계를 둘러싸고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일시적(contingent)·단기적 고용조정은 고용안정위원회에 대부분 위임되어 있었던 것이다.우선 완전고용보장합의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암묵적 고용보장 수준에 대해서 살펴보면, 완전고용보장에 관한 노사협상과정에서 회사는 2000년 4월말 종업원(48,364명)을 그대로 유지하고 일방적인 정리해고 및 희망퇴직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대신 노동조합은 전체 종업원 대비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 16.9%를 양보하였다. 이와 같은 비율은 경영상태와 인력운용이 최적 상태였던 1997년 8월의 하청노동자 비율 13.5%가 기준으로 작용했다. 노사협상에서 회사측 요구로 3.4%가 상향 조정되어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16.9%로 정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체 종업원 대비 정규직 직영노동자 비율은 83.1%이상 유지되어야 하고,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비율은 16.9%을 초과해서 안 된다.둘째, 고용유지를 위한 노사협조사항은 다음과 같다. 산재, 휴직, 출장, 교육, 파견 등으로 정규직 노동자가 일정기간 일자리를 비울 경우 하청 및 용역으로의 대체가 허용된다. 생산차종(기종)의 단종, 신·구 차종간의 병행 생산기간, 한시적인 특수 발생, 생산량이 정해진 예외작업 발생 등 그 기간과 인원이 명백한 경우 일정기간 비정규직 투입이 허용되고, 이들의 직무배치는 노사합의에 따른다. 단기간(6개월)이내 급격한 생산량의 변동이 발생할 경우 해당 직무(직종)내에서 지원과 피지원의 파견근무가 인정된다.셋째, 고용안정위원회의는 여유인력방지를 위한 노사공동결정제도로서 기능한다. 예컨대 판매부진에 따른 가동률 하락으로 인한 UPH{) 시간 당 생간대수하락과 그에 따른 여유인력이 발생할 경우, 그리급되는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노동의 위험성과 낮은 안전보장 시스템은 작업 현장에서 하청노동자가 겪어야 하는 또 하나의 불평등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작업을 끝내면 온몸에 먼지와 기름을 뒤집어쓰지만, 변변한 탈의실 하나 없어 비좁은 컨테이너 안에서 동료들과 더운 몸을 부대껴야 하는 것이다. 즉 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곳에서 일하지만, 노동력을 부분적으로 재생한하고, 보충하는 시스템에서 이미 정규직과 다른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정규직 노동자와 괴리되어 가고, 그들 사이의 분열과 불평등은 더욱 더 심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 현상은 성과급의 분배에 있어서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 자산에 걸맞은 형태로 매우 비합리적으로 지급된다.“휴일특근 때 정규직이나 우리나 같이 밤새 일하는데, 우리는 1시급제만 적용돼 평상시의 1.5배만 받지만 직영은 2시급제가 적용돼 더 많이 받아가요. 우리가 더 힘든 일을 하면 했지, 일을 적게 하는 것도 아니고 임금은 절반도 안 된다 이겁니다. 제2공장에서 만난 또 다른 하청 노동자 ㅇ(20대)씨의 말에는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갈등의 골이 깊게 패 있었다. 그는 “같은 노동자라는데 저쪽 직영들이 다 가져가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같은 책위 인용문은 2002년 현대자동차가 1조원의 순이익을 노사가 배분하면서 생긴 비합리적 처사에 대한 비정규직의 불만이다. 노조는 조합원 1인당 600만∼1천여만원을 챙겨갔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어떠한 혜택도 받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성과급이나 특별 보조수당 같은 것들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지급이 되지 않거나 지급되더라도 극히 일부만 지급되고 있다. 즉 위의 인용문에서 보이는 것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는 같이 밤새서 일해서 어떤 성과를 올리더라도 자신의 노동의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사측이 올린 이윤의 근거와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인가? 물론 정규직 숙련 노동자의 생산성 견이다.
마르크스의주의 이데올로기의 형성과 그 전통들■ 서 론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18세기 프랑스의 유물론자 드 트라시의 이데올로기 개론에서였다. 그의 이데올로기는 관념의 형성과정을 개인의 심리적 기반에 결부시키고 이데올로기를 일종의 심리적 오류나 환상으로 간주하는 것이었다. 이데올로기 개념의 성숙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되는데, 사람들의 관념형태가 사회의 전체적 모순에 뿌리박고 있으며,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허위의식을 폭로하는 것과 관련되면서 비로서 비판적 의미로서의 이데올로기론이 형성되었던 것이다.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사회를 이데올로기와 결부지어,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본인의 사회적 존재에 따라 결정되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계급성 ·당파성을 지니고, 피지배계급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그 경제적 착취의 사실과 결부하여 폭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였다.이러한 논의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가 계몽주의 시대의 시대적 배경을 좀 더 고찰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는 근대 세계의 형성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근대적 세계관의 등장이 곧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개념과 연결되는 문제의 발단은 사실 봉건적 질곡으로부터 해방하려는 부르조아의 투쟁 및 근대 사상의 비판적 태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에 대한 개념적 구성은 그보다 휠씬 전부터 있어왔던 것이었다. 계급 사회가 있어 온 한, 사회적 지배의 지적 정당화에 관련된 현상이 있었고 또 다른 정신적 왜곡의 근원에 관련된 현상들이 지식의 영역에 있었던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이해 송은희 편역 반도출판사 이데올로기 개념의 역사적 기원 -J 라레 인 p11그러면 먼저 이데올로기 개념의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고, 그 역사적 과정 속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론의 형성과 그 전통들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본 론이데올로기라는 용어는 근대 세계의 형성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근대적 세계관의 등장이 16∼18만일 내면적인 우상들이 단순히 우발적인 심리학적 방해가 아니라 원래 인간의 본성에 있는 것이거나 각 개인에 있는 특수한 것이라면 그것이 과연 제거될 수 있겠는가? 만약 인간의 마음이 대상을 보는 시각을 왜곡시키는 거울과 같은 것이라면 인간 지성이 자연을 파악하는데 적합치 않다는 점도 분명하다. 하지만 베이컨은 우상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이 암시하는 것은 그에 있어서 우상이 불필요한 것이며, 과학적 방법으로 통해 우상을 제거 할 수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여전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는 내재적 우상과 외재적 우상의 작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이데올로기 개념에 대해 그 후에 일어난 논쟁들의 중요한 시발점이 된다. 이데올로기의 개념 구성에 대한 딜레마는 어느 의미에서 이미 베이컨의 저작에 암시적으로 제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주로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에 뿌리박힌 현상으로 이들의 물질적 실천과의 관련 속에서 역사적으로 개념화하여야 될 것인가? 아니면 역으로 비과학적인 인간 본성에 있는 비합리적 요소의 보편적 존재에서 오는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가? 전자의 경우, 이데올로기가 사회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반면, 후자의 경우는 이데올로기가 과학에 대립된다는 점을 강조한다.종교가 공포와 무지에 기반한 것이라는 종교개념은 18세기의 철학자들에 의해 널리 공유되었지만, 그들은 종교가 공통의 선을 위해 사회 통합을 위해 필요하다는 마키아벨리나 홉스의 견해를 무시하였다.{) 홉스는 시민전쟁이나 반란과 같은 상태를 방지하고 주권에의 절대적인 복종을 위한 이 론적 기반을 발견하는데 압도적인 관심을 가졌으며 따라서 종교가 국가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갖는 중요성을 강조했다.이와 반대로 프랑스 계몽주의는 자유로운 사고의 권리를 주장한다. 따라서 마키아벨리와 홉스의 종교적 표상은 이미 이데올로기적 편견으로 간주되어 인간의 행복에 큰 위험이 된다. 다시 말하면 마키아벨리와 홉스한 형태의 사회에 속한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는 것이다.지금까지의 모든 유물론(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포함하여)의 주요한 결함은 대상, 현실, 감성이 단지 객체의 혹은 직관의 형식 아래에서만 파악된다는 것, 감각적 인간 활동, 실천으로서, 주체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 자기 소외라는 사실, 종교적인 세계 및 세속적인 세계로의 세계의 이원화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의 작업은 종교적 세계를 그것의 세속적 토대로 해소한 데에 그 요체가 있다.......추상적 사유에 만족하지 않는 포이에르바하는 직관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는 감성을 실천적, 인간-감각적 활동으로서 파악하지 못한다. {)마르크스에 이르러 이데올로기 용어는 마침내 종교 비판을 넘어서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마르크스는 결정적으로 이데올로기의 함의 안에 핵심적 요인, 사회 속의 역사적 모순을 도입했던 것이다.마키아벨리와 베이컨에서 콩트와 포이에르바하에 이르기까지 이데올로기라는 현상의 분석은 언제나 심리학적 왜곡, 인지상의 문제로 간주되었다. 정신적 왜곡과 사회관계의 역사적 발전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것은 상상되지 않았다. 이데올로기적 왜곡은 미신, 개인적 이해관계, 종교적 편견 또는 자기 소외 등에 의해 설명되었으나, 역사적으로 필요한 사회적 모순과는 결코 관련되지 않았다. 성직자의 속임수라는 이론은 성직자들이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고 상정함으로써 심리학주의{) 피어칸트는 형식사회학을 로고스 과학적인 것에서 심리학적인 것으로 전이하는, 즉 사 회학의 내부적 공간에서 실현되는 사회심리학적인 동기적 상황에서 사회현상의 한계와 질서를 보고, 사회학적인 구조적 제개념을 인간상호의 가능한 행위 양식의 체계로 해소 시키려고 했다. 프라이어는 이와 같은 그의 사회학을, 역사적 내용을 빼버린 추상적 ·병 존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하여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이와 같은 입장을 심리학주 의라고 불렀다.의 극단적인 형태를 보여주었다. 포이에르바하는초하는 것이다.우리가 출발점으로 삼는 여러 전제들은 결코 멋대로 정한 독단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현실에 실재하는 전제들이며, 이들 전제로부터 이끌어지는 추상은 단지 상상속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 이들 전제는 현실에 실재하는 여러 개인, 그 개인들의 활동, 그리고 그들에게 이미 주어진 것이면서 동시에 그들 자신의 활동에 의해 생산되어지는 그들 생활의 물질적 조건들이다.......생산의 방식을 단지 개개인들의 육체적 생존을 재생산해낸다는 측면에서만 고려해서는 안괸다. 오히려 생산의 방식이란 곧 이러한 개개인들의 일정한 활동의 방식이고, 그들의 삶을 표현하는 일정한 방식이며, 그들이 살아가는 일정한 생활양식이다. {)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박재희 독일 이데올로기 청년사 1998 p41∼42따라서 이데올로기는 물질적 실천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에게 있어 모든 관념이 이데올로기적인 속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관념을 이데올로기로 만드는 것은 노동 과정을 특징짓는 사회- 경제적 관계들이 갈등적 본질을 맺는 연관성이다. 이런 과정들은 근대 시민 사회가 가지는 몇 가지 특징들에 기인한다고 마르크스는 생각하였다.{) 데이비드 맥렐런 구승희 이데올로기 이후출판사 2002 p32∼33먼저 노동과 노동의 생산물이 불균등하게 분배되는 상황을 수반하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에서 출발하는 노동 분업이다. 두 번째로 노동 분업은 사유 재산의 존재와 개인의 이익관심이 공동체의 이익관심과 더는 일치하지 않게 되는 상황을 야기한다.바로 이런 개인의 이익관심과 공동체의 이익관심과 공동체의 이익관심간의 모순을 벗어나서 공동체의 이익관심 추구는 개인이나 공동체의 실제적 이익관심들과 결별한 독자적인 국가라는 형태를 취한다. 그리고 동시에 언제나 실제적인 결합관계에 근거하지만, 허구적인 공동체의 삶의 형태를 취한다. 이런 모든 것들의 결과는 국개내의 모든 투쟁들, 민주주의 정치와 귀족 정치 간의 투쟁, 선거권을 둘러싼 투쟁등은 상이한 계급간의 진정한 투쟁들이 서로 다투는 고 있지 않았으며, 1900년까지는 상설사무국조차도 없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이르러 마르크스주의는 세계 적으로 노동운동의 주류를 점하게 되었고, 따라서 제2인터내셔널은 설립 후 10년 동안 노동운동의 확대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20세기에 이르러 독점자본주의시대가 도래하자 제2인터내셔널 여러 당의 지도부는 이른바 개량주의의 경향을 띠게 됨으로써 제2인터내셔널도 전쟁반대를 결의하였을 뿐,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하였다.의 경우 마르크스의 관념들을 일반적인 경제적 결정론의 강령으로 단순화한 것은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과 등치의 관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마르크스의 이론의 체계화와 교조화는 주로 그의 동료였던 엥겔스에 의헤 이루어졌다. 엥겔스는 마르크스보다 이데올로기를 더 많이 언급하였지만, 정확히 분석하기 위한 장식이라기보다는 철학과 역사에 관한 일반적 논의의 맥락에서 말한 것이었다. 즉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을 더욱 더 정교하게 하기 위해서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엥겔스는 빈번히 경제적 관계와 정치적 관계, 이데올로기적 관계를 논하면서, 정치적 관계와 이데올로기적 관계는 경제적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언제나 경제적인 것이 관계를 결정한다고 생각하였다.인간은 오로지 조건지워진 환경 속에서, 이미 존재하는 실재적인 관계들의 기초 안에서 역사를 형성한다. 경제적 관계는 아무리 다른 것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더라도 역사를 관통하는 이해의 단서를 형성하는 여전히 최종적인 결정인자다. {) 같은 책 45p에서 재인용엥겔스는 종교와 철학을 이데올로기적인 영역으로 치부했으며, 정치와 법률을 이데올로기적인 것에서 배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일관되게 물적, 경제적 토대에서 멀어질수록, 그리고 상위의 상부구조에 접근할수록 좀 더 이데올로기적으로 된다고 생각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즉 그는 역사는 자연적 발전 과정과 같은 방식으로, 그리고 동일한 운동 방식에 따라 전개되며 유물론은 이런 점을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것이다.
■ 서 론1960년대 탈코트 파슨즈에 의해 사회학 이론의 지배적 형태로 등장한 기능주의 사회학은 질서로의 의지 에 그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체계는 환경과의 관계를 안정시킴으로써 기능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가정을 기반으로 한다. 구조 기능주의로 불리는 그의 이론은 전세대의 고전 학자들이 근대사회와 자본주의의 등장이라는 역사적 한 단면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두었던 데 반해, 인류 사회의 보편적인 거대 이론을 규명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파슨즈는 고전 학자들의 지적 유산을 종합하고, 미시적 행위단위에서부터 거대 이론적 도식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론을 전개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파슨즈의 이론은 현대 사회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지만, 그 한정적 시야로 인해서 다른 학자들의 수 많은 도전을 받았다.니콜라스 루만은 파슨즈의 지적 토대 위에서 구조 기능주의의 한계를 넘어선 점에서 주목할 만한 학자로 불 수 있다. 루만은 파슨즈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분석적 틀의 유지라는 점은 받아들였지만, 파슨즈 이론의 보수적 측면을 넘어서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즉 파슨즈는 구조가 기능적으로 유지되는 측면에 관심을 기울인 반면, 루만은 기능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하여 체제 형성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이 글에서는 탈코트 파슨즈와 니콜라스 루만의 사회학적 이론 구성에 대해 알아보고, 그들의 이론이 사회 진화에 대한 관점에서 어떻게 그 두드러진 특성을 드러내는지 알아보겠다.또한 아울러 파슨즈 이론의 단점을 루만이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겠다.■ 본 론탈코트 파슨즈와 니콜라스 루만의 이론적 전개와 사회 체계들의 분화에 의한 사회 진화를 비교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사회학적 이론 구성 전략을 살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회 진화에 대한 관점은 그들의 이론 구성이 전략이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부분들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탈코트 파슨즈1> 파슨즈의 사회학적 이론 구성 전략탈코트 파슨즈가 사회학 이론을 구성하기 위해 독특하성, 적응의 관점에서 묘사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네 가지의 하위 체계들의 기능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탈코트 파슨즈 윤원근 옮김 현대 사회들의 체계 새물결 1999 p16∼17첫째, 행위 체계의 중요한 통합 문제는 그것의 일차 구성 단위들인 개인들을 조정하는 것이다.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는 집단체가 행위자로 취급될 수도 있다. 통합 기능은 주로 사회 체계가 담당한다.둘째, 유형 유지와 창조적 변동은 문화 체계의 주된 기능이다. 사회 체계가 사회 관계의 접합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반면 문화 체계는 상징적 의미 복합체들의 특성들 (이들이 짜여지는 규약들, 이들이 사용하는 특수한 일단의 상징들, 그리고 행위 체계의 부분으로서 이들이 이용되고 유지되고 변동되는 조건들)을 중심으로 조직된다.셋째, 목적 달성은 개인의 인성의 주된 기능이다. 인성 체계는 행위 과정의 주요 작용 요인으로서 문화의 원리들과 요구들을 수행한다.{) 사회 체계와 인성 체계의 관계에 관한 주요한 기능적 문제들은, 사회적으로 가치를 부여 받고 통제된 행위 패턴을 선택하는데 충분한 동기를 그의 생애를 통하여 학습, 발전, 유 지하는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 탈코트 파슨즈 이종수 역 사회의 유형 p30-인성에 동기를 부여하는 보상 수준의 관점에서 보면 행위의 일차 목적은 만족의 최적화이다.넷째, 행동 유기체는 적응을 담당하는 하위 체계로 여겨진다. 다름 체계들의 토대가 되는 인간의 중요한 편의 시설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행동 유기체는 행위가 적응해야 하는 일련의 조건들을 구체화한다. 그것은 물리 환경과 관계하는 중요한 매커니즘을 포함한다.행위와 기능에 대한 파슨즈의 도식{하위 체계중요 기능사회 체계통 합문화 체계유형 유지인성 체계목적 달성행 동유기체 적응이러한 파슨즈의 도식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체계들 간에 본질적으로 상호 침투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개인의 인성 속에 사회적 대상{) 사회적 대상은 서로 반응하면서 행위자와 상호 작용하는 대상을사이의 교환을 거치지 않고는 한 사회체계의 기능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시 말하면 교환은 체계를 구성하는 하위 체계와 환경이 되는 체계 사이의 교환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다.또한 하위 체계의 기능은 적응, 목표 성취, 통합, 잠재성 부문 사이의 내부적 교환을 검토하지 않고서는 이해될 수 없는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그러면 이 네가지 기능적 요건은 현실 사회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파슨즈는 그의 저서 현대 사회들의 체계 에서 네 가지 기본 범주의 영역을 설명하고 있다.a) 사회의 핵심: 사회 공동체 (Socetal community) - 통합이 통합 하위 체계의 일차 기능은 전체 성원 뿐만 아니라 사회 내의 다양한 여러 지위와 역활 범주들이 사회 집합체에 대해 이행해야 하는 충성의 의무를 규정하는 것이다. 충성심은 집단 또는 공공의 이익이나 필요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호소에 얼마나 반응하느냐의 문제이다. 원칙적으로 충성심은 모든 사회 공동체에 특히 중요하며, 정부 기관들은 일반적으로 사회에 대한 충성심을 호소하는 동시에 규범들을 이행하는 담당자들이다.하위 집단들과 개인들의 전체 사회에 대한 충성과 다른 집합체들에 대한 충성 간의 관계는 특히 중요하다. 같은 사람이 몇 개의 집합체와 관련되어 있는 역할 다중은 모든 인간 사회의 근본 특징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체 자체에 대한 충성과 여러 다른 집합체 들에 대한 충성을 규제하는 것이 사회 공동체의 통합에 주요한 문제이다. 즉 사회 공동체는 집합체들과 그에 대한 충성심을 관통하는 하나의 복합적인 연결망이자, 기능적 분화와 분절의 특징을 갖는 하나의 체계이다. 친족, 가족, 기업, 교회, 정부단위, 교육 단체 등은 서로 분화되어 있고, 많은 각양의 집단적 단위를 주위에 두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사회 공동체에 대한 충성은 충성 서열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지는 못한다. 가장 높은 지위를 점하는 것은 한 사회의 규범 질서에 대한 문화적 정당성이다.{) 문화적 정당화는 첫째로 사회 체계와 문화 체계 둘 다 속해 있 상호 연관지을 수 있는가? 파슨즈는 분석적 강조점을 네가 행위 행위 체계 사이의 투입-산출 관계로 분석하기 시작하였다. 먼저 유기체는 환경적 자원을 다른 하위 체계들에게 이용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주로 적응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큰 결과를 지니는 하위 체계로 간주된다. 목표 추구와 의사 결정의 체계로서의 퍼스낼리티는 목표 달성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차적인 결과를 갖는 것이다. 또한 문화 체계의 유형과 퍼스낼리티 체계의 욕구를 통합하는 지위, 규범이 조직화된 하나의 망으로서의 사회 체계는 그 전반적 행위 체계의 주된 통합적 하위 체계로 간주된다. 상호 작용의 상징적 내용을 저장하는 곳으로서의 문화 체계는 행위자의 긴장을 관리하고 또 적절한 상징적 차원들이 제도적 유형의 확실한 유지에 이용되도록 보장하는 데 일차적인 결과를 지니는 하위 체계를 간주된다.각 행위 체계를 한층 더 포괄적이며 전면적인 행위 체계의 하위 체계로 파악한 다음, 파슨즈는 네 가지 하위 체계간의 상호관계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통계의 위계적 정보이다. 즉 문화는 사회 체계를 정보상으로 한계지으며, 사회 구조는 퍼스낼러티를 정보상으로 규제하며, 퍼스낼러티는 유기체적 체계를 정보상으로 규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문화적 가치 지향은 사회 체계의 규범적 변량 범위를 한계짓거나 제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다시 규범은 역할을 수행하는 행위자에게 기대로 전입되므로, 규범은 퍼스낼러티 체계에서의 동기와 의사 결정 과정의 종류를 제한하는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퍼스낼러티 체계의 특징들은 유기체의 생화학적 과정들을 한계짓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조나단 터너 김진균 외 역 사회학 이론의 구조 한길사 1989 p74역으로 위계상의 각 체계는 바로 위의 체계에서의 행위에 필요한 에너지 조건 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즉 유기체는 퍼스낼러티 체계에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하고 퍼스낼러티 체계는 사회 체계에 에너지 조건을 제공하고 퍼스낼러티 체계들간의 사회 체계대화상의 자원은 누가 이야기할 것인가를 놓고 종종 경쟁을 이끌어낸다. 이 경쟁은 잠재적으로 갈등과 체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불평등과 긴장을 야기한다. 셋째, 이야기와 대화는 연속적이기 때문에 시간을 소비하는 일로 여겨진다. 따라서 상호 작용 체계는 매우 단순하며 동시에 존재하고, 인지되는 사람들에게만 관련된다. 예를 들면 수업 시간에 교수와 학생들은 강의실에 출석함으로써 상호 작용 체계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상호 작용 체계는 단순한 체계이며 내적으로 노력을 해서 지속적인 부분 체계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것이다.2) 조직 체계이 체계는 특정한 조건에 관련한 개인들의 행위들을 조정한다. 조직 체계는 가입과 탈퇴의 규칙을 가지고 있으며, 이 체계의 주요 기능은 장시간에 걸쳐서 고도로 인위적인 행위양식을 안정화시키는 것 이다. 조직은 개인들의 도덕적 헌신에 의존하지 않으며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고자 하는 욕구를 화해시켜야 하는 기본적 문제를 해결한다. 다시 말하면 조직은 규범과 동의를 요구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가입과 탈퇴의 규칙은 개인들의 조직과 완전히 동일시하지 않고 요구되는 일을 할 수 있는 방식을 알려 주는 것이다.정리하면 조직 체계가 환경의 복잡성을 감소시키는 방법은 a)시간적으로는 가입과 탈퇴의 규칙을 만들고, 현재와 미래의 활동의 명하며 b)공간적으로는 권위가 조정하는 분업을 창출하며 c)상징적으로는 무엇이 적절한 것인가, 어떤 규칙을 적용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다.3)사회적 체계{) 루만의 경우, 파슨즈처럼 사회는 정치나 규범적 합의에 의해 결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사회는 탈분화될수록 갈등의 해결로서 상호작용을 단결시킴으로써 사 회가 존속하는데 있어서 덜 위태로워진다. 고 기술하였다.사회 체계는 특별한 체계 유형이다. 전체사회는 의사 소통적으로 서로 도달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는 사회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루만에게 있어서 민족 국가적 경계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루만에 따르면 오늘날에는 근본적으로 유일한 사회 체계, 세계3-
미셸 푸코: 성의 역사 3권자기에의 배려- 5장 아내와 6장 소년들 요약과 논평.■ 서론: 성의 역사에 대한 개괄적 논의- 주체의 미학적 절제의 윤리푸코의 성의 역사는 권력의 다양한 통제기술과 성에 대한 담론의 관계를 파헤치는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푸코의 관심은 성행위의 풍속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성에 대한 담론의 문제이자 권력의 역사적 장치로서 성을 이해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목적으로 출판된 제1권 에서 푸코는 성에 대한 담화를 형성하는 ‘권력-지식-쾌락’의 체계가 무엇인지, 즉 권력이 어떤 담화의 경로를 거쳐서 어떻게 가장 은밀한 쾌락에 이르기까지 개인을 침투해 들어가 통제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캐내고자 하였다.이 책에서 푸코는 전통적으로 유포되어 온 ‘성의 억압 가설’을 전복시키면서, 성에 관한 담론이 빅토리아 시대 이후 지금까지 ‘고백’이란 형태를 통해 일관되게 확대 일변도의 길을 걸어왔으며, 근대사회는 성을 대상으로 한 각종 심리적, 의학적 관찰과 연구를 통해 개인의 신체와 인구, 사회를 통제하고 길들였다고 한다. 이는 결국 성을 제한해 온 것이 아니라 권력을 통해 성의 영역을 확장해온 것이며, 15세기 이후 성에 관한 언설과 지식 체계가 억압되어 왔다기보다 끊임없이 관리, 조절, 유포, 선동되어 오면서 정교한 권력이 ‘성 장치’를 구축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푸코는 프로이트를 성 담론의 해방자로 보는 시각을 뒤집어서, 정신 분석학의 출현 자체를 성을 효과적으로 관리-통제하는 근대적 성 장치의 도구이자 ‘성의 과학화’의 결정적 구성 요소로 간주하였다.하지만 이 글에서 다루려고 하는 성의 역사 3권 자기애의 배려 는 성의 문제와 관련지어 인간이 어떻게 윤리적 주체가 되었는지를 그리스, 로마시대로부터 초기 기독교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성찰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그의 이전 저작들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던 고고학과 계보학의 반인간주의적 지향성과의 적지 않은 변화와 단절을 나타내었다. 즉 제1권이 관심을 갖는 성 담론과 권하지만 푸코가 자기애의 배려 에서 형상하는 고대 로마인들은 자기를 포기하라고 가르치는 도덕을 갖도 있지 않았다. 즉 그들에게는 자기를 배려하는 윤리에 있었던 것이다.{) 진중권, 「진중권의 원전 읽기-쾌락의 활용」, 『인물과 사상-제 38호』, 2001그러면 푸코의 논의를 따라 자기 배려의 윤리의 형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푸코에 따르면 자기 배려의 윤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자기의 몸을 배려하는 양생술, 자기 가정을 배려하는 가정관리술,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를 배려하는 연애술이 그것이다. 이 3가지에 윤리의 형태 중에서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4장 아내 와 6장 소년들 과 관련되는 가정관리술과 연애술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겠다.가정 관리술은 남성이 배우자와 함께, 농장을 관리하고 아이가 도시 시민으로서의 훌륭히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의무적이고 윤리적인 관계였다. 따라서 현대적 의미의 연애의 감정은 부부사이의 본질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에로틱은 부부 사이의 사랑이 아니라 성인 남성과 소년 사이의 동성애의 관계를 배려하는 수완이었다.{) 이것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푸코의 성의 역사 3권 자기애의 배려 -6장 소년들 을 다루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진중권{) 앞의 글에서 인용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에는 3가지의 성이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었다. 이성애와 남성동성애, 여성동성애의 3가지가 존재했는데, 이 3가지의 성은 보편적인 어떤 성을 보편적인 것으로 내세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대적 성 윤리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성이 규제되지 않고 자유로운 free sex 섹스 사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혀 다른 담론이지만 성은 당시에도 규제되고 있었다. 고대에 성을 규제하는 방식은 2가지가 있었는데 첫 번째 기준은 그것이 과도하냐, 적절하냐 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들은 특정한 형태의 성애의 양식-현대적 의미에서 이성애-를 보편적으로 강조한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의 성적 접촉이든 과도한 섹스로 빠지는 것을 규제하였던 것이다. 두 번째의 기준은 성행위의 이 ‘부부의 유대’와 남녀 사이의 인격적 관계로 생각되었으며 이러한 결혼생활은 자연에 부합하는 것이고 보편적 가치에 해당하며 인간의 모든 공동체들 중에서도 가장 고귀하고 특수한 관계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렇게 ‘아내’라는 여자와의 관계가 삶의 본질적인 부분이 됨에 따라 부부생활의 기술은 자아 계발의 필수불가결한 일부분이 되었는데, 이는 결혼의 전통적 형태들에 비교할 때 상당한 변화였다고 푸코는 보고 있다.우리는 이러한 조건들 속에서 결혼 생활의 기술에서 아마도 가장 두드러진 특징들 중의 하나가 무엇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자기에의 배려와 둘이 하는 삶에 대한 배려가 밀접하게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라는 여자와의 삶이 본질적이라면, 또 인간 존재가 자신의 본성을 함께 하는 실천에서 실현하는 부부적인 개인이라면, 사람들이 자기자신과 맺는 관계와 타인이 맺는 관계 사이에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양립불가능성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부부 생활의 기술은 자아 계발의 필수불가결한 일부분이 된 것이다. {) 미셀 푸코, 이혜숙/이영목 역, 『성의 역사 제 3권- 자기에의 배려』, 도서출판 나남, 1990, pp182여기서 로마 시대의 가정관리술이 고대 그리스와 달리 하나의 정형화된 형태가 되고, 또한 쾌락의 문제를 부부라는 테두리 안에서 얻고자 하는 의식이 생겨난다. 이러한 변화를 푸코는 로마 시대를 고대 그리스 시대의 성담론과 기독교 사상을 잇는 중요한 지점으로 보고 있다. 특히 푸코가 인용하고 있는 무소니우스의 저작 속에 있는 성에 대한 담론은 고대의 윤리적 강령 중에 하나였던 가장관리술의 성격이 어떻게 변해하는지를 가장 명료하게 보여준다.{) 미셀 푸코, 이혜숙/이영목 역, 『성의 역사 제 3권- 자기에의 배려』, 도서출판 나남, 1990, pp169∼180무소니오스는 결혼의 생식적 목적에서 공동체 공동체적 목적으로 강조점이 전이되고, 자손을 얻는다는 것과 생활을 공유하다는 것은 결혼의 이중적인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고대 그리스 시대하녀의 문제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 만난다. 기혼자에게 여노(女奴)의 이용을 금지하기는 불가하능하게 보였을 만큼, 여노는 가정의 틀에 속하는 성적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그 여노가 결혼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무소니우스는 바로 그러한 것을 금지한다아내에게 그의 하인과 관계를 가질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남편이 하녀와 관계를 갖는 것은 수락할 수 있겠는가? 한편에서 부인되는권리가 다른 한편에서는 인정될 수 없다.........실제로 아내에게는 노예와 행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을 남편에게는 하녀와 하도록 허용한다면, 그것은 여자가 남자보다 자기 자신을 지배하고 자기의 욕망을 통제할 능력이 더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리라. 가정 안에서 관리를 받아야 할 여자가 그녀를 관리할 남자보다 강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남자가 실제로 우월한 사람이 되려면, 그는 여자에게 금하는 것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 {) 같은 책 pp192무소니우스의 이러한 논의에는 결혼은 결혼한 남자가 망명높은 시민, 타인들에게 정치적, 도덕적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사람이었던 만큼 그에게 특별한 행동 양식을 요구하게 된다. 즉 자기 지배의 필요성은 남자로서의 행동에 특별한 행태 부여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마지막 3절 ‘결혼의 쾌락’에서는 성적 쾌락이 오로지 합법화되는 부부관계 내에서도 쾌락의 절제가 문제됨을 보이고 있다. “부부는 지나친 엄격함과 너무 외설스런 행동 사이에서 중도를 발견하여야 하며, 남편은 한 여자를 아내인 동시에 정부처럼 관계할 수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기억해야 한다.” 결국 부부간의 성적 결합은 쾌락에 종속되지 않아야 하며, 자손의 출생을 목적으로 삼아야 했던 것이다.푸코는 고전기의 텍스트들에 대해 전제되는 두 가지의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결혼내에 사랑의 정념과 육체적 관능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라고 보고 있다. 즉 남편은 아내를 정부로써 생각하면 안 되고, 남편은 아내에게 애인 혹은, 1995, pp73로마 시대는 상호 합의와 애정에 의한 결혼의 제도화가 부부관계의 윤리를 형성하였다. 그리스의 공화국에서 결혼은 가부장제의 지켜야 할 역할 중 하나였지만, 로마시대의 그것은 오히려 현실적이고 기능적인 것이 되었다.{) 오생근(위의 논문)에 의하면, 그리스와 로마 두 세계 모두 성관계의 부부화가 정착된 셈인데, 전자의 경우, 세속적 사랑과 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후자의 경우에는 고귀한 사랑 의 성 격을 가지고 있었다.따라서 로마 시대에는 그리스 시대에 다양한 성애의 방식들이 존재하였던데 반해, 쾌락이 남녀간의 성관계로 일원화되어 있었다. 즉 합법적인 남녀간의 성관계와 불법적인 동성애가 분리되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 시대의 에로스였던 소년애{) 아무리 동성애를 허용했던 그리스인들이라고 할지라도 다 자란 성인 남자 사이의 동성애는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즉 그리스 시대에는 성인 남자와 소년만이 사랑만이 에로스로 인정받 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사랑을 우애로 전화시키지 못한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고 본 것이다. 다 자란 성인 남자들이 관계를 맺을 때, 그 관계 속의 한 남자는 남자가 아니라 여성의 역할 을 하고 있을 것이고, 이렇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할 남성이 성인이 되어서도 소극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주인의 도덕에 위배되었다. 따라서 소년애의 정당성에는 진 리를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가 내포되어 있었다. 소년은 성인에게 진리를 배워야 했기 때문에, 수동적인 위치가 허용되었던 것이다.가 어떻게 로마 시대에는 정상적인 성담론속에서 이탈하는지 6장 소년들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제6장 ‘소년들’에서 소개되는 ‘연애술’에서의 두드러진 변화는 소년애의 평가절하와 사랑의 일원화이다. 그리스의 경우 ‘세속적’인 사랑과 ‘고귀한’ 사랑이 구분되어 소년애에 그 고귀함이 부여되고 있었던 반면, 로마에 이르러서는 소년애가 평가 절하되면서 ‘합법적인 남녀간의 성관계’와 ‘불법적인 동성애’가 분리되면서 사랑의 쾌락은 남녀간의 성관계 즉 .
지식사회학 2004미셸 푸코 권력개념의 장점과 한계-마르크스(주의) 권력개념 및 사회운동과 비교하여사회학과 199825005 금 교 영□ 들어가기 전에{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을 마르크스를 읽는 방식으로 읽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감시와 처벌을 근대 부르조아 계급이 피지배 계급의 통제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구성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의미하는 근대의 권력은 마르크스의 권력개념과는 상당히 다르다.그것은 푸코가 마르크스주의 권력개념이 기반하고 있는 국가-경제(시민사회)의 이분법적 틀을 넘어서서 권력의 문제를 국가와 국가장치들 밖의 모든 사회적 관계로 전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근대의 감옥이 부르조아의 경제적 기반에 종속된 국가장치라면, 푸코는 근대의 규율적 훈련을 테크닉이 작동하고 있는 제도적 형태이다.이러한 푸코의 권력 개념은 20세기의 수 많은 혁명 속에서 국가의 성격이 변하고, 생산양식이 변해도 왜 권력은 사라지지 않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준다. 푸코에 의하면 권력은 모든 도처의 관계 속에서 내재하고 있는 곳이지 관계의 외부에서 관계를 결정하는 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푸코의 권력개념이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고 마르크스의 권력 개념을 대체할 수 있는 만큼의 이론적 완결성을 지니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푸코의 권력 개념이 해결하지 못하는 몇 가지의 물음들은 다시 마르크스로의 회귀를 통해서만이 해결 가능하기 때문이다.Ⅰ. 서 론푸코의 권력개념이 가지는 참신함은 그 참신함과 더불어 상당한 애매모호함을 내포하고 있다. 권력에 대한 푸코의 설명은 비역사적이며 객관적인 서술로써 의도된 것이 아니며, 모든 역사에 대한 일반화로서 적용되지도 않기 때문에 그의 권력론을 하나의 체계로서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푸코의 권력론이 가지는 의미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푸코의 권력론에 대한 사회학적인 평가는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한계의 극복이라는 테제와 연결되어 전략적 입장의 총체적 효과이다.두번째로, 권력관계는 다른 형태의 관계들(경제적, 지적, 정치적 관계)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들 속에 내재되어 있다. 권력관계는 그러한 제관계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분배, 불균등, 불균형의 직접적인 효과이며, 동시에 이 관계들의 내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러한 사회적 관계들이 사회적인 장에서 나타나게 될 때에는 반드시 권력관계에 의해 관통되게 되며, 권력관계는 그런 관계를 직접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셋째, 권력은 밑으로부터 올라온다. 권력 관계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이원적 대립에 의해 위에서 밑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국지적인 힘의 제관계로서 사회의 전영역에 걸쳐 제 세력들을 정돈, 분배, 동질화, 분류하여 하나의 구심점으로 모이게 한다.{) 이 말은 푸코에게 권력이란 지역화된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과 상통한다. 푸코의 권력은 그 작용 영역에 있어서 국지성을 말한다. 이것은 권력이 전략을 통해 작용하기 때문이 다.넷째. 권력관계는 지향적인 동시에 비주관적이다. 권력에는 일련의 목적과 목표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어느 개인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은 전략의 차원에서는 합리적, 계획적이며, 프로그램의 차원에서는 익명적이다. 권력관계는 전략의 합리성에 의해서 프로그램이 조정되고 프로그램의 전개 안에서 전략의 특수성이 가능한다고 하는, 이중의 조건에 의해 규정되면서 작동한다.다섯째, 권력은 존재하는 곳에는 저항이 있게 마련이나. 저항은 권력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권력관계는 많은 저항의 거점들이 작용할 때에만 존재한다. 그리고 이 저항의 거점들은 전략 속에서 존재한다. 저항과 권력은 더 이상 양분할 수 없는 두 대칭의 숫자이다. 이런 반항의 거점들을 전략적으로 체계화할 수 있게 되면 혁명이 가능해진다.여섯째, 권력은 억압적인 힘이라기보다는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며 적극적인 힘이다. 권력은 금지하고 부정하며 항상 똑같은 것만 반복하는 성향을 지닌다기보다는 효적 하부구조에 의해서 결정되는 상부구조로서의 국가의 성격을 통해서 조명되는 마르크스의 권력 개념은 바로 착취적 혹은 억압적 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홍성민, 「권력개념에 대한 일연구」, 『미셸 푸코론』, 한울, 1994 pp293∼294마르크스는 근대의 권력이 적대 계급에 대한 지배계급의 조직된 권력이라고 파악하였다. 이와 같이 정의된 권력적 속성은 사회적 노예화를 위한 공권력이며, 권력의 구체화된 형태로 국가는 부르조아의 계급적 이익을 대표하는 집행위원회로써 국가가 행사하는 권력의 모습은 철저히 억압적인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국가가 억압적이라는 논의는 마르크스에서 현대의 네오-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일관적으 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대군주 국가 일반의 주요 기초였던 이들 부르조아지는 대공업과 세계 시장의 형성 이후에는 마침내 현대 대의제 국가에서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권을 쟁취하였다. 현대의 국가 권력은 부르조아 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처리하는 하나의 위원회일 뿐이다................부르조아지는 생산수단, 소유 및 인구의 분산을 점점 더 폐기한다. 부르조아지는 인구를 밀집시키고, 생산수단을 집중시키고, 소유를 소수의 손에 집적시켰다. 이로부터 나오는 필연적 결과는 정치적 중앙집권이었다. 상이한 이해 관계들, 상이한 법률들, 상이한 정부들, 상이한 관세들을 갖고 있던, 그리고 거의 동맹 관계에 의해서만 연결되어 있던 독립적 지방들이 하나의 국민, 하나의 정부, 하나의 법률, 하나의 전국적 이해 관계, 하나의 관세 구역으로 통합되었다. {) 칼 맑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최인호 역, 「공산주의당 선언」, 『칼 맑스·프리드리히 엥 겔스 저작선집 1』, 박종철 출판사, 1990 pp402∼405마르크스의 논의는 구조적 힘이 권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경제적 생산양식에 근거한 힘은 구체적으로 국가라는 억압적 기구를 통해서 발휘된다고 볼 수 있다. 근대를 움직이는 진정한 힘과 권력은 주권과 법 및 계약의 법적, 정치적 세계를 벗어났으 있다. 즉, 그람시의 시민사회의 헤게모니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단순히 국가라는 상부구조와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생산관계에 대한 공격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사회전영역에서 자본주의적인 생활양식을 주입하고, 동의를 구하는 권력의 생산적 측면에 대한 고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람시의 헤게모니개념 또한 권력의 내재성이라는 측면에서 일부 푸코의 권력론과 조응하기는 하지만, 권력의 국지성이라는 측면, 즉 미시적이고 국지적인 권력이 어떻게 자본주의적 재생산을 거시적 측면에서 이루어내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서는 푸코와 확연히 다른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곧잘 권력에 대한 투쟁에서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이 가지는 태도가 푸코와 양립할 수 없는 지점에 서 있다는 데서 확연해진다.경제구조와 입법권력, 강제력을 갖춘 국가 사이에는 시민사회가 존재하고 있다. 이 시민사회가 단지 학자의 저작이나 법률상으로 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국가는 시민사회를 경제구조에 적응시키기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 국가는 자기의 의지로 그 변화를 실현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 같은 책 pp106에서 재인용-그람시의 옥중수고 中그람시에게 권력에 대한 투쟁은 전통 마르크스주의와 같이-비록 권력의 생산적 측면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조직적이고 일관된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내의 푸코와의 접점은 사회운동의 성격이란 측면에서 다시금 푸코와 마르크스를 갈라놓고 있다.Ⅳ. 본론- 푸코와 마르크스주의-현대사회운동에 대한 기여와 한계-지금까지 푸코의 권력론과 마르크스의 권력론에 대한 개괄적 설명을 통해 두 사상가가 가지고 있는 권력이란 개념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러면 앞서 서론 부분에서의 논의로 돌아가 과연 푸코의 권력론이 마르크스 권력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고찰해보도록 한다. 마르크스 권력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가 하는 논의는 몇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푸코의 권력.이러한 논의는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적 실천과 관련된 부분과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지만, 푸코의 논의를 현대의 신사회운동의 시각에서 생각해본다면, 이것은 담론적인 실천이며, 투쟁이 꼭 폭력적이고 조직적인 형태를 통해서만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징과 문화적 실천으로도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인식과 맞닿아 있다. 이것은 푸코가 마르크스의 권력론을 뛰어넘는 새로운 권력에 관한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객관적이고 구조적인 제약 속에 생겨난 권력 관계를 구조의 재형성인 측면에서 해결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권력의 형성과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또한 현실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는 잘 발달한 서구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들이 객관적인 사회적 제관계에서 자신들의 계급적 인식을 발현할 수 있는 전략이나 문화적 실천을 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푸코의 전략적 권력론은 자아가 스스로를 발현시키는 측면과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권력론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3. 구조적 권력론과 상황적 권력론푸코는 마르크스주의가 견지하는 구조적 권력론을 비판하고 상황적 권력론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푸코의 말을 빌리면 권력은 구조도...........제도도 아니고.... 한 사회에서 복잡한 전략적 상황에 부여되는 이름이다. 라는 언명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권력관계가 당사자들이 어떠한 전략을 택하는 가에 달려있다는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권력의 유동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논의를 전개하기 전에 살펴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마르크스주의 권력론이 구조결정론적인가 하는 문제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일반과 특히 마르크스주의 좌파운동은 구조결정론적인 권력론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저작에서는 권력의 구조적 결정에 대한 회의적인 문구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루이 보놔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