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를 읽고나날이 노인들은 늘어난다. 산아래 모여드는 천연색의 등산복 차림의 비둘기색 머리의 노인들도 갈수록 많아졌다. 젊은이들은 마치 그들을 해로운 비둘기처럼 본다. 어느 시대인들 노인들이 환영받던 시대가 있었나 싶다. ‘노인의 위한 나라는 있다’란 제목은 시선을 확 끌었다. 과연 그런 나라는 있을까, 아니 그런 시대는 올 것인가. 수많은 젊은이들의 이민을 받는 미국의 중위연령 38.9세, 이번 트럼프 저격시도한 이는 20세 : 한국의 중위연령 43.4세, 이재명 살인시도한 이는 68세. 미디어에 오르는 여럿 중대한 범죄사건들의 가해자 역시 우리가 생각했던 젊은 층이 아니라 50대 60대 이상의 고령의 나이였다. 유독 인구소멸로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노년층 인구는 더 많아졌고 그에 따른 문제점들도 늘어나고 있다.돈 많은 노인은 부동산으로 청년의 삶을 옥죄고 돈 없는 노인은 빈곤층에 대한 복지정책으로 세금으로 청년의 돈을 빼앗아 간다. 요즘은 세대간 소리없는 전쟁 같은 상황이다. 소설에서는 과학기술로 노인들이 스스로 자력갱생하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으며 나아가 노인공화국을 만들어 돈없고 기술없는 젊은이들의 공화국을 흡수한다고 노인들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했다. 과연 공화국의 해피엔딩일까. 가상의 공화국이겠지만…의대정원문제도 비슷한 맥락에서 젊은 전공의들과 나이많은 노인층과의 대결처럼 보였다. 입시에 걸린 돈과 시간을 차치하고도 의대 6년 인턴 1년 전공의 4년 전임의 2년 도합 13년의 노력과 시간을 그 값을 제값 안 쳐주겠다고 말하는 거다. 대법원에서의 인용처럼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 사적영역은 희생될 수 있다. 하필이면 많은 의사들 중에서도 가장 젊은이들의 것들만 빼앗아 나눠주는 격이다. 다수결이란 일본의 만화처럼 다수결에 의해 소수의 한 사람을 죽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화물연대, 의사, 그 다음은 학원가 정도 수순이 될려나. 그 모든 적들을 죽이고 나면 좋은 공화국이 되는 건가. 물류비, 의료비, 학원비 낮아져 출산율 높아지고 노인빈곤층의 복지문제가 해결되는 게 이상향인가. 10년 전 보건복지부 고위관리말처럼 세금내고 관리하는 개돼지처럼 국민의 개개인 혹은 집단들을 보는 시선에서 달라진 것이 있었나.텔레비전이나 라디오,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대부분의 매체들이 돈이 있는 노년층으로 타깃되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 푯수가 많고 경제적으로 구매력이 있는 대상으로 세상의 무게추가 기울어진다. 어쩌면 지금이 ‘노인을 위한 나라’에 가장 근접해있지 않을까. 고려시대의 고려장이나 일본의 비슷한 장례풍속이 있던 그 피폐하고 곤궁했던 시절의 극단에 있는 시대에 이미 와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에 노인들이 간섭하고 오염시킨다. 뉴진스는 구찌를 입고 아이브는 헤르메스를 들며 구시대의 가치를 그대로 답습시키려 애쓴다. 노인이 주축이 된 사회는 변화하길 거부한다. 60이 넘으면 뇌가 썩는다는 젊은 정치인의 말처럼 60이 넘은 그의 뇌는 건강한가.
광고천재 이제석을 읽고 성공스토리들은 막노동판의 장승수나 7막7장의 홍정욱에서 이미 지겹게도 보아왔다. 광고천재 이제석도 그런 흔한 성공스토리의 하나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걸로 넌 뭘 팔아먹을꺼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단연코 말할 수 있는 건 가장 업데이트된 성공스토리 아닐까 싶었다. 과거 수능이나 유학이나 통한 인생역전은 2023년의 지금에선 껍데기뿐인 성공이라고 이제석은 말하고 있다.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 즉 아이디어만이 광고판의 포식자로 남을 수 있다. 뉴진스나 블랙핑크들이 광고하는 명품 옷이나 가방 역시 그런 시각에선 아이디어가 아닌 외적인 것들에 의존하는 껍데기처럼 느껴졌다. 나의 알맹이는 무엇일까. 나의 아이디어는 무엇일까. 이제석의 광고작품처럼 돌연변이적인 나의 아이디어는 나를 어디로 이끌어주게 될까. 이제석 광고연구소는 공익광고가 80퍼센트라고 한다. 그의 말대로 광고판은 돈지랄이라는데 돈이 안되는 공익광고 고집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신의 노력과 재능으로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며 그로 노벨상을 받길 소망한다. 간디나 헬렌켈러가 되지 않아도 간디처럼 헬렌켈러처럼 살 수 있다. 광고판은 그에게 머리 속 세상을 선물하였다. 작은 아이디어들은 광고란 이름으로 세상을 조금씩 바꿔가고 당장 나의 하루도 바꿔갔다. 키보드워리어처럼 불만만 쏟아내어선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못 배우고 못 가진 데서 달라질 게 없다면 누구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쓴 2010년에 비해 지금은 달라졌나. 이미 이제석은 광고판의 공룡이 되었고 여전히 가진자가 다 가져가는 방식은 달라진 바가 없다. 그의 설치형 광고판들은 나를 비롯한 사람들의 뇌리 속에 남아있다. 이미 이제석의 씨앗들은 머리 안 세상에 뿌려진 게 아닐까. 다만 나도 그들도 그 싹을 틔우지 못했을 뿐이다. 책의 첫 머리에 가장 크게 쓰여진 두 단어는 창의와 공익이다. 아마도 이제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화두였을 것이다. 간디는 자신의 인생을 통해 모든 인간을 동일한 존재로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실험을 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러한 동일한 존재로써의 사랑은 말년에 육체적인 사랑으로 변질되어 비판받은 면도 있어 유감이다. 이제석에겐 나의 창의가 공익을 위한 일인 것인가에 대한 장대한 실험을 하는 셈이다.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생을 통해 하나의 실험을 하게 된다. 그 자각을 일찍 하는 간디나 이제석 같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한 자각을 못하지만 자신의 소신이나 고집으로 삶을 지탱하는 보통의 사람들도 많다. 내겐 나의 행운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나눠준다면 그 행운은 이어질 것인가라는 다소 엉뚱한 인생실험을 한다. 뭔가 재미있는 일을 찾거나 뭔가 의미있는 일을 찾는 노력도 부단히 하는 편이다. 삶에 재미나 의미가 없다면 평생 반복될 것만 같은 4주간의 군사훈련소 생활처럼 힘들 것이다. 그 때도 매일 하나의 행운이나 의미가 숨겨져 있으니깐 버틸 수 있었다. 동료의 사소한 농담이나 모진 운동장의 들꽃이나 해질녁의 아름다움 같은 것들이 내겐 버팀이 되었다. 대부분 일들은 노력과 상상력으로 해결될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한다. 마치 이제석이 자신의 창의가 공익의 문제를 해결해줄 꺼라는 낙관적인 생각처럼 말이다. 틀리거나 옳지 않은 일은 아니지만 진리 또한 아니다. 그러한 위로가 최소한의 자긍감 따위를 불러일으킨다. 연약한 존재일수록 불의에 더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이제석과 나는 그러한 공통점이 있겠다. 부자들의 돈지랄이나 대중의 냉담한 겉보기평가나 뭐 그런거 말이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더 큰 불의는 선의로 포장되어있음을 간혹 놓칠 때가 있다. 10년을 주기로 우리 사회나 일본 사회는 한 명의 히어로를 만들어낸다. 김연아, 이국종, 손흥민처럼 대중은 히어로를 게걸스럽게 소비한다. 설치광고물처럼 이제석도 이런 히어로였다. 정의로운 영웅이었다. 최근 홍명보처럼 10년이나 20년의 시간의 장막이 걷히면 진실이 드러나겠지. ‘시간과 장막의 알레고리’란 브론치노의 그림처럼 말이다.
내 삶의 구덩이를 디기디기 홀! Diggy Diggy Hole!‘자비롭고 지혜로워’지라고 원시인의 엄마는초록호수 캠프로 떠나는 주인공에게 말했다. 쉽게 붙여쓸 수가 없는 말처럼 들렸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겪은 불운들 속에서 화내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자비로울 수가 있을까, 그러한 역경들 속에서 지혜로워질 수 있을까. 하물며 그 둘을 동시에 하기란 마치 네 이웃을 사랑하란 말이나 한뺨을 맞으면 반대쪽 뺨을 내밀어란 말처럼 공허하게만 들렸다.하루에 하나씩의 구덩이를 파는 일은 누군가에겐 보물을 찾는 일이겠지만 가장 힘든 마지막 구덩이를 파는 일처럼 매번이 힘든 일이다. 원시인의 돼지도둑놈 고조할아버지가 매일 산꼭대기의 샘물을 새끼 돼지에게 먹이기 위해 산을 올랐던 일처럼 고되고 어쩌면 당장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나 역시 매일 하나씩 나만의 구덩이를 파고 있는 건 아닐까. Wind Rose의 Diggy Diggy Hole 노래처럼 나만의 삶 위해 말이다. 이미 우린 마인크래프트에서도 수없이 많은 구덩이를 파지 않았나. 이책을 읽으면서 이노래를 흥얼거렸다.“To dig and dig makes us free. Come on, brothers, sing with me!”결국 고조할아버지도 원시인도 단단한 근육질의 멋진 남자가 되어갔다. 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금메달을 땄던 수영선수 펠프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매일을 빠지지 않고 수영연습을 할 수가 있나요? 하기 싫은 날도 있을텐데 무슨 생각을 하세요? 그는 말했다. 저는 아무생각도 하지 않아요. 그 역시 그저 하루 해야할 일처럼 구덩이를 매일 팠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열정을 가지고 하는 것이 행복이고 성취라고 말하지만 나의 하루는 그리고 펠프스의 하루도 매일 구덩이를 파듯이 그저 하는 일이 큰 성취를 이룬다. 해야한다는 의지나 목적을 갖기 위해 머리를 쓴다는 것도 나를 달래는 에너지가 든다. 그저 시지프스의 거인처럼 시계추처럼 바위를 지고 왔다갔다 끝나는 게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다. 그게 공부든지 운동이든지 wind rose의 노래 속 드워프처럼 구덩이를 파다보면 다이아몬드나 청금석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나머지 저주나 운명은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자비와 지혜란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선 diggy diggy hole을 하면서 얻게 되는 레어한 아이템이다. “Down and down into the deep. Who knows what we'll find beneath?”또 하나 뇌리에 총알처럼 박힌 말이 있다면 집시 제로니의 ‘꽃병’이란 말이다. 제로니는 친구를 사귈 땐 겉보기엔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속이 빈 사람은 피하라고 원시인의 라트비아 고조할아버지에게 충고를 했다. 처음엔 동네의 가장 아름다운 처녀, 마이라에게 빠졌지만 고조할아버지는 돼지를 안고 산을 오르면서 조금씩 지혜로워졌다.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텅빈 꽃병인 마이라를 포기하고 신대륙 미국에서 자기와 말이 잘 통하는 고조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아름다움과 쓸모는 앞서 말한 자비와 지혜처럼 공존하기 힘든 말들이다. 내 경우 항상 이 둘을 저울질하게 된다. 이 물건은 아름다운가, 혹은 쓸모가 있는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쓸모있는 것들은 편리하고 날 편안하게 해준다. 집시 제로니는 고조할어버지가 꽃병의 아름다움보다 쓸모있는 사람과 만나길 바랬다. 하지만 ‘티파티의 아침’에서처럼 쇼윈도우의 밝게 빛나는 보석들은 얼마나 쓸데없이 아름다운가.
80일간의 세계일주어릴적엔 보물섬이란 만화잡지가 있었다. 어린이들을 어디든지 데려다줄 것만 같은 그 이름의 만화잡지가 좋았다. 두꺼운 책이라고는 동아전과나 표준전과 혹은 전화번호부가 전부였다. 그 중 가장 갖고 싶었던 게 보물섬이었다. 여행을 떠난다면 그런 보물섬을 찾는 여행이 꿈과 모험이 가득한 에버랜드보다 더 진짜 같았다. 이 책은 어릴적 보물섬 찾는 여행처럼 날 들뜨게 만들었다. 온갖 종류의 만화나 영화들이 이 책이 출간한지 150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007영화의 피어스 브로스넌이 주연한 3부작 80일간의 세계일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칸트는 자신이 살던 고향에서 평생 떠나지 않았지만 파리의 20개가 넘는 다리의 이름과 위치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혁신클럽의 포그도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영국신사로 비록 가지 않아도 신문이나 출판물 등으로 정보를 얻고 여행의 계획을 세웠다. 파스파르투는 만능열쇠라고 우쭐됬으나 만능사고뭉치에 가까웠다. 증기선에 대한 묘사는 단순히 빠르기, 몇 노트인지만 표현됬으나 숫자를 좋아하는 쥘 베른은 그게 가장 정확한 설명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그의 책 제목엔 숫자가 들어간다. 15소년 표류기나 해저 2만리처럼 말이다.어제부터 새롭게 읽는 언데드 걸 머더 파르스라는 일본소설에서도 필리어스 포그라는 설정된 캐릭터가 나온다. 1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사랑받는 캐릭터인 셈이다. 그는 18세기 이성적이고 매사에 정확하며 당시 영국인들의 프라이드를 압축한 인물이다. 반면 영국의 식민지령인 인도의 관습법은 깡그리 무시하며 미국으로 돌아가며 다시 문명으로 돌아왔다고 말하는 장면들은 마치 내가 18세기 야만의 지역민이 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18세기의 세계가 10분의 1로 작아졌다면 구글어스로 구석구석을 볼 수 있는 지금의 세계는 손바닥만해졌다. 3d 랜더링으로 2차원의 손바닥으로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 DM으로 직접 만나지 못할 사람들과 교류도 할 수 있고 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나의 보물섬은 어디에 있는걸까. 어쩌면 가고 싶었던 미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이나 새로운 것들에 대한 욕망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흥미로운 인물이 하나 나오는데 그는 필리어스 포그의 편을 드는 앨버메일 경이다. 그는 중풍에 걸려 의자에 묶인 사람으로 “해 볼만한 일이라면 영국인이 가장 먼저 해내는게 좋잖아"라고 말하며 포그를 지지한다. 오로지 그만이 현대의 시점에서 세계를 가장 잘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기술의 진보는 여행의 방식을 바꾸더라도 그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볼빨간 사춘기의 여행을 들으면서 구글 어스로 런던, 수에즈, 봄베이, 요코하마, 뉴욕을 여행할 수 있다. 21세기 앨버메일 경이 위너다. 그에 반해 지금의 사람들은 여행의 본질은 잃어버렸다. 아이와 같은 호기심도 없으며 청년과 같은 탐험심도 없으며 시간을 때우기식으로 마약처럼 새로운 자극적인 영상에 매몰되고 있다. 여행이라기보다 인터넷 관광이 되어버린 인상이다. 초단위로 올라오는 숏폼의 영상들 속에서 여행은 없다.
뱀파이어 레스타가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악마 멤노크에게 악마의 조력자로 스카웃되는 이야기다. 자연의 일부에서 보면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창조물들은 그 나름의 쓰임으로 사용되거나 소모된다. 뱀파이어 레스타 역시 신 혹은 악마의 쓰임새로 사용되어진다. 앤 라이스의 책들은 끝엔 항상 예기치 않은 반전이 있는데 이 책에선 레스타가 타짜의 잘짠 판에 제대로 걸려드는 모양새다.단테의 신곡에서처럼 레스타는 악마 멤노크와 천국과 셔올이라는 불리는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지옥에서의 모든 울부짖음은 “우린 몰랐어”란 하나의 외침으로 끝없이 계속되었다. 우리가 가장 쉽게 악행을 짓는 이유가 되기도 했고 따라서 대부분의 지옥행 영혼들이 이곳에 오게된 이유이기도 했다.데이비드가 보는 악마의 관점은 ‘도덕적 양심이 지성의 발전을 따라갈 수 없게된 순간부터 악마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신과 멤노크의 대결구도에서 보는 악마와 다른 인간적인 관점이다. 그리고 뱀파이어 스스로를 악마의 사역인이라 생각했던 아르망도 스스로 햇빛 속에서 산화하게 된다. 각자가 믿는 천국이 다르듯 -마치 천국에 올라온 셔올의 영혼들이 만드는 천국의 정원들이나 건축물이 다른 것처럼- 제각각 지옥에 오는 이유도 다를 것으로 보인다. 지옥이라 불리는 셔올에서 특별한 영혼들은 천국으로 올라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