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피해와 가해 - 그 사이의 역학과 진실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지리적으로는 가장 인접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 일본. 그러나 일본과 우리나라의 지난 수십 년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결코 순탄치 않은 애증의 가시밭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제 치하 35년간, 우리 민족은 뼈아픈 고통과 수난의 시대를 살아야 했고, 현재까지도 그 쓰라린 진통의 후유증은 계속 되고 있다. 일본은 그 치열하고 잔혹한 역사적 가해 행위의 주범으로서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제대로 된 정신적, 물질적 피해보상은 물론이거니와 침략 사실까지 부인 하는 등, 패전 후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정한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일본 정치가들의 거듭된 망언으로 그것도 매년, 바람 잘 날이 없었던 한일관계.아니나 다를까 2007년 새해벽두가 지나자마자 큰 이슈가 되었던 ‘요코 이야기’ 논란에 이어 최근 아베총리의 ‘위안부 강제동원 부인’ 발언으로 한일관계가 또다시 큰 풍파에 휩쓸리고 있다. 특히 ‘요코 이야기’는 조선인을 가해자로, 일본인을 피해자 입장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일본어와 일본문학을 전공하는 나로서도, 진정한 역사속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누구인지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몇 달 전에 미국 학교에서 학생들의 읽기 교재로 사용되었다는 ‘요코 이야기‘. 한국에서도 이미 번역, 출판된 책으로, 2차 대전 직후, 일본 민간인들이 겪은 고난상을 다룬, 전쟁의 피해에 대한 고발 기록이다. 문제가 된 것은, 전쟁이 끝나고 일본이 패전국이 되자, 한국인들이 한국에 남아 있던 일본인 여자를 강간하는 내용을 실어 자신들을 피해자로 그렸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인 요코 가와시마 윗킨슨은 우리나라 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인을 나쁘게 말하거나 한국역사를 무시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며 “이 책으로 인해 한국 독자들에게 상처를 입혀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그러나 사실에 왜곡은 없다. 일본인으로서 이 책을 쓰지 않았으며 단지 어릴 적 경험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출처 : 중앙일보 손민호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silhouette7/7511136)나는 그녀가,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 평화 운동가로서 활약하고 있는 점에서도 미루어 보아, 한국과 한국인들에 대하여 어떠한 역사적 악의를 가지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전쟁 와중의 혼란 속에서 한국인들이 일본인 여자를 강간한 사건은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전쟁’이라는 비인륜적이고 잔인한 상황 속에서, 죄없이 희생된 무고한 일반 시민들은, 그 국적을 막론하고 누구나 피해자인 것이다. 일본의 원폭 피해도 그렇다. 일본에 있을 때, 절친했던 기숙사 옆방 일본 친구와 둘이서 히로시마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원폭 돔과 기념박물관이 있는 평화의 공원을 함께 방문하였는데, 일본이 당한 원폭의 ‘피해’만 강조하고, ‘왜’ 그 원폭이 투하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은 없는 기념관을 둘러보며,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도 들었지만...(이 문제에 대하여 그 일본친구와 밤을 새워 허심탄회 하게 토론하면서, 이런 나의 생각을 이해하고 동조하는 일본친구의 모습에서 또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원폭을 맞고 죽어간 무고한 시민들의 끔찍한 현장과 생존자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며 국적을 떠나 인간이 일으키는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더욱 안타깝고 슬픈 생각을 금할 길이 없었다.따라서 이성을 잃은 채 무조건 한국(피해자)-일본(가해자)라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이를 무턱대고 비판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바이지만, 저자가 일본과거사를 실제로 체험했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창작물의 내적, 외적으로 전혀 역사의식이 없는, 무책임한 역사인식을 지닌 점에 있어서는 실로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결국 이 책은 ‘반쪽짜리 반전 메시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요코이야기’를 둘러싼 일련의 소동은 ‘지난 역사에 대한 충분한 이해나 인식이 없는 한 작가의 무책임한 저술에서 파급된, 그러나 동시에 심각한 우리의 현실을 드러내는 사태’인 것이다.또한 최근 아베총리의 발언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종군위안부’ 문제에서, 이를 강제나 위계로 동원했던 것도 심각한 범죄행위라는 것은 명백하지만 이것은 ‘일제’의 범죄행위였지 일본인들의 범죄행위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관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선의 소녀들을 강제나 위계로 끌고 가는 데는 일제의 하부구조를 형성했던 조선인 순사나 학교 선생님, 지역 유지들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들도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던 측면도 있지만 이런 논리로 따진다면 일제의 하부구조를 형성했던 일본인 순사나 일본인 헌병 등도 역시 마찬가지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던 측면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일본인 소녀 중에도 정신대에 위계로 끌려갔던 경우가 종종 발견되는데 이들에게도 그들이 단지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가해자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는가? 그러한 사람들은 단순한 피해자일 뿐이다.일본에서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고 지금보다 더욱 강력히 사상투쟁을 벌여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나라 교과서와 각계각층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일본인은 가해자이고 한국인은 피해자’라는 관점에 대해서도 역시 사상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을 이끈 사람들이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잘못된 관점으로 이끄는 바람에 일본의 수백만의 젊은이들이 군인으로 끌려가 목숨을 잃어야 했고 수많은 민간인들도 미군의 공습과 원폭투하로 목숨을 잃어야 했고 전쟁으로 인해 극도로 비참한 삶을 견뎌내야 했다. 단순히 전쟁 피해자가 일본인이라고 해서 이들을 애도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일본인도 이들을 애도해야 하며 한국인이나 중국인도 이들을 애도해야 한다.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대하는 데서, 단지 일본인이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차별을 한다면 ‘인류는 그 국적과 민족을 뛰어넘어 평등하다’는 근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을 위배하는 것이 아닐까.당시의 일본 정부의 법통을 이은 현 일본 정부는 과거사에 관해 사과할 책무를 진다. 그러나 일본인 개개인이 과거사에 관해 사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거나 사과를 해야 한다. 그리고 직접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죄를 지은 사람들과 연대책임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중국이나 한국을 찾아와 사과하는 것도 보기 좋은 일이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과 아무런 직접적 관계가 없는 일본의 젊은이들과 대하면서 속으로 (가끔은 직접 말로) ‘과거에 죄를 지은 주제에......’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도 아니고 미래의 한일관계에 있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계가 점점 글로벌 화 되고, 타국과의 진정한 협력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이 시대에, 우리 같은 한국의 젊은이와 일본의 젊은이들이 함께 정확한 과거사를 배우고 과거사의 교훈을 냉철히 검토하며 보다 발전적인 양국 관계를 설계해 나갈 때라고 생각한다. 어느 일방에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일방을 비난할 일도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