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 손창섭 -줄기차게 내리 붓는 빗속의 아슬한 폐가를 생각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귀신이나 행려병자가 나올 것같이 음산하고 께름칙하다. 게다가 그 비가 40일이나 내린다면 눅눅하고 불쾌하기까지 하다. 소설 에서 이 폐가와 장마의 이미지는 소설 전체를 휘감는다. 그리고 소설의 배경이 전쟁 직후라는 것에서, 기분이 좋지 않은 긴 장마가 하루도 맑은 날이 없던 시대를 뜻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그래서 소설의 시말은 참혹하고 황폐하다. 소설의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동욱, 동옥 남매를 생각하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무거워 지는 원구는 소설의 마지막까지 무거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리고 동욱, 동옥 남매의 마지막은 처참함을 예상케 한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가 주는 압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쟁이라는 큰 역사적 상황은 개개인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쟁으로 월남하기 전, 그들의 삶은 온전했다. 동욱은 영문학을 전공한 엘리트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며 몇몇 교회에서 다년간 찬양대 지도를 했다. 동옥은 그림을 좋아하는 감수성 예민한 아이였다. 원구의 기억 속에 그녀는 ‘중중 때때중 바랑 메고 어디 가나’를 부르며 오빠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귀여운 동생이었다. 그들은 어쩌면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누리며 살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자 그들의 처지는 달라졌다.부산의 어느 마을로 월남한 남매는, 궁핍하고 희망 없는 삶을 살게 된다. 단벌에 우스꽝스런 구두를 신은 동욱의 행색은 언제나 꾀죄죄하다. 대학에서 배운 영문학은 미군들에게 초상화 주문을 받을 때밖엔 쓸모가 없고 그의 트여있던 미래는 불안해진다. 그는 현실과 이상에서 방황하고 자조하게 된다. 그리고 동생 동옥을 끔찍이 사랑하면서도 욕설을 퍼붓고 미워한다. 그는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것이다. 동옥은 전쟁으로 한쪽 다리가 불편해진다. 그래서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조소하고 멸시한다고 생각한다. 원구를 처음 본 날에도 그녀절절하다 싶을 정도로 서정적이며 주관적인 문체를 보인다. 추은주의 몸은 죽어가는 아내와 오줌을 빼내지 못하는 자신의 몸과 대비되어 더욱 극명한 효과를 나타내 준다. 추은주의 ‘햇빛처럼 완연한’, ‘스스로 자족해 보이는’ 몸은 화자에게 선망과 경이를 불러일으킨다. 그렇다고 그는 추은주를 욕망의 대상으로 보진 않는다. 노화한 자신에게 추은주는 만질 수 없는 풍문이다. 또한 ‘완연한 육체’에 대한 갈망은 지나버린 세월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그러나 극명히 대비되는 두 여자는 결국 한 여자의 일생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딸이 아내의 그 메마른 곳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내에게도 추은주처럼 분명 젊고 아름다웠던 한 때가 있었다. 그에게 추은주의 산도는 아기의 입 속 같이 깊고 어둡고 젖어 있다. 추은주의 산도는 죽어가고 메말라 붙은 아내의 산도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까만색과 분홍색, 메마름과 젖음으로 대비되는, 그것은 늙음과 젊음의 대비이며, 죽음과 생명의 처연한 대비이다. 아내의 몸은 더 이상 생명을 잉태할 수 없으며 죽음을 향해 있고, 추은주의 몸은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젊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젊음도 언젠가는 늙고 병들 것이며,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죽기 전까지 애착으로 가득하지만 결국 삶은 그렇게 허무한 것인가. 마지막에 있어선 가진 것을 모두 주어야 하는, 아니면 뺏기는 듯하다.작품의 마지막, 아내는 화장되었고, 추은주는 회사를 사직했다. 그리고 아내가 키우던 보리는 수의사에 의해서 안락사 되었다. 그는 비뇨기과에 들러 방광의 오줌을 빼냈고 장례기간 내내 결정하지 못하고 있던 광고 컨셉을 가벼워진다 로 결정한다. 그리고 깊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어차피 삶의 굴레는 벗어 날 수 없다는 생각에 그가 자신이 결정한 광고카피처럼 가벼워졌는지는 모르겠다. 질긴 애착으로 덤벼드는 생의 결말엔 오줌을 빼낸 방광처럼 허허롭지 않을까.강 - 서정인 -소설 에는 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실용적인 옷차림의 초등학교 선생 박씨, 멋 부다. 그에게 버스가 출발하는 것은 차장이 “오라이”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장이 “오라이”를 했기 때문에 운전수가 차를 출발시킨 것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들의 길을 안내하고 지시하는 차장은 곰 같은 여린 여자고 그들의 길을 움직여 주는 사람인 운전사는 시간도 지키지 않는 뻔뻔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 그저 슬쩍 비꼬는 것이 고작이다. 마치 우리가 건드릴 수 없는 인생이란 운전사에게 농락당하듯. 운명의 놀음에 이리저리 치이다가 삶에게 소용없는 욕설을 퍼붓듯.버스라는 세계에서 운전사라는 신의 뜻에 의해 움직여지던 남자들은 드디어 군하리에 도착한다. 그들은 버스에서 내리면서 내리지 않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여긴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버스에 타 있을 때는 자기들이 내리는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의 말대로 단지 볼일이 있거나 없기 때문에 내리거나 내리지 않는 것뿐인데. 낯섦과 낯익음도 자신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에 생기는 본질의 껍데기 중 하나인가보다.지나가는 남자에게 길을 묻는다. 율평이 밤평이고 석촌이 돌촌이 듯 본질은 같은데 단지 수식어만 다를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수식어-이름에 집착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이름에서 찾는다. 본질에 이름이 붙여지는 것이 아니고 이름에 본질을 맞추려는 사람들의 모습. 그 무의미함은 그들의 말장난 같은 대화를 통해 더욱 두드러진다.여인은 풍만하다. 그녀에게 집은 사는 곳일 뿐, 그곳이 인천이건 군하리건 상관없다. 그냥 엄마랑 언니랑 사는 곳일 뿐이다. 그녀는 박씨의 억누름도 참고, 이씨의 수작도 받아준다. 벗어버리지 못한 몸의 껍데기가-옷 때문에 답답해하는 김씨의 옷을 벗기고 이부자리를 돌봐 주는 여자. 그녀는 김씨와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이 시간 그의 누나고 어머니다.그녀가 눈 위에 만든 발자국은 곧 새로운 눈에 사라지고 현재의 그녀 자신만 남는다. 지나온 날의 흔적으로 사람 본질을 확인 할 수 는 없다. 직업이나 이름, 성격이나 전력이 사람의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고 어쩌면 내 언니도 그 환영처럼 이 봄밤에 다른 곳에서 헤매고 다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밥상을 차려주고 독경을 들려주고 제사를 지낸다. 멀리가라. 멀리가라. 돌아오지 마라. 돌아오지 마라. 여자가 어떤 맘으로 그런 얘기를 했는지 아마 그 환영은 알았나보다. 그리고 둘은 서로 화자가 되어 대화를 했다고나 할까. 그 후로 환영은 나타나지 않았다.우리에게 환영은 눈에 보이지 않고 살아 있지 않다는 것에 무섭게만 느껴진다. 또한 우리가 말하는 귀신은 천수를 누리지 못해 한을 갖고 하늘로 올라가지 못해 떠돈다니 귀신이 나타나면 해코지라도 할까 두려워진다. 하지만 내 주변의 사람이 죽어 앞에 나타난다면 소설의 주인공처럼 안쓰러운 마음이 들 것이다. 또 이 여자와 같은 경험을 한다면 이해 할 수 있는 일이다.닫혀있는 우물의 이미지는 습기가 차고 어둡고 폐쇄적이다. 그 공간에 갇혀 사는 환영은 죽어서도 하늘로 올라가지 못해 소설의 환영처럼 떠돌게 된다. 구천을 떠돈다고 하나, 망자들이 떠도는 구천이 어둡고 폐쇄적인지는 죽어서나 알 것 같다. 하지만 환영들의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는 우리의 공간에 그들을 잘 들여놓지 않는다. 우리와 그들의 공간을 상반된다고 여긴 다음, 우리의 공간이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폐쇄적이다. 반대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그들의 세계가 열려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폐쇄적이다. 아무래도 우물에 갇혀 있는 것은 소설의 여자도 그 40대의 환영과 다르지 않다. 어떻게 보면 시공간을 달리 할 뿐 서로 다를 것이 없고 이처럼 소통이 가능한데 우리가 더 나은 것이 있다면 살아있다는 것. 둘의 차이는 그것일 것이다. 아무래도 살아있다는 것이 죽어서도 떠나지 못해 헤매는 것보다 낫고, 그래서 조금이나마 더 나은 우리가 죽은 이들을 위로해 줄 수 있지 않을까.삼포 가는 길 - 황석영 -소설 을 읽으면 과연 작품의 배경이 1970년대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TV와 여타 매체에서 본 70년대는 어느 시대 보다 성장과 도시화에 길에서 만나 동행하고 인간적인 교감을 나눈다. 이들의 만남은 각박한 시대 안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연대의식을 보여준다. 또한 작가는 박정한 세상 속에서 ‘인정’ 소중하다고 말한다.영달과 백화는 남녀 간의 정을 느낀다. 영달은 자신의 자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데도 불구하고 백화에게 기차표와 음식물을 사주고 백화는 영달의 이런저런 행동에 따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영달은 자신의 불안한 처지에 선뜻 백화와 함께 떠나지 못한다. 이들이 보여준 ‘인정’과 미래의 불안함에 아쉽게 헤어져야 하는 영달과 백화의 애틋함은 잔잔한 여운으로 작품을 환기시켜 준다.우리 동네 김씨 - 이문구 -이문구의 는 사투리로 향토적인 맛을 흠뻑 드러내면서 농민 생활의 어려움과 아픔을 이야기했고 현실과 괴리된 정책과 관료들을 풍자, 조소했다.소설은 비탈논에 농사를 짓는 김씨가 가뭄의 대응책으로 이웃동네에서 끌어들이는 물을 끌어올리는 데로부터 시작된다. 김씨는 농군이라면 하늘을 원망하거나 혹은 정부의 구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기 농토는 자기 절로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실용주의 농군이다. 여기에서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라는 것은 바라 볼 수도 없는 것이라는 게 잘 나타난다. 가난한 농군인 김씨로서는 제일 손 쉬운 방법이 전봇대의 전기를 끌어다 양수기를 돌려 이웃동네에서 끌어들이는 물을 ‘훔치는’ 것이다.김씨가 이렇게 물을 퍼올리고 있는데 이웃동네의 유씨와 장씨가 찾아온다. 그들은 자신들이 돈을 주고 산 물을 훔치는 김씨에게 시비를 건다. 이에 김씨는 잘못을 느끼면서도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느긋하게 해결해 나가려고 한다. 여기에서 자연의 물마저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사회 현실과 각박한 인심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때 또 한전 출장소 직원이 와서 도적전기를 쓴다고 야단이다.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우습게 번진다. 김씨의 처분 문제를 두고 유씨와 장씨, 그리고 한전 출장소 직원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는 것이다. 서로 물을 훔쳐 쓰는 건 죄가 아니다, 전기를 훔쳐 쓰는 건 문제가 아니다, 하며 다툼다.
李梅窓論Ⅰ. 서론이매창(1573~1610)은 16세기 말 부안 출신의 기생으로 기류문학(妓流文學)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는 시재(詩才)가 특출하고 가무(歌舞)와 현금(玄琴)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한 여류 예술인으로 주옥같은 한시 수백수를 남겼다고 전하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매창의 작품으로는 시조 1수와『매창집』에 실려 있는 한시 58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당시 세계 어느 나라를 둘러보아도 한 여인의 시집이 이러한 단행본으로 나온 예는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창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으며,『매창집』의 발문(跋文)과 묘비명 외에 몇몇 문헌에 보이는 단편적인 기록들마저도 부실하여 생졸연대(生卒年代), 출신성분(出身成分)에 대한 오기(誤記)가 심하고, 묘비명마저도 연호(年號)를 소홀하여 많은 혼란을 주고 있다.당시 매창은 시문과 가금의 뛰어난 솜씨를 지녀 이름이 경향에 알려졌고 많은 명사와 시인묵객들이 그와 교류를 원하고 정을 구했다. 하지만 그의 몸과 마음을 준 명사로는 상민 출신인 촌은 유희경 한사람뿐이었다. 유희경과의 별리(別離)를 기점으로 파생된 고독과 상념들은 그의 일생을 지배하는 근간적인 요소가 되었다. 때문에 매창에 대한 많은 연구는 이른바 여성정감이나 기녀로서의 삶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고, 그와 사대부 남성과의 관계에 주목하여 시에 나타난 낭만적인 감정을 중심으로 분석해왔다. 또한 매창에게는 마음을 열어 시문을 이야기하고 인생관을 논한 지기(知己)의 시우(詩友)인 교산 허균이 있었는데, 교산과는 남녀의 관계를 초월한 시우(詩友)로서 좋아하고 아끼며 사귀었다. 매창과 허균은 자연참선과 신선사상 등에 대해 시문을 주고받았고 이것은 매창의 인생관에 영향을 준다. 그가 남긴 환상적인 시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방법이었다.이에 본고에서는『매창집』의 발문과 묘비의 묘갈명에 의해 잘못 인식되고 있는 부분을 밝히고 그가 만난 명사들의 문헌 자료를 통해 그의 생애를 살펴본 후 그의 작품과 작품세계를 통한 인생관 정립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확함을 알 수 있다. 그 발문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계생의 자는 천향인데 스스로 매창이라 하고 호를 지어 불렀다. 부안현의 아전이던 이탕종의 딸이다. 만력 계유(1573)에 나서 경술(1610)에 죽으니 나이 서른여덟이었다. 평생 노래 부르기와 시읊기를 잘했으며, 수백 편의 시가 있어 한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더니 지금은 거의 흩어져 없어졌다. 숭정후 무신년(1668) 10월에 아전들이 외우며 전하던 여러 형태의 시 58수를 얻어 개암사에서 목판에 새긴다. 절의 중들이 ????? 무신년 12월 개암사에서 개간한다. (桂生字天香 自號梅窓 縣吏李湯從女也 萬曆癸西生 庚戌死 得年三十八 平生 善昑? 有詩累百餘首膾炙一時 而今幾 散失 崇楨後戊申十月日 得於吏輩之傳 誦各體?五十八首 ??于開巖寺寺僧 ????? 戊申十二月 開刊于開岩寺)매창의 출생연대와 신분, 그리고 그의 행적과 졸년 등에 가장 믿을 수 있는 기록은 『매창집』의 발문이라 할 수 있으며, 거기에 의할 수밖에 없기에 매창은 1573년에 출생하여 38세를 살고, 1610년에 죽은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2) 문헌을 통한 생애 기록매창은 기녀였고, 후손도 없었다. 또한 사대부들이나 귀부인들처럼 행장(行狀)이나 전(傳)을 지어준 사람들이 없었기에 그의 생애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그의 시와 또 그와 교류했던 인사들의 기록을 통하여 짐작해보는 수밖에 없다.그가 어떻게 해서 기녀가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허미자(許米子)는 매창이 어쩌면 아전인 아버지와 기생 사이에 태어난 딸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며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생이 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또한 김지용(金智勇)은 이능화(李能和)의『조선해어화사』의 매창에 대한 기록 에 근거하여 매창이 기생이 된 경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천향(天香)이 꽃나운 나이가 되자 재주 있다는 소문을 들은 태수(太守)인 우관(雨觀) 서진사(徐進士)가 태수의 권력으로 그의 정조를 빼앗았다. 그리고 서진사가 서울로 전근되자 그를 따라 서울에 갔던 흔적이 있다. 그러생원 고홍달이 찾아왔으며, 기생 계생과 만났다. (辛丑 七月初八日丁酉辭朝 ?銅?浦 壬子到扶安 雨甚留高生弘達來見 倡桂生)매창과 허균은 시문과 인생관을 논하며 우정을 쌓았다. 촌은과의 사귐에 견주어 볼 때 허균과의 사귐은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허균은 매창을 이귀의 정인으로 생각했고, 또 매창은 중인인 현리의 딸로 태어난 천기이고, 교산은 당대 최고의 집안의 호방한 대문장가로 두 사람은 다만 시문과 풍류, 그리고 인생관에서만 정감을 같이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0여 년을 사귀면서도 항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아꼈을 뿐 아니라 남녀의 관계는 맺지 않았다.허균과 헤어지기에 앞서 매창은 1607년(丁未)에 유희경과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때의 만남은 단 열흘에 그쳤을 뿐이다.너무 늦게야 계랑을 다시 만나다예부터 님 찾는 것은 때가 있다 했는데시인께선 무슨 일로 이리도 늦어셨던가내 온 것은 님 찾으려는 뜻만이 아니라시를 논하자는 열흘 기약이 있었기 때문이오重逢癸娘從古尋芳自有時樊川何事太??吾行不爲尋芳意唯?論詩十日期1609(己酉)년 9월 허균은 매창에게 그리움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 보냈고, 이것을 마지막으로 허균을 통한 매창의 행적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계랑에게봉래산 가을 빛이 한창 짙어가니 돌아가고픈 생각이 문득문득 난다오. 내가 자연으로 돌아가겠단 약속을 저버렸다고 계랑은 반드시 웃을 거외다. 우리가 처음 만난 당시에 만약 조금치라도 다른 생각이 있었더라면 나와 그대의 사귐이 어찌 10년 동안이나 친하게 이어질 수 있었겠소. 이젠 진회해(秦淮海)를 아시는 선관(禪觀)을 지니는 것이 몸과 마음에 유익하다오. 언제라야 이 마음을 다 털어 놀 수 있으리까. 편지 종이를 대할 때마다 서글퍼진다오. (蓬山秋色方濃 歸與翩翩 娘必笑 惺惺翁負丘壑盟也 當時若差一念 則吾與娘交 安得十年膠漆乎 到今知秦淮海非夫 而禪觀之特有益身必矣 何時吐盡 臨楮椿慨然)『매창집』발문에 의하면 매창은 1610년(庚戌) 38살이 나이로 죽었다. 그리고 부안 봉두동 공동묘지에 그가 즐겨 연주하던 지어 부르며 수절하였다. (與劉村隱希慶故人 村隱還京後 頻無音信 作此歌 而守節)매창과 촌은과의 애틋한 사랑에 대하여는 앞에서 언급하였거나와 매창이 촌은과 헤어진 후 못 잊어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 한수의 시조에 잘 담고 있다 할 것이다. 배꽃이 만발하여 꽃잎이 빗발처럼 흩날릴 때 헤어진 님은 가을이 깊어 낙엽이 질 때까지도 오지 않으니 부안과 서울, 천리 길을 사무치는 그리움과 견디기 어려운 고독감으로 응집된 꿈이 얼마나 많은 세월을 오락가락 하였겠는가. 매창과 유희경의 이별, 봄부터 가을까지의 긴 기다림, 이화우와 추풍낙엽, 부안과 서울의 먼 거리, 연모의 정을 싣고 왔다 갔다가 수많은 생각들이 잘 짜인 절창의 시조이다. 또한 기녀사회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빈발했던 이별의 아픔은 비련의 매창문학을 잉태시키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는데, 극도에 달한 이별의 고통을 담담한 필치로 표출한 작가적 자세가 높이 평가되는 작품이다.2) 한시① 별한과 고독기녀를 대상으로 한 남성들의 애정은 영속되기 어려운 특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기녀의 가슴속은 쉴 새 없이 일어나는 별한(別恨)으로 가득하다. 또한 이별은 필연적으로 홀로 남는 기녀에게 고독감을 안겨준다. 다음 작품들은 별리와 별리(別離)로 인한 고독감이 잘 나타나 있는 한시들로, 매창의 한시 중 기류 문학적(妓流文學的)인 특성과 그의 시적인 재질, 그리고 개성적인 면이 비교적 잘 나타나고 있다.한스러워라동풍 불며 밤새도록 비가 오더니버들잎과 매화가 다투어 피었어라이 좋은 봄날에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술잔 앞에 놓고 님과 헤어지는 일이라自恨東風一夜雨柳與梅爭春對此最難堪樽前惜別人옛님을 그리워하며소나무 꽃답기를 맹세했던 날님 생각 바다처럼 깊기만 했어라강건너 멀리 떠난 님의 소식 끊어지니한 밤중 홀로 마음이 아프네故人松柏芳盟日思情與海深江南靑鳥斷中夜獨傷心위의 한시들을 통하여 한 여인으로서의 매창, 기생으로서의 매창의 처지와 삶을 대체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가 얼마나 외롭게 살면서 떠나버리면 그뿐 소식이 없는 무심한 날리는 패륜자식을 한탄하고 전답(재산)이야 아까울 게 없지만 조상의 제사가 끊어질까 그게 걱정이라는 그의 착한 심성이 잘 드러나 있다.님에게취한 손님이 명주 저고릴 잡으니손길을 따라 명주 저고리가 소리를 내며 찢어졌어라.명주 저고리 하나쯤이야 아까울 게 없지만님이 주신 은정까지도 찢어졌을까 그게 두려워라贈醉客醉客執羅衫羅衫隨手裂不惜一羅衫但恐恩情絶이 시에서 매창은 자신을 한 걸음 물러서서 피차의 정을 소중히 하고 아끼려는 여성으로서의 섬세함과 희생정신을 보여준다. 기녀에게 매우 소중한 비단 옷을 찢은 술 취한 손님, 비단옷이 찢어지는 것은 그에겐 난감하고 속상하는 일이지만 고의성 없는 사고일 뿐임을 이해하는 관용의 마음이 보인다. 한낱 비단 적삼 하나로 인하여 지금까지 나누어온 은정(恩情)에 혹시라도 금이 갈까 두렵다는 매창의 선하고 다정다감한 심성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③ 말년. 선계, 내세매창은 그 말년 무렵에는 자연의 오묘한 섭리에 젖어 관조하고 선계(仙界)를 꿈꾸며 불교적 내세(來世)에 대한 희구(希求)속에 살아온 것 같다. 또한 현실에서의 재회는 물론 꿈을 통한 재회의 기도마저도 헛된 것이 되고만 이 시점에서 마지막으로 선계에서의 재회를 꿈꾼다.그는 님을 그리는 외로움을 꿈속에서도 갈망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자 순리대로 오고가고, 채우고 흐르는 자연의 오묘함에 심취하였으며, 이와 같은 매창의 의식세계 형성에는 허균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1609년의 정월과 9월 두 차례 매창에게 보낸 허균의 편지에 요지음도 참선을 하느냐고 묻고 선관(禪觀)을 지키는 것은 몸과 마음에 유익하다고, 거듭 권하고 있음에서도 알 수 있다.매창의 선계적 사상과 선관적 의식의 표현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벗에게일찍이 동해에 시선이 내렸다던데구슬 같은 글귀지만 그 뜻은 서글퍼라구령 선인 노닐던 곳 그 어디인지삼청세계 심사를 장편으로 지었네술 단지 속의 세월은 차고 기울지 않지만속세의 청춘은 젊은 시절도 잠시일세먼 훗날 상제께로 돌아가거.
뱀장어 스튜소설 는 한 여성의 쓸쓸한 누드화다. 황홀한 사랑과 도발, 상처의 치유, 권태와 일탈, 삶의 자유에 대한 갈망 등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을 보면서 정신은 혼미해진다. 하지만 작가는 여러 일화와 은유를 군데군데 배치하여 그녀를 속수무책으로 헤집고 그녀의 내면의 갈등과 변화는 여실히 드러난다.피카소가 그의 마지막 여자에게 헌사 했다는 그림의 제목 . 소싯적 꼭 뱀장어처럼 힘 좋게 퍼덕였을 것 같은 피카소가 그린 뱀장어 구이도 아닌 뱀장어 스튜. 생각해보면 오랫동안 뭉근히 끓여내는 스튜는 피카소와도 뱀장어와도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소설의 작가는 인생을 비빔밥 보다는 뱀장어 스튜 와 같다고 하는가.여자는 스무 살 때 한 남자를 만났다. 제왕절개로 몰래 아이를 낳은 여자는 아이를 유럽의 어느 나라로 입양하고 손목을 그어 자살을 기도했다. 그 후 여자는 아랫배와 손목에 남겨진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그녀의 상처는 치유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가장의 전의를 상실한 남편과의 가정생활에서 권태를 느낀다. 하지만 가정이 있는 집은 강력접착제가 발려있어 한발만 디뎠다 하면 영원히 빠져 나오지는 못한다. 가정 안에서 그녀는 긴 다리가 바닥에 붙어버린 채로 몸통과 긴 더듬이만 간절하게 움직이는 바퀴벌레다. 그녀는 자신의 남은 생이 벗어놓은 창녀의 스타킹처럼 될까봐 두렵고 온몸이 저리게 쓸쓸하다.치유되지 않는 상처에 방황하던 그녀는 호시탐탐 늘 떠나갈 궁리를 했던 암컷 원숭이처럼 집에서 나가고, 과거의 남자에게로 간다. 그는 자신을 황야에 서 있는 정자 라며 쉬어가라하고 여자는 그 남자의 처마 밑에서 지내는 하루가 달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는 천성적으로 고독을 좋아하고 여자를 구속하거나 길들이길 싫어하는 에고이스트다. 여자는 그에게서 생리적이고 본능적인 충동을 느끼고 집착이 없는 그와의 관계는 낭만이고 도발이다. 그러나 3년 만에 만난 그는 결혼을 하고 싶고 혼자 있다는 것에 고통과 등이 시릴 정도의 쓸쓸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벽도 문도 없어 늘 바람처럼 허허롭던 남자의 집에 그 황량한 정자는 오래된 정원의 마로니에가 되고 싶어 한다. 영원히 황홀할 것만 같던 여자의 사랑은 허망해진다. 자유로운 남자였던 그에게서 숨어있던 황폐와 허망을 보았던 것이다.집으로 돌아온 그녀를 위해 남편은 삼계탕을 만든다. 남편이 요리를 하는 동안 그녀는 죽어가면서도 끈끈이 위에 알을 낳을 수밖에 없는 암컷바퀴벌레의 알주머니를 터트린다. 그녀의 살의는 자신에게서 오는 부정, 혹은 남편에게서 오는 애증,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부정과 애증과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을 용서로 화해한다. 그리고 격정과 방황의 내면은 고즈넉한 평화로움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