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제 ♣1.관료제의 개념의 성립과 전개1정치학적인 개념처음에 관료제는 18c에 정치학적인 개념에서 출발했는데 관료제가 하나의 권력집단으로 등장하여 관료들이 국가기관을 장악하고 통치하는 형태였다. 우리나라의 3공화국때도 초기에 군관료들이 국정을 운영했고, 그 다음 민간관료들이 등장한 것이다. 통일민족국가의 2개의 주된 체제로서 상비군과 관료제인데 절대군주의 대리자로써 관료집단이 전면에 등장해서 권력을 행사한 것이다.2조직론적인 개념사회과학의 거목인 베버에 의해서 1920년대에 조직론적인 개념으로써의 관료제가 연구되는데, 베버는 1864년에 출생하여 당시 부친은 국회의원, 엄마는 독실한 카톨릭신자, 그의 어머니의 영향으로 프로테스탄리즘과 청교도 윤리를 저술하기도 했는데, 이 저서는 1920년대 베버사후 후학들이 정리했는데 거기에 관료제의 이념형 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가장 바람직한 관료제의 상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저러한 구조적인 특징을 갖추어야 한다고 밝혔는데, 근데 이상형이었는데 당시 프로이센의 군대조직을 염두에 두면서 연구했다. 현존하는 어떤 조직의 평균치가 아니고 추상적, 사변적으로 이론을 정립한 것이다.여기서 능률적, 효율적 관료제가 되기 위한 이념형을 제시한다. 베버는 관료제를 공사를 불문하고 대규모 조직(군대조직, 기업조직, 교회조직, 학교조직, 노동조합조직, 정당조직...)으로써 파악했는데 즉 계층제와 분업체제를 갖춘 대규모조직이 관료제인 것이다. 마틴 알부르가 관료제의 현대적인 개념으로 7개를 구분했는데, 여기서 이것을 크게 2개로 보면, 정치학적인 개념과 조직론적 개념의 2가지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관료제에 대한 접근방법도 권력관료적 접근방법과 기술구조적 접근방법이 있는데, 권력구조적 접근방법에서는 관료제를 하나의 권력집단으로 파악하여, 관료제의 책임성을 어떻게 확보하고 그러므로 관료제를 어떻게 민주화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베버는 structure of organization generallyf로써 파악했는데 합리적, 효율적, 능률적이라는 말과 같은데, 구조를 어떻게 설명하느냐? 근데 베버가 가장 바람직한 관료제의 구조로 강조한 것이 법, 규정, 절차인데 조직 구성원은 거기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감정이 개입되서는 능률적이 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즉, 기계처럼 움직여야 합리적, 능률적인 조직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이다. 개인의 욕구, 인간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톱니바퀴의 한 이빨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포드시스템은 철저히 인간이 기계에 예속되는 것인데, 여기서 인간은 무력감, 그리고 옆사람과의 인간적인 유대가 철저히 단절되고 여기에서 인간은 소외, 자기소외를 느끼고 회사를 떠난다. 그러면서 대대적인 우리에게도 인간적인 것을 보장하라 고 하기도 하고 의회보고서에 이것은 철저한 경영독재체제에 대한 반발, 인간적인 요소의 철저한 배제에 대한 반발 의 내용으로 보고된다. 이런 인간의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적인 요소를 위한 인간관계적 접근이 필요한데 그래서 인간의 욕구, 감정, 가치관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데 이러한 접근방법이 앞으로는 발전되는 것이다.2.관료제의 유형관료제적 통치구조는 고대 이집트·로마·중국 및 중세의 로마교회에서도 나타났으나 전형적인 관료제가 출현한 것은 근대국가의 성립부터이다. 성립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관료제는 3가지로 나눌 수 있다.1 절대왕정의 관료제관료제는 근대국가의 초기 단계인 절대주의의 강력한 지주로서 형성되었다. 절대왕정은 봉건사회의 영주·교회·도시·지주 등 다원적으로 분열되어 있던 제정치권력을 박탈하여 왕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적인 통일국가를 형성하는 데에서 성립하였다. 법률·병참·세제·치안유지 등에 관한 지식의 소유자가 종래의 봉건적 가신과 더불어 새로이 군주의 측근에 관료로서 등용되었던 관료제기구에서는 2가지의 뚜렷한 특색을 볼 수 있다. 관권과 인민과의 관계는 특권적 성격이다. 관료기구 내부의 상·하관계는 군대식의 엄격한 규율과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엄중한 신분상 차별을 가져 온다. 군주와 고급관료는 이러한 군대식 복무규율을 화 등도 특징으로 들 수 있다.2 엽관제적 관료제상공업의 발달로 새롭게 등장한 중산계급의 이해와 군주의 이해가 대립하자, 의회를 중심으로 군주의 권력을 극복하려는 중산계급의 의지에서부터 근대민주주의 국가가 출발하였다. 의회가 군주의 세력을 극복함에 있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특권적 관료기구를 개혁하는 것이었다. 이에 의회는 군주와 관료기구의 인격적 결합을 단절하여 관료기구의 특권적 신분제의 기초를 해체하려 했으며, 이러한 개혁을 위하여 의회는 관료기구를 자기의 지배하에 두었다. 이 개혁으로 관료기구는 군주의 사용인으로서의 특권적 지위에서 이탈하여 국민의 사용인이라는 공무원제로 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의회의 다수당이 자유롭게 공무원을 경질하는 이른바 엽관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관료제는 오직 법률이나 정책의 순수한 집행자의 집단이라는 의미만을 갖는다.3 현대적 관료제시민사회의 성장과 그 정치적 승리의 소산이었던 공무원제는 19세기 후반부터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 원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관료기구를 지배하여 오던 정당이 변질되었다는 사실이다. 19세기 말부터 선거권의 확대로 정당의 규모가 커지자, 관료기구는 국민적 이익보다 정당의 특수이익을 위하여, 전체의 봉사자라는 공무원제로서의 성격보다 정당의 특수이익에 봉사한다는 그릇된 의미만을 지닌 정당적 관료제로서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금권 및 정당에서 관료기구를 분리하여 정치세력과는 관계없이 공무원의 지위를 보장함으로써 관료기구를 정화하려는 혁신적 운동이 나타났다. 1881년 미국에서 전국공무원제도개혁연맹이 성립한 것이 그 한 예이다. 둘째, 19세기 말부터 국가기능이 확대·강화됨에 따라 전문적 능력을 가진 강력한 관료기구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근대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정부의 기능이 양적으로 확대되고 질적으로 고도의 전문성·기술성을 띠게 되면서 비전문가인 정당인·의원이 처리할 수 없는 전문적 국가기능이 극도로 증대함으로써 거대한 전문행정관료제의 탄생이 요청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관리의 자 관료제는 정치적·금권적 구속에서 벗어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신분보장을 확보했으며, 실적주의를 토대로 한 능률적 관료제를 형성했다. 영국의 공무원제도 개혁에 관한 추밀원령, 1883년 미국의 펜들턴법 등은 현대적 관료제를 형성하기 위한 최초의 법률들이었다3. 관료제의 순기능주로, 이 부류의 학자는 사회학자들인데, 특히 기술, 구조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학자들이다.1 Peter M. Blau: 관료제는 능률을 극대화하는 조직으로 파악한다. 이런 극대화에 대해서 Ferrel Heady의 평가에 의하면, 그는 관료제를 『계층제, 분화 또는 분업, 자격과 능력을 갖춘사람』으로 파악하는데 여기서 계층제적인 분업체계에 자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충원되고 결국은 계층제를 통해서 조직이 안정화될 수가 있고, 분화 및 분업 그리고 자격과 능력을 통해서 조직이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라는 것이다. 즉 권력, 권위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지식에 의한 지배가 관료제라는 것인데 결국은 능률을 극대화할 수 있고, 합리적인 조직이 관료제라고 본다.2 R. C. Stone / R. G. Francise: 대규모, 복합적 조직에서 안정성과 능률성을 유지하는데 적합한 조직화의 방법이 관료제이다.3 Peter Leonard: 조직의 목표 달성이라는 측면에서 관료제를 합리적 명확히 정의(규정)된 활동체계"로 본다.4. 관료제의 역기능Merton을 비롯한 후학들이 현실형으로써의 관료제가 갖는 역기능을 제시한다. 그러면 왜 이러한 역기능이 생기는 것이냐? 특히 관료제의 민주화, 인간화, 기계화의 실현에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가? 주로, 후학들은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어서 역기능을 다루지만 위의 관점에서 검토해 보도록 한다.1 민주화(민주성)의 문제이념형에서 볼 때,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이 상호간 인격적 지배복종의 관계가 아니고 직무상의 상명하복의 관계이기에 모든 조직의 구성원은 자유, 평등, 독립성을 확보하여 조직의 대내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또한 대외적인 측면에서 볼 때, 법치행정의담당자와 수혜자의 평등을 이룰 수가 있는데 이것이 대외적인 민주주의인 것이다. 여기서는 관료의 자의, 특권은 불인정 되고 법에 따른 업무처리되는 법치행정의 실현이 되는 것이다. 대내적, 대외적 민주화의 실현을 통해서 민주성 확립을 기대했으나 현실적으로 조직이 관료화됨에 따라, 대내적으로는 계층의 분화 즉 수직적, 수평적 분화와 전문화를 통한 계층의 분화가 일어나고 이에 따라서 관리직과 사무직의 계층 분화가 불가피하다. 그래서 사무직은 정책집행을 하고, 관리직은 정책결정을 하게 된다. 그래서, 소수엘리트에 의한 정책결정의 독점 그리고 다수의 사무직은 정책결정에의 참여가 봉쇄된다. 이것은 조직의 대내적인 민주화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외적인 측면으로는 관료들의 법규의 내면화 현상이 나타나는데, 즉 법규체질 이 되어 가는데, 이러한 법규의 내면화 현상을 통해서, 관료들의 행태가 경직성, 융통성의 결여, 관료들의 오만한 자세, 법규에 의한 자기도피, 지나친 객관성의 강조 등이 일반 국민들과의 갈등을 야기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대외적인 민주성읗ㄹ 저해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2 능률성(효율성)의 문제Merton, Goldner 등도 주로 능률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념형에서는 비약적인 능률증진을 기대하는데, 관료제는 전문지식에 의한 지배체제인데, 관료제에 충원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결국 높은 효율성을 야기할 것이다. 또 업무의 수행도 법, 규정, 절차에 의하기 때문에 업무의 정확성, 신속성, 통일성, 일관성, 계속성을 실현하게 된다. 결국 조직의 높은 효율성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형으로써 조직이 관료제화되어감에 따라서 고도의 분업체제속에서 인간은 기계의 한 톱니바퀴로 전락을 해 버린다. 여기서 조직원들은 무력감을 느끼는데 결국 사기저하로 이어진다. 그리고 조직이 관료제화되어감에 따라 인격적 상호관계가 기계적, 직능적 상호관계로 전환, 대체되어 인간적인 유대의 단절이 야기되어 인간의 고립화, 원자화로 인하여 능것이다.
♧ 일본의 벚꽃놀이 ♧·회계년도의 시작·입학·입사일본에서 벚꽃은 3월 하순부터 4월에 걸쳐 북상하면서 꽃을 피운다. 꽃이 피고 약 일주일이면 만개하는데 이 때가 되면 술과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꽃을 감상하면서 연회를 갖는다. 이것이 꽃놀이이다. 일반적으로 벚꽃나무 아래에 돗자리 등을 깔고 그 위에서 연회를 갖는데 낮뿐만 아니라 밤벚꽃을 감상하면서 밤에 꽃놀이를 갖는 이들도 많다.4월은 일본의 회계년도가 시작되는 달이다. 입학식, 입사식이 열리는 계절이기도 하며 어색한 교복 또는 양복을 입은 신입생과 신입사원들의 풋풋한 모습이 눈에 띄는 시기이다. 이렇게 새로운 시작을 장식하는 것이 벚꽃이다.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가 되면 각지에서 꽃놀이 행사가 열리는데 회사의 꽃놀이 행사에는 신입사원들이 첫 업무로서 대활약을 하기도 한다. 유명한 꽃놀이 장소에는 많은 인파가 몰리기 때문에 밤벚꽃놀이의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아침부터 양복에 넥타이 차림으로 벚꽃나무 아래에 앉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신입사원도 자주 볼 수 있다.·하나미 (花見)에도 시대의 하나미란 심한 속박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서민들이 힘들고 고된 일상에서 벗어나 기분 전환하여 다시 생기를 찾는 하나의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현재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하나미 축제는 일본인들의 낙(樂) 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하나미를 글자 그대로 보면 하나(花)+미(見), 즉 꽃구경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장미나 튤립, 해바라기등 여러 가지 꽃이 있는데 왜 하나미라하면 ‘벚꽃을 보다’라는 의미로 되는 걸까? 글자대로라면 사쿠라미가 아닐까? 그것은 단연 일본을 상징하는 국화는 벚꽃이며 일본의 전지역을 수놓고 있는 화사함과 화려함을 갖고 있는 활짝 핀 벚꽃의 매력일 것이다. 벚꽃이 만개 하는 시기가 되면 전국각지에서 크고 작은 하나미 축제가 열린다. 대개 가족 단위의 관람객과 회사원들, 그리고 연인들이 하나미를 즐기러 온다. 일반적인 하나미의 전경이라 하면 벚꽃나무아래 돗자리를 펴고 옹기종기 둥글게 모여 앉아 정성껏 준비해온 음식과 술을 내놓고 벚꽃을 감상하며 먹고 마시는 연회를 즐기는 것이다. 「금강산도식후경」이란 말 그대로 하나미에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하나미라 하면 오하나미벤또(꽃구경 갈 때 싸 가는 도시락)와 술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왜 일본에서는 벚꽃나무 아래서 벚꽃을 보며 술을 마시는 것일까? 옛날 이야기에 따르면, 벚꽃은 산신령이 내려올 때 표시해둔 영이 깃 든 나무로써 신성시 되어왔고, 술은 원래 신에게 바친 제물을 제사가 끝난 뒤 모두 함께 나눠 마셨다는 의미에서 모두 벚꽃나무 아래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벚꽃놀이의 유래벚꽃놀이는 헤이안(平安)시대부터 궁정에서 즐긴 귀족 놀이로 알려져 있는데 가마쿠라(鎌倉)시대 이후에는 무사집안 사이에서도 유행했다. 서민들은 시를 노래하기 위해서 벚꽃을 감상하였던 것이 아니라 꽃이 피는 상 태를 보고 그 해의 농사를 점쳤다. 이러한 "벚꽃놀이" 가 서민들의 일반적인 놀이문화로 널리 퍼진 것은 에도시대의 겐로쿠 (元祿 17세기 말~18세기 초) 무렵 부터이다. 노천에서 바닥에 돗자리 등을 깔고 자리를 마련하여 먹고 마시면서 춤추고 노래하는 현재와 같은 형식도 에도시대에 에도(江戶), 오사카(大阪), 교토(京都) 등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한 서민의 꽃놀이 풍속을 계승한 것이다. 또 주고쿠(中國), 긴키(近畿), 간토(關東)지방에서는 음력 3월 3일이나 4일, 산에 올라 음식을 먹는 형태의 꽃놀이 행사를 가졌으며 그 외 지방에서도 벚꽃이 피는 시기에 각각의 지역에 알맞은 벚꽃 축제행사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벚꽃과 관련된 토막상식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 : 벚꽃은 종류는 많지만, 전국적으로 가장 널리 분포하고 있으며, 벚꽃의 개화전선 등에 인용되는 대표적인 벚꽃, 메이지(明治)초기에 도쿄의 소메이(도요시마구 ; 豊島區) 식목원에서 요시노 사쿠라(吉野櫻)라는 이름으로 팔기 시작하여 후에 소메이요시노라고 명명된 2종의 교잡종이다. 참고로 벚꽃의 꽃말은 뛰어난 미인, 정신적 아름다움이다.·벚꽃의 개화전선일본말에 '벚꽃전선'이라는 단어가 있다. 한국인에게 낯선 '벚꽃 전선'이라는 말은 일본 전국의 매년 봄 벚꽃이 피는 시기를 예상해 개화시기가 비슷한 지역을 연결해 일기도에서 보는 한랭전선 또는 온난전선처럼 선으로 그려낸 것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한국에서 매년 가을 전국의 단풍이 드는 시기를 예상해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다.3월 중순부터 우선 일기예보가 바뀐다. 날씨를 나타내는 기상도와 함께 사쿠라 기상도를 시간마다 중요테마로 다루고 소개한다. 채널을 돌릴 때마다 나오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안 외울 수가 없다. 하나미를 하러 가기 전날부터 입고 갈 옷을 챙기고, 음식을 준비하며 문 위에는 다음 날 날씨가 좋도록 소원을 비는 인형인 테르테르보우즈(照る照る坊主)를 매달았다.·벚꽃의 3대 명소1 다카토죠시(高遠城址) 공원 (나가노현 : 長野縣)「천하제일의 벚꽃」을 자칭할 정도로 성터 유적 안이 고히간(小彼岸 : 벚꽃나무 품종) 벚꽃 일색이다. 폐성이 된 성터 유적지에 메이지 8년부터 심기 시작한 벚꽃나무가 약 1,500그루나 되며 그 담홍색의 가련한 꽃은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다.2 히로사키(弘前) 공원 (아오모리현 : 靑森縣)히로사키 공원에는 히로사키 성의 유적이 있으며 성을 둘러 파 놓은 도랑 양쪽에 소메이요시를 비롯하여 성 전체적으로 약 5,000그루의 벚꽃나무가 심어져 있다. 1882년경에 심어진 소메이요시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벚꽃나무이며 현재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3 요시노야마(吉野山) (나라현 : 奈良縣)예로부터 벚꽃의 명소로 알려져 있으며 200여종 약 30,000그루의 벚꽃나무가 심어져 있다.·3대 벚꽃나무1 미하루의 다키자쿠라(三春の瀧櫻) (후쿠시마현 : 福島縣)수령이 1,000년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담홍색으로 축 늘어진 모습이 폭포수 떨어지는 모 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다키자쿠라라고 한다.2 네오다니 우스즈미자쿠라(根尾谷淡墨櫻) (기후현 : 岐阜縣)수령은 약 1,500년 정도이며 이 벚꽃나무는 처음 흰 색이던 꽃잎이 점차로 엷은 먹색으로 변해가기 때문에 우스즈미자쿠라라고 부른다.3 야마타카 진다이자쿠라(山高神代櫻) (야마나시현 : 山梨縣)품종은 에도히간으로 수령은 약 2,000년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나무 둘레가 13.5m나 되며 大正 11년(1922년) 나무로서는 최초로 천연기념물 1호로 지정되었다.·벚꽃을 보면서 먹는 도시락벚꽃을 즐기는 풍습은 헤이안 시대에서부터 시작되지만, 도시락을 준비해 들고 와서 즐기는 것은 모모야마(桃山) 시대부터라고 한다. 일본인들은 하나미 같이 소풍을 간다든지 야외로 나갈 때 도시락을 싸서 간다. 일반적으로 김밥같이 간단한 것을 준비하거나 석쇠에 고기를 구워먹기도 한다. 그림에서 보이는 것은 4겹으로 된 찬합에 죽순, 산야채 등의 계절 야채를 중심으로 '황, 적, 녹, 흑, 백'의 5색을 조화시켜 영양 밸런스도 좋을 뿐만 아니라, 기름을 사용하지 않아 차가와 져도 맛이 있으며, 현존하는 하나미 도시락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개는 스시, 야끼소바, 오니기리, 오뎅 같은 것과 맥주나 우롱차, 녹차같은 것을 준비한다. 그리고 흔히 먹는 또 한가지 바로 단고(떡꼬치)이다. 이 단고는 떡이 3-4개 꽂혀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어린이 TV프로에서 "단고 삼형제"라는 탱고리듬의 노래가 대히트 친 후 3개로 통일되었다.·벚꽃과 술을 즐기는 이유하나미 하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술이다. 하나미는 낮에만 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밤늦게 까지 술을 마시는 경향이 강하며 하나미에서 점점 술자리로 바뀌어 간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미는 단지 꽃만을 바라보는 행위가 아니라 술을 마시면 노래도 부르고 대화를 나누는 화목한 시간이다. 고대 일본의 신중에서 가장 위대한 신은 사가미(さ神)라는 산신이고 옛 일본의 나라 이름에도 사쯔마, 사누끼, 사가미 등 "사"자가 붙는 경우가 많았으며 꽃 중에서도 사로 시작하는 사쿠라가 사가미의 영이 깃든 꽃나무이기 때문에 사쿠라 밑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고대부터 내려오는 풍습이라는 설이 있다.·하나미의 문화하나미의 계절에 벚나무아래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전쟁터와 같은 모습이 연출되곤 한다. 회사의 꽃놀이 행사에는 신입사원들이 첫 업무로서 대 활약을 하기도 한다. 유명한 꽃놀이 장소에는 많은 인하가 몰리기 때문에 밤 벚꽃놀이의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아침부터 양복에 넥타이 차림으로 벚꽃나무 아래에 앉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신입사원도 자주 볼 수 있다. 여기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그 사원의 실력을 평가하기도 한다고 한다.
일제의 식민주의 역사학1. 식민주의 역사학의 성립식민주의 역사학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왜곡된 한국사관이다. 즉 식민주의 역사학은 학문에 있어서의 식민통치의 일환으로, 식민지통치를 위한 학문적 기반을 확립하여 한반도에 대한 그들의 침략행위를 합리화하고자 만들어진 것이었다.결국 식민주의 역사학이 의도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수 천년의 문화전통은 정체되고 부끄러운 역사일 뿐이다. 그러한 잘못된 역사는 결코 우리 민족 스스로가 극복할 수 없다. 따라서 저들의 식민통치는 오히려 한국의 역사발전에 도움이 된다.이와 같이 하여 한국인에게는 패배의식을 조장시키고 자신들의 식민통치는 정당화함으로써, 결국 식민통치에 대한 한국인의 저항의식을 마비시키고 식민통치를 영속화시키고자 한 것이다.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비하의식이나 부정적 견해를 잔뜩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일제의 식민주의 역사학을 주도한 기관으로는 동경제국대학, 조선사편수회, 경성제국대학을 들 수 있고 참가한 사람은 고문에 이완용, 박영효, 권중현이고 편수사업에 이병도, 신석호, 최남선, 이능화가 참여하였다. 조선사편수회의 대표적인 작업으로 '조선사' 편찬작업을 들 수 있다. '조선사'의 편찬원칙은 일제에게 유리하고 필요한 것은 많이 채록하고 한국사의 본질적인 문제나 민족 문제 그리고 일제에게 불리한 것은 의도적으로 제외되었다. 많은 사람이 자료를 마음대로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조선사'가 한국사 연구 및 교육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컸다. 한국의 주체적 연구와 교육은 완전 봉쇄되고, 일제에 의해 편집된 왜곡된 자료를 갖고 한국사연구를 진행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것이다.이처럼 일제의 한국사연구는 조선의 침략을 정당화. 합리화하여 주고, 일제의 식민정책을 뒷받침해주는 어용적 성격을 띠고 진행되었다. 그 목적은 한국인의 열등감을 불러일으키고,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우월감을 부추겨서 한국인들의 일제에 대한 저항을 그 밑바닥에서부터 없애려는 것이었다.2. 식민주의 역사학손이 조선신이 되었으며,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는 신고왕후의 신라정벌설과 임나일본부설을 근간으로 한국은 일본이 지배하에 있었다는 것이다.일선동조론을 주장했던 대표자 중의 하나인 기다는 '한국의 병합과 국사'라는 책에서 일본과 한국이 같은 뿌리라고 주장하였다. 태고시대에는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였으며 일본은 부강한 본가 한국은 빈약한 분가이므로, 일본의 한국 병합은 분가가 본가로 복귀하는 것이며 두 나라의 관계가 본래의 상태로 돌아간 것이라고 하였다. 또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일한양민족동원론' 이라는 글을 썼다.이처럼 일선동조론은 특히 일제의 한국지배의 기본정책인 동화정책을 주지시키는 데에 교묘히 활용되곤 하였다. 결국 일선동조론은 일제의 한국침략에 따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억지로 이끌어낸 이론이었다. 일선동조론은 신공황후의 삼한정벌설, 임나일본부설과 함께 소위 '한일합병'을 정당화하는데 이용되었다. 1919년 3.1 운동시에는 한국의 독립운동을 부당한 것으로 보는데 이용되었고, 1920년대는 내선일체론, 1930년대 이후에는 황민화를 위한 민족말살정핵으로까지 확대 적용되었다. 일선동조론은 역사적 사실과 학문적 진리를 왜곡하여 일제의 침략정책을 정당화하고 소위 '동화정책'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던 왜곡된 논리였다.2) 타율성론타율성론은 한국사의 전개과정이 한민족의 자주적인 역량에 의해 자주적으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외세의 간섭과 압력에 의하여 타율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역사관이다. 저들은 이러한 역사이론을 정당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하여 한국사에서 타율적 요소들을 뽑아내어 그것을 한국역사의 주된 흐름으로 서술하려고 애썼다. 타율성론은 크게 만선사관과 반도적 성격론으로 구체화되었다.만선사관을 가장 강력하게 주창한 사람은 이나바였다. 그는 중국사. 만주사. 한국사에 관해 많은 책을 썼는데, 먼저 '만선불가분의 사적 고찰'에서 한국사의 독자성 자주성을 부인하고 민족 영토경제의 세 방면에서 보아 한국은 태고적부터 대륙 특히 만주와 분리 할 수 없는사에서 분리시켜 한국사와 더불어 한 체계 속에 묶는 것으로 , 이는 중국이 만주에 대하여 영토상의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역사적인 논거를 제시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사의 입장세서 볼 때 만선사의 체계는 한국사의 독자성 자주성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다음으로 반도적 성격론은 한국사의 성격을 부속성, 주변성, 다린성으로 규정하고, 이 같은 한국사의 최대 형성 요인이 반도라고 하는 지리적 조건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에 가까이 부수된 이 반도는 정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반드시 대륙에서 일어난 변동의 여파를 입음과 동시에, 또한 주변 위치 때문에 항상 그 본류로부터는 벗어나 있다고 부수성을 주장하였다. 조선사가 타율적으로 흐른 이유로서 반도적 성격을 주장한 이는 미시나이다. 반도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숙명적으로 주변의 지배를 받았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이러한 성격들이 조선인의 일상적인 행동과 사고에도 영향을 끼쳐 이른바 사대주의라고 하는 고질적인 성격이 조선인의 민족성으로 굳어졌다고 강변하였다.반도라는 지리적 조선이 과학의 진보마저 불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반도라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한국은 애당초 영원히 약소국으로 숙명지어져 있고, 대륙이나 섬에 있는 나라에 의해 타율적으로 그 역사가 이끌려 나가야 한다는 주장은 허황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결국 타율성론은 한국사의 전개 과정이 한민족의 자주적인 역량에 의하여 자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외세의 간섭과 압력에 의하여 타율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수천년 역사는 북쪽의 중국 몽고 만주와 남쪽의 일본 등 이웃한 외세의 침략과 압제 속에서 비주체적으로 전개되어 왔다는 것이다. 저들은 이러한 역사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한국사에 보이는 타율적 요소들을 적출하여 그것을 역사주류로 서술하기에 정력적으로 노력하였다. 한국사에서 자주성이 부정되면, 그러한 비주체적인 역사를 가진 민족은 언제나 외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동양사회의 특징을 발전 속도가 매우 느린 것으로 규정하였다. 그런데 일제는 이러한 논리를 한국사에 적용하였다. 즉 자신들은 동양사회에 속하지만 서구와 비슷한 역사발전단계를 밟아왔는데, 조선은 일본에 비하여 매우 뒤떨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체성론의 기본 발상이다.정체성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이는 후꾸다와 시가다였다. 그는 '한국의 경제조직과 경제단위'라는 논문을 썼는데 여기서 그는 한국사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으로 정체성을 들고, 그 원인으로는 봉건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를 이론적으로 증명하기위해 한국은 토지사유제가 성장하지 않아 토지 공유의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교통경제 화폐경제의 발달이 낮은 수준이고, 씨족적 통제의 사회로서 상공업의 사회적 분화가 미숙하다고 주장하였다. 현재의 한국사 연구에 의하면 17∼18세기 이래의 한국사회는 정체성론의 주장과 같이 진보와 발전이 숙명적으로 거부된 사회가 결코 아니라, 그 안에는 새로운 사회 - 근대적 사회로 전진할 수 있는 내재적 계기와 요인이 비록 성숙하지는 못하였으나 나름대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 밝혀졌다.한국사회의 정체론에 대해 논급한 또 한 사람의 학자인 시가다는 패전 당시까지 경성제국대학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 역시 한국이 장구한 기간에 걸쳐 몹시 낙후 후진적인 상태에 빠져있었다는 정체론적인 의식에 있어서는 후꾸다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조선에서의 근대자본주의의 성립과정' 과 '구래의 조선사회의 역사적 성격에 대하여' 라는 글에서, 개항 당시의 한국은 자본축적도 없고 기업적 정신을 가진 계급도 없으며 대규모 생산을 담당을 기계 기술도 없었다고 주장하였다.현재의 한국사 연구에 의하면, 한국에서도 17∼18세기 이후 농업에 있어서는 광작 경영의 채택을 계기로 상업적 농업이 성장한 사실, 그리고 공업에 있어서는 유기, 주물등의 생산에 있어서는 도고의 활동을 중심으로 거대한 상업자본이 집결되었다는 사실, 교환에 있어서는 화폐 - 상업경제가 일정한 높은 수준의 단계에 진입하고 있었다는 었다는 것도 규명되었다. 앞의 타율성 이론에 의하면 한국은 타율적. 비주체적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시킬 능력을 갖지 못했으며, 따라서 남이 근대화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바를 여기서 일본의 역할을 강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부패하고 무능력한 한국이 리본의 도움으로 근대화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때문에 한국을 근대화시키기 위한 일본은 한국을 침략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이웃으로 한국을 도와주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사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은 일본의 침략 행위를 정당화하는 식민주의 역사학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4) 당파성론당파성론은 조선시대 정치사를 대상으로 해서 만든 식민사관에서 나온 것 이다. 조선왕조의 정치를 당쟁이라고 규정하고 매도한 대표적인 사람은 시데하라이다. 7년 만에 '한국정쟁지' 라는 책을 통하여 당파성 이론을 만들었다. 당쟁이라는 용어를 나름대로 개념 규정하여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히야시는 시데하라의 견해를 보강하여 '조선통사'라는 책에서 "소위 당파란 것은 본래 뚜렷한 주의 강령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러 가지 돌아가는 형세에 따라 동서남북 여럿으로 분속된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3.1 운동 이후 한국민족의 민족운동을 분열시키는 데는 민족의 당파성을 강조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1922년에 기획되어 1925년에 완성된 '조선사강좌' 시리즈에서는 조선왕조의 정치에 관해 '이조정쟁약사' 와 '근세조선사'에서 다루었다. 그 집필자인 오다와 세노는 그 뒤 줄곧 당쟁사 연구를 주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오다는 천주교 박해나 홍경래의 난의 원인까지도 당쟁에서 찾았다. 또한 세노는 16세기의 사화를 당쟁과 연결시켜 당파성론을 확대시켰다. 3.1 운동 이후에 전개된 당파성론은 그 대상의 폭을 넓혀간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즉 사색분열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시켰던 것을 확대하여 조선시대사 전반에 걸쳐 그 같은 분열적 면모를 드러내고자 애썼던 것이다. 500년이나 되는 조선시대의 정치를 당쟁이라.
교사의 자질과 전문성1. 교사의 자질교직의 특수성과 전문성 그리고 교사의 임무에 비추어 교사에게는 다음과 같은 자질이 요구된다.(1) 인간으로서의 교사의 자질① 교사는 교사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바람직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인간애, 즉 인도주의적인 인간애로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교육애의 소유자여야 한다.② 명랑, 쾌활하고 공평무사성의 소유자여야 한다.③ 협동적이고 민주적인 태도의 소유자여야 한다.④ 원만한 인간관계, 즉 교직원, 학생, 학부형, 지역사회 주민 등 교직수행에 관련되는 사람들과의 원만한 접촉을 해야 한다.⑤ 학생들에대한 관심과 다양한 흥미를 가져야 한다.⑥ 사회개조에 대한 신념, 즉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조해 나가겠다는 신념의 소유자여야 한다.⑦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신체의 소유자여야 한다.⑧ 직무에 열의와 성의가 있는자라야 한다(2) 전문인으로서의 교사의 자질① 전문인으로서의 교사는 투철한 교육관, 즉 국가, 사회, 인간과 시대적 가치에 대한 교육철학, 교육이념은 모든 것에 선행되어야 한다.② 교직에 필요한 전문적인 소양 즉 교수, 교육과정의 계획, 평가, 집단활동의 지도, 사례연구, 상담활동, 사무 행정참여의 기술의 소유자여야 한다. 즉, 교사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 있어야 한다.③ 설명력, 분석력, 종합력의 소유자여야 한다.2. 교육관과 교사의 자질(1) 진보주의와 교사의 자질진보주의에 있어 훌륭한 교사는 아동의 흥미와 욕구를 찾아내주고 이를 충족시켜주는 교사, 아동들이 스스로 학습하는 것을 도와주는 조력자·안내자로서의 교사, 아동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최대한도로 보장하여 주는 교사이다.(2) 전통주의와 교사의 자질① 인격적 감화자로서의 교사교사의 인격은 그대로 학생에게 영향을 준다.② 문화유산 전달자로서의 교사교사의 임무는 문화의 내용 중 본질적인 것을 찾아내고 이를 체계화 하여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③ 사회적 통제자로서의 교사아동의 자유에는 한계가 있어야 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사회적 통제를 가하여야 적 이해교사가 자신을 학생의 입장으로 바꾸어 놓고 거기서 진행되는 사실에 대하여 민감하게 지각하고 느끼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인간중심 교육에서의 교사의 자질(C. H. Patterson)① 진실된 교사② 한 개인으로 아동을 존중하는 교사→인간존엄성의 신념이 투철한 교사③ 공감적 이해를 가진 교사3.교사의 역할(1) 학교에서의 교사의 역할① 교사의기본적 역할교사의 근본적인 역할은 학급의 통제와 교수 활동이다.② 심리적 측면에서의 교사의 역할㉠ 학습조력자로서의 역할학생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교수한다는 것은 교사의 제일 중요한 임무이다. 교사는 지식의 공급원으로서의 학생들의 학습에 조력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학생들이 중요한 지식을 이해하고 새로운 지식을 찾아내고 이미 습득한 지식을 적용하여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학습과정에서 교사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인생안내자로서의 역할교사는 학생들의 인간적인 성숙을 기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즉, 친구로서의 역할, 애정상대자로서의 역할, 부모대행인으로서의 역할, 보호자로서의 역할 등이 있다.㉢ 모형으로서의 역할학생들의 사회화과정에서 교사는 사회의 가치와 규범과 생활양식을 대표한다. 이런 점에서 교사가 학생들의 동일시 대상이 된다.학교에서의 교사의 역할을 크게 방법적인 역할과 규범적인 역할로 나누어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전자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 사회화 시키는 일, 그리고 평가하는 일이 있으며, 후자에는 인도하고 통제하는 일과 환경을 정비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2) 실버맨(C. E. Silberman)의 교실상①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하며② 학생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존중하고③ 교실을 작업실 같은 분위기로 만들어 학생의 흥미영역을 넓히며④ 교실을 유연하게 운영하고⑤ 학생에게 자제와 자기 관리 능력을 길러줄 것(3) 프리차드(K. W. Prichard)의 네가지 교사의 유형① 형식적인 지식전달만 강조하는 교사(권위형)② 사회화를 중재하는 교사(사회화형)③ 창의성과 혁신적 행동을 고무하는 교사(자로서의 역할③ 부모 대행자로서의 역할④ 판단자로서의 역할⑤ 친구로서의 역할⑥ 중류계급 대표자로서의 역할(5) 일반적 교사 역할의 기본 자세① 학생들을 사랑으로 가르친다.② 학생들과의 인간관계를 명확히 한다.③ 학생들을 편애하지 않고 공평무사하게 대한다.④ 소외되기 쉬운 학생에게도 관심을 가진다.⑤ 학생중심의 교실이 되도록 한다.⑥ 학생에 대하여 선입관을 가지지 않는다.⑦ 가급적 집단사고, 집단경기등 집단활동을 중심으로 한다.⑧ 다른 학급(교실)과 너무 비교하지 않는다.(6) 교사의 중핵적 역할① 학습지도자로서의 교사학습 지도자라의 의미를 협의로 보면 지식 전달자라고 표현해도 괜찮을 정도이다.② 집단 지도자로서의 교사교사는 학급집단의 리더로서 교사의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 집단의 정서적인 분위기를 구성하고, 아동과의 연령의 차, 능력의 차, 등을 고려해야 한다.③ 생활 지도자로서의 교사일상생활의 식사에 대해 바른 해와 바람직한 습관을 기르는 것, 학업부진이나 등교거부를 한 아동에 대한 개별적, 심리치료적인 작용에 이르기까지 생활지도자로서의 교사의 역할은 다양하다.④ 실천 연구자로서의 교사전문직의 특성의 하나로 지적 기술을 갖고 봉사활동을 한 것을 들 수 있다. 이 지적 기술에 관해서는 긴 훈련기간을 갖고 전문직 활동의장에 나왔다고 해도 그 동안의 축적된 기술이 낡아서 도움이 되지 않는 실정이다. 전문직으로서 스스로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전문적, 지적기술을 끊임없이 연마해야 하는 것이다.4. 교사의 전문성과 교사상(1) 교사의 전문성전문성이란 개인적인 차원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의 태도와 행동을 의미한다. 즉, 자신의 일에 대한 신념, 오랜 기간 자신의 직업에 헌신하는 태도, 전문가로서 지니고 있는 지식에 의해 결정할 자유가 있다고 믿는 태도 등이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교직이 일반직종과 성격을 달리하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교직은 만물에서 자장 소중한 인간을 상대하는 직업이라는 면에서이다. 그리고 경제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보겠다.② 교직은 인간의 정신적인 생활면을 교육하는 직업이다. 즉 의사는 인간의 신체적인 면을 다루지만, 교사는 어린이의 정신적·심리적 건강상태에 관심을 갖고 지도한다.③ 교직은 봉사직이다. 즉 이 말은 물질적인 보수에 목적을 둔 직업이 아니라 사회봉사 발 전을 위하여 일한다는 것이다.④ 교직은 국가나 민족에 영향을 주는 공적인 사업이다. 현대교육은 어린이의 흥미와 요구 에 맞는 교육을 요구하지만, 이러한 요구는 국가사회의 필요한 요구에 부합되어야 한다.이와 같이 교직의 특성에서의 공통점은 대상이 인간이라는 점과 미성숙자라는 점이며, 한 개인의 인격형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민족과 국가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생각할 때 교사는 한 개인이 직종에 종사한다는 평이한 사고에서 벗어나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교직에 임해야하며, 교직에 대한 신념 또한 확고히 해야 할 것이다.(2) 우수한 자질의 교사상W. M. Alexander는 우수한 자질을 갖춘 교사상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① 개별학생에 대한 관심으로, 교육 또는 어린이 지도의 초점은 어린이 하나 하나에 관심을 갖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훌륭한 교사는 우선 한 어린이도 소홀히 하지 않고, 모든 어린이 에게 공평하면서도 성의 있는 개별적인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② 정서적 안정감으로, 우수한 교사는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야한다. 교사와 어린이와의 인간적 접촉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적 상황에서 교사의 안정된 정서상태는 어린이의 행 동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③ 열심으로, 아무리 인품이 훌륭하고 실력 있는 교사라 할지라도 그 교사에게 열심히 없다 면 교육의 큰 성과를 기대할 수가 없다. 비록 실력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열심있는 교사는 그 열심 자체만으로도 어린이에게 좋은 교육적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④ 지성으로, 교육활동의 대부분은 지적인 활동으로 지성적인 교사란 합리적 사고력과 객관 적 판단력을 지니는 동시에 통찰력을 갖고 모든 교수-학습상황을 재빠르게 처리해어야 한다. 교사가 담당해야할 교과목에 대한 풍부한 지식은 학습지도 성과의 선결조건이 되기 때문이다.⑦ 인간적 매력으로, 교육의 대상자인 어린이가 감수성이 예민하기 때문에 교수-학습 상황 에서 교사에게서 풍기는 인간적인 매력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학습성과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⑧ 의사소통의 기술로, 능률적인 학습성과를 가져오려면 교사는 자신의 의사를 어린이에게 분명하게 전달함과 동시에 어린이의 반응이나 의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기술 또는 능 력을 갖추어야 하며, 이것은 우수한 교사가 반드시 지녀야할 무기와도 같은 것이다.급변하는 현대사회는 다양한 인간의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어린이집에서는 보호와 교육을 함께 해야하며, 또한 교사는 가정에서의 부모의 역할까지도 담당해야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 교사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투철한 철학과 신념으로 혼신을 다하는 자질 있는 교사가 되도록 노력해서 '자신의 왕'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죽은 시인의 사회◎빽파이프 연주를 앞세우고 교기를 든 학생들이 강당에 들어서면서 1859년에 창립된 명문 웰튼 고등학교의 새학기 개강식이 시작된다. 이 학교에 새로 전학 온 토드는 어린 신입생들과 마찬가지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숨길 수 없다. 이 학교 출신인 키팅 선생이 영어 교사로 부임한다. 그는 첫시간부터 파격적인 수업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오늘을 살라'고 역설하며 참다운 인생의 눈을 뜨게 한다. 닐, 녹스, 토드 등 7명은 키팅으로부터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서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이 그 서클을 이어가기로 한다. 학교 뒷산 동굴에서 모임을 갖고, 짓눌렸던 자신들을 발산한다. 그러면서 닐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연극에의 동경을 실행하고, 녹스는 크리스라는 소녀와의 사랑을 이루어 간다. 그러나 닐의 아버지는 의사의 꿈을 이루어 주리라 믿었던 닐의 연극을 보자 군사학교로의 전학을 선언한다. 꿈이 꺾인 닐은 그날밤 권총 자살을 하고 만다. 이 사건의 원인 규명에 나선 학교 측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서클을
비지니스나 일반 사회생활에서 종종 식사 모임을 갖게 되는데 이 때 식사형태가 한식이냐, 양식이냐, 혹은 일식, 중식에 따라서 각기 다른 형태의 예절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전통의 한식 식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식사 중에 말을 하는 것은 매너에 어긋난다고 지적당하는 반면에 양식에서는 식탁에서 말을 하지 않고 음식만 먹는 것은 커다란 실례가 된다. 또한 우리 나라에서는 국그릇을 들고 국을 마시더라도 무방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릇을 들고 마시는 것은 바른 매너가 아니다. 이렇듯 각국의 식사예절이 상이함으로서 종종 중요한 자리에서 실수하는 경우 특히, 외국인과의 식사모임에서의 실수가 비지니스에 흠으로 잡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기본적인 식사예절에 대해 한식과 양식, 중식, 일식으로 구분하여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1) 한국식 식사예절한국음식은 오랜 전통과 역사 속에서 발달해오면서 지방에 따라 다양한 특색을 나타내며,그 지방만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자랑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양념을 곁들이고, 무엇보다 손끝에서 우러나는 감칠맛을 지닌 한국음식. 우리에게는 일상음식이지만 특별한 날에는 가장 푸짐하고 정갈한 요리가 될 수 있는 한식과, 그에 따른 식사예법은 누구보다도 우리가 먼저 지키고 바르게 알아두어야 외국인에게도 자신있게 대접할 수 있을 것이다.1) 식사예절1 식사 전 예절-어른들의 좌석은 입구에서 떨어진 상석으로 안내한다.-어른이 먼저 자리에 앉은 다음 앉도록 한다.-스커트를 입었을 경우 , 온돌방에 앉을 때에는 냅킨이나 손수건을 바르게 펴서 무릎을 가 리도록 한다.2 식사할 때 예절-어른이 먼저 수저를 든 후 수저를 들도록 한다.-식사 속도 또한 어른들과 맞추도록 한다.-숟가락과 젓가락은 한꺼번에 잡지 않는다.-숟가락과 젓가락은 천천히 번갈아 가면서 사용한다.-한 번에 한 가지의 반찬만을 음미하여 먹도록 한다.-음식을 먹을 때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식사 중에 어른이 질문을 하면 입 속에 있는 음식물을 삼킨 후 수저를 가지런히 놓고 대 답한다.3 식사 후 예절-식사를 마치면 수저는 국그릇 위에 걸쳐놓았다가 어른이 음식을 다 먹고 난 후 얌전히 내려놓는다.-"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를 빠뜨리지 않도록 한다.(2) 중국식 식사예절중국음식은 수천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중국은 워낙 넓고 큰 나라여서 각 지역마다 재료와 기후 풍토가 달라서 일찍이 지방마다 독특한 식문화가 발달하였다. 중식은 세계 어디에서도 팔고 있고 어디에서도 인기있는 요리이다. 우리나라와 크게 다른 점은 한식의 경우 젓가락과 숟가락을 함께 사용하지만 중국 음식의 경우 젓가락만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중국 음식의 식탁은 회전식 원탁이 기본형이며 메뉴는 8인에서 10인이 가장 적당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중국 음식에서는 음식의 품수를 4종 단위로 내놓기 때문에 중국 음식을 주문할 경우 사람수 만큼의 요리에 수프를 첨가하는 것이 기본이다.1) 중국에서 식사 예절중국 음식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음식이다. 따라서 여행중에 별다른 주의 없이 흥이 나 중국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거나 식사를 하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매우 많 다. 가장 주의해야 할 몇가지 예절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한다.-음식을 먹는 자리에서는 조용해야 한다.-접시 소리나 음식씹는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예의이다.-꼭 말을 해야 할 때는 주의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작은 소리로 말을 해야 한다.-밥그릇 이외에는 손으로 받쳐들지 말아야 하며 국물이 있는 음식은 수저로 떠서 먹어 야 한다.-자기 앞에 놓인 작은 접시에 있는 음식을 다 먹고 식탁 한복판에 있는 큰 접시에 먼저 그 음식을 덜어준 뒤에 자기 접시에 가져와야 한다. (옆사람 접시에 먹던 음식이 그대 로 있을 경우에는 형식적으로 조금 먼저 덜어준다).-중국 음식에는 중국차가 반드시 따라 나온다. 차를 다 마신 뒤 더 마시고 싶을 때는 찻 잔의 뚜껑을 반쯤 열리게 덮어놓으면 된다.2) 식사예절1 식사 전 예절중식은 대부분 코스 메뉴이므로 종업원의 서빙여부를 확인하고 서빙이 가능한 메뉴를 주문한다. 원탁 테이블의 경우, 입구에서 가장 안쪽의 중앙이 상석이다. 먼저 도착한 집 안 어른은 상대방 어른을 위해 상석을 비워놓는 것이 좋다.2 식사할 때 예절-식사 중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접시 끝에 걸쳐놓고 식사가 끝나면 받침대에 처음과 같이 올려놓는다.-밥그릇 이외에는 손에 받쳐들지 않도록 하고 국물이 있는 음식은 마시지 말고 숟가락 으로 떠먹는다.-앞접시의 음식을 다 먹고 큰 접시의 음식을 얼어 올때는 옆사람 앞에 놓인 앞접시에 먼저 음식을 덜어주고, 음식이 남아 있을 경우에도 형식적으로 조금 덜어준다.3 식사 후 예절음식과 함께 나오는 중국차를 마신 후 더 마시고 싶을 때에는 찻잔의 뚜껑을 반쯤 열 어 놓도록 한다.(3) 서양식 식사예절양식의 식사예절에는 입장에서부터 디저트까지 일정한 수순에 따라 예절을 지켜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생활화되어 있는 서양인들이야 이를 지키는데 별다른 문제는 없지만, 서양문 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종종 서툰 모습들을 보이게 된다. 이에 당황 하지 말고 다음의 몇가지 사항에 대해 기본적인 것만 알게 된다면 큰 흠을 잡히지 않고 무 사히 식사를 마치게 될 것이다.1) 기본적인 테이블 예절-입을 음식으로 가져가 먹지 않는다-식사중에는 머리에 손을 대지 않는다.-식탁에서는 다리를 꼬고 앉지 않는다.-대화없는 식탁은 무미 건조하다.-식탁에서 컵의 물을 쏟거나, 나이프, 포크, 수저 등을 바닥에 떨어뜨릴 경우 줍지 않으 며, 새것을 요구한다.-음식을 자기식으로 먹지 않고, 음식마다의 방법으로 먹는다.-먹는 방법을 모를 경우, 웨이터나 아는 사람에게 물어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식사 중에는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되며, 커피가 나올 때 피운다.-종업원이 서비스하고 있는 도중에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4) 일본식 식사예절1) 식사 전 예절일본 식사 예절의 포인트는 아름답게 먹어야 한다는 것. 모든 식사는 젓가락으로 끝내야 한다.2) 식사할 때의 예절-음식은 그릇을 들고, 젓가락으로 입으로 쓸어 넣듯이 먹는다.-젓가락을 들 때에는 오른손으로 젓가락의 가운데를 들면서 왼손으로 아래쪽을 받친다.-오른손을 미끄러지듯하며 젓가락 손잡이 부분을 잡으면 된다.-어느 것을 먹을까 망설이며 젓가락이 왔다갔다 한다든가, 젓가락에 붙어 있는 음식을빨아 먹거나, 접시에 있는 음식을 뒤섞어 놓거나 젓가락으로 음식을 찔러 먹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