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분석론]주식·파생상품 모의투자 분석Ⅰ. 주식투자종목1. 종목 : CJ● 낮은 부채비율, 식품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유통 및 금융에 자회사, 낮은 부채비율과 브랜드 사용익, 임대수익 등으로 안정적 현금흐름.● 인플레이션, 물가상승기조속 생활물품 물가 상승으로 인한 이익 증가 기대● 주가흐름 박스권 유지 예측● 2007년 9월 이후 박스권 장세유지 64000원에서 83000원사이 오가고 있음 64000원에 대한 지지선 강하기 때문에 하락위험 낮음(매수 요건)● 7만원 초반부터 저점 매수, 9만원 매도 목표2. 종목 : 현대차● 환율상승의 최대 수혜주로 유가 상승에도 대형차보다 중소형차 부문에서 매출이 강세이기 때문에 유가상승 수혜의 가능성있음● 낮은 PER 와 현대차 기업가치 대비 저평가 되어 있음● IT와 자동차주의 강세속에 연초 저점이후 주도주로서 역할, 전고점인 80000만원 대에서 반등 예상하여 매수3. 종목 : SK텔레콤● 이동통신 1위 업체로 꾸준한 매출기대, 경기하락에도 매출에 대한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어 경기에 강함. 현재 많은 하락으로 좋은 가격에 매수 할 수 있는 시점이라 판단. 장기보유주로 접근함● 현재 PER 7.96으로 매우 낮은 PER로 기업가치 대비 저평가 되어 있음.● 2006년 이후 177000원의 저점 지지가 견고 매수시점이라 판단. 장기적으로 230000선에서 매도목표4. 종목 : KT● 통신산업의 시장지배 사업자로 합병과 지주회사 전환에 따른 지배구조 개편 등 기업가치 제고 기대● 손익 계산서상 변함없는 매출과 이익 보여주고 있음● 배당률 6%로 하반기 상승기대와 배당투자가능● 2004년이후 장기 추세선의 상승 지속과 견고한 지지, 추세선 저점인 43000원 근접한 시점부터 매수, 52500원 매도 목표5. 종목 : LG디스플레이● 글로벌 TFT - LCD 제조 전문업체로 대형 LCD TV 시장의 호조로 외형성장기대, 패널가격 안정세와 생산성 향상으로 수익성 개선 기대● LCD대중화로 LCD의 안정적 수요성장 예상되며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기술 개발 가속화 하는등 신성작 동력 확보위해 노력● 현재 PER 11, ROE 30.7로 매우 저평가 되어 있음6. 종목 : 미래에셋증권● 증권업계를 선도하는 선진국형 초우량 종합자산관리회사로써 현재 매우 저평가 되어있음● 주식형 펀드잔고는 2008년 2월말 현재 15조 4천억원으로 국내 증권사 중 1위, 해외주식형 펀드와 국내 주식형펀드가 각각 45%, 36%증가하여 펀드 총잔고가 전분기 대비 42%증가.● 주가 상승시기 주가 회복 기대 장기보유 관점에서 접근.7. 종목 : 한전 KPS● 발전설비정비업체로 안정적 사업구조를 기반으로 영업이익 증가하여 외형 신장세 유지● 30년이상의 업력으로 발전정비 기술의 경쟁력 보유, 국내 발전정비시장에서 독점적 지위 고수와 활발한 해외수주로 성장엔진 확보● 모기업인 한전의 고배당정책으로 장기보유관점 접근 가능, 최근 5년간 배당성향 유지한다면 올해 배당금은 현주가 대비 배당수익율 약 5%예상● 자기자본이익율(ROE) 10%초과, 부채비율 100%미만 영업이이율 10%이상, 유동비율 100%이상, 주당 순이익(EPS)성장율 10% 이상의 조건 충족, 워렌버핏의 가치투자 조건에 적합한 주식으로 장기보유 관점으로 매수함8. 종목 : 전파기지국● 유무선 정보통신 인프라 공용화 전문기업● 지국 공용화와 관련된 업무를 유일하게 영위하고 당분간 경쟁업체의 출현가능성이 크지 않아 통신사와의 대규모 공사 수주로 인한 일정수준이상의 수익성 유지 가능● 배당금액은 약 5%로 장기 보유 관점으로 접근함Ⅱ. 주식투자평가● 저평가, 배당주 성향의 주식에 투자● 전반적 글로벌 증시의 하락으로 기대 수익률 달성이 저조했으나 이를 헤지하기 위해 파생상품 활용, 주식은 배당목적으로 보유하면서 변동성은 파생상품으로 대체함
주제 : 6자회담에서 나타난 부시1기와 2기의 북핵문제 접근의 차이점과 그 원인을 설명, 이것이 한 미간 북핵 공조에 미친 영향 분석하라.Ⅰ. 북핵문제의 배경과 역사북한은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식량난과 전력난이 겹치며 농업의 낙후, 경공업 부양 정책의 실패를 경험하면서 어려운 사정에 이르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북한 정권의 붕괴를 목적으로 한 미국의 대북정책으로 전 세계적으로 고립된 상태에 이르게 된다. 또한 90년대 초 소비에트 연방이 개혁 개방의 물결 속에 해체되는 과정을 격 으면서 소련의 북한에 대한 모든 지원정책들이 폐기 상태에 이르게 된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한은 그들의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 보존하기 위한 자구책으로써, 미국과의 협상카드를 마련하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되었고, 이렇게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인한 한반도의 긴장은 시작되었다.2000년 남북한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클린턴 정부의 미북관계 개선 시도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는 듯 했으나, 부시 정부 출연이후 “악의 축” 발언으로 시작된 부시 1기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북핵문제를 더욱 악화 시키게 된다. 그러나 부시 재선이후 북핵문제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며 2005년 7~9월에 열린 제4차 6자회담에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원칙을 천명한 「9.19 공동성명」이 채택되었고, 이후 2007년 2월 5차 3단계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의 초기단계 이행조치’를 담은 「2.13합의」가 도출되면서 한반도비핵화 이행이 진행될 수 있게 되었다.현재 한반도 북핵 문제는 미국 정권교체와, 정부 간의 접근방식의 차이, 북한의 태도, 주변국들의 이해관계 등의 정치적 외교적 복잡한 상황 속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이행, 나아가 동북아 냉전구조의 변화를 앞두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서 있다.본론에서는 부시 정부 1기와 2기의 북핵 문제 접근의 차이점과 원인을 알아보고, 이것이 한미간 북핵 공조에 미친 영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6자회담 전개(부시 1기 와 2기 정부)1. 연설은 부시 1기 행정부의 대북 강경 기류를 압축적으로 대변했다. 그해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국무부 차관보의 평양 방문에서 북한의 고농축우라늄프로그램 의혹이 제기되면서 북핵 문제는 표류를 거듭했고, 북한의 핵동결 해제와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등으로 이어져 북-미 관계는 급격히 악화됐다. 2003년엔 북한을 “주민들을 공포와 허기 속에 지내게 하는 억압정권”과 “핵무기를 추구하고 보유한 무법 정권”으로 지목하는 등 대북 압박 강도를 높였다.?2003년 6자 회담이 열리기 시작했지만, 국제적 압력을 통한 북한의 핵포기라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기조에는 변화가 없었다. 부시 대통령은 2004년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권”으로 지목했다.2. 부시2기 북핵문제의 접근부시 2기 행정부의 초기 전략도 1기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기 행정부 출범 직후인 2005년 국정연설에서도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핵 야망”을 언급했고, 북한은 핵무기 보유선언을 하게 되고, 2005년 4차 6자회담의 「9.19공동성명」 합의를 통해 부시 정부의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9.19공동성명」은 비록 원칙적인 수준이지만, 21세기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재편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그러나 미 부시행정부 내에 중국위협론자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라이스 국무장관이 구상했던 새로운 동아시아전략은 네오콘(신보수파)들의 반발에 부딪쳐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였다. 미 행정부 내 네오콘들은 ‘중국위협론’을 내세워 한미동맹 및 미일동맹의 강화를 통해 중국을 포위하려는 전략을 계속 추구했다. 또한 이들은 ‘북한불신론’을 내세우며 북핵 이외의 이슈들을 들고 나와 ‘9.19공동성명’의 이행에 제동을 걸었다. 이들은 대북 인권특사를 임명해 북한인권문제를 공론화시켰고, 위폐문제를 제기하면서 대북 금융제재를 가했다.이처럼 2005년 말 이래 미국 내에서 대북 접근방식을 놓고 강경파의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상당 기간 6자회담이 열리지 못하였다. 그런 와중에 북한의 동시다발적 탄도미사일 발니 부통령 등의 강경파들이 반발하여 이방안은 곧바로 빛을 보지는 못했다.미국측 새로운 동아시아구상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대북정책은? 미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함으로써 새로운 변화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미 행정부 내에 포진하고 있던 네오콘들이 대거 퇴진하였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사임에 이어 유엔에서 대북 강경책을 이끌었던 졸 볼턴 유엔대사도 미 상원의 인준을 포기하고 사임하였고, ‘2.13합의’에 반발해 조지프 미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도 사임했다. 이로써 딕 체니 부통령, 존 한나 부통령 국가안보 보좌관, J.D 크라우치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엘리엇 에이브럼스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 등을 제외하고 네오콘들은 대부분 미 행정부에서 물러났다.이제 새구상 추진파들이 또다시 힘을 얻게 되었다. 10월25일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중 북핵해결’ 의지를 표명하면서 체니 부통령을 건너뛴 부시-라이스-힐로 이어지는 직보체제가 구축되었다. 마침내 11월18일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의 ‘종전선언’ 구상이 나오게 된 것이다. ‘북한의 완전한 핵포기 이전이라도 어느 수준의 핵문제 해결에 진전이 있다면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열어 종전선언문 서명식을 가질 수 있다’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본격적인 한반도 및 동아시아 질서재편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이후 2007년 2월에 개최된 제5차 3단계 6자회담에서 「2.13합의」가 채택되었다. 「2.13합의」의 원제목이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번 합의는 처음부터 「9.19공동성명」에 담긴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초기단계의 이행조치를 규정하는 데 목표가 있었다. 북한이 이행해야 할 초기 조치로는 영변 핵시설의 폐쇄, 봉인과 IAEA사찰단의 입북 및 감시활동 재개, 그리고 모든 핵 프로그램 목록의 협의 등이 있다.2.13 합의의 중요성은 조치 내용 못지않게 이행합의의 수레바퀴가 역회전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초기 관회담을 개최키로 함으로써 고위급회담이 가능하게 되었다.「2.13합의」는 BDA문제의 해결이 지연되면서 초기단계 이행조치가 완료되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내 6월25일 BDA문제가 해결되면서 현IAEA 검증감시단의 입북과 핵시설의 불능화 및 신고를 이행하였고 6월초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해체하겠다고 6자회담 대표들이 밝혔다. 최근 미국은 북한에 식량 50만톤을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미국의 식량 지원이 많은 시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해 ‘세계식량계획’(WFP)이 아시아 지역에 있는 식량을 우선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보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부시1기 정부시절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는 등 적대적 입장을 보여온 미국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에 북한은 6월초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해체하겠다고 6자회담 대표들이 밝혔으며 북한은 지금까지 2번의 핵 신고를 한 것으로 보도 되고 있어 2기 북핵 해결 이라는 정책 변화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Ⅲ. 부시 1기와 2기의 북핵문제 접근의 차이점과원인부시 1기 정부의 외교노선이 무력을 통한 악의 축 제거였다면 2기 정부의 노선은 외교력에 의한 민주주의 신장과 독재국가의 제거 또는 체제전환이다.근본적으로 부시의 대외전략은 강한 미국을 표방하는 미국 우선주의 (primacy)이고 수단으로서 군사력을 통한 개입을 옹호한다. 이는 과거 클린턴 행정부의 선별적이나 협력적인 우선주의 (Selective, but cooperative primacy)에 분명히 구분되는 것으로 ‘개입과 확대(engagement and enlargement)'을 통해 미국식 “민주주의 정치체계”와 미국 주도 “자유주의 시장경제 시장”을 만들어가는 효용성 중시의 우선주의에 다른 점이 있다. 하지만 모두 미국 우위라는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미국 중심적 세계전략이 공통점이다.전통적으로 미국은 적성국가의 핵무장 저지를 최우선적인 대외정책으로 삼아왔다. 이는 적성국가의 핵무장이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핵 도미노 현상으로 이문에 대해 "MD 배치를 가속화하겠다"고 답변했다. 이는 북한의 핵무장을 막겠다는 것보다 MD 배치를 통한 대응에 무게중심이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실제로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 재발을 계기로 MD 구축에 박차를 가해왔다.그러자 미국 언론들도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핵무장 저지보다는 그 파장의 확산을 방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보도를 잇따라 내놓았다. 2003년 3월 5일자 는 "부시 행정부는 아마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북한 핵무장에 따른) 지정학적 결과를 다루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보도했다.?[뉴욕타임즈]도 2003년 5월 5일자에서 미국 안팎의 소식통을 인용해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핵무장 저지 목표를 철회하고 핵 물질 및 기술의 해외 이전 방지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 응한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리는 "부시 대통령이 우려하는 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디로 갈 것인가"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가 평화적 해결을 공언한 것에는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동북아 국가들의 반대로 인해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이 현실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점도 고려되었지만, 이라크 침공 및 점령 계획에 차질을 가져올 수 있고, 북한을 군사적으로 제압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군비 증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발언들을 종합해보면,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북핵 문제의 '활용' 및 '대비'에 주안점을 둬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석이 타당성을 갖는다면, 6자회담은 제스처로서의 의미를 크게 벗어날 수 없고또한 부시 행정부는 득실관계의 관점에서 볼 때, '북핵 게임'은 해볼 만하다는 판단을 갖고 있을 공산이 크다. 북한의 핵 물질과 기술이 외부로 이전되는 것을 '금지선'으로 설정해 이를 봉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론을 억제할 수 있다면 부시 행정부로서는 실보다 득이 클 수 있다는 것이 한다.
English used by more than 12 hundred million people must be the best widely used language in the world. In the past few decades, we have moved toward the global world, English is an essential part of our lives. Wherever in the world we are, we can find there are sign boards in English and English speakers. There are 70 nations in the world adopt it as formal language. In the situation, many people spend much money on going to English speaking countries in order to study. Nowadays, the numbers have been steadily increasing. As a matter of fact, English users have generally more opportunities about wealthy, authority, and information than un-users. They have higher possibility to take a good job. Learning English help us when people have traveled to other countries share and understand diverse cultures through the world. More than ever, during studying English, They can meet a lot of friends from other nations as well as own country.
OpinionLegalize drugsUntil I read some articles nowadays in class, I had never thought of legalizing drug. However, having thought legalization of using drugs for a few weeks, I could get a chance to consider it as a big issue in the world and arrange with what I think about it.In my country, Korea, there are hardly people using drugs because of very strict and strong prohibition and punishment of drugs. Most of people in Korea think that only special people like singers or artists who have been experienced in reaching cultures from other countries might use them. With this situation, I have lived for more than 20 years, I am used to it. Likewise the opinion which many people have in Korea, I also don’t agree with his view. He states “I’ve never understood why adults shouldn’t enjoy the same right to use verboten drugs as they have to such on a Marlboro or knock back a scotch and water” However, no matter how the drugs are the same as alcohol or smoking, it is enough to enjoy the right in our life. With such alcohol and smoking, it is enough dangerous in the world. A lager number of people have been dying by these harmful substances. No wonder that many people will have been dying by drugs abuse like that thing, why should we legalize drugs?For example, Let us suppose that a man had men’s shoes and sneakers, he must have been happy with them, but since he has known a loafer (new style shoes), he could has not been happy with his shoes anymore. The more he has wondered new shoes, the more he wants to get the loafer. So now, I would like to ask why we should inform people of being new stimulus even though it is that awful. Would we need to add drugs besides alcohol and smoking? To survive nonviolent drug offender, no matter how nonviolent they are should we throw innocent people to the wolves? It is enough dangerous with only such a alcohol and smoking.
First Essay - DescribingTo leave my routineIt’s humid there. It was also raining and where I stood, there was has only a 15 inch roof. It seemed to protect against whether, rain or shine. The roads very crowded very much, and there were a lot of stores and cafes like pubs on the first floor of the low buildings. They were open and had some small tables made of wood on broad balcony of them. The blue sky was hidden by a tent connected to the roof to protect people against the rain. Probably, the warm weather here has made this landscape which I was not yet familiar with, but might be what I have looked for. While other people were in a hurry, I could take my time for a while, but I realized I couldn’t afford to have time. The rain was getting heavier and heavier! I had to search for public phone to meet him! My friend next to me started moving, and tried to call him, but we did not know how to make a phone call. How much should I put in? We tried to ask some people next to us about it, but nobody spoke English. We consequently gave up and began to move.As I walked, my carry-on was trembling, it made walking harder, but I had to move, and search for wherever we could take a rest. I and my friend were without umbrella, even we were uncertain about our destination, but then I saw Koreans who were coming toward me. Before I spoke to them, I could easily tell they were Korean. “Look at them!” I said to my friend hurriedly. She went to them, talked them and collectedly led the way to the Korean restaurant. Turning right, passing this way, and turning right again, we were exhausted when we arrived there and ordered Korean food immediately. I tried to contact him again, but he didn’t get my call. Anyway, that we were not hungry anymore made us happy and we could begin searching for where we could stay today. Fortunately, we found a good guest house near the restaurant after going around for a short time. It was a brown and white five story house that seems to be just built. We entered it without hesitation, and after about an hour, we started going to where he lives.I had only his phone number and address including a rough sketch from my friend in Korea. Of course, I had partly known it does not develop the means of communication here, yet indeed, I didn’t expect to be in trouble about it to this much. What if I couldn’t meet him? With a little bit fear, I led my friend to the road. The rain was stopped, and it was starting to be humid and shiny. The floor was still wet though, we were happy with the fact that we could walk comfortably. While I was passing the street in which our place is, I saw some foreigners with a big back pack and shoulder bag like Europeans or Americans entered this street. I heard this street is very popular as traveler’s street, indeed, it was the truth! I thought for a while that I could talk to them in some places like famous live pub tonight! Thinking of it like that, I urged me to walk forward. There were many street stalls and first floor stores which were connected to outdoor were selling foods such as fruits, juice, grilled skewered stuff made chicken and strange fried noodles with some vegetable like traditional food. We tried some grilled food and pineapple. The taste was really good!‘Have we been walking for about 30 minutes?’ I thought. We had pain legs. According to the draft about his house, we were almost there, and crossing the road without a pedestrian crossing, going on the road toward the north, passing the narrow alley, at the end of the lane. There was a green door-house with the sign “Guest house” which has the same address number I had. “The end…” We sighed leaning against the white wall made by cement. I pressed the small bell attached the wall. And then, a man who seems like Korean appeared in front of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