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Ⅰ.서론1. 차이와 차별에 대한 정의2. 중년여성의 성차별을 다루는 이유Ⅱ. 본론1.구체적인 성차별 사례들(1)가사노동1)시대변화에 따른 가사노동의 변화상2)가사노동의 가치평가(2)어머니1)어머니의 신화와 현실(3)중년여성의 성과 사랑1)중년여성은 성을 밝힌다?2)중년여성의 공허는 성적공허이다?3)중년여성은 애인을 원한다?4)중년여성의 성(4)슈퍼우먼 신드롬1)아줌마만 오세요.2)아줌마들은 가세요.3)우리사회에서 취업중년여성의 위치Ⅲ. 결론Ⅰ.서론1. 차이와 차별에 대한 정의성차별이라는 큰 주제를 다루기에 앞서 간단히 차이와 차별에 관해 살펴보고자한다.인간은 누구나 각각의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삶의 양식 또한 모두 상이하다. ‘나‘와 ’너‘는 다르다. 노인과 아이는 다르며 선생님과 학생이 다르며 엄마와 아빠도 다르다.또한 생물학적인 측면만으로도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모든 사람은 독특한 개성을 지닌 우주에서 하나뿐인 생명체로 태어났고 성품과 가정환경 그리고 외모마저도 다르다.이것을 가리켜 차이라고 한다. 차이는 서로 다름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은 너와 내가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너와 내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차이 때문에 귀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주는 것을 포함한다.하지만 차별은 개체와 개체, 집단과 집단 사이의 차이를 기본적으로 평등한 다름을 나와 다르기에 나쁜 것으로 인식하고 동등한 대우를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는 상이한 개체 혹은 집단을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불평등하게 대우함으로써, 특정집단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통제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차별은 여러 가지 형태로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다. 차별의 양태는 나이, 종교, 학벌, 집안, 외모, 성적(점수), 출신지역, 국가, 인종 등 광범위하게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위와 같은 기준에 의한 차별은 자유와 평등의 기본원리를 표방하는 민주주의 사회 안에서도 명백히 존재한다. 이념과 현실사이의 이 간극은 의도적인 기보고 지키려는 열정이 어느새 억척스러움과 뻔뻔함으로 변모하고 이것이 우스개소리의 소재가 된다. 지하철에서 빈자리가 생기면 가방을 던져 자리를 맡아 놓고 유유히 걸어가 털썩하고 주저앉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줌마에 관한 유머를 한 번 쯤은 들어 본적이 있을 것이다.어느새 아줌마, 내 어머니는 가사노동을 전담하고 가끔은 가정경제를 책임지면서 자기계발이나 낭만 혹은 가슴 설레는 로맨스와는 동떨어진, 필요하지만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사회의 불합리나 부조리를 향한 아줌마들의 입바른 소리는 “아줌마! 아줌마가 뭘 안다고 그러세요!” 라는 면박에 묻혀버리기 쉽다.서구사회에서는 중년여성을 백조와 비교하여 흑조라고 한다. 엄청난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사회적으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아줌마의 삶을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교육을 잘 받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직장에 다니거나 전업주부이거나 분명히 중년의 여성은 이 땅의 어머니이며 그가 인생을 통해 쌓아온 연륜과 지혜만으로도 젊은 시절의 그 보다 훨씬 당당하고 존중받아야할 가치 있는 존재이다. 우리의 지난날을 떠올려 보라. 우리 삶 어느 한구석에라도 어머니, 아줌마의 희생 없이 된 부분을 찾기 힘들 것이다.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론에서는 중년여성에 대한 성 고정관념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보고자 한다.Ⅱ. 본론1.구체적인 성차별 사례들구체적인 사례들에서는 가사노동에서의 성차별과 고정관념,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성차별과 고정관념, 또 중년 여성의 성에 대한 성차별과 고정관념들을 다루고자 하며 덧붙여 중년여성들 가운데 만연해 있는 슈퍼우먼 신드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1)가사노동첫 번째로 가사노동에서 나타나는 중년여성에 대한 성 고정관념과 성차별에 대해서 알아보자. 가사노동을 둘러싼 신화들은 자율성을 내세우며 만들어져왔다. 즉 집안일은 사랑과 헌신으로 하는 봉사이므로 대가를 바라거나 가치를 매겨선 안 된다. 여성스스로 기꺼이 선택한일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므로 여자라면 잘해내고 좋아하는 일일 것이서 환자 수송까지 떠맡게 되면서 운전, 쇼핑, 줄서기를 비롯하여 예전에 주부 일에는 없던 남편의 출퇴근, 자녀의 등하교일이 주부의 의무에 들어가고, 은행이나 동사무소의 일도 가사경영업무가 되었다. 그런데도 여성의 자가운전은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아줌마가 쓸데없이 낮에 돌아다닌다며 여성을 대낮교통체증의 주범으로 몰기 일쑤다.또한 가정기기를 사용함으로 기대치도 높아졌다. 예를 들면 세탁기와 청소기가 등장하면서 더 자주 옷을 갈아입고 이불, 커텐 같은 빨래의 양과 횟수, 청소하는 횟수 등이 늘었다. 편리해진만큼 횟수를 늘려 가사에 들이는 시간은 예전과 별로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오히려 예전에는 없던 많은 일거리가 생겨서 결국 서너 명의 몫이던 일을 여성혼자 하는 셈이다. 게다가 근본적으로 가정기기들은 반자동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세탁기가 빨래한다고는 하지만 세제도 복잡해지고 의복은 섬세해져 손빨래 용품이 늘었다. 또 세탁의 양은 많지 않아도 분류하다보면 보통 서너 번 손이 가게 마련이다.가사도구의 등장은 이전까지 해온 가사수행방식을 바꾸어놓았다. 그뿐 아니라 생활과 의식주도 변화시킨다. 가사 도구는 마음대로 부리고 명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사 도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할수록 가사도구의 노예가 되어 그 틀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소비의 주체인가 허수아비인가현대생활이 모두 소비를 통해 이루어지면서 가정주부의 이상적 모습을 소비자상으로 바꿨다. 주부는 소비를 통해서 비로소 사회와 관계를 맺는다. 상품을 구매하여 남편에게 애정을 표현하며 자녀를 교육시키고 집안을 유지한다. 상품광고는 중년 주부의 약점이라고 할 뚱뚱한 외모와 무식함을 교묘하게 건드리면서 전문성과 지성, 개성을 강조하여 소비를 부추긴다. “현명한 주부라면...”, “아직도 모르세요?”, “뭔가 달라도 달라요” 같은 상품홍보가 이른바 미시족 신화와 프로주부 신화를 만들어 낸다.주부 역할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전문적인 일이라는 프로 주부신화는 언뜻 주부의 위치를 높여 년의 어머니는 수동적인 어린자녀에게 일방적으로 베풀기만 하므로 심신은 고달파도 스스로 어머니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양육자로서 어머니가 느낄 수 있는 아이와의 절대적인 신뢰와 육체적인 친밀감은 다른 관계에서는 얻을 수 dqjt는 충족감을 준다. 그러나 자녀가 제도교육에 들어서면서 실질적으로 어머니가 아이를 직접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좁아지고 자녀교육이란 엄밀히 말해 뒷바라지일 뿐이다. 학교에서는 지식전달 위주가 되면서 인성교육은 거의; 불가능해지고 엄청난 지식이 매일매일 사회의 변화와 함께 쏟아져 나온다. 이를 어머니가 따라가기에는 힘에 부친다. 교육의 목표는 발 빠르게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인물을 만드는 것이므로 결국 어머니의 역할은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교육이 제대로 굴러가는데 필요한 그림자 노동을 하는 것이다.1)어머니의 신화와 현실㉠어머니는 헌신적이다전통적으로 우리사회에서 어머니상은 희생하고 인내하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상징이었다. 그리하여 자식을 위해 어머니 인생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이를 어머니 사랑으로 승화시켜왔다. 대다수 사람들이 어머니를 떠올리면 가슴 뭉클해한다. 자신의 헌신적인 어머니의 모습은 한마디로 쓸쓸하고 남루한 모습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러한 헌신은 종종 자학적이 되고 가족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기 쉽다. 자식들은 어머니가 정말로 생선대가리만 좋아하는 줄 알았다거나, 고기와 달걀은 못 먹는 줄 알았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헌신적인 어머니는 자녀의 그릇된 행동을 꾸짖거나 막거나 훈계하지 못한다. 헌신하는 대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쁨에 겨워 ‘오냐’주의에 빠져버린다.자신의 처지에서 최선과 헌신을 다하는 좋은 어머니 신화의 반대편에는 그렇지 못한 나쁜 어머니 신화가 있다. 헌신이 부족하거나 자식 외에 다른 일에 정력과 관심을 쏟으면 이기적인 어머니로 낙인이 찍힌다. 특히 직장을 다니는 어머니는 전업주부 어머니와 견주어 죄의식을 느낀다. 그들이 유달리 자녀교육에 집착해서라기보다 어머니의 일의기준이 자라면서 위안이 된다. 그래서 여자는 딸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아들은 든든할 뿐 딸이 편해지는 것이다.반면 아들과의 유대관계는 자궁가족심리를 드러낸 과다혼수 양상으로 드러난다. 여성은 출가외인으로 가부장제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서 아들만 낳으면 어머니라는 지위로 격이 올라갔다. 그 아들이 장가를 들어 아내를 얻으면 당당한 권위자인 시어머니가 된다. 자신의 자궁에서 나온 아들을 통해 가족 내의 지위를 얻고 사회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들 낳아 잘 키우기에 정성과 헌신을 쏟는 것이다.자식과 한 몸이었다가 떨어지면서 어머니는 정서적, 감정적으로는 서운함을 느낀다. 그러나 자식은 완전히 독립한 것이 아니어서 물질적으로는 여전히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어른아이가 되어버린다. 이제 어머니 노릇에서 놓여나고 싶어도 자식을 건사하는 일에 매인다.문명사회로 갈수록 자녀의 애프터서비스 기간은 확대 되고 있다. 예전에는 자녀가 사회의 성인으로 등장하는데 10년이면 충분했다. 열 살만 되어도 아이는 한 사람의 몫을 충분히 해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아도 자립능력이 예전만 못하다. 이를 증명하듯 외환위기 이후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취업이 더욱 어려워지자 대학원진학을 하거나 집에서 무위도식하는 대졸자녀가 많다. 집안에 다 큰 애어른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있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떨까? 한 아이를 성인으로 키워내는데 수억이 든다는 통계가 신문지상에 오르곤 한다. 고도의 상품가치가 있는 인간을 만들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도록 하기위해서는 더욱 많은 능력과 치장이 필요하고 그럴수록 어머니의 허리는 휘어간다.(3) 중년여성의 성과 사랑우리사회에서 성이란 이미 한 개인의 욕망이나 정체성을 넘어서 사회전반의 문화체계를 움직이는 동력장치가 되었다. 성은 물건처럼 사고팔면서 소비되고 포르노 그라피와 음담패설 등의 형태로 상업화된다. 여성의 성은 이러한 장치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특히 임신이나 출산에서 자유로운 중년여성의 성에 대해서는 매이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는 무엇인가? 이 문화는 구별되어야 하는가?대중문화는 무엇이고 고급문화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우리는 처음으로 부딪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말하고 기사에서 본 것과 같이 클럽문화가 대중문화이고 클래식 같은 것이 고급문화라고 나는 단정 지을 수 없다. 왜냐하면 클럽문화라는 것도 한명의 개인에게 있어 고급문화가 될 수도 있고 대중문화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 정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자신을 올바르게 이끌어 줄 수 있는 영향력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고급문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다만 이 글 가운데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나에게 있어서 적어도 내가 바라보는 시각에서의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를 구분하고 싶다.우선 고급문화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나는 성악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고 생활 속에서 클래식과 떨어지려고 해도 떨어질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적어도 청년의 입장에서 그리고 그 청년의 한 사람인 내가 바라보는 시각에서 고급문화라는 것을 정의 내리고 싶다. 고급문화라는 것은 내가 누군가와 같은 획일적인 모습이 아니라 스스로의 인격체가 독특한 자신망의 삶을 형성하고 발전 하도록 긍정적 영향력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삶에 여러 가지와 관계되는 고급문화들이 있겠지만 특별히 음악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싶다. 음악으로 친다면 모두들 동의하고 비슷하게 생각하겠지만 클래식이 그러한 고급문화의 한가지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일단 성악음악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성악이라는 것은 가사가 있어 그것이 관객에게 전달되어지는 것으로 성악음악에 매력은 그 음악 안에 이야기가 있고 사연 있고 전설이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가 듣게 된다면 개개인의 느낌이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 음악에 대한 정보나 그때의 감정에 따라 또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대중문화의 가요도 우리의 마음을 동요 시키고 감정을 북받쳐 오르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사랑의 이야기 이별의 아픔 등으로만 극히 제한된 것들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사람들 또한 그러한 노래와 주제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가요는 단순히 일차적인 감정만은 잡고 흔들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악의 같은 경우 이미 오래전에 작곡된 가곡 들이 많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일차적인 감정 뿐 아니라 더 높은 영역에 감정들을 건드리고 자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그리고 성악 말고도 기악곡들도 있는데 비록 이것은 가사가 없고 한 가지 악기나 여러 악기의 하모니에 의해서 되는 것이 지만 또 나름이 느끼는 것들이 있다. 작곡 기법에 의해서 어느 시대에 쓰여 졌는지 누가 작곡했는지에 따라 같은 제목을 가진 것이지만 다르게 느껴 질 때가 많다. 성악 보다 한층 더 많이 개인의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것이 기악곡이다. 개인적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아주 좋아하는데 너무 빠르지 않은 것이라면 참 마음이 편안해 지고 화성의 진행에 따라 화음들의 배열에 따라 흘러가는 음들은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음들은 하나하나 분석하고 느낄 수는 없지만 그 안에 감춰진 작가의 의도를 통해 우리는 감동받고 또한 정돈된 질서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심미적인 것을 느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고차적인 동물이라 말할 수 있고 고급문화라 명명할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누구나가 모두가 따라할 수 없다. 노력이 있어야 하고 연습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르고 배울 수 있는 것은 고급문화가 되기 어렵다.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희소성도 떨어질 뿐 아니라 연주나 여러 공연에서 감동도 그만큼 떨어지게 될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 희소성도 있을 뿐 아니라 고급문화는 그 문화가 쇠퇴하거나 없어지는 것이 없이 유지되어 나가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클래식 음악 같은 경우 오히려 지금에서야 모차르트 음악이 아이의 두뇌 발달에 좋으니 아이들의 EQ를 높여 주느니 하면서 요즘 들어 더 붐이 일고 있다.그리고 국악도 고급문화중 하나다. 그중에서도 판소리나 창을 들고 싶은데 거기에는 진정한 조화가 있다. 누가 들어도 신명나고 또 누구든지 거들 수 있는 판소리 판은 고수와 창자와 관객이 하나 될 수 있는 그리고 그 안에서 너무 깊이 관여하지도 않으면서 방관하는 자세도 아닌 관객이 된다. 우리네 삶의 애환과 역사가 깃든 것인 판소리 그리고 창 그것은 모든 것이 비껴가지 않고 융화되며 하나 되기를 좋아하는 우리 선조들의 조화로움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이것이야 말로 고급문화의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한다. 또 국악기의 애환이 섞인 소리들이야 말로 우리의 정서를 움직이고 정화 시키며 새롭게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적절한 예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내 기준의 고급문화의 성격에 대해서 잠시 정리를 하고자 한다. 고급문화는 자신을 정화시키고 새롭게 발전시킬 뿐 아니라 내 자신을 남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하나의 인격체로 만든다. 그리고 고급문화에는 조화가 있고 역동성이 있으며 지속성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고급문화는 이 정도에서 끝내고 다음으로 대중문화에 대해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다. 대중문화란 대중들이 손쉽게 즐길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문화로써, 대중가요나 또는 락과 같은 것들이 있다.(범위를 제한하고자 하는 것 이지 대중문화가 이것 뿐 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니다) 우선 대중가요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대중가요는 언제 어디서나 친숙하게 접할 수 있고 또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대중가요가 모두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그 속에 좋지 않은 것들이 있기에 여기서 그 문제에 대해 다루고자 하는 것이다. 대중가요는 비록 친숙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순간의 감정들을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지속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유행이 지나가버리면 촌스러운 음악으로 밖에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옛날 대중가요의 경우 조금은 다를 수 있지만 요즘과 같이 가수가 넘쳐나고 이름을 대도 모르는 가수가 태반인 상황에서는 단지 흘러가 버리는 무의미한 음악들뿐인 것이다.(가요에 관심이 없기 때문 일수도 있겠지만) 레코드 가게를 가도 넘쳐나는 대중가요DC, 테이프 등 그것들은 단지 한 시대를 지나가 버리는 음악에 불과하며 지속되지 못한다. 또한 음악 자체로도 너무나 획일 적이고 비슷한 것들이 많다. 간간히 표절시위들이 생겨나고 누가 누구의 음악을 따라 했다느니 음이 비슷하다느니 하면서 서로 싸우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고급문화와 같이 뭔가 자신만의 독특함이 없다. 그저 정충들에게 흥미 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상업적으로 돈을 벌기위해 작곡을 하고 노래를 녹음하고 가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간혹 자신만의 음악세계와 사상들을 가지고 활동하는 가수나 음악이 있을 지라도 청년들은 그것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호응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자신만의 색을 가지 음악들은 죽어가기 마련이고 단지 사랑 이별 우정 등에 관한 단순한 노래들에만 열광 한다. 대중음악은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많다. 정말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가수의 콘서트 장에 팬들이 몰려 서로 밟혀서 죽게 되는 사건들도 있었을 뿐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그 가수를 너무 사랑해서 폐인처럼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병이나 죽음까지도 얻게 된 경우를 본적이 있다. 내가 제시하는 모습 뿐 아니라 여러 다양한 사례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속엔 진정한 쉼이나 여유는 내가 보기에 없었다. 서로 팬을 만들려고 자신의 음반을 하나라도 더 팔아 보려고 저속한 몸짓으로 유혹하고 자신의 모습이 정말 멋지고 이 모습을 따라 하지 않는 사람은 이 시대에 뒤쳐진 사람으로 간주해 버리는 것이 대중문화와 대중가요의 모습이다 할 수 있다. 팬들은 서로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서 기꺼이 패싸움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중가요는 그렇게 아무 의미 없는 것들에 집착하고 매달리도록 만든다. 또한 깊은 내면을 만지는 것이 아닌 감정적으로 사람을 만들고 거기에 집착하도록 한다. 나의 경험 중에 하나인데 대중가요를 들으면 한없이 기분이 내려앉는 것 만 같고 이별에 대한 노래를 들으며 저런 사랑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순간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다른 매체들의 영향도 있겠지만 음악 안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하는 능력이 있는데 그것이 좋고 선한 방향이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옳지 못한 사랑에 대한 동경을 하게 만들고 자신의 기분을 더 쳐 버리게 만든다. 그러나 더 무서운 영향은 그 대중가요의 가사나 음악이 나의 무의식에 자리 잡아 버리게 될 때 더 큰 위험이 도사리게 되는 것이다.
서론청년기는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단계로써 과도기적인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성적인 성숙과 심리적인 성숙 신체적인 성숙이 일어나는 단계로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직은 과도기적인 단계이기에 완벽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청년기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는 사회와 학교 그리고 가정 ,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청년들 자신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고 함께 있는 것이 친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친구와의 관계나 또래 집단들의 행동 특성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어있다. 나의 유년시절을 돌아볼 때 나는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신체적인 것의 변화도 크겠지만 초등학교 때 말이 없고 반에서 항상 존재감이 없었던 것 같이 살던 나에게 중학교에 올라와서의 활발한 친구들과의 만남은 가히 내 삶을 바꿔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 무엇을 해도 자신이 없고 부끄럽고 드러내는 게 싫었던 나는 중학교 친구들 덕택에 이제는 자신감 있는 삶으로 내 자신을 드러내고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 그렇게 되기 까지는 점진적인 변화들이 있어 온 것이었겠지만 그 시발점을 찍어준 것은 다름 아닌 내 주위의 친구들이었다. 이렇게 친구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놀 수 있는 엄청난 존재인 것이다. 그것이 비록 부정적인 면으로 발전을 하든 긍정적인 면으로 발전을 하든 이러한 사실에 관하여는 반박할 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청년기에 친구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그것이 청년기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방향들을 잡아나가는 청년기에 특히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청년기의 친구관계 및 우정의 중요성에 대해서 고찰해볼 필요성이 있으며 또한 원만한 또래 집단 형성을 위해서 부모의 노력으로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본론청년기의 친구관계 및 우정의 중요성청년기의 친구관계는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아기까지는 부모의 역할이 아주 강하며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점차로 커가면서 정서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집단으로 당연히 가족이 있겠지만 가족관계 만으로는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가족관계 이외의 원초적 관계를 모색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친구관계라 할 수 있다. 특히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는 청년기에는 가족 관계보다 친구관계로부터 더 많은 만족을 추구하며, 부모의 기대보다는 친구의 요구가 더 우위에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와 같이 청년기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는 친구집단은 어떠한 특성으로 인해서 중요하게 여겨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우선 친구는 대등한 관계라는 것이다. 부모라 하면 대등한 관계이기 보다는 자신이 종속되어 있고 하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일 것이다. 부모와의 관계에서는 힘의 불균형이 확연히 들어난다. 즉 수직적인 관계라고 생각 할 수 있다. 하지만 친구관계는 서로가 더 크고 잘남의 차이는 각각 있겠으나 자신이 어릴 적에 봐 오던 부모님보다는 동등하고 대등한 관계 즉 민주적인 관계라는 것이다.다음으로 친구는 가장 순수한 인간지향적관계일 뿐 아니라 인간관계중 가장 편안하고 자유로운 관계인 것이다. 간혹 중 고등학교 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공부 잘 하는 아이들 주위나 또는 돈 많은 아이 주위에 기생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청소년기에 맺게 되는 친구관계는 사회에서의 관계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편안할 뿐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함께 한다. 나도 아직 고등학교 때 중학교 때 친구들과 아직도 만나고 있지만 대학교의 친구와는 또 다른 무엇인가 있는 것 같다. 가식적이지 않고 더 잘난 나를 보여주기 위해 나를 꾸미지 않아도 되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어도 아무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서로에게는 부족한 면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청소년기에 친구관계는 순수하고 인간 지향적이라 할 수 있다.또 친구관계는 유사성이 있어서 서로 공유할 삶의 영역이 넓다는 것이다. 여학생들 가운데 이런 일들이 더 비일비재하겠지만 무슨 할 말들이 그리 많은지 끊임없이 또 쉴 틈 없이 떠들어 댄다. 그렇게 매일을 만나도 서로에게 같은 고민거리 그리고 생활 속에 겪는 일들이 다들 공유되기에 서로에게 더 유사성을 많이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이 학력 지식수준 사회적 신분 등에 있어서 유사한 사람들과 더 맺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친구관계에 있어서도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끊임없이 자신과 유사한 사람을 찾게 되는 것이 어쩌면 사람의 자연적인 본능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마지막으로 친구는 구속력이 적어서 해체되기 쉽다는 특징이 있다. 가족 같은 경우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형성되어 있고 바꿀 수 없고 유지해야 하는 의무나 구속력이 있지만 친구관계 같은 경우에는 그것을 유지해야 할 사회적인 의무나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해체되기가 용이하다. 그래서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의 노력이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약화되기 쉬운 것이 친구이다. 나는 중학교 때 사귀었던 단짝 친구가 다른 고등학교를 가게 되고 다른 지방의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 점점 멀어지게 되고 특별히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때 그 관계가 금방 깨어지는 것을 경험 한 적이 있다. 즉 친구관계는 해체되기 쉬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위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사람이 살아가면 맺게 되는 친구관계에도 여러 가지 특징 들이 있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친구관계에서 이 친구관계가 과연 우리 삶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어떠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청년기의 친구관계는 후에 오는 인생의 동반자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친구관계가 왜 중요한지 무엇으로 인해 중요하게 느껴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첫째로 친구는 내 삶에 있어서 주요한 정신적 정서적인 지지자이자 공감자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정말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나의 옆에 있어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즉 친구 관계에서 내가 위로 받고자 하고 지지 받고자 하는 것이 있기에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종종 어려운 일을 겪고 힘든 일이 닥쳐올 때가 많다. 좌절하고 절망하고 갈등하고 고통스러워 고민하는 일에 대해서 친구에게 공개하고 친구로부터 이해 받고 위로받을 때 우리는 다시 일어날 힘을 얻게 된다. 어떤 책에서 읽은 구절인데 마크 트윈이라는 미국 작가가 ‘친구의 본래 임무는 당신이 잘못을 했을 때 당신을 편들어주는 사람이다. 당신이 옳은 일을 했을 때는 무구나 당신을 편들어 줄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비록 내가 잘 한 것이 없을 때라도 무조건적인 나의 편이 되어 주는 것이 친구인 것이다. 그것이 잘 못된 길이라면 바로 잡아 줄줄 아는 것도 친구이지만 어쨌든 친구 간 에는 정서적인 지지가 있다는 것이다.둘째로 친구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주요한 비교자가 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우리가 만약 이 세상에 혼자 있다면 법도 필요 없을 것이고 잘 생기고 아름다운 외모나 지식이나 여러 가지 행동 준거들도 없어도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 있고 끊임없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자신 혼자만을 생각하며 살 수는 없다. 그래서 그러한 행동을 바꾸기 위해 주위에 사람이 필요할 것이고 가장 기본적인 가족이외에 다음으로 친구가 그 기준이 되어준다. 만약 친구가 학교에서 수업도 잘 들어오지 않고 상당히 공부에 무관심하고 술 마시고 노는 것에 집중하여 삶을 사는 친구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럴 때 나는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가게 되는가. ‘내 친구 누구누구는 저렇게 살지만 나는 제대로 살아야지’ 하는 사람은 몇 안 될 것이다. 대부분 ‘너도 노는데 나도 같이 놀자’ 하고 같이 휩쓸려 다니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그런 문화에 익숙해지고 학점은 날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래서 어떠한 친구를 만나고 사귀는가에 따라 나의 삶의 질이 달라지게 돼는 것이다. 사실 나도 대학에 와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케이스 인데 주로 친하게 지낸 사람들이 다들 과에서 1,2,3위를 다투는 그런 사람들 이었다. 당연히 나도 ‘아 저렇게 공부해야 하는 구나’ 하고 그때부터 공부하게 된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렇듯 친구는 학습에 별 흥미를 가지지 않던 나도 과에서 순위권을 다투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친구의 힘은 아주 크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게된 것이다.세 번째로 친구는 즐거운 체험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즐거운 체험이란 것이 무슨 향락적인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학생들 같은 경우 수다를 통해 이러한 체험을 많이 하게 되는데 여학생 뿐 아니라 남학생들의 경우도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삶의 가치관이나 인생관 종교관 등을 나누면서 즐거운 체험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공유적 관계가 되지 않는 다면 친구관계도 유지될 수 없다. 친구관계에서 서로의 생각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받으면서 자신의 신념을 굳혀 나가게 되고 여기에서 또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친구관계 속에서 즐거운 체험을 공유하면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 관심사나 취미에 대해 모르고 있던 부분을 알게 될 때도 있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나누어 주면서 즐거움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러한 친구관계는 이러한 즐거움의 요소가 없다면 무미건조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의 삶에서 친구관계의 즐거움이 없다면 아마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즐거운 체험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게 되고 정신적으로나 다방면으로 건강하여 지기 때문에 친구관계가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서론현대는 갈수록 자극적인 것과 문란한 성, 왜곡된 성에대한 것으로 청소년을 유혹하고 있다. 실제로 내가 중 고등학교 때만 해도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중, 고등학생의 원조교제 또한 갈수록 성적인 것에 접촉하게 되는 연령도 어려지고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온갖 음란 사이트에 아이들이 무방비로 노출되어있고 대중매체를 통한 드라마나 영화 심지어 오락 프로그램에서 까지도 성에 대한 것을 주제로 잡아 아이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섹시하다 라는 말을 누군가 듣는다면 상당한 모욕이라고 느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언어적인 성 폭력 이라고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어떤가.그런 말을 들은 여성은 상당히 기분좋아하고 자신에게 성적인 매력이 풍긴다는 것 이 자신의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든 것 인양 좋아한다. 이러한 성의 개방에 따라 우리는 조금씩 물들어 가고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리는 성이라는 것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른 문제점들도 하나하나 속출해 가고 있다. 아버지가 딸을 몇 년 동안 성 폭행하거나했다는 뉴스 원조교제 그리고 성 상납, 연예인들이 출세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파는 것 등 여러 가지 충격적인 일들을 우리는 들어왔다. 그리고 그런 성의 문란함과 개방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대두되었다. 그중 하나가 미혼모의 문제 미혼부의 문제 10대들의 임신과 관련하여 낙태의 문제 등 이 있다. 나는 여기서 우선 10들의 임신과 그것이 임산부와 태아에게 어떠한 문제들을 가져오는지 그리고 이러한 미혼모와 미혼부를 위한 복지 정책은 어떠한 것이 세워져야 할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본론우선 앞에서 이야기 한 미혼모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본론으로 들어가고자 한다.미혼모란 합법적이고 정당한 결혼 절차 없이 아기를 임신 중 이거나 출산한 여성으로 혼인 전 여자와 남자가 성 관계에서 임신한 경우, 혼인하지 않은 처녀로서 임신한 경우(강간 등), 이혼했거나 과부가 아이를 갖는 경우, 또는 위의 상황에서 출산했을 경우로 정의된다. 하지만 이 중에서 대부분의 연령이 중, 고등학생에서 대학생까지가 가장 많이 차지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청소년기 2차 성징에 따라 성적인 부분이 많이 발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10대의 임신은 특히 더 위험하고 임산부나 태아 모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어떠한 이유에서 그런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임산부첫 번째로 신체가 미성숙한 경우에 임신을 하게 되면 임산부의 건강에 매우 좋지 못하다. 전통교육이라는 교양과목에서 들었던 것인데 아직은 미성숙한 신체인 10대가 특히 15세 이전의 청소년에게는 성관계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크게 수명이 단축된다고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렇듯이 관계를 가지는 것에서 넘어서서 아직 자신도 완벽하게 성장하지 못한 단계에서 아이를 가지게 되면 당연히 임산부에게 좋지 못할 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상당히 지장이 있게 된다. 태아가 자라면서 또한 많은 영양분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을 충분히 보충해줄 만한 경제적 여건이 받쳐주지 않는 임산부가 대부분이므로 그것 또한 문제가 된다. 그리고 임신합병증도 다른 20대나 30대의 여성보다 10대 임산부가 위험성이 더 크다고 한다. 이렇듯 10대임산부가 되었을 경우 건강상의 많은 지장이 있다.그리고 떳떳하게 산부인과에 나가서 진료를 못 받는 10대 임산부가 대부분 이므로 딱히 관리해줄 누군가가 없기 때문에 그 문제는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두 번째로 임산부의 정신적인 불안이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10대의 임신이 사회적으로 지지를 못 받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손가락질 받고 주위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기 때문에 임산부는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게 된다. 특히 가족으로부터의 외면과 주위 친구들로부터의 소외는 보통 왕따를 당하는 것 보다 더 클 것 같다. 10대 임산부의 경우는 아니지만 우리 과에도 캠퍼스 커플로 만나다가 덜컥 아이가 생겨버려서 휴학을 한 후배가 있었다. 이들이 경우에도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아이를 가졌는데 주위 사람들의 소문이나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몸이 힘든 것 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임산부를 힘들게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10대 때 임신을 하게 되면 아이를 가지고 10개월 동안 그리고 아이를 낳은 그 이후라도 많은 정신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힘들어 진다.세 번째로 10대 임산부의 경우 낙태를 많이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태어난 아이를 1세 로 본다. 그 이유는 어머니의 태 안에서 자라나는 10달과 그전에 아이를 가지기 위한 부모의 준비 또한 하나의 생명의 시작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외국과 같이 0세 로 태어나 자라게 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자마자 1세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아이도 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이 우리나라에서는 지배적이다. 만약 낙태를 하게 되면 하나의 생명을 죽이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아이와 임산부를 위해 최선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아이는 미혼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고 임산부 즉 아이의 어머니도 경제적인 부분에서 그리고 앞으로의 자신의 삶을 위해서도 어쩌면 그것 말고는 선택할 길이 없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낙태는 지금 불법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시술하는 곳이 전문적인 곳이 아니거나 비전문적일 경우에 임산부에게 더 큰 위험이 따른다. 낙태를 잘못 했을 경우 골반염 등의 염증이 많이 생기게 되고 자주 수술을 할 경우 습관성 유산을 하게 될 뿐 아니라 불임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좋은 가정을 꾸리고 싶어도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네 번째로 10대 임신은 임산부의 사망률이 높다. 10대여성의 임신 시 임신부사망의 가장 많은 원인 3가지는 임신중독증, 산욕기감염 및 출혈이다. 특히 불법적으로 행하여지는 임신중절수술은 패혈증과 출혈을 야기할 수 있어서 1O대임신부의 모성사망의 주요 원인인자가 될 수 있다. 아이를 낳고도 산후조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먹는 것이나 자신의 몸을 위해 해야 하는 것 3*7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바깥에 출입을 하지 않아야 하는 등의 기본적인 지식이 거의 없다. 또한 불법적인 임신 중절수술로 인해 과다한 출혈들에 의해 사망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이렇듯 10의 임신은 임산부에게 많은 좋지 않은 점들이 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태아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과 문제점 등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태아10대 임신에 있어서 큰 운제가 되는 것 중에 하나가 태아이다. 자발적인 임신중절수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불법이여서 문제가 되지만 그렇지 않고 임산부의 의사에 의해 낳게 되더라도 많은 문제들이 있다. 태아의 신체나 정신적인 부분에서 이러한 미성숙한 단계의 모태에서 태어나게 되면 당연히 태아에게도 많은 위험들이 뒤따르게 된다. 그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로 태아가 건강하게 자라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보통 10대 임산부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부끄러워하며 수치스러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같은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때문에 뒤에서 수군거림 때문에 그리고 한창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예민한 청소년기에 있기 때문에 산부인과 같은 곳에 당당히 잘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면 당연히 태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건강한지 아니면 기형등과 같은 문제는 없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것이다. 또한 임산부의 건강상태도 장담 할 수 없다. 미혼모들의 경우 자신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고 아니면 그러한 친구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이 태아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태아는 발육과 발달에 치명적인 저해를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미숙아나 장애아가 나올 확률이 높고 자라면서 그러한 영향을 받아 발육부진이 일어날 수 있다.두 번째로 태아의 정신 건강에 상당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임산부의 보는 것과 먹는 것 그리고 생각하는 것은 태아와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임산부가 자신의 정신적인 부분이 불안하고 힘들어 지면 당연히 아이게도 그 영향이 그대로 간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태어나게 되더라도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를 가지고 태어날 수 있고 공격적인 성향인 피해의식 등이 생겨날 수 있다.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라 여길 수도 있고 또한 그에 따라 여러 가지 비행등을 저지를 가능성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도 상당히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 집의 예를 하나 들자면 나는 5명의 형제 가운데 막내인데 나의 바로 위 즉 4째 언니에 대한 것이다. 어머니가 언니를 임신한 사실을 알고 안 놓으시려고 임신중절수술을 하시기 위해 병원에 갔다가 아버지의 반대에 의해 4째 언니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런데 언니의 성향이나 성격을 보았을 때 유독이 엄마와 사이가 좋지 못하다. 그리고 자신의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 등이 가끔 나타난다고 이야기 했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았을 때에도 태아가 엄마의 뱃속에 들어 있을 때 무엇을 알겠냐고 하지만 하나의 생명체로서 그것을 다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라도 그러한 생각이 드는데 10대 임산부의 뱃속에서 자란 아이는 얼마나 더 불안해하며 10달이란 시간을 보낼는지 생각만 해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세 번째로 태아 및 신생아의 합병증이 크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자료에 의하면 10대임신부들은 우선 임산부 자체 문제로 인한 '유산' 및 '조산'이 많다. 따라서 태아 및 신생아에 대한 여러 가지 합병증도 동시에 증가하게 된다. '선천성기형아'의 빈도도 높다. 물론 신생아 사망률도 높다. 분만 후에도 자신이 아기를 키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아기를 포기하거나 유기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도 문제점이다. 또한 임산부의 약물복용, 흡연, 음주 등에 의한 '장애아'의 분만빈도가 증가하는 것도 문제점이라고 한다.
서론본론한국교육의 변천가. 교수 요목기나. 1차 교육과정다. 2차 교육과정라. 3차 교육과정마. 4차 교육과정바. 5차 교육과정사. 6차 교육과정아. 7차 교육과정한국교육의 문제점가. 국가 경쟁력과 학업성취의 문제나. 공교육 위기론의 대두다. 사교육의 문제라. 교육개혁의 후유증결론한국교육이 나가야 할 방향가. 지식기반사회의 도래에 따른 평생학습나. 세계화에 따른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인재개발다. 인간을 존중하는 전인교육라. 고질적인 대학입시 위주 교육풍토에서 탈피마. 양질의 대학교육으로의 변화바. 유능한 교원육성사. 초 중등교육의 자율적 운영을 위한 [학교공동체] 구축서론흔히들 한국교육에 관해 운운할 때 한국의 교육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물론 그것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획일화된 교육,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암기시키고 형식뿐인 특별 활동 현 상황 속에서 개혁이란 것을 꿈도 꾸지 않는 교사들 등 아직도 남아있는 교육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다. 하지만 이것을 한국교육의 실패라고 본다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것이다. 한국의 교육은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와도 같다. 언제든지 태울 수 있는 땔감이 있다면 다시 불붙을 수 있는 교육이라 생각한다. 비록 고쳐야 할 것이 많고 힘들겠지만 백년지대개인 교육, 이제는 다시 조금씩 일어설 때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냥 막무가내로 외국의 좋을 것들만 가져오고 어설프게 모양새만 갖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을 살리고 이제까지의 1~7차까지 교육과정의 장점들을 잘 살려야겠다. 그리고 나서 선진국들의 본 받을 만한 제도나 우리나라 교육에 적합한 것들을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즉 온고지신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나갈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발빠르게 변화하는 정보화 사회에 적합한 교육을 찾아야 할 것이다.본론한국교육의 변천그럼 여기서 1~7차 교육과정의 간단한 특징들을 살펴보고 우리가 가지고 가야할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다.한국의 교육과정은 교수요목는 주요외국 중고교 학생들의 수강 교과목이 10여 개인데 비해 20여 개를 넘는 한국 학생들의 교과목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실천되지 못하였다.아. 7차 교육과정1997년 제7차 교육과정은 21세기의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며 살아갈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한국인을 육성하기 위해 제정되었다한국교육의 문제점가. 국가 경쟁력과 학업성취의 문제학교라는 곳이 우리나라의 주요 교육 기관이다. 하지만 이 학교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데 의의를 가질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단순히 시험을 치르기 위한 것이지 결코 지식을 습득하거나 창조적인 교육이 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을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험이란 것은 단순히 배운 것에 대한 평가로서의 역할인데 시험을 목적으로 하여 공부한다는 것은 무언가 앞뒤가 바뀐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시험위주의 교육을 하다보니 당연히 주입식 교육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더 머리에 집어넣고 한 문제라도 더 맞춰야 하는 것이 그래야 공부 잘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가 아이들도 하여금 단순 암기식의 공부를 하게 만들고 시험만 치고 나면 지워져 버릴 지식을 만들어 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대학 입시 자체가 더욱 그러한 교육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이러한 상황에서 국제경제력은 약화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효율적인 암기식 공부에 이 작은 나라안에서 서로 쥐어뜯으며 경쟁을 하니 말이다. 학교에서는 정보화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안에서만 인정받을 수 있는 획일적인 인간으로만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또한 이런 시험으로서 평가를 하다보니 드문 일이지만 부정부패가 이뤄지고 있다. 초등학교 같은 경우 특히 교사가 학부모에게 대 놓고 돈을 요구하는 등 많은 사회적 논란이 있었고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지나친 경쟁과 공정하지 못한 몇몇 중립인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입어 왔고 입고 있는 실정이다.나. 공교육 위기론의 대두교육서, 좋은 대학을 가야하지만 열악한 공교육을 부모들은 믿을 수 없기에 사교육으로 떠나고 많은 부모들이 사교육을 맹신하는 풍토가 생겨났다. 이렇게 해서 공교육을 재검토 해보자는 여론이 생기게 되었고 문제점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둘째로는 선진국의 교육을 들여왔는데 우리나라의 교육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선진국과 같이 학급당 인원이 적고, 학교 시설이 충분히 갖추어진 상태에서의 실험, 실습 등의 수업은 분명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기반 없는 우리나라의 교실풍경 속에서의 실험, 실습, 토론 등의 수업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최소한의 기반 없이 그저 타국의 성공적인 결과만을 놓고 그 과정을 모방하는 이유로 또 다른 공교육의 실패를 초래했다고 보인다.셋째로는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이다.수능시험이 치러지고 얼마 후 TV를 시청하던 도중, 수능과 관련하여 모 입시기관의 강사가 입시에 대한 강연회를 열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 강사는 "학교를 믿지 말라." 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던졌으며, 인터뷰 속의 학부모 역시 "학교에서는 나의 기대치만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학교가 학원만큼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라고 이야기하며, 전형적인 교육자와 피교육자간의 신뢰성 결여에 대한 문제를 보였다.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피교육자(학생 혹은 그의 부모)는 교육자를 신뢰하지 못하고, 더불어 그 뒤에 있는 공교육까지도 쉽게 믿지 못하는 현실을 만들었다. 이것이 단지 교육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교육 제도상의 문제로 인해 교사 역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겠지만, 신뢰되어야 하는 교육자마저도 신뢰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는 공교육의 문제점은 쉽게 사그라들 수 없을 것이다.다. 사교육의 문제사교육의 문제를 다루기 앞서 우리나라의 사교육의 국내시장 규모에 대해 다음 표로 보겠다.초등학생 수4,175,626명중학생 수1,854,641명고등학생 수1,766,529명사교육시장규모 13조원정부 교육 예산2는 선다형 시험에 결정됨. 선다형 평가는 암기와 문제풀이 위주의 교육을 조장하고, 학원은 암기, 문제 풀이 위주의 교육으로 학생을 유인함으로 선다형 시험은 왜곡된 경쟁구조가 사교육을 조장하는 하나의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이러한 구조적 모순 때문에 일반적으로 고액의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 학교에서 다른 학생보다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때문에 학부모들은 다른 학부모와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 조차도 학원이나 사교육이 없이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많이 부족하다. 이미 사교육을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더 크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라. 교육개혁의 후유증우리나라에는 많은 교육 개혁들이 이루어 졌다. 하지만 이 교육개혁을 추진할 때부터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즉 개혁을 추진 할만한 상황과 여건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개혁을 한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교원들의 과중한 부담감과 또 실정에 맞지 않는 정책 시행으로 많은 부작용이 표출되었다. 또한 몇몇의 전문가들만 모여 정책을 세우고 국민에게는 단지 최종적인 결정만이 제시되어 왔기 때문에 폐쇄적인 개혁을 실시함으로써 교사나 학부모 학생의 적절한 참여를 이끌어 내지 못한 것이다.이렇게 함으로 교육개혁의 후유증을 낳게 되는데 그것은 교사의 사기와 권위가 실추되고 의욕을 상실하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어 촌지 금지령이나 교원 정년을 단축시킴으로 교사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체벌금지라든가 수요자 중심의 교육논리들이 또 한몫을 하게 되었다. 또한 추진상의 이념적인 갈등도 야기되는 등 많은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결론한국교육이 나가야 할 방향가. 지식기반사회의 도래에 따른 평생학습산업화 이전에는 군사력이 국력이었다면, 산업화 시대에는 경제적인 부, 정보화 시대에는 지식이 국력이 된다고 했다. 지식기반사회란 다른 가치보다도 지식의 가치가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사회이다. 그러면 이 지식이 부의 원천으로 대두되는 사회에서 지식의 생산성은 한 국가의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성공야에서 교육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평생 교육제도를 더욱 발전 시켜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나. 세계화에 따른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인재개발우리나라는 반도국가로서 아주 작은 땅덩어리 안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거기에다가 자연 자원들도 부족하여서 자원이라고는 좁은 땅 안에 치이며 살고있는 사람뿐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의 목적은 분명해 지는 것 같다.첫째, 창의적인 인재개발을 위하여 우리의 초 중등교육은 단편적 지식의 암기위주 교육으 로부터 창의력 배양 중심 교육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대학은 지금까지의 기존지식이나 외래지식의 전수장이 아닌 과학 기술과 학문, 문화 창조의 근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둘째, 개성있는 인재개발을 위해 자기 고유의 것을 세계에 보편화하여 세계적 수준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낯선 외래문화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자기의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 따라서,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에 대하여 보다 높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셋째,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지도력을 갖추는 일이다. 또한 세계 여러 민족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평화교육이 요구된다. 그리고 전 국민이 적어도 하나의 외국어는 구사할 수 있도록 외국어 교육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며,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사회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수 있도록 국제이해교육이 보다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기존의 외국어 교육은 실제적 이라기 보다는 이론위주의 교육이 대부분을 차지했었는데 이러한 점들을 고쳐나가면서 실제적 대화의 방법 등을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다. 인간을 존중하는 전인교육정보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PC의 발달로 우리나라 학생들은 지금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것에 물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인간 경시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는 교육으로써 머리만 커지는 가분수를 만들게 아니라 몸도 고르게 키울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지식으로써 머리를 키우고 안목을 키우고 인간을 존중하는 전인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