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토요일, 하늘도 맑고 더운 여름이 시작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복식사 레포트 때문에 이런 날씨에 박물관이나 가야한다니...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경복궁 역에 막상 내리고 나니 달라졌다. 경복궁 주변이 참 많이 바뀐 탓이다. 중학생 때였나? 꽤 오래 전에 와보고 이번이 처음인데, 비록 주변에 아직 공사 중인 곳도 있었지만 무척 깔끔하고 확 트인 경관에 나들이 온 사람들, 고풍스런 건물들까지 외국의 멋진 공원을 보는 것 같았다. 왜 진작 이런 곳을 찾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우선 급한게 레포트라 민속박물관부터 찾았다. 민속박물관은 경복궁 안으로 들어가야 있었다.박물관은 1,2,3관으로 나뉘어져 있고 1.2,3관 사이의 중앙 공간을 이용하여 특별전시관을 만들어 시기별 기획 전시를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1관은 ?한민족 생활사관?이었다. 이곳에서는 우리민족이 한반도에 자리잡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주요 생활상을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었으며, 이는 선사시대의 생활, 삼국시대의 문화와 생활, 가야의 야철문화, 고려의 인쇄,도자기 그리고 조선의 어문,과학 등으로 구분되었다. 이 곳의 특징은 물품 전시보다는 시기별 옛 선조들의 전형적 생활모습을 모형을 통해 재현해 놓았다는 점이다. 청동기 시대의 생활상, 가야시대의 철기 제련 모습 등이 재현되어 있었다. 유적들은 다호리 1호분에서 발굴된 것들, 고려시대의 자기들, 활자들이 있었다. 또한 우리 민족의 인종 및 언어 계통에 대한 도표를 통해 한민족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도왔다. 그치만 복식사 레포트를 와는 조금 거리가 먼듯하여 대충 관람하였다.2관은 ?생업,의생활,주생활,식생활,수공예? 등 생업에 관계된 생활상을 전시하는 곳이다. 먼저 생업의 경우 우리 민족의 농경 문화를 알 수 있도록 가래,쟁기,방아 등 농기구에 대한 전시가 주를 이뤘다. 의생활은 삼베,명주 등의 천, 물레와 같이 천을 생산하는 도구, 생산된 천을 염색하는 치자 등의 염료용 식물, 노리개 등의 장신구, 바늘,골무와 같은 침선구 등에 대한 전시와 함께 신발, 갓, 패랭이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복식을 재현해 놓기도 하였다. 주생활의 경우 전통적 가옥 양식과 한옥, 초가 등을 재현해 놓았으며, 식생활의 경우에는 상차리기, 장만들기, 양조 작업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복식사 시간에 배웠던 것들이 많이 있었다. 책으로 그림으로 보던것과 다르게 역시 백번듣는거 보다 한번 보는 것이 훨씬 낳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했다.사진은 찍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외국 관광객들이 찍는 틈을타서 찍기 시작했다.고구려고구려의 복식으로 왕복은 오채복이라고 하며 옷감과 색체가 호화찬란하였다. 머리에는 금동관이라는 백라관을 쓰고 바지저고리위에 자색포를 덧입었으며 허리에는 과대를 둘렀으며 황색 가죽신을 신고있었다.왕비복은 치마저고리위에 포를 입고 소매는 크고 길이가 길며 화려한 문양이 있는 자색을 착용하였고 흑색의 선을 깃, 도련 부리에 둘렀고 띠를 맨 것을 볼수 있었다.(고구려 왕비와 왕의 복식)(고려시대 관리 평상복) (고려시대 관복) (고려시대 귀부인복)백 제백제 복식의 왕복은 소매가 넓은 자색포, 청색비단바지, 흰색가죽대(고구려 복식과 흡사함을 볼수있음)머리에는 금동관이나 오라관 신발은 금동신리 또는 오피리를 착용한 것을 볼 수 있었다.(백제의 왕)백제의 왕비복은 고구려의 복식과 비슷한 치마 저고리 위에 포를 덧붙였다. 포는 소매가 크고 길이가 길며 화려한 문양이 있는 자색의 선을 깃, 도련, 소매 부리에 둘렀고 띠를 매었다. 치마는 길이가 길며 폭이 넓은 것이 특징이었다.장신구는 금관과 금으로 장식한 과대, 귀걸이 ,팔지, 가락지 등을 착용했고 신발은 금동식리를 착용하였다.(백제의 왕비)신 라신라복식 왕복으로 보면 삼국시대가 서로 비슷한 특징이 있으며 신라의 왕도 바지 저고리위에 포를 착용 하였으며, 자색의 포는 바탕을 금직으로 하였으며, 문양을 수놓은 붉은색 자색선을 착용하였고 머리에는 금제조익형관을 썼으며 금장색의 과대를 착용하였고 식리를 신고있었다.(신라의 왕복)고구려, 백제와 유사하였으며 치마 저고리에 포를 착용하였고포는 소개가 길고 화려한 문양의자색의 선을 깃, 도련, 소매부리에 대를 매였다.머리에는 금관, 손에는 금반지, 귀걸이, 목걸이, 팔찌등을 착용하였으며허리에는 과대를 매고 식리를 똔느 적피혜등을 신었다.(신라의 왕비복)조선시대(구군복) (당의) (원삼)(장옷) (조복) (철릭)(조선시대 활옷) (개화기 복식)장신구(노리개) (노리개, 호패, 안경집) (어린이 노리개) (삼각 노리개)(비녀) (귀고리) (귀고리) (설피 눈신)(투구) (흉배)머리모양에 한종류로 떠구지 머리라고 함.신발의 변천사를 찍어보았는데 잘보이지는 않았지만 복식사 시간에 배운 금동신리는 확실히 알수있었고 예전에신발들의 특징은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여지며 화려하긴 하지만 무거운 소재인 금이나 동이 소재인 것으로 보아 보통때는 신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특별한 행사때 신던 것이 특징이다.3관은 ?성장과 교육,관례와 혼례,사회생활,상례와 제례? 등 옛 선조의 사회화 과정을 전시하는 곳이다. 아들을 낳기 위한 주술, 백일, 돌 때의 잔치상, 서당과 향교의 모습과 교재들, 홍패?백패 등이 성장과 교육에 대한 것들이었다. 관례와 혼례에 관한 전시로는 허혼서, 사주단자 등 혼례와 관련된 문서들, 친영(親迎)가는 모습 등이 재현되어 있었다. 이외에 놀이문화에 관련된 것으로 탈,악기 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이외에 화폐, 시장, 주막, 조운, 봉화도 등으로 사회 생활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제기, 제구, 제사상 제례와 상례에 대한 선조의 생활을 살필 수 있었다. 또한 3관에서는 주술,점복,풍속에 대한 전시를 볼 수 있었다.
단백질의 성분인 황(Sulfur, S){단백질의 성분함 유 량탄 소50 ~ 55 %수 소6.7 ~ 7.3 %산 소19 ~ 24 %질 소15 ~ 17.6 %유 황0.3 ~ 2.4 %■ 체내 분포황은 모든 세포 내에 존재하며 일반적으로 세포단백질의 구성성분 입니다. 황은 체내에서 설프히드릴기(-SH)의 형태나 이 두 기가 결합해 이황화 결합(-S-S-)을 한 형태로 여러 물질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아미노산인 메티오닌과 시스테인, 헤파린, 인슐린, 티아민, 리포산, 비오틴, 조효소A의 성분이고 머리카락이나(파마,염색에도이용) 피부를 이루는 케라틴 단백질의 성분 입니다.LIPOTROPIC(지방자극 반응성)이다 , 산화 방지 기능을 한다 ,황(SULFUR)의 원료이다. 피 로 방지 요소로 활동한다, 몸이 셀레늄(SELENIUM)을 사용할 때 필수 요소이다. 간장에서 독성이 있는 노폐물을 제거하고 잉여지방을 결합해서 간장을 보호한다. 탈모 방지 작용도 한다.약 20여 종의 이종(異種) 아미노산이 단백질의 구성 단위로 발견되어 왔는데 이들의 발견 은 대략 125년에 걸쳐서 이루어 졌다. 이들 중 최초의 발견은, 약 90년 동안이나, 단백질 하고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1810년 영국의 의사 겸 화학자였던 William Hyde Wollaston이 환자 한 사람에게서 제거한 방광석을 분석해서 아미노산 한가 지를 얻었다. (이 돌은 콩팥이나 방광 안의 오줌으로부터 종종 침전되는 불용성 침전물로 되어 있다. 이들 돌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Wollaston은 희귀한 형태의 것 하나를 입 수했던 것이다.)그런데 그는 그 돌이 대부분 황 함유 유기 화합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C Cystine이라고 명명했다. 그리스어로 "kystis"는 방광을 의미한다. 1899년에 와서야 이것 과 똑 같은 아미노산이 동물의 뿔 안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뿔은 일종의 단백질 을 함유하는데 이것이 keratin 단백질이며(그리스어 keras는 뿔을 의미한다), 이것은 모 든 단백질 중 가장 풍부하게 Cystine을 함유한 것이므로 바로 적절한 발견이었던 것이다.이어서, Cystine이 용이하게 전환을 이르키게 될, 동시에 Cystine과 아주 유사한 아미노 산 한 개가 발견되었다. 이 두번째 아미노산은 "Cysteine"이라고 명명되었다. 이것은 Cystine과의 유사성을 강조하기 위한 명명이었던 바, "e"가 하나 첨가되었으나 철자상 눈 에 뜨이지도 않았으며 발음상으로도 귀에 느껴지지 못했다.단백질로부터 얻은 다른 종류의 아미노산들은 처음에 그들이 발견되었던 원료 물질에 따 라 명명되었다. 예컨데 1849년 치즈(cheese)로부터 분리된 것은 그리스어로 치즈를 의미 하는 "tyros"로부터 따서 "tyrosine"이라고 명명되었다. 1865년에는 견사(silk)로부터 다 른 아미노산이 분리되었는데 라틴어로 견사를 뜻하는 "serica"로부터 따서 "serine"이라 고 명명했다(견사를 나타내는 라틴어는 동아시아 민족을 의미하는 "Seres"에서 나온 것이 다).1806년에 아스파라가스에서 보다 간접적인 방법으로 분리된 아미노산을 "asparagine"이라 고 명명하였다. 1832년에는 이것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으면서 비교적 강한 산성을 띠는 화합물을 발견하였는데, asparagine이 전환된 것이므로 aspartic acid라고 명명했다. 1875년에 와서 aspartic acid가 단백질 안에 있는 아미노산 중 하나라는 것이 알려졌으 며, 그후 asparagine이라는 말이 아직도 표에 실려 나오고 있다.■ 기능황은 조직의 호흡작용, 생물적 산화과정에 관여합니다. 또한 설프히드릴기는 고에너지황 결합을 형성하고, 독성물질이 활성화된 황산염과 결합하여 독성이 없는 물질로 전환되어 소변으로 배설시키므로 황은 해독작용에도 관여합니다.식물성 단백질 황은 대사되어 황산염 형태로 변하면서 칼슘을 동반하여 소변중으로 배설되기 때문에 황이 많으면 칼슘의 손실이 많아지기도 합니다.동물성 단백질은 콩단백질보다 황이 많아 골다공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고 또한 동물성 단백질의 과잉섭취 시에는 칼슘손실, 결장암 빈도증가, 신장 부담, 췌장기능 저하가 올 수 있습니다.단백질이 많은 고기나 계란 등은 발효되면서 질소와 황 이 발생되는데 이것이 방구를낄때의 고약한 냄새의 주범이기도 합니다. 구취의 발생은 혐기성 그람음성 세균에 의해 단백질이 분해되어 발생되는 휘발성 황화합물(VSC‥Volatile Sulfur Compounds)에 의해 유발됩니다.
어버이날을 되새기며....일상에 찌들어 살던 나에게 가정의 달 인 5월은, 한참을 집이 아닌 직장에서 서성거리던 나의 관심이 그 기간만큼은 집으로 귀환(歸還)하는 (적어도 가정에서만큼은) 풍요로운 한달이 된다.특히 며칠 전 지낸 어버이날 엔 직장생활과 대학생활을 병행하는 장녀인 본인의 말없는 후원자가 되어주신 부모님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유년기를 돌아보면, 아니 몇 년 전만 해도 고작 종이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물질적인 여유가 허용하는 선에서 선물을 해드렸고, 어버이날. 그 의미조차 알지 못했던게 사실이다.이번 과제를 위해 어버이날에 무엇을 해드렸으며, 무슨일이 있었는가에 대해 글로 표현할 수 있을만큼 정제된. 그리고 다소 의도적인 행동을 보여드린점도 없지만은 않은 하루였지만, 무의미하게 보낸 예전의 어버이날보다는 보다 특별한 날이었다.동생과 나는 각자 어머니가(아버지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다) 어떤선물을 받으면 기뻐하실지에 대해 고심한 끝에, 우산과 향수를 각각 샀다.작년 어머니의 생신때 향수를 선물해 드렸었는데, 향수에 대해 문외한이셨던 어머니에게 또 다른 취미를 갖게 해준 계기가 된 전환점-미니어처 향수 수집이 본인의 취미이기도 하다-은 본인에겐 이루말할수 없는 또 하나의 기쁨이다.조금만 더 향이 은은하고, 상큼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던 어머니. 그래서 강하지 않은 20대 여성의 느낌의 향을(엘리자베스 아덴의 Green Tea를 선물했다)선물했는데, 시향하시며 환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웃으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내 마음속 어느 한곳에. 그 잔향과 함께 은은하게 남아있다.동생의 선물 역시 20대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꽤 세련된 디자인의 우산인데, 우리 자매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았지만, 엄마~ 이 선물 받으시고 보다 젊어진 마음으로 오래오래 사세요~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저녁 무렵, 모처럼의 외식을 하면서 어머니가 회를 좋아하셨다는 것을 처음 알게되었다. 어머니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시는지도 모르는 딸이라는 부끄러운 생각에 한참동안 고개를 들 수 없었다.아침식사를 거르고 다녔던지라 어머니와 식탁을 마주한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바쁜 직장생활과 힘든 학교생활 때문이라고 지금까지 합리화시켰다지만, 자식된 도리에 너무나 소홀했던 딸이라는 오명(汚名)은 한참동안 내 마음을 짓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