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반복되는 바쁜 일상과 한시도 긴장감을 풀 수 없는 팽팽한 하루 하루가 계속되었다. 매일 매일 같은 시각에 출근해서 기계처럼 일을 다 완수해야만 귀가 할 수 있는 그 이외에는 어떤 행동과 사고도 용납되어질 수 없는 날들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자유롭게 사고하고 아름다움을 추상해 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의 축에 끼일 수 없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 따스한 봄기운 때문이었을까? 토요일 오후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 화창한 봄 햇살이 눈부시게 고와서 나는 일손을 놓고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닦았다. 거리를 배회할 수밖에 없었던 나에게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자신이 술에 빠져서 부인이 떠났는지 부인이 떠나서 술에 빠졌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치유 불능의 알콜중독자 벤. 그도 한 때는 잘 나가는 극작가였는지 모르지만 결국 술 때문에 직장에서도 해고당하게 된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생계 수단까지도 잃게 된 벤은 자신의 소유물을 불태우고 라스베가스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벤은 술을 마시며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한다. 감독은 왜 벤이 알콜중독자가 되었는지, 또 무엇이 벤에게 치사량의 술을 마셔 대도록 강요했는지 어떤 물음에도 답을 주지 않는다. 단지 초점을 잃어버린 흐린 눈동자와 지구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 금방이라도 대기권 밖으로 사라질 것 같은 슬픈몸짓, 어눌한 말투만이 현실의 그를 보여줄 뿐이다.벤에게 있어 삶은 한 잔 술보다 가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일까?그렇지만 나는 어떤 의도로도 벤을 비난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가 쉴새이 마셔 대는 진한 알콜의 농도에 이미 나도 취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죽기 위해 술을 마셔야만 하는 벤의 고독과 단절감, 그 깊은 절망 앞에 나는 한 줄 위로의 말도 생각해 낼 수 없었으니까...그러나 영화는 우리에게 한 남자의 유폐된 삶과 그 불행한 삶의 종말만을 보여주는데 머무르지 않는다. 화려한 네온으로 번쩍이는 도박의 도시, 돈만 있으면 하룻밤 편안하게 여자를 살수도 있는 거짓과 유혹의 도시에 감독은 야단스럽지 않지만 그래도 한껏 취하고 싶도록 진한 감동의 자리를 마련해 두고 있었다. 생존을 위해 밤마다 몸을 팔아야 하는 여자 세라, 그리고 지치고 절망스런 생활 속에서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며 찾아 든 남자 벤. 둘의 모습은 너무도 흡사하게 닮아 있다. 절망조차도 할 수 없는 극한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사랑이다.그 곳에는 어떤 환상도 극적 반전도 등장하지도 않는다. 두사람은 그 척박한 도시의 한켠에서 상대방을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베풀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요모조모 따지는 사랑보다 상대방의 가진 조건으로 평생을 건 모험을 하는 요즈음의 우리 세대에게 '있는 그대로의 벤을 사랑하고 받아들였다'고 말하는 극중 세라의 고백은 조금은 충격적인 영상과 함께 결코 진부하지 않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