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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젠 중국 스노우보드 여행이다!
    이젠 중국 스노우보드 여행이다!중국이 세계 시장에서 그 이름을 높이고, 위상을 다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을 대상으로 한 여행업이 성행을 이루고 있다. 현지 물가가 싸다는 장점과 우리나라와 지형적 위치가 가깝다는 이점을 이용한 중국 여행은 이제 4천 5백만 전 국민을 유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다른 어떤 외국과 비교해 보아도 중국 여행의 경비가 싸고 국가 간의 이동에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수도인 북경을 비롯한 대도시 상해, 홍콩, 광주는 물론이거니와 이제는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버린 소주, 항주, 황산, 장가계, 저 내륙 안쪽의 구채구, 따리, 리장에 이르기까지 한국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중국의 관광지 곳곳을 모두 여행해 본 사람들은 이제 중국 여행만으로는 만족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소화해내는 현대의 멀티플레이족은 단순한 여행만으로는 재미를 느끼지 못할 지도 모른다.그래서 나는 중국 스노우보드 여행이라는 새로운 여행의 형태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중국 스노우보드 여행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중국 여행을 하면서 스노우보드도 즐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시스템을 표방하고 있다. 중국 스노우보드 여행을 계획하려면 우선 중국 어느 지역에 어떤 관광지가 있으며 또, 그 지역에 스키장이 개설되어 있는지를 가장 먼저 파악해야 한다.중국에는 현재 약 20여개의 스키장이 만들어져있다. 베이징지역과 북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선양, 장춘, 하얼빈 등에 스키장이 있으며, 이미 하얼빈의 야브리 스키장은 동계 아시안 게임을 치루었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스키장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키장들이 사업의 목적으로 개발되기 보다는 프로 스키어와 보더들의 양성 목적을 이유로 만들어졌다. 전국 20여개의 스키장 중에서 가장 많은 스키장이 개설된 지역은 역시 수도인 베이징 지역으로, 베이징의 주위(차량으로 베이징에서 약 3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스키장) 에만 9개의 스키장이 있다.베이징은 중국의 수도로 중국에서 가장 많은 관광명소를 소유하고 있는 도시이다. 천단공원, 만리장성, 용경협, 명13릉, 천안문광장, 자금성, 경산공원, 이화원, 유리창거리, 왕푸징거리 등이 베이징의 주요 관광지이다. 중국의 역사와 전통을 느끼고 싶다면 역시 베이징은 놓쳐서는 안 될 도시인 것이다. 베이징의 역사를 체험한 후에 스노우보드 여행을 떠나보자. 베이징에는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9개의 스키장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스노우보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베이징 지역에서 가장 큰 스키장인 시징롱 스키장은 차량으로 약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만리장성을 통과하여 스키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주 변에 용경협이 자리 잡고 있다. 10 여개의 슬로프와 6개의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으며, 스키장 최고 높이에서 베이스 까지 내려오는 최상급자 슬로프는 아주 넓은 슬로프 폭과 전혀 붐비지 않는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스키인-아웃이 되는 시징롱 호텔은 스키장 오른쪽 베이스에 위치하며 온천과 편안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한 스키장에는 레스토랑, 렌탈 하우스, 스키 락커, 의무실, 주차장 등 부대시설을 훌륭히 갖추고 있어, 편안하며 무엇보다 한가로운 스킹과 보딩을 할 수 있다.선양은 중국 랴오닝성의 성도로 중국의 북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선양에도 마오쩌둥 상을 비롯한 많은 관광 명소가 있다. 선양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인 북릉은 청나라의 시조인 황타이지의 무덤이다. 그 외에도 복릉, 고궁, 북탑, 사리탑 등을 관광할 수 있다. 선양의 스키장인 바이칭 스키장은 2004년 공사를 끝내고 올해 처음으로 문을 연 선양 최대의 스키장이다. 선양 공항에서 차량으로 약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스키장으로 이 곳 역시 사업의 목적보다는 국가 대표 혹은 프로 스키어와 보더의 양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다른 지역의 스키장과는 달리 에어리얼을 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이곳 바이칭 스키장은 정상으로 단 한 번에 올라가는 리프트를 이용하며, 정상부터의 할강은 중?상급자의 코스를 지나 소나무 숲을 끼고 도는 아름다운 슬로프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다음으로 소개할 곳은 중국 랴오둥 반도의 남쪽 끝에 있는 항만 도시인 다롄이다. 다롄의 관광지에는 노동공원, 빙욕관광구, 성해광장, 인민광장, 중산광장, 우호광장, 동해공원, 노호탄, 여순감옥, 부가장해수욕장 등이 있다. 대련 공항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한 밍후 스키장 은 2005년 12월에 개장한 신설 스키장이다. 두개의 산 정상을 연결하여 최고 높이인 뒤편 정상까지 체어 리프트가 운행되며, 이곳으로부터 스키장 베이스 지역까지 계속 연결되는 슬로프는 중?상급자들이 이용하는 코스이며, 스키장 베이스 지역에는 초급자를 위해 넓은 슬로프면과 4개의 J바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린하이 스키장 은 밍후에서 약 20분 거리에 위치하며, 산으로 둘러싸여있어 경치가 아름다운 스키장이다. 주로 초?중급자 위주의 스키장이며, 중국 내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넓은 슬로프가 만들어져 있다. 스키장 부대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있어 초?중급자들이 스킹과 라이딩을 연습하기에 아주 적당한 스키 지역이다. 또한 다롄은 인천과의 사이에서 선박을 운행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배를 타고 저렴하게 오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경영/경제| 2006.11.01| 2페이지| 1,000원| 조회(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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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속담 속의 동물, 그 안의 호랑이.
    속담 속의 동물, 그 안의 호랑이.Ⅰ. 서론속담은 인류의 역사가 줄기차게 변화해오면서 느끼고 겪은 수많은 일들이 함축되어 담겨져 있는 정신적 유산이다. 짧고 간결한 그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삶의 진리는 길고 화려한 천 마디, 만 마디의 그것보다 무궁무진하다.백과사전에서 속담의 뜻을 잠깐 살펴본다면 속담이란 옛날부터 말로 전해 내려온 교훈이나 비유의 뜻을 담은 짤막한 말로써 속담은 몇 마디의 짤막한 말로 깊은 뜻과 강한 느낌을 주는 것이 그 특징이다.또한 속담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와 같은 것으로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많다. 이렇게 속담은 인류의 생활상을 반영하여 만들어졌고, 또한 우리는 그 속담 속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동물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이 보고서에서 속담을 통해 동물이 얼마나 깊숙이 인류의 생활에 침투해 있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론인간과 동물은 오랜 세월을 두고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그로 인해 발생된 동물 속담에는 그 나름의 독특하고 흥미진진한 속담들이 매우 많다. 우리나라에는 10만 여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10만 여종의 동물들 중에서도 우리 생활에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동물은 다른 무엇보다 개와 고양이일 것이다. 인간의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고 기거하는 동물인 개와 고양이의 존재감은 그와 관련된 수많은 속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데 호랑이는 지금 현재 그 모습을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뿐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랑이에 관한 속담은 개와 고양이의 그것만큼이나 흔히 접할 수 있다. 옛 선인들의 생활에는 호랑이가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단적인 예이다. 그래서 호랑이와 관련된 속담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호랑이는 우리나라와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 가장 큰 근거로 바로 우리나라 지도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권위를 낮추기 위해 혹자들은 토끼라고도 하지만, 우리나라 지도는 누가 뭐래도 그 권위에 감히 도전할 수 없는 호랑이의 모양을 하고 있다.또한, 호랑이는 권위의 상징이며 예로부터 산신령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처럼 힘과 권위의 상징인 호랑이,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호랑이에 관한 속담이 많다. 그러면 그 속담과 뜻을 알아보기로 하자.첫 번째 속담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이다. 이 속담은 중국에도 있으며 ‘一日之狗 不知畏虎’ 라고 한다. 하루(一日) 강아지(狗)는 호랑이(虎) 두려운(畏) 것을 모른다(不知)는 뜻을 담은 말로 우리나라와 그 뜻이 같다. 이는 즉, 철모르고 아무에게나 함부로 힘을 쓰며 덤비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속담에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은 강아지도 등장을 하는데, 강아지에 비해 호랑이의 위엄과 힘이 크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속담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옛 사람들이 호랑이를 얼마나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고 경외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두 번째 속담도 역시 호랑이와 개라는 동물을 소재로 하여 지었는데 ‘호랑이 개 놀리듯 한다.’ 라는 속담이다. 이 속담은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두고 겉으로는 아주 위해주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해치려고 하는 경우를 표현한 것으로 이 역시도 호랑이의 강한 면을 나타내고 있다.다음 속담은 ‘호랑이가 덮치듯 한다.’ 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갑작스럽게 덮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위의 세 가지 속담은 모두 호랑이의 강함과 그 위엄성을 나타내는 속담들이다. 이를 통해 옛 사람들에게 있어 호랑이는 지금처럼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는 먼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과 또한 다들 호랑이를 강한 존재로 인식하여 무서워하고, 호랑이가 그들에게 있어 공포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또,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 새끼를 잡는다.’ 는 속담이 있는데, 이 속담은 중국에도 같은 뜻을 가진 것이 있다. 중국 속담으로는 ‘不入虎穴, 安得虎子’ 라고 하며 두 가지 속담 모두 뜻하는 바를 이루려면 반드시 그에 마땅한 일을 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당하는 모험과 용기가 필요함을 말한다.‘고양이보고 반찬가게 지키라고 한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다.’ 와 같은 뜻의 속담으로 호랑이에 관련된 것이 있는데 ‘호랑이더러 날고기를 봐달란다.’ 라는 속담이다. 이는 귀중한 물건을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지켜달라고 하면 도리어 더 크게 잃게 될 뿐이라는 말이다. 이는 또 다른 면으로 해석을 해보면 동물에게 그가 좋아하는 것을 맡기면 그게 어떤 동물이든지 참기 힘들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된다.‘호랑이도 고슴도치는 못 잡아먹는다.’ 는 속담이 있다. 약자도 자기 무장을 철저히 하고 있으면 강자가 감히 공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동물의 왕이라고 불리며, 동물 중에서 가장 강하고 그들 위에 군림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 속담은 그런 호랑이에게 감히 대적할 수 있는 것은 고슴도치뿐라는 그런 뜻이 아니라 고슴도치처럼 자기 무장을 단단히 하고 틈을 보이지 않으면 호랑이처럼 강한 동물의 공격도 피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또, ‘호랑이도 제 새끼는 안 잡아먹는다.’ 는 속담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부리고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일은 있어도 해롭게 하는 일은 없다는 뜻을 나타낸다. 호랑이는 육식 동물로 그 어떤 동물도 맹렬히 공격하여 잡아먹는 용맹스러운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 호랑이도 자기 자식은 사랑하고 아낀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처럼 호랑이에게도 육식이라는 본능을 뛰어넘어 지키는 것이 있다는 것으로도 보여진다.또한 호랑이의 모성애를 빗대어 사나운 사람을 비유하는 속담으로 ‘사납기는 새끼 가진 범이다.’ 라는 것이 있다. 자기 자식을 가진 어미는 동물이든 사람이든 자식을 지키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법이다. 지진이나 붕괴 사고 속에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 자기 자식을 보듬어 살리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런 어머니들처럼 호랑이 역시 자식을 지키기 위해 그 어떤 때보다 사나운 태세를 취하여 자식을 보듬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속담이다.‘호랑이도 토끼를 잡으려면 뛰어야 한다.’ 는 속담은 부지런히 일을 해야 먹고 살 수가 있다는 뜻으로 호랑이처럼 강한 동물로 남들 위에 군림하는 위치에 있더라도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들 위에 군림하여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들이 남들 위에 군림한다고 해서 게으르고 요행을 바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속담인 것 같다. 사실 호랑이처럼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먹고 살려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높은 위치에 오르려면 그만큼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주는 것 같다.
    인문/어학| 2006.10.15| 4페이지| 3,000원| 조회(1,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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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등소평평전
    1651년에 지어져 그 때부터 중국의 역사를 지켜본 천안문. 중국 역사의 현장, 그 중심에 서 있던 천안문 광장을 난 1996년 여름, 2002년 여름, 그리고 2004년 여름, 세 번이나 내 두 발로 딛고 섰다. 하지만 앞의 두 해와 2004년 세 번째로 천안문 광장을 디뎠을 때의 내 기분은 사뭇 달랐다. 앞의 두 해에는 그저 중국에 있는 유적지 중의 하나인 천안문 광장에 다녀갔을 뿐이고, 2004년의 나는 내가 배우고 익힌 역사의 현장인 바로 그 천안문 광장에 있었던 것이다. 비로소 중문과 학생이라는 자부심이 생겼던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덩샤오핑 역시 역사의 중심에서 그 천안문 광장에 있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이 발표되던 그 날에도, 그리고 그의 정치 생활에 큰 오점을 남긴 천안문 사건 그 당시에도.『덩샤오핑 평전』,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유독 천안문이 자꾸만 떠올랐다. 덩샤오핑 하면 떠오르는 천안문 사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덩샤오핑이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인 천안문처럼 느껴져서일까?덩샤오핑은 그와 함께 중국이라는 큰 나라를 이끌어간 다른 많은 공산주의자들보다 어린 시절 자라온 환경이 조금은 더 나은 듯 하다. 그의 아버지 덩원밍은 장남인 덩샤오핑에게서 대리만족을 꿈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고향인 작은 마을 쓰촨의 파이팡에는 중등학교만 졸업하고 결혼을 하는 풍습 아닌 풍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덩샤오핑의 뜻에 따라 아들을 더 큰 세계로 내보냈다. 그리고 후에 덩이 프랑스로 유학을 가고자 했을 때에는 땅을 팔아 여비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그 당시 시골에서는 아이도 많이 낳을 수 있고, 그리고 사람을 재산으로 생각하는 농경 사회였을 텐데 거리낌없이 아들을 큰 물로 내보낸 이런 아버지의 뒷바라지는 분명 덩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덩과 아버지 덩원밍의 관계가 친밀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역시 그 당시 중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가부장적인 전통 가족의 형태가 지속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덩의 충칭시로의 상급학교 진급과 열여섯의 어린 나이에 프랑스 유학을 떠난 것은 시대를 거스름과 동시에 시대를 앞서가는 일이었다. 그가 프랑스 유학 길에 오르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 중국 근대화의 선구자로 칭송 받는 덩은 없을 것이다. 충칭을 떠나 프랑스로 가는 길은 무려 두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나도 배를 타고 여행을 해 본 적이 있는데, 물론 덩보다는 훨씬 좋은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만 지나도 뭍이 그리워졌었다. 그에 비해 덩의 두 달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험난한 여정이 있었기에, 프랑스에서의 힘든 시간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프랑스에서의 그들의 생활이 그토록 힘들고 궁핍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저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책에서 밝힌 그들의 실상은 참으로 난관의 연속이었다. 값싼 노동자를 필요로 했던 프랑스 정부의 얕은 술책과 때마침 중국 청년들을 위한 서구식 교육의 필요성을 실감했던 중국 정부의 계략에 그들은 희생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할 일을 찾았고 그 생활이 바로 지금의 중국을 있게 한 몇몇 지도자들의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프랑스 유학 시절 일자리가 없었던 근공검학 동지들에 의한 5프랑의 생존 비용 투쟁과 같은 시위 운동이 일어났고, 이런 열악한 환경과 프랑스의 자본주의 정책에 환멸을 느낀 덩은 공산주의 노선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적광》이라는 혁명지를 통해 공산주의에 발디딘 작고 왜소한 청년 덩샤오핑이 후에 중국을 쥐고 흔들 정치가가 되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덩의 공산주의자로서의 기질은 1926년 파리에서의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모스크바로 향하면서부터 성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에서는 낮에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근근히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품은 뜻을 펼칠 기회도,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는 그가 정말 배우고자 하는 공산주의에 대해서 배우고 그 이론의 기초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고국에 돌아가 혁명에 참여하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왜 프랑스에서 바로 고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모스크바로 향한 것일까? 어떤 문화에 대해 공부를 하면 그 발상지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품게 되는 건 현재를 사는 학생들도, 그 당시 청년이었던 덩도 똑같았던 것 같다. 덩 역시 세계 공산주의의 탄생지인 모스크바에 매혹을 느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혁명에 참가하고 공산당 당원이 되었다고 해서 덩의 정치 인생이 술술 잘 풀린 것은 아니었다. 덩이 정치적으로 매우 힘들었을 때의 애인이었던 아진은 동고동락하던 덩을 버리고, 덩이 당의 비판을 받을 때 앞장서서 비판을 했다.) 그리고는 그 비판 세력의 우두머리였던 리웨이한의 여자가 되었다. 이런 아진의 경우로 미루어 볼 때,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건 명예와 부에 따른 남녀문제는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마오쩌둥과 덩은 서로 필요할 때 만나, 서로를 더 힘 있는 정치가로 만들어준 좋은 파트너였다. 마오는 결국 자신을 위해 덩을 등용했고, 덩은 마오의 후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서로의 이해관계를 통해서 마오와 덩은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서로를 신뢰하고 의존하는 특별한 관계가 성립되었던 것이다.) 둘의 친밀한 관계를 이렇게 책을 통해서 직접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둘을 그저 중국의 위대한 정치가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나에게 둘이 밤을 새며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구절은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끼게 해 주었던 것이다.마오와 덩은 타이완을 정벌하지 못한 것을 죽는 순간까지 아쉬워했다. 공산당이 타이완을 정복할 병력을 계속 모으고 있는 동안 한국 전쟁이 발발했고, 그 때문에 북한에 보낼 의용군을 끌어 모으는 사이 미군이 타이완 해협을 봉쇄해버린 것이다.) 북한에 의용군을 보낼 당시 중국의 상태는 『새로운 황제들』을 통해 자세히 살펴 볼 수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를 통해 보면, 중국의 북한군 지원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내세울만한 무기도 제대로 없이 신무기로 무장한 미군과 그 미군의 지원을 받고 있는 남한군을 향해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정말 인산인해 전술을 글자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기분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중국군만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분단 국가가 아닐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중국군의 원조가 마오의 공산국가를 위한 의리였으며, 의지였다는 것을 『새로운 황제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타이완 문제는 마오와 덩이 사망한 지금도 중국 사회에서 큰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타이완 정부가 야당으로 바뀌면서부터 대륙을 배척하기 시작했고, 한 나라의 기본 문화가 되는 언어부터 독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와 대조적으로 대륙의 중국인들은 타이완이 당연히 중국이라고 여기고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의 중국과 타이완은 명칭도 국기도 다른 두 개의 국가인 것이다. 위대한 정치가 마오와 덩이 죽고 난 지금, 타이완 문제가 어떻게 풀려갈지는 아직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민감한 문제로 남아있다.
    독후감/창작| 2006.10.15| 3페이지| 1,000원| 조회(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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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상문]The day after Tomorrow 감상문
    1 The day after Tomorrow를 보기에 앞서.The day after Tomorrow,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준 바로 그 영화의 제목이다. 과연 이 영화가 The day after Tomorrow" 라는 제목을 앞세워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작년 중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무렵, 이 영화의 예고편을 접했다. 예고편은 거대한 해일이 뉴욕이라는 대도시를 뒤덮는 장면과 건물들이 얼어버리는 장면으로 우리에게 충격을 던져 주었다.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 함께 연수하던 친구들과 잠시 토론을 했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 당시의 나는 영화란 그저 상상에 불과할 뿐이라고, 영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우린 천수를 누리며 살 거라고 위풍당당하게 외쳤었는데, 직접 영화를 본 지금은 그저 충격에 휩싸인 작은 인간일 뿐이다.2 The day after Tomorrow를 보면서.영화에 대한 기억은 낯선 회의의 한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지구 온난화 대책 회의 , 이러한 회의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한다면 분명 범 국제적인 회의일텐데, 그런 기본 상식조차 알지 못하는 나의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 부족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물론, 지구 온난화 대책 회의는 존재하는 국제적인 회의였다. 영화에서처럼 다양한 국가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회의이고, 그 중요성은 여느 회의 못지 않게 클 터였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이미 관객들에게 문제를 던져 놓는다. 그것은 바로 지구 온난화 . 내가 인식하고 있는 지구 온난화는 그저 지구의 기온이 점점 상승하는 상태 정도였는데, 이 영화에서의 지구 온난화는 거의 인간의 종말을 가져온다고 봐도 여부가 없겠다. 주인공인 잭 홀 교수는 이 지구 온난화 대책 회의에서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면 북극의 빙하들이 녹아 해류의 흐름을 바꾸고, 이로 인해 인류는 커다란 재앙을 치러야 할 것이란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하지만 국가정책에 바쁜 부통령은 환경 문제보다 경제 문제가 더 시급하다 하여 그 경고 메시지를 무시해 버린다. 물론, 환경 문제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면 빙하기가 온다는 그의 발언에 관심을 가질리 만무한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잭 역시도 100년 혹은 그 이후의 후손들이 그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어느 누가 지구가 갑자기 얼어붙으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영화 초반에 일본의 수도 도쿄가 잠깐 등장한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비가 내린다는 것 외에는 그저 다른 날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날. 그래서 그 장면에 등장하는 일본인들 역시도 평범한 이들이었다. 일을 마치고 잠시 길거리 포장마차에 들렀다가 집에 가는 샐러리맨 정도. 그런데 그 평범한 날, 갑자기 우박이 내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우박이 아닌, 어른 남자의 주먹만한 커다란 우박 덩어리가. 길거리에 있던 일본인들은 그 커다란 우박 덩어리에 맞아 죽어갔다. 이 장면 이후로 이 영화에서 평범함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실 이 도쿄 장면을 보면서 사람들이 죽어 가는 장면이긴 해도 우리나라였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일본은 분명 아시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등장했을 텐데, 서양에서는 아시아 하면 일본을 떠올린다는 것이 이런 곳에서 드러나는 것 같아 조금 부러운 기분이 들었다. 다음에는 꼭 아시아를 상징하는 장면에서 우리나라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잭과 함께 지구 온난화 대책 회의에 참여했던 영국의 한 연구원이 있었다. 자상한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가진 그 사람만은 잭의 이론에 동조하였고, 그 사람이 일하고 있던 그린랜드 기지 연구원에서 가장 먼저 해수 온도 하강의 문제가 발견되었었다. 그런데 난 영화와 상관없이, 이 부분에서 이 영화를 구성하고 감독한 미국인들 역시도 안일한 근무 태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해수의 온도가 13단계나 떨어졌다고 사람보다 정확한 기계가 경보를 울리고 있었지만, 그들은 파도가 세서 기계가 고장 났겠거니 하면서 방치해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계가 해수의 온도가 떨어진 장소를 2개, 3개 발견해내자 그 때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 것이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미국인들도 사고가 안일하고, 근무 태도가 불성실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것을 뒤돌아보니 이 때까지 난 아직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이 영화에는 자연재해로 인한 인류의 위기만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가족애도 실려 있었다. 잭과 그의 아들 샘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잭은 너무 바쁜 아버지였다. 샘을 잃게 되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가족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잭은 너무나 믿음직스러운 아버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잭과 그 부인의 너무나 자기 희생적인 사랑은 정말 영화다웠다. 얼어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뉴욕으로 샘을 만나러 간 잭, 그리고 구급차가 아닌 제설차라도 타고 병원을 떠나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환자와 함께 병원에 남아 죽음을 기다리는 그의 아내. 솔직히 그의 아내 같은 경우에는 나중에 구급차가 오는 것은 정말 영화이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가족애 이외에도 샘의 사랑 이야기도 이 영화에는 등장하는데, 큰 비중은 아니지만 감동을 줄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어설픈 삼각관계도 시도되었고, 그 여자아이가 다쳐서 눈보라를 뚫고 약을 찾으러 가는 일이라든지, 그러다가 친구가 늑대에 물리고 그 친구를 버리지 않고 힘들게 함께 돌아오는 장면 같은 것은 어찌 보면 침체될 만한 자연재해 영화에서 톡톡 튀는 에피소드가 되어 주었다. 그런데, 영화 중간에 등장한 거대한 배는 도대체 누가 타고 온 배인지, 그 배는 왜 도서관 앞에 정착되어 있었는지 밝혀지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물론, 밝혀지든 밝혀지지 않든 영화에서 비중을 차지하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궁금했었는데 결국 알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그리고 늑대는 도대체 어떻게 우리를 뚫고 탈출해 나왔는지, 늑대 이외에 곰과 같은 동물은 왜 탈출할 수 없었는지, 이런 사소한 문제가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것을 보니 난 아직 영화를 제대로 볼 자세가 잡혀 있지 않은 모양이다.잭의 이론은 빙하가 녹으면 해류가 바뀐다는 것이었다. 녹은 빙하가 해류에 섞여서 바닷물의 염도가 떨어지는 담수화가 이루어지고 이로 인해 북태평양 해류(혹은, 북대서양 해류)의 움직임에 이상이 생겨 에너지의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는 그의 이론은, 정말 몇 만년이나 후에야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을 줄만 알았다. 물론, 그 자신도 자신의 이론이 현세에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아무튼, 해류의 움직임에 이상이 생겨 에너지의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북반구의 고위도 지방의 온도가 점점 떨어져 빙하 시대를 맞이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이상 기후 현상이 나타나 해일과 토네이도 등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태풍의 규모가 커져서 대기권들이 섞여지고, 그 때문에 태풍의 눈의 온도가 급격히 낮아지게 된다. 그 태풍의 눈이 샘이 있던 바로 그 뉴욕을 지나가서 건물들을 다 얼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영화에서는 그의 이런 이론에 따른 기후 변화를 전부 다 보여주었다. 해일, 토네이도, 우박 폭풍에 빙하기까지.. 감히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장면들에 놀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영화 속 장면들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실현 가능성. 그것은 가히 공포라고 불러도 될만한 성질의 것이었다.자유의 여신상을 어깨까지 잠기게 할 정도의 해일이란 것은 대체 얼만큼이나 많은 양인지 우리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순식간에 뉴욕을 뒤덮어버린 해일 속에서, 그리고 눈깜짝할 사이에 수많은 건물을 얼려버린 그 빙하기 속에서 사람이 살아 남는다는 것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리고 그 기적을 샘과 국립 도서관 안의 사람들이 이루어냈고, 잭은 그 기적을 일궈낸 아들을 찾아내는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그렇게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결국에는 잭이 갈등이 있던 아들 샘을 만나고, 경제 정책에만 관심이 있던 부통령이 오만을 접고 환경 문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을 영화는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사람이 잘못을 깨닫는 것만으로 자연재해가 멈추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부여해 주었지만 만약 실제로 영화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예고편을 보았을 당시 생각했던 것처럼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이다. 물론, 그 내용은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런 해피엔딩은 영화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일어나면 안되는 자연재해이지만, 만약 일어난다면 아마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반성과 자연 보호에 대한 관심이 더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독후감/창작| 2006.10.15| 4페이지| 3,000원| 조회(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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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노자
    老子덕이 가득한 군자는 항상 모자란 듯한 법.열전을 읽다 보니, 성인으로 떠받들어지는 두 인물인 노자와 공자가 만나 문답한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노자 열전의 한 부분이었으니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노자의 관직은 주나라 도서관의 기록관이었다. 공자가 주나라에 갔을 때 예에 관하여 노자에게 물어 보자 이렇게 말했다.“그대가 말하는 옛 성인들도 그 몸과 뼈는 이미 썩어 없어지고 단지 그 말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군자는 때를 잘 만나면 높은 벼슬에 나아가게 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그저 하찮은 인생으로 지내기 마련이다. 내가 듣기에 뛰어난 장사치는 가진 것을 깊이 감추어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듯 행동하고, 덕이 가득한 군자 또한 그의 겉모습은 늘 어리석고 모자란 듯하다고 한다. 그대의 모습에는 교만함과 욕심, 훌륭함을 가장하는 태도가 가득하다. 덕은 그대가 갖고 싶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그대의 영혼과 육신에 아무런 도움도 주질 못한다. 내가 그대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만 이것뿐이다.”세속의 성공을 끊임없이 추구하였던 공자에게는 참으로 가슴 아픈 충고였다. 이에 공자는 돌아가서 제자들에게 말하였다.“새가 날아다니고 고기는 헤엄치며 짐승은 달리는 것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아는 사실이다. 달리는 것은 그물을 쳐서 잡고, 헤엄치는 것은 낚시를 드리워서 낚으며, 날아다니는 것은 화살을 쏘아서 떨어뜨릴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용을 대하면, 그것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나는 오늘 노자를 만났는데, 마치 용을 만난 것 같아서 전혀 잡히는 것이 없더라.”노자는 허무의 철학을 중심으로 삼아, 그 또한 스스로 숨어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였다. 세상에서 노자를 배우는 자는 유학을 배척하고, 유학자들 또한 노자의 학문을 배척한다. ‘길이 같지 않으면 함께 도모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마도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노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꾸밈이나 인위적인 가식이 없이 저절로 변화하고, 맑고 고요한 모습으로 스스로 바르게 됨을 가장 귀하게 여겼다.공자와 노자는 같은 시대에 살았지만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공자는 자신의 덕을 미끼로 하여 세속에서의 성공 즉, 관직으로의 등용을 꾸준히 추구하였지만, 노자는 그와 정반대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노자는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도록 숨어서 도를 닦았다고 한다. 노자가 공자에게 했던 충고는 우리 속담 중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와 일맥상통하는 생각인 것 같다. 공자는 후세에 삼황오제의 뒤를 잇는 성인이라고 불리워질 만큼 덕망이 높은 자였으며, 그와 더불어 출세의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런 공자의 모습이 무위의 도를 추구하는 노자가 보기에는 허무하고 허망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에게 있어서는 출세와 관직 같은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인문/어학| 2006.10.15| 2페이지| 1,000원| 조회(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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