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산다는 것인간의 참모습이란 무엇일까? 인간답게 사는것. 즉 개개인이 인간답게 살기 위여 삶의 목표를 정하는 것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그에게 비춰지는 인간의 참모습은 다를 것이다. 참모습에는 기준이 없기에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다. 추상적 개념인 인간의 참모습을 어느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어렵다.인간은 사회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공동 생활을 하지만 각자의 삶이 다르기 때문에 보편적인 참모습은 대략 짐작 할 수 있으나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다.우선 세가지로 인간의 삶을 구분 한다면 보편적인 삶, 세속적인 삶, 영적인 삶으로 나눌 수 있다.보편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참모습을 접근해 간다면 인간이 동물과는 다르게 이성적으로 사는것이라고 할 수 도 있으나, 인간도 동물의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인간이 동물적으로 감성적인 행동을 할 수 도 있다. 그러기에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신이 되겠다. 그러므로 인간은 감성위에 이성이 있어 감성을 올바르게 규제 할 때 그것을 인간의 보편적인 참모습 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보편성을 너무 강조하면 대중에 매몰되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라는 책에서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가 자신이 인간의 향수를 뿌려서 인간속에 뭍혀 버린다. 이런 상태와 비슷할 것이다. 아무 의식 없이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그런 삶은 인간의 참모습이 아니다. 인간은 하나하나 개체에 의미가 있다. 그런 자신을 인식하고 보편적인 삶을 추구함과 동시에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좀 더 인간다울 것다. 동물을 보면 그들은 거의 비슷하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생각할 수 없으며 개성이란 중요하지 않다. 이처럼 보편성은 단지 인간다움이기 위한 받침돌 일 뿐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보편성이란 받침돌 위에 각자의 삶을 실어야 한다.그 다음은 세속적 삶이 있다. 용어가 딱 들어 맞지는 않지만 어쨌든 영적인 삶과 반대가 되는 삶이다. 그들의 목표는 명예, 부, 자아완성, 권력등을 위해 사는 사람이다. 좀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한다. 다른 사람 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투쟁한다.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가 인간의 세상에 나와 세계 제일의 향수를 만드려는 그런 삶과 비슷 하다. 그것이 그의 삶의 목표 였다. 하지만 그것을 이룬 후 그는 공허 했다. 무덤 근처에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만든 향수 때문에 죽는다. 완성한 후에 따라오는 허무함. 이것은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겐 치명적인 적이다. 일단 허무에 빠지면 삶의 의욕을 잃어 버리고 방황하게 된다. 예를 들면 헤밍웨이는 작품을 완성한 후 옆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았다. 그 밖의 많은 천재들이 완성을 한 후에 자살을 했다. 완성하기 위해 가는 동안에는 삶에 의미가 있지만 완성 후에는 허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약점이 있지만 완성을 하는 사람은 드물기에 대부분 이런 삶에 몰두 하게 된다. 또 만약에 완성을 해도 다른 목표를 찾을 수 도 있다. 하지만 이런 외적인 삶이 인간의 참모습 일까?마지막으로 영적인 삶, 즉 내적인 삶이 있다. 세상에서 부, 명예, 권력, 자아완성이 목표가 아니고 좀더 내적으로 살찌우려는 삶이다. 주로 종교를 믿는 사람이 이런 삶을 추구 한다. 얼마전 텔레비전을 보니 사이비 종교에 많은 돈을 기부하는 사람을 보았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한 행동이다. 그들은 이런 돈 보다 더 중요한 내적인 삶을 얻기 위해 선뜻 그런 돈을 준다. 종교가들은 영적인 삶을 살면 허무란 있을 수 없고 진정한 행복과 기쁨에 살 수 있다고 한다. 사실 그들의 삶을 보면 그렇게 사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들은 가
인류의 시작은 아프리카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은 수 많은 고고학자들의 주장과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인류학적인 근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인류의 조상이 발견된 아프리카의 현재의 모습은 조상의 이미지라기 보다는 발달하지 못한 미개인들의 생활 모습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아프리카라고 하면은 '발달이 되지 못한 나라','문화적으로 뒤떨어진 나라'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상이다. 아프리카 미술 박물관을 갖다 오기 전의 나도 물론 그러했다. 사람들의 이러한 생각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화가 아프리카 사람들의 그것 보다 더 우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으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문화는 그들 보다 과학적으로, 생활적으로 편리하다고 말을 할 수는 있으나, 그들의 문화 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대학에 오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 '문화의 상대성'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문화는 그 나름 대로의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아프리카 미술 박물관은 우리 나라 최초의 미술 박물관이라고 한다.(서울시 동숭동)1998년 11월에 개관한 이 아프리카 미술박물관에는 남아공의 줄루, 아이보리코스트의 구루 등 아프리카 여러 부족의 가면과 각종 조각상 등 250여 점의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의 소장품은 인테리아 설계 사무소를 운영하는 관장이 지난 20여 년 동안 아프리카를 비롯해 영국, 프랑스 등지를 여행하면서 수집, 소장해온 것들이다. 2개층 전시관에 아프리카 30여개국 70여개 부족의 다양한 가면과 목조각상 등 예술작품을 비롯해 생활집기, 사냥도구 등이 개인박물관규모를 넘어서 빼곡히 들어차 있다. 입장료는 2,500원으로 국립박물관에 비하면야 비싼 편이지만, 자세한 설명과 함께 아프리카 각 부족의 다양한 풍습과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리 비싼 수업료가 아닌 셈이다.대학로에 있는 미술 박물관에 처음 들어섰을때 느낌은 “정갈”하다는 것 이었다. 깔끔한느낌의 박물관에 들어서서 가장먼저 접한 것은 생활용품이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생활용품들중 가방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목침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수 있었던 목침, 하지만 그 생김새는 우리나라와 무엇인가 달라보였다. 설명을 읽어보니 루바부족이 사용했던 목침이라고 했다. 루바부족은 머리치장에 50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 머리가 잠을잘 때 손상이 되면 안되지 않는가. 그래서 그러한 이유로 목침을 쓴다고 하였다. 박물관에서 가장 많았던 작품은 가면이었다. 가면 역시 자연에서 얻을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여 나무와 조개 그리고 열매등이었다. 가면을 볼때 처음에 아무생각 없이 철이 녹슬었나..동으로 만들었나..이런생각을 하였었다. 그도 그럴것이 매우 단단하고 나무본래의 색이 아닌 약간의 빛바랜색 때문에 그렇게 오해 했던 것이였다. 그런데 재질이 나무라고 되어있는걸을 보고 내가 오해를 했던 것을 알게된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가면을 철로 만들다니..뭔가 조금은 웃음이 나왔다. 아프리카에서도 동으로 가면을 만든 것은 있었다. 하지만 거의 98%가 나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마을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거나 공연을 할때 쓰는 경우는 있으나 그 외 경우에는 거의 보기 힘든데 아프리카는 가면이 생활에서 빠질수 없이 보였다.장례식에서 쓰는 카나가가면, 자신과 가족 그리고 나아가 마을사람들을 보호해준다는 황가면, 귀신을 쫒는 바울레가면, 악어가면, 바다가면등 셀수 없는 종류가 있었다. 가면의 크기들은 가지각색으로 2m가 넘는 가면도 있어 어떻게 저런 큰가면을 쓸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추리해본결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면은 얼굴을 가리지만 저 가면은 몸전체를 가리는 가면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아프리카 가면중 가장 인상싶었던 가면이 있었다. 바로 구루가면이라고 가면이 눈을 감고 있다. 영혼과의 만남을 위해서란다. 구루가면은 가면이 눈을 감고 있다는것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오묘한 표정에서 괜시리 마음이 끌렸다.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의미를 준다. 박물관의 분위기에 휩쓸려 그런것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정말 영혼과의 대화를 이끌수 있는 힘이 있어 보였다.아프리카의 가면에 대해 자료를 찾아봤더니 자세히 나온게 있어 조금 인용하자면,『 B.C 5000여년 경에 제작되어진 남부 알제리아(Algeria) 타실리(Tasili) 지방의 암각화를 보면 아프리카 주술사와 무희들이 가면을 쓰고, 의식을 행하였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프리카 가면의 이러한 역사성처럼 가면들이 사용되어지는 기능적 역할 또한 복잡하고 매우 다채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가면의 기능은 정치적 권위를 확인시키는 도구로, 할례 의식을 마친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었음을 입증해 주는 상징물로, 죽은 자의 영혼을 조상의 영역으로 인도해 주는 중계자의 역할로, 부족사회의 가치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는 도구로도 쓰여지며, 단순한 행사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 지기도 한다.하지만 가면이 지니고 있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대부분의 모든 가면들이 아프리카인 들의 전통신앙 (Totemism)과 영혼에 관한 강한 믿음(Shamanism)과 조화를 이루어 부족을 화합 시켜 주는 중추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아름답게 조각되어진 가면들은 아프리카인들의 삶에 힘을 더해 주고 그들의 삶을 존속시켜 주는 불가결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가면이 지니는 중요성은 미학적 조형성이 아니라 그들의 의식과 풍속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가면은 절대로 독립된 매개체로써 영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며, 가면이 지니고 있는 포괄적 의미는 누가 가면을 쓰고 있었고. 가면을 쓰고 의식을 행함으로 가면이 지니고 있는 영적이 생명력과 음악과 춤이 조화를 이룰 때야 비로소 영혼의 힘이 살아나 일상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