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관리 논문 요약 및 발표스웨덴 여성 지체 장애인을 위한 주택 개조 사례연구◎ 논문 출처 : 한국가정관리학회지 제 19 권 5호 115~128, 2001◎ 논문 저자 : 시립인천대학교 생활자원관리학과 교수 최재순시립인천대학교 생활자원관리학과 강사 이의정◎ 목차 : Ⅰ. 서론 Ⅱ. 스웨덴의 장애인을 위한 주택 정책Ⅲ. 연구 방법 Ⅳ. 사례조사 결과Ⅴ. 결론 및 제언 Ⅵ. 논문 평 및 후기Ⅰ. 서론현대에는 과거와 달리 선천적 장애보다는 대부분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는 경우가 많다. 이 중 지체장애인의 비율이 가장 높으며, 이들은 생활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고 활동반경이 좁아지게 되어 결국에는 자신이 사는 주택 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되며, 환경에 크게 의존하게 되는데, 주거 환경이 이들의 생활을 최대한 지원해 준다면 최소의 보살핌으로 안전하게 자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다.그러나 대부분의 주택은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지어졌으며, 장애인들이 생활하기에는 많은 안전사고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로 인해, 장애인들은 자신들의 주거 환경 내에서도 안전하지 못하며 편리하고 자립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어 자립심과 자긍심 등 심리적인 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여성 지체장애인의 경우, 가정 내에서 가사활동 등의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남성 지체장애인들보다 더 많은 어려움과 문제점에 봉착하게 되며, 안전 사고에 더욱 많이 노출되어 있다.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인해 친숙한 주거 및 주변환경과 이웃관계를 떠나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곳으로의 이동은 심리적, 정신적 부담감뿐만 아니라 경제적 손실이 크다. 그러므로 장애인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자신의 현 주거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택을 개조해 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다.Ⅱ. 스웨덴의 장애인을 위한 주택 정책스웨덴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완벽한 사회보장 제도를 갖춘 나라이다. "모두의 참여와 평등성"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물리적인 환경이 모두에게 접근 가하도록 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동일한 장애라도 주거 환경이 달라지면 장애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1. 복지 정책1994년 7월 1일에 장애인 관련 민원조사 사무국이라는 지역 자치부가 설립되어 장애인의 권리와 이익에 관련된 이슈들을 모니터하고 장애인의 참여와 평등성에 대한 방해물이 있는지 또는 이를 제거할 수 있는지를 책임지고 있다.2. 장애 관련 법규지역 자치부는 주택 개조 보조금을 담당하는 등 행정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주택 개조를 장려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이 활동에 필요한 공간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홈 헬퍼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 역시 고려하여 개조해야 함을 언급하고 있다.3. 주거 환경 조건주택 정책에서 "노인과 아무리 중증의 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일지라도 그들이 원하면 자기 집에서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제정하여 현실적으로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 일반적인 주거 환경이 질 높은 수준의 서비스와 접근성이 갖추어져야한다는 방침으로 전환되었다.4. 지역 사회 서비스모든 지역 자치부는 주택에서 생활하는 장애인과 노인을 위해 잘 조직화된 홈 헬프 서비스) 홈 헬프 : 장애인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원치 않고 자신의 주택에 계속 살길 원한다면 이를 위해 개인의 생리 위생, 청소, 요리, 쇼핑, 의류 구입, 개인적 보호 등과 같이, 생활하고 있는 주택에서 일상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행위 및 일 등을 도와주는 서비스이다.를 운영하고 있다. 비용은 수입이 없는 경우 면제되기도 한다.5. 장애인을 위한 주택 계획시 주요 사항장애 없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주택 계획 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다. 무장애 공간에서 장애인들은 안전하게 독립적으로 일상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1) 일반적 사항① 바닥 : 높이 차를 두지 않도록 하며, 단차 제거가 용이하지 않은 곳에서는 경사로를 두고 기울기는 1/12로 한다. 이때 경사면에는 미끄럼방지 시설이 되어 있어야한다.② 문 : 휠체어가 통과할 수 있도록 80cm 이상으로 다.③ 조작기 : 실내 바닥에서 40cm - 120cm 범위 안에 설치한다.2) 침실침대 높이는 휠체어와 동일한 높이에 두는 것이 좋으며 주위에 휠체어 접근 및 회전을 위한 여유공간인 75-90cm을 두어야 한다.3) 욕실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바닥의 단차를 없앤다. 미끄러지지 않는 재료로 바닥재를 마감하고, 세면대 주변에도 휠체어를 위한 여유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거울은 경사 각도 조절이 가능한 것을 설치하여 조작이 용이하도록 한다. 욕조대신 샤워 공간을 설치하는 것이 좋으며 변기 역시 휠체어에서 변기로의 이동이 용이하도록 높이가 높은 것이 좋다.4) 부엌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회전할 수 있는 충분한 바닥면적(지름 140-150cm)를 확보하여야 하며, 무릎 공간도 확보해야 한다. 높이 조절이 가능한 상.하부 수납장을 설치하고 개수대는 잡아 당겨 쓸 수 있는 호스식을 설치하는 것이 좋다.Ⅲ. 연구 방법스웨덴 거주 여성 지체장애인의 주택을 방문하여, 평면도 등으로 물리적 환경 실태를 파악하고, 심층적인 분석을 위해 개조 사항들에 관한 내용을 알아보고 면접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였다.Ⅳ. 사례조사 결과1. 사례 연구 조사 대상자지체장애인으로 진행성 근무력증의 증세를 나타내고 있는 여성이었으며, 홈헬퍼의 도움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전동 이동기구를 사용하고 있었다.2. 개조 전 주택 상황도로에서 현관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현관 앞 포치까지 올라가야 하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현관 홀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1,2층으로의 수직이동은 계단을 통해서만 가능하였으며, 각 실에는 문턱이 있었다.3. 개조 후 주택 상황개조는 기본적으로 실내 및 실외의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조사대상자의 수입이 없었으므로 정부 및 지방 자치부의 지원으로 행해졌다.1) 현관접근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현관에 경사로를 설치하였다. 경사는 완만하게 하고, 이탈에 의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목재로 핸드레일을 설치하였다. 현관문 앞은 충분한 휠체어 여유공간을 확하였다.2) 현관홀낮은 높이의 탁자 위에 전화기와 인터폰이 위치하고 있어 현관까지 가지 않아도 방문객과 쉽게 통화하고 문을 열 수 있도록 되어 있고, 거울 역시 낮은 위치까지 내려와 있어 서서 혹은 이동기구에 앉아서도 외출 등 필요한 때에 거울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3) 거실휠체어를 위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였고, 거실의 벽시계는 조사대상자의 눈높이에 맞추었으며, 소파 옆의 조명 기구 역시 눈부심을 방지하기 위해 높이를 낮추었다.4) 바닥문턱 등이 없이 평평하게 하고 목재로 마감하여 이동기구가 쉽게 이동할 수 있게 하였다.5) 침실리모콘으로 각도 조절이 용이한 침대를 설치하였고, 침대에 누워서 시계를 볼 수 있도록 침대 머리맡 위에서 투영되어 반대쪽 벽에 시계가 나타나는 장치도 되어 있었다.6) 부엌높이 조절이 가능한 개수대 및 조리대, 작업대로 개조하였으며, 휠체어 회전공간등 충분한 바닥공간을 확보하고 상부 수납장 역시 하부 작업대와 같이 높이 조절이 가능하도록 개조되었다.개수대 밑 공간은 휠체어 접근이 가능하도록 무릎공간을 확보하였으며 , 개수대의 깊이는 깊지 않아 휠체어에 앉아서도 몸을 앞으로 굽히지 않고 쉽게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수납장의 손잡는 큰 'ㄷ'모양으로 하여 손의 힘이 없을 때 손바닥을 끼워서 열 수 있도록 하여 쉽게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했다.상부 수납장 바닥부분에는 통조림 제품을 열 수 있는 자동 캔 오프너도 부착되어 있었으며 하부 작업대 상판 밑에 잡아 당기면 나오는 작업대로 이용할 수 있는 서랍형 작업대가 설치되었다.전자레인지에서 뜨거운 그릇 등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여유 공간을 작업면에 설치하여 안전을 기하였다.7) 욕실단차를 없애 접근성을 높였고 휠체어를 위한 충분한 바닥 공간을 확보하였다. 세면대는 넓고 앞이 오목하여 휠체어 사용자를 배려하였다. 세면대와 변기 사이에는 접이식 안전 손잡이를 설치하여 변기 이용시 안전 손잡이를 사용할 수 잇도록 하였으며, 필요에 따라 접을 수 있으므로 안전 손잡이로 인한 휠체어의 접근을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샤워기 역시 높이 조절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세면대 앞 거울은 경사 각도 조절이 가능하여 휠체어에 앉아 거울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8) 2층 침실경사로를 설치하여 발코니 공간 이용시 이동이 가능하도록 하였다.9) 실내 엘리베이터조작 버튼들과 인터폰, 안전 손잡이들은 모두 휠체어에 앉아서도 조작이 용이한 높이에 설치되었다. 또한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기 위해 문 앞까지 가지 않아도 천장을 통하여 문과 연결된 줄을 잡아당기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10) 실외 공간(정원)정원의 꽃과 나무들의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정원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 휠체어 통행이 가능한 바닥면과 경사로를 두어 개인 정원을 모두 둘러 볼 수 있도록 하였다.11) 작업실헤드폰으로 전화기가 설치되어 있으며, 컴퓨터 등의 첨단 통신장비가 비치되어 있다.Ⅴ. 결론 및 제언사례 조사 대상인 스웨덴의 여성 지체 장애인은 근무력증이 진행되고 있는 중증의 지체 장애인이었으나, 친숙한 주거와 주변 환경에서 계속 살기 위해 장애인전용 시설 등의 새로운 거주지로 이동하지 않고 공적 제도를 이용한 주택 개조와 홈 헬프 서비스를 받으며 친숙한 현 주거 환경에서 일상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무엇보다도 독립적인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조가 진행되었으며 이는 주택 내에만 국한되어 개조가 행해지지 않았다. 즉 정원 가꾸기 등도 할 수 있도록 정원으로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경사로를 설치하는 등 지역 사회 및 이웃과의 계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외출을 위해서 혹은 장보기 등의 활동을 위해, 자신의 집 뿐만 아니라 외부 건물로의 접근성을 위해 휴대할 수 있는 경사로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이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었다.장애인들이 자신의 주택에서 원하는 만큼 안전하게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주택 내부 공간 개조와 보조기구, 관련 설비의 교체 보완의 다양성을 연구 결과 알게되다.
무신 정권기의 국왕과 문신《 목 차 》 Ⅰ. 序論 Ⅱ. 국왕의 권위 Ⅲ. 무신정권과 문신 Ⅵ. 최씨정권과 문신 Ⅴ. 무신정권기 문신의 정치의식과 그 성향 Ⅵ. 結論Ⅰ. 序 論高麗 毅宗 24년(1170)에 발생한 武人政變을 계기로 고려사회가 크게 변모한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무인정변과 무인집권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연구성과도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이 당시 사회의 주도세력은 文士에서 武人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루어진 연구에는 주로 무인에게 중점을 둔 것이 많았다. 그런데 근래에는 문사를 중심으로 고찰한 연구가 나오고 있어 이 분야의 연구에 새로운 진전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과제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 본 것은 다음의 이유 때문이었다.무인집권기라고 해서 국왕과 문사의 존재가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무인집권자의 필용 따른 등용이기는 하였지만 국왕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으며, 문신의 수도 적지 않았다. 관직에 있지 않았더라도 문인의 입장을 고수하던 인물도 상당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곧 고려사회의 지식층이었다. 그러므로 정치적·사회적 지위가 약해졌다고는 하나, 당시의 국왕과 문사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줄 것으로 생각된다. 또 한가지는, 국왕과 문신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며 고려를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인정변을 전후한 국왕과 문사들의 상황은 어떠하였으며, 무신 집권자들이 교체되는 전권의 변동이 그들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지에 따라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이와 아울러 무인정권 하에서의 문사들은 어떠한 특수성 내지는 성격을 띠게 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 시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하였다.Ⅱ. 국왕의 권위1. 중방 정치와 국왕고려의 전통적인 右文政策에 따른 武班에 대한 차별대우, 일반군인들의 불평불만 그리고 의종의 失政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마침내 武臣亂이 발발하였다. 그러나 무신란은 무신들의 상승된 지위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무력의 핵심을 이루는 일반군인들이 전적으니 지금 그대가 앞사람의 실패한 자취를 따라 하는 일이 옳겠는가'라 하였다.) 《高麗史節要》 권 13, 명종 27년 10월위의 글은 최충헌이 최충수가 그의 딸을 태자비로 들이려 하는 것을 반대하여 설득하는 내용의 글이다. 이것은 무신집정자가 아직 전통적 신분사회에 대한 잠재의식을 떨쳐버리지 못하였다는 것이 되며, 또한 왕실의 권위를 배경으로 하여 권력투쟁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게 해 주는 기록이기도 하다.박진재가 말하기를 '鎭과 旼이 모두 왕이 될만하나 금나라에서 진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니 만일 진을 왕으로 세운다면 저들이 왕위를 찬탈하였다고 할 것이니 민을 세우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의종의 옛일처럼 아우에게 왕위를 전했다는 것으로서 금나라에 알린다면 후환이 없을 것입니다'라 하니 의논이 이에 정하여졌다.) 《高麗史節要》 권 13, 명종 27년 9월또한, 위의 글은 명종의 후계자 선정문제를 두고 일어난 그의 형제간 정치적 대립 속에서 나타난 발언으로 새 왕을 세우는데 있어서 독재정권인 최씨정권 조차도 금나라를 크게 의식하고 있었던 것을 확인시켜 주는 하나의 실례가 된다.최충헌이 죽은 후 그의 뒤를 이은 崔瑀는 능숙한 정치적 수완으로 그의 부친이 구축해 놓은 권력적 기반 위에 왕실의 권위를 배경으로 그의 정권을 한층 더 공고히 하였다.최우가 집권할 무렵 동아시아의 정세는 몽고족의 강성으로 한층 더 긴박감이 감돌게 되었고, 만주에서 금의 쇠망과 함께 고려는 대몽 항쟁의 시련기로 접어들게 된다. 특히 몽고 침략에 접한 최우 정권은 단호한 항전을 결의하고 고종 19년에 江華 遷都를 단행하여 대처하였으며, 국왕을 앞세워 대몽 교섭에 임하는 한편 국내의 강화 여론을 무마하였다.최씨정권이 존립하기 위하여는 대몽항쟁이 불가피하였던 것으로 몽고와의 강화는 최씨정권의 지위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결국 최씨정권의 몰락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은 최우 자신도 모를 리가 없었다. 최우가 조직한 三別抄는 都房과 더불어 최씨정권의 군사적 지주로서 대외적인 시련기를 맞이하여 대몽 항쟁의 핵심文士에 대한 회유책으로 書房을 두어 운영한 것이 그것이다.Ⅲ. 무신정권과 문신고려 중엽인 의종 24년(1170) 무신란의 발발로 무신들이 정치의 주도세력으로 등장하여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무신정권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무신들만이 정권에 참여한 것은 아니고 많은 문신이 관직에 등용되어 무신정권에 협력하였다. 지금까지 무신집권기의 문신에 대해 연구된 바에 의하면 무신정권기는 초기 무신정권기와 최씨정권기로 구분되었고, 문신들은 은거한 경우와 정권에서 소외된 경우 그리고 정권에 참여한 인물 등으로 나누어 검토되었다. 이는 연구시기와 범위를 압축하여 文臣像 규명에 큰 학문적 성과를 이룩하기는 하였으나 모든 문신에 대한 총체적 이해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여기에서는 기왕의 연구업적을 참조·종합하면서 무신정권기를 초기 무신정권과 최씨정권으로 나누고, 무신란 이후 모든 문신의 동향과 정치활동을 살펴보고 최씨 정권의 문신정책의 실상을 추구하고, 문신) 文臣 : 文人·文士·文班·儒者 등을 포괄하여 편의상 지칭, 무신세력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으로 사용들의 역할과 정치적인 지위에 관하여 검토한 다음 문신의 정치의식과 그 성향을 살피고자 한다.1. 무신란과 문신의 동향의종 24년(1170) 경인 8월에 무신들이 봉기하면서 문신들은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수난을 당한다.이는 명종 3년(1173) 계사 8월의 金甫當의 亂과 더불어 일어난 문신의 대학살로 이로 인해, 고려 전기 문신 주임의 정치체제는 종언을 고하고 무신정권기가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의종은 폐출되고 王弟인 명종이 새 국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무신 폭거의 와중에서 문신들이 전멸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살육된 문신보다는 화를 면한 문신의 수가 더 많았던 것 같다.) 《高麗武臣政權硏究》(성균과내 출판부, 1990)문종 때 책정된 文臣數 532명, 吏屬數 1,165명 이상 모두 합하여 文臣系列數 약 1,700 명 이상의 규모 가운데 武臣亂으로 살해된 수는 주로 문신을 비롯하여 宦宮을 포함 150 명 내외가 된다고 한다》 권 11, 의종 24년 9월명종 즉위년(1170) 9월 문극겸에 의해 단행된 문신들의 인사 발령을 통해 실제 정치활동 사항을 살펴보겠다.任克忠은 당시 인사에서 중서시랑평장사로 임명되었는데, 이는 정중부가 받은 參知政事보다 높은 관직이었다.文克謙은 在正言으로 재직할 때 환관의 부정을 논란·배척하여 그 충직함이 무장에게 알려졌던 까닭으로 화를 면하였고, 또한 집권세력과 인척관계를 맺어 그 일족이 모두 화를 면한 문신이었다. 명종이 즉위한 후 이의방의 추천으로 右承宣·御史中丞에 임명되었다. 이후에도 안정된 지위를 누리다 문신으로서 최초로 상장군이 되었는데,) 《高麗史》 권 103, 列傳 16이러한 문신의 고위 무반직의 겸임은 정치적 실력자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였다.庾應圭는 명종 즉위 후 金에 파견되어 명종 옹립을 정당화시키는 큰 임무를 완수하고 문신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다른 문신들보다 의연하게 무신정권에 대처하면서 工部侍郞까지 승진하였다.) 《高麗史》 권 99, 열전 12尹鱗瞻은 명종 때에 守太師門下侍郞까지 올라갈 수 있었고 무반직인 상장군을 겸대하였다.) 《高麗史節要》 권 12, 명종 원년 9월.金莘尹은 젊은 문신들과 함께 상소하여 의종 때 환관의 告身에 대한 탄핵을 욕하고 이의방의 형과 이의방과 인척관계였던 문극겸의 겸직의 해임을 요구한 바 있다. 이는 이의방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어, 좌천되기도 하였으나 무신란 직후 등용되어 관직을 받고 同知貢擧로서도 활동하였다.이응초도 김신윤과의 상소사건으로 좌천되었으나 명종 8년 우간의대부로서 동지공거가 되었고, 경대승집권기인 명종 10년에는 지추밀원사가 되었다.김보당은 난 후 우간의대부가 되었으나 위의 상소사건으로 공부시랑으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곧 복직이 되고, 명종 3년 동북면병마사·간의대부로서 무신정권의 타도와 의종복위를 표방하면서 거병하였다. 그는 무신정권에 등용되어 활동하였으나 무신에 반감이 쌓여 정치성을 띤 反武臣亂을 일으켰다. 당시 문신들의 무신에 대한 반항이 상당히 컸음을 알 수 있다.또한 무신란 때 화에 비교적 좋은 가문 배경을 지닌 문신들과 교섭을 가졌고 이들 고위문신들이 측근으로 들어섰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충헌은 친분관계를 가졌던 문신들을 고위관직에 등용하였고, 이들은 최충헌정권에 깊이 간여하여 신왕 옹립과 같은 일에 적극 협력하였던 것이다. 최충헌은 비단 등용문신들에게 뿐 아니라 정권에서 외면당하고 있던 문인들에게도 관직을 제수하였다.최씨정권에 의해 발탁된 이들 문신은 모두 과거 합격자였다. 그러나 이들 문신은 반드시 최씨정권과 밀착된 측근문신의 천거가 있어야만 발탁되었다.琴義는 최충헌이 집권하면서 문사를 구할 때 천거되어 발탁되었고 그 후 최충헌에게 아첨하여 華要職을 역임하였다.) 《高麗史》 권 102, 列傳이후 그는 최충헌의 가장 신임받는 측근 문신이 되었다.명종 20년에 급제한 이규보는 조영인·임유·최당·최선 등 재상에 의해 천거되었다. 그러나 사환이 이루어지지 못하다 최충헌의 저택에 초청 받아 시를 지은 것과 최충헌이 새로 마련한 정자에서 지은 기문이 제일로 뽑히는 것이 계기가 되어 다시 발탁되었다.최자는 이규보의 천거로 최우에게 발탁되었다. 이처럼 금의·이규보·최자 등 과거에 합격한 문신들은 출신에 관계없이 최씨정권과 밀착된 측근문신들의 천거로 발탁되어 출세가 보장되었던 것이다.앞서 살핀 바와 같이 최충헌은 집권하자 문사를 구하였다. 최우도 마찬가지로 문사를 구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최우가 구한 문사는 주로 寒士로 최우는 이들을 발탁하여 인망을 얻었던 것이다. 이들은 대체로 한미하였으나 문장은 탁월한 이물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한미한 가문출신의 과거합격자가 최씨정권에 발탁되려면 그들의 座主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들 좌주는 최씨와 친밀한 측근 문신이었기 때문이다.이리하여 최씨를 중심으로 恩門·門生의 상하관계의 계열화가 강화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최충헌정권기의 과거에서 좌주는 임유·최선·금의·이계장 등이 주축이 되었는데, 이들은 최충헌의 측근 문신이었다. 죄주와 문생은 매우 가까웠을 뿐 아니라 정치적 유대를 지닌 엄격한 상하관계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