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이 책은 전체적으로 미국의 퓨리터니즘에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주된 목적은 1600년대 초, 중엽에 걸쳐 뉴잉글랜드에 들어서 퓨리턴 공동체들이 어떻게 세워지고 운영되었는가를 살펴보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다른 식민지들은 해외팽창을 위해 파견된 자들이 세운 것이지만, 뉴잉글랜드의 퓨리턴 사회는 모국을 이탈한 자들이 세운 것이다. 청교도들의 목적은 자신의 신앙을 지켜 나갈 사회, 즉 퓨리턴 공화국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청교도에 의한 이상사회 건설은 곧 벽에 부딪치게 된다. 처음의 굳은 신앙적 결의는 한 세대도 지나기 전에 스스로의 한계와 외부 여건들 때문에 세속화 되어갔다.그들의 ‘아메리카를 퓨리턴 사회로 만들겠다’던 꿈은 ‘미국사회에 삼켜져 버림’으로써 무산되었다. 그러나 처음의 이상에서 멀어졌다고 해도 뉴잉글랜드에서 실험된 청교도 정신과 이상은 미국사회의 밑바닥으로 스며들어 “미국의 정신적 뿌리는 청교도 신앙이다” 등의 말이 하나의 통념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이 책은 청교도들이 뉴잉글랜드에 온 이유와 배경, 신앙적 결단과 삶의 자세, 정착의 노력,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약점과 환경의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는 좌절하고마는 과정들을 아주 쉽고 딱딱하지 않게 설명하듯이 풀어내고 있다. 이제부터 이 책의 내용들을 살펴보기로 하겠다.본론제 1장에서는 청교도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이 아메리카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유럽에서는 청교도 운동의 모태가 된 루터와 캘빈의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편, 유럽대륙이 온통 종교개혁의 회오리에 휩쓸려 있을 때 , 영국에서는 헨리 8세의 종교개혁이 행해지고 있었다. 청교도는 영국의 프로테스탄트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점차 온건한 개혁에서 강경 분리주의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퓨리턴’을 개혁세력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그들 중 분리파 청교도는 결국 조국을 등지게 되었다. 그들의 1차 망명지는 네덜란드였다. 그러나 곧 네덜란드를 떠나 망명의 종착지인 아메리카로 오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주민의 평등권과 자치권 보장에 관하여 아메리카에서 성문화된 최초의 합의문서인 메이플라워 협약서를 채택했다.제 2장 새 보금자리 아메리카에서는 그들의 정착과 시련에 관하여 담고 있다. 새 땅에 발을 딛는 순례부조들은 그들의 안식처 플리머쓰 정착지에서의 원주민과의 만남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고, 풍족한 수확에 감사하는 ‘감사의 날’을 제정해 축제를 벌였다.퓨리턴 정착지로서의 첫걸음은 어려웠다. 그들의 정착 초기의 형편과 정착지를 지키기 위한 노력, 또한 인구증가와 그에 따른 정착지의 삶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면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쯤 되자 플리머쓰의 경쟁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디언들에게 위스키와 총을 무분별하게 흘러들어가게 해 플리머쓰는 메이플을 무력으로 제거하고 모턴을 체포해 영국으로 강제추방 시켰다. 그 후 플리머쓰는 내적 성장과 대외관게를 넓히기 위해 노력했다.퓨리턴 식민지 건설은 본격화되었다. 그 중 종교적 기업인 매사추세츠만 식민지를 들 수 있다. 그들은 식민지 건설을 위해 준비작업을 시작했고 윈쓰럽이 초대 지사로 뽑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윈쓰럽은 새 땅을 찾아 나서는 청교도인들과 함께 드디어 뉴잉글랜드로 오게 된다. 윈쓰럽은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배 위에서 ‘기독교적 사랑의 모형’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한다. 그 설교는 퓨리턴 식민지는 ‘언덕 위의 도시’가 되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들은 새 땅에 도착해서 샤우무트란 지명을 보스턴으로 바꾸었다.제 3장 퓨리턴 식민지의 맏형 매사추세츠에서는 체제정비의 실상과 문제들과 정착지의 확대와 분열의 시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새 정부의 식민지 행정은 교회와 많은 밀접한 관게를 맺고 있었다. 새 교회체제는 회중교회였고 교회와 대학이 설립되었다.보스턴 정착지의 행정체제는 정착지의 일반 행정업무가 초창기에는 교회의 행정업무와 인적, 기능적 측면에서 서로 중복돼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착지와 교회의 규모가 다같이 확대되면서 각자 고유업무도 크게 늘어나, 더 이상, 업무의 통합이 불가능해졌다.매사추세츠 식민지로 건너오는 이주자들이 점점 늘어가면서 토지분양에 따른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계층구조, 사회변화와 관련해 토지문제가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새 정착촌들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새 교역자들이 합류하면서 교회 성장과 신앙분쟁이 문제가 되었다. 가열되는 신앙분위기와 앤 허친슨이 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임으로써 분쟁은 급속히 확산되었다. 교회는 분쟁의 수습에 나섰고 내적 정비에 들어갔다.제 4장 매사추세츠 사회의 갈등과 변화에서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과 영국의 퓨리턴혁명과 매사추세츠에 관해 담고 있다. 매사추세츠는 날이 갈수록 동질성이 약화되 가면서 공동체적 삶의 틀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보스턴의 경우도 다양성의 증대와 동질성의 약화로 사회분해를 야기하고 있었다. 교회와 사회는 점차 두 몸으로 갈라지기 시작했고 점차 물질주의가 움트기 시작했다. 보스턴은 상업의 중심지였고 이러한 경제적 번영은 물질주의를 가져왔다. 그들은 결국 ‘현실’과 ‘이상’을 맞바꿔 버린 것이다.그러한 와중에 분리주의 신앙의 도전이 시작됐다. 불씨는 극단적 분리주의자 로저 윌리엄즈가 당겼다. 많은 이들은 이것이 식민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분리주의 신앙의 목소리는 더욱 격화되었다. 결국 윌리엄즈는 매사추세츠에서 추방당하는 신세가 되었다.잉글랜드와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형제들은 우호관계를 맺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 식민지의 장래를 위해선 모국과 뉴잉글랜드 사이에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643년에는 코네티컷, 뉴해이븐, 플리머쓰 등 소규모 식민지들과 연합하여 뉴잉글랜드동맹을 결성했다.한편, 매사추세츠에서는 신앙의 정체성을 둘러싼 사상논쟁이 일어났다. ‘항의자’들은 개혁을 외쳐댔고 매사추세츠가 안팎에서 몰아붙이는 시련과 싸우고 있던 1649년 3월 26일 한 시대를 마감하며 윈쓰럽이 사망했다. 윈쓰럽 이후의 매사추세츠는 영국의 크롬웰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하기 위해 힘썼고 그 후 청교도 사회의 정체성을 위하여 밀려 들어오는 퀘이커교도들에 대한 조치를 강화시켰다. 잉글랜드는 왕정복고가 이루어졌고 이로써 뉴잉글랜드는 크롬웰의 정치 하에서의 누려온 조건들이 소멸할 위기에 처해졌다. 또한 잉글랜드와의 계속된 불화 끝에 퓨리턴 식민지에서 국왕 직속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제 5장에서는 매사추세츠 이외의 퓨리턴 식민지들인 코네티컷과 로드아일랜드에 관해 설명되어져 있다. 처음에 플리머쓰 식민지에서 온 일부 주민들이 청교도 신앙에 알맞은 환경을 찾아 코네티컷 계곡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윽고 그들은 식민지체제의 정비에 들어갔고 그곳은 농업에 바탕을 둔 자치 식민지가 되었다. 코네티컷은 개인주의 성향과 자율적 삶의식이 뚜렷했으며 법과 정치도 그런 면을 띄고 있었다. 또한 윈쓰럽 2세의 코네티컷 이주로 인해 코네티컷 식민지가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윈쓰럽 2세는 지사로 추대되었으며 뉴헤이븐 식민지를 합병시켰다. 60년대 이후의 코네티컷은 영 제국의 큰 테두리 안에서 제국의 발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평범한 식민지가 되지만 미국의 모든 퓨리턴 공동체들 중에서 가장 ‘청교도적’이었다.로드 아일랜드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안식처라고도 불린다. 로드 아일랜드는 종교적 분쟁의 희생자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정착촌을 세우는 식으로 뿔뿔이 들어서는 정착촌의 형식을 띠게 되었다. 그런데 이 정착촌들은 너무나 개성이 강해서 통합 식민지를 향한 진통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결국 온갖 어려움을 이기고 통합식민지를 완성하게 된다. 허나, 그들은 이상을 지키려는 고집이 너무 완강하여 ‘고집스럽고 괴팍한’ 식민지로 혹평 받게 되었다. 이러한 특징들은 윌리엄즈의 이상주의인 신앙양심의 자유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