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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영] 기업을 위한변명 평가D별로예요
    제 1부 별들의 전쟁에서 기업들의 전쟁으로제 1강의 학생, 주부, 운송선수도 기업가가 되라봉이 김선달과 월트 디즈니코카콜라는 코카나무의 잎과 콜라나무의 열매에서 추출한 원액이 주성이다. 이 회사는 이러한 성분으로 큰 돈을 벌고 있다. 그리고 세계적인 생수회사인 프랑스의 에비앙생수회사는 스위스에는 르망이라는 거대한 호수가 있는데 그 호수 프랑스 쪽에 잇는 지역 이름이 에비앙이다. 에비앙 생수회사는 이곳 물을 병에 퍼담아서 세계 사람들에게 먹이면서 돈을 번다. 여기서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혁신적 제품 개발이다. 즉 이러한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제품은 실패도 할 수는 있지만. 치말한 계획이 있을시에는 남들보다 큰 성공을 거둘수 있다는 것이다. 즉 세계에서 물이 없는 나라는 없다. 방글라데시는 물이 너무 많아서 큰 걱정이다. 이러면 이러한 나라는 왜 물을 담아서 팔지 못할까? 즉 비록 창의력의 생각을 가졌더라도, 그것을 실천을 하는 것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함을 알수 있다. 또한 월트 디즈니 역시 마찬가지다. 디즈니랜드라는 ‘가족오락제국’을 건설한 월트 디즈니의 경쟁력도 그의 풍부한 상상력이다. 즉 창의력이 정말 중요한게 된다.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혁신 앞에 그 어떠한 것도 파괴된다.혁신하는 자가 싹쓸이 한다옛날 일분의 유명한 사무라이인 미야모토 무사시가 있었다. 그 사람은 최고라고 하는 사무라이의 대결하여. 60전 60승을 하였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이길수 있었을까? 그가 말하는 것은 그의 검술은 스승없이 스스로 깨우쳤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즉 전략은 첫째는 어떤 일에서건 부정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고, 아홉 번째는 슬데없는 짓을 하지말라는 것이다. 두 번째에서 여덟 번째까지는 한시라도 소흘히 하지 말고 자신의 일과 조금이라도 관련되 것은 무엇이든 하나도 빠짐없이 소흘히 하지 말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마하는 것이다. 다른 예로 세계에서 칼을 제일 잘 쓰는 사람들은 일본 사무라이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칼을 아무리 잘 쓴다고서 조직하는 것이다.기업, 그 존재의 이유이러한 기업의 역할을 알아보면 만약 자동차의 부속품은 하나하나 떠놓고 보면 가치가 별로 없다. 그러나 이들을 잘 조립하면 자동차가 되고 그 값은 부품값을 합친 것이상이 된다. 즉 힘의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돈이다. 이것은 기업활동을 통하여 벌은 돈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즉 기업은 소득의 창출 부의 창출의 기능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할 자동차의 각종 부품을 각자 직접 만들어서 조립하고 아파트도 건설도 직접하는것보다 전문업체에게 맡기면 이를 크게 줄일수 있다. 즉 이러한 면에서 생산비와 거래비를 줄이고 또한 이러기 위해서 사람들을 능력을 키워준다. 그래서 사람들을 더욱 새롭게 살고 더욱 잘살게 한다. 이러하여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제 3강의 한국의 글로벌에는 ‘글로벌’이 없다한국의 대기업은 세계의 중소기업경제대국이나 초일류 선진국들은 어떤 나라를 말하는가? 글로벌기업을 많이 가진 나라다. 조셉 슘페터는 대기업들은 정경유착 등 마이너스 기능도 하나 기술혁신 등 플러스 기능도 하는데, 전체적으로 버면 플러스 기능이 훨씬 크다고 했다. 알프레드 찬들러 교수는 성공하는 기업들은 생산, 유통 및 경영관리 세 분야에 대대적인 투자를 해야 하는데 이런 투자를 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대기업이 되며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선진국에는 대기업들이 많게 된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제일 많은 나라가 미국과 일본이다. 이 두 나라는 동서양을 대표하는 나라이며 이 두나라는 각각 다른 기업조직과 목표와 경영방식으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제 2부 미국과 일본의 기업전쟁을 알아야 한국기업이 산다제4강의 게임의 규칙은 최고기업이 만든다운명의 삼각 링세계는 이미 경제 전쟁시대로 접어들었으며, 경제전쟁은 미국, 일본, 및 유럽 삼자간의 대접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미국은 유럽인들이 만든 나라이다. 따라서 미국은 유럽과 미국 IBM이나 애플컴퓨터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일본 도시바사보다 더 좋은 노트북 컴퓨터를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도시바는 자회사 513개와 관련회사 146개로 거대한 수직 케이레쓰를 형성하고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지전자회사중 세계 랭킹 제6위인데 노트북 컴퓨터의 미국시장 점유율으 25%나 된다.유연한 수평케이레쓰미쓰이그룹은 도요타자동차,도시바전기등 25개의 회원사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미쓰이그룹과 같은 기업그룹을 ‘수평케이레쓰’라고 한다. 수평케이레쓰 소속회사들은 도요타사와 같이 거의 모두 세계적인 기술력, 마케팅능력, 금융노하우 미치 경영능력을 스스로 갖고 있다. 다른 회원사로부터 도움이나 간섭을 받을 필요가 거의 없다. 그리서 이들간의 관계는 상호구속력이 별로 없고 수평적이므로 ‘유연’할 수밖에 없다. 이를 수평케이레쓰라고 한다.‘케이레쓰기업+종합상사+주거래은행’으로 이루어진 경재전쟁군단제조회사는 순전히 상품의 제조활동만하고 그 밖의 나머지는 모두 종합상사가 담당하기로 되어 있다. 그래서 제조회사+종합상사가 하나의 기업경영단위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또한 이러한 종합상사에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자금을 제공하고 관리해주는 은행도 있다. 이 역할을 하는 것이 주거래 은행이다. ‘제조회사+종합상사+주거래은행’이 하나의 기업경영단위라고 할수있다. 따라서 종합상사와 주거래은행의 설립목적은 애당초 케이레쓰 소속회원사를 돕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주거래은행이나 좋합상사의 경영실적을 보면 항상 이윤이 적게 나타난다.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설립목적이기 때문이다.종합상사는 그룹의 영업부종합상사의 기능은 정보기능, 거래기능, 조직자기능 및 금융기능의 네 가지라고 한다. 그리고 미노루마키하라 미쓰비시 종합상사 사장이 미쓰비시 소득의 반은 투자와 관련된 것이라고 하였듯이 투자도 중요한 기능이다.주거래은행은 그룹의 경리부미국의 은행은 법적으로 독립된 존재이고 제조회사, 서비스 회사 할 것이 없이 서로 독자적으로 경쟁하는 개인주의적 기업이다. 그러나 것도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식 조직을 미국식으로 바꾸려고만 할것이 아니라 그특성을 잘 파악하고 강점을 살려나가야 된다.기업그룹은 왜 생기는가?거의 모든 후진국에 공통적으로 기업그룹이 존재한다. 한국의 기업집단이 한국 고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풍토 및 시장환경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하였다. 후진국의 개발초기에는 시장이 좁기 때문에 기업이 한 품목으로 사업을 크게 확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자연적을 기업을 다각화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서 기업그룹 형태를 띠게 된다. 즉 한국의 기업그룹은 공업화를 늦게 시작한 한국이 선진공업국을 따라잡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채택한 부분이다.기업그룹은 왜 좋은가?많은 사람들은 한국의 경제력 집중, 경쟁제한, 문어발식 사업다각화, 정경유착, 불합리한 기업지배구조 등 많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좋은 점들이 많이 있다. 우선 일본의 어느 종합상사를 방문했을 eOA 만난 최고경여자는 그 회사의 주경쟁력은 정보라고 했다. 세계 220여 개 주요도시의 각종 경제정보도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고 했다. 기업그룹은 경영활동이 다양하고 전세계에 진출을 많이 하고 있을수 록 정보수집과 활용에 유리하게 된다. 그리고 만약 경영진을 파견하여 지사를 다른 나라에 설립하는 경우 그룹소속 회사들이 따로따로 하는 것보다는 공동으로 설립하는 것이 더욱 유리하고 유능한 인재확보에 단독기업에 비하여 유리하다. 그리고 자금 동원이 유리하다. 또 세계시장 대상의 마케팅에 있어서 그룹이 단독기업에 비하여 크게 유리하다. 그리고 개별기업의 전략으로 해외진출이나 외국기업과의 경쟁이 어렵게 될 때는 그룹 차원 전략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후진국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비능률적이고 부패한 수많은 감독관청과 무수한 정부규제 때문이다. 이른바 부패정치가나 공무원 등 ‘자유기업의 천적’ 들이 너무 많이 때문이다. 이에 기업그룹은 부당한 정부규제를 돌파하기가 비교적 쉽다. 또한 적대적 인수합병이 가능 상태에서 단독기업은 게가 자라서 그룹이 된다현대그룹이나. 삼성그룹도 처음에는 개인기업에서 시작하였다. 개인기업의 장단점을 보면 장점은 설립과 운영이 비교적 쉬고 자신이 상장이므로 남의 간섭ㅇ벗이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있다. 책임도 막중하나 사업가로서의 보람을 느낀다. 긜고 일한 만큼의 대가를 스스로 차지함으로 열심히 일하려고 한다. 하지만 단점으로는 부채가 많을 때는 개인의 재산을 팔아서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질벙이나 사망으로 기업이 중단되기 쉽고 자금도원의 한계 때문에 업종선택과 성장에 한계가 있다. 다른 종류의 기업으로는 만약 어떤 사람이 생산기술을 개발하고 다른 사람이 생산공장을 시작하면 이것은 합동기업이라고 한다. 이는 갱인기업보다 더 많은 자금과 전문지식을 동원하여 기업을 할 수 있고또한 기존기업을 확장할 수 있다 단점으로는 합명회사으이 경우에는 무한책임의 문제가 따르고 서로의 주장이 다를 때는 운영이 어렵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기업이나 합명회사가 결국은 큰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식회사로 간다. 이의 장점은 회사의 소유자 즉 주주는 회사가 도산하더라도 수식을 산 금액만큼 손해보면 그만이다. 유한책임이 가장 큰 장점이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자금을 동원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조직이고 사업의 규모와 범위를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으므로 규모의 경제성과 시너지의 혜택을 누릴 수있다. 반면 단점으로는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주식의 대대적 매입을 통하여 회사를 인수한 후 설립자를 축출할 수도 있다. 그리고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경우 경영자느 소유자 이해에 상관없이 자신의 세력확장, 봉급, 퇴직금 등에 더많은 관심을 갖게 될소지가 크다. 도한 이중과세, 쇠사의 소득은 일차적으로 법인세의 부과대상이 된다. 법인세를 부담한 뒤의 이익은 주주에게 배당되는데 주주는 배당받은 소득에 대하여 다시 세금을 물어야 한다제 9강의 기업의 게임은 선수 제한이 없다대만의 중소기업형 경제의 운명이다.대만은 국가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별로 없는 나라이다. 그것은 많은 이유가 있다. 그중하나
    경영/경제| 2003.12.14| 9페이지| 2,000원| 조회(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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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봉사활동] 봉사활동
    개요학교에서 사회봉사활동이 있는 것을 알고서 한번은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군대를 가기 전에 그다지 좋지 않는 성적으로 인하여 남들보다 많은 과목을 수강하여야했고 그래서 시간을 좀처럼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신청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봉사활동을 하는 주위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주말 중에도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4학년 1학기가 저에게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여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청할 당시 저의 전공을 살려서 IT분야에서 신청을 컴퓨터를 할 수도 있었지만 저는 그런 일보다는 좀더 가까이서 봉사하고 싶었고 몸소 제가 느끼면서 배울 수 있는 곳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대문 장애인 복지회관에 신청을 하고 거기서 서은 단기 복지센터에서 1학기 동안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봉사활동 내용1) 1주째저는 처음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라 좀 떨리기도 하였고 장애인의 편견도 있을 거 같기도 하였고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간직하고 서은 단기 보호센터를 찾아갔습니다. 처음부터 길을 헤매면서 저에게는 참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드디어 팀장 님을 만나고 그 만남부터 조금은 놀랬습니다. 팀장 님께서도 장애인이셨습니다. 놀란 가슴을 뒤로한 채 센터를 들어섰고 거기서 참 많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한 15명정도가 있었고, 거기서 저는 선생님이라고 하며 소개를 받았고 아이들이 천진스럽게 박수를 쳐 주는 순간 저의 긴장은 모두들 사라지고 참 귀여운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장애인 친구들 점심 먹는 것을 도와주고 대략 1시쯤 해서 우리는 행주산성에 갔습니다. 저 혼자 걸었으면 참 쉬고 빨리 갈 수 있는 거리 였지만 아이들과 같이 가면서 속력도 늦었고 더운 날씨라 땀도 많이 흘렸고, 나름대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아이들은 저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꼭 잡고 있는 것을 보고 저는 그 순간에 참 많은 것이 교차했습니다. 내가 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구나 참 내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고 그러한 아주 사소한 도움으로 아이들에게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저에게는 비록 내 몸에서는 땀이 나기도 했지만 무척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행주산성을 올라가고 정상에서 건물 안에서 권율장군을 기리기 위하여 만든 영상 필름을 보고 다시 내려오고 다시 센터를 들어갔습니다. 참 재미있는 시간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을 지고 있게 되었습니다.2) 2주째두 번째 주라 센타를 찾아가는 것도 힘들지 않게 가고 나름대로 긴장도 풀리고 가벼운 마음에 센터를 들어가니 아이들이 저의 얼굴을 기억해주며 들어가는 순간 너무 반겨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너무 반가웠고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날은 팀장 님이 삽교천을 간다고 아침 일찍 오라고 하셔서 보통 12시까지 가는데 그날은 8시 30분까지 센터를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삽교천 가는 것이 취소되었고 장애인의 날이어서 서울시에서 행사가 있어서 거기를 가야한다고 하셨습니다. 거기는 참 많은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아이들이 잃어 버릴 수도 있다고 강조하시면서 다시 한번 아이들에게 신경을 써야 한다며 저에게 당부를 하셨습니다. 체육관을 들어가는 참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많은 자원봉사원들도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넓은 공간이고 사람들이 많고 해서 통제를 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아이들도 말을 너무 안 듣고 해서 나도 모르게 얘들에게 짜증을 내는 저를 발견하고 안기려고 해서 저를 통제할 수 없는 저를 발견하고 반성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아이들과 무사히 체육대회를 마치고 센터를 도착했고 팀장 님께서 저를 따로 부르시더니 오늘 정말 수고 하셨다며 격려를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고맙기도 하고 짜증을 부린 저에게 부끄럽기도 하였습니다.3) 3주째3주정도 흐르니 아이들 이름도 차차 알아가고 아이들도 저의 얼굴이 익숙해지면서 말도 잘 따르고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저를 반겨주어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그 중에 가장 나를 반겨 주었던 아이는 희진 이라는 아이인데 나이는 18살인고 키는 174정도 되는 여자아이인데 잘 걷지를 못해서 행주산성을 가는데 제가 데리고 다니는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가 저를 보더니 "오빠" 라며 너무 반겨주며 저를 와락 안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너무 반가워서 잘 지냈냐고 안부를 묻고 참 즐거운 출발이었습니다. 이번 주는 안산을 간다고 하시기에 저는 경기도 안산을 가는 줄 알았는데 연희동 근처에 있는 산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산이라 기는 그렇고 뒷산정도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벚꽃구경도 못 갔는데 거기에서 아주 예쁘게 벚꽃이 펴있어서 벚꽃구경도 하고 참 좋았습니다. 오늘도 역시 저는 희진이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한 자원봉사 선생님께서 저를 붙잡으시더니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너무 붙잡아주지 말라고 어차피 자신이 딛고 일어서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고 다치지 않을 정도만 해주어야지 그 이상은 안 된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마냥 그 아이가 저를 많이 따르고 해서 더 많이 도와주고 싶었는데 저의 짧은 생각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좀더 그 아이가 혼자 걸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 날은 나름대로 많은 것을 느낀 날이었습니다.
    사회과학| 2003.06.15| 3페이지| 1,000원| 조회(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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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문학] 사회학의 이해
    종교에 관하여내가 아직 종교를 가지지 않는 이유(1)인용: 믿음을 지키면서 산다는 것은 그렇게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숭고한 것이다. 20년 30년 장기복역한 미전향 공산주의자들처럼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도 신을 버리지 않는 신자, 십자가에 침밴기를 거부하는 신자만이 감히 '신자'니 '교도'라고 종교인을 자칭할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자신이 없으므로 나는 지금도 "종교가 뭐냐?"는 질문에 "아직은 없다"고 대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느낌: 비전향 장기수들에 대한 나의생각, 그냥 공산주의자라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념을 떠나서 믿음으로만 그들을 보았을 때 그들의 믿음은 종교적 순교자와 같은 정도란 생각이 들었다. 리영희 교수가 종교를 가지지 않는 이유가 이 믿음에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비판: 현재의 모든 종교인들이 리영희 교수의 믿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명의 종교인이라도 믿음이 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존재 하여야 한다 본다.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다른점도 감안 해야 할것이다내가 아직 종교를 가지지 않는 이유(2)인용: 여의도 순복음 신도수 세계1위세계 50대 교회중 한국23개 차지안양 순복음 세계 제2위느낌: 우리나라의 종교단체는 기업이라 생각한다. 만약 종교단체순위를 세계적인 기업순위라고 생각하면 아마 우리나라는 세계1위의 경제대국일 것이다. 글에서처럼 한국의 종교에는 필요한 것 같다. 순수한 종교적 입장까지 돌아갈 수 있는 그날까지.비판: 이글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의 생각과 같다. 나도 또한 요새의 종교에 대해 상당히 비관적으로 보고있다. 어느 정도 금전적인 것도 필요하지만 어떻게 보면 주객이 전도 되었다고 느꼈을 정도 너무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 비록 종교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 없는 이유인 듯 싶다종교와 독선인용: 남한사회의 종교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종교의 유무로써 인간과 사회의 선악을 판가름하려는 독선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모든 중만은 아닌 것 같다. 서구의 종교인 기독교를 마치 성스럽게 생각하고 우리의 전통적인 종교들은 사이비나 이상한 쪽으로 몰아가는 인식이 우리들에게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법정 스님이 명동 성당에 간 뜻은인용: 법정 스님의 설법이야 스님의 평소의 말씀과 글로써 세상이 익히 아는 바이지만, 명동 성당의 강단에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마음이 천주님의 그것과 하나이고 둘이 아니라는 종교적 진리를 설한 것은 한국의 종교사에 길이 남을 큰 일이다.(p.64)느낌: 천주교와 불교와 싸웠던 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가까워짐 으로써 정말 평화롭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좀더 타종교간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나라는 안정되고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비판: 천주교와 불교간의 대화뿐만 아니라 기독교와도 가까워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보통 불상 훼손 사건등은 기독교와 불교간의 갈등이었다. 욕심이 있다면 조금씩 불교와 기독교가 가까워졌으면 좋겠다.문화에 관하여쉬운 문학, 아쉬운 정신인용: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의 1840년대의 프랑스였다. 나는 그로부터 140년이 지난 뒤에, 구속영장도 없이 끌려가서 철창 속에 가두어진 대한민국의 교도소 안에서 1980년에 이 대목을 읽으면서 그 대목 하나의 감동만으로도 빅토르 위고에게 감사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야만성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140년 전의 프랑스의 사법제도와 국가공권력의 문명성이 빛날수록 20세기도 끝나가려는 시기의 대한민국이 암흑으로 보였다.느낌: 140년 전에 쓰여진 프랑스 문학작품에서 볼 수 있는 프랑스의 모습과 20세기가 끝나고 21세기가 된 대한민국의 현실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지. 대한민국의 어두운 현재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비판: 처음에는 단지 문학작품에 대한 교수님의 글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두운 대한민국의 사법제도에 대한 글이었다. 한가지 아쉬운점은 '레미제라블' 뿐만아니라 우리의 문학작품중에도 '레미제라블' 만한 작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명예, 거짓, 죄송서 보면 조금만 좌측에 있어도 좌이다. '좌'의 끝에서 보면 조금만 우측에 있어도 우이다. 왜? 가운데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과 타협의 정신과 관습으로 관용의 정신을 배운다면 가운데서 모든 것을 바람직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비판: '좌'이던 '우'이던 변하지 않는 것은 진리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막강한 '우'에 문제가 더 크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허약한 '좌'의 잘못에 대해서는 쓰이지 않다.2등에게도 꽃다발을인용: 기미가요와/ 지요니 야지요니/ 사자레이시노/ 이와오도 나리데/ 고께노 무스마데느낌: 전에 일본에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살았던 적이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을지는 몰라도 그곳에서 나는 기미가요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일본의 대학생들과 역사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역사 문제에 관해 별 의식이 없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아시아인들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진실이 아닐지는 몰라도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들은 기미가요를 부르지 않았다.비판: 일본을 우리도 그냥 외국으로 인식할 때까지 의식을 바꿔야 한다. 피해의식을 가지고 계속 간다면 우리만 손해인 것이다. 일본과 우리는 위치상으로도 가까운 나라인 만큼 서로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돈을 만들고 전쟁도 만드는 꽃인용: 주식의 긍정적 기능만을 찬양하는 천박한 일부 경제학자와 주식꾼들은 증권시장을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꽃'은 돈을 만들어주는 한편으로, 인간의 물질적 행복을 위해서 요긴하게 쓰일 물자를 대량 낭비하는 군비확장을 다그칠 뿐만 아니라 수천만 명의 인간생명과 상상할 수조차 없는 재부를 파괴해버리는 처참한 전쟁을 만들어내는 '독을 품은 꽃'이기도 하다.느낌: 주식시장은 일종의 도박이다. 돈을 걸고 돈을 먹는 도박과 다른점이 없다.비판: 마치 주식시장의 기능이 아주 나쁜점만 있는것처럼 설명하였다. 주식시장의 순기능은 그냥 언급만 했을뿐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본 자본주의의 나쁜점만 부각시켰다.부끄러운깊은 생각에 잠긴다.느낌: 죽음 앞에서 용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승복 소년에 대해 우선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조작되고 거짓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승복 소년을 그렇게 만든 북쪽과 그것을 체제 유지에 이용한 남쪽이 모두 정말 나쁜 짓을 한 것이다.비판: 체제유지를 위해 어린소년의 죽음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남쪽정부는 할말이 없다. 하지만 북한정부도 간첩을 남파하여 이런 일이 발생하게 한점에서 둘 다 잘못한 것이다. 남측만 잘못한 것이 아니다."고정 간첩 5만"의 유령인용: 범인은 누구일까?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왜 갑자기 고정 간첩 5만 명설이 나왔을까? 왜 하필 이런 때에 이런 소란일까? 이 나라의 국민은 언제나 평안한 마음으로 밤잠을 잘 수 있으려나?느낌: 체제유지를 위해 이러한 것들이 계속된다고 생각하면 언제 누가 다시 한번 체제유지를 위해 죽어갈지도 모른다. 이한영씨를 죽인 자들은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지만 정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굼할 정도이다.비판: 도대체 어느 쪽이 진실인지 모르겠다. 진실은 하나인데. 이한영씨의 죽음에도 무엇인가 외부적인 힘이 작용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내부에 있던 고정간첩에 의해 죽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남북 문제에 대한 한국 언론의 문제인용: 어느 나라의 어떤 제도에서나 국가권력의 유일 이데올로기를 위해서 선전 선동적 역할을 담당하는 기능은 '체제화 언론' 또는 '체제언론'이라고 부른다. 타락한 언론의 대명사이다.느낌: 역시 언론의 문제이다. 앞의 글과 같이 진실이 무엇인기 모르는 상태에서 대다수의 시민들은 언론의 이야기를 믿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언론들이 체제유지를 위한 수단으로서 그 역할을 하고있는 것을 보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걱정된다.비판: 무슨 일이 있으면 호들갑을 떨면서 마녀사냥에 나서는 우리나라의 언론기관은 도대체 어느 나라의 언론이고 누구의 언론인지 모르겠다. 분명 대한민국의 언론이고, 국민의 언론인데...민족과 통일에 관하여8-15 50주년인용: 우계와 한국국적의 교포 2백만의 성공정도는 천차만별이다.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사회에서 성공의 척도는 '돈'일 수밖에 없다. 유색인종에 게 정치적 기회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나라가 미국이다 보니 한국계의 '성공'의 척도도 '돈'일 수밖에 없다. 소수의 성공한 사람들의 만족과는 반대로 실패하고 좌절한 다수의 참상과 비애가 극명하게 대조되었다. 고국에서도 그런 대조가 있게 마련이긴 하지만, 이기주의와 무자비 한 경쟁이 생존의 기본원리인 미국사회이기에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 과연 앞으로 미국은 코리언들에게 '기회의 땅'이라고 할 수 있을까?느낌: 돈이 성공의 척도에 이용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 람들이 대조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인들끼리 서로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민족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고 생각한다.비판: 서로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어도, 2.3세 교포들의 결혼관이나 생각은 왠지 이해하고 싶은 생각이다. 한국에서 살지 않았고, 어릴 때부터 미국의 교육을 받아 가치관이 확립된 그들은 겉모습만 한국인이지 속은 한국인이 아닌 것이다.애꾸가 이끄는 통일에의 길인용: 수십 년 동안 억압되어온 이 단순한 이치가 나라 안에서는 어렵사리 바로 잡혀가는 흔적이 보이지만, 화해와 통일을 지향한다는 남북한 사이에서는 아직도 요원한 것 같 다. 휴전선을 사이에 둔 일에 관해서는 시민들은 지금도 두 눈으로 바로 보지 못하고 두 귀로 바로 듣지 못하는 상태이다. 40년 전과 별 다름이 없다.(p.200)느낌: 어느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볼 수 없게 우리의 언론들은 거짓을 말해 시민들을 바 보로 만들었다. 진실은 하나인데 같은 일을 어떻게 서로 다르게 보도할 수 있는지 놀 랍기만하다.비판: 우리시민들의 인식이 조금이나마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바뀐 것은 하나도 없 다고 생각한다. 과연 또 언론에 의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시민들이 아무일 없이 성숙한 될까?
    인문/어학| 2003.06.15| 18페이지| 1,000원| 조회(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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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화사] 덕수궁의 답사기 평가D별로예요
    차 례1. 선정이유 및 목적2. 사전조사(1) 역사(2) 구성3. 평소 생각과 현장에서의 차이점4. 문제점 및 아쉬운 점1. 선정이유 및 목적덕수궁은 우리에는 많이 친근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위치도 지하철 1호선과 2호선 시청역에서 내려서 2번 출구에 위치하여 서울의 중심부에 있어 우리고 쉽게 찾아갈수 있는곳이다. 그리고 덕수궁의 돌담길은 빌딩숲 사이로 펼쳐져 있는 것이 참 운치도 있어서 연인들 사이의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다. 또한 덕수궁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선조가 의주까지 피난갔다가 서울로 돌아와 보니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불타버려서 왕이 거처할 왕궁이 없어서 왕족의 집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완전했던 월산대군가를 행궁으로 삼아 왕이 거처하게 되었다. 1608년 2월에 선조는 행궁의 침전에서 돌아가시고 광해군이 행궁의 서청에서 왕위에 즉위하였다. 광해군 3년(1611)에 행궁을 경운궁 이라 하였다. 경운궁의 정문은 원래 정남쪽의 인화문이었으나, 다시 지으면서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쳐 정문으로 삼았다. 1906년에는 화재로 불탔던 중화전이 복구되었다. 석조전은 1900년에 착공하여 1910년에 완공되었다. 1907년 7월 20일에 일본침략자들의 강압에 의하여 고종이 순종에게 제위를 전위 하자 선제가 거처하는 궁이 되어 덕수궁이라 하였다. 이러한 우리의 가까이 있고 역사적 의미를 지닌 덕수궁이지만 우리는 솔직히 중·고등학교 시절에 소풍으로만 가보지 따로는 찾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러한 평범한 사람들 중에 하나여서 담에 기회가 되면 가볼 것이 라는 생각은 하여 주저없이 덕수궁을 택하게 되었습니다.2. 사전조사(1)역사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4호로 지정되었다. 면적 6만 1500㎡. 덕수궁이란 궁명(宮名)은 조선시대 초부터 있었던 이름으로, 양위(讓位)한 태조의 소어궁(所御宮)을 정종(定宗)이 개성에 건립하여 덕수궁이라 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후 태종(太宗)이 서울궁(出宮)하게 되자 나라에서 이 집을 지어주고 두 아들과 함께 살게 하였다. 둘째아들인 자을산군(者乙山君)이 왕(成宗)으로 등극하면서 그의 어머니인 한씨도 입궐하게 되어 월산대군만이 거처하게 되었다.월산대군이 사망한 후 104년이 지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생하여 의주(義州)로 난을 피하였던 선조가 1593년 10월 한성으로 돌아와 보니 한성 내에는 거처할 만한 곳이 없을 정도로 황폐되어 이곳에 행궁을 정하고 정릉동행궁(貞陵洞行宮)이라 하였다. 그러나 월산대군의 집은 경내가 협소하므로 계림군(桂林君:瑠)의 집을 행궁에 포함시키고 궁궐 내에 있어야 할 각 관청을 처음에는 궐문 밖에 인접하여 두었다가 점차 목책(木柵)을 넓혀 세우고 문을 달아 임시 궁성을 형성하여 여러 관청과 위사(衛士) 등을 모두 궁궐 내에 들게 하였다. 또 그 옆에 있는 청양군(靑陽君) 심의겸(沈義謙)의 집을 동궁(東宮)으로, 영상(領相) 심연원(沈連源)의 집을 종묘(宗廟)로 하였다. 1597년에는 담을 둘러 쌓았고, 1607년 4월에는 북쪽에 별전(別殿)을 세웠다.선조는 1593년 10월 이곳을 행궁으로 삼은 후 1608년 2월 정침(正寢)에서 승하할 때까지 이곳에서 내외정무(內外政務)를 보았으며, 뒤를 이어 광해군(光海君) 역시 이곳 행궁의 서청(西廳)에서 즉위하였다. 그는 즉위 초 이 행궁을 넓혀 지금의 정동 1번지 일대를 대부분 궁궐의 경내로 만들고 종묘를 중건하였다. 또한 창덕궁(昌德宮)을 대대적으로 복구하여 그의 재위(在位) 2,3년에는 임진왜란으로 피해를 입기 전의 건축보다 더 훌륭한 법궁(法宮)을 이룩하였다. 광해군은 1611년(광해군 3) 10월 11일 창덕궁으로 이거(移居)하면서 이 행궁을 경운궁(慶運宮)이라 이름하였고, 창덕궁에 약 2개월간 거처하다가 그해 12월 경운궁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이는 창덕궁에 거처하였던 노산군(魯山君)과 연산군(燕山君)이 그 곳에서 폐위되어 불길한 궁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광해군이 다시 창덕궁으로 이거하게 된 것은 1615년 리고 1620년에는 건축되었던 궐내아문(闕內衙門) 등을 허물고 그 재목과 기와를 내사(內司)로 옮기니 이 궁은 더욱 퇴락하게 되었다. 1623년 3월 서인(西人) 이귀(李貴)·최명길(崔鳴吉) 등이 선조의 손자인 능양군(陵陽君)을 추대하고 반정(反正)을 일으켜 인목대비의 명으로 광해군을 폐하고 능양군(仁祖)이 등극하게 되자 인조는 경운궁 별당에 행차하여 인목대비를 배알하고 즉조당(卽祚堂)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그러나 인조는 이 궁에서 거처하지 않고 그로부터 8일 후 인목대비와 더불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그해 7월에는 30년간이나 궁역에 속해 있던 여러 가옥·대지를 본 주인에게 돌려 줌으로써 경운궁은 한적한 별궁 정도로 축소되었다. 그후 영조(英祖)는 1773년(영조 49), 즉 선조의 환도어거(還都御居) 3주갑(三週甲:60년이 3번 지남)을 맞이하는 해의 2월 1일 세손(후의 正祖)과 함께 경운궁의 즉조당에서 선조의 고생을 회상하면서 사배례(四拜禮)를 행하였다. 고종(高宗)도 1876년(고종 13) 즉조당에서 전배(展拜)하였다.또한 공역(工役)을 일으켜 궁궐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여 1896년(건양 1)에는 공역의 준공이 있었고, 그해부터 약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 때 태후(太后)·태자비(太子妃)는 경운궁에 이어(移御)하였으며 열성어진(列聖御眞)과 민비의 빈전(嬪殿)도 경복궁에서 옮겼다. 1897년(건양 2) 2월 20일 고종이 아관(俄館)에서 이 곳으로 옮겨오게 되자 이 궁은 다시 궁궐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해에도 공사는 계속되어 선원전(璿源殿) ·함녕전(咸寧殿) ·보문각(普文閣) ·사성당(思成堂) 등이 축조되었다. 고종이 이 곳을 궁궐로 정한 이면에는 주위에 러시아 ·영국 ·미국 등 강대국의 공사관이 있어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보호를 요청하기 쉬운 곳이라는 고려도 있었을 것이다. 9월 17일에는 고종의 황제 즉위식이 있어 우선 소공동(小公洞)의 원구단(圓丘壇)에서 하늘에 고하는 제사를 지내고 이 날부터 이 궁은 대한제국의 정궁(正宮)이雲堂) ·덕경당(德慶堂) ·함유재(咸有齋) ·청목재(淸穆齋) ·보문각(普文閣) ·문화각(文華閣) ·수옥헌(漱玉軒) ·정관헌(靜觀軒) ·구성헌(九成軒) ·인화문(仁化門:正門) ·돈례문(敦禮門) ·회극문(會極門) ·영성문(永成門) 등의 전문(殿門)이 완성되었다.1901년에는 경희궁(慶熙宮)으로 통하는 구름다리가 가설 ·개통되었고 이듬해 2월에는 법전(法殿)의 공역을 시작하였다. 이 법전을 중화전이라 이름하였다가 즉조당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 공사는 10월에 완공되고 중화문도 완공되었으며 관명전도 영건되었다. 이 당시의 중화전은 2층 건물로 규모가 장대하였으며 주위에 행각(行閣)이 있었다. 그러나 1904년 2월에 영선사(營繕司)에서 함녕전의 온돌을 수리하던 중 실수로 불이 나자 거센 바람을 타고 중화전 ·즉조당 ·석어당(昔御堂)의 중심곽 건물뿐만 아니라 신주(神主)를 모셨던 경효전과 어진(御眞) ·예진(睿眞)을 봉안한 흠문각(欽文閣)도 화재를 당하였으며, 화재를 면한 전각으로는 준명당 ·수옥헌 ·가정당(嘉靖堂) ·돈덕전(惇德殿) ·구성헌 등이 있었다.고종은 그 날로 피하고 전각에 대한 중건을 명하여 우선 즉조당 ·석어당 ·경효전 ·흠경각(欽敬閣)을 응급 복구하였으나 이 무렵 러일전쟁이 일어나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1905년 10월 21일 밤에는 일본의 압력으로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이 이 곳에서 체결되는 등 혼란이 계속되어 공사가 활발하지 못하였다. 이런 와중에 중화전의 재건이 진행되었으므로 원래대로 2층으로 복구하지 못하고 단층으로 짓게 되었다. 중화전은 그해 1월부터 시작하여 이듬해 1월에 준공되었다. 또 4월에는 경운궁의 정문인 대안문(大安門)을 수리하기로 하고 문의 명칭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쳤는데, 이는 비서승(秘書丞)이며 풍수(風水)의 대가인 유시만(柳時滿)이 “국조연창(國祚延昌)하려면 ‘대안’을 ‘대한’으로 고쳐야 좋겠다”라고 건의한 데서 비롯되었다.대한문은 원래 높은 장대석의 기단이 있고 장엄한 돌계단이 있었으나 지금은 아스팔트 바닥에 묻혀 있다황제는 양위 후 일시 수옥헌으로 옮겼으나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기자 다시 함녕전에 환어하여 19년 1월 서거할 때까지 이 곳에서 주로 거처하였다. 1910년(융희 4)에는 석조전(石造殿) 등 서양식 건물이 준공되었으나 태황제(太皇帝)인 고종이 승하하게 되자 덕수궁도 궁궐로서의 수명이 끝나고 일제강점기에는 빈 궁궐로 남아 있다가 이왕가미술관(李王家美術館)으로 되었다.6 ·25전쟁 전에는 미소공동위원회(美蘇共同委員會)가 석조전에서 개최된 바 있으며, 당시 석조전이 불타서 그 후 복구하여 국립박물관으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왕궁유물전시관으로 쓰고 있다. 덕수궁은 그 동안 담장들이 뒤로 밀려지고 또한 목책에서 사괴석(四塊石)담으로 바뀌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고, 정문인 대한문도 여러 차례 뒤쪽으로 밀려 들어가게 되어 성기(盛期)에 즐비하던 전각들은 상당수 철거된 반면, 세종대왕의 동상 등 새로운 시설물이 들어서게 되었다.현재는 정문인 대한문, 정전인 중화전과 중화문, 침전인 함녕전과 그 일곽(편전인 덕홍전과 동 ·서 ·남 행각 및 당시의 함녕전 정문이었던 광명문), 준명당 ·즉조당, 덕수궁 내에서는 유일한 2층 건물인 석어당, 그리고 정관헌 ·석조전 등의 건물이 남아 있는데, 이 궁은 특히 서울에서 제일 먼저 근대유럽의 고전주의파 건축양식을 받아들인 진취적 궁궐로서 이채를 띠고 있다.(2)구성1) 대한문덕수궁의 정문이고 동향을 한 단층문으로 다른 궁궐의 정문이 2층인데 반해 단촐한 듯한 느낌이다. 원래 이름은 대안문이었다가 1906년 다시 지으면서 대한문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60년에는 서울 시청앞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덕수궁 궁성이 뒤로 물러나면서 함께 14m쯤후퇴하여 현재의 위치가 되었다. 매년 차이가 있으나 동절기를 제외한 기간동안에는 매주 토요일 수문장 교대식 재현이 행해져 좋은 볼거리가 되기도 한다.2)중화전좌우 행각이 사라진 조촐한 중화문을 들어서면 바로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이 나온다.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에 비하면 단촐한 모습이지만 나름대로의 위엄이 배여한다.
    인문/어학| 2003.06.15| 9페이지| 1,000원| 조회(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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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와 문학] 지하철에서 본 우리문화 평가A+최고예요
    차 례1. 지하철과 우리 문화의 관계2. 지하철의 변화와 우리사회의 변화모습3. 지금의 지하철에 비친 현재의 문화4. 지하철의 발전 방향5. 참고문헌1. 지하철과 우리 문화의 관계지금의 지하철은 서민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단편적인 예로는 지하철이 파업할 때 는 서민들의 불편이 말도 아니다. 우리나라 전체가 비상이다. 회사들은 출근 시간을 늦추고 버스는 비상이 걸려서 운행 대수를 늘리고 택시도 운행대수를 늘리는 등 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이렇듯이 지하철은 우리 나라 대다수인 서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되었다. 어느 사회에서든 그 사회를 반영해 주는 문화가 있기가 마련이다. 문화란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러한 많은 사람들이 서로 자주 사용함으로써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저명한 인사가 좋은 것이 라고 주장하여도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그것을 한 사회의 대표적인 문화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문화라는 것은 많은 사람 곁에서 행해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한 측면에서 보면 지하철은 우리사회의 문화를 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하철은 이때까지 한번도 이용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하철에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침에는 지하철의 첫차를 타보면 거의 감긴 졸린 눈으로 출근을 하는 사람들과 조금 시간이 지나면 출근 시간에 쫓겨서 뛰어다니며 땀을 흘리는 사람 한가하게 신문을 보고 노래를 듣는 사람 저녁이 가까워지면 술을 먹고 취해서 졸고 있는 사람, 그리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친구들과 즐겁게 웃고 떠드는 사람 등 지하철에서는 모든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지하철에서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있다. 이러한 많은 사람들의 모습으로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를 알 수 있고 또한 유행하는 패션 및 모든 것을 알 수 있다.2. 지하철의 변화 모습과 문화 및 사회의 변화 모습한국 최초의 지하철은 서울시 지하철 1호선 서울역∼청량리 7.8km 구간으로서 1971년 4월 12일 착공하여 1974년 8월 15일 개통하였다. 이는 1970년 시대 상황에 맡는 얘기이다. 1970년대는 산업화를 추진하기 위한 기간이었다. 따라서 이에 부흥하기 위해서 지하철이 건립되었다. 우리 산업이 부흥하고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지하철이 하나씩 증축 되기 시작했다. 이때는 지하철은 단순히 운반의 의미였다. 1980∼1990년은 참으로 복잡하고 빡빡히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 당시 시기가 그렇다. 어느정도 경제 성장을 이루고 우리는 잠시 쉬고 있었다. 사람들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고 하곤 했다. 그래서 무조건 일하기 보다는 조금은 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적으로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지하철에서는 어수한 분위기에 맞춰어 소매치기등이 빈번히 일어났다. 그리고 이 당시 지하철에서는 푸시맨 이라는 것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것은 이 시 사람들은 쉬고 싶었다. 너무 숨가프게 달려서 이제는 조금은 쉬고 싶기도 하고, 회사에서도 어느 도 인정도 받고 싶고 사람답게 생활을 할수 있도록 복지를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도 했다. 그런데 사회는 여전히 아직도 서민들에게 말했다. 우리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치이고 사람들에 꽉 찡긴 현상이 꼭 푸시맨이 비좁은 칸에 서민들을 밀어넣어 서민들이 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사람에게 짜증을 내고 그래서 말 다툼을 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는 상황말이다. 같은 처지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자기의 자리는 안 빼기려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조금이라도 밀기라도 하면 짜증내는 어차피 그 사람도 자기가 밀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라는걸 알면서 다 알고 있지만 짜증을 내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요즘 인심은 예전 같지 않다고, 너무 이기적 같다고, 자신을 돌어보지도 않은채 오직 나만 챙기는 이기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이리 저리 치이고 갈곳 없는 사람들은 방황을 하고 일탈을 하게 된다. 제일 빠지기 쉬운 것은 성 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정책적으로 풀어주기도 했던 상황이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사회적인 상황이었다. 이때 지하철에서도 엿 볼 수 있다. 지하철에서 성추행이 극심했다. 그래서 여성 전용 전동칸이라는 것이 생기기도 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성적으로 약자인 여성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같은 서민이지만 매일 당하기만 하니 자기도 한번은 강자가 되고 싶어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심리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3 지금 지하철에 비친 현재의 문화현재는 참으로 속도를 중시하고 분업화 시대이다. 지하철도 이제는 보다 서민들에게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8호선까지 생겼으며 계속 증축중이다. 그리고 속도를 좀더 높이기 위해서 용산∼주안의 직통선 까지 마련하였다. 그리고 지하철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이제는 지하철이 단순한 수송의 의미가 아니라 사람들이 지하철에 이용하는 동안 조금이나마 기쁨을 주고 문화적 기능을 하려고 한다. 이러하여 지하철 공연문화 협의회도 생기기도 하였다. 이는 문화공연을 누구나 함께 누릴 수 있고 이를 대중문화로 확대해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테마 지하철도 생겨나서 한참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지하철의 이용객인 서민들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 사회적인 분위기는 모두다 힘든 것은 싫어하고 일에 매달리기 보다는 사람들과 조금은 즐기는 분위기이다. 사람들이 문화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어디서든지 문화적인 공간을 중요시 하였다. 우리가 사는 주거 공간에서도 이러한 면은 나타난다. 모든지 빠르고 빡빡하게 들어선 도심에서 벗어난 전원주택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고, 도심의 아파트에도 아파트 주변의 환경에도 관심을 가졌다. 주위 환경이 녹지대가 있는지 사람들의 관심의 주위의 환경과 조금은 쉬고 편안한 분위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에 지하철도 이에 발빠르게 맞춰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이나마 서민들의 그러한 욕구를 모른 척 하기보다는 충족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지하철이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서민들에게 외면 안 받고 계속 이용해주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렇게 지하철이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하철을 타다 보면 광고가 참으로 많이 붙어 있다. 이는 요즘은 광고의 시대이다. 참으로 광고를 중요시 하는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제품, 기술이 있더라고 광고을 확실히 하지 못하면 그것은 필요없는 것과 다름없다. 이러듯 광고가 중요하듯이 지하철에서도 광고가 붙어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는 몇 년 전까지만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모습이다. 이는 우리가 IMF를 맞아 모두 힘들어 하는 시기였다. 이를 이기지 못하고 망한 기업들이 자구책으로 마련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요즘은 노약자 석이 생겼다. 이는 어쩌면 부끄러운 현실의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요새 애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 그리고 너무 무섭다 고 자주 말한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 사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것이 많이 무너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경로효친 사상을 떠나서 자신보다 약자인 사람들 돕는 것은 당연한 도리인 일 것이다. 그 예로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 임산부, 장애자 등 나보다 약한 사람이 있으면 자리를 양보를 하곤 한다. 그러나 요즘은 이것이 보기가 약간은 힘들다. 그래서 간혹 가다 할아버지와 젊은 학생과의 말다툼을 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래서 아예 노약자 좌석을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인문/어학| 2003.01.01| 5페이지| 1,500원| 조회(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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