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면서....6년만의 답사..... 뒤늦게 다시 시작한 학교생활의 새로움이 채 가시기 전에, 강의실에서 배운 내용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면서 토론하는 색다른 학습의 이번 답사는, 새로운 얼굴들과 함께 2박 3일 동안이라는 짧지 않는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에 있어서 나에게 학교생활의 또 다른 시작점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더군다나 이번 답사지역이 전에 가보지 못한 경상도 지역으로 한국의 문화재가 가장 많이 묻혀있는 통일신라를 중심으로 한 천년의 고도 경주라는 것은 나의 관심을 한층 더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오랜만에 느껴보는 체험이라 답사일정동안 다녔던 행선지 전부가 기억에 남았지만 각종 유물들과 국보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던 ‘경주국립박물관’과, 우리 선조들의 과학뿌리를 알 수 있고, 신라인들의 위대한 문화유산과 석굴암과 첨성대등 여기에 깃든 신비와 과학정신을 되살리고자 하는 정성이 살아있는 ‘신라역사과학관’에서는 특히 느끼는 바가 컸었다. 두 곳에 대하여 알아봄으로서 다시 답사 때의 그 느낌을 느껴볼 수 있는 계기를 이 레포트를 통해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Ⅱ. 본론1. 국립경주박물관국립경주박물관은 고고관, 미술관, 안압지관 3동의 상설전시관과 특별전시관 1동을 운영해오고 있다. 2002년 미술관의 신축 개관 이후 노후된 시설을 보강하고 보다 나은 전시환경에서 관람객을 맞고자, 2003년에는 고고관을 새롭게 재개관 하였다. 2004년 12월 27일 안압지관을 새롭게 단장하여 재개관 하였으며, 2004년 10월 9일에는 특별전시관을 개보수하여 개관기념전을 개최하였고 2005년 1월 31일에는 어린이박물관을 신설하여 개관하였다. 이밖에 박물관 뜰에는 성덕대왕신종(국보 제 29호)을 비롯하여 고선사터 삼층석탑(국보 제 38호) 등 석조유물을 전시하고 있다.고고관경주 주변지역에서 수집한 선사시대에서부터 원삼국시대까지의 유물을 전시한 선사·원삼국실과 천마총·황남대총 등의 신라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해 놓은 신라실Ⅰ·Ⅱ, 그리고 국은 이양선 박사가 기증한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는 국은기념실 등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미술관미술관은 1층과 2층으로 구분되어 있다. 1층에는 미술관 신축당시 출토된 유물과 임신서기석 등의 금석문, 신라 왕경복원모형이 전시된 역사자료실과 신라와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불상을 비롯하여 석조 불교조각과 능묘조각이 전시되어 있는 조각실 Ⅰ·Ⅱ가 있다.2층에는 감은사 동탑 사리장엄구를 비롯하여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각종 금속공예품이 전시된 금속공예실과 황룡사터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을 전시해 놓은 황룡사실이 있다.안압지관이 전시실에는 안압지 발굴사에서 출토된 3만여점의 유물 가운데 예술성이 뛰어난 명품 700여점을 선별하여 전시해 놓았다. 전시물은 고분출토품과는 달리 통일신라시대의 왕실과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실생활용품들이다.야외정원야외정원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범종인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과 고선사터 삼층석탑(국보 제38호)을 비롯하여 경주지역의 절터 궁궐터 등에서 옮겨온 석조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석조유물은 대부분이 불교관계 조각물로서 석불·석탑·석조·석등·비석받침 등이며 이밖에 주춧돌·계단석과 같은 건축부재도 다수 있다. 장항리 석조여래입상, 낭산 출토 관음보살입상, 분황사 우물에서 출토된 20여구의 불상, 고선사터 삼층석탑, 사자·공작무늬돌 등이 그 대표적인 전시물이다.2. 신라역사과학관경주를 찾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민족 과학의 뿌리를 알리고 심어주는 교육현장을 만들 목적으로 1988년에 문을 연 사설 박물관(설립자:昔宇一)이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이다. 유물의 일부만 남아 있는 과학문화재일지라도 만든 원리를 토대로 실험과 관찰을 거듭해 그 원형을 복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영된다. 즉, 신라인의 위대한 문화유산과 여기에 깃든 과학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하는 정성이 여기에 살아있으며, 석굴암과 첨성대 등의 신비와 과학을 밝히는 역사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다.1) 제 1전시실1층 건물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고대 천문 관측대 였던 첨성대(瞻星臺) 모형 및 그 위로 펼쳐진 별자리, 신라 제27대 왕 선덕여왕상(善德女王像)과 선덕여왕시대의 별자리를 나타낸 혼상, 급보상식 부전누란 4단 위에 각각 놓여진 4개의 흐르는 물통(漏壺)에서 부표(浮漂)에 꽂힌 잣대(浮箭)로 수위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얼마나 변화하는가를 잣대의 백각(百刻) 눈금을 통하여 알게하는 장치인 4급보상식(四級補償式) 물시계(浮箭漏), 그리고 8C 중엽(통일 신라 초기) 경주의 모습 등에 대한 각각의 설명과 모형 및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첨성대의 모형)2) 제 2전시실우리나라 국보 제 24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석굴암의 개요 및 구조에 대한 설명과 문제점 및 논쟁에 관한 것들이 나열되어 있으며, 또한, 석굴암의 내부를 조명한 모형들과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석굴암 내부 모형)3) 제 3전시실오대산(五臺山) 상원사(上院寺) 범종(梵鐘)에 대한 개요와 조형상의 특징을 설명해 놓았으며, 종이 만들어 지는 과정을 그림으로 나열해 놓아 종의 주조과정을 알아보기 쉽게 설명해 놓았다. 또한, 범종의 실물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오대산 상원사 범종)4) 제 4전시실신라의 목판인쇄로부터 고려의 목판 인쇄, 금속활자 인쇄 등 한국의 고대 인쇄 기술사에 대해 열거 되어 있고, 그 산물인 무구정광 대다라니경, 고려대장경 등에 대한 설명되어져 그림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또한,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와 같이 화려하고 우아한 백제 장인들의 조각예술품들이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다.5) 제 5전시실조선 태조 4년(1395)에 제작한 돌에 새긴 고대 천문도였던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地圖), 조선시대에 사용하였던 대표적인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 세계 최초로 발명되어 빗물을 측정한 기계 측우기(測雨器)와 측우대(測雨臺), 태양이 정오에 가장 높게 떠 있을 때, 수직하게 세운 막대가 만드는 그림자의 길이를 재는 관측 기기 세종대왕시대의 규표, 조선 초기의 천문학서 천문유초(天文類抄)와 성경(星鏡), 조선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밤에 별의 위치를 관측하여 시간을 알아보는데 사용한 별시계(星晷), 조선 시대 말에 별의 위치를 측정하는데 사용한 천문 관측 기기 적도의(赤道儀), 조선 세종이 1449년(세종 31)에 지은 불교 찬가(讚歌)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조선시대에 낮(太陽時)과 밤(恒星時)의 시간을 재는 데 쓰던 의기(儀器)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등 세종 대왕 시대의 과학 문화재들의 모형이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그녀의 행복한 눈1.줄거리근 시점 비정상, 원 시점 비정상 거기에 난시까지 갖고 있는 미란다. 하지만 그것을 미란다는 로 느끼기도 한다. 그녀는, 그녀의 남자친구 요제프와 세상에 대해서 남들이 인식하고 감지하지 못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미란다는 남들이 볼 수 없는 자기만의 세상이 있다. 뚜렷하고 선명하게는 보이지 않지만 미란다는 그 세상을 원한다. 황금안경테를 쓰는 순간부터 그것은 미란다에게 곤욕이다. 안경을 쓰게되면 사람들이 기형아나 난쟁이 등으로 보이는 것이다. 미란다는 좋은 기술의 렌즈나 안경을 사용해보았으나 그것은 별 이로움이 없었다. 일단 그동안의 환경이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미란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세상을 그려간다. 앞에 있는 희뿌연 안개를 나무로 배치하고 또 희미한 것을 숲으로 정하고 그것에 근접했을 때, 사실로 다가왔을 때 감탄을 하고 경이로 와해한다.그녀는 상냥스럽다. 상냥스러움을 행사할 만한 세상 안에서 그녀의 모든 기능이 상냥스럽다. 미란다가 보는 흐릿한 세상 때문에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긴다.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남들과 부딪히거나 사람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 무엇이 타버리고 난 상황에서 그것을 찾는 경우,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그럭저럭 순조롭게 되어간다. 음악회는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긴장이 풀리는 공간이다. 그 공간은 다른 사람에게는 영혼의 휴지공간이지만 미란다에게는 눈의 휴식공간이다.미란다에게 다른 여자들은 아무런 결함이 없어 보인다. 슈타지는 이혼에 관한 담판으로 요제프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로마 황제 레스토랑도 가게 된다. 그곳은 미란다와 요제프의 만남에서 미란다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장소이다. 요제프의 맘이 슈타제 쪽으로 가는 것을 느끼고 미란다는 차라리 자진해서 요제프를 잃겠다고 생각한다. 이후 미란다는 에른스트와 키스하는 모습을 슈타지에게 계획적으로 보여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요제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오히려 미란다와 비교해 슈타제를 현명하고 예리한 시력을 갖고 있음을 생각한다. 미란다는 다시금 베르티와 함께 있는 모습을 , 프리쯔랑 함께 있는 모습을 연이어 요제프에게 보여준다. 요제프는 미란다를 바람둥이로 생각해 버린다. 내심 그렇게 행동을 하며 요제프를 떠나려 했지만 미란다는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랬다. 슈타제를 만나고 있는 요제프에게도 미란다에 대한 일련의 생각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요제프는 여전히 미란다를 ‘내 천진한 천사’라고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결국 요제프는 슈타제와 잘즈브르크 바쟈르 커피숍에서 그들의 행사를 치른다. 그곳에서 다시 재회한 미란다. 슈타제의 비꼬는 말투에 빨리 빠져나가고 싶어한다. 잘즈브르크가 뒤죽박죽이라며 말하고 에른스트를 만나러 가야 된다고 슈타제를 통해 요제프에게 말해 달라며 허둥지둥 그 행사장을 나온다.짐을 찾으려 호텔에 들렸을 때, 뜨거운 치욕을 가지고 날개문 쪽으로 가다가 뿌옇게 보이는 날개문에 부딪혀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넘어져 그녀는 생각한다. 눈에는 항상 좋은 것을 간직할 것.2.작가의 관점에 대해장님에 가까울 정도로 나뿐 눈을 가지고 있는 미란다. 하지만 그것은 미란다에게 약간의 불편일 뿐 장애는 되지 않는다. 그런 나뿐 눈을 갖고도 항상 낙천적으로 생각하며 남들과 부딪혀도 무엇이 잘 보이지 않아도 별 불편 없이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 간다.눈, 눈이란 무엇인가? 세상을 볼 수 있는 기준이다. 곧 미란다는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 남들이 생각하기엔 안경을 써라. 좀더 좋은 것으로 고쳐라. 하지만 그녀는 안경을 쓰고 다니지 않고 항상 주머니 속에 넣어 버린다. 미란다는 자기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다. 안경에 의지하지 않아도 영혼의 눈으로 세상을 밝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작가 잉게보르크 바하만 역시 눈이 나쁠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이 추측은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그런 듯 싶다. 안경을 쓰면 잘은 보이지만 먼저 불편하고, 안경을 쓰지 않고 보는 나만의 세상을 잃어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너무 자세하고 선명하게 보여 남들의 눈곱 낀 눈과 이빨에 낀 고춧가루, 침이 심하게 튀는 모습 등이 하나의 여과도 없이 보인다. 그리하여 그 사람에 대한 일련의 좋은 이미지들이 사라지게 된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이것이 곧 제목인 ‘그녀의 행복한 눈’인 듯 싶다.사랑. 미란다 , 요제프 , 슈타제간의 사람의 삼각관계, 미란다의 남자친구 요제프는 슈타제 쪽으로 마음이 넘어간다. 그러기에 미란다는 더 슬퍼지기 전에 더 비참해지기 전에 내가 먼저 요제프를 버리자고 생각하며 에르스트, 베르티, 프리쯔와의 만남을 보여주려 했다. 일종의 페미니즘 성격, 남자에게 종속된 본질이 아닌 어느 남자도 거느릴 수 있는 그런 여성상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다.결과는 참아 웃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비극으로 끝난다고 해야 할 듯 싶다. ‘눈 안에는 항상 좋은 것을 간직할 것’ 그녀가 마지막으로 뱉은 말이다. 먼저 그녀는 행복한 눈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면 그녀의 행복한 눈에 더 좋은 것은 무엇일까? 앞에 나온 안경점에서의 문구처럼 좋은 렌즈는 아니다. 그것은 그녀의 낙천적 성격을 보여주는 일례로 머리가 부딪히며 피를 흘리며 넘어져도 좋은 기억으로 남기자. 그런 식으로 해석되어진다.실연을 당했어도 슈타제가 생각나도 이미 떠나 버린 후 이기에 더 이상 붙잡을 수도 없으니 그냥 좋은 추억만을 간직하자 라고 해석되어진다. 여성에게 있어서 남성이 그렇게 중요한 존재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비극이라도 한번 웃고 끝내자는 작가의 의도인 것이다.문제들, 문제들1.줄거리하는 일 없고 집도 없이 외숙모 미하이로빅스 부인 집에 얹혀 사는 베아트릭스는 20살에 46Kg의 여자이다. 그녀 베아트릭스는 잠에 열광하며 지루한 몸을 추슬러 일어나려다 다시금 무기력함을 느끼며 쓰러져 잠을 청하는 잠, 그 이상의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 누구에게라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그녀가 미래계획이나 그녀의 관심사 등을 생각하지 않는 경우와 같다. 베아트릭스는 오로지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 것을 제일 좋아하기 때문이다. 가끔 시간이 나면 오후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 손질을 하는 것이 고작이고, 35살 먹은 기혼남성인 에리히를 만나는 것이 그녀의 반복되는 일상이다.베아트릭스는 같이 사는 외숙모 미하일로빅스 부인과 그녀의 딸 사촌 엘리자베트와 부딪히는 것을 꺼려한다. 그녀의 눈에는 한심하게 보이는 사촌 엘리자베트는 지겨운 존재이고 지겹다는 말은 베아트릭스가 가장 애용하는 말이다.베아트릭스와 친구인 쟌느는 부, 모 모두가 변호사인 집안이다. 쟌느는 여러 남자들과 사귀며 무도장에서 춤을 추고, 오페라에 가서 노는 둥 머릿속엔 온통 잡다한 것으로 쌓여있다. 베아트릭스는 이런 쟌느와 별로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남아메리카로 재혼해간 어머니로부터 받는 돈이 생활비의 전부인 그녀에게는 쟌느는 건방지게 유명 커피점인 자허에 가기를 좋아하는 부유층집안이다.베아트릭스가 만나는 말단 회사원 에리히에게는 구기라는 부인이 있다. 벌써 세 번째 자살 소동을 벌였다. 소심하고 착실한 에리히는 그런 부인을 두고 결코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베아트릭스는 생각한다.베아트릭스에게는 잠 이외 일체의 것은 시간낭비 이다. 그녀는 직업을 갖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한나절을 잠을 자게 하는 직장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잠을 청할 수 있는 직장이 행여나 있을까하고 생각한다. 더 이상 공부도 하기 싫었다. 일을 하는 여자들을 베아트릭스는 역시 지겹다고 생각한다. 무슨 결함을 가졌거나 망상에 사로잡혀 있어 ‘스스로를 남자들한테 착취당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착취하고 싶지 않고 누구에게 고개 숙이고 싶지 않아 한다.그녀가 얼마 안 되는 생활비로 하는 것은 먹는 것 보다 미장원과 화장품에 바치는 일이다. 미장원이라는 곳을 생각지도 않는 사촌 엘리자베트는 참 한심하다고 아니 지겹다고 생각한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박학다식하며 예술사를 공부하는 서른살의 엘리자베트는 너무 어리석고 자신을 관리하지 않아서 과연 서른살의 몰골을 갖고 있다고 베아트릭스는 말한다. 그 어리석음이 남자였다면 봐줄 수 있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봐 줄 수 없다고 말한다.베아트릭스는 르네로 가서 머리를 만지며 매니큐어를 한다. 그녀의 성격답게 그녀는 카알씨가 자기를 만져 주었으면 한다. 카알씨야말로 자기를 가장 알아주는 사람이다. 베아트릭스는 돈 때문에 미장원에서 약간의 속마음을 숨기며 가발이라던가 좋은 약품에 대해 자기와 맞지 않다며 쓰기를 꺼려하며 항상 사양한다.
소시민의 결혼식을 보고독일문학의 장르와 그와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나로서는 생소한 것이었다. ‘소시민의 결혼식’ 그것의 원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았던 연극 ‘소시민의 결혼식’에 대해서 나로서의 감상을 얘기해 보려한다.연출자의 나름대로의 재해석에 의해 무대에 올려진 ‘소시민의 결혼식’은 그 나름대로의 해석 때문인지 누가 주인공으로 등장되는지 조차 어려운, 다 주인공적인 관점으로 하나 하나의 등장인물이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월남파병을 다녀온 할아버지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겪었던 전쟁이야기를 해주고 싶어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웃으며 지나쳤지만 그의 소외는 극에 달아 관객에게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려하지만 스태프의 조명차단과 함께 웃음으로 그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못한다.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는 주제를 보면 주인공으로 보인 듯 싶다. 그 신랑, 신부사이에는 아무런 문제점이 보이지 않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그의 친구와 친구의 신부 때문에 갈등을 겪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으로 독백과 함께 그 갈등은 사라진다. 신랑의 친구 부부 중에 친구 부인은 신혼부부를 보며 부러움과 열등감을 느끼며 가구를 부러뜨리고 신혼부부 갈등의 원인을 야기 시킨다. 그 남편 역시 친구부인과의 약간의 말다툼으로 좋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게된다. 새신랑의 처제는 어디서부터 불만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작품 내내 언니의 남편을 무척이나 못마땅해하며 형부를 계속 구박하고 형부의 친구와도 갈등을 겪게 된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피로연 날 요리를 계속준비하면서 그들의 갈등과 이야기 속에는 끼어 들지 않으면서 계속 기분 좋게 자신이 맡은 일을 해나간다. 여기서 보는 어머니 상은 실재 우리 삶의 어머니 상을 보여주는 그것과도 같이 보였다. 자식이 잘 되었으면 하는 현대의 어머니 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일례라고 생각되어진다.장소는 오직 결혼식전날의 피로연을 다루고 있고, 등장인물은 누구를 조연이고 주연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각각 개성과 비중을 갖추고 있다. 그렇게 무겁지 않는 주제를 다루고 있고 해서 그냥 웃고 즐기며 지나가도 될 것 같기도 한다. 하지만 정녕 원저자가 생각하고 쓴 것은 무엇이고 연출자가 재해석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원저자의 작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원저자의 생각은 상상해 볼 수 없는 일이고 해서 연출자가 말하려하는 그 주제의식을 한번 생각해보았다. ‘소시민의 결혼식’말 그대로 중산사회계층의 결혼식이고 우리들의 삶의 일부분에 있는 한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보아야할 것은 마냥 결혼식이라는 들떠있는 상황 속에서 그 구성원간에 겪게 되는 갈등인 것 같다. 소외된 계층으로 누구도 말을 들어 주지 않는 영감님과 함께 할 수 없게 금하는 현실에서의 어머니 상. 이것이 하나의 주제로 보인다. 다시말 하면 소외된 계층에서도 소외된 인물. 그것을 통해서 현대 우리들의 삶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는 작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연극을 보고난 나의 일견이었다.원작자 브레히트와 그가진정으로 말하려 하는 작품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고 하니 나로서는 주제 의식에 대해 약간의 재해석을 한 것 같다.‘소시민의 결혼’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선 이 작품은 브레히트의 교육극이나 서사극과 무관한 그의 초기작품이다. 그리고 이 단막극에 비친 영향을 찾는다면 무엇보다도 카를 발젠틴의 영향임을 확인할 수 있다. 남쪽 바이에른 지방의 농부 및 민중소극이나 익살극 공연으로 유명했던 발젠틴의 영향은 무엇보다도 연극이란 관중을 즐겁게 하는 예술이라는데 있다. 이 작품에서도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것, 그리고 이와 결부되어 삶의 즐거운 면이 독특하게 부각되고 있다.이 작품은 소시민의 결혼식 축하연 서술이 주된 내용이다. 축하연은 신랑집에서 그날 저녁에 개최된다. 신랑 신부가 초청한 하객은 신부의 아버지와 여동생, 신랑친구부부 한쌍이다. 신랑집에는 어머니만이 식구로 사는 것으로 되어 있고 축하연 요리는 어머니가 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대부분 부엌에 있고 마련한 요리를 거실 탁자로 나른다. 그러면서 자식의 식사와 옷에 각별히 세심한 신경을 쓴다. 신랑의 장인은 틈만 있으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이야기꾼이다. 그것도 별 의미없는 이야기를 널어놓는다. 외워서 익힌 젊은이의 결혼 축하연설, 소시민적 도덕율로 말미암아 순수한 두 남녀의 사랑이 불행하고 더러운 음담으로 끝맺는 친구의 연설, 샘많고 유행을 쫓기 좋아하는 부인의 무례한 행동 때문에 탁자의 발을 뽑아 부인에게 내동댕이를 치는 화난 남편이 모두가 소시민의 풍속도처럼 익살과 유모를 가득 담고 펼쳐진다.이들 해프닝은 물론 이 결혼식 축하연의 두 주인공인 신랑·신부의 소시민적 해프닝과 연계되어 있다. 결혼살림(가구) 준비를 위해 신랑은 5개월간이나 아침·저녁의 시간을 이용하여 손수 의자들, 탁자, 옷장, 침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손수 만든 아교풀이 잘 붙지를 않아 손님들이 앉자 의자들이 하나 하나 망가지기 시작하고 옷장의 자물쇠가 망가져 열지 못해 손님들은 옷장 구경도 못하고 방의 전등이 켜지지 않아 방의 침대 구경도 하지 못한다. 결국엔 탁자의 다리까지 빠지고 손님들은 서 있을 수밖에 없게 된다. 아교풀의 고약한 냄새까지 겹쳐 결국 화가난 친구가 자리를 뜨자 모든 다른 손님들도 집으로 돌아간다. 귀찮은 손님들이 가버리자 신랑·신부는 또한번 언쟁을 벌이고 급기야 침실로 가서 침대에 눕게되나 침대마져 무너져 망가진다.
프로이드의 종교 이해와 그 한계20세기 정신사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인물로 프로이드(S. Freud, 1856-1939)를 빼놓을 수 없는 데 이는 그의 정신분석 이론이 심리학에서뿐만 아니라 문학, 철학, 교육, 예술 등 다방면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에 있어서도 그의 영향은 적지 않았는 데, 종교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이해--종교는 환영(illusion), 집단 신경증이며 그것은 설명해서 없어져야함--는 그의 위대성 때문에 종교에 대한 그의 글을 연구해 보지 않은 많은 사람들도 종교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갖는 데 큰 영향을 끼쳐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이제까지 프로이드 심리학에 대한 소개는 많이 있었지만 그의 학문과 삶의 최종 목표였던 종교에 대한 이해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주어지지 않았었다.본 장에서는 그의 종교이해를 그의 종교비판에 관한 책들인 The Future of an Illusion(환영의 미래), Totem and Taboo(토템과 타부), 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문명과 불만), Moses and Monotheism(모세와 유일신교)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그의 종교비판의 한계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그러나 미리 밝혀야 할 한가지 사실은 프로이드는 비록 정신분석 이론을 가지고 종교를 해석했으나, 그의 종교에 대한 공격은 정신 분석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시인한다. 즉 이미 그전에 종교에 대한 선입관 즉 무신론적 입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종교이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함으로 이를 먼저 다루어 보고자 한다.1. 프로이드 무신론의 기원프로이드는 정신분석학자가 되기 이전에 이미 어린 시절부터 무신론자였다는 것은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즉, 프로이드의 무신론은 그의 정신분석 안에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앞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무신론자의 입장을 취하도록 이끌어 갔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프로이드 어린 시 존스는 "... 그녀의 이런 부정적인 영향은 프로이드가 후에 기독교적 신념들과 의식들을 싫어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의 종교에 관한 첫 에세이인 「강박적 행위와 종교적 의례」(1907)에서 그가 강박적 신경증을 "종교 형성의 병적 대응물"로 그리고 종교 그 자체를 "우주적 강박적 신경증"이라고 묘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2) 카톨릭의 반유대주의 경험. 프로이드는 자신을 유대인으로 생각했으며 그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유 하나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학교에서 늘 일 등을 했지만 소수의 유대인 친구 외에는 친구가 없었으며 반 유대적 크리스챤들에게 날마다 조롱을 당하곤 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건은 열두 살이 되던 해에 프로이드는 한 꼬마가 그의 아버지의 새 털 모자를 흙속에 던지면서 "포장된 길에서 꺼져, 이 유대인아!"소리치는 모욕을 그저 감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이런 경험들은 프로이드의 내면세계에 일찍부터 증오와 복수의 감정을 일으켰으며 기독교 신앙이란 전적으로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프로이드가 어려서 이미 무신론자가 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의 반 신앙적 결론들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한 지식을 갖거나 성숙하지 못했다. 그럼 어떤 과정을 통해 그는 종교를 비판할 수 있는 주요 도구들을 얻을 수 있었는가?3) 학문적 과정프로이드는 1873년에 비엔나 대학에 의과 대학생으로 들어가서 당시 널리 퍼진 과학적 분위기에 푹 젖어 있었다. 거기서 그는 생리학 교수였던 브뤼케(Ernst Brucke)와 프로이드의 우상의 하나였던 헴홀츠(Hermann von Helmholtz)를 만난다. 브뤼케는 프로이드가 되고 싶어하는 잘 훈련된 과학자의 타입으로 꾸준한 관찰과 묘사에 근거를 둔 과학적 방법의 철저한 사용을 매우 강조하는 독일 학자였다. 프로이드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음은 그의 말에 잘 나타난다: "마침내 브뤼케의 생리학 연구실에서 나는 쉼과 만과 무의식을 물론 구분했고, 후에는 정신의 다른 체계들--이드, 자아, 초자아--사이를 구분한다. 프로이드는 정상적 상황에서, 무의식적이고 불쾌한 본능적 충동은 다소 격렬한 갈등 후에, 의식, 자아에 의해 거절된다고 말한다. 방어기제에 의해 처음부터 자아에 의해 거절된 그들은 무의식으로 흘러 들어가는데(즉 억압되어지는데), 이때 변함없이 남아있는 모든 에너지의 전량을 그대로 갖고 가는 것이다. 이것은 후에 꿈의 형태나 또는 육체적 신경체계안에서 대리 만족(즉 신경증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여기에서 치료의 과제는 환자와 치료자가 함께 노력해서 무의식에 억압된 정신적 충격 등의 내용을 억압 상태로부터 끌어내어 의식으로 노출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판단--이전의 거절된 본능적 억압을 수용하든 거절하는 것이 되든--을 내려야 한다. 이리하여 프로이드는 무의식 즉 취급되지 않은 정신적 외상의 경험과 감정을 드러냄으로서 정신적 질병의 치료로 이끄는 길을 발견했다. 이때 자유연상, 전이, 또는 말의 실수 등이 무의식에 자리잡은 이러한 감정들을 밝히는데 좋은 방법이지만, 이것을 위한 지름길은 꿈의 해석이라고 한다. 프로이드는 꿈을 (심리적인)소원성취라고 보면서,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운 신경증 증상들처럼 꿈도 억압된 소원의 위장된 성취이고 따라서 해석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이때 꿈 해석의 도움으로 프로이드는 어린 시절의 잊혀진 것까지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프로이드는 유아기의 의의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그의 위대한 발견가운데 하나이다. 여기에서 프로이드는 유아가 이미 성적(리비도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단지 이것은 성기적 성애가 아니라 프로이드가 전(前)성기적 성애라고 이름 붙인 입, 항문, 피부라고 하는 성감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또 아주 어린 시절의 경험은 그 아이의 성격 발달, 나아가서는 일생의 운명의 발전에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음을 여기에서 말한다.또 한가지 프로이드의 중요한 발견은 이른바 오디프스 콤플렉스이다. 그는 모든 인간의 신성하고 희생적인 죽임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못 박힘과 기독교 성만찬에서 절정을 이루는 공동식사에 이르는 진화--에서 두드러지게 보여진다. 토템식사는, 사람의 죄책감(또는 "원죄")을 불러일으키며 또한 종교와 윤리적 구속, 사회조직의 출발점이 되는 바로 그 두려운 행위를 기억하는 축제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전적으로 인류의 오디푸스 콤플렉스에 근거를 두었다는 것이 종교의 기원에 대한 프로이드의 심리학적 설명이다.종교의 기원에 대한 프로이드의 관심은 암으로 고통 중에 있던 그의 생애의 마지막까지 계속되는데, 그가 죽던 해에 완성된 Moses and Monotheism에서 그는 집단의 최초의 아버지를 죽인 그 범죄에 대한 인식이 종족 무의식 안에 남아있으며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늘 붙어 다니면서 지속적인 죄책감을 유발시키는데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유일신론의 뿌리라고 주장한다.여기서 간단하게 Moses and Monotheism의 내용을 살펴보면, 모세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집트인이었고, 유대교의 일신론은 이집트로부터 나왔는데 특히 순수한 일신론을 신앙체계로 세우고자 했던 이크나톤(Ikhnaton) 통치 기간에 나왔다는 것이다. 기원전 1375년에 왕위에 오른 이 젊은 바로는 오직 한 신, 윤리적이고 우주적이고 관대한, 아텐(Aten)만을 섬기도록 강요했다. 모세는 바로의 딸들 중에 한 아들, 아마 비합법적인 아들, 이었고 이집트에서 이크나톤 바로 후의 기간동안 살았다. 그의 출신 성분으로 인해 그는 중요한 인물이었고, 아마 한 지역의 통치자로 있으면서 이스라엘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었다고 본다. 열성적인 종교 개혁가로서 이크나톤은 당시 대중적인 종교를 모두 쫓아내었으나 그의 죽음이후에 그가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엄청난 혁명이 있었다. 모세는 이크나톤의 지지자였으나, 혁명 때문에 그가 믿던 종교의 형태를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실천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풀어주고 이크나톤의 일신론적 종교로 그들을 훈련시키고자 결심했로 드러난 것)으로 환영(illusion)"이라고 주장한다. 그럼 어떤 소원들인가? 그것은 생의 위협으로부터의 보호, 이 부조리한 사회에서 정의의 실현, 그리고 영생 등에 대한 인간의 소원이다. 이런 모든 소원들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유아의 경험에서 나오는데, 이때 신은 세 가지 기능을 갖게 된다: 자연의 공포를 없애주는 것, 사람들을 운명(죽음)에 화해시키는 것, 그리고 어떤 문화든 욕망의 금지에 근거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사람들이 당하는 일반 문화생활의 고통과 상실에 대해 보상해주는 것이다.이와 같이 프로이드에게 있어서, 종교란 희망에 의거한 사고 즉 환영이다. 환영은 종교가 도덕적 의미에서 고의적 거짓말이라거나, 인식론적 의미에서 오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꿈이나 신경증등에서 나타나는) 소원 성취에 의해 동기가 부여된다. 이를 위해 프로이드는 한 예를 드는데, 만일 한 가난한 소녀가 언젠가 왕자가 와서 자기를 데리고 갈 것이라는 환영에 붙들려 있다고 할 때, 그것을 반드시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신데렐라처럼 그녀는 왕자와 결혼할 수 도 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것을 믿음으로서 간직할 합리적 근거는 없는 것이다.궁극적으로 오디프스 콤플렉스에서 유래하는, 우주적인 인류의 강박신경증으로서의 종교는 과학 정신의 증가로 말미암아 사라지고 있다고 프로이드는 보았다. 물론 이것은 그의 개인적인 소망으로 끝쳤지만, 그는 개인에게 있어서 그리고 인류 전체에 있어서, 종교는 인간 발달의 과도기 단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처음 단계는 신화적(또는 정령 숭배적), 둘째는 종교적,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학적 단계이다. 개인으로서 또한 인류 전체로서 사람은 영원히 아이로 남을 수 없다. 사람은 성장해야한다. 즉 많은 사람이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해 주시면 나는 이렇게 하겠습니다고 하나님과 흥정하는데, 이는 부모에게 매달리는 아이의 모습이므로 더 이상 유아적 환상에 매달림으로 성숙하기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이다.
Ⅰ.序論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나 한번 죽게된다. 그가 부자이건 거지이건 정치가이건 서민이건 죽음은 누구에게나 한번은 다가온다. 꿈 많은 이십대에 벌써 죽음을 논한다는 것은 어쩌면 시간 낭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어둠의 불청객이기에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를 느끼게 된다. 먼저 ①프로이트의 죽음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본 원시자아가 만들어낸 죽음 관과 영혼의 존재,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요약해 볼 것이고②러셀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통해서 본 그의 죽음에 대한 논리적 해석을 이야기하겠고, ③마지막으로 내세가 기독교인에게는 현실의 보장이라는 이야기와 더불어 비 종교인에게 내세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겠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본인 나름대로의 죽음과 내세에 관한 고찰을 내리겠다.Ⅱ.本論1. 프로이트의 고찰) 프로이트의 중에서 을 발췌 요약하였음. 은 "제 1장 전쟁의 환멸"과 "제 2장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라는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 1장은 완전히 제외했으며 제 2장에서도 전쟁에 관련하여 언급한 부분은 제외하였다.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결코 솔직하지 않다. 물론 마음으로는 이렇게 주장할 각오가 되어있다. 즉, 죽음은 누구에게나 삶의 필연적 결과로서 자연스러운 것이고 부인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그러나 실제로는 어떠한가. 우리는 마치 죽음을 피할 수도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는 죽음을 한쪽 구석으로 밀쳐 놓고 그것을 삶에서 배제해 버리는 경향을 보인다. 여기서 죽음은 물론 우리 자신의 죽음을 뜻한다. 사실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상하려고 애쓸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여전히 구경꾼으로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무도 자신의 죽음을 믿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무의식 속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불멸을 확신한다.그러면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가. 문명인이라면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이 듣는 곳에서 죽음의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것을 삼갈 것이다. 이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죽음이 일어나면, 우리는 기대를 배신당하기라도 한 듯이 심한 충격을 받는다. 우리는 죽음의 우발적 원인(사고, 질병, 전염병, 고령 등)을 강조하는 버릇이 있다. 이런 태도는 죽음을 필연적인 것에서 우연한 사건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드러낸다. 실제로 우리는 망자(亡者)에 대해, 그가 마치 무척 힘든 일을 해낸 듯이 찬탄하는 특별한 태도를 취한다. 망자에 대해서는 비난을 보류하고, 그가 생전에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악행을 눈감아 주며, 추도사나 묘비에는 망자에게 가장 유리한 점만 내세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망자는 더 이상 배려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도, 우리는 그에 대한 배려를 진실보다 더 중요시하고,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배려보다 더 중요시하는 경우도 많다.죽음에 대한 이런 문화적이고 관습적인 태도를 완전하게 해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의 태도다. 부모나 배우자, 형제 자매, 자식, 가까운 친구 등의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허탈한 상태에 빠진다. 우리의 희망, 소망, 기쁨은 망자와 함께 땅 속에 묻힌다. 어떤 것도 우리를 위로하지 못하고, 망자의 빈자리는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마치 따라 죽을 것처럼 행동하기까지 한다.죽음에 대한 지금 우리의 태도에 반해 원시인의 태도는 어땠는가. 원시인은 죽음에 대해 상당히 주목할 만한 태도를 취했다. 그 태도는 결코 일관된 것이 아니라 모순적인 것이었다. 즉, 한편으로는 죽음을 받아들여 그것을 삶의 종말로 인정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죽음을 부인하고 아무 것도 아닌 하찮은 것으로 여겼다. 이러한 모순은 타인(낯선 사람이나 적)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태도를 취한 것에서 생겨났다.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이의가 없었다. 타인의 죽음은 싫어하는 자의 소멸을 의미했기 때문에, 원시인은 거리낌없이 타인을 죽였다. 원시인은 분명 열정적인 동물이었을 테고,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잔인하고 악의에 차 있었을 것이다. 그는 고, 일부 종교에서는 그 죄책감을 원죄의 교리로 농축시켰는데, 이 죄책감은 아마 원시인이 저지른 살인죄의 결과일 것이다. 오늘날의 기독교 교리는 그 본질을 추론할 수 있게 해준다. "신의 아들"이 원죄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다면, 그 원죄도 살인이었을 게 분명하다. 다른 어떤 죄도 속죄의 방법으로 목숨을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원죄는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범죄였다. 인류 최초의 범죄는 아버지 살해, 즉 원시인 무리의 첫 조상을 죽인 행위였을 게 분명하고,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 조상의 이미지가 나중에 이상화하여 신으로 변모했다.) 프로이트는 제 2장에서 신을 엄청나게 지위가 높아진 아버지의 모습이라 말한 바 있다.현대인이 모두 그렇듯이, 원시인에게도 자신의 죽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일이었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태도가 충돌하여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었고, 이 경우는 매우 중요해져서 광범위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원시인이 자기한테 속해있는 사람, 즉 아내, 자식, 친구 등의 죽음을 목격하는 경우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고 고통에 사로잡힌 원시인은 자기도 역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의 모든 존재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저항했다. 원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맛보았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죽음을 멀찌감치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자기 자신의 죽음을 상상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정할 마음은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타협안을 생각해냈다.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되, 죽음에서 소멸의 의미를 배제한 것이다. 적의 죽음에 관한 한, 그가 소멸의 의미를 배제할 만한 동기는 전혀 없었고, 그가 영혼을 만들어 낸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 옆에서였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가져온 심리적 변화를 통해 그는 개인을 육신과 영혼으로 나누는 것을 생각해냈다. 망자에 대한 끈질긴 따라서 영혼이라는 개념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추억에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불멸성을 보장하려는 노력에서 생겨난 것이다. 프로이트 전집 18 중의 에서는 이를 '분신'의 개념과 관련지어 말하고 있다. "분신의 모티브는 실제로 자아의 소멸에서 영속성을 보장하려는 욕망, 다시 말해 '죽음의 권능에 대한 강력한 부인'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불멸의 영혼'이 육체의 첫 번째 분신이라는 사실은 설득력이 있다."처음에, 영혼의 존재는 그림자처럼 실체가 없는 공허한 것에 불과했다. 후세에 이르기까지 영혼은 거의 중시되지 않았고, 여전히 임시로 만들어낸 존재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에 종교가 내세를 좀더 바람직하고 근거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죽음으로 끝나는 삶을 죽음(그리고 죽음에서 시작되는 내세의 삶)의 준비단계에 불과한 것으로 격하) 종교가 지상에서의 삶을 격하시켰다는 것과 관련하여, 니체가 제 195절에서 한 말은 다음과 같다. "...유태인들은 가치 전도라는 기적적인 일을 해냈다. 그 덕분으로 2000년간 사람들은 이상하고도 위험한 유혹을 받아 왔다. 그들의 예언자들은 '부', '불경', '악', '폭력', '음욕' 등을 하나의 의미로 결합시켰고 처음으로 '세상'이라는 말을 더럽고 욕된 것을 뜻하는 말로 사용했다..."하는 데 성공하면서, 영혼의 존재는 더 이상 인간 존재의 부속물이 아니라 실체로서 여겨지게 된다.) 플라톤이 육체를 영혼이 갇혀 있는 감옥이라 여기고, 죽음을 영혼이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또한 삶을 죽은 후의 미래까지 연장하여 내세의 개념을 만들어낸 것처럼, 삶을 태어나기 이전까지 연장하여 전생과 환생, 그리고 윤회 같은 개념을 만들어낸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이 모든 것은 삶의 종말이라는 의미를 죽음에서 박탈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 옆에서 영혼에 대한 교리와 영혼 불멸의 신앙이 생겨난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죽음에 대한 부인을 "관습적이고 문화적인번 생겨나면 영원히 존재하고, 반면에 육체는 일시적으로 죽었다가 소생한다고 보았다.그러나 육체의 구성 물질은 신진 대사 과정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이제 물리학에서는 원자들이 계속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지 않는다. "이 원자는 몇 분전에 존재했던 바로 그 원자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 육체의 연속성은 외관과 행동 상의 문제이지 실체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정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생각하고 느끼고 활동한다. 그러나 사고와 감정, 그리고 행동 이외에 달리 드러난 실체, 즉 이런 것들을 하거나 겪는 주체로서의 정신 혹은 영혼과 같은 것은 없다.) 러셀의 이러한 생각은 니체와도 일치하는 것 같다. 니체는 중의 제 1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역) "사람들은 번개를 그 섬광과 분리하여, 섬광을 번개라고 불리는 주체의 활동이며 작용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활동이나 작용의 배후에는 어떠한 존재도 없다. 활동이 그 전부인 것이며 '활동자'란 활동에 덧붙여진 단순한 상상의 허구일 뿐이다. 우리의 모든 과학은 '주체'라는 기형아에 대한 미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원자(原子)가 바로 그러한 기형아이며 칸트의 물자체(物自體)도 기형아이다."인간 정신의 연속성은 습관과 기억의 연속성이다. 즉 어제 한 사람이 존재했고 나는 그의 감정을 기억하고 있는데 바로 그 사람을 나는 어제의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어제의 나라는 것은 어떤 정신적 사건들에 불과하다. 한 사람을 구성하는 것은 기억과 소위 습관이라 불리는 것들로 연결된 일련의 경험들이 전부이다.따라서 어떤 사람이 죽은 후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으려면, 먼저 그 사람을 구성하는 기억과 습관들이 새로운 사건 환경에서도 계속해서 나타난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우리의 기억과 습관은 뇌의 구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것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