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세계대전과 제2차대전사이의 기간은 관세전쟁, 보호무역주의, 그리고 경쟁적인 환율의 평가절하시기였다. 다른 나라를 희생시켜 자국의 이익(고용증대와 산출량증대)을 추구하는 근린궁핍화정책이 정점을 이룬 시기였으며 대공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국제간의 교류(상품의 수출입, 자본의 이동)는 거의 없는 상태였다. 또한 1차대전이후의 기간은 국제협력이 어려운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2차대전이 발발하였다.제2차대전이후 각국은 국제적인 협조가 매우 중요하며 전 세계적인 공통적인 문제에 대해 협조하고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서로 협력하고 공통문제를 논의하여 결정하는 국제적인 기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제2차대전후 유럽은 폐허였으며, 미국만이 연합국은 물론 적대국의 재건에 필요한 물자를 제공할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경제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제1차 세계대전후와는 달리 제2차 대전후의 국제정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국제경제가 신속히 회생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였다. 1940년대에 등장한 주요한 제도적 장치들, 즉 마샬플랜(Marshall plan), 브레튼우즈체제(Bretton Woods system), 그리고 이에 포함되는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들이 그러한 제도들이다. 당시의 이러한 국제 정세를 염두에 두고 2차대전 이후의 미국 경제체제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1. 경제 사상의 흐름자유주의는 15세기부터 시작된 상업혁명과 공장제수공업(매뉴팩처)를 통해 성장한 신흥 부르주아계급이 자신들을 봉건적 속박으로부터 해방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이 때의 자유주의를 흔히 고전적 자유주의라고 한다. 이들은 프랑스의 인권선언문(정식명칭은'인간 및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천부인권을 주장하면서 그들의 사유재산권을 보장 받았다. 이를 통해 시장경제체제, 자본주의체제가 더욱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는 18세기 산업혁명과 고전경제학자 애덤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 등과 결합하면서 새서게 된다. 이것이 수정자본주의, 후에 복지국가로 발전하게 되는 역사적 정황의 시작인 것이다. 물론 대공황의 탈출은 2차 대전으로 인한 전후 특수로 인한 것이긴 하지만, 1960년대 중반까지 세계를 주도한 것은 수정 자본주의였다. 이렇게 적극적인 국가의 개입은 독과점규제, 근로기준법, 노동관련법안, 최저임금제, 등의 분배, 복지정책으로 이어졌으며, 사기업이 담당하기 힘들었던 도로, 항만, 철도, 전기, 수도, 와 같은 분야의 공공화가 이루어져 엄청난 유효수요를 창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적 흐름은 탈냉전의 가속, 1970년대 석유파동, 식민지의 독립과 제3세계의 형성, 지나친 정부 개입으로 인한 성장률 둔화라는 '정부실패' 등의 등장과 함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그것이 바로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흐름이다. 신자유주의는 고전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시장원리를 강화시켜 경제성장의 활성화를 가져오자는 것이다. 영국의 대처수상은 1960년대 중반 계속되던 노동자들의 파업을 강압적으로 대처하고, 수많은 공기업의 민영화, 규제완화, 무역자유화 등을 추진하여 2차대전이후 '지는 해'로 몰락해 가던 영국을 다시금 일으켜 세웠다. 이를 본받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대처와 비슷한 경제정책을 사용하면서 경제의 활력을 불어넣게 된다. 이런 신자유주의의 흐름은 1948년 창설된 '관세 및 조세에 관한 일반협정'(GATT)체제의 강화, 즉 무역의 자유화로 이어지게 된다. 다시 말해, 수출산업의 육성과 국내산업 보호를 위한 높은 관세장벽을 철폐하고, 전 세계무역을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바람은 우루과이 라운드(UR)의 체결로 2차산업 (제조업)분야부터 불어닥쳤다. 그러나 이러한 무역자유화, 즉 세계화는 강대국 특히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일 뿐이었다. 단지 1970년대부터 엄청난 관세장벽으로 무역흑자를 구가하던 일본 등으로 골치를 앓던 미국이 내세운 원리였던 것이다. 따라서 빈국은 더욱 빈곤해지고 부국은 더욱 부강새로운 ‘대공황’을 막을 수 있는 신 세계경제질서를 주장했다. 뉴햄프셔 주의 소도시 브레턴우즈에서 1944년 11월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이 창립되어 통화, 금융, 무역에 새로운 경기규칙이 확립되었다. 1945년 이후 세계경제에서 해를 입지 않은 유일한 곳이었던 미국은 세계경제를 지배했다. 당시 미국과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좌익 지식인들과 경제학자들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그들은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들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에 바빴다. 또한 루스벨트와 트루먼 행정부는 다른 나라의 경제적 발전에 실제로 큰 관심을 두기도 했다. 마셜플랜을 통해 유럽은 다시 재기하여 기적 같은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달러와 금이 단단하게 묶여 있는 덕에 환율은 브레턴우즈 시스템 안에서 25년간 안정세를 유지하였으므로 세계무역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발판이 되었다. 미국은 무역장애를 제거한 좋은 선례였고, 유럽과 일본에 시장을 개방했다.그리고 당시 미국은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원조에 있어서도 선두를 달리며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을 도왔다. 미국은 수요의 조절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개발함으로써 실업률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 케인스의 이론을 따랐다.그러다 유럽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앞지르기가 주춤거리면서 워싱턴의 시각은 변화했다. 이미 60년대 초에 브레턴우즈 시스템에 1차 긴장이 고조되기는 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자국 군대에 드는 높은 주둔비용으로 미국의 경상수지가 마이너스로 미끄러지면서 미국은 그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 결과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은 이론적으로는 금과 바꿀 수 있는 달러를 점점 더 많이 보유하게 되었다. 다른 나라들의 달러 보유량이 켄터키 주의 포트 녹스 저장소에 보관되어 있는 미국의 금 보유량보다 많아져 달러를 평가절하 할 시기가 도래했지만 존슨과 닉슨 행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그들은 베트남 전쟁을 치르면서 세금인상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대신 더 이상 금으로 바꿀 수 없는 달러를 지출하여 무역 상대국들을되면서 유럽과 제3세계는 IMF와 세계은행 그리고 미국이 함께 가세한 압박에 눌려 신자유주의를 실행에 옮겨야 했다.8년에 거친 협상 끝에 세계무역기구를 탄생시키면서 우루과이라운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자 세계무역을 자유화시키겠다는 야심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특히 개발도상국들과 저개발국들은 공업 생산품과 서비스상품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 유럽, 일본이 보유한 일명 지적 재산으로 불리는 특허권을 존중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 그 대신 그들의 생산물은 산업국에 쉽게 진입한다는 약속이 주어졌다.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식품류와 섬유류처럼 그들이 특별히 경쟁력을 갖춘 상품은 산업국가에 진입하는 길이 막힌 경우가 많았다. 그에 대한 책임은 미국, 유럽, 일본에 공동으로 있다. 모든 산업국가들 중에서도 일본은 특히 강력하게 자국 시장의 빗장을 닫아걸었고, 유럽은 자국 시장을 보호하면서 자국 농민들에게 높은 수출 보조금을 지급하여 개발도상국들의 농산품과 부당한 가격 경쟁을 시킴으로써 가난한 국가들의 경제적 이익에 손실을 끼쳤다. 그러나 미국, 일본, 유럽은 정기적으로 자국의 무역관행을 옹호하고 개발도상국들에게 더 넓게 시장을 개방하라고 요구하면서 자국 내에서는 보호주의적 무역정책을 펼쳤다.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로부터의 섬유수입은 다섬유협정을 통해 엄격히 규제되고 있다. 설탕, 담배, 면화는 미국이 계속 엄청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분야로 수입관세와 쿼터제를 구사하여 외국과의 경쟁에서 자국민을 보호하고 있다.3. WTO3-1) WTO의 등장 배경2차대전 이후 세계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가 지배하는 무역체제 하에 있었다. GATT는 당시 국제 상황인 냉전 체제의 영향으로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해야 하는 미국의 국제적 이해와 맞물려서 미국의 적극적인 주도 하에 이끌려졌다. GATT가 가장 주력한 것은 각 국의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낮추어서 자유무역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하 끌어들였으며 국가 간의 경제 분쟁에 대한 판결 권과 그 판결 권의 강제 집행권을 가진 국제 교역의 UN역할을 하는 WTO체제를 성립하였다.25개 협상 참여국 중 우리 나라를 비롯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은 WTO설립협정에 대한 서명을 유보한 상태이다. WTO는 지금까지 GATT에 주어지지 않았던 세계무역분쟁조정, 관세인하 요구, 반덤핑규제 등 막강한 법적권한과 구속력을 행사하게 되었다.3-3) WTO등장에 따른 국제 경제의 변화WTO체제가 출범하면서 세계는 선진국, 개도국간에 교역 시의 차별을 두었던 시대는 가고 하나의 지구촌 경제로 단일화되어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주요 선진국은 자국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기업의 세계화를 지원하기 위해 다각적인 지원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역 블럭화 현상이 다소 완화된다. 모든 국가가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경제 전쟁에 참여함으로 블럭화가 그다지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또한 WTO체제는 국제 경제에 질적, 양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상품 교역에 적용되는 관세율은 오는 2000년까지 평균 3%이하로 낮아지므로 국제 무역량이 증가하게 되고 각국 국민의 경제 활동이 활발해진다. 그러나 WTO는 근본적으로 선진국에 유리한 자유 이념을 바탕으로 출범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뒤져 있는 개도국이나 후진국에는 불리한 면도 있지만 그 동안 순수한 경제 논리라기보다 정치적 고려 등이 많이 작용되던 후진국 시장의 경제 형태도 시장 원리에 의하나 경쟁 체제로 탈바꿈해 나갈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선진국의 주요 다국적 기업들은 저임금을 이용하기 위해 대회 투자 혼동을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다. 또 WTO는 회원국간의 분쟁 해결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데, 회원국들이 쌍무간의 협의나 조정으로 분쟁 해결에 실패할 경우 WTO산하의 상설 분쟁 해결 기구(DBS)가 조정에 나서는 것이다. 이와 같이 WTO체제하에서는 세계 경제의 활성화, 무역 장벽의 철폐에 따라 수출환경이 크게.
? 주제 : 어떠한 조직을 선택해서 그 조직 안의 여러 가지 내용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조직이 민주적인가?- 조직 성원들은 그 조직 안에서 얼마나 참여하는가?- 그리고 얼마나 만족하는가? 등등에 대해서..Ⅰ. 들어가는 말비공식 조직은 협동하는 인간의 개인적 접촉에 따라 또는 상호작용에 따라 형성되는 자발적인 집단조직이다. 따라서 개인이나 집단의 측면에서 비이성적인 행위나 관습에 따라 인간관계지향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집단의 형성에 있어서 행동적 관심을 갖고 구성원은 전체로써 집단에 귀속하고 집단의 감정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조직이론의 현재와 미래 : 최재열 외저)이러한 비공식 조직의 형성 내용을 보면서, 우리 조는 그 안에서의 조직 활동이 매우 민주적일 것 같다는 생각에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형성 내용으로 더 비민주적인 성향을 띄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앞의 비공식 조직의 형성에 한 부분 중 ‘구성원의 전체로써 집단에 귀속, 집단의 감정 속에서 살아가는 것 ’을 보면 그 조직 안의 귀속되고 같은 감정을 가지려면 그만큼 그 집단의 성향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비공식 조직이 공식 조직처럼 딱 정해진 어떠한 규범이나 성격이 있어서 한 개인의 자유를 억제하고 그를 따르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의 관습처럼 정해져 있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은연중에 강압적인 성격이 있다라고 생각했다.예를 들어, 대학교 동아리를 보면 처음에 자신이 원해서 들어가고, 그 안에서 활동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대학 생활의 적응이나 인간관계를 넓히는 등등 그러나 또한 그 조직에 적응하고 활동하려면 자신이 원하지 않은 행위나 관습을 참여하거나 동의 해야한다. 술 자리에 꼭 참석해야 하거나 선배의 강요로 하기 싫은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경우 등등그래서 우리 조는 비공식 조직의 한 예인 대학교 안의 축구 동아리를 인터뷰 함으로써 이러한 모습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Ⅱ. 비공식 조직1. 정의- 비공식조직이란 어떠한 조직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조직성원들이 일상적인 접촉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성원들간의 인간관계이며 인격적 관계이 다.- 요원들의 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고 도면으로 표시도 못하는 유동적인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비공식적 인간관계이다.2. 비공식조직의 특성- 비공식조직은 공식조직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도록 도울 수도 있고 반대로 비효과적으로 되도록 하는 작용도 한다.3. 비공식조직의 형성 요인- 공식적 권위와 사실상의 영향력사이의 상당한 갭 발생, 혈연·지연·이해관계·취미·종교·동 창관계 등에 따라 각종 소집단 형성- 공식조직내에서 구성원이 자기완성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자생집단을 형성하기도 한다.4. 비공식조직의 기능? 순기능- 구성원들에게 공식적으로 부과된 업무를 능률적으로 수행케한다.- 귀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공식조직에서 오는 소외감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 게 한다.- 구성원이 서로 정보를 교환할수 있는 의사소통 통로를 확장시켜준다.- 조직구성원의 좌절감과 업무태도나 조직의 내부현상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조직도표가 형식적인 내부사정을 제시하는 데 대해 비공식적조직은 조직의 생리·병리 를 알려준다.- 구성원으로 하여금 자기실현, 자기혁신 및 자기개발을 가능케 하는 역할을 한다.? 역기능- 파벌을 조성하고, 구성원이 불안감을 가질 때에는 이것이 조직 전체에 확대되어 공식 조직을 약화 또는 해체시킬 수도 있다.- 비공식적 접촉을 통하여 개인적 이익을 도모하여 情實(정실)이 조장되고, 조직단위 사 이의 간격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5. 비공식조직에 대한 통제- 비공식조직의 존재를 인정하고 충분히 이해함으로써 공식조직의 목적을 보다 능률적으로 달성하는데 기여하도록 이를 지도·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한 접근이다.
■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프랑스 대혁명은 대표적인 시민 혁명으로서 그 원인은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 즉 혁명 전의 프랑스 사회인 구제도의 모순에 있었다. 앙시앵이란 '오래된', '낡은'이라는 의미이며, 레짐은 '제도'또는 '체제'를 의미이다. 따라서 앙시앵 레짐은 근대 사회로 변모해 가는 당시 상황에서 이미 낡은 제도, 즉 봉건적 신분제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당시 소수의 특권층인 제1신분 성직자의 수는 총인구 2700만명 중에서 극소수인 10만명 정도였지만, 전국토의 1/10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영주로서 봉건지대를 받고 십일조를 징수하는 특권과 면세의 혜택을 누렸다. 제2신분인 귀족은 40만명 정도로서 전 국토 1/5 정도의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농민으로부터 지대를 받았고, 교회·군대·행정의 고위직에 앉아 연금을 받았으며, 지세인 타이유(taille)와 도로부역에서 면제되는 등의 실질적인 특권을 누렸다. 그리고 칼을 찬다든지 하는 형식적인 명예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귀족은 혈통귀족인 대검귀족과 법복귀족으로 나뉜다. 법복귀족은 부유한 부르주아지 출신으로 관직을 매입하여 귀족이 되었고 법관직이 많았으며 재산관리에 능하였다. 이들은 점차 혈통귀족과 거의 같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대검귀족이 법복귀족을 경멸하였으나, 점차로 양자간의 차이는 사라졌다. 귀족은 막대한 토지 소유, 교회·군대·정부요직 차지·면세 특혜를 향유하였다.특권신분인 제1신분과 제2신분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의 대다수는 제3신분에 속하였다. 그 수는 전 인구의 96%에 달하였으며, 거기에는 가장 부유한 부르주아지로부터 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계층이 포함되었다. 이 중에서 대다수는 농민으로서 총인구의 3/4을 차지하고 있었다. 18세기 프랑스 농민은 동유럽의 농민들과는 달리 농노 신분에서 해방되어 있었다. 영국의 농민들이 인클로저 운동으로 농업노동자로 전락했지만 프랑스의 많은 농민들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소유한 토지 규모는 살통이었다. 정부는 7세 이상은 1년에 일정량 이상의 소금을 사도록 강요하였는데, 정부에서 파는 소금은 실제 시세의 10배였다. 염세 때문에 매년 30,000명 이상이 투옥되고 500명 이상이 처형되었다. 또한 염세를 정부 관리자가 징수하지 않고 개인이나 회사에 청부를 주어 징수하였으므로 청부업자들의 횡포가 심하였다. 제3신분 중 가장 중요한 계층은 시민계급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계급은 금융업자·상공업자·법률가·의사·문필가 등 자유업 종사자이다. 이들은 재력과 능력이 뛰어나 사회 발전에 필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평민이라는 신분적 제약때문에 특권귀족의 하위에 있었고, 정권으로부터 배제되어 있었으며, 경제면에서 봉건적 잔재 때문에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시민층은 소상인과 수공업자를 포함하는데 이들은 자본주의 발달로 인해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할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3신분은 불만을 가지고, 구제도의 모순을 타파하고 그들에게 적합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 했다.■ 프랑스 대혁명의 과정혁명은 프랑스 사회를 근본적으로 동요시켰다. 그것은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선포하고, 처음으로 입헌통치를 실험하고, 행정을 개혁하고, 새로운 인사들의 상승과 함께 토지소유의 광범위한 이전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은 열광적 분위기가 폭력의 충동, 유혈사태, 국경에서의 전쟁과 교차하는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다. 혁명은 삼부회의 소집으로 시작되었다. 1789년에 국가가 파산의 일보 직전에 있었기 때문에 루이 16세는 이 극한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사실상 병의 뿌리는 깊은 곳에 있었고 많은 복잡한 요인들이 동시에 작용했다. 군주제의 권위의 약화, 고등법원의 프롱드 난, 모든 세제개혁을 거부하는 특권층의 반란, 철학적 이념의 비약적인 발전, 미국의 사건의 영향, 광범위한 부르주아 층의 상승, 경제적 분위기의 돌연한 긴장 등이 그것이다.1789년 5월 5일, 삼부회가 베르사유에서 루이 16세와 네케르의 참석하에 개회했다.1,139명의 대6월 20일, 제 3 신분의 대표들은 그들의 회의장이 국왕의 명령에 의해서 폐쇄되었음을 발견했다. 6월 23일, 세 신분이 참여한 엄숙한 회의에서 루이 16세는 제 3 신분이 취한 결정을 파기하고 세 신분이 별도로 회합할 것은 명했다. 왕의 군대는 거의 믿을 수 없었고, 파리와 베르사유의 주민들은 모두 제 3 신분에 헌신적이었다. 성직자들 대표의 대부분과 이미 몇몇의 귀족들이 제 3 신분에 가담했다. 루이 16세는 굴복했다. 6월 27일, 국왕은 전체 회합에서 머릿수로 표결할 것을 명령했다.7월 9일, 국민의회는 스스로 제헌의회라고 선포하고 왕국의 헌법을 기초하는 과업에 착수하였다.궁정은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7월 초, 3만 명에 가까운 병사들이 파리와 베르사유 사이에 주둔했다. 7월 11일, 루이 16세는 인기 있는 네케르를 해임했다. 네케르의 해임소식은 파리에 12일에 알려졌고 분노의 시위와 흥분의 연설을 부추겼다. 부르주아들의 민병대가 구성되었다. 13일, 군중은 무기를 찾고 점포를 약탈했다. 7월 14일, 노동자들과 장인들로 구성된 군중이 소총을 찾으러 바스티유로 향했다. 총격사건이 터졌고, 오랜 전투끝에 수비대가 항복했다. 군중은 바스티유의 수비대장인 로네를 길거리로 끌어내고는 때려죽었다. 바스티유의 함락으로 국왕은 다시 후퇴하여 병사들을 돌려보내고 네케르를 다시 불러들였다.혁명의 움직임이 지방에까지 확산되었다. 파리처럼 대도시들도 새로운 자치제와 국민방위대를 구성했다. 도시들은 연맹의 협약을 맺고 서로 결합했다.농촌의 대규모 봉기를 피하기 위하여 1789년 8월 4일 밤에 모인 의원들은 특권과 수많은 봉건적 권리들을 폐지한다고 결정했다.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취해진 이 날의 결정은 구사회체제를 파괴했다. 곧이어 의회는 인간과 시민의 여러 권리에 대한 선언을 기초했다(8월 26일).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로 쓰여진 이 17개조는 새로운 사회의 토대를 놓았다. 만인의 법적인 평등, 노동-언론-양심의 자유, 소유권 등이 인정을 받고 법전으로 작성외었다.생겨났다. 베르사유에 도착한 여인들은 국왕의 영접을 받았고, 국왕은 미결의 법령들을 재가할 것을 승낙했다. 6일 새벽, 루이 16세의 한 호위병이 그 무리의 한 노동자를 살해했고 곧이어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성이 습격을 받았고, 군중은 국왕의 파리 귀환을 요구하여 그 뜻을 이루었다. 1789년 10월 6일, 베르사유는 텅 비고 거대한 행렬이 왕가를 파리로이끌었고 며칠 뒤에 제헌의회가 그 뒤를 따랐다. 이 후 파리는 혁명의 주 무대가 되었다.소요가 다시 줄어들고 왕국은 1789년 가을에서 1791년 봄까지 휴식기를 맞이했다. 튈르리 궁에 자리잡은 루이 16세는 입헌군주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의원들은 왕국을 개주했다. 프랑스는 입헌군주제가 되었다.왕국의 행정이 재조직되었다. 그 행정은 선출된 시민들에게 맡겨졌다. 혁명은 광범위한 탈중앙집권의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 판사들 역시 선출되고, 재판은 공개되었고, 선고는 국민을 대표하는 배심원단이 내렸다. 파기의 가능성이 고려되었고, 법의 통합작업이 이미 시작되었다. 쓸데없는 고통을 피하기 위하여 기요탱 의원은 단두대의 활용을 제안했다. 계몽사상의 인사들로서 경제적 자유주의의 명제를 받아들인 의원들은 규제와 독점을 폐지했다. 동업조합이 사라졌고, 개인적인 창의력의 발휘가 가능하게 되었다. 르 샤플리에 의원은 파업의 금지법안을 통과시켰다.여전히 재정의 적자와 50억 리브르에 가까운 부채가 본질적인 문제였다. 이것이 바로 삼부회 소집의 동기였던 것이다. 파산을 피하기 위하여 의원들은 1789년 11월 2일에 39억 리브르로 추산되는 성직자들의 재산의 국유화를 선포했다. 성직자들의 생계를 마련해줄 책임을 국가가 맡았다. 즉각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의회는 국유재산을 담보로 하는 국고채권인 아시냐(les assignats)를 발행했다. 그것은 1790년 8월에 새로운 지폐가 되었지만 그 성공은 어정쩡한 것이었다.1791년 의회는 이전의 조세제도를 폐지하고 “기여금(les contribution)"이란 이름의 새로운 조세를 출신의 약간의 대표들은 제 3 신분을 지지했고, 교회재산의 국유화는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조치로 말미암은 종교의 재조직은 카톨릭 교회와 혁명 간의 분열을 유발했다.1791년 3월, 교황 피우스 6세는 혁명의 과업, 특히 성직자의 시민헌장을 비난했다. 이렇게 카톨릭과 혁명 사이에 결렬이 나타나서 선서파의 많은 성직자들이 선서를 취소했고 애국파의 많은 인사들은 성직자들을 반혁명 분자와 동일시했다.구체제와 혁명 사이의 타협은 1791년부터 누적된 어려움을 오래 견디어내지 못했다. 1791년은 흉년이었다. 이제까지 굳게 단결했던 삼부회의 대표들이 분열했다.외국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나타났다. 혁명은 외국의 군주들을 불안하게 했고, 그들은 망명귀족들의 하소연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프랑스의 남부지방에서 특권파의 인사들이 소요를 일으켰다. 루이 16세는 외국의 궁정들과 몰래 서신을 주고 받았다.루이 16세가 왕국의 새로운 조직을 받아들였지만 그것은 마지못해 한 것이었다. 1791년 3월, 혁명에 대한 교황의 비난은 그를 크게 움직였다. 1791년 6월 20일, 왕가는 튈르리 궁을 빠져나와 시륜마차를 타고 메스에 있던 부예후작의 군대에 합류하려고 했다. 부예는 파리로 진격하여 군주전을 다시 세우려는 목적을 가졌다. 그러나 국왕의 도주는 준비가 소홀하여 실패로 끝났다. 6월 21일, 바렌에서 사람들은 국왕을 알아보았고 군중이 국왕을 억류했다. 파리에서 충격은 컸고 국왕은 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귀환했다. 공화정의 주장이 확산되었다. 외회는 왕권을 정지시켰으나 분열했다. 국왕은 마침내 7월 15일에 권한을 되찾았고 이러한 결정은 다시 민중의 소요를 야기했다.바로 이러한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제헌의회는 과업을 완수했다. 애국파의 움직임은 깊게 분열했고, 국왕은 신임을 잃었고, 종교적, 세제상의 어려움은 해소되지 않았고, 공화정의 움직임이 형성되었다. 1791년 9월, 루이 16세가 새로운 헌법에 선서했던 한편, 파리에서는 새로운 선거로 새로운 대표들이 뽑혔다.1791년 10월
정부는 조세, 주식과 같은 정부 보유 재산의 매각, 국공채 발행, 수수료 및 각종 벌과금 등을 수입으로 하여 국방, 외교, 치안 등 국가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역할 외에도 경제성장을 위한 기반의 조성이나 사회복지 확충등 필요한 부문에 지출하며, 이러한 정부의 수입, 지출 활동을 재정이라고 한다.정부도 가계나 기업과 같은 민간 부문처럼 수입을 마련하여 지출 활동을 수행하지만, 다음과 같은 점에서 다소 다르다.가계는 노동 등 생산요소의 공급으로, 기업은 생산한 물품이나 용역의 판매로 수입을 얻지만, 정부는 조세라는 강제적인 방법으로 수입의 대부분을 조달한다.재정의 기능은 크게 자원 배분의 조정, 소득의 재분배 그리고 경제 안정화 등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행정부는 다음 해의 수입, 지출 계획인 예산안을 편성하여 국회에 제출하고 의결을 받은 후에 수입, 지출 활동을 수행하며, 그 결과는 그 다음해의 상반기 중에 결산하고 이를 국회로부터 승인을 받게 된다.따라서 예산뿐만 아니라 수입과 관련한 조세, 결산, 그리고 국유 재산의 관리 등 국고 업무를 모두 포함하여 재정활동이라 할 수 있다.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은 시장경제체제에 의하여 대부분 수행되지만 공공재의 공급 등은 시장경제의 기능만으로는 효율적인 배분을 기대하기 어렵다.따라서 정부가 자원 배분에 개입하여 조정하게 된다.그리고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이루어지더라도 국민들간의 소득분배까지 공정하게 된다는 보장은 없으므로 정부는 거시경제의 운영에 있어 재정, 금융, 외한 등 거시정책 수단을 통하여 경제의 안정화를 도모하게 되며, 재정은 이러한 거시경제정책 조합의 하나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건전한 재정은 국가경제 최후의 안전판이다.과거 건실한 재정운영이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규모 재정투자를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향후 어떠한 경제위기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재정건전성의 조기회복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이를 달성할 수가 없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합심하여 세금을 더욱 아껴 쓸 수 있도록 힘을 합쳐야만 한다.재정건전성 회복과 아울러 미래에 대비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투자도 소홀히 할 수 없다.오늘날 우리 재정은 두 가지 다소 상충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재정운영을 효율화하고, 합리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또한 정부는 세금을 내는 국민이 주주인 기업이라 할 수 있다.정부재정이 한푼이라도 낭비되지 않고 효율적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재정운영 실상이 주주인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며, 국민 각계각층의 끊임없는 관심과 감시가 필요하다. 주요 부문별 재원배분 모습(억원, %)분야03 예산04 예산안증감증가율사회복지111,266121,55110,2859.2%교육249,036263,90414,8686.0%과학기술(R&D)56,09160,5594,4688.0%정보화16,38017,4121,0326.3%문화?관광(체육 청소년포함)13,182(14,864)13,930(15,153)748(289)5.7%(1.9%)SOC 투자(03년 본예산)182,830(166,899)171,679(171,679)△11,151(4,780)△6.1%(2.9%)산업?중소기업(한시적 금융지원 제외)38,635(21,735)34,289(25,557)△4,346(3,822)△11.2%(17.6%)농어촌지원(각부처 농특세 사업 포함)104,257(111,585)105,542(114,237)1,285(2,652)1.2%(2.4%)환경개선(수질개선 양여금 포함)17,301(33,138)17,807(31,226)506(△1,912)2.9%(△5.8%)통일?외교7,3757,7013264.4%국방비175,148189,41214,2648.1%사회복지는 좁은 의미로는 사회보험, 공적부조, 사회복지 서비스를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숭 있고 보다 넓은 의미로 보면 국민의 삶과 질 향상과 관련되는 주택, 환경, 문화 분야까지 포함된다.재정 측면에서 사회복지 예산은 사회보험, 공적부조, 사회복지 서비스만을 포괄하는 좁은 의미를 기준으로 하며, 요즈음 흔히 사용되는 사회안전망과 거의 유사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사회보험은 노령, 질병, 장해, 실업 등의 사회적 위험에 대한 사전적 보장을 통해 취약 계층에 대한 사후 보호 기능을 하는 2차적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우리 나라 사회복지 예산지출 수준을 선진국과 비교하여 평가할 때 우리 나라의 노령인구 비중이 아직 선진국에 비해 낮고 사회보장제도도 도입기간이 길지 않아 사회보험지출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낮게 나타나는 복지 환경의 차이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이를 위해 사회복지부문 예산도 점차 확대되어 오고 있는 추세이나 아직은 낮은 수준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앞으로 급속한 노령화와 함께 국민연금, 산재,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의 역할이 점차 강화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 나라의 사회복지 지출수준도 계속 증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미국 과학계에서는 새로운 바람이 일고 있다. 미국의 물리학자 하인즈 페이겔스(Heinz Pagels) 교수는 1988년에 발간된 「이성의 꿈」(The Dreams of Reason)이라는 저서에서 과학을 단순성의 과학과 복잡성의 과학으로 구분하고, 새로 대두하는 복잡성의 과학에 대한 중요성과 그 전망을 다루었다.단순성의 과학은 자연을 가장 단순한 단위로 환원시켜 해명하려 한다. 이러한 단순성의 과학이 현대 과학에 많은 공헌을 한 것은 사실 이지만, 한편으로 자연 현상의 중요한 일면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우리가 일상 경험하는 자연은 단일 원자가 아니라 수백만 이상의 다수의 분자 집단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것이다. 다수 분자가 모인 집단의 복잡성이나 혼돈의 현상을 지배하는 전체의 법칙을 찾아내려는 것이 복잡성의 과학이다.단순성의 과학이 자연을 분할하고 또 분할하는데 주력하는 것이라면 복잡성의 과학은 그 분할한 것들을 다시 종합하여 자연 본연의 전체 자태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것은 추상적인 극미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거시의 세계, 즉 우리의 경험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 이 과학은 자연 현상 중에서 특히 요동 현상이 두드러진 것을 다루는 기상학, 해양학, 생태학 등은 물론이고, 인간 사회의 경제학, 사회학, 군사학 등의 발전에 획기적 공헌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1.거시적 질서빈번히 인용되는 성장의 한계들 은 역학 구조의 진화에 의해 극복된다. 그들은 새로운 구조의 보다 넓어진 한계들로 다시 나타난다. 자연계에 있어서는 과정들이 하나 이상의 구조를 가지고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들고 있는 실례에 의하면, 수압과 통류가 증가함에 따라 층류 구조의 불안정이 일어나고 일종의 난류 구조가 나타나며, 이 새로운 구조가 다섯 일련의 난류 구조를 거쳐 진화하게 된다. 여기서 구조라 함은 동일한 구성 요소들로 이루어진 고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동일한 가닥을 통하여 새로운 물 분자들을 흘려보내는 역학적 체제를 가리킨다.거시적 질서는 우리들의 일상 경험에 있어고 있다.그러나 진정한 체계 안에서는 거시적인 모든 성질들이 그 구성 요소들과 그들의 조합으로부터 우러나오지는 않는다. 흔히 거시적 성질들은 정태적 구조들이 아니라 그 체계 내부와 동시에 그 체계와 환경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동적 상호 작용의 결과다.시스템적 견해가 역동적 전망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이미 암시하고 있다. 아주 일반적으로 한 시스템은 그 상호 작용을 통하여 한 시스템으로 관찰되고 정의될 수 있는 것이다.1-1. 물리학 연구의 3단계그러한 체계, 역동적 견해는 물리학을 지배하는 환원론을 국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일리야 프리고진의 제의에 따라 물리학에 있어서는 서로 환원 불가능한 탐구와 기술에 있어 적어도 3단계를 구분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19세기에 열역학이 발달함에 따라 이자 집단 전체를 고려하는 거시적 관점이 도입되엇다. 열역학은 다수의 분자들이 운동을 가져오는 평균적인 효과를 표현하는 온도와 압력 등의 용어로 명제를 지어 낸다. 이러한 기술 수준은 과정들, 바꾸어 말하면 거시적 가치 체계의 변화 질서를 대상으로 한다. 고립된 체계의 이른바 엔트로피는 그 체계가 열역학적 평형에 도달할 때까지 증가할 수 있을 뿐이다. 엔트로피는 그 체계 안의 에너지의 지을 측정하는 수단이다. 기계적인 기술 방식과는 대조적으로 이 새로운 기술 수준의 특징으로 과정들의 비가역성 또는 지향성이 도입된다. 현재를 기준으로 고립된 체계가 미래에 제시하는 모든 거시적 사태는 동일하거나 보다 높은 엔트로피를, 그리고 과거의 모든 상태는 동일하거나 보다 낮은 엔트로피를 산출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반대는 불가능하다. 모든 비환원적 과정들은 엔트로피를 산출한다.고전 열역학은 평형 체계들 혹은 평형에 가까운 체계들을 다루고 있다. 환경이 없는 고립된 체계는 특수한 유형의 자기 조직(또는 정확히 말해서 자기 해체)이다. 그것은 평형 상태를 향해 진화하여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비가역성과 더불어 역사 관념들이 등장한다. 시간에는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방향이 주어진다. 그 체계는 단일와 물질 침투를 처리하는 방식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보다 큰 관심의 대상은 환경과의 교환을 통하여 스스로 에너지와 물질의 침투를 유지하는 이들 물리-화학 반응 체계들이며, 이들은 장기간에 걸쳐서 전반적으로 안정된 구조들의 자기 조직을 유발한다. 이 구조들은 좁은 의미의 산일 구조들이다. 그들은 계속적으로 엔트로피를 산출하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엔트로피를 산일 시킨다고 해서 그렇게 불려 왔다. 그들은 체계 그 자체의 정태적(끌어당기거나 물리치는) 힘을 사용하는 보수적인 자기 조직과는 대조적으로 산일적인 자기 조직에서 나타난다.산일 구조들은 두 가지 다른 유형의 행태를 보여 준다. 평형에 가까울 경우에는 질서가 파괴되고(고립 체계에서와 마찬가지로), 평형에서 멀 때에는 질서가 불안정의 문턱 너머에서 유지되거나 나타난다. 후자와 같은 유형의 행태를 일관적 행태라 부른다. 하지만 이 엔트로피는 체계 안에 축적되지 않고 환경과의 계속적인 에너지 교환의 일부를 이룬다. 어느 산일구조의 성격을 규정짓는 것은 주어진 순간의 체계의 전체 에너지의 차지하는 엔트로피의 통계적 수치가 아니라 엔트로피 산출 비율과 환경과의 교환-다시 말하면 에너지 침투와 전환의 밀도의 역동성이다.산일 구조는 끊임없이 자기를 갱신하여 일종의 특수한 역학 체계, 전 지구적으로 안정된 시공 구조를 유지한다. 그것은 오로지 자체의 통일과 자기 갱신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무엇이 생성되든 그것은 그 자체와 다른 모든 것들과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이 개념이 완전히 전개될 때 물리적 실재를 기초적 구성 단위 또는 기초 법칙으로 환원하기란 불가능하다. 거시 우주들의 개방적인 진화 역시 다름 아니 s자기 일관성에 바탕을 두고 있으리라 생각된다.환경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느 체계가 환경과의 교환-특히 물질, 에너지와 정보 교환-을 유지할 때 개방적이라고 하며, 새로운 것과 예상하지 않은 것을 향해 열려진다. 그들의 환경과 교환이 없는 체계들을 고립 체계라 부른다. 환경과의 교환은 내적 상태가 비평형인 체계에 짓는 것은 산일 구조인 것이다.구조 보전적 체계들은 이미 평형에 도달한 체계들, 그리고 다만 평형을 향해 나아가며, 그 역학은 그 목표인 평형을 향하고 있는 체계들로 다시 세분할 수 있다. 이 역학은 진화의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기 때문에 역진화라 부를 수 있다.3. 요동을 통한 질서 : 체계 진화열역학 질서 너머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산일 구조는 역동적 발전의 끝이 아니다. 환경과의 에너지 교환이 유지되고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요동들이 주어진 역동적 체계의 틀 안에 흡수되는 한 그 구조는 안정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어느 비평형 체계의 구조도 그 자체만으로 는 안정될 수 없다. 요동이 임계 규모를 넘어설 때면 어떤 구조라도 문턱을 넘어 새로운 체제로 몰려갈 수 있다. 이것은 그 체계의 역학적 존재의 질적(質的) 변화와 상응한다. 새로운 역동적 체계로의 이행은 엔트로피 생산 능력을 갱신하게 되며, 이 과정을 넓은 의미의 생명으로 볼 수 있다. 생명은 언제나 진행하는 것이다.그와 같은 요동은 외부로부터 가져오는 기제의 요동을 가리킨다. 그와 같은 요동은 외부로부터 다소 임의적으로 그 체계를 치는데 이를테면 새로운 반응요인을 추가하거나 옛 반응 요인을 추가하거나 옛 반응 체계의 양적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 안에서 정의 피드백에 의하여 일어날 수도 있으며, 그 피드백은 이 경우에는 진화적 피드백이라고 불린다.그와 같은 진화적 피드백은 화학 반응 체계 내부에서 일어나는데, 예를 들면 새로운 물질형성에서 일어날 수 있듯이 그 동력 원리들이 수정되고 그로 인하여 새로운 비선형성이 도입되는 것과 같다. 질량 단위 대비 에너지 산일이 증가하고 그 체계는 외부의 힘에 의해 불안정 상태를 지나 체계와 환경과의 보다 높은 상호 작용 수준에 상응하는 새로운 체제로 나아간다. 이 개념들은 전생물 진화에 관한 최신 이론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요동에는 지정한 자기 조직과 자기 강화가 없다. 요동이 일어나는 체계의 운동과 그 형태시적 기술은 전체적으로 그 체계가 새로운 구조-기능 질서로 편입되는 방식을 기술하면서 결정론적인 요소를 강조한다.4. 자기 조직 체계들의 모델 설정화학 반응 체계 내부에서 산일 구조의 형성에 기초가 되는 세 가지 조건들은 환경과 에너지-물질 교환을 향한 개방성, 평형으로부터의 원거리 유지, 그리고 자기 촉매 단계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이 조건들을 만족시키고 비교적 안정된 반응 참가 요소들 을 가지고 있는 체계는 반응 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 체계의 역학은 과정들이 화학적 성질을 지니고 있지 않은 때라 하더라도 동일한 기초 방정식으로 기술된다.산만하게 결합되어 사실상 연속체와 거의 마찬가지로 상호 작용하는 다수의 비선형 요소들을 포함하는 체계는 어느 경우나 에너지 침투량의 증가로 인해서 비평형 상태로 몰려들어갈 수 있으며, 따라서 산일 구조들의 전형적 형태, 즉 자기 갱신과 체계 진화를 보여 준다. 카찰스키는 일반화한이론을 생물학 및 신경 생리계에 일찍부터 응용하는데 중요한 촉매의 역할을 했다.요동의 자기 증폭에 의한 자기 갱신적 존재와 진화적 자기 조직은 사실상 수많은 생물학, 사회 생물학적 및 사회 문화적 체계들의 성격을 규정하다. 산일 구조를 위해 개발해 온 바로 그 형식 논리의 도움을 받아 체계 역학들을 기술하는 데 비교적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을 순수한 물리적 과정들의 수준으로 환원했다는 물리주의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그 과정들과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구조들의 본질은 그 틀을 밑받침하고 있는 역학과는 별개의 것이다. 지금까지 브뤼셀레이터 라고 불리 온 방정식 체계안의 추상적 관계는 흔히 한층 뒷단계에 가서야 그들의 경험적 확인을 찾게 되는 역학 형태의 풍부한 양식을 조성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들 수학적 관계는 화학 이외의 차원들에서 역학의 모델 설정에 응용된다.물론 상응하는 추상적 및 실재적 현상을 찾아내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상상력이 요구된다. 이를테면 생태 체계에 있어서 자기 촉매 단계는 환경에 충분한 먹이가 공급되는 상황에서이루어지는 종의 자기 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