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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리학] 서양사상사
    왜/어떻게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지식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국가들의 관계에 대한 사상가의 이론적인 분석과 설명은 한 개인의 실존적인 삶을 자유롭게 하는데 과연 도움이 되는가?위의 문제에 대해서 프로이트와 미셸 푸코,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의견과 나의 의견에 대해서 쓰겠다.왜/어떻게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지식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가? 에 대해서 먼저 내가 읽고 생각한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은 원시상태에서 가장 자유로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원시상태에서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인간의 지식발달은 문명이라는 것을 가져왔다. 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 자연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주었고, 더욱 많은 수의 인간이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문명의 발달은 인간이 기대하는 유쾌한 만족의 양을 늘려 주지 못했고, 더 많은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지도 못했다. 문명은 아름다움과 척결, 질서 등을 요구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정의는 모든 사람이 그 제한에 복종할 것을 요구한다. 문명은 또한 인간의 본능을 제한하려하는 동시에 인간 내면의 성충 동에 복종하여 인간을 긴밀한 집단으로 통합하려 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점점 강화해야만 집단 형성이라는 목적을 달성 할 수 있다. 따라서 문명의 발달에 따라 죄책감은 참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를 것이고 인간은 행복해 질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원시상태이든지 문명 상태이든지 어떻게 해도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인간은 제한된 자유만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식은 인간에게 자연을 다스리는 힘을 줘서 더 많은 사람이 제한된 자유를 누리게 하였지만, 그 자유는 완전한 자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두 번째 미셸 푸코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사유재산권과 소유권의 중요성이 증가하였고, 소유권 침해 범죄에 대한 예방과 처벌의 욕구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러한 욕구에 의해서 처벌기술은 발달을 하게 된다. 이러한 소유권 침해에 대한 처벌은 많은 소유를 가진 소수의 권력자를 위한 것이다. 과거 신체형의 잔인함을 개선하려는 개량주의자들의 조치와 학문적 작업은 권력의 강화에 이바지하는 것이 되었고, 인간의 위치를 더욱 고립시켰다. 푸코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지식이 이런 권력관계 속에서 생성된다고 보았다. 모든 지식은 권력의 전략에서 벗어나 생성·발전 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지식에 의해 발전한 감옥과 사법제도의 발달은 계속해서 새로운 범죄자를 만들고, 수감자에 대한 개인화와 감시체제가 국가라는 최대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의 전 영역에서 학교와 직장(공장)등의 체제로 형태를 바꾸어 확대되어 적용된다. 이것은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전 인간을 통제하는 효율적인 감시체제 이다. 이 같은 효율적 감시 체제의 강화는 인간의 주체성 입지를 약화시키고 주체적 자유를 박탈한다. 다시 말하면 권력관계 속에서 생성된 지식은 감시체제의 발달을 가져오고, 감시체제의 발달은 인간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것이다.세 번째로 마키아벨리의 군 주론을 보면, 마키아벨리는 제국의 계승, 제국의 탄생, 제국의 몰락 속에서 즉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모든 인간적 기획의 피할 수 없는 실패를 보았으며, 인간이 본래 열망하는 평화와 안전에 접근하는 어려움을 보았다. 그는 평화와 안전을 이루기 위해서 군주의 권력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군주의 덕이란 사회질서를 유지하면서 권력을 유지하는 기술에 지나지 않았고, 군주의 정치적 비도덕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군주가 시민들의 신임을 얻어 질서를 잡기 위해서는 비도덕적이더라도 관대함과 인색함, 정직과 표리부동, 감미로움과 두려움을 조화시키는 법을 아는 사자이자 동시에 여우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개인적 성공은 공공의 안전과 평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위대한 군주는 자신의 덕을 통해 운을 자신에게 이롭게 이용하는 법을 아는 자이며, 자신의 이익을 공공의 이익과 합치시킬 줄 아는 자라고 했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이미 질서가 획득된 곳에서 도덕은 안전과 안정을 주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는 평화와 안전이라는 틀 안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정치 기술이라는 지식의 발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지식의 발달이 가져온 기술을 잘 사용할 줄 아는 군주에 의해서 대다수의 일반 대중의 자유는 제한을 받게 되며 군주도 또한 그러한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고 말한다.위의 세 명의 유사성은 지식의 발달이 인간을 통제하는 수단의 발달을 가져왔고, 또한 지식의 발달은 인간에게 제한된 자유를 준다는 것이다. 나는 이들의 이러한 분석이 한 개인의 삶을 자유롭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인간은 결코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것만을 제안했을 뿐 인간이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지는 못하였다. 나는 인간은 결코 완벽한 자유를 채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프로이트의 말대로 인간이 원시상태로 있고, 또 위험요소(자연의 힘)가 제거된 상태이더라도 인간은 지식의 발달을 가져올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알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지식의 발달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인구의 증가에 따라서 인간이 집단을 이루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고, 그 집단 내에는 집단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들이 생겨날 것이다. 만약 인간이 하나의 독립된 행성에서 단 한 명이 살고, 위험요인 없이 생활한다면,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외로움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본능은 쾌락의 원칙을 따른다. 인간은 쾌락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구할 것이고, 이것은 문명의 발달을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문명의 발달을 토대로 아마도 인간은 다른 행성의 인간을 찾아가 또다시 규칙과 통제가 있는 집단을 이루게 될 것이다.2. '현대사회'의 테두리 속에서 인간이 행복한 삶의 영위를 꿈꾸는 것은 가능할까? 다시 말하면, 사회와 역사의 진보에 대한 회의가 팽배하고, 객관적인 가치관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상실되고, 도구화된 이성과 합리성의 감옥 속에서 감시의 대상으로 살아가야 할 숙명을 지닌 현대인은 과연 여전히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며 그것의 실현은 가능한가?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니체, 프로이트, 푸코의 3인의 의견을 기초로 논쟁하려고 한다. 먼저 니체를 보면,「짜라투스트라는 말했다.」에서 니체는 핵심 인간상으로 초인을 말한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란 권력의지를 획득하고, 실현하는 인간이며, 영원회귀사상을 신봉하는 인간이다. 니체는 종래의 도덕은 개인에게 완전한 자기 상실을 요구하므로 개인은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니체는 현재의 자기를 극복하고 자기자신을 회복시켜 참된 자유를 회복하게 하는 도덕적 자기 초극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을 니체는 「짜라투스트라」에서 낙타와 사자, 어린애로 표현하였다. 낙타는 타율적 도덕에 복종하는 인간을 나타내고, 사자는 자유를 획득하였으나 고독한 인간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어린애는 순수하고 절대적으로 자기를 긍정하는 참된 자유를 달성한 인간을 말한다. 니체는 종래의 도덕 즉, 신의 죽음에 의해 인간은 자기소외에서 자기자신을 알게 되는 창조적 자유로 변화된다고 말하고 있다. 즉, 기존 도덕의 틀을 넘어서 참된 자기자신을 긍정하게 될 때 인간은 참 자유를 얻고,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말하는 기존의 도덕이 중세의 기독교적 도덕이라는 것을 비판한다. 인간에게 자기 상실과 복종을 요구하는 기제는 종교적 도덕뿐이 아니다. 그것에는 문화적 관습과 법, 사회적 규칙 등 도 있을 것이다. 그는 인간의 자유를 규제하고 행복을 제한하는 것을 너무 단편적으로 규정하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인간이 타율적 도덕에 복종함으로써 행복해 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규칙이 없는 무질서 속에서 보다 규칙이 있는 안정된 사회에서 인간은 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무질서 속에서 자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초월하고, 시간까지도 지배하는 말 그대로의 초인밖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문/어학| 2002.11.11| 4페이지| 1,000원| 조회(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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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리학] 성과 문화 평가A좋아요
    성과 문화 리포트2001313917이승욱I. 텍스트 이론과 개념들 텍스트란 용어가 우리에게 낮설지 않게 사용된 것은 후기구조주의의 사유가 등장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20세기이전 비평에서 텍스트란 말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었고, 러시아 형식주의나 미국의 신비평, 그리고 구조주의는 각각의 변별성은 있겠지만 대체로 텍스트라는 용어 대신에 문학 작품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거칠게 말해 이러한 비평 조류는 작품을 하나의 완결된 구조물로 보고 그 구조물의 형식적인 장치들과 기능들의 상호 연관관계를 꼼꼼하게 따지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문학 작품과 문학 작품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기준은 문학 작품 안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문학적 장치의 특수성을 과학적인 조사로 발견해내려는 노력 등이 러시아 형식주의나 신비평의 특성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는 작품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유동성과는 별도로 그 자체로 안정된 의미를 갖는 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구조주의의 발전 역시 사물과 지시어의 안전성에 기초한 이론이라 할 수 있는데, 구조주의는 러시아 형식주의나 신비평 보다도 문학 작품의 표층/심층, 현상/본질, 기표/기의의 관계의 안정성에 더 분석적으로 천착한다. 그러나 데리다, 라캉의 후기구조주의에 들어오면 기표/기의 관계는 더이상 안정적이지 않은 체계로 간주된다. 후기구조주의의 핵심적인 논조라 할 수 있는 의미의 불안정성과 기표들의 유희성은 고정되고 완결된 표상체계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통일성과는 반대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텍스트란 개념은 작가와 일대일로 대응하는 작품의 완결성과 통일성을 의심하는, 말하자면 표상체계에 대한 유동적이고 불확정적인 후기구조주의의 인식론을 대변한다. 그런 점에서 후기구조주의의 맥락에서 텍스트는 의미 연관의 공백을 인정하고, 그 공백 때문에 생겨나는 의미생산의 다중성을 지향하며, 필연적으로 해석의 동요를 수반한다. 그러나 텍스트 개념이 후기구조주의의 사유에서 비롯되었어도, 그 개념을 후기구조주의 사유 일반으로 정의하는 것은 인식론적 대전제의 이상의 으로 인식시켜주는 '인식의 질서'. 사물을 특정한 방식으로 질서지우는 '사물의 질서'2) 담론적 실천과 비담론적 실천의 비환원성을 발견하는 단계:{지식의 고고학},{담론의 질서}, {감시와 처벌}: 담론은 그것이 포괄하는 개인들의 실천을 특정한 형태로 제약하는 조건을 통해 정의된다. 특정한 담론을 형성하는 관계는 담론이 사용하는 랑그나 담론이 그 내부에서 펼쳐지는 바 상황이 아니라, 실천으로서의 담론 그 자체를 특정화하는 것. 중요한 것은 담론의 언어를 통해 개인들에게 제공하는 어떤 의미구조나 표상방식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그것이 개인들을 특정한 방식으로밖에는 실천할 수밖에 없게 하는 실천의 양태와 그러한 실천을 강제하는 규칙. "담론의 질서의 문제의식": 1) 진리의 의지를 문제 삼는 것 2) 담론에 그 사건적 특성을 복구시키는 것. 3) 기표성의 지고함을 제거하는 것. {감시와 처벌}: 새로운 형벌제도의 전략: 1) 형벌제도에 대한 연구는 억압적인 효과나 제제의 측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도출되는 일련의 적극적인 결과 전체 속에 위치시켜 고찰할 것. 즉 처벌을 복합적인 사회제도로 파악할 것. 2) 형벌의 여러가지 수단을 분석함으로써, 다른 권력의 행사방식을 포함. 3) 형벌의 역사와 인간과학의 역사의 두계열에 대한 관계 분석, 권력의 기술론을 형벌제도의 인간화와 인간인식의 원리에 위치시킬 것. 4) 과학적인 지식전체가 사법의 실제로 편입되는 것이 권력관계에 의한 신체자신의 장악수단이 변화한 것은 아닌가. 미시적 연구: 곧 신체위에 행사되는 권력은 하나의 고유성으로서가 아니라 전력으로 이해되어야하며 그 권력 지배의 효과는 하나의 전유에 귀착되는 것이 아니라 소질, 조작, 전술, 기술, 작용등에 취착되어야 한다. 권력은 어떤 지식을 만들어 낸다라고 하는 점이고 권력과 지식은 서로 직접 포함하고 있다는 점, 또 어떤 지식의 영역과의 상관관계가 조합되지 않으면 권력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동시에 권력적 관련을 상정하거나 조합하지 않는 지식은 존재하 그러나 귀속이란 복잡하고 거의 입증되지 않는 비평적 조작의 결과이다. 4. 저자의 입장: 책속에서의 저자의 입장(스크립터 나레이터), 다른 형태의 담론 속에서의 저자의 입장(철학적 영역), 담론의 영역에서의 저자의 입장(분과학문의 설립자?). {말과 사물}에서 책과 작품과 저자라는 관습적인 단위들에서는 분명하게 나눠지지 않는 "말들의 덩어리"를 분석:나는 뷔퐁이나 마르크스를 묘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고, 단지 그들의 텍스트를 읽을 때, 만나게 되는 몇몇 개념들이나 이론들의 총체들을 그들이 어떤 법칙을 따라 형성했는가를 찾아내고자 함. 글쓰기는 희생, 삶 자체의 희생에까지 관련되어있다. 이런 희생은 작가의 일상적 삶에서조차 이루어지기 때문에 책 속에서 나타낼 필요가 없는 자발적인 소멸이다. 불멸성을 가져다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작품이 이제는 저자 살해의 권리를 부여받게된다. '책'의 정의: 어디까질르 책으로해야하는가? '저자의 이름': 그것은 고유명사 처럼 담론 내부에서 그 담론을 낳는 현실적, 외적 개인에게까지 도달하지 않는다. 저자의 이름은 담론의 총체적 사건을 표시하고 사회와 문화내부에서 이 담론이 차지하는 지위와 관련. '저자의 기능' 1) 저자의 기능은 담론의 세계를 둘러싸고 한정하며 분절하는 사법적, 제도적 체계와 연결. 2) 저자 기능은 모든 담론들에 대해서 또 모든 시대와 모든 형태의 문명에서 획일적이고 동일한 방식으로 수행되지는 않는다. 3) 저자 기능은 담론 산출자에의 자발적인 귀속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특수하고 복잡한 일련의 조작에 의해서 정의 4) 저자 기능은 순수하고 단순하게 실제의 한 개인을 가리키지 않으며, 따라서 몇개의 자아를 몇개의 주체위치를 동시에 이야기 할 수 있다.푸코이론의 문학적 적용:신역사주의 80년대 들어 영미 문학의 새로운 연구 방법론으로 등장한 신역사주의는 당시에 탈역사주의적 경향이 주류를 이룬 영미권 비평(이론) 지형이 더 이상 이론적 진전을 기대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하면서 그 대안으로 제기된 지적 조류망이론:기계론과 노마드론욕망하는 기계 들뢰즈는 기계는 하나의 비유나 은유가 아니라 실제적인 것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기계가 실제적라는 것은 그것이 끝임없이 욕망하고 생산한다는 의미에서이다. 기계는 욕망하는 생산이란 구체적인 과정을 가지고 있다. 욕망하는 생산은 하나의 운동이며, 하나의 흐름(flow)인데, 그 흐름은 끊기면서, 다시 연결되어 있는 과정에 관여하는 여러 기계들의 상호배치 통해 형성된다. 즉 입과, 유방과 항문은 우리 육체의 하나의 기능적인 기계들이며, 육체의 흐름은 이 기계들의 상호 단절과 연접의 구조 속에서 형성된다. 그래서 들뢰즈는 "우리는 각자 자기의 작은 기계들을 가지고 있다. 에너지 기계에 대하여 기관 기계가 있는 것은 언제나 흐름들이 있고 단절들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들뢰즈는 욕망의 생산성은 어떤 결핍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충만하다고 본다. 그는 "만일 이론가들이 욕망하는 생산을 환상의 생산으로 환원하려든다면, 그는 욕망을 생산의 과정으로 정의하기 보다는 결핍으로 정의하려는 관념론적 원칙에 빠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만일 욕망이 생산하면. 그 욕망의 산물은 실제적이다. 만일 욕망이 생산적이라면 그것은 오직 실제 세계에서만 생산적이고 오직 실재성만을 생산한다..... 실재는 생산의 끝이고, 무의식의 자동 생산으로서 욕망을 수동적으로 종합하는 결과이다. 욕망은 결코 결핍하지 않는다. 욕망은 욕망의 대상을 결여하지 않는다......... 욕망은 하나의 기계이며 욕망의 대상은 그 기계와 연결된 또다른 기계이다. * 기계들의 연결 관계:연결접 종합 ----- 생산의 생산 ------ 편집증적인 기계 이접적 종합 ----- 등록의 생산 ------ 기적을 일으키는 기계 연결적 종합 ----- 소비의 생산 ------ 독신기계반외디푸스론: 탈코드화와 탈영역화 들뢰즈의 '욕망하는 생산', '욕망하는 기계'라는 개념은 정신분석학의 외디푸스의 삼각형의 관념론을 비판하고 유물론적 정신의학의 정초를 마련하는 데 절적한러므로 자본주의의 가장 특징적이고 가장 중요한 경향이다라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끝임없이 자신의 극단까지 밀고가는데, 그 극단은 진정으로 정신분열적인 극단이다. 자본주의는 모든 힘과 명령을 행사하여 정신분열자를 기관들 없는 육체에 탈코드화된 흐름들의 주체로 생산한다. 그러므로 정신분열증은 생활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과정의 문제이다. 들뢰즈의 유물론적 정신의학은 자본주의적 탈코드화의 편집증적인 상태에 대한 인식과 함께 이를 넘어서려는 주체의 실천을 강조하려는 데 그 본래의 목적이 있다.리좀적 분석과 노마드적 주체 안티외디푸스의 속편에 해당하는 {천개의 고원}에서 들뢰즈는 정신분열분석을 언어학(예름슬레브)과 결합시켜 의미분절의 탈표상화의 맥락들을 설명한다. 이 책에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아 할 개념들이 '리좀(rhizome)', '몰(mole)과 분자'(molecule)', '표현(expression)과 내용(content)', '노마드'(nomad) 등이다. 리좀: 근경(根莖), 뿌리줄기: 뿌리인지 줄기인지 구분이 안되는 것. 뿌리모델: 수목이 모델, 주근(主根)이 모델, 반영의 법칙 둘이 하나가 되는 문제. 근경모델: 다중적인 것. 우연적이고 동태적인 운동상태. 근경은 지점(point)중심이 아니다. 근경의 원칙: 어떤 지점도 다른 지점과 연결될 수 있고 연결되어야 한다(연결과 이질성의 원칙들). 다중성이란 주체도 객체도 가지고 있지않으며 오직 규정들 규모들 차원들을 가질 뿐이다. 리좀 또는 다중성은 결코 자신을 초코드화되게하지 않는다(다중성의 원칙). 구조들을 분리하거나 단일한 구조를 가로지르는 초의미적 단절에 반하는 원칙. 근경의 부서질 수도 어떤 지점에서 깨어질 수도 있다(무의미적 단절의 원칙) 나무와 그 뿌리와 달리 리좀은 어떤 지점이든 다른 지점과 연결하고 그 특성들은 동일한 성격의 다른 특성들과 반드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리좀은 전혀 다른 기호체제들, 비기호 상태들까지 작동시킨다. 리좀은 단일자로도 다수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단일자에서 도출.
    인문/어학| 2002.11.11| 9페이지| 1,000원| 조회(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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