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상담의 필요성과 발전- 목차 -1. 문제제기2. 용어의 정의3. 상담의 어원과 의미3-1. 상담의 어원3-2. 상담의 의미4. 목회 상담의 정의5. 목회 상담의 역사적 뿌리와 정체성6. 목회 상담의 목적7. 목회 상담의 필요성8. 목회상담의 발전 과정과 이론8-1. 발전과정8-2. 이론1. Jay E. Adams의 권면적 상담론1) 그리스도 중심, 성경 중심2) 성령과 상담2. Gary R. Collins의 기독 상담론1) 상담의 세 가지 접근 방법(1) 인본주의 및 세속적 접근 방법(2) 하나님께서 돕는 자로 참여하는 방법(3) 하나님 중심의 접근 방법3. Lawrence J. Crabb의 성경적 상담1) 격려의 상담2) 권고의 상담3) 교화의 상담9. 목회상담의 성경적 근거10. 제안 및 의견1. 문제제기한국교회에서 목회란 일반적으로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예배와 설교, 교회교육, 절기행사 프로그램, 교회행정과 관련하여 이해되고 있다. 특히 치유에 집중하는 목회의 중요한 기능으로서 목회 상담은 한국교회가 그 필요성을 절실히 인식하지 못하고, 이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오지 않았다.나 역시도 목회 상담의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했고 일반적인 신앙 상담이 목회 상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현대 사회에 들어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심리적 이유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이 우울증이나 심리적 불안요소로 인해 자살을 하고 또한 시도하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교회 밖에 많은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으나 교회는 아직 이러한 부분의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 일부 대형 교회에서는 상담부서를 두고 교인들의 상담에 응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그들이 협소한 교회 성장주의 때문에 교인들에 대한 목회적 돌봄과 상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부족을 나타내고 있다. 목회자들은 목회상담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의 부족 그리고 적절한 목회상담훈수 있도록 돕는 예방적이며 치료적인 예술이다.)사무엘 사다드는(Samuel Southard)는 기독교 상담을 친구 관계의 맥락 속에서 제시되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라고 정의한다. 이관직 교수는 기독교 상담을 정의하기를 기독교적인 신관과, 인간관, 세계관을 가진 상담자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개인들 혹은 시스템들에게 치료적인 맥락 속에서 도움을 주는 활동과 과정이라고 하였다.)게리콜린스(Gary Collins)는 목회적 돌봄을 “사람들을 하나님에게 그리고 서로서로 치유하며, 지탱하며, 안내하며, 화해시키는 교회의 전체적인 사역이라고 클렙쉬와 재클의 정의를 그대로 수용하여 정의한다. 더 나아가 콜린스는 목회상담을 삶의 압박감과 위기에 직면할 수 있도록 개인이나 가족 혹은 집단을 돕는 보다 전문화된 목회적 돌봄으로 보았다.) 목회상담을 전통적으로 정의할 때에는 안수 받은 목사의 사역이지만 콜린스의 경우, 평신도에 의한 사역까지 포함시킨다. 그는 목회심리치료를 내담자의 인격과 영적인 가치 그리고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도록 돕는 장기적, 심층적 돕는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 이관직 교수는 ‘목회적 돌봄’이라는 용어를 전인격적인 영역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인간을 돕는 교회의 사역으로서 역사상과 정체성을 아울러 유지하며 현대의 발달된 목회상담까지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목회적 돌봄을 때로는 목회 상담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목회상담의 영역을 넘어서는 보다 범위가 넓은 돌봄과 관심의 사역으로 보았다.3. 상담의 어원과 의미3-1. 상담의 어원목회 상담을 정의하려면 먼저 상담의 개념부터 고찰할 필요가 있다. 원래 상담은 일반 심리학의 발전과 더불어 그 방법을 개발해 왔으며 정신적으로 고통과 불안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 해결을 도와주며 성장과 발전을 간절히 원하지만 그 방법을 알지 못하고 고민하는 자들을 도와서 자기 완성을 실현하게 도와주려고 개발한 것이다. 원래 상담(Counseling)이란 용어는 라틴어 Cons 강박적인 감정 표현과 나르시시즘과 대조적으로 자기훈련, 자기부인이 균형 있게 발달될 것, 복음의 선호와 전도, 금식과 묵상의 중요성 그리고 목회사역의 통합적인 부분으로서 목회 상담 사역이다.목회 상담은 20세기에 와서 나타난 완전히 새로운 분야라고 하기보다는 약 2천년이라는 장구한 교회의 역사속에서 행해져 온 목회적 돌봄이 20세기의 와서 심리학의 발달과 더불어 더 풍성해지고 더 전문화되어진 목회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오든은 현대 심리학의 상담학의 이론과도 공통적인 요소가 이미 교부들의 글 속에 많이 나타나며, 이후에 나타난 신학자들의 글 속에서도 발견되어진다고 주장하면서 객관적으로 그 같은 자료들을 제시하려고 애썼다.) 이 같은 역사적 뿌리는 목회상담이 일반상담이나 기독교 상담과 구별되는 첫 번째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따라서 목회상담은 역사적인 뿌리에 대한 인식과 과거 기독교 역사와 교회역사의 유산들을 잘 유지하며 사용하는 동시에 현재 속에서 새로운 변화에 적절하게 반응하며 미래를 조망하며 창의성 있는 상담이론과 상담방법들을 계발해나갈 책임이 있다. 미국의 목회상담운동이 개인주의적인 모델에 머물렀음을 비판하면서 심리체계적인 접근을 대안으로 제안했던 목회상담학자 래리 그래함은 ‘맥락)적 조직화’와 ‘맥락적 창의성’이 균형을 이루게 될 때 아름다움과 조화를 드러내는 목회상담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맥락적 창의성이 약해지면 목회상담은 개방성이 줄어들며, 유연성보다는 경직성이 자리 잡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게으름의 형태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반면에 맥락적 조직화가 약해지고 맥락적 창의성이 지나치게 커지게 되면 정체성이 불분명해지며 오리무중에 빠질 위험성이 커질 것이다.6. 목회 상담의 목적목회 상담의 기본 목적은 근접적인 목적과 궁극적인 목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근접적인 목적은 내담자의 심리적 갈등을 해소해 주고 죄의식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며 정서적 안정을 얻게 하여 성숙하고 책임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궁극경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심리학이나 행동과학의 차원에서 이해되었고, 이것을 교육하여 왔다. 그러나 미국의 웨스트민스트 신학교 교수인 아담스(Jay E. Adams)는 프로이드와 로저스의 이론을 반박하면서, 성경적 목회상담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그는 기독교 상담자는 성경만을 유일한 하나님의 권위의 근원으로 삼으며, 성경을 유일한 상담학 교과서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아담스(Jay E. Adams)의 지시적이며 권면적인 상담방법은 성경에 근거한 방법론이다.또한, 기독교 상담학은 복음주의 목회상담자 뿐 아니라, 심리학, 정신의학 그리고 관련분야의 정규과정을 거친 그리스도인 상담 전문가에 의해서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은 폴 투르니어(Paul Tournier), 부르스 내래모어(Bruce Narramore) 등이다. 그리고 클라이드 내래모어(Clyde M. Narramore), 찰스 솔로몬 (Charles Solomon), 로렌스 크렙(Lawrence J. Crabb), 게리 콜린스(Gary R. Collins)와 같은 사람들은 목회 상담자의 입장과 기독교 상담전문가의 입장에서 책을 쓰며 연구하고 있다.8-2. 이론1. Jay E. Adams의 권면적 상담론1) 그리스도 중심, 성경 중심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진정한 크리스천 상담의 중심이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이 상담은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되어 크리스천을 만드는데서 끝나는 상담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뜻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왕이시며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개인적인 문제를 가진 하나님의 백성을 상담하는데 관해서 제시하신 명령이 무엇인지 보아야 한다.)신약 성경이 복음의 사역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크리스천들도 권면적인 모든 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골3:16),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표 달성을 돕기 위해 잠시 관여할 뿐이다.(2) 하나님께서 돕는 자로 참여하는 방법인본주의 및 세속적 접근 방법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께서 돕는 자로 참여하는 접근 방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담이 있다. 여기서도 목표는 똑같지만 하나님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상담자와 내담자의 일을 도와주는 보조자 내지 보조요법사로 간주된다.)(3) 하나님 중심의 접근 방법위의 두 가지 방법과는 매우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 중심의 접근 방법이라고 표현되는 방법이 있다. 이 접근 방법은 인류를 위해 궁극적인 목적을 갖고 계신 영원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께서 상담 관계에 들어오셔서 상담자를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시어 내담자의 생활에 변화를 일으킨다.상담자는 이러한 변화가 내담자와 하나님 사이에 조화를 회복시키고 그와 타인의 관계를 향상시키고 그의 내부 갈등을 해소시키고 사람의 모든 지각을 초월한 평안을 심어 주는 결과를 가져오기를 희망한다. 남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제자는 이와 같은 하나님 중심의 접근 방법을 지향하려고 노력한다.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그는 기꺼이 제자의 특징을 개발하고 대가를 지불하고 책임을 지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제자는 상담하는 사람들의 생활 속에 변화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여진다.)3. Lawrence J. Crabb의 성경적 상담Lawrence J. Crabb은 심리학자로서 기독교 입장의 상담 이론을 전개한다. 그는 성경에서 모든 문제의 근원을 찾고 성경적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며 성경적으로 상담 목표를 설정함과 동시에 상담의 효과를 위해서는 심리학적 역동성도 치료학상의 연마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 격려의 상담개인적인 고통을 경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따뜻함과 순수한 관심에 의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사랑을 받는다고 느낄 때 내 짐은 더욱 가벼워진 것처럼 생각된다. “내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을 아는 것은 내 문제를 해결하는 강한 힘을 제공해 주며 내가 사랑하는 주님 .
루터와 칼빈의 교회론 비교제 1 장. 들어가는 말제 2장 루터와 칼빈의 교회론 비교1.루터의 교회론1)말씀의 교회2) 참교회와 거짓교회3)교회의 직책4)교회의 궁극적인 목적2.칼빈의 교회론1)교회의 필요성2)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3)교회의 직책4)치리제 3 장. 맺 는 말.제 1 장. 들어가는 말교회에 대한 고백은 사도 신조의 중요한 조항 중의 하나였다. 성부와 성자와성령에 대한 고백이 있은 다음에 성도의 교제(communio sanctorum)라는 말로 고백되었다 즉 그리스도의 교리를 적용하는 교리(구원론)는 자연스럽게 교회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복에 참여하려는 자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사람들을 자신에게 연합시키고 그들에게 참된 믿음을 주어서 그 교회를 자기의 몸 곧 성도의 무리를 구성한다는 것이 개혁주의의 개념이다. 로마 카톨릭 신학에서는 교회론이 다른 어떤 교리보다도 앞선다. 그들에 의하면, 교회는 성경을 산출하는 도구이므로 성경보다도 앞선다고 말한다. 또한 교회는 모든 초자연적인 은사들을 수여해 주는 자라고 말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최대의 강조점은 신자의 공동체로서의 무형교회가 아니고, 신자의 어머니(mater fidelium)로서의 유형교회에 있다. 종교 개혁은 이같은 로마 카톨릭교회의 교회론과 결별하면서 다시 한 번 영적 유기체로서의 교회에 주목하였다. 종교 개혁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역사와 별도로 교회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구속론과 성령론을 교회론보다 앞서 논의하는 것이 논리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와 같이 종교 개혁자들은 그리스도 중심으로 교회론을 이끌어 나갔던 것이다. 특별히 루터와 칼빈은 종교 개혁의 선두 주자로서 그들이 내세운 교회론이 지금 오늘날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애비스(PaulD.L.Avi. 루터가 「사편강의」를 썼을 때에 교회론에 관한 그의 관심은 ‘말씀의 들음’에로 집중되어 있었는데, 종교개혁적인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면서부터는 가톨릭의 교회개념과 관련하여 ‘교회의 권위’에 대해서, 그리고 ‘만인제사장설’에 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개신교회를 확고히 확립한 후에는 직분론이나 교회법에 관심을 가졌고, 직분론에 있어서도 초기에는 만인제사장설을 바탕으로 해서 교회의 직분이해를 전개하였다면, 말기로 갈수록 목사직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루터의 교회론을 일반화해서 설명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의 교회론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을 들라고 한다면, 그것은 ‘말씀’(wort)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교회론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문서인 Von den Konziliis und Kirchen에서 그는 교회를 ‘거룩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하였다 이를 풀이하여 그는 교회란 “기독교적이라고 거룩한 백성들의 모임이며, 이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믿는다.”라고 하였고, 또한 교회란 “기독교인이며 성스러운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라고도 하였다. 교회를 성도들의 모임이라고도 한 그의 표현은 신앙고백의 ‘거룩한 공회’와 직결되는 개념인데, 이 거룩함을 그는 바로 ‘말씀’과 연결시키고 있다.루터는 교회를 ‘복음의 피조물’이라고 하였으며, 루터의 교회이해에서는 궁극적으로 말씀의 절대적인 우위성을 확인할 수 있다. ‘말씀’이야말로 그에게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본질적인 근거이다. 그는 카톨릭적인 입장에 반하여 교회의 권위를 교황이나 공의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있다고 보았다. 루터는 말씀을 교회위에 놓았다. 교회는 철저히 말씀 아래에 존재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말씀이 없다면 교회는 교회로서의 본래적인 사명을 잃는 것이고, 교회의 권위도 잃게 되는 것이다.2) 참교회와 거짓교회말씀의 절대적인 우위성을 갖는 루터의 교회론은 그의 참교회와 거짓교회에 대한 이해에서도 확인된다. 루터의 루터는 가톨릭적인 교회를 비판하고도적인 교회’라고 하였는데 이 참 사도적인 교회의 척도는 ‘말씀’에 있다고 하였다. 그의 참교회 개념은 어는 특정의 교단이나 교회를 지칭하기보다는 어느 교회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야 할 교회상, 즉 참 사도적인 교회로서 말씀이 바로 선포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3)교회의 직책(1)만인제사장루터의 직분론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만인제사장설’이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초기부터 ‘만인제사장’이라는 참으로 획기적인 직분구조의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그는 구교의 교권주의를 비판하면서 평신도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적인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고 함으로써, 평신도와 제사장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을 수 없음을 천명하였다. 이것은 그가 기독교인 내부의 계층구조를 근본적으로 거부한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는 로마의 교권주의를 장벽에 비유하였는데 로마의 세 가지의 장벽의 갖고 있다고 하였다.그 첫 번째 장벽은 세상의 세력이 밀고 들어오면 영의 세력은 세상의 세력보다 높기 때문에 세상의 세력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맞서는 것이다. 두 번째 장벽은 그들을 성경으로 비판하고 정죄하면, 성격을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은 오직 교황에게만 있다고 맞서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장벽은 그들을 공의회를 통하여 정죄하려 할 때,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교황 하나뿐이라고 맞서는 것이다.이에 대하여 루터는 모든 기독교인은 이미 제사장의 직을 받았다는 만인제사장설을 제시하였다. 그는 제사장이란 기독교인됨과 연결되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기독교인이 되는 외적인 관문인 ‘세례’와 내적인 증거인 ‘믿음’이 인간을 제사장이 되게 하는 관문이라고 하였다.이와 같이 만인제사장 개념으로 루터는 먼저 하나님과 기독교인 사이에 제사장을 토한 중재가 필요치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모든 기독교인은 제사장으로서 스스로 하나님의 계시말씀을 받아들이고, 이를 해석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영적인 구원을 위하여 헌신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였다.(2)영적인 직분루터는태는 감독과 목사 혹은 설교가이다. 그는 목사와 설교가를 구별하여 따로 생각한 것이 아니고, 목사 혹은 설교가로 그 명칭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목사 혹은 설교가의 기능은 그에 따르면 ‘공적인 말씀의 선포’ 와 ‘성례의 집행’이다. 루터는 다른 곳에서 목사의 기능을 ‘말씀선포’와 세례, 성찬, 그리고 열쇠라고 하기도 하였는데, 영적인 직분의 핵심적인 기능은 그의 교회이해와 연결시켜 볼 때 공적인 말씀의 선포로 집약된다. 그리고 성례의 올바른 집행이란 결국 성례를 말씀에 입각하여 집전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그에게서 영적 직분, 즉 목사의 핵심적인 기능은 넓은 의미에서 말씀의 선포라고 할 수 있다.감독의 직이란 아주 특수한 경우라서 루터는 이에 관하여 아주 간단히 서술하고 있다. 교황에 대한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독의직을 거부하지는 않았는데, 이는 성격이 감독의 직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루터의 직분론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영적인 직분자와 평신도들 사이에 어떤 존재론적인 차이를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적인 직분은 교회 안의 특별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 직분은 교회가 선택하여 위임할 수 있으며, 직분자가 그 기능을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대로 수행하지 않을 경우에 교회는 그를 직분에서 해임시킬 수도 있다.4.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영적인 나라인 교회는 인간의 영적인 구원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으면서 이 목적을 위하여 ‘말씀’과 ‘성령’이 다스리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을 바탕으로 해서 볼 때, 루터가 교회를 ‘말씀의 교회’로 보고 성직인 목사의 핵심적인 과제를 말씀의 선포로 보는 것도 인간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2. 칼빈의 교회론1)교회의 필요성칼빈은 교회를 먼저 하나님이 일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통로로 사용하기 위하여 세우신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그 목적이 바로 우리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에로 부르시고 그 일치를 계속 유지시키시기 위는 신도들의 공동체로 보는 것을 넘어서 모든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의 무리’라고 하였다 이 공동체는 물론 살아 있는 신자들 뿐 만 아니라 죽은 사람도 포함하여 모든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포함되는 하나의 통일적인 교회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루터에게 있어서 참교회는 참 사도적인 교회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 참 사도적인 교회를 재는 척도라고 한 반면에 칼빈에게서 참교회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의 무리이다. 칼빈에게서 하나님의 선택이란 인간에게는 숨겨져 있는, 오로지 하나님만 아시는 사건이다. 그래서 칼빈에게 있어서 참교회는 눈에 ‘보이는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만 아시는 ‘보이지 않는 교회’이다.칼빈에게서 참교회란 이 가시적인 교회의 테두리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가시적인 교회의 필연성에 대한 그의 입장은 결국 교회 밖에는 죄의 용서도 없고, 구원도 없다는 그의 표현 속에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하나님이 그의 은밀한 선택으로 그의 백성을 선택하셨고, 이 백성들이 ‘보이지 않는 교회’를 이루지만,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한순간에 완전하게 만드시지 않고, 교회의 양육과 교육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숙시키기 위하여 ‘보이는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보이는 교회는 따라서 종말론적인 완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필연적으로 완수하여야 하며, 이 땅에서 존립해야 할 의미를 가지는 하나님의 기관이다. 따라서 칼빈에게서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3) 교회의 직책칼빈의 교회는 직분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이다. 루터의 교회가 원칙적으로 만인제사장설을 바탕으로 하는 교회라면, 칼빈은 이보다 훨씬 강하게 직책 중심의 교회개념을 전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칼빈은 교회의 직책과 그 직책을 맡은 자 는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세워졌다고 하였다. 하나님이 그의 교회를 친히 세우신 것처럼 그 안의 직분자들도 친히 세우셨는데 이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칼빈에게
- 목 차 -요약제1장 개혁신앙을 위한 교회조직신학자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 / 2박아론 박사의 신학에 대한 고찰과 평가 / 5미국의 개혁주의 신학 전통 / 8메이천의 초기 신학과 사상 / 12메이천의 후기 신학과 사상 / 16제2장 교회를 위한 개혁신앙개혁주의 성령론(Ⅰ) / 19개혁주의 성령론(Ⅱ) / 27성경과 여성 임직 / 31조직신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 / 34조직신학과 선교신학 / 36소감문「改革信仰과 敎會」제1장 개혁신앙을 위한 교회조직신학자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Ⅰ. 서론죽산 박형룡 박사(1897-1978)는 구 프린스톤 신학교의 신학전통의 마지막 주자인 메이천 박사(1881-1937)로부터 신학을 배웠다. 박형룡 박사에 대한 신학과 사상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필요한 시기이며 이후로 그의 신학과 사상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활발한 논의가 있어지기를 기대해 본다.Ⅱ. 본론1. 박형룡 박사의 신학적 배경박형룡 박사의 신학은 구 프린스톤(Old Princeton Theology)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박형룡 박사는 삼일운동이 있은 그 이듬해 1920년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중국 남경의 금릉대학에서 수학하고, 1923년 9월부터 1926년 5월까지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신학사와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26년부터 이듬해까지 미국 켄터키주 남 침례교 신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박형룡 박사의 신학은 일제 하 식민지통치에서 한민족의 교육과 개화에 힘썼던 평양 숭실 전문학교에서 시작된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의 배경은 그가 신학사, 신학석가를 마친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구체적으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박형룡 박사의 신학은 구 프린스톤(Old Princeton Theology)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구 프린스톤 신학이라 함은 1812년 설립되어 1929년 까지를 말하는데 이는 역사적 개혁주의, 정통 칼빈주의 신학을 추구하던 시기이다. 프린스톤 중 불트만, 판넨베르그와 몰트만, 바르트, 부르너, 틸리히 등을 집중 거론하고 그들의 불신앙을 파헤치고 동시에 미국신학의 근황과 유럽신학의 근황을 소개하고 정통신학을 위협하는 신 신학으로 3신주의, 곧 신 프로테스탄트주의, 신 정통주의, 신 복음주의의 도전을 열거하고 이에 맞서 박형룡 박사를 통해 소개된 메이천주의 신학의 계승발전을 총신이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의 방법론의 특징은 역사적 개혁주의 곧 정통신학의 입장ㅇ 서서 현대신학을 전면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3)종말론박아론 교수는 선친이 교수한‘역사적 천년기전 재림론’을 고수하고 가르쳤다. 그러나 구미의 신학계에서는 ‘무천년기 재림론’이 미국의 「기독교 개혁교회」와 「정통장로교회」의 견해요, 지금도 칼빈 신학교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통상 가르치는 재림론이다.그리고 화란의 카이퍼와 바빙크, 벌콥 등에 의해서도 지지를 받고 있다. 박형룡 박사가 즐겨 인용했던 벌콥의 「조직신학」에는 무천년론을 “역사상 가장 널리 수용된 견해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위대한 역사적 신앙고백에 표명되거나 함축된 유일한 견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형룡 박사나 박윤선 박사는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메이천 밑에서 수학 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천년기전 재림론’을 지지하고 있다. 박아론 박사의 종말론은 박형룡 박사, 박윤선 박사로 이어지는 역사적 천년기전 재림론의 입장을 자신의 입장으로 알고 가르쳤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기독교 변증학 분야에서 반틸리안이 아니라, 박형룡 학파에 속한다”라고 한 말은 일리가 있다.맺는말박아론 박사의 신학의 형성과 신학사상은 지난 30년 간의 총신에서 교수로서의 행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선친 박형룡 박사의 뒤를 이어 부자(父子)의 65년에 걸친 총신에서의 교수 생활은 박아론 박사의 신학의 요람이요, 생활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선친과 비교하여 “선친은 큰 지도자로서 많은 역할과 일”을 하였음을 인정하고, 청교도 개혁신학이라는 동일한 사상과 내용의 신학을 2대에 걸쳐 초자연적인 기독교가 참이라는 것과 그 사실은 지적으로도 변호되어야만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의 노력은 장로교 내에서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교회의 일치와 순결의 교리를 지성적으로 옹호하는 것과 그의 확신을 교회 활동을 통해 구체화 시키고자 했다.Ⅱ. 메이천의 초기 작품에 대한 고찰1912년에 이르러 네 개의 학술 논문을 발표하면서 메이천은 학자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 중 셋은 동정녀 탄생에 관한 것이고, 네 번째 작품은 예수와 바울 사이의 역사적 관계를 다룬 것이다. 이 두 주제(동정녀 탄생, 예수와 바울)는 신약 비평에 관한 메이천의 후기 작품인 「바울 종교의 기원」「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통해서도 다루어진다.1. 누가복음 1장에 나타난 찬양시들1912년 「프린스톤 신학평론」에 실린 메이천의 첫 논문으로 주로 누가복음 1:46-55의 마리아의 찬양과 1:68-79의 사갸라의 찬양을 다룬 것이다. 메이천은 마리아 송가가 본래 마리아가 노래하였던 아람어 송가로부터 유래되었으며 이것이 탄생기사와는 별개로 회자되다가, 복음서 기록시 영감된 누가 자신의 손끝을 통해 탄생기사 안에 있는 현재위치에 자리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사가랴의 노래에서도 일어났다는 것이다. 후에 이 “누가복음 1장에 나타난 찬양시들”이란 논문은 실제로 그의 저서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의 첫 장을 이루게 된다.2. 누가복음 첫 두장의 기원메이천의 두 번째 논문으로 누가복음 1장과 2장에 기록된 탄생기사를 각기 다른 요소들로 구분하려는 시도들에 반대하고, 탄생 기사의 통일성을 옹호하였다. 그는 당시 신학계의 세 가지 가설을 다루었다. (1)기록된 자료들은 사용하지 않고 누가 자신이 작성하였을 것이다. (2)누가는 아람어로 된 문서 자료에 의존하였을 것이다. (3)누가는 헬라어로 된 문서 자료를 이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는 모든 언어적 증거로 보아 이 탄생 기사가 분명히 성령의 감동으로 된 누가의 작업일 뿐만 아니라 유대 기독교적 인에게 보장된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원리이다. 메이천을 중심하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설립과 장로교 독립해외선교부의 설립, 그리고 정통장로교회의 시작은 종교적인 자유주의에 대해 메이천이 반대한 논리적인 결과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이 소수였을 때는 잠잠하다가 1920년대를 지나 1930년대 후반에 중도파의 도움으로 다수를 점하게 되자 보수주의 목소리를 탄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실 메이천의 경우에는 스스로 분리한 것이 아니라 자기 교단에서 축출된 것이다. 그러므로 정통장로교회의 설립은 분리가 아니라 복음을 사수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다. 만일 그들이 스스로 분리했더라면 그 분리는 정당화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프린스톤 신학교의 실제적인 책임은 장로교회 헌법에 대한 책임이요, 나아가서는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책임이었다. 우리는 메이천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에 대하여 주장할 때와, 그가 성경적인 교회의 일치와 순결을 보존을 주장할 때도 이 책임감이 그를 이끌었다고 생각한다.메이천은 “우리의 새 시대에 교회의 책임”이라는 주제로 행한 연설에서 진정한 교회의 특징에 대하여 “철저하게 교리적”“철저하게 비관용적”“철저하게 윤리적”일 것을 주장했다. 그는 또한 “복음의 보편성”과 교회의 “높은 배타적 성격” 곧 “단지 구원의 한 수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유일한 수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시하는 것”을 옹호했다. 메이천은 분리주의자나 분파주의자가 아니라 당시에 유행하고 있던 신학적 자연주의적인 자유주의로부터 자신이 속한 교단을 지키려는 시대의 흐름과의 마찰이었다.제2장 교회를 위한 개혁신앙개혁주의 성령론(Ⅰ)서 론한국교회에서 흔히 교과서처럼 사용되는 루이스 벌콥의 「조직신학」이나 박형룡 박사의 「교의신학 구원론」이후, 성령론에 관한 성경신학적 접근에 대한 이해를 돕고 전통적구원순서적 관점에 대한 구속역사적 관점의 보완 및 성령론에 관한 최근 논쟁에 대한 이해와 적 우리는 육신이 우리를 감싸고 있는 동안에는 늘 죄에 떨어지기 쉽다. 성령이 내주하고 계시지만 동시에 죄가 육신을 통해서 역사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죄를 떠나서 살 수 없다 따라서ㅓ 완전한 성화는 없다.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직 주님의 뒤를 따르는 작업을 계속해야만 한다. 이것을 칼빈은 중생의 개념으로 사용했다.Ⅲ.성령의 사역1. 구약의 성령 사역(1)창조에 나타난 성령의 사역구약은 창조에 나타난 성령의 사역에 대해 말한다. 바르트는 창조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구속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바르트에게는 보통은혜는 없고 특별은혜만 있다. 그리스도 구속의 사건이 먼저라고 보기 때문에 구속-창조-타락을 배열한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창조역사를 구속사역을 설명하는 설화(saga)라고 말한다. 그의 역사의 개념은 우리가 말하는 히스토리가 아니라, 실제사실로서, 사건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게쉬히테의 역사이다 그는 역사를 보는 눈도 구속을 먼저 말한다. 창조는 실제 사실로서의 사건이라기보다는 구속사역을 설명하는 설화라고 보는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창조-타락-구원을 말한다. 우리는 계시역사의진전에 따라 구약의 성령의 역사, 신약의 성령의 역사를 구분하여 말 할 수 있고, 이 중 창조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는 삼위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고찰 되어야 함을 놓쳐서는 안 된다.(2)구약시대 성령의 재창조 사역어떤 이들(특히 세대주의자들)은 구약에서는 믿음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구원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구약에서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이 분명하다. 창15:6절은 “아브라함이 여화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이 구원 받은 것,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은 행위로 된 것이 아니다. 여화와께서 그를 의로 여기셨다고 말한다. 그러면 구약의 아브라함이 칭의 된 것은 믿음으로 된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관점이다.로마서 3장을 보면 율법으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사람이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이다.
시가서-김영욱 교수님어떻게 시편을 읽을 것인가? / 요약서론 : 시편에로의 초대시편은 시적 어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배경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낯선 책이라고 말 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며 또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특별한 장소들은 우주의 하나님과 만나는 친밀한 장소여 또 때로는 두려운 만남의 장소이다. 이 장소들은 인간이 반응해야 하는 장소들이다. 즉 사람들은 이 장소들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기도를 올려야 하는 것이다. 시편이 바로 그와 같은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공식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실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편은 성경 속에 있는 일종의 문학적 성소이다. 시편은 하나님이 특별한 방법으로 그 분의 백성을 만나시는 곳이요, 그 분의 백성이 하나님께 찬양을 울리고 비탄해 하는 곳이다. 구약의 성소가 무엇보다도 성막과 성전이 하나님의 백성의 물리적인 중심에 위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것과 마찬가지로 시편역시 성경책 한 가운데 있다. 시편에서 우리는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이 예배하는 것을 본다.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을 이해하고 또 그들의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 항상 애써야 했음에 비하여 유독 시편만은 교회와 개인의 경건의 시간에 널리 사용되어 왔다. 시편은 전인에 호소를 한다. 시편은 전적인 반응을 요구한다. 시편은 우리의 지성을 훈련하고 우리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의지를 지도하며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믿음을 갖고 시편을 읽을 때 우리는 단지 지식만 더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받게 된다. 우리는 구약 전체와 특히 시편을 이해하기가 힘들다고 해서 놀랄 것 까지는 없다. 왜냐하면 구약은 역사적으로 문학적으로 또 신학적으로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제 1부에서는 구약 시대 동안 시편이 어떻게 이해되고 사용되었는가 하는 문제, 제 2부는 시편 기자의 기교와 또 그들이 사용했던 문학적 문구들을 살펴볼 것 여러 가지 다른 형태의 시들이 있다. 이 형태를 장르(genre)라고 볼 수 있을 것이고, 장르는 서법(敍法), 내용, 구조 및 어법이 유사한 일군의 본문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어떤 본문을 해석할 때 우리가 그 본문의 장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의해 그 해석이 상당히 좌우된다는 것을 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장르는 특정한 본문의 독서 전략을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편의 장르에 대해 묻는 것이 중요하다. 장르는 우리가 개개 본문들을 해석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에게 시편 각각을 개별적으로 연구하지 않고도 대부분의 시편을 망라해 다룰 수 있는 편리한 방법을 제공해 줄 것이다. 모든 시편은 시라는 장르에 속해 있지만, 우리는 보다 좁은 장르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할 것이다 우리가 묘사할 일곱 장르는 찬양시, 탄식시, 감사시, 신뢰의 시, 회상의 시, 지혜시, 제왕시이다. 이 일곱장르는 더 좁은 장르로 세분될 수도 있다.1. 찬양시: 찬양시는 여호와에 대한 찬양이 충일한 것으로 쉽게 알 수가 있다. 찬양시는 거의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1. 찬양시는 경배하라는 요청으로 시작한다.2. 찬양시는 이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길게 상술한다.3. 찬양시는 종종 찬양하라는 요청을 추가로 포함시키고, 또 때때로 찬양하라는 요청으로 끝을 맺는다.시편 기자는 맨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요청한다. 보통 이 요청은 다른 예배자들에게 하는 것이지만 이따금 시편 기자 자신에게 여호와를 경배하라는 요청을 하기도 한다. 찬양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기술한 부분이다 하나님은 추상적인 속성 때문에 찬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 하나님께서 그 분의 백성들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삶에 들어와 역사하신 것 때문에 찬양을 받으시는 것이다. 찬양시는 찬야을 해야 하는 이유를 토대로 해서 더 세분할 수가 있다. 찬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재난에서 구출하셨다는 것이다.2. 탄식시: 때 찬양시와 정반대의 시라고 본다. 탄식시는 시편 기자가 커다란 재난에 빠져 하나님 외에는 하소연할 곳이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울부짖는 것이다. 살펴보면 세 가지 유형이 있다.1. 시편 기자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으로 인해 괴로움을 당할 때가 있다.2. 시편 기자는 그를 괴롭히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불평한다.(대적들)3. 시편 기자는 하나님 자신에게 실망할 때가 있다.또 대부분의 탄식시는 시편 기자가 일인칭 단수인 ‘나’로 말한다는 점에서 개인적이다. 시편 기자는 종종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간청과 더불은 호소구로 말문을 연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가 없다. 탄식시에 맨끝에는 보통 찬양시가 나온다. 많은 학자들은 탄식시를 노래부를 때 제사장이 앞에 있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한다. 시편이 사용된 일차적인 배경이 공식적인 예배인 이유이다.3. 감사시: 감사시는 탄식이 응답된 것에 대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찬양시와 감사시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감사시는 기도가 응답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는 것이다. 전형적인 감사시는 찬양시와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한다. 시편 기자는 먼저 자신의 하나님을 찬양하려는 의도를 밝힌다.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 시편 기자는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요구한다.4. 신뢰의 시: 시편기자는 자주 자신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권능을 신뢰한다고 표현한다. 기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권능을 신뢰한다고 표현한다. 기자가 기쁨의 찬송을 노래하거나 한탄할 때, 시편 기자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나타난다.5. 회상의 시: 시편은 특별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과거의 위대한 구속적 행위들을 자주 언급한다.(출애굽 사건, 다윗 왕조의 사건) 회상의 시는 하나님이 과거에 이루신 구속 행위에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시들이다. 이러한 시에서는 일련의 하나님의 행위들이 하나하나 열거된다.6. 지혜시: 성경의 지혜를 생각할위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이점에서 우리는 잠언과 율법이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몇몇 시편은 하나님의 율법의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묵상하고 있다. 또한 창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세계의 질서에 매혹당했다. 게다가 지혜 사상을 담은 시는 인생과 신앙의 보다 회의적인 측면을 다룬다.7. 제왕 시: 제왕시는 보통 두 그룹으로 구분을 하는데 첫째. 시편에는 이스라엘의 인간 왕에 초점을 맞춘 시들이 많이 있다. 둘째 제왕시는 하나님을 왕이라고 선포한다. 제왕시는 군사적 승리와 관련하여 하나님을 왕으로 찬양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뒤에서 시편 98편을 간략하게 살펴볼 것처럼, 이 제왕시들을 또한 하나님의 전사 찬양시(Divine Worrior hymns)로도 연구 할 수 있다.장르라는 것은 돌 판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융통이 있다. 앞에서 말한 장르 가운데 하나 이상의 범주에 놓고 시편을 연구하는 것이 유익하다.제 2 장 : 시편의 기원, 발전 및 용도왜 시편은 외관상으로 순서가 뒤죽박죽인가? 이 문제를 생각하노라면 또한 이와 관련된 제2의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시들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다윗이 시편 전부를 다 썻는가? 그렇지 않다면 누가 시편을 썼는가? 마지막으로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편을사용을 하였는가?시편의 기원을 암시하는 것은 표제이다. 시편의 기원을 알 수 있는 한가지 암시는 표제들에서 얻을 수가 있다. 개인의 시들을 소개하는 표제들은 저자, 그 저술을 자극했던 역사적 상황, 그 시편의 기능 그리고 이따금 다른 문제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저자를 소개하는 유형의 표제와 역사적 상황을 소개하는 표제가 있는데 예를 들면 다윗의(of David)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문구가 다윗에게, 다윗을 위해라고도 번역될 수 있기도 하다. 히브리어 전치사들은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그 뜻을 파악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와 같은 시편들이 다 다윗의 것이라는 논의가 강력하게 개진되어 왔는데, 그것은 다윗이 그의 이의미에서 그런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것으로 돌리고 있는 시편들을 다윗이 썼다는 것은 의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대부분의 역사적 표제들은 비슷한 점들이 많이 있다. 첫째로 역사적 표제들은 다윗과 관계가 있다. 역사적 표제들은 다윗의 생애중 특별한 한 사건을 각 시편과 연결시킨다. 둘째로 시편자체는 종종 1인칭으로 말하지만 역사적 제목은 다윗을 3인칭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와 같이 3인칭에서 1인칭 대명사로 변화하는 것은 다윗이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 훗날에 이와 같은 표제들을 덧붙였음을 암시한다. 셋째로 대부분의 역사적 제목들은 문법 형태가 똑같다. 표제들은 정경에 속하지는 않지만, 신뢰할만한 초기의 전승으로 취급하는 것이 최상책이다. 시편에서 놀라운 사실은 시편이 특별한 인생 경험 속에서 생긴 것인데도, 그 내용은 시편을 낳은 특정한 사건들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시편은 어떻게 수집됐는가? 시편은 구약이 기록된 전 기간에 걸쳐 생겼다. 종종 시편의 연대를 추정하기가 어렵고 또 불가능하기까지 하지만, 제목들의 전승에 따르면, 모세의 것과 같이 이른 시기의 시편도 있고, 포로 귀환을 반영하고 있는 시편도 있다. 시편을 구약의 전 기간 동안 살아 움직이는, 열린 책으로 보는 것이 좋다. 전체적인 구조를 밝힐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시편을 몇 개의 중요한 그룹과 시적 동향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룹 분할은 시편을 다섯 권의 책으로 나누는 것이다(시 1-41편; 42-73; 90-106; 107-150). 이 다섯 권의 책은 모세오경과 병행시킬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다. 각 권들의 마지막은 다 찬가로 끝을 맺고 있다.결론적으로 말해서 시편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조직적인 구조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 우리는 시편을 때때로 보다 작은 그룹으로 분할할 수는 있다. 시편의 끝으로 갈수록 찬양이 탄식을 압도해 시편의 맨 마지막에는 사실상 찬양이 폭죽처럼 터져나옴을 볼수 있다. 시편은 공적 사적 예배에 .
시가서-김영욱 교수님어떻게 시편을 읽을 것인가? / 요약제 5 장 : 시편-영혼의 거울보통 우리는 정보를 얻기위해 책을 읽는다. 우리는 독서를 사색 활동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시편은 하나님 및 그 분과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시편은 우리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의지를 지도하며,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시편은 우리의 지성을 가르친다. 성경의 목적중 하나는 그 분이 그분의 백성들을 어떻게 취급하시는가에 대한 정보를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도록 성경은 우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감정을 통제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지혜시를 통해서 우리의 의지를 지도하며, 명령으로 우리의 의지를 지도할 때도 있다. 시편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다 우리 대부분에게 이것은 굉장한 자원이 될수 있다. 시편은 우리의 감정을 통제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줄 수가 있다. 이 말은 우리의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시편 기자의 모범을 따른다면 그와는 정반대이다 시편은 감정들을 정직히 표현한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항상 긍정적인 감정으로 바뀐다.시편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것에 대해 배운다. 또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배운다 인간의 온갖 경험이 시편에 다 나오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데이빗 허바드가 표현한 대로 시편은 우리 영혼의 사계절에 대해 말한다 우리의 지성이 가르침을 받고 우리의 감정이 순화되며, 또 우리의 의지가 지도를 받는다. 시편을 읽고 묵상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데 이보다 더한 어떤 동기가 필요하겠는가?제 2 부 : 시편의 기술제 6 장 : 구약의 시시편을 인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저 성경의 시편을 찾아본 다음에, 레위기를 찾아서 대조해 보면 금방 알수 있다. 시편은 분명히 시적이다. 그리고 실제로 구약의 많은 부분이 시로 되어있다 그것은 시의 기능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시를 읽은 경험을 근거로 해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시는 산문이 하지 못 하는 방식으로 전인(全人)에 호소한다. 시는 우리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며, 우리의 지성을 만족시키고, 우리의 의지에 말을 한다. 청중들의 주의를 사로잡고 그들에게 자신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긴급한 것이라고 설득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 선지자들도 시로서 전하였다. 또 시는 즐거움을 준다. 반대로 시의 단점은 해석하기가 난해하다는 벽이 있다.그렇다면 우리가 말 하고 있는 시란 무엇인가? 시의 여러 가지 특징들이 있지만 특히 히브리어 시의 가장 보편적인 특징 하나는, 우리가 흔히 평행법이라고 부르는 반복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시편의 아름다움과 그 힘을 알 수가 있다. 두 번째로는 주요한 특징은 비유적인 표현들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히브리어 시와 산문을 구별하는 것은 한 가지 특징이나 일군의 특징들만 갖고는 시를 분명하게 정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는 일상 언어와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산문과 구별할 수가 있다. 산문은 우리가 매일 우리 친구들과 친척들과 친지들에게 이야기 하는 방식과 거의 유사하다 시는 이와 대조적으로 인위적인 언어이다.제 7 장 : 평행법시편들을 살펴보면 행들 안에 반복이 많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을 평행법이라고 하는데, 평행법은 한 시행의 시구 간에 일어나는 대응을 언급하는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것처럼, 이 대응은 여러 형태로 일어나지만, 구약 시의 초보자로도 한 행의 시구 간에 나타나는 유사점을 쉽게 알아볼 수가 있다.이 평행법 범주들로서는 두 개의 다른 의미를 찾는다. 로우스는 평행법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으며 더 나아가 그것을 동등한 것들이 동등한 것들과 관련되고 정반대에 것들이 정반대에 것들과 관련될때 라고 정의 했다. 로버트 로우스는 그의 동시대인들의 평행법을 이해하는 방식을 수정한 것 외에 평행법의 세가지 주요 유형들을 분류해 냈다 이세가지 범주는하게 관련된 일련의 단어들을 사용해서 두 개의 다른 시구에 똑같은 생각을 반복하는 것이다.2. 반의적 평행법은 로우스는 이번에도 똑같은 생각이 표현되는데 다만 동의어 대신에 반의어가 사용되는 것이 다를 뿐이다.3. 종합적 평행법은 두 번째 시구가 첫 번째 시구를 완성시키거나 보완하는 시해을 일컫는다.4. 상징적 평행법은 상징적 시행가운데 있는 시구들의 하나는 신학적 또는 교훈적 가르침을 설명하기 위하여 다른 생활 영역으로부터 두가지 생각을 모으기 위하여 비교의 단어를 사용한다.5. 반복적 평행법은 두 번째 시구에서 부분적으로 반복되는 진술로 첫 번째 시구를 시작하지만 동의적 평행법에서 그런 것보다는 두 번째 시구가 더 전일보한 의미를 담고 있다.6. 추측양식은 실제로는 매우 정교한 유형의 평행법이다. 이 유형의 평행법에는 s시행의 중간에 한 단어나 한절이 위치해 있어 A 구 와도 또 B 구와도 읽을 수 있고 똑 읽어야 한다.7. 교차 평행법은 매우 정교하고 시행에 중간에 한 단어나 한 절이 위치해 있어 A구와도 또 B구와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추축 양식, 그리고 가장 흥미를 일으키고 자주 접하게 된다문법적 평행법은 관련된 시구(형태론)와 단어의 순서(구문론)상 사용된 발의 부분들 간에 유사점과 차이저점을 도표로 나타내는 것이다. 두 시구 간의 유사점은 각각 하나의 동사, 직접 목적어 및 전치사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시구로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이 시구들을 단 하나의 행으로 함께 읽게 된다.생략법 두 번째 시구에 첫 번째 시구의 일부가 생략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첫 번째 시구 중 생략된 부분은 두 번째 시구를 읽을 때 같이 읽는 것으로 간주된다. 보통 생략되는 것은 동사이다. 이 효과는 두 시구를 더욱 밀접하게 하나로 묶는 것이다.제 8 장 시편의 비유적 표현시편에서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는 이미지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라. 이미지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시편 29편에서 하나님을 거대하고 강력한 검은 구름(비유적 표현임)으로 묘잘 보여 준다.이미지들의 유형 직유와 은유등이 있다. 직유는 ‘과 같이’또는 ‘~처럼’의 단어를 사용하여 명백히 하는 비교하는 것이며 암시적인 비교의 표현인 ‘은유’등이 있다. 은유는 직유보다 더 생생한 이미지를 전달하는데, 그것은 은유가 암시적이고 또 보다 친밀하게 비교를 하기 때문이다.이미지는 어떤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다른 점에서는 다른 두 가지 산물들을 비교하는 역할을 한다. 두 가지 사물 간의 차이점은 우리를 놀라게 하고 따라서 우리에게 주의를 불러 일으킨다. 이미지가 문자 언어만큼 정확하지는 않다는 점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미지는 문자로 한 진술이 그러는 만큼 직접적으로 시편의 진리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이미지는 쉽게 사실의 진술로 바꾸어지지 않는다.정밀은 정확과 다른 것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은유가 문자로 된 문장보다 덜 정밀하면서 도 여전히 틀림이 없을 수가 있다.이미지는 우리의 감정을 휘젓고, 주의를 끌며 또 상상력을 자극하고 우리로 하여금 비교하는 대상에 대해 어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게끔 도와준다.하나님은 문화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분의 백성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말씀하셨다. 고대의 성경 이미지가 의미하는 바를 우리가 이해하려면, 먼저 시편이 본래 만들어진 맨 처음에 그 시편을 우리가 지금 듣는다고 상상을 해야 한다. 또 우리는 그 시편의 맨 처음 독자들이 그 비유적 표현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물어야만 한다. 때론 시편에 신화적인 인유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구약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스라엘 주변 국가의 사람이 만든 신들보다 엄청나게 우월하시다는 점을 나타내는 점을 나타내는 데 기여한다.시편의 배경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은 주석책을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비판적인 자세를 갖고 주석책을 읽어야 한다. 요컨데, 주석책들은 서로 다르며, 따라서 모든 것이 옳을 수는 없다. 하지만, 주석책들은 흔히 구약을 전공하고 근동 지방의 언어와 문학을 아는 학자들이 쓴 것이다.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은유는 정확할 수는 있지만, 문자 언어보다는 덜 정밀하다. 은유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면서도, 하나님의 본성과 존재의 신비를 보존하고 있다.제 3 부 : 시편의 멜로디제 9장 시편98편 : 온땅이여, 우리의 전사이신 여호와를 찬양하라시편 98편이 찬양시라는 것은 그것을 읽어보기만 하면 금방 알 수 있다.제 1 연A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B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C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1절)D 여호와께서 그 구원을 알게 하시며E 그 의를 열방의 목전에F 명백히 나타내셨도다(2절)G 저가 이스라엘 집에 향하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H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3절)제 2 연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할지어다소리를 발하여 즐거이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4절)수금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라수금과 음성으로 찬양할지어다(5절)나팔과 호각으로왕 여호와 앞에 즐거이 소리할지어다(6절)제 3 연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는 다 외칠지어다(7절)여호와 앞에서 큰 물이 박수하며산악이 함께 즐거이 노래할지어다(8절)저가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로다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공평으로 그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9절)이 노래는 하나님 찬양으로 가슴을 터질 듯하게 한다. 분위기도 명백하다.첫 번째 시구에서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요청으로 말 문을연다. 다음 두 시구는 그와 같이 예배하라고 명형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특히 시편 기자는 과거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러 사건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사용되었다. 제 2연을 이루고 있는 다음 세절에서 찬양의 소리는 더욱 커진다. 이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땅이 즐거이 하나님께 소리를 치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것은 떠들썩한 연이다. 이연은 하나님께 찬양에 찬양을 쌓아 올린다. 제 3연에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찬야의 소리는 더욱 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