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 Marxl인문학부 4학년 9701009 강지연맑스 이전의 헤겔이나 꽁트와 같은 많은 사상가들은 인류의 진보는 개념, 지식 등의 인간정신의 진보에 의한 것이란 점을 그들 사상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맑스는 인간은 생각하는 인간이기 이전에 욕구를 지닌 감각적 존재이며 이러한 인간의 욕구 충족 행위가 최초의 역사적 행위이고, 끊임없는 새로운 욕구 충족 과정의 반복이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그들의 욕구 충족 과정에서 두 가지의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 하나가 자연과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관계이다. 맑스는 전자를 생산력이라고 표현하고 후자를 생산관계라고 표현하고 있다. 생산력이란 말 그대로 노동자의 실제적 노동력과 생산수단, 생산도구 등을 뜻하는 것으로 별다른 상징적 의미 없이 인간의 자연 지배 능력으로 해석된다. 생산관계는 사회적 생산 속에서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맺게 되는 관계로 궁극적으로는 소유관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생산관계의 총화가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며, 경제적 구조는 법, 정치, 문화 등 사회의 다른 영역의 특징을 결정짓는 토대가 된다는 것이 맑스의 생각이다. 그는 경제적 영역을 하부구조, 그 나머지 영역을 상부구조라고 부른다. 하부구조에 의해 상부구조가 결정된다는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상술 할 수 있다. - 인간은 특정한 경제 구조 내에서 소유관계가 이미 결정된 사회에서 태어나고 이러한 소유관계는 상이한 계급을 낳는다. 한 개인이 계급구조 내에서 차지하는 상이한 위치는 서로 다른 계급이해관계를 가져오는데,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그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 계급의 이해 관계를 반영하게 된다. 지배 계급은 물질적인 힘과 동시에 지적인 힘을 지배하므로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이며 법, 정치, 문화등의 상부구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맑스는 그의 후기 저작에서 이런 상부구조는 하부구조의 단순한 반영만은 아니며 상부구조 역시 하부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정하여 이론적 유연성을 구축하기도 하지만 여전치 상부 구조를 결정짓는 궁극적인 요소는 경제적 영역인 하부구조임을 강조한다.맑스에 따르면 생산력이 증대되고 잉여가 창출되기 시작하면서 인류사회가 원시적이고 미분화 상태였던 단계를 벗어나 상이한 이해관계를 갖는 계급들을 산출하는데, 그는 인류의 역사는 이들 간의 계급투쟁의 산물이라는 전제하에 계급에 대한 이론을 구축한다. 또한 맑스의 이론에서 계급이라는 요소는 사회변동을 설명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먼저 그는 희소한 자원과 권력을 소유한 상이한 소유관계 속에서 각 계급의 관계가 어느때나 계급 투쟁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인간들을 자신이 속하여 태어난 계급의 행동양식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나 특정한 역사적 전환기에 이들은 이러한 구속을 없애려는 시도들을 전개하고 또 이러한 특수한 조건하에서 구속의 성격을 바꿀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계급에 속한 성원들이 어떠한 사회적 경험을 통해 자신들의 집합적 운명을 개선시키는 방향으로 행동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특별한 사회적 위치를 점한 사람들이 특별한 사회적 상황으로 확산되면서 그들의 잠재된 공동 이익을 공동의 투쟁을 통해 발현시킴으로서 비로소 즉자적 계급이 대자적 계급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초기 산업사회의 노동자 계급은 임금 경쟁을 하는 개개인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사용주의 착취로 인하여 그들은 공동이익을 인식하며 하나로 결속된다. 이들은 생산 조직내에서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여 공동운명을 공유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대중전달, 다수의 집중, 공동의 적, 그리고 특수한 조직 형태 등의 조건을 갖추어 자의식적 계급이 되는 것이다. 부르죠아 계급은 그들 간의 경쟁적 관계로 인하여 계급이익에 대한 의식을 발전시킬 수가 없다. 그들은 시장과 경쟁적 생산 양식으로 개개인으로 분리되어 자기이익만을 추구한다. 정치적 사회적 영역, 특히 국가는 지배계급이 공동이익을 주장하도록 하는 기능을 담당하지만 이는 경제적 영역에서 노동계급의 계급의식과는 달리 허위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사상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경쟁적 산업양식에 구속된 즉자적 계급인 것이다.맑스는 사회의 변동을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헤겔은 인간 정신의 발달이 정-반-합의 원리, 즉 모순된 정신의 충돌과 조절이 역사를 발전시키며 이에 따라 인간 정신은 단계적으로 진화한다고 주장하면서 변증법적 원리를 발전시킨다. 맑스는 그의 변증법적 입장은 수용하나 역사의 추진력이 신, 정신, 초인적 힘 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필요한 것을 자연으로부터 만들어내어 물질적 생활을 산출하는 행위자체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변증법에 유물론적 관점을 추가한다. 그에 따르면 생산력이 그 발전으로 인해 기존의 생산관계와 모순되어 더 이상 사회를 지탱할 수 없을 때 사회의 변화, 즉 생산관계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새로운 생산력에 대응하는 새로운 생산양식은 구질서 속에서 발전되며 이 새로운 생산원칙을 내세우는 새로운 계급이 새로운 생산력을 더욱 발전시키고 더 나은 발전을 위한 물질적 조건을 만들어낸다. 당시의 시대 상황에 비추어 예를 들자면 생산력이 토지에서 자본으로 이동함에 따라, 기존의 생산관계인 지주-농민관계는 더 이상 새로운 생산력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게 되고 그러한 이유로 부르죠아-프롤레타리아관계가 자리잡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과정에 의해 아시아적 생산양식, 고대적 생산양식, 봉건적 생산양식, 그리고 현대 부르죠아 생산양식이 발전되어왔다고 설명한다.역사가 발전함에 따라 증대된 생산성과 증대된 욕구는 필연적으로 분업을 낳게 된다. 분업의 초기 단계인 성적 분업에서 비롯하여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화 등을 거쳐 그 최종 단계에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분리가 이루어지는데, 맑스에 따르면 이 단계는 노동자는 아무런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않아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고서는 생존을 해 나갈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분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노동은 더 이상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며 생존수단으로 전락해 버리고, 노동자는 자기의 손을 거쳐 생산된 재화를 소유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피할 수 없는 문제점으로 인간의 소외문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는 그가 생산한 대상으로부터, 생산과정으로부터, 그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동료들 공동체로부터 소외된다. 노동에 의해 생산된 생산물은 노동자의 소유물이 아닌 외부적 존재가 되며 분업이 더욱 심화 될수록 그의 창조물은 더욱 그로부터 멀어져간다. 노동의 산물이 소외라면 생산행위 자체는 적극적인 소외를 뜻하므로 노동의 대상으로부터의 소외는 생산과정으로부터의 소외를 뜻한다. 이렇게 생산물과 생산과정으로부터 소외되면 인간은 이제 초기의 인간들이 욕구충족 행위로서 노동을 했던 것과 달리 노동으로부터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자신을 부정하게 된다. 이제 노동을 할 때 노동자는 자신에게 속해 있지 않고 다른 노동자, 기계, 또는 노동의 산물을 최종적으로 소유 하는 자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이 그의 노동과 그의 노동의 산물과 또 그 자신과 맺은 관계에 적용되는 현상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어 결국 인간은 인류공동체로부터 소외되게 된다.
불평등에 대한 견해-기능론과 갈등론 그리고 해결방안현대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견해는 기능론과 갈등론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있다. 기능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든 하위체계가 전체체계의 안정과 균형을 위해 일정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며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 역시 마찬가지라는 주장을 한다. 그들에 따르면 사회의 어떠한 기능은 다른 기능에 비해 중요하며 특정 지식과 기술이 요구된다. 이런 기능은 특정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 사람들만이 당당할 수 있으며, 교육과 훈련 기간에는 경제적 시간적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일단 그 기능을 할 수 있는 지위에 도달하게 되면 사회적 권위와 경제적 이익이라는 유인요소가 존재하게 되므로 어떠한 이들은 기꺼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기능론자들은 이러한 원리로 사회가 발전해 나가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 갈등론적 입장에 서는 사람들은 어떠한 기능이 사회에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정의 자체가 기득권세력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것이며, 가령 노동자의 기능이 경영자의 기능에 비해 덜 중요한 것이라는 허위의식을 기득권의 사회적 중요성에 대한 정의로써 정당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갈등론자들은 기능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사회 불평등이 사회의 안정과 균형, 그리고 발전의 도모하기보다는 계층간의 갈등을 유발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불안정의 유발한다고 반박한다.그렇다면 기능론과 갈등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기능론의 입장은 현대의 자본주의 체제에 들어맞는 매우 그럴듯한 설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사회학자들이 사용한 사회 진화론적 개념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칸트는 그의 저서 역사 철학 에서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조금의 햇빛이라도 더 받기 위해 옆이나 아래가 아닌 위 부분으로 자라며 이러한 경쟁으로 인해 지금의 보기 좋고 울창한 숲을 이루게 되는 것이라는 비유를 통해 인간사회의 경쟁은 사회를 점차적으로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됨을 시사하고 있다. 사실상 기능론자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회 기능들이 중요성의 여부를 떠나서 많은 시간과 경제적 자원, 그리고 보다 결정적으로는 많은 노력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기능과 지위라는 측면에서 그러한 노력을 감수하지 않은 사람에게 비하여 보다 많은 보상을 해 주어야 함은 이치적으로 맞는 것 같아 보인다. 사회적 기능은 그것이 노동이든 경영이든 어느 하나가 빠지면 사회가 유기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점에서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훈련기간을 거치면 숙련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 따라서 쉽게 대체가 가능한 노동력과, 훈련기간이 길고 지식의 습득, 그리고 리더십이라는 자질을 지닌 지녀야 하는 경영자의 기능이 다르다는 사실과 이에 따른 경제적 자원의 차등 배분을 단지 이데올로기적 허위의식으로 인한 기능적 중요성 에 대한 자의적 정의로 인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왜곡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생각된다.불평등에 대한 나의 입장은 그것이 공정한 불평등이라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보다 많은 노력으로 희소하고 가치가 높은 기능을 수행한다면 그에게는 보다 많은 보상을 부여해야한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나의 관점에서는 가치가 높은 기능에 대한 정의는 기능론과 갈등론의 논쟁에서의 중요한 기능 에 대한 그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에 사회적 합의와 동의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갈등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적 지위가 개인 노력 여하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고 세습되는 경향이 크다면 사회적 동의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 사회의 불평등은 분명히 역기능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또한 그러한 높은 가치의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보다 더 많은 부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공정한 불평등이 아니며 보다 희소성이 낮은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들로부터의 착취로 이루어진 대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불평등이 공정하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와 많은 부를 얻기 위해 노력할 기회와 조건이 사회 구성원에게 동등하게 부여되어야 하며, 각자 자신의 노력에 대한 공정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럴 때에만 기능의 차이에 대한 경제적 자원의 차등 분배가 공정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Emile Durkheim뒤르껭은 사회현상을 연구함에 있어 환원론을 배제하고 사회를 그 자체가 하나의 실체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야하며, 사회학은 사회적 사실로써의 사회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현상은 심리학이나 생물학의 수준에 입각하여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는 개개인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곧 소멸하는 개개인보다 오랜시간 존재한다. 또한 그것은 개인에 외재해 있고, 개인의 욕구와 성향을 조절하는 강제적인 힘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사회현상이란 그 사회를 이루는 개개행위자의 속성으로는 설명될 수 없으며, 사회현상의 원인은 그것에 선행하는 다른 사회적 사실들 가운데서 찾아야 한다. 즉 그 사회현상을 출현시키고 움직이게 하는 사회적인 힘이나 역사적인 힘으로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다.그의 사회연구에 대한 방법론은 뒤르껭 자신의 자살에 대한 연구에 잘 나타나있다. 그는 자살의 원인을 개인의 심리적 상태로부터 찾으려하기 보다는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이나 구조의 성격과 관련하여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가 연구한 자살의 유형은 이기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이타적 자살, 그리고 숙명적 자살로 구분된다. 그가 사회구조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한 유형은 전자의 두 가지이다. 이기적 자살이란 개인이 동료들과의 유대감이 약화되고 자신의 욕망에만 내맡겨지게 될 때 일으키는 것이다. 반면 아노미적 자살은 개인의 행위를 규제하던 규범이 약해지면 그 사회 구성원들은 전체적인 무규범 상태에 빠지게 되는 때에 나타나는 자살 유형이다. 그의 자살의 유형화에 대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각 사회의 자살률의 차이를 설명함에 있어 개개 성원의 심리적 특성이나 동기보다는 그 집단의 성격과 성원들간의 응집력, 연대감등을 불러일으키는 그 집단 나름의 특징과 구조자체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뒤르껭 이전에 사회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꽁트가 사회학의 연구 방법에 자연과학적 연구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그것이 피상적 수준에 미치는 반면, 뒤르껭은 과학적 연구 방법을 사회현상을 연구하는데 매우 적절하게 변형시켜 실제로 그것을 정립하고 사용하였다. 그의 과학적 방법론은 실증주의에 입각해 있다. 사회현상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 유기체내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의 원인을 분석하여야 하고 그 다양한 현상이 사회에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이때 사회현상의 원인분석은 어째서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 항목 이 그 사회 내에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도록 하였는지 명확히 보여야 하는데 이는 그가 사용한 실증적 방법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의 실증적 방법을 간단히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한 사회는 a,b,c,d,e 라는 특징을 지니며 어떠한 연구(조사) 후 X라는 결과를 보인다. 그리고 또 다른 사회는 a,b,c,d,f 라는 특징을 보이며 X라는 결과를 나타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X라는 사회현상은 e라는 사회의 구조적 특성에 기인하여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실증주의적 연구방법은 각 사회의 다양성과 차이를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으며 여러 구조를 비교 분석 할 수 있는 잇점을 제공한다.그의 전 저작에 있어 나타나는 일관된 문제의식은 사회질서와 무질서의 요인 그리고 사회의 규제력 유무를 결정짓는 힘에 관한 것이다. 사회가 강하게 통합되어 있을 때 사회는 개개인을 자신의 통제하에 지배한다 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한 요인으로 사회통합을 제시한다. 사회 통합의 주된 요소는 가치통합의 정도와 사회성원들간의 상호작용의 정도이다. 가치통합의 정도란 가치나 신념에 대한 성원들의 공유정도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는 집합체에서는 탈선적 행동이 적게 나타나며 개인이 불안과 좌절을 덜 느낀다. 사회성원의 상호작용은 분화되어있으나 상보적인 업무에 매여있는 노동행위가 노동자들을 그 노동집단에 결속시키는 것 등을 말한다. 뒤르껭은 가치통합의 정도를 기계적 연대로, 그리고 구조적 통합인 상호작용의 정도를 유기적 연대로 설명한다. 기계적 연대는 전통사회의 통합에 기여하는 것으로 사회의 모든 성원에게 공통된 사상이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며 개성, 즉 개인적인 차이가 극소화되는 곳에서 나타난다. 유기적 연대는 현대사회를 통합시키는 특성으로 사회내의 기능의 분화와 성원간의 차이점이 증대되면서 각 개별적 요소간의 상호 연관성과 의존성이 높아져 사회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을 말한다. 뒤르껭은 그의 초기 저작에서는 현대사회에서는 유기적인 연대의 점진적 증대로 공통의 신념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고 서술하지만 후에 그는 이러한 견해를 수정하여 유기적 연대를 지닌 체계라도 그것이 상호 적대적이고 이기적인 개인들이 모임으로 분열되지 않기 위해서는 여전히 공통의 신념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뒤르껭은 스펜서의 기능주의적 접근을 발전시켜 종교현상이나 범죄행위, 분업의 사회적 영향, 가족의 권위구조에 있어서의 변화가 사회에 미친 영향 등을 연구함에 있어 기능적 분석을 행한다. 그는 사회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현상을 산출해낸 유효한 원인과 그것이 충족시키려고 하는 기능을 각각 찾아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역사적 원인의 연구 뿐 아니라 사회 질서 확립에 있어서의 그것의 기능을 보여주는 것이 사회학자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는 모든 사회 현상이 사회에 긍정적 기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예를 들어 탈선과 범죄를 논의함에 있어서도 그것은 사회의 신축성과 변화에 대한 개방성에 도움을 주며, 보다 중요하게는 규범의 위반에 대한 집합감정을 불러일으켜 범죄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설명한다. 그의 종교사회학 역시 기능주의적 관점을 반영한다. 그는 종교를 개인 의식속에 내재화된 통제력으로써 그리고 사회질서를 지탱해주는 매카니즘으로써 연구하였다. 그에 따르면 종교는 사회에 의해 창조되며 동시에 사회를 창조한다. 종교는 그 자체의 깊이의 상징적 자기 명시로서의 공동체에 의해 창조되며 대신에 종교는 공동체를 창조한다. 즉 그것은 공통된 가치들 가운데에서 그 구성원들을 확증하고, 새로운 세대를 살아있는 전통에로 인도하고 전체 공동체를 그 역사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높은 이상들과 만나게 하며 그리하여 사회변동과 갱신의 추진력으로 작용한다. 그리하여 종교는 사회의 통합하는 힘이 되어왔다고 뒤르껭은 주장하고 있다. 뒤르껭의 말대로 종교가 본질상 사회의 힘들에 대한 초월적인 표상이라면 전통종교의 사라짐이 사회의 붕괴의 전령일 필요는 없다. 이제 현대인들에게 요구되는 유일한 것은 전에는 그들이 종교적 표상의 수단을 통해서만 인식해 왔던 사회에의 의존성을 직접 깨닫는 일이다. 해체되는 사회에 대한 도덕적 일체감을 마련하는 데 관심을 갖고 그는 사회때문에 우리는 우리라는 인식에 근거한 시민적 도덕성에로 연합하라고 사람들에게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