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애를 보고◀{나는 영화를 많이 본다. 남자친구가 군대에 가버린 지금에는 그 횟수가 좀 현저하게 줄긴 했지만. 여하튼 영화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극장에 가서 표를 사고 혹은 바쁜 주말을 대비하여 예매를 하고 하는 것은 일상적인 것이 되었었다. 그렇기에 비록 여성 영화제라는 타이틀 안의 영화라고 해서 무언가 특별한 걸 기대하고 본 것은 아니었는데 뜻밖에도 나에게는 매우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솔직히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강제적인 이유였다. 를 써야하는 친구에게 거의 반 강제적으로 끌려간 것이였으니깐. 여성영화제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지극히 개인적인 본인의 견해로) 여권신장을 위한 캠페인,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반란, 한 많은 여성의 삶 등과 같은 칙칙하고 딱딱한 주제들 투성이일 거라는 편견 때문에 그다지 재미는 없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영화를 골라보라는 친구의 말에 최고로 가볍고 재미있음직한 영화를 골라야만 했다. 결국 당첨된 것은 변영주 감독의 밀애 였다. 야동(야한동영상)같은 분위기의 포스터부터 벌써 필이 꽂혔다. 지루하진 않을 것이다. 최소한 배드신은 보장된 것이다. 나의 관람은 이렇 듯 불순한 의도로 시작되었다.상영관은 대학로에 있는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였다. 자원 봉사자들의 안내에 따라 자리를 찾은 나와 친구는이게 얼마만에 보는 예술(?)영화냐며, 졸지 않을 것을 서로에게 다짐한 채 자리를 잡았다.부산하던 소리가 멈추고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암전 후에 영화사 로고가 화면에 비추어지는 걸 보니 여느 때 영화 보던 것과 그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숨소리도 나지 않는 고요한 극장 안 영화의 시작은 미흔(김윤진분)의 수중씬을 시작으로 시작된다. 평안하고 일상적인 가정이 나온다. 남편이 아내와 함께 다 말린 빨래를 함께 개주는 장면은 현실과 동떨어져 보였지만(대한민국 안에 저런 모습을 연출해 해는 가정이 과연 몇 가구나 있을지?) 아주 없다고 자신할 수도 없다. 행복한 가정 뭐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가 보다. 뜬금 없이 울린 초인종소리와 함께 새로운 손님이 그 가정에 들어온다. 그 손님은 내가 보기에도 아주 어색하고 이상한 사람이었다. 예상대로 극중 미흔 남편의 불륜상대였다. 그 여자의 등장으로 불륜은 폭로되고 가정은 조각났다. 정신적인 충격과 육체적인 충격을 동시에 받고 우울증환자가 되어버린 미흔을 위해 남편이 전원주택을 얻고 거기서 서점을 운영하며 살게되지만 결코 밝고 안락한 분위기는 나지 않는다. 두통에 시달리며 의욕도 없고 허무한 미흔의 그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불륜이라는 것은 아마 다 저런 절망 속으로 여자를 빠트리는 무기인가보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새롭게 인규(최종원분)라는 인물이 나오면서 우리는 맞바람을 예상했다.(당연하지 않은가? 밀애 포스터에는 김윤진과 최종원의 충격적인 배드신! 이라는 문구가 선명히 찍혀있으니까!) 미흔의 차가 고장나서 우연히 인규를 만나게 되고 인규의 병원에 약을 타러 갔다가 또 한번 부딪치고 인규로부터 불륜게임을 제안받는다. 그래 일이 터졌구나! 영화의 끝은 어떻게 될까? 벌써부터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불륜 제안을 받아들인 후 잦은 배드신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남성감독들의 베드신에 너무나 익숙해진 탓인지, 기대했던 배드신은 그리 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카메라는 김윤진의 몸을 감칠맛 나도록 훑지 않았고, 김윤진의 신음소리가 좀 귀에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도 에로틱하다기보단 예쁘게 만들어진 배드신이였다.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지도 않았고 옆에 있는 남자들의 눈치를 보며 애써 안보는 척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그저 구경하는 사람이고 아무도 뒤척이거나 화면에서 눈을 때거나 하는 움직임은 없었던 것 같다. 다들 그저 여태 그랬던 것처럼 영화를 보고 있었다. 불륜은 결국 발각되었고 미흔은 인규를 택했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너무 일찍 인규를 잃었고 혼자 남은 미흔은 근근히 돈을 벌며 자신만의 인생을 당차게 산다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가 끝나고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을 때 감독과의 인터뷰가 있다는 안내를 들었다. 연극을 보고 배우와 연출자와의 만남을 가지고 질문하고 토론해본 경험이 있긴 하지만 영화를 보고 감독을 만나는 것은 또 다른 새로운 느낌이었다. 다시 극장 안이 환해지고 난 후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자관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자관객에 비해 소수이긴 했다. 여기저기서 감독에게 영화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새삼 느꼈지만 감독이란 사람들은 정말 말을 잘한다. 자신이 생각하고 주장하는 내용을 어쩜 그리 논리적이고 명확하게 말해주는지 감탄했다. 그리고 역시 예상했던 대로 남성화된 여성감독이었다.(지극히 외모에 비중을 두어 표현하면-까만가죽재킷, 까맣고 각진 선글라스, 짧은머리(뾰족하게 세운), 건장한체구, 큰키) 나는 좀더 여성스러운(?!) 모습을 조금 기대했었다. 단아하고 수수한 옷차림에 조용한 성격에 말투마저 나긋나긋한 그런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하고 말이다. 어디까지나 바램이지만. 이제 딱 한가지 질문만 더 받겠다는 안내자의 말에 손을 번쩍 들었다. 불행히도 나 외에 다른 사람도 손을 들었고 두 가지 질문을 한꺼번에 받고 대답도 같이 하겠다는 변감독의 제의로 해결이 되었다. 다른 사람의 질문은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했던 질문은 이 영화에는 몇 가지 형태의 사랑이 나오는데 감독 본인은 어떤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였다. 변 감독은 이 영화에서 나오는 모든 종류의 사랑이 다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사랑한다고 믿었던 그 순간에만 말이죠, 결론적으로는 사랑은 그 순간에만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해 주었다. 비로소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랄까?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랑이든 그 순간에는 진실이지만 시간과 환경이 변해감에 따라 사랑이 변질되어 가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감독과의 만남을 가진 후 영화관을 빠져나오며 동행했던 두 남자에게 영화가 어땠느냐고 물었다. 한결같이 지루하고 재미없고 이해 못할 영화였다는 대답을 했다. 친구에게 물었더니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는 대답을 했다. 나 자신은 지루해서 재미는 없었지만 뚜렷하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같은 영화를 보고 각기 다른 견해와 느낌을 가지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그리고 남성관객은 이 영화를 재미없게 본다는 것도 특이할만한 사항이었다.(문을 나서며 연인으로 보이는 한 커플을 보았는데 남자가 여자에게 재미없는 영화였다고 구박하는 모습을 보았다.) 영화가 그렇게 모호하거나 어려운 방법을 택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남성들에게는 뭔가 이해하기 힘든 여성특유의 코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건 어느 중년여성관객이었다. 극장을 빠져나가며 슬낏 본 것이지만 그 중년여성은 모두가 바쁘게 극장을 빠져나갈 때 자신의 좌석에 앉아 변감독이 사라지는 곳을 계속 주시하며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약간의 감동을 받았지만 그 분은 영화를 봄으로써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은 듯 보였다. 자리를 쉽게 뜰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