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리샴의 “톱니바퀴”(원제 : The Brethren)를 통해 본미국의 법체계와 법조인의 모습(1) 법조 시스템과 관행에 관한 의문사항- 소설에 등장하는 동업자라 불리우는 교도소 내 주인공 3명은 수감 전 직업이 판사였다고 되어있습니다. 그 종류도 대법원 판사, 연방 판사, 치안판사로 종류가 갖가지인데 이들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 중 부재자 투표, 지지율 등의 말이 나옵니다. 이것과 관련하여,① 미국의 경우 판사를 국회의원 선거처럼 법관들도 시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 것인지 또한 이 경우 정부 측의 개입은 아예 없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판사 선출은 어느 선까지 이루어지며 (대법원, 고등법원 등등 어느 범위의 법원 판사 선출까지 이러한 방법으로 정해지는 것인지) 재임기간, 즉, 선거는 몇 년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② 주인공들의 전직인 대법원 판사, 연방판사, 치안판사의 역할의 특성과 차이점을 알고 싶습니다.③ 특히 스파이서라는 주인공의 경우, 고등학교 뿐이 나오지 않은 전문적 법률 지식이 전무후무한 인물이라 표현되고 있는데 사법고시를 통과해야만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우리 나라와 크게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라 생각했습니다. 과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유산으로 상속받은 신탁금에 학생기간 동안 지급한다는 조항이 존재하여 11년 째 학교를 다니며 그의 가족 변호사에게 신탁금을 타서 쓴다는 주변 인물이 등장하는데,④ 여기서 신탁금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유산과 무엇이 다른 것이며 여기서 지급 역할을 하고 있는 변호사와 같은 역할을 실제로 국내의 변호사도 하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모든 변호사들은 변호사를 쓸 여유가 없는 사람을 돕도록 자기 시간의 일부를 기부하게 되어 있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⑤ 우리나라에는 없는 제도로 알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 이것을 지키지 않는 변호사는 어떤 불이익을 당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2) 줄거리 요약- 교도소 내 3명의 전직 판사 수감자, 동업자들장벽도 감시탑도 전기 철조망도 존재하지 않은 채 최소한의 보안 장치만을 갖추고 있는 연방 감옥 트럼블 교소도. 이 곳에는 전직 판사 출신인 주인공 3명이 수감되어 있다. 한 때는 대법원 판사로서 존경을 받았지만 탈세 혐의와 다른 배경으로 인하여 형을 언도받고 들어온 핀 야버, 연방판사로서 나름대로 성실한 삶을 살았으나 음주운전으로 학생 두 명을 치어 죽인 죄로 들어온 비크, 작은 마을의 치안판사로 지내다 빙고게임으로 딴 돈을 탈세한 혐의로 들어오게 된 스파이서.이 세 명은 교도소 내 크고 작은 사건들을 중재하고 판결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죄수들은 그들을 ‘동업자’라 부른다. 이러한 각각의 배경과 지식을 가진 동업자들은 나름대로 교도소 내의 특권을 누리고 있으나 이미 도덕성을 상실한 채 한순간 모든 것을 잃은 법조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스파이서의 주도로 이들은 외부의 트레버라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비밀계좌를 만들고 과거에 큰 화제가 되었었던 범죄를 모방하기 시작한다. 남성잡지에 펜팔 광고를 실어 아내가 있고 지위나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게이들을 투려내어 편지로 사랑을 속삭이다 이것을 빌미로 그들을 협박하여 거액을 뜯어내는 식의 사기 행각을 하는 것이다.전국 각지의 남성들과 이러한 식의 펜팔을 계속 하던 동업자들은 어느 날 굉장한 인물과 접촉하게 된다.- 대통령 당선 후보, 아론 레이크와 그의 배경에 있는 CIA14년 째 국회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별다른 사리 사욕없이 조용한 삶을 살고 있는 의원 아론 레이크. 외모가 준수하고 머리가 명석한 그는 지나친 욕심을 부리고 사치를 하지 않으며 아내가 죽은 이후로 여자 관계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는 드문 경우의 정치인이다.러시아의 위험인물을 주축으로 하여 무기 이동과 테러리스트들의 낌새가 심상치 않은 것을 미리 알아챈 미국의 CIA 국장은 국제 안보를 지키고 미국의 국방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인물을 대선 후보로 앞세우고자 한다. 결국 국장 테디는 수많은 의원들 중 이 무명의 아론 레이크라는 인물에게 주목을 하고 제안을 하게 된다. 거래의 내용은 아론 레이크에게 아낌없는 후원과 당선 확실성을 보장할테니 국방비 증감을 주장하고 군사력 강화에 대해 거침없는 의사표현을 하는 꼭두각시가 되어 달라는 것.결국 레이크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이 무명의 대선 후보의 터무니없어 보이는 국방력에 대한 주장들은 연달아 일어나는 테러 사건으로 인하여 예언처럼 여겨지며 대세가 순식간에 바뀌게 된다. 이후 사상 초유의 선거비가 모금되고 지지율을 얻게 되며 레이크는 승승장구하게 된다. 하지만 11월의 가장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는 이 잘나가는 대선 후보에게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존재하고 결국 CIA 측에서는 이것을 알고 보호에 들어가게 된다.- 동업자와 CIA의 거래동업자들이 교도소에서 전국에 걸쳐 행하고 있던 사기극에 레이크가 걸려든 것이다. 대선 후보에 나가리라고는 생각도 못하던 시절 장난삼아 시작한 펜팔. 그러나 레이크는 관계를 끊으려던 찰나에 실수로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게 되고 미리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던 CIA 측은 자신들의 대선 후보가 동요되어 계획을 거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비밀리에 동업자들과 거래를 하게 된다.결국 소설의 결말은 동업자들이 CIA 국장의 힘으로 대통령 사면을 받고 자신들이 원하는 거액을 얻어서 런던에 가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며 레이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CIA와의 암흑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정치 가도를 계속 달리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된다. 결국 동업자와 레이크 모두 법이나 사회 정의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게 되며 CIA측도 강력한 재력과 정보력으로 양쪽에 노출되지 않은 채 자신들의 목적을 관철시키게 되는 것이다.(3) 소설에서 드러난 법조인의 모습- 존 그리샴의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놀란 부분은 바로 법조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조인이라 하면, 즉 판사, 검사,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을 보면 범접하기 쉽지 않은 다른 영역의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정부와 떨어진 독립적인 기관의 사람이라기보다는 공무원이나 정치적 지위를 가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리라 싶은 이미지와 느낌이 떠오른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법조인은 존경받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직업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판사 출신 변호사라 하면 대단한 경제력으로 이어지는 선입견까지 형성되어 있으니 일반인들이 보기에 법조인은 출세의 꿈을 이루어주는 직업이라 생각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이 소설에 드러나는 변호사들의 모습은 이러한 우리의 편견과는 전혀 달랐다. 무능력하며 게으르고 경제력 또한 없는 변호사가 등장할 뿐만 아니라 탈세 등의 혐의로 인하여 한 순간 전락하여 범죄자가 된 이들도 있었다. 과연 이 사람들이 선의의 피해자들을 구제해주고 세상의 혼란에 공정한 판단이 내려지도록 중재하고 일조하는 전문인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또한 혹독했다. 변호사라는 이름만으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었다.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변호사에게는 존경은커녕 멸시와 냉대만이 존재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변호사란 직업을 가지고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수입을 올리지 못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미국에서도 거대한 수익금을 받고 큰 소송을 맡으면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존경받는 변호사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바는 미국인들의 그런 법조인에 대한 존경이나 존중감은 단지 ‘변호사’라는 단어의 상징적 의미에서 비롯되는 아니라 느껴졌다. 그들에게 있어서 변호사는 어려운 상위 계층의 사람이 아닌, 자신의 법적인 부분을 담당해주는 대리자로서의 위치가 더 큰 것이었다. 게다가 전직 판사 출신인 주인공들은 우리나라의 특혜 문화 속에 익숙한 내 눈에는 이상하게 비칠 만큼 특별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형무소에서 어느 정도의 존경과 존중을 받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전직이 직접적으로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곳에서 분쟁을 중재하는 역할들을 맡고 질서를 유지해주기에 얻어진 것들이었다. 결국 미국의 법조인은 공무원이나 정치인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좀 더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서비스 업종의 전문인의 느낌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Ⅰ. 서론 - 작가 선정의 이유2004년 겨울에 뉴욕과 미국 동부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1달하고도 보름이라는, 여행치고는 꽤 긴 일정을 잡고 평소 친하던 같은 학부 친구와 다녀온 여행이었다. 여행 중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이 바로 미술관과 박물관 관람이었다. museum street을 따라 일정을 잡다보면 일주일도 모자란 판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 많은 미술관 중에 선택해서 간 것이 바로 MoMA, 구겐하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었다. 그 중 가장 재미있게 공감하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뉴욕 현대 미술관인 MoMA이다. 그만큼 대중성을 가진 미술관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구겐하임이나 메트로폴리탄 등에는 상대적으로 내가 좀 관심이 적은 고전 쪽 전시물들이 많았고 또한 너무 작품양이 방대하여 나중에 지쳐 관심 있게 못 본 탓도 있었겠지만 MoMA의 경우 전시 환경이나 구조도 좋았고 평소 관심이 있었던 작가들의 작품들이 많아서 더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 전공은 생명과학이고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생활과 입시를 겪으면서 문화적 소양을 쌓을만한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나와 같은 경우도 나름대로 미술을 좋아한다 하면서도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유명한 근대, 현대 화가들 말고는 아는 작가가 별로 없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이름을 잘 알지 못하거나 그 작가의 배경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는 경우 작품에 대한 관심도와 주의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칸딘스키의 작품들이 지나고 다른 층으로 이동하여 관람을 하고 있을 때 별 생각이 없던 나의 눈에 띤 것이 바로 에드워드 호퍼의 ‘House by railroad' 이다.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때 한 생각은 ’참 황량하다‘라는 것과 ’진짜 같은 그림이다‘라는 것이었다. 별로 그다지 황량해 보일만한 이유는 없는데 집 자체가 너무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느낌이 있었다. 게다가 진짜 집같이 그리기는 했으나 그림이라는 것은 반드의 상황과 관련지은 심리적 해석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너무나도 평범하기까지 한 그 그림에 그렇게 인상이 깊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후 여행은 일탈인 것이기에 다시 평상시로 돌아오면서 나는 이 그림에 대한 추억을 전혀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바로 다시 이 그림을 본 것이 바로 현대 미술사 수업 시간의 자료 속에서이다. 작가의 이름도 잊어버리고 있었기에 처음에 이 그림을 보면서 ’그 때 그 그림이구나.‘하는 생각을 하였다. 또한 설명을 듣기 전 까지는 과거에 보았을 때보다 그림에서 황량함 속에서의 애잔함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곧 이 작품의 작가가 그린 다른 그림들은 어떨까하는 흥미가 생겼다. 이 작가는 어떤 시대를 살았으며 어떤 인생을 겪었기에 이러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일까.Ⅱ. 본론 1 - 작가의 연대기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는 미국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한창 활동하던 1910-1930년 대 미국 미술은 리얼리즘과 모던 아트의 사조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의 재현적이면서도 낯선 화풍을 그 시대의 미국 풍경을 잘 반영하며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그의 작품들이 미국의 리얼리즘의 한 파인 미국 풍경회화(America scene painting)에 있어서 의미있는 작품들로 남게 되었다. 그에 대하여 알려져 있는 일대기는 다음과 같다.그는 1882년 뉴욕주 나이아크(Nyack)의 허드슨 강가 작은 마을에서 출생하였으며, 7살때 이미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또한 청소년 무렵부터 그는 화가로서의 재능이 다분하였는데 이러한 그에게 그의 부모는 아들이 가난뱅이 예술가가 되기보다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길 바랐다. 그의 깔끔하고 단조로운 그림들이 어떻게 보면 마치 크기를 부풀려 놓은 광고의 삽화와 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초기의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결국 순수 미술에 대한 열망으로 그는 1900년에 뉴욕예술학교(t 그림에 있어 큰 영향을 준다. 파리에서 몇 달 머문 후, 암스테르담, 베를린과 부뤼셀을 여행하였다. 이때 램브란트의 그림 '야경(The Night Watch)'에 큰 인상을 받게 된다. 이 때 이후로 램브란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어둠 속에서 극적으로 드러나는 빛은 호퍼의 그림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됐다. 호퍼의 대표작 ‘밤을 지새는 사람들’(1942)은 빛의 극적인 느낌을 강조한 3백년 전 렘브란트 그림의 또 다른 변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미국에 돌아오고 1920년에 Whitney Studio Club에서 첫 단독전시회를 가졌으나, 그의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당시 미술계는 야수파, 입체파, 다다와 초현실주의 등 기존의 것과는 다른 기상천외한 예술의 시도가 난무했기에 그 중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평범하다 못해 공허해 보이기까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로써 그의 나이는 이미 37세나 되었고, 그는 예술가로서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또한 순수 미술에 대한 열정과 열망으로 화가의 길을 택하고 유학의 길에 올랐으나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을 놓지 못하게 되었다. 화가로서의 딜레마를 타개하기 위해 그 당시 새롭게 떠오르는 시장인 프린트를 제작한 것이다. 이 때 제작된 프린트들은 그림보다는 쉽게 팔려 나갔고, 그러자 호퍼는 다시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이 수채화들은 훨씬 더 쉽게 팔려 나가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생활의 안정을 찾고 화가로서의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호퍼는 그린위치 빌리지에 정착하게 되고, 여기에서 뉴욕예술학교에서 공부할 때 이미 알고 지내던 Jo Nivison과 다시 사귀게 되어 결혼에 이른다. 그 후 그들의 길고도 복잡한 관계는 호퍼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그녀는 호퍼가 그녀의 화가로서의 발전을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좌절시키고 있다고 생각하여 자주 다투었으나, 그녀의 존재는 호퍼의 작품 활동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필요요소였다. 결혼후부터 호퍼는 작가로서의뛰어난 빛의 구사와 매우 미묘한 공간관계를 보여준다.그러나 그의 뛰어난 감수성도, 화풍도 시대를 뛰어넘지는 모더니즘으로 대변되는 추상 표현주의의 열정과 격랑 속에 그의 예술은 점점 고립되어 나갔으며, 1967년 호퍼는 주위로 부터 잊혀지지는 않았으나 그렇게 고립된 채 사망하였다. 한 때 대중적 인기를 끌기는 하였으나 그의 작품이 미술사적으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은 것은 그가 사망한 후 수년이 지나서였다.Ⅲ. 본론 2 - 작가의 시기별 대표작과 성향F.1 F.2F.1 Summer Interior, 1909Oil on canvas, 24 x 29 inches,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그의 초기작 중 하나로 방안에 한 여성이 침대 시트를 바닥으로 늘어뜨린 채 고개를 떨구고 홀로이 앉아있다. 그녀의 하반신은 옷을 걸치지 않은 상태로 여성의 얼굴이나 표정, 특이한 행동들이 그림 속에 표현되어있지는 않지만 단순한 색상과 구도만으로도 작품 속의 그녀가 얼마나 큰 고독감과 고뇌를 겪고 있는 것인지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색감 자체는 차가운 색 계열만 쓰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따뜻한 느낌의 색을 씀으로써 이러한 풍경이 너무나도 생소하지만은 않게, 인간적으로 바라보고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은 듯하다. 너무나도 익명적인 그녀의 옆에 있는 창문으로 통한 빛이 비쳐 생긴 것으로 보이는 밝은 부분은 그녀가 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다른 세계의 인물이 아니라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한편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였다.F.2 House by the Railroad, 1925Oil on canvas, 60.9 x 73.6 cm,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미국 여행 중 MoMA에서 보고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1925년 작품으로 그가 렘브란트의 그림을 계기로 빛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 이후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 않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친숙한 광경과 심리와 감정이긴 해도 현실적으로 들여다 보려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의미 부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그림에서 도시 문명의 대표로 여겨지는 철도와 그 철의 느낌이 차갑고 날렵하게 표현되지 않고 따뜻한 색으로 다소 거친 느낌이 있도록 표현되었다. 도시 문명에 대하여 거부하지도 그렇다고 예찬하지도 않고 우리의 생활 속의 단면으로 받아들이면서 그것과 더불어 그 현실 속에서의 공기로 존재하는 분위기과 심리를 표현한 것 같다. 또한 집의 밑단을 가리는 구도의 철로는 그림 자체에서 느껴지는 소통적이지 못한 답답함을 한층 더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F.3F.3 Nighthawks, 1942Oil on canvas, 30 x 60 in., The Art Institute of Chicago호퍼에게 있어서 렘브란트의 ‘Night watch’가 끼친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현대에 와서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그가 파리 유학 당시 느꼈을 고독감과 고뇌의 경험이 이에 반영되지 않았을까 한다. 뉴욕이나 또는 미국의 도심 속의 사람들의 초조함이 엿보인다. 그림 속에서 다른 가게들은 이미 문이 닫혀있는 것으로 보아 밤이 깊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늦은 밤이 되도록 작품 속 인물들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세 명의 손님이 보이는데 한 명은 그림 안쪽으로 관람자 입장에서 등을 져 앉아있고 나머지 두 명은 함께 앉아있으나 얼굴의 방향이나 시선이 명확치는 않으나 서로를 향하지 않은 채 매우 건조하다. 그들의 차림새로 보아 빈민층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가게 자체가 상류의 사람들이 갈만한 분위기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당시 대공황 이후 방황하고 고뇌하는 중산층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은 얼굴이 있기는 하나 개성적이지 못하며 어떤 면에서는 익명적이다. 누구든 그 자리에서 그들의 모습이 .
대학 들어와서 교양과목을 안 듣고 미루고 있던 터라 2학년 마지막 학기인 이번 학기에 학교에서 정해준 공통영역 교양을 여러 개 신청해야만 했다. 현재 내가 듣고 있는 공통영역 교양은 과학 영역과 인문 영역과 사회 영역이다. 처음엔 별 생각없이 들었는데 세 수업 각각의 영역을 그 분야에서만 얘기하지 않고 다른 영역들과 관련시켜 수업하여서 각각 다른 수업이긴 하였으나 비슷한 내용도 많고 동떨어지지 않아서 참으로 재미있었다. 그러던 중 자신의 전공(과학)과 다른 분야를 접목시키라는 레포트 주제가 나왔을 때 특별한 남다른 재주도 없는 내가 생각해낸 것은 바로 수업 시간에 배운 것에서 최대한 재미있는 내용의 레포트를 써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로 생각해낸 것이 과학에서의 물과 신화에서의 물에 대한 역사와 해석이다. 과학, 삶, 미래 수업에서 고대 자연 철학자들이 물을 원소 중의 하나로 생각하여 중시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또한 신화에서의 물의 상징성은 교과서에서도 배웠으며 문학 작품 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고 수업을 들었다. 그 수업을 들으면서 물의 상징성에 대해서 이렇게 원초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구나 하면서 꽤 놀라워했었다. 한번도 나는 물에 대해서 그런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개념의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연과학도인 내가 보아온 물은 항상 과학적이고 용매로서의 성질을 가지고 수소와 산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분자였다. 어릴 때부터 난 과학을 좋아했고 이과를 나오고 자연과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런 내가 저 수업을 듣고 적지 않게 가치관의 충격(충격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받는 것은 당연했다. 중학교 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물상 수업을 듣고 있는데 과학 선생님께서 물의 밀도가 1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물은 참 신비한 물질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하지만 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연한 거 아닌가? 우리가 무엇을 실험하고 측정하고 약속할 때 물을 기준으로 했으니 그렇지.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나는 물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나 상징 같은 , 영양분 정도일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인체에 가장 원초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중에서 물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람의 몸을 구성하고 있다. 즉, 이 세가지 원초적인 요건들 중에서도 인간과 가장 가깝게 생활해온 것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지내온 것은 물이라고 한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그렇다면 이러한 물은 어떻게 시작이 되었을까? 최초의 물방울의 기원은 다음과 같다. 46억년 전에, 해를 감싸고 있던 가스 구름에서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의 별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구가 처음 생성되었을 때는 오늘날처럼 물이나 대기가 없었고 지금과는 달리 매우 혹한이거나 폭염인 상태의 극한 환경이었다. 해를 둘러싼 가스 구름의 아주 작은 알갱이들이 서로 잡아당기고 부딪치는 동안에 점점 더 큰 알갱이로 변하였고 그 수많은 큰 알갱이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부딪치면서 생긴 열과의 반응으로 아주 뜨거워져 녹아 버리면서 쇠와 같이 무거운 물질들이 중심 핵이 되고, 암석과 같은 비교적 가벼운 물질들이 바깥쪽을 에워 싼 둥근 모양의 지구가 만들어졌으나, 안쪽은 아주 세찬 반응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높은 온도를 지닐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여기저기서 일어난 화산 폭발과 더불어 빠져 나온 기체들이 새로운 대기를 만들었는데 이 대기는 지금과 달리 메탄가스, 수소가스, 암모니아가스, 그리고 수증기가 그 대부분을 차지했다. 높은 온도와 화산에 의해 생긴 수증기들이 점점 더 크게 뭉쳐져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되자 비가 되어 수 백년 동안 끊임없이 내리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로 지구에 물이 생기게 된 과정이다. 이렇게 내린 땅 껍질이 꺼진 부분은 모두 물로 채워져 태초의 바다가 생겨났는데, 이 때의 바다는 지금과는 달리 염분이 제외된 민물바다였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과학에서 이야기하는 물의 기원이다. 이렇게 탄생한 물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인간의 생명에 있어서 과학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생명이 있는는 모든 것은 그 생명의 원천을 물에 두고 있다. 인간은 물론 동물물은 사람에게 있어 생명의 시작이다. 아버지의 체내에서 분리되어 나오는 순간에도 물의 모습이요, 어머니의 몸 속에서 자라는 동안에도 계속 물 속에서 물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으면서 잘 지내다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 사람은 세상에 나와서도 모유나 우유같은 물만 먹고 자란다. 그러다 음식을 먹게 되는데 음식물 속에 물이 들어 있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음식물로 공급되는 물로는 부족하여 냉수나 보리차를 수시로 마신다. 물은 피와 조직액의 순환을 쉽게 하고 영양소를 분해하여 세포에 계속 보내주고 다 사용한 찌꺼기는 운반하여 몸 밖으로 배설시킨다. 그것뿐이 아니다. 체내의 물은 피의 농도를 조절하기도 하며 적당히 땀을 흘려 체온을 조절하기도 한다. 비록 적은 양이기는 하지만 눈물을 계속 흘려 눈을 움직이게 하고 먼지 등 불순물의 침입을 막아 눈을 보호하기도 한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원시 바다라는 견해는 인간으로부터 증명되는 것 같다. 그것은 여성의 양수의 성분이 바닷물과 아주 비슷하며,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성분이 바닷물에 들어있는 나트륨, 칼슘, 염소, 칼륨, 마그네슘 등과 거의 비슷한 비율로 들어 있다는 점이 하나의 증거다. 사람이 물을 보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편안해지며 헤엄을 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도 일종의 귀소본능 이라 할 수 있으리라. 며칠 전 티비에서 미숙아(일찍 태어난 아기들)들을 다룬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숨도 혼자 잘 쉬지 못하고 움직임도 서툰 미숙아가 물에서 헤엄을 치며 즐거워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것이 바로 물이 가진 인간 생명과의 의미를 확연히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그렇다면 인간의 원초성을 표현하고 담고 있다는 신화에서 물의 이미지를 찾아보자. 신화에서 물의 의미를 찾고자 하면 창세 신화를 먼저 보아야만 한다. 고대 바빌로니아와 아씨리아의 창세신화와 이집트의 천지창조 신화에서 우리는 물이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물과 흙의 세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중국의 신화는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 이러한 물의 이미지를 또한 확연히 볼 수 있는 신화가 있는데 우리에겐 조금 생소한 일본의 창조 신화이다. 일본의 창조 신화에는 해저 깊은 곳에서 잠을 자다 깨어나는 거대한 잉어의 이야기가 있다. 그 잉어가 격렬히 몸을 비틀며 물장구를 치는 바람에 엄청난 파도가 일고, 그 속에서 오늘날의 일본 땅이 솟아 나왔다는 것이다. 또한 한편 북미의 신화를 보면 인디언 족인 아파치 족, 피마 족, 블랙푸트 족이 살았던 평원도 원래는 먼 옛날앤 잔잔한 바다였다는 이야기가 나와있다. 뗏목을 타고 유랑하던 올드맨(세상의 우두머리)이 나타나 그 바다 속에서 땅이 나타나도록 했다는 것이다. 결국 창조 신화 속에서의 물은 대지와 함께 인류를 창조하고 세상을 낳는, 혹은 대지까지도 창조하는 원초적인 존재로써 그 의미를 가진 것이다.창조적인 의미에서 물이 가지는 특성을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신화적으로 살펴보았다. 하지만 물이 창조성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에 반하는 개념, 파괴의 속성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물이다. 일단 과학적으로 살펴보자. 물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효과적인 용매이다. 물은 굉장히 여러 다양한 물질을 용해시킬 수 있으며 물에 들어가서 이온화되어 새로운 특성을 띠는 경우도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또한 물은 인류 최대의 재해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 중에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바로 홍수이다. 우리 나라와 같은 경우도 매년 수해를 입어 연간 재산 피해가 엄청나고,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매번 피해를 입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 사태가 발생한다. 물의 파괴력이란 놀라워서 홍수가 쓸고간 지역은 거의 폐허라고 말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인 대홍수는 해마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금까지 기록된 최고의 강수량은 1960년 8월 1일부터 1961년 7월 31일 까지 인도에서 내린 2만 6,466mm로 우리나라 연평균 강수량 1,274mm의 21배에 달하고, 1일최대 강수량 이 사이클론이 벵골만에서 발생해 북쪽으로 이동하며 인도 동부와 방글라데시를 강타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 과거의 큰 홍수에 관한 기록으로는 을축년(1925년)홍수를 들 수 있다. 그 당시의 강우 전선이 7월 초순부터 9월초순까지 2개월 동안 남북으로 이동하면서 전국의 하천 유역에 1~4회에 걸쳐 집중 호우가 내려 유례없는 큰 피해를 냈다. 이 홍수로 20만 8,000천 정보의 농경지가 유실되었으며, 무려 6만여 동의 가옥이 침수당했다. 가장 피해가 컸던 지방은 한강과 낙동강이 있는 경기도와 경상남도 지방이었다. 서울에서는 뚝섬과 마포는 완전히 물바다가 되었고 서울 시내 전역이 거의 다 잠겼다는 것이다. 기간중 최대 강수량은 370mm였으며 517명의 인명피해와 1,366억 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그 후 1959년에는 사라호 태풍에 의하여 영호남 지역에, 1972년에는 서울경기지방에, 1979년에는 태풍(어빙, 쥬디)의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큰 피해를 냈다. 1980년에는 경기, 충청지역, 1984년에는 서울,경기,강원지역에 1987년에는 강원 충청지역에, 1989년에는 호남 지방에, 1990년에는 서울,경기, 강원 지역에서 대홍수가 일어났으며 인명 피해는 점차 줄고 있으나 재산 피해는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어마어마한 홍수라는 파괴력을 지닌 물은 모자를 때에도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다. 그것이 바로 가뭄이다. 세계적으로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가뭄의 원인에 대하여는 지구의 온난화 효과, 엘리뇨 현상이라는 주장들이 있으나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고 있다. 비오 는 양이 예년의 10~20%로 적고,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최소한 1개월 이상되는 경우를 가뭄이 든다고 한다. 심한 경우에는 몇년씩 이런 현상이 계속되 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렇게 가뭄이 계속되면 저수지는 모두 말라 마실 물이 없게 되고 농작물은 모두 타 죽어 사람의 삶 그 자체가 위협을 받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굶어 죽기도 한다. 1981년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다.
대학 들어오기 전에는 입시를 위한 현대소설이나 현대시, 고전문학말고는 별로 읽어 본 책이 없는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이과였으니 책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말해도 과장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때는 그랬다. 하루하루 공부하기에 급급하고 내 눈앞에서 풀려나가는 수학 문제와 물리 문제들이 신기하고 재미있었을 뿐이다. 어쩐지 책은 지루하기도 했거니와 입시와 관련된 책이 아닌 이상은 책 읽는 시간이 아까웠다. 차라리 그 시간에 물리 문제를 하나 더 푸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었다. 부끄럽게도 이러한 이유로 내가 고등학교 시절 동안 읽은 책은 몇 권되지를 않는다. 가끔 학원에서 논술 선생님들이나 학교 국어 선생님들께서 추천해주시는 책들을 사서 보긴 했지만 그저 의무감에 몇 글자보고 대충 내용 파악하고 책꽂이에 꽂아놓기 일쑤였다. 그렇게 몇 권 안 되는 책들 속에서 유일하게 재미를 붙여 며칠만에 단숨에 읽어버린 책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최재천 교수님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이다. 아마 이 책이 내가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 시절에 한참 화제가 되었던 것 같다. 무엇이 이 책을 그렇게 유명하게 하였을까? 궁금한 마음에 책을 펴들고 결국 놓을 수가 없어 그 자리에서 완독하고 말았다. 그러기에 이 책은 나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으며 굉장히 즐겁게 읽었던 책이라 할 수 있다. 과학, 삶, 미래 과제로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던 나는 솔직히 처음엔 이 책으로 레포트를 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새로운 시각에서 새로운 시점에서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나의 생각과 느낌이 어떨지 궁금했다. 책의 내용이 무겁지 않고 동물이라는 개념에 한정되어 있어서 3장이라는 장수를 채우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다시 읽고 싶은 마음에 책꽂이에 오랫동안 꽂아 두었던 연두색 표지의 책을 다시 한 번 꺼내들었다.이 책은 여러 가지 이야기가 짧게 소개되어 있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다 작가 본인이 관찰하고 경험한 이야기 또는 연구 자료를 통해 확인한 이야기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단순히 동물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생태에 관해 늘어놓은 것으로 마치지 않고 인간 사회와 밀접하게 관련시켜 이야기들을 풀어나갔다. 어떤 면에서 보면 어릴 적 좋아하던 파브르 곤충기 와 시튼 동물기 와 같은 책과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이러한 책들은 동물들의 생태에 관해 단순히 얘기하거나 동물들을 관찰하는 입장에서 쓴 것이기 때문에 사회와 관련지어 책을 지어낸 작가와는 이야기 형식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소개되어 있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네 가지의 주제로 분류해 볼 수 있는데 인간과 마찬가지로 서로 사랑하고 걱정하고 위해주는 동물들의 행동 모습에 대한 이야기, 즉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과 인간의 모습과 가끔은 무섭도록 비슷한 동물들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동물들이 가진 매력적인 생명력에 대한 것과 하나의 사회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그린 이야기가 그 네 가지이다.첫 번째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서 소개된 동물들의 모습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동물도 남의 자식을 입양한다 와 흡혈박쥐의 헌혈 그리고 고래들의 따뜻한 동료애 가 있다. 타조가 다른 타조들의 알을 모아서 품는 것, 북미의 민물고기가 다른 수컷들의 알까지 뺏어오려고 하는 것 등, 물론 그들은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으로, 생식에 있어서 이득을 보고자 하는 본능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지만 굳이 남의 자식까지 데려다 기르려는 동물들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작가처럼 한편으로는 마음이 씁쓸하기도 했다. 동물들은 자식을 하나라도 더 키우고자 노력하는데 왜 인간 사회에서는 많은 자식은 부담이 되고 심지어 버려지고 홀로 자라야 하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또한 인간 사회에서는 자기 자식을 기르고 싶어도 경제적 형편 상 아니면 사회적 상황 상 돌보지 못하고 부모가 되길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여유가 되고 형편이 좋으면서도 자기 자식만 배부르게 먹이고 입히고 남의 불행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 있으니 무의식이든 의식이든 남의 자신을 거두어서 길러줄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이 단순하면서도 어쩐지 부러웠다. 흡혈박쥐의 헌혈이야기에서도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 솔직히 말해서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 한 번도 헌혈을 해 본 적이 없다. 기회가 없어서 못해봤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테고 피뽑는 게 무서워서 아직 자진해서 해보겠다고 나선 적이 없다. 이런 점에서 생각한다면 나는 흡혈박쥐가 가장 존경스럽다. 솔직히 이 책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작가가 말하는 일반인 이였다. 흡혈박쥐라 하면 공포 영화에서나 나오는 무섭고 끔찍한 생물체라 생각했었고 어쩐지 무섭고 싫었다. 헌데 자기 자신의 양식을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여유라니! 정말 대단한 것 같았다. 먹는 것은 의외로 나누기 힘들다. 또한 자신의 배가 부르면 남의 배고픔은 생각하기 힘든 법이다. 자신이 풍족하고 여유로우면 가난한 자의 비극과 슬픔을 모른다. 설령 알고 있었더라도 까먹는다. 하지만 흡혈박쥐는 자신의 친구들과 동료를 도울 줄도 알았으며 내가 이제까지 생각해오던 끔찍하고 무서운 것도 아니였다. 다친 동료 고래를 밑에서 떠받쳐올려 숨을 쉬게 도와준다는 이야기는 평소 친구들에게 잘 하지 못하던 나에게 죄책감 마저 심어주었다. 동물들도 감정을 느끼고 자신의 주변 환경을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그것이 단순히 유전자적으로 입력된 본능일지라도) 인간의 모습과 정말 많이 닮은 듯 했다.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보다도 더 그 마음이 극진히 보이니 그런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돈과 명예와 같은 세속적이고 산물적인 개념들로 인해서 그러한 사랑의 본능조차 퇴색되어가고 있나 하는 생각까지도 한 번 해보았다.두 번째 주제로 나온 것이 인간과 무서울 정도로 비슷한 동물들의 모습들 이였다. 동물 또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습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들 사이에서도 얌체는 존재하고 간사함 또한 존재했다. 동물들도 나름대로의 수 체계가 있으며 그들 사이에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만남과 이별이 존재하였다. 동물이 인간이 닮았다라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모순일테고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을 통해서 공통점들을 확인하면서 인간의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모습들에 대한 파악이 가능했다. 가장 인상깊었던 이야기는 갈매기의 이혼 이야기인데 결혼과 이혼이라는 것이 인간에게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나에겐 굉장히 흥미 있는 이야기였다. 물론 인간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의 갈매기의 모습을 인간의 문화적인 개념인 결혼과 이혼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겠지만 동물세계에서 거의 완벽한 일부일처제를 고수하고 있다는 갈매기들 사이에서의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에서 마찬가지로 이혼율이 점점 늘어만 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정말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쩐지 동물의 생태 속에서 인간 사회의 모습을 엿본 것 같아 재미있었다. 또한 한 백로의 새끼들일지라도 자신이 먹이를 좀 더 많이 먹기 위해 자신의 형제를 해친다는 이야기에서는 돈이나 명예를 위해서라면 물 불 가리지 않는 인간의 탐욕스러움이 동물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고 생각되었다. 끝이 없는 욕심이 동물적인 본능이고 이성에 의해서 자제되지 못할 때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 해도 자신을 위해 의도적으로 남을 해하는 모습은 부정할 수 없는 인간 사회의 단면이 아닌가? 개개인간에서도 그렇고 개인과 사회 간에서도 그렇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그렇다. 인간들은 매일 매일 조금이라도 더 얻고 조금이라도 더 잡기 위해 서로를 공격하고 밀어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세 번째는 동물들의 생명력과 활동성, 그것에 대한 매력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동물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삶을 지켜나갈 능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러한 그들의 활동성과 생명력은 우리에게 묘한 매력을 불러일으킨다. 자신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벌이라던가 자신들의 사회에서 나름대로 규칙을 가지고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개미들의 이야기들이 이러한 모습을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주제는 앞에 두 이야기를 포괄한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아름다움과 사랑, 그리고 간사함과 잔인함 등은 그 생물이 살아있고 그로 인해 매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할 테니 말이다.네 번째는 사회와 그 구성원으로서의 동물들의 모습이다. 앞에서 여러 번 말했지만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인간 사회의 모습과 비슷한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앞보다 이 부분에서 특히나 사회적인, 또는 군집적인 생활 속에서의 동물들의 행동양식과 그들이 그것을 꾸려나가는 방식, 그리고 그에 따른 현상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돌고래 무리들이 지조 없는 돌고래를 패거리에 끼워주지 않고 따돌림 시키는 것과 같이 우리 사회 속에 항시 존재하는 이지메와 같은 현상과 비슷한 일들이 동물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도 일어나고 있다. 동물 사회에서 역시 그 사회에 따른 문제점들이 있고 또한 자신들만의 원리 원칙이 있는 것이다. 개미들의 세계에서는 왕권다툼이 존재한다. 여왕비행을 마치고 새로운 국가를 설립한 여왕개미는 일개미들을 최대한 많이 낳아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다른 신흥국가와 권력다툼을 한다. 꼭 인간 사회에서의 나라 간 세력 다툼과 비슷하기도 하고 우리나라 내에서의 정치 세력 다툼과 비슷하기도 하다.
미국 문화의 몰락. 처음 이 책의 이름을 접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문화가 몰락한다고? 로마 시대 이후 처음으로 등장한 일극 시대의 주인공이자 경제력으로, 군사력으로, 게다가 헐리웃으로 대표되는 문화 산업으로까지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 문명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최근 여중생 치사 사건을 저지른 미군 두 명이 선거 공판에서 무죄를 판결 받은 일로 나는 한창 반미 의식이 고조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 책을 접했다. 정말 편협한 생각일지는 모르겠으나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엔 통쾌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전 세계가 자신들의 소유인 양 군림했던 미국이, 우리나라의 분단을 소련과 가장 앞장서서 만들어냈던 미국이 이런 병폐에 시달리고 있다니. 이 책의 저자는 정말 자신의 나라인 미국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한국인인 나조차도 통쾌함을 느끼면서 대단하다고 여길 정도로. 저자인 신예작가 모리스 버만은 원제를 'THE TWILIGHT OF AMERICA CULTURE' 로 붙였다. 번역 과정에서 좀 더 강한 의미로 몰락이란 말로 해석한 듯 하다. 몰락의 개념은 흔히 유기체로 비유되어 생성, 발전, 노화의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간주된다. 여기서 그는 몰락이란 것은 문명의 과정 자체에 내재하는 요소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철저히 이해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5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 1장은 미국 몰락의 근본적인 원인들과 그 몰락 징후들이 자세히 나와있었다. 그는 몰락 징후를 네 가지로 들고 있다.첫째가 사회 경제적 불평등의 가속화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소수의 풍요와 다수의 불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냉정한 신세계' 에서의 윌리엄 피네건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미국 경제가 성장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인들 대다수의 경제적 전망은 오히려 어두워져만 가고 있다.> 이 말이 저자가 말하는 경제적 불평등과 미국 몰락의 증상을 모두 포함한다고 할 수 있겠다. 겉으로 보기엔 부유하고체 소득의 93% 수준이라는 미국. 결국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라는 자리에서 군림하고 있는 그들은 자신들의 국민들 중 80%가 차지하는 7%의 소득률에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오히려 이러한 골은 점점 더 깊어갈 것이라고 말하였다. 즉, 부분적으로는 소수에 대한 부의 집중이 점차 심해지고 있는 현상이 한계이익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과정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뒷부분에서 또 다른 몰락의 징후로서도 지적되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국가의 몰락 형세가 소수의 부유층들에게는 오히려 비즈니스에 있어 절호의 기회가 된다는 표현에서는 정말 섬뜩하기 조차 했다. 국가의 몰락이 개인의 행복이란 것인가.둘째는 흔들리는 사회보장제도들이다. 이것은 이 전에 언급한 한계이익의 감소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현재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대국민 복지정책, 특히 사회보장제도와 메디케어 (6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장제도)를 살펴보면 불행히도 앞길이 막막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거라 언급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의 원인으로 가장 크게 들 수 있는 것이 경제적 불평등과 인구의 노령화라고 하였다. 부의 편중으로 인해 생긴 한계이익의 감소가 사회보장 제도를 통째로 흔들어 놓았으며 인구의 노령화는 메디케어 시스템이 한계에 다다르게 만들었다. 결국 부양인구의 수가 증가하여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결과가 오게 된 것이다. 이런 것은 복지 정책이 잘 정비되어 있다는 스웨덴에서조차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고 하니 복지정책 상의 문제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결국 미국은 21세기 말에 접어들면 사회복지 수혜자에 대한 근로자의 비율은 일 대 일로 떨어지게 될 전망이다. 미국 정부에 있어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미국 몰락의 징후로서 세 번째는 지적 수준의 급락을 들 수 있다. 교육의 문제와 집단적이고 획일화된 상업주의 문화 뒤에서 대다수의 국민들이 단순화되고 무식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흡수, 합병 등을 통해서 대형화해 가고, 그보면 미국민의 무식을 실감한다.1. 미국의 성조기를 가장 먼저 만든 사람은 누구?2. 미합중국을 형성하게 된 미국동부 13주는 미국 독립전쟁을 치르고 나서 어느 나라로부터 독립했는가?3. 링컨 대통령이 행한 케티즈버그 연설을 무엇?4. 전구를 발명한 사람은 누구?5. 숫자 3의 제곱은 얼마?6. 물이 끓는 온도는 몇도?7. 지구가 자신의 축을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8. 지구에는 달이 몇 개 있는가?이상의 기초적인 질문에조차 정확한 답을 한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또한 세계지도에서 미국을 찾을 수 없는 성인이 15%, 일본을 못 찾는 사람이 42%. 유권자중 대통령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10%.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도는데 하루 또는 한달 걸린다는 사람이 53%. 고등학교수준의 글을 정확히 읽지 못하는 예비 교사들. 읽지도 못하고 배달하는 우체부 등등의 미국의 지적 수준의 심각성을 작가는 이런 예를 통해 설명하였다. 문맹률이 높다는 미국. 결국 한 집단에 대해 편중되었던 것은 경제력뿐만이 아니라 지식과 교육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국민 대부분의 지적 수준이나 사고력이 떨어진다면 결국 우민화된 미국민들은 우민화되어 소수의 지배층들에 떠밀려 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네 번째는 소비주의적인 문화이다. 이것은 로마 제국의 멸망과 관련해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즐기고 노는 문화, 즉 향락 문화에만 빠진 나머지 가치 기준으로는 영리만이 남고 정신문화가 소멸해버린 것이 지금 미국 문화의 실태라 한다. 여기서의 정신문화는 지적 교양 수준이랑은 또 다른 개념이라 얘기할 수 있겠다.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의 이야기라고 보면 되겠다. 미국인들이 코카콜라에 열광하고 X-file을 신봉하고 헐리웃에 빠져 있는 동안 그들의 문화는 기업에 의해 지배당하고 결국 순수한 정신 가치 중심의 문화는 그 빛을 잃어버린다는 이야기다.결국 이런 몰락의 징후로 작가는 미국의 몰락이 머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니, 머지 않았다기보다는 법' 이란 것이다. 수도사적 해법이란 중세 수도사(지식인) 중심의 문화보호를 말한다. 따라서 수도사적 지식인이란 먼저 영웅주의나 엘리트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다."는 표현으로부터 개인적이며 오랫동안 변질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는 것들의 본질에 대하여 문화의 진정한 가치를 읽어내고 보존하며 전승할 인물을 말한다. 물론 여기에서 수도사는 수도원에 들어갈 필요도 없고, 금욕주의나 종교적인 의례를 지킬 필요도 없다. 오늘날의 수도사는 기업들이 지배하는 소비주의 세계가 만들어내는 과장과 혼란을 거부한다. 이들은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고, 상업주의 광고의 허와 진실을 알고 있다. 다만 특별히 '수도사'란 명칭을 붙인 것은 이들의 활동이 '단체'나 '조직'의 이름으로 행해질 필요가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빛을 내는 개인의 활동이 장기적으로는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작가의 이야기이다.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통쾌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미국에 대한 나의 반감은 고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9.11 테러에 무력이라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대항했던 미국. 우리나라 여중생을 무참히 죽여놓고도 단지 그들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두 장병을 무죄 판결 내렸던 미국. 과연 그들에게 올바른 판단력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의구심을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신랄한 비판은 내 가슴을 통쾌하게 뚫어주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우선 눈에 띄는 점은 작가의 성실성이었다. 자신의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을 위해서 여러 분야의 책을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고심한 흔적. -밝히자면, 처음부터 쏟아져 나오는 인용구들에 대한 반감은 있었다.- 작가는 그렇게 자신의 의견을 우리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 책을 딱 잘라서 '어떤 책'이다라고 정의 내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경제적인 불평등, 지적 문화의 저질화, 정신 문화의 소실 등 의 주제로 다양하게 미국 문화와 사회의 여러 부분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끼게 한 듯 하다. 그는 그 자신이 미국인이라고는 여길 수 없을 정도로 미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할만한 부분까지도 그는 가차없이 건드린다. 대단히 용감하다고 과감하다고 느꼈다. 다수의 입맛에 맞는 책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심장을 찔러버리는 과감성. 그리고 이런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고 있는 비판의 정당성에 대한 설명도 무리없이 해내야 한다. 이런 점에서는 그의 글은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만연된 심각한 불평등의 문제와 소비주의와 상업주의에 물든 교육과 저질문화를 양상해 내는 미국. 그는 미국문화가 몰락하는 원인과 그 모습을 미국인의 입장으로서 비판적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단지 반미 감정에 통쾌함만을 느끼던 나는 점차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작가가 몰락의 징후로 꼽은 그것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과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나라뿐만이 아닐테다. 시장경제의 원리를 받아들인 민주주의 국가들의 모습이 대체로 그럴 것이다. 결국 미국 문화의 몰락은 단지 미국 문화의 몰락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공산주의가 붕괴했듯이 민주주의의 붕괴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 책에는 미국 문화를 받아들이기에만 급급했던 우리의 한계 또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학문이든, 대중문화든, 책이든, 상품이든 미국의 문화에 오염되지 않은 것이 어디 하나 있었던가? 문명은 정점까지 갔다가 몰락할 수도 있지만, 정점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몰락할 수도 있다. 결국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코카콜라에 익숙해져있고 X-file 이라는 외화에 열광하기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소비적인 문화? 부의 편중? 이런 것들은 우리나라 역시 해당되는 사항이다. 처음에는 그저 미국에 대한 반발감과 복수심 같은 것으로 가볍게 읽던 이 책이 나에게로 하여금 우리문화에 대한 경각심과 우리나라에 대한 우려감을 갖게 해주었다. 우리 또한 이러한 안이한 상태로 있기보다는 좀 더 반성적인 사고의 태도를 가지면서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