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건축가 김수근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과목명:지도교수님:학번 / 이름:[김수근과 ‘공간(空間)’]1. 서 론건축가 故 김수근의 건축관은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에서도 그가 고찰하고자 한 ‘화두(話頭)’에 대한 고찰들이 발전되며 표현되어지고 있다. 세간에는 사업수완이 좋았던 그래서 유명해질 수밖에 없었던 건축가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역시 그였기에 지금의 한국 건축이 이정도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우리는 이번 레포트를 통하여 김수근의 건축관 중 ‘공간’이라는 주제에 대한 고찰을 살펴보고 그의 제자와 현대 건축에서 그 생각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아보았다.2. 김수근의 건축과 ‘공간(空間)’2-1. 한계(限界) 속의 김수근 건축후대에 와서 김수근 건축을 바라볼 때 김수근 건축의 주된 테마는 ‘공간(空間)’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건축이 본래부터 공간을 다루었던 것은 아니다. 1960년도 그가 동경공대 건축과에서 학생시절 국내 국회의사당 공모전 당선 당시만 하더라도 그의 건축은 ‘Wright, Frank Lloyd’에서 ‘단게 겐죠(丹下健三)’로 이어지는 계보로서의 건축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건축은 점차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자신만의 건축을 하지 않고서는 스스로의 건축을 논할 수 없다는 생각에 몇 년간의 건축적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그의 개념이 1980년대 이전까지 정립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1970년대 전반기에는 동경유학시절에 꿈꿔왔던 종합예술로서의 건축을 지향하며 공간의 창조에 있어서 공간적 여유와 멋을 추구하는 개념으로 아직 이론적으로 뒷받침 되지 못한 상태에서 궁극 공간(Ultimate Space)이란 개념을 발표하고, 이후 1970년대 후반기에는 궁극공간의 개념을 이론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문화의 매개문제로 인간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오늘날의 문화 환경을 건축의 비판과 반성을 통해 건축적 대상의 건축적 파악과 이해를 하여 건축공간을 창조해야 할 것을 주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건축적 대상의 건축적 파악과 이해에 있어서 한국 것(Koreaness)을 문화적 전통으로 연구하는 한국학파(Ecole de Cor?e)를 제창하였다.이렇게 볼 때 건축적 공백기를 가지게 된 1980년대 이전의 그는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건축적 공백기를 가지면서 자신만의 건축관을 정립할 때 까지 그의 정신적인 스승이었던 ‘단게겐죠(丹下健三)’의 건축을 소화하고, 그것을 국내의 문제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기였다고 생각된다.2-2. ‘공간(空間)’김수근이 한계에 부딪히고 가지게 된 건축의 공백기. 이 몇 년간의 시간동안 건축가 김수근에게 영향을 준 대표적인 인물로 ‘최순우’라는 인물을 들 수 있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 서서...’의 저자로도 알려진 ‘최순우’와의 만남은 건축가 김수근이 한국 전통건축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 건축가 김수근에 있어 ‘최순우’는 스승이자, 친구였고 동료이자 자극제와도 같았다고도 볼 수 있다. 최순우는 시간이 날 때 마다 김수근과 함께 고건축을 답사하러 떠났으며 김수근은 이러한 여행 속에서 ‘공간(空間)’에 대한 개념을 깨닫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건축가 김수근에게 이 기간은 전환의 시기라 볼 수 있다.김수근의 생애를 통해 동시대 건축가 김중업과 달리 그가 ‘김종필’, ‘최순우’와 같은 사람들과 친분관계를 쌓을 수 있을 정도로 인복이 좋았고, 이를 잘 이용했던 것 같다. 여하튼 이때부터 김수근의 건축은 ‘공간’ 사무소를 중심으로 한국적 이념형으로서의 공간개념과 ‘공간 사랑’을 중심으로 한 예술 활동, 종합 예술지 ‘Space’ 등 다양한 사회참여 건축가로 발돋움하였다고 볼 수 있다.이 시기에 우리는 건축가 김수근 건축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간에 그의 건축은 일본 건축의 아류다. 한국적이라는 이야기만 있을 뿐 전혀 그런 흔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건축에 대한 생각과 실천적 사고는 분명 우리나라 근대 건축을 이끄는 주체였으며 후대로 이어지는 건축의 본질에 대한 탐구의 눈을 가지게 한 것에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3. 후대의 건축가와 ‘공간(空間)’3-1. 연장선상의 개념 그리고 부정선상의 개념김수근에게는 여러 제자가 있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승효상’과 ‘류춘수’였다. 근대 건축가로서 대표되는 김수근의 건축은 이 두 제자를 통해서 서로 상이한 형태로 이어진다.우선, 건축가 ‘류춘수’의 경우 김수근의 ‘공간’에 대한 개념을 부정하며 ‘다른 공간’의 의미를 가진 이공건축(異空建築)을 설립하고, 김수근 건축에서의 여러 가지 면 중에서 또 다른 방향으로 건축을 이끈다. 반면 건축가 ‘승효상’과 ‘민현식’은 김수근의 ‘공간(空間)’에 대한 개념을 ‘Urban Void’와 ‘Emptiness’와 같은 비움의 ‘마당’ 공간으로 재해석하여 발전시켰다. 사실 ‘승효상’과 ‘민현식’이 그들만의 건축을 얘기한다고 하지만 그의 건축의 기본적인 모태에는 전통건축에 대한 ‘공간(空間)’개념이 기본 틀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건축가 김수근에게 다시 눈을 돌려본다면, 우리는 과연 그러한 ‘공간(空間)’과 ‘마당’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수근의 ‘공간(空間)’은 가장 주된 개념이 ‘모태공간(母胎空間)’과 ‘네거티비즘(Negativism)’이다. 그의 공간사옥은 ‘모태공간(母胎空間)’의 개념 하에 디자인 되었으며, ‘네거티비즘(Negativism)’의 개념들은 현재까지도 ‘승효상’의 ‘Urban Void’로 설명하기 위한 내용으로 계속 두드러져 나오고 있는 개념이다. 최근 건축가 ‘승효상’이 ‘Reality’라는 키워드로 새롭게 이야기 하고 있는 개념에서도 이러한 김수근 건축의 흐름이 여전히 연속적으로 나타난다.얼마전 ‘승효상’, ‘민현식’의 공개 강연회에서 이들 두 건축가의 마당공간에 대한 개념적 사고와 근래 일어나고 있는 세계의 불확정적 공간에 대한 차이점에 대해 질의 / 응답이 있었다. 이 질문에 대해 건축가 ‘승효상’은 ‘자신들의 건축은 ‘Non-Function’이며 서구의 건축은 ‘Multi-Function’이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지속적으로 서로 교류중이라고 대답하였다.이 대목에서 우리는 거슬러 올라가 김수근 건축론의 한국형 ‘공간’에 대한 건축의 아이템의 내용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Non-Function’과 ‘Multi-Function’이라는 단어들이 말하듯이 서구의 건축이 보다 다양한 Program이 가능한 가변적 공간에 대한 탐구를 하였던 것과 반대로 김수근에서 승효상으로 이어지는 이들의 건축은 기능이 없음으로 인해서 오히려 공간 자체에 의미가 부여됨을 말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말들에는 애매한 구석이 없지 않다.그러나 이것은 이번 스터디 과정 속에서 건축가 김수근은 근대건축가로서의 자신만의 개념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 뿐만 아니라 한국 건축 제 1세대인 박길룡과 현 세대인 승효상을 이어주는 전환기의 근대건축가임 확인시켜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건축가 김수근이 근대 건축가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확히 왜 그런지 알지 못한다. 그의 건축물의 디자인은 근대 건축의 성격을 가졌다. 그러나 그의 건축적 모티브(Motive)나 디자인은 그러한 전환기에 있어서 당시로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한국건축의 방향을 제시하려 했으며 그런 측면에서 ‘공간(空間)’의 ‘헤르메스’와 같은 건축가인 셈이다.4. 결론 / 토의전통성 시비, 정경유착 등 갖가지 구설수가 있지만 그는 명실 공히 한국 근대건축가 김수근이다. 그가 남긴 작품은 현재까지도 칭송받고 있으며, 그의 개념들은 현재까지도 발전을 거듭하며 이어지고 있다. 물론 그 당시 시대의 흐름과 상황이 현재와는 틀리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시키고 디자인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번 스터디를 통해서 우리는 건축가 김수근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로서, 그리고 동시대 세계의 흐름에 맞추어 가는 과정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그가 쏟은 열정은 지금의 한국 건축이 있는 이유였다.
Modern Times & Contemporary TimesREPORT과목명:교수명:제출일:학과명:학번:이름:Modern Times I채플린은 그의 영화 ‘Modern Times’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어 했을까? 아마도 산업 발전에 따른 사회 인식의 변화 그리고 산업 마비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것이리라. 이 리포트를 쓰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 봤다. ‘왜 이 영화가 비판적이라는 것일까?’ 사실 나는 전혀 비판적이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큐멘터리처럼 그 시대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물론 지금까지 사람들의 주장이 전부 그르고 나 혼자만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약간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그냥 다큐멘터리다. 마치 현대인의 일상이 그러하듯...Contemporary Times I1936년 ‘Modern Times’가 찍히고 나서 무려 70년 가까이 흐른 현대사회. 그동안 수많은 기술과 산업, 사회의 성장으로 그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윤택하다. 하지만, 그 이면은 1936년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파업이 일어나지 않는가? 노동 탄압이 없어졌는가? 노동자의 삶은 윤택한가? 전혀 아니다. 어쩌면 ‘Modern Times’는 1936년 보다는 지금의 상황을 예상하고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믿고 싶을 정도다.Modern Times II아마도 영화중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컨베어 벨트가 가동되면 무조건 하던 일을 멈추고 손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찍힌 부분이었다. 개인의 사사로운(?) 일보다는 임금을 받고 매달려야(?)하는 공장의 일이 몇 천배나 더 중요한 듯 쉴틈없이 움직이는 손. 아마도 이 장면을 본 사람은 누구나 ‘공장 인부 = 조립기계’를 연상했을 것이다. 조립기계들의 인권은 단 1분도 할애해주기 아까워하는 기업주에게 말살 당한다.Contemporary Times II단순노동직, 일용직 등 어엿한 이름이 붙어 있는 단순 노동자들. 현대 사회는 현대판 오일쇼크인 IMF, 물가상승 등을 겪으면서 1936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부익부 빈익빈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Modern Times III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단란한 가정을 꿈꾸는 주인공.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이상향을 그리는 모습을 묘사한 것처럼 보이며 그들의 소리 없이 몸짓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행복해 보인다. 마치 자본 만능주의로 치닫는 현실 속에서도 순수한 마음은 잊지 말라는 듯이...Contemporary Times III지친 몸을 이끌고 잠시 뉠 수 있는 집이라도 있으면 행복하다. 이미 사람들은 돈을 안고서 돈을 쫓는 사냥꾼이 되어 버렸다. 일상의 행복은 그날 수입이 얼마였는지에 결정된다. 여가는 부자들의 전유물이리라. 내일 직장이 또 바뀌지나 않을지 하는 걱정을 안고 잠이든다.Impressions - Happiness언젠가 노동자의 권리와 현실에 관한 수업을 들었다. 영화 ‘Modern Times’를 보면서 그 영화 속 장면들이 분석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현재의 노동자에 관한 사실(?)들을 다시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사회의 치부로 감춰지고, 대다수가 아닌 일부여서 잘 모르는 왜곡된 현실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채플린은 그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미래를 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산업화가 계속되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변화를 ‘Modern Times’에 그릴려고 했던 것인지도...
Material & Comtemporary ArchitecturePrologue. 재료의 비물성적인 표현 - 과연 기술력에만 의존하는가?최근 기술의 발달에 따라서 재료의 표현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다. 게다가 재료가 가진 고유한 특성을 나타내는 표현이 아니라, 기존의 표현방법과는 다른 방법으로 그 재료가 가진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졌다.Frank Gehry의 Bilbao Guggenheim같이 비선형적인 표현과 티타늄을 이용한 조각적인 표현처럼 일부 재료의 비 물성적인 표현은 기술의 발전에 의존하여 현대 건축에서 주로 논의되고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굳이 기술의 발전에 의존하지 않아도 재료가 가진 물리적, 심리적 속성이 전혀 다르게 표현되는 경우는 없을까라는 의문을 가져보았다.어떤 한 재질을 건축물에 사용한다는 것은 그 작가의 개념 혹은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것을 선택했다는 것이라 본다. 또한 같은 측면에서 의도적이든 혹은 무의식중이든 그러한 행위는 재질의 물성적 혹은 비물성적 표현을 하게 된다. 재료의 물성에 관한 표현은 물론 기술력의 발달에 의존하여 현대건축의 흐름에서 나타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본다. 어떤 재료를 어디에 사용하는가? 혹은 어떻게 사용하였는가에 따라서 구분되어질 문제이다. 예를 들어 프레임으로 고정하는 유리창에 쓰는 유리를 조각조각 깨뜨려서 색을 입힌 후 모자이크 타일같이 회벽위에 붙였다면 이는 유리에 대한 비 물성적인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기술력이 뒷받침 되지 않아도 가능한 일인 것이다.Think&Find I. 기와 - 지붕재료일 뿐인가?기와의 물성 혹은 원래 쓰임새는 지붕을 이는 도제품의 건축 재료이다. 기와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서양의 고대 건축물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서, 95% 이상의 쓰임새는 지붕을 이는데 쓰여 왔다. 또, 각 문화지의 특성에 따라 여러 종류의 기와가 발견되기도 하였다.그 외 5% 정도의 쓰임새는 담장, 벽면 등을 장식하는데 사용하였다. 그 중 담장에 사용된 기와는 디자인 적인 사고보다는 주로 기능적인 쓰임새 때문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전통 가옥을 보면 흙 담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흙만으로는 비로 인해 허물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기와를 겹겹이 넣어 보강하였다.5%에 쓰여진 기와의 장식적인 기능, 혹은 원래의 쓰임 외의 다른 쓰임새로 활용된 것들이 기와에 대한 비물성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기와에 대한 고정관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기와가 만들어지게 된 목적, 즉 발생 원인에 따라 쓰임새를 생각해봤을 때 도출된 우리의 관점이다.이전의 전통건축에서 기와는 대부분 물성에 의해 사용되고, 일부 기능적인 문제의 보강재로 사용되었다면, 현대에 와서 기와는 어떻게 사용되고 있을까?근대건축 이후 콘크리트를 위시한 여러 가지 고강도 재료와 구조 시스템의 변화에 의해 우리네 지붕은 기와를 더 이상 기능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일부 전통건축의 맥락을 고집하는 건축물만이 기와를 얹은 지붕을 사용하고 있을 뿐, 대부분 장식적인 목적으로 혹은 디자이너의 모티브를 보여주는 요소로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본다.Think&Find 2. 건축가 권문성 - 그의 Design과 기와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현대에 와서는 거의 장식적인 요소로서만 기와가 사용되고 있다. 그 중 우리가 주목한 것은 건축가 권문성씨의 ‘덕원 갤러리’와 ‘열림원 사옥’이다. 두 건물 모두 최근 리모델링을 거치게 된 작품인데, 이곳에서 권문성씨는 자신의 Design 감각의 표현을 위해 일전에 봤던 기와 담장을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 느낌을 살리기 위해 기와를 썼다’는 그의 말 자체가 재료에 대한 비물성적인 그의 생각이라고 본다.기와가 주는 느낌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선 지붕에 쓰였을 때는 무겁고 단단한 기와의 시각적인 느낌이 위험을 막아주는 Shelter로써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여 보이고, 기능적으로도 도기의 특성을 띄고 있어 수분의 적절한 흡수와 방수가 자연적으로 조절 가능한 재료이다. 반면에 기와로 벽을 쌓을 때 켜를 이용해서 겹겹이 쌓게 되면 약간 거칠고 굴곡진 각각의 마구리 때문에 풍성한 표현과 멀리 있는 기와는 하나로 뭉쳐져 검은색 덩어리로 보이기도 한다.덕원갤러리와 열림원에 쓰여 진 기와를 보면 전통건축에 쓰인 것과 같은 방식으로 구축되었으나 그 규모와 크기 면에서 다르다. 규모가 커지면서 투시적인 효과가 극대화되었으며 곡선 면으로 처리하였기에 선으로 시작한 기와는 뒤로 갈수록 흰색의 회벽부분이 돌출된 기와로 가려지면서 검은 면을 잘 나타낸다. 기와라는 재료보다는 표현방법에 따른 Design이 더욱 부각되어 비물질성을 나타내고 있다.Think&Find 3. 나무 - 구조체? 장식용?콘크리트를 이용한 건축물 이전에는 어떤 구조체를 써서 건축을 했을까? 석재, 목재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나무는 오랜 기간 동안 구조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으며, 현재에도 구조체로서 손색없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것은 나무의 물성 - 즉 인장과 압축에 강하며, 나이테가 이루는 오묘한 곡선은 심미안적인 요소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나무는 장식용 재료로도 많이 사용된다. 나이테를 부각시켜서 요즘은 무늬목(이다메)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이전에는 가구, 문, 창문 등 여러 곳에 사용되었다.하지만 나무의 물성과는 관계없이 사용되는 예도 아주 흔하다. 지금도 가끔 볼 수 있는 문의 문살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또, 현대 건축물에서 등장하는 목재 루버의 경우 일부는 그 무늬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대부분 무늬보다는 붙여놨을 때 목재 고유의 느낌 보다는 또 다른 분위기를 조성하기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같은 맥락에서 봤을 때 나무 역시 특별한 기술력 없이도 - 나무를 켜고 다듬는 작업이 힘든 것이기는 하지만 -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오던 비물성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Think&Find 4. 권문성 - 덕원 갤러리의 나무 루버건축가 권문성씨의 ‘덕원 갤러리’에는 위에서 언급한 기와 쌓기 벽면 맞은편에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목재 수평 루버가 달려있다. 이 루버에 사용된 나무는 나이테의 무늬를 표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구조체로서의 물성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단지 맞은편 벽에 쓰여 진 기와 쌓기 벽면과 대조를 이루기 위한 디자인적인 발상과 내부 공간에 들어오는 서향 빛의 조절과 건물 내부에서 인사동 길의 전망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쓰여 진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마치 속살 같은 느낌을 주기위한 것’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Think&Find 5. 나무 문살 - 반투명 종이에 투영된 무늬근래에는 알루미늄 섀시로 창호를 사용하기 때문에 보기 힘들어졌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목재 창호가 사용되었고, 거기에는 장식으로 꼭 나무 문살이 붙여졌다. 또 이 문살의 종류도 다양하다. 문살은 목재의 물성을 나타내는 장식재 보다는 문살과 맞닿은 창호지 뒤편에서 은은한 빛과 함께 그려지는 문양을 돋보이게 하는 비물성적인 경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Conclusion. 비물성적인 표현은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발상의 전환이다!
Report인상주의 회화가 근대건축에 끼친 영향[인상주의와 근대건축의 관계에 대하여]1. 인상주의 회화1-1. 사실주의-인상주의 회화의 흐름인상주의는 대체적으로 18세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물에 대한 회화의 새로운 시각과 기법을 통해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실주의에 근거한 회화의 시대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주의 회화에서는 무엇보다 자연의 완벽한 모사를 주안점으로 하는 회화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인상주의 회화는 낭만주의의 이상향 적이고 도피적 성향을 가진 회화를 비판하고 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자연을 바로 보려 했던 사실주의 회화를 수용하였다. 또 이 인상주의 회화는 무엇보다 그 대상에 대해서 빛이라는 주제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결국에는 색체와 빛의 원리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그리고 구도법과 주제에서도 당시의 사진의 영향에 따라서 영원성 보다는 순간적인 대상을 포착하는 발상을 하게 되고, 이상적인 신과 미신적인 존재보다는 서민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인상을 포착하는 것에 중점적인 회화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1-2. 조각으로 부터의 해방인상주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커다란 변화 중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은 무엇보다 위에서 말했던 색체와 빛의 원리와 구도법과 주제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무엇보다 인상주의 회화에서 순간을 포착하기 시작한 변화는 결국 회화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에서 시작하여 회화의 대상에 대한 분석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그렇게 함으로서 회화에서 조형의 요소라고 볼 수 있는 사실성을 드러내는 원근법과 같은 요소를 분리 시켰다. 또한, ‘풀밭위의 점심’과 같은 작품에서는 점묘화법을 통해서 요소에 대한 패턴화를 통해서 3차원의 2차원화를 시도하게 된다. 또한, 나아가서는 ‘빅트와르 산’와 같은 작품에서는 자연에 대한 구, 원추, 원통과 같은 보다 기하학적이고 구축성을 가진 대상으로서 회화의 성격을 이어나가게 된다. 이는 결국 인상주의에서 낭만주의와는 달리 보다 분석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을 가진 회화를 추구하려 했던 가능성의 관점에서 괄목할 만한 사건이다. 그러나, 주제면 에서는 여전히 사실주의의 한계를 극복했다고는 볼 수 없다.1-3. 근대회화-‘인간으로의 회귀’근대회화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고 본다면 신에 대한 찬양에서 인간사에 대한 표현으로 그 대상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인간사에서 보여지는 많은 대상이 추상화된 것으로 오히려 기하학적인 형태로 변화해 나갔다는 것이다. 추상회화까지 이르게 되면, 회화의 본질적인 성격에 대한 탐구로 시작한 회화의 변화는 결국 ‘대상의 인지성’이 문학의 요소라고 간주하여 그 요소마저도 분리시킨다. 따라서 결국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학학적인 형태의 구축적인 성향으로 회화의 표현과 주제가 변화하게 된다. 이는 당시의 회화뿐만 아니라 가치관 자체에 대한 변화를 대신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된다.신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 중심 사회로 넘어가는 르네상스를 중심으로 결국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라는 의문과 함께 보다 분석적이고 칸트, 데카르트와 같은 철학자와 뉴턴과 같은 과학자들이 주장했던 기계론적인 사고방식이 이러한 변화를 대변해 주곤 한다.2. 시대를 보는 눈2-1. 칸트와 데카르트 그리고, 뉴턴칸트라는 철학자에게 있어서 뉴턴이라는 과학자는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뉴턴물리학은 칸트에게 자연에 대한 신의 완벽한 구조를 해석하는 기계론적 사고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칸트가 뉴턴의 시각에 관심을 보였다는 측면에만 주안점을 둘 것이 아니라, 당시의 철학이 앞에서 논의한 자연의 대상에 대해 보다 분석적이고 기하학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당시의 철학에서는 무엇보다 물리적으로 모든 신의 섭리와 같은 것들이 설명되어 질 수 있다는 논리적인 합리성에 주안점을 둔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무엇보다 근대회화 중에서 인상주의가 색과 빛을 중심으로 대상에 대한 보다 분석적이고 본질적 구조를 파악하여 했던 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과학의 시대였던 근대에는 결국 기계라 불리우는 것들이 신과 같은 존재처럼 인식이 되었고, 결국에는 당시의 회화와 함께 가치관의 변화를 야기 시키고 있는 것이었다.2-2. Le Corbusier건축가 ‘Le Corbusier’는 그의 저서 ‘건축을 향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배, 비행기, 자동차’의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소위 우리가 앞으로 주목해야 할 건축의 한 단면을 설명하기 위해 거론한다. 여기에서 Corbusier는 기술의 발달은 양식 중심의 건축에서 근대건축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과연 어떠한 건축이 요구되고 있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배, 비행기, 자동차에서 발견되는 건축적인 요소와 보다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에 의한 건축의 탐구는 근대건축이 자리를 잡는데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2-3. 집은 살기위한 기계다Le Corbusier가 예를 들어 설명하던 ‘집은 살기위한 기계다 ’라고 한 점은 정말 집이라는 것이 기계와 같다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칸트의 기계론에서도 설명했듯이 대상에 대한 보다 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구조적인 해석에 대한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근대건축이 추구하였던 기능성, 무장식, 기하학적인 형태는 어느 날 갑자기 필요에 따라 1차대전 후의 경제성을 추구하기 위해 발생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인상주의 회화와 근대건축, 그리고 그것을 매개하고 있는 근대철학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인상주의 회화와 근대건축 그리고, 근대철학에서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바로 본질에 대한 탐구였다. 여전히 우리 스스로 질문하곤 하는 ‘건축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이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신 중심의 시대에 종교건축이 발달하고 그 속에서 보다 장식적인 건축과 철학 그리고 회화가 발전했다면, 인간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는 시대에는 서민적인 것들로 변화하다가 결국에는 보다 더 근본적인 본질의 구축적인 성향의 것들로 바뀐 것이다. 즉, 인상주의의 색과 빛의 관계는 백색미학이라 불리는 빛과 그림자의 미학으로, 구도법의 변화에서는 무엇보다 전개도가 가능하고 구축성에 기초한 형태를, 건축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해석과 의미보다는 공간적인 해석으로 변화해 가는 것들이 그러한 변화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3. 인상주의에서 근대건축으로...3-1. 창조적 사고가난한 집안의 아들을 일류 대학에 보내겠다는 생각은 창조적인 사고다. 직원들이 스스로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도록 만든다면 그것 또한 다툼을 방지하는 실질적인 창조적 사고라고 볼 수 있다. 인상주의 회화의 변화는 당시로서는 신선한 바람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대상을 창조적으로 바라보고 보다 회화의 발전을 시도했던 창조적인 사고에 근거한 사건이었다. 또한, 근대철학 역시 앞으로의 평가를 기대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그 이전 시대의 사치스럽고 웅장한 건축을 벗어나 보다 합리적이고 그 시대의 흐름과 함께 움직이는 건축을 위한 건축적인 제안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창조적인 사고였다고 생각한다.지금은 너무나도 평범하다고 느낄 만큼 단순한 형태와 매스를 가진 건축공간은 지금의 우리의 사고가 아닌 당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담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이루어낸 생각의 틀을 먼저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인상주의 회화가 그 본질을 찾고 결국에는 본질에 대한 탐구에서 어떠한 본질을 찾기 위한 조각과 문학의 요소를 분해시켜나가면서 회화의 발전을 추구하였는지를 해석하다 보면, 결국에는 그러한 변화가 근대건축에서도 그 영향으로 인해 건축에 대한 본질적인 해석을 위해 요소를 분해하고 질서에 대한 구조를 파악하고 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음을 이상과 같은 해석을 통해서 자세히 알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
Report바우하우스가 현대 건축교육에 미친 영향[바우하우스 - 종합 예술 교육]현대건축교육의 경향은 점점 다원화되고 있으며, 각 학교 및 교육기관에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건축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건축교육이 성립되기 위한 역사적 배경에는 바우하우스가 존재했으며 그러한 배경을 토대로 하여 현대의 다양한 건축교육의 기틀이 마련되게 되었다.1. 바우하우스(Bauhaus) 종합 예술 교육1-1. 바우하우스 목표/취지① 모든 창조적 노력을 하나의 전체로 통합하고 조각 - 회화 - 수공예 - 공예 등 모든 실용미술의 교육을 새 건축에 꼭 필요한 요소로서 다시 결합하고자 힘쓴다.② 기념적인 미술과 장식적인 미술의 구별이 없는 통일된 미술작업, 즉 건축에 있다. (“모든 조형 활동의 최종 목표는 건축이다! 예전에는 건물을 장식하는 것이 조형예술... 중략 ... 오늘날 ... 건축가, 화가, 조각가는 복잡하게 나누어져 있는 건축의 형태를 그 전체에서 부분에 이르기까지 숙지...하면 저절로 그들의 작품은 살롱 예술에서 잃어버렸던 건축 정신에 의해서 다시한번 채워지게 될 것이다.” - [바이마르에서의 국립바우하우스의 방침])③ 공예 및 산업체 지도자들과의 지속적인 접촉을 확립하는 것이다.1-2. 바우하우스의 교육내용바우하우스 건축교육을 이끌었던 ‘발터 그로피우스’는 초창기 ‘에꼴 데 보자르’와 함께 수공예 중심의 예술 진흥 교육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바우하우스 교육은 후기로 가면서 기계의 필요성을 일부 수용하면서 발전하게 되고, 당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건축 교육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런데 바우하우스 예술교육의 주된 내용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거의 최초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건축교육의 배경이 되었다는 점이다.다시 말해서 건축뿐만 아니라, 회화/공예/인쇄/조각/직물/가구 등과 같은 건축 외에도 많은 예술분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는데, 이것이 가능하도록 한 바우하우스의 교육은 예비교육 - 이론연구/실습과정 - 최종과정의 순으로 전개되었다. 그 중 예비교육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예비교육 >전쟁으로 인해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할 기회가 없었고 학생들 사이의 능력차이도 현저했기 때문에 교육의 성과는 보잘 것 없었다. 이에 이텐은 모든 학생들의 기초조형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이텐의 견해에 그로피우스도 찬성했다. 그래서 이 제안에 따라 예비과정이 가을학기부터 시작되었다.그로피우스는 예비과정을 3단계로 구분했는데, 첫 번째는 학생들의 창의력과 예술적 재능을 개발시켜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는 스스로의 인식에 기초한 작품을 만들도록 한다. 두 번째는 학생들의 직업 선택을 용이하게 하기위해 여러 가지 기초훈련을 통해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조형분야를 찾아내도록 한다. 세 번째는 학생들에게 형태와 관한 기본원리를 교육시키는 것이다.이텐의 조형교육은 대비원리를 기초로 했다. 재료/질감/형태/색채/리듬/형태 등의 연구는 모두 대비의 관점에서 보고 교육되었다. 갖가지 대비의 성질을 인식시키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 되었는데 특히 재료와 질감의 연구에 역점이 주어졌다는 것이 예비과정의 중심과제를 차지했다.2. AA school과 베를라헤 건축학교를 통해 바라본 현대 건축 교육[현대 건축교육 - AA School과 베를라헤 건축학교]현대 건축에서 그 흐름을 살펴보게 되면 무엇보다 건축을 대하는 방법이 상당부분 변화해 온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건축 교육에서 기존의 장인들에 의해 주도되고 수제자의 개념으로 교육하던 기존 건축교육과는 달리 건축에서 건축 외적인 교육을 건축과 병행함으로서 보다 체계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점이다.이러한 현대 건축 교육에 있어서 주목해 볼만한 사건은 영국 AA School과 네덜란드의 베를라헤 건축학교의 설립이다. 영국 AA School과 네덜란드 베를라헤 건축학교가 공통적으로 바우하우스에게 받은 영향이라면 종합건축이면서 체계적으로 건축교육에 있어서 주도적인 변화를 이끌었다는 점이다.우선 영국 AA School에서는 수공예 장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설립이 되었다. 그 후 유수의 많은 건축가들을 초빙하여 바우하우스의 공방과 같은 형태의 Studio를 통해 수공예 교육에서 영향을 받은 구축성에 기초한 건축교육을 해 왔다. 반면 네덜란드의 베를라헤 건축학교에서는 바우하우스의 건축 교육에서 주로 다루었던 건축 및 건축 외적인 교육들이 이론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네덜란드 특유의 합리적이고 효율성에 기초한 교육으로 발전해 왔다.이러한 근대 건축교육 이념의 연속선상에 위치한 현대건축교육은 이 두 학교를 중심으로 주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이 두 학교 외에도 많은 세계의 현대 건축교육은 각 학교 및 건축교육기관의 특유한 커리큘럼에 따라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해 오고 있다. 즉, 이러한 모든 현대건축의 체계적인 커리큘럼 과정의 배경이 되는 것이 바우하우스 건축교육인 것이다.최근에는 이러한 건축교육을 중심으로 공부했던 이들이 영국의 AA School/네덜란드의 베를라헤/미국의 하버드 등을 주축으로 새로운 건축교육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바우하우스의 연속선상에 있는 이들의 경우, 다소 각 학교의 커리큘럼의 독창성 보다는 마치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분위기의 교육과정으로 흘러나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이것은 아마도 이러한 건축교육의 힘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미리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한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일제시대의 일제에 의한 건축교육으로 인해 바우하우스와 같은 예술 분야의 교육보다는 기능적이고, 공학적인 건축교육이 주를 이루어 발전해 왔다. 딱히 말해서 자체적으로 건축학적인 부분을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외국에서 외국의 건축교육 체계에 대한 교육을 받은 이들의 수혈을 통해서 새로운 건축 교육을 위한 각 학교마다의 색깔을 가진 건축 교육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모든 건축교육의 기본선상에 바우하우스가 존재했었고, 바우하우스 건축교육의 영향이 국내에서 어떠한 형태로 발전하였고, 발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자세에 달려 있는 것이다.우리나라의 건축교육의 흐름에서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커리큘럼 중심의 건축교육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모 대학의 경우에도 보자르의 건축교육을 발전시킨 건축교육, 네덜란드 베를라헤 건축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국내로 유입된 리서치 중심의 건축교육, 영국 AA School에서 건축교육을 받고 들어온 구축성에 기초한 건축교육 등 다양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우리 스스로 자문해야 할 점은 이러한 건축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내용과 이해이며, 바우하우스 건축교육에서 시작된 이러한 건축교육이 국내에서는 어떠한 방향으로, 자체적인 건축교육으로 변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다.[바우하우스와 현대 건축교육의 변화]3. 토의 / 결론이번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바우하우스 예술 교육에서 이어져 온 현대 건축 교육이 영국의 AA School과 네덜란드의 베를라헤 건축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건축학교에서 정규 커리큘럼을 배운 이들이 건축교육에 뛰어들게 되면서 건축교육에 있어서도 상당부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MVRDV라는 건축가의 경우, 이러한 건축교육의 연속선상에서 정치적/경제적 상황을 일종의 리서치를 통해서 디자인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학생들에게 교육하고 있으며, Rem Koolhaas의 경우 하바드 대학과 영국 AA school을 통해서 역사를 보다 분석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로서 다룸으로서 건축교육에 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Ghery의 경우는 현대 건축에 있어서 컴퓨터의 역할을 중요하게 다룸으로서 무정형의 건축형태가 가능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으며, UN studio의 Ben van berkle의 경우는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건축 방법론을 그들의 건축 교육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현대 건축 교육은 바우하우스에서 출발하여 각각의 건축학교를 통해서 보다 체계화 되었으며, 지금은 보다 체계화된 건축 교육을 통해서 자생적인 건축 시스템을 가진 방법론의 방향으로 흘러나가고 있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