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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광조의 지치주의
    조광조의 도학정치주자학이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말이었으나 널리 보급되지는 못하였고, 조선 초기에 와서도 사장(詞章)의 학만이 높이 숭상되었기 때문에 과거에 있어서도 이것에만 치중하였고 도학(道學)은 일반적으로 경시되었다. 그러나 조광조의 도학정치에 대한 주창은 대단한 것이었고, 이러한 주창을 계기로 하여 당시의 학풍은 변화되어갔으며, 뒤에 이황(李黃), 이이(李珥) 같은 학자가 탄생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도학정치는 조선시대의 풍습과 사상을 유교식으로 바꾸어 놓는데 있어서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즉, 조선시대에 일반서민들까지도 주자의 를 지키게 되어 상례(喪禮)를 다하고 젊은 과부의 재가도 허락되지 않게 되었다. 1518년 부제학이 되어서는 유학의 이상정치를 구현하기 위하여 사문(斯文)의 흉기를 자신의 임무로 자부하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주(人主)의 마음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미신타파를 내세워 소격서(昭格署)의 폐지를 강력히 주청,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이를 혁파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어 그해 11월에는 대사헌에 승진되어 부빈객을 겸하게 되었다. 그는 한편으로 천거시취제(薦擧試取制)인 현량과(賢良科)를 처음 실시하게 하여 김식(金湜), 안처겸(安處謙), 박훈(朴薰) 등 28인이 뽑혔으며, 이어 김정(金淨), 박상(朴尙), 이자, 김구(金絿), 기준(奇遵), 한충(韓忠) 등 소장학자들을 뽑아 요직에 안배하였다. 그는 이와 같이 현량과 실시를 통하여 신진사류들을 정계에 본격적으로 진출시키는 실마리로 삼았다. 이들 신진사류들과 함께 훈구세력의 타도와 구제(舊制)의 개혁 및 그에 따른 새로운 질서의 수립에 나섰다. 그리하여 이들은 1519년(중종 14)에 이르러 훈구세력인 반정공신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즉, 그들은 우선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너무 많음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그리고 성희안(成希顔) 같은 인물은 반정을 하지 않았는데도 뽑혔고, 유자광(柳子光)은 그의 척족들의 권귀(權貴)를 위하여 반정하였는데, 이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신진사류들의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반정공신들은 기성 귀족이 되어 있었고, 현실적으로 원로가 된 훈구세력을 소인배로 몰아 배척하려는 급격한 개혁주장은 중종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침내는 2, 3등공신의 일부, 4등공신 전원, 즉 전 공신의 4분의 3에 해당되는 76인의 훈작이 삭탈당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급진적인 개혁은 마침내 훈구파 중 홍경주(洪景舟), 남곤(南袞), 심정(沈貞)은 경빈박씨(敬嬪朴氏) 등 후궁을 움직여 왕에게 신진사류를 무고하도록 하였다. 또한, 대궐 나뭇잎에 과일즙으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자를 써 벌레가 파먹게 한 다음에 궁녀로 하여금 이를 따서 왕에게 바쳐 의심을 조장시키기도 하였다. 한편, 홍경주와 공조판서 김전, 예조판서 남곤, 우찬성 이장곤(李長坤), 호조판서 고형산(高荊山), 심정 등이 밀의하여 밤에 신무문(神武門)을 통하여 비밀리에 왕을 만나 조광조 일파가 당파를 조직, 조정을 문란하게 하고 있다고 탄핵하였다. 이에 평소부터 신진사류를 비롯한 조광조의 도학정치와 과격한 언행에 염증을 느껴오던 왕은 훈구대신들의 탄핵을 받아들여 이를 시행하였다. 그 결과 조광조는 김정, 김식, 김구, 윤자임(尹自任), 박세희(朴世熹), 박훈 등과 함께 투옥되었다. 처음 김정, 김식, 김구와 함께 그도 사사(賜死)의 명을 받았으나,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간곡한 비호로 능주에 유배되었다. 그 뒤 정적인 훈구파의 김전, 남곤, 이유청(李惟淸)이 각각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에 임명되자 이들에 의하여 그 해 12월 바로 사사되었다. 이 때가 기묘년이었으므로 이 사건을 '기묘사화'라고 한다.결국 신진사류들이 기성세력인 훈구파를 축출, 새로운 정치질서를 이루려던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들의 실패원인은 그들이 대부분 젊고 또 정치적 경륜도 짧은 데다가 개혁을 급진적이고 너무 과격하게 이루려 하다가 노련한 훈구세력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이를 후대의 명석한 학자인 이이가 잘그의 행적이 경계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 뒤 선조 초 신원(伸寃)되어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묘에 배향되었다. 그 뒤 그의 학문과 인격을 흠모하는 후학들에 의하여 사당이 세워지고, 서원도 설립되었다. 1570년 능주에 죽수서원(竹樹書院), 1576년 희천에 양현사(兩賢司)가 세워져 봉안되었으며, 1605년(선조 38)에는 그의 묘소 아래에 있는 심곡서원(深谷書院)에 봉안되는 등 전국에 많은 향사가 세워졌다. 또한, 이이는 김굉필, 정여창(政汝昌), 이언적(李彦迪) 등과 함께 그를 동방사현(東方四賢)이라 불렀다. 저서로는 이 있는데 그 중 대부분은 소(疏), 책(策), 계(啓) 등의 상소문과 몇 가지의 제문이고, 그밖에 몇 편의 시도 실려 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유교로서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야 한다는 지치사상에 입각한 왕도정치를 실시했다. 그는 유교로써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야 한다는 지치주의(至治主義)에 입각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하였다.지치주의 *至治主義*조선 전기의 철학자, 정치가인 조광조(趙光祖)를 위시하여 전개되는 일련의 정치사상이다. 그 내용은 인간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이 세상이 바로 하늘의 뜻이 펼쳐진 이상세계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으로서, 이는 중국의 성리학이 수용되고 정착되면서 나타난 한국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고려 말에 수입된 성리학이 뿌리를 내리면서 나타나는 하나의 특징은 '천인무간(天人無間)'의 인간존재를 자명한 명제로 전제하였다. 하늘과 사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합일체로 보는 이 전제는, 하늘의 뜻이 인간의 일과 분리되지 아니한다는 '천리불리인사(天理不離人事)'의 명제로 발전하여 사람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세상이 하늘의 뜻이 실현된 이상사회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치적 당위성이 도출됨으로써 지치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지치란 《서경》군진편(軍陳篇)의 '지치형향(至治馨香) 감우신명(感于神明)'에서 따온 것인데, 잘 다스려진 인간세계의 향기는 신명(神明)을 감명시킬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치주의 운동이의 지치주의 운동지치주의의 전제가 되었던 '천리불리인사'는 '천인무간'을 전제로 하여 도출된 명제이므로 지치실현의 근본은 '천인무간'의 인간존재를 실천하는 개인적 수양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는 개인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수양에 의하여 하늘과 하나인 존재를 실천하는 개인들만으로 사회가 구성될 때 지치의 사회는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광조는 "말을 사랑하는 것, 화초를 사랑하는 것, 새 기르는 것을 좋아하는 것 등은 마음을 바깥으로 치닫게 하여 진흙에 빠지게 되므로 진리에 들어갈 수 없다(靜菴集3, 사讀官時啓9)."라고 하여 개인의 내적인 수양을 강조하였는데, 개인적 수양에 의하여 하늘과 하나됨을 실천하는 사람을 유학에서는 성인(聖人)으로 설명하므로 개인 수양의 목표는 결국 성인이 되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이렇게 볼 때 이상사회를 이룩하는 방법은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이 각각 수양을 통하여 성인이 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때에는 먼저 성인이 된 사람이 정치적 대표자인 왕이 되어 다른 사람을 깨우침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성인이 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정치적 실천을 담당하고 있는 왕이 성인이 아닐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서의 해결책으로는 다음의 두 방법을 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현재의 왕이 수양을 하면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될 경우 신하들이 왕을 수양하게 하여 성인이 되게 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왕이 수양을 하더라도 성인이 될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 왕을 바꾸어 가능성이 있는 다른 사람으로 대치하는 방법이다. 조광조는 당시의 군주인 중종이 수양을 하면 성인이 될 수 있고, 따라서 이상정치의 실현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하여 지치주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는 것이다. 조광조가 경연(經筵)에서 중종에게 지성껏 학문을 가르친 것도 바로 중종의 수양에 도움이 되고자 한 것이었다.지치주의 운동의 이론적 근거로 조광조는 왕도정치를 제시하고 다시 왕도정치의 실안 된다. 따라서, 융평사상은 개혁사상을 동반한다. 지치주의 운동은 결국 이 융평사상과 개혁사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조광조는 정치적 실천단계에 있어서 실제로 융평을 이루기 위하여 법제(法制) 등 현실적 요소의 개혁을 내용으로 하는 유신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조광조가 주창한 이상사회의 근본적인 실현방법은 한 점의 티끌도 없이 깨끗하여진 임금의 한마음이 조정과 정사(政事)에 나타남으로서 그 결과 나라 전체가 순정(純正)한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지만, 이상사회의 실현을 의식적으로 시도할 경우에는 순정하지 않은 현실적인 요소들을 개혁하는 유신을 통하여 순정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신의 내용 중에는 유신을 반대하거나 저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포함될 수밖에 없는데, 조광조의 유신운동에 있어서 나타나는 이러한 요소로 우선 조광조는 실지로 도교의 관서였던 소격서(昭格署)를 철폐하기 위하여 상소문을 올린 뒤 어느 날 동료들과 같이 정원(政院)에 나아가 그들에게 "날이 이미 어두워 언관들이 퇴근한다 할지라도 우리들은 마땅히 성의를 다하여 논열(論列)하여 왕의 마음을 돌려놓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밤새 계(啓)를 논하여 닭이 울 때까지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왕이 어쩔 수 없이 소격서의 철폐를 허락하였다. 또, 조광조는 이단을 물리치는데 더욱 주력하였는데, 일찍이 "봉선·봉은 두 절은 불교의 뿌리이니 먼저 그 뿌리를 잘라버리면 나머지는 힘쓰지 않고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다. 조광조의 유신운동을 저지하거나 방해하는 요소는 학문적으로는 이단으로 나타났지만,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소인으로 파악된다. 소인은 난초를 기르기 위하여 잡초를 제거하듯이, 지치실현을 위하여 제거되어야 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조광조에 있어서 전개된 지치주의 운동은 또한 여러 가지 폐해를 가져왔다. 우선 학문적인 순일화운동은 성리학 이외의 모든 학문에 대하여 배타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조선시대의 500년 사상계가 성리학 일색으로 점철되게 된 원인 중의 하나가 되았다.
    인문/어학| 2007.03.27| 6페이지| 3,000원| 조회(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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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정신현상학 서문 - 지와 대상의 상호관계
    헤겔, 정신현상학 서론 - 지와 대상간의 상호관계정신현상학 서론(지와 대상간의 상호관계)철학과 민웅규Ⅰ. 서 론헤겔은 《정신현상학(精神現象學)》,《논리학》,《법철학 강요》등 다양한 저서를 통해 자신의 형이상학적 체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정신현상학은 정신이 자유를 향해 발현하는 과정을 연구함으로서 헤겔의 학적 체계를 완성하고 있다. 사실 헤겔의 형이상학적 체계는 이전 철학자들의 개념을 차용하고 비판하여 수정한 것이 많아 보인다. 대표적으로 칸트의 철학적 개념들을 상당부분 수용하고 또 상당부분 부정하고 있으며 그 이외에도 여러 철학자들의 사상까지 흡수하여 근대철학을 종합하려고 하였다.Ⅱ. 인식작용의 필요성철학에서 사태)를 인식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작용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ⅰ. 인식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절대적인 것의 인식을 달성하는데 그릇된 길로 들어설가능성이 있다.ⅱ. 인식은 일정한 양식과 범위를 지니는 능력이기에 성질과 한계를 면밀히 규정짓지않으면 진리를 파악할 수 없다.Ⅲ. 칸트와 로크의 인식론 밟기ⅰ. 칸트의 인식론모든 개별적 인식활동들에 앞서 인식을 사태를 장악하는 도구)로서 규정한다.도구적 성격의 인식은 대상에 어떤 변형이나 변화를 가하게 된다.ⅱ. 로크의 인식론우리가 얻는 진리는 참으로 있어야 할 진리가 아닌 인식이라는 매체)를 통해 들어온진리이다.ⅲ. 칸트와 로크 인식론의 공통전제선행적으로 고찰된 인식을 참다운 인식의 척도로 전제한다.모든 인식에 앞서 인식의 척도를 마련한다.ⅳ. 헤겔의 비판주장 : 이러한 인식이론들은 진리를 파악할 수 없다.근거 : 도구를 사태에 적용하면 사태에 형태를 주고 변화시킨다.수동적 매체를 통하면 자체로 있는 사태가 아니라 매체를 통해서 그리고 매체안에 있는 사태만을 얻는다.외부로부터 특정한 진리의 척도를 사태에로 가져오는 이러한 인식은 사태 자체에서 비로소 검사되어야 할 척도를 이미 참인 것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모순적이다.인식될 사태 바깥에 있는 척도는 사태 바깥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진리 바깥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칸트와 로크의 인식론에서 인식과 사태 사이에는 단적으로 그것들을 가르는경계가 놓이게 되고 인식은 결코 경계를 넘어 사태 자체로 나아갈 수 없다.ⅴ. 헤겔의 인식론 입장무전제적 인식을 요구사태에 외부로부터 어떤 척도를 들이대지 말고 사태를 스스로 움직이게 해야 하며우리는 의식에 속하는 사태의 현상만을 주목하면 된다.우리가 인식의 실재성을 탐구하고 검사하기 위해서 어떠한 척도도 외부로부터 가져올필요가 없다. 검사될 지식과 대상은 모두 의식 속에 현전하며 의식은 이러한 자신의척도에 맞춰 지의 실재성을 검사한다.Ⅳ. 위기의 학문ⅰ. 학문은 참다운 지가 아니라고 해서 이를 비속한 것으로 여기면서 경시하고 자기의인식은 그와 별개의 것이므로 그런 견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언)ⅱ. 비속한 지에도 뭔가 받아들일 만한 것이 있다는 안이한 생각)ⅲ. 자연적 의식)이 참다운 지를 추구하는 도정의 형식을 취하며 지의 현상화를 논의Ⅴ. 지의 진행순서ⅰ. 지의 개념의식을 위한 대상)의 존재)지 속에는 대상이 이미 어떤 방식으로든 의식에 의해 인지되어 있기 때문에 지는인지된 대상이라고 말해질 수 있다.지, 즉 의식을 위한 대상의 존재는 바로 지 속에 현전하는 대상이므로 타자를 위한존재라고 할 수 있다.ⅱ. 대상의 개념자체존재(Ansichsein)로서 지의 척도)이다.의식에 대해서 관계 밖에 혹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대상 자체는 의식과 관계 맺지 않는 자체존재지만, 이 자체존재는 의식 안에서만자체존재일 수 있다.타자를 위한 존재인 지로부터 이러한 관계 바깥에 있는 대상의 자체존재를 구별한다.ⅲ. 진리 또는 자체의 개념의식과 대상의 통일을 말한다.대상자체는 의식이 그것에 매개행위를 아직 가하기 이전이나 혹은 매개행위가 이미끝난 상태에 놓여 있다.이러한 상태는 대상과 매개하는 관계를 거쳐서 대상과 일치한 의식에 상응한다.따라서 대립적 관계를 벗어난 의식의 통일 자체가 대상 자체이다.)다시금 의식이 활동을 새로이 하면, 통일의 내용을 대상으로 자신에게 대립시키며,대상은 지의 척도로서 기능한다. 이로서 대상 자체는 진리) 또는 척도이다.Ⅵ. 의식의 두 측면ⅰ. 자연적 태도대상을 자체)로 간주한다.여기서 대상은 지와 구별하여 의식의 내부에 존재하면서도 이러한 관계의 밖에 혹은자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규정ⅱ. 비판적 태도대상을 올바로 파악했는지 의심한다.대상은 이미 대상에 관해서 인지하였던 지로 규정ⅲ. 의식은 대상을 본질적이고 자체로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의식의 실재성을검사하는 과정에서 의식을 위한 대상임을 동시에 의미한다.Ⅶ. 지를 향한 도정으로서의 회의주의ⅰ. 통상적 회의주의결과 속에서 항상 순수 무(無)만을 보고 공허의 심연으로 몰락ⅱ. 진정한 회의주의한 지식에 대한 철저한 절망을 통해 진리로 이행한다.의식의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진행하는 이행의 원리로서 규정적 부정)을 통해필연적인 과정을 거친다.결과를 규정적 부정으로 파악함으로써 회의주의는 의식의 새로운 형태를 발생시키고,의식의 온전한 계열의 형태들을 거쳐 진리로 나아가는 이행을 가능케 한다.Ⅷ. 의식의 변증법적 운동첫 번째 대상에 대한 절망은 대상의 수정된 내용을 나타낸다.의식은 자신의 자연성에 기인하여 첫 번째 대상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지를 거듭하여대상으로 마주 세우고, 자신의 지의 척도로 간주한다.)검사의 결과인 지의 내용은 새로운 지의 생성일 뿐더러 다음 단계의 대상으로 된다.의식은 대상에 대한 지를 갖지만, 그에 대한 비판적 검사는 지와 대상간의 불일치를적시함으로써 한 형태의 의식은 스스로를 전복하고 다른 형태의 의식으로 전화한다.요컨대, 원초적인 개념(正, These)이 그 자체적이 모순 때문에 모순개념(反, Antithese)과 대립하고 이 대립을 통하여 더 나은 상태인 종합개념(合, Synthese)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종합개념은 다시 자체모순을 통하여 원초적인 개념이 된다.Ⅸ. 결 어우리가 인천공항에서 눈앞에 있는 비행기를 보고 "이것은 비행기다"라고 말했다고 하면, 이것이 감각적 확신 단계의 인식이다. 그 뒤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비행기를 보니까 조금 전 앞에 있는 비행기를 보고 한 말이 또 나온다. 분명히 처음에 "이것은 비행기다"라고 한 것은 앞에 있는 비행기를 보고 한 말인데 옆에 있는 비행기에도 맞는 말이다. 왜 그럴까? 앞에 있는 비행기와 옆 비행기가 공통의 속성들, 즉 보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모두 몸체, 날개, 바퀴, 엔진 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비행기가 몸체, 날개, 바퀴, 엔진 등으로 이루어진 사물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이것이 지각 단계의 인식이다.그런데 몸체, 날개, 바퀴, 엔진을 을 아무렇게나 조합해 놓으면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된 비행기라 하지 않는다. 적어도 비행기는 그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어떤 구조적 원리에 의해 만들어 져야 한다. 우리는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저 비행기가 구조적 원리에 맞도록 잘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이런 인식은 과학의 법칙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가령 만유인력 법칙의 경우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법칙 자체를 볼 수는 없다. 돌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 행성의 운동,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 등을 보고 만유인력 법칙을 인식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만유인력 법칙이 구현되어 있는 구체적인 사물이나 운동을 보고 이 법칙을 인식할 수 있다. 이것이 오성 단계의 인식이다.돌이 떨어지고 비행기가 날아가는 '현상'을 통해 만유인력 법칙이라는 '본질'을 인식하는 것은 객관적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다. 객관적 진리는 인간 의식이 파악한 사고의 내용과 사물의 본질이 일치할 때 얻을 수 있다. 이런 진리를 얻는 것이 인간의 이성이다. 이 단계에서는 개별 현상과 보편 본질 사이의 구별이 없고 일치한다. 그런데 헤겔에 의하면 감각적 확신, 지각, 오성으로 전개되는 인식 능력의 각 단계는 이전의 상태를 언제나 잊어버리고 발전하는데, 이전의 단계를 모조리 포함하고 각 단계를 자신의 계기로 파악하는 것이 정신이다. 다시 말해서 정신 이전의 모든 단계는 정신의 낮은 형태의 인식 능력이다. 정신은 이성이 인간 사고의 내용과 객관적 사물의 본질을 일치시키고 종합함으로써 생겨나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 정신이 최고의 절대 지식을 얻는 이른바 절대 정신이다. 인간이 대상을 인식해 가는 과정은 언제나 낮은 단계의 지식을 매개로 발전하면서도 낮은 단계의 지식을 부정하고 궁극적으로는 정신에 의해 통합되는 과정이다. 이런 뜻에서 헤겔의 인식론)은 변증법적이다.
    인문/어학| 2007.03.27| 5페이지| 2,000원| 조회(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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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진유가사상에 대한 정리 - 북송오자를 중심으로
    공자(인仁)공자는 주나라 말기, 춘추 시대를 겪으면서 극심한 사회의 혼란 원인으로 도덕적 타락에 입각하여 문제를 직시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제안한 방법은 바로 인(仁)이었다. 공자의 인은 "인간이 타고난 내면적 도덕성"을 말하는 것이었다. 즉, 인간다움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의 내면적 도덕성인 선행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참된 사랑을 의미한다. 또한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 즉, 서(恕)를 말한다. 그에 대한 실천 덕목으로 효, 제, 충, 신, 서 등을 말하였다. 이는 나를 미루어 남을 헤아린다는 추기급인(推己及人)과 성실과 신뢰를 위주로 산다는 주충신(主忠信)으로 드러난다.또한 공자는 예를 중시했다. 이것으로 하여금 외면적 사회규범으로 두어 해결책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즉, 외면적인 사회 규범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이 행해야 할 바른 도리를 말한다. 인을 바탕으로 한 예의 실현을 뜻하는 극기복례를 주장한다.이러했던 공자였기에 정치와 사상은 덕치를 바라보았고, 그것이 덕치주의로 나타났으며, 정명정신이라 하여 지위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강조하였다. 정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군과 신의 분리, 부와 자의 분리와 같다. 군이란 임금이고, 신이란 신하이다. 또한 부는 아버지이며, 자는 자식이다. 즉,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이 뚜렷한 만큼 그것에 상응하도록 의무를 지고 또한 책임을 지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공자의 대동사회라고 할 수 있다.맹자맹자는 전국시대를 겪었다. 공자와 세상을 바라보는 입장은 차이를 가진다. 공자가 도덕적 타락을 혼란의 원인으로 보았다면, 맹자는 혈기와 욕심, 그리고 두려움으로 보았다.성선설은 인심(仁心)이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음을 강조한 설이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에 인과 의가 있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혼란의 원인에 대한 대책으로 시비를 분별할 것을 말하고, 의를 쌓음으로써 대인, 대장부의 기개를 가지라 강조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어질다 보았기에 그 근거인 4는 것이다. 즉, 인간의 본성으로서는 악(惡)에 이르는 욕망도 사실은 존재하지만, 맹자는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도덕적 요청으로서 본성이 선(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의 도덕에 대한 의욕을 조장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사람으로서의 수양은 ‘욕심을 적게’ 하여 본래의 그 선성(善性)을 길러내는 일이었다.왕도정치는 그러한 인심에 입각한 정치이다. 군주는 민중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한 다음 도덕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불인한 군주는 쫓아내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시대적 배경을 전제한다면, 공자의 사상은 군주를 계몽하는데 있으며, 맹자의 사상은 역성혁명에 무게가 실린다.주돈이주돈이(1017~1073)는 태극도설과 통서의 저자로, 이학의 창시자인 정호와 정이가 일찍이 그에게 학문을 배웠기에 후대 학자들에게는 도학의 시조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일찍이 정호에게 안연과 공자의 즐거움을 찾아보라고 하였는바, 그 뒤 공자와 안연이 즐거워 한 것을 찾는 일은 송명 이학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니, 태극(太極)이 움직여서 양(陽)을 낳고, 움직임이 지극하여서는 고요하고, 고요하면 음(陰)을 낳는다. 고요함이 지극하여서는 다시 움직이고,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함이 서로 그 뿌리가 된다. 음(陰)으로 나누고 양(陽)으로 나누어 양의(兩儀)가 성립되고, 양(陽)이 변하고 음(陰)이 합하여 수화목금토(水火木金土)를 낳는데, 이 오행(五行)의 기질(氣質)이 차례로 분포되어 사시(四時)가 운행한다. 이 오행(五行)이 생성함에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하니, 무형(無形)의 진리와 이기오행(二氣五行)의 정기(精氣)가 묘하게 합쳐 엉켜서 건도(乾道)는 남(男)을 이루고 곤도(坤道)는 여(女)를 이루고, 음양의 두 정기가 감응하여 만물을 화생(化生)하므로 만물이 낳고 낳아서 변화가 끝이 없다.오직 사람은 그 빼어난 것을 얻어서 가장 영명(靈明)하니, 형체(形體)가 이미 탄생함확립한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하늘 땅과 더불어 그 덕을 합하고, 해와 달과 더불어 그 밝음을 합치며, 4시(四時)와 더불어 그 차례를 합하고, 귀신(鬼神)과 더불어 그 길흉(吉凶)을 합치고, 군자(君子)는 그것을 닦아 길(吉)하고, 소인(小人)은 그것을 어그려뜨려 흉(凶)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하늘의 도(道)를 규정하여 음(陰)과 양(陽)이라 하고, 땅의 도를 규정하여 강(剛)과 유(柔)라고 하며, 사람의 도(道)를 규정하여 인(仁)과 의(義)라고 한다. 또 말하기를 본시(本始)를 규명하면 종말(終末)에 돌아가니 그런 까닭에 죽고 사는 이치(理致)를 안다고 한다.주돈이는 주역을 근거로 태극도와 태극도성을 지었으며 이를 통하여 자신의 우주론 체계를 세웠다.“역(易)에는 태극이 있고,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는다.”태극도설의 기본 사상은 위의 내용을 근거로 이루어진 것인데, 태극을 최고 범주로 하는 주돈이의 우주론을 보여준다. 태극은 아직 분화하지 않은 혼돈 상태의 근원물질을 가리키며 무극은 무한을 가리킨다. 즉, 근원적인 물질로서의 태극은 형체가 없고 무한하다. 이것이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의 의미이다.주돈이는 태극도설을 통하여 우주발생의 학설을 제시하였다. 태극은 아직 분화하지 않은 근원적인 실체이고, 태극의 운동은 음과 양이 생성되는 근원이 된다. 태극도설에서 말하는 움직여 양을 낳는다.(動而生陽)라는 말과 고요하여 음을 낳는다는 말은 우주의 발생과정에서의 운동의 의미를 말하는 것으로 우주가 본질적으로 운동하고 있음을 나타내준다. 그는 주역의 음양변화를 잘 적용하여 유가적 우주발전론을 도출하였다.주돈이의 인도(人道)에 관한 견해를 살펴보면, 성인은 인의와 중정을 도덕 원칙으로 삼고 주정의 방법으로 수양을 진행한다. 조용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성(誠)이고, 느껴서 형통하는 것은 신(神)이다. 성이란 인간의 본성이자 최고의 도덕원리를 가리키고, 신이란 인간의 사유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은 본래 악함이 없는 선함의 상태이고 극기복례를 통해 성을 구현다. 이에 덧붙여 성인이 되는 공부의 근본인 사려도 필요하다.주돈이에게 인성은 강유와 선악이 있음으로 이를 잘 조화시켜 중에 도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을 인간의 본성이자 순수하고 지극히 선한 것이며, 우주의 건강한 본성에서 근원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강함과 부드러움 등 기의 특성을 인성의 규정으로 삼았다. 이러한 품성을 고쳐서 중을 실현함으로서 성을 구현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장재태허에는 형체가 없으며, 기의 본래 모습이다. 그것의 모임과흩어짐은 변화하고 일시적 형체일 따름이다.태허라는 말은 본래 허공을 뜻하는 것으로, 직접적으로 감지할 수 없는 지극히 성글고 엷은 기로 가득 찬 것이다. 만물과 기는 취산의 관계이다. 즉, 그의 우주론은 태허의 기가 모여 기가 되고, 기가 모여 만물이 된다. 만물이 흩어져 기가 되고, 기가 흩어져 태허가 된다. 허공도 기이고, 형체가 있는 각종의 만물도 기이며, 모든 현상도 기이다.우주의 운동과 변화에 관한 문제를 기화의 문제로 봤다. 기화의 과정을 도라 칭하고, 변(變)과 화(化)라는 두 개의 형식으로 구분했다. 더 나아가 우주의 운동이란 기 자신이 내부에 지니고 있는 운동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물 동정의 기가 바로 모든 운동과 변화의 내재적 근원이다. 즉, 운동의 근원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사물 운동의 내재적 본성과 근원을 신(神)이라 칭한다.신은 천의 덕이고, 하는 천의 도이다. 덕은 그 본체이고도는 그 작용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기의 범주 안에 있을 따름이다.신은 기의 내재적 본성이고 화는 기화의 운동 과정을 가리키는 것으로 작용이 된다. 변화의 실체는 기이고, 변화의 과정은 도이다. 변화의 항상된 법칙은 리이고, 변화의 본성은 신이다. 변화의 동인은 기이고 변화의 총체는 역이다. 그 변화의 점진적인 것은 화이며 변화의 두드러진 것은 변이다. 장재는 신화의 학설을 통해 운동의 근원이 세계 자체에 있다는 점을 긍정했다.하나의 사물이면서 두 몸을 가지고 잇는 것은 기이다. 하나이다. 모든 사물은 대립되는 두 측면을 갖는데, 대립이 없으면 통일도 없고, 통일이 없으면 대립도 없다. 통일과 대립은 서로 존재의 조건이며, 모든 사물을 통일된 것이면서 동시에 대립되는 것이다. 이러한 통일과 대립의 변증법적 관계가 사물 운동의 내재적 근원임을 밝히고 있다. 기는 각종의 대립 규정을 포함하는 통일체이고, 이러한 대리은 바로 변화를 만드는 근원이다.정호도학이란 도를 말하고, 도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이 도를 리 또는 천리라고 부른다. 천리는 이정의 핵심 사상으로서 송명리학은 리를 중시하는 이정의 태도를 계승하는 것이다.도가 있고 리가 있으니, 천과 사람은 하나이며, 나뉘어 구별되지 않는다.천리가 자연과 사회를 관통하는 보편 원리임을 주장한다. 만물일체가 되는 까닭은 리에 있다. 존재하는 사물은 모두 다르기에 존재하는 도 또는 리도 천도(天道), 물리(物理), 성리(性理), 의리(義理) 네 가지로 구분된다. 천도는 자연 법칙이고, 물리는 사물의 구체적인 규율과 성질을 가리킨다. 의리는 사회의 도덕 원칙을 말하며, 성리는 사람의 도덕 본질을 일컫는다. 정호의 입장에서는 자연 법칙과 사회 규범 그리고 인성과 이성은 각자 나름의 범위를 지니지만 실제로는 보편적인 천리에 통일된다.천리란 우주와 사회 인생을 지배하고 있으며 사람과 사물의 본성을 결정하고 이성의 근원이기도 하다. 천리설의 주장은 곧 형이상과 형이하의 구분으로 이어진다. 물질적이거나 구체적인 사물은 모두 형이하에 속하는 기이며, 보편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은 형이상으로 도이다. 리와 도는 보편이며 기와 사물은 특수이다. 이것을 구분하는 것을 중시했다.정호에게 있어 천리는 자연의 보편 법칙을 가리키고 인류 사회의 당위 원칙을 가리킨다. 이러한 의의 자체가 천인합일을 표현한다. 하나의 보편 원리로서 자연과 사회는 물론 모든 구체적인 사물의 존재와 발전에 적용되기 때문에 유가의 전통적인 천일합일의 사상은 천인일리설에 새로운 형식을 띠게 된다.인이란 천지만물을 한몸으로 여기니, 나 아닌 것이 없다.만물이다.
    인문/어학| 2006.12.14| 9페이지| 2,000원| 조회(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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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적 가치는 과연 선인가 악인가
    아시아적 가치는 선인가 악인가얼마전 조지 소로스라는 거대 금융자본가의 방한이 있었다. 그가 친숙한 이유는 IMF라는 특정 시기에 대한 과거 기억 속에 그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 1학년이던 시절 1997년 대한민국은 외환보유액의 부족으로 국제통화기금의 관리 감독 체제하에 들어갔다. 또한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나 비슷한 시기에 동아시아의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이 금융위기의 시련을 겪었다. 금융위기로 인한 국가 파산을 막고자 아시아 국가들은 서구 경영진 및 자본에 대한 개방을 확대하고, 경제구조 자체를 서구화하는 극약처방을 감수해야 했다. 극복의 대가로 인한 사회분위기의 변화는 범위와 속도 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급격했다. 전통적인 대학내 인기학과의 판도가 바뀌기도 했으며, 기업들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취업난의 심화 등 전반에 걸쳐 전과는 구분되는 기점이 된 것은 사실이다. IMF취업세대, IMF시대 등 수많은 신조어와 문화를 탄생시킨 금융위기는 또한 자신의 원인이나 해석에 대한 많은 논란과 토론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아시아의 금융 위기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여러 가지 이론 중에서 뿌리 깊은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아시아적 가치는 무엇이고, 존재하는지, 더 나아가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고찰하고자 한다.「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등의 책들이 유행한 적이 있다. 싱가폴 전 총리인 이광요와 김대중 전대통령사이의 논쟁이 시발점이 된 아시아적 가치의 효용성은 일반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이광요는 포린 어페어지 기고한 글에서 수천년간 아시아의 사상적 토대를 이뤄온 유교적 메카니즘으로 인해 서구식 민주주주의의 이식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며 아시아만의 새로운 가치창출만이 아시아열국들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광요는 중국에서 발생한 유교는 일종의 전체주의적 사고의 틀을 형성하며 아시아인들의 사고구조를 지배해왔기에 서구식 민주주의의 표상인 상향식 민의형성은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따라서 전체를 위한 아시아적 체제만이 적합하며 서구가 민주주의를 이룩하기까지의 경험들을 겪어보지 못하고 단순히 사상적 학습만을 통한 획일적인 서구민주주의의 도입은 적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김대중은 포린어페어지 기고문을 통해 이광요의 아시아적 가치의 맹점을 반박했다. 한국의 역사에 있어서 상향식 민의 형성은 한국의 전통이며 동학의 人乃天사상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하면서 한국에선 서구식 자유주의에 대한 경험은 이미 축적되어 있다는 지론을 폈다. 또한 유교의 왕도정치사상은 민의존중의 치세를 강조하므로 동양적 가치 또한 서구식민주주의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끝없는 논쟁을 낳는 아시아적 가치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으로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용어 설명과 함께 그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자 한다. 20세기초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시아는 문화적 특성으로 인해 서구와 같은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고 폄하했다. 급기야 막스베버는 "유교는 반자본주의적“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70~1980년대 고도성장을 이룩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 요인을 해명하기 위해 허만칸, 에즈라 볼라와 같은 서구 여러 나라의 학자들과 언론들이 아시아적 가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들은 1980년대부터 한국·홍콩·타이완·싱가포르 등 신흥공업국을 '아시아의 네 마리 용(龍)'으로 일컬으면서, 이들 국가들의 경제성장이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인치(人治)와 인정(仁政) 사상에 바탕을 둔 아시아의 뿌리 깊은 유교적 전통에 기인한다고 보고, 이를 아시아적 가치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1990년대 중반까지도 이 아시아적 가치는 유교사상에서 나온 아시아(동양) 특유의 가치로서 긍정적인 가치로 받아들여졌다.그러나 1997년 동아시아 금융시장에서 세계 금융자본이 철수하면서 일부 국가들의 외환 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되자, 서구의 경제학자들과 언론들은 '아시아의 기적은 사라졌다'면서 비판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아시아의 금융위기가 아시아적 가치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면서, 폴 그루그먼과 같은 경제학자는 종래의 주장과 정반대되는 견해를 내놓고 이를 아시아적 가치라고 폄하하기 시작한 것이다. 1970~1980년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아시아적 가치가 이번에는 망국적인 족벌 자본주의를 키우는 토양이자 관료주의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그러나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았던 아시아 경제는 1년도 채 안 되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였는데, 그럼에도 서구 학자들은 여전히 아시아적 가치를 비관적이고 비판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주장하는 아시아적 가치의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아시아는 세계의 어느 지역보다 넓고, 민족·종교·문화도 다양해 아시아적 가치라는 하나의 틀로 묶어 정의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시아적 가치는 순기능 역기능이 극단으로 오가며 평가받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위기가 발생하자, 경제발전을 가져 온 원동력으로 칭송 받던 유교적 가치 또는 유교 문화가 이번에는 연고주의의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탄핵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경제발전과 유교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부족에 기인한다. 한국의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이 유교문화라면 북한의 극단적 개인숭배체제와 극한적인 빈곤을 조장한 것도 유교문화이다. 그러면 유교의 성격은 자본주의 발달을 촉진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발달을 억제하는 것인가 하는 둘 중 하나를 자신 있게 택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봉착한다. 사회의 발전과 변화를 막아 왔던 유교가 어떻게 해서 오늘날에는 급속한 사회 발전을 촉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된 것인가? 또 웨버에 의하면 유럽의 발전을 가져 온 것이 기독교 정신이라는데, 같은 기독교 문화권이었던 동유럽과 옛 비잔틴 지역 그리고 남미의 경제 낙후를 이들 문화론자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이 아시아적 가치가 파란 눈의 소유자인 서구 지식인들의 관점에서 태동했다는데 첫 번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크리스트교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개별성은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그들의 사유방식 근간에는 크리스트교적 교리가 흐르고 있다. 서구의 시민사회 성립 과정을 보면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오면서 종교와 정치를 분리했고, 다시 정치에서도 자유방임사상에 기초를 둔 경제를 분리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두 번의 분리과정을 거쳐 지금의 서구자본주의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이다. 더욱이 20세기를 관통했던 환원주의적 학문방식을 통해 그들은 더욱 세분화 전문화 분업화를 가속화 했다.그에 반해 동양, 아시아 더 나아가 유교문화권의 영역에 있는 동아시아의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면, 고대에서 중세 근세까지 불교라는 자연종교는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이고 기능했다. 근세 근대에는 유교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동아시아에서 종교는 정치와 분리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융합된 형태로 발전해 왔다. 또한 서구에서 했듯 정치와 경제의 분리도 동아시아에선 뚜렷하게 보여 지지 않는다. 조각조각 분석하는 전통을 가진 서구와 달리 동아시아는 전체를 향해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는 전통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간과한 채, 일방적인 잣대로 재단하는 아시아적 가치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인문/어학| 2006.12.02| 3페이지| 3,000원| 조회(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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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어-학이편에 대한 창의적 관점
    논어의 학이편을 중심으로인문과학대학 철학과 4년 민웅규유가(儒家)의 성전(聖典)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사서(四書)의 하나로, 중국 최초의 어록(語錄)이기도 하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전하는 가장 확실한 옛 문헌으로, 공자와 제자와의 문답을 주로 하고, 공자의 발언과 행적, 그리고 고제(高弟)의 발언 등 인생의 교훈이 되는 말들이 간결하고도 함축적으로 기재되었다.《논어》라는 서명(書名)은 공자의 말을 모아 간추려서 일정한 순서로 편집한 것이라는 뜻인데, 누가 지은 이름인지는 분명치 않다. 편자에 관해서는 숭작참(崇爵讖)의 자하(子夏) 등 64제자설(六四弟子說), 정현(鄭玄)의 중궁(仲弓)·자유(子游)·자하(子夏)설, 정자(程子)의 증자(曾子)·유자(有子)의 제자설, 그 밖에 많은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에서 에 이르는 20편으로 이루어졌으며, 각기 편중의 말을 따서 그 편명(篇名)을 붙였다. 은 인간의 종신(終身)의 업(業)인 학문과 덕행을, 은 역대 성인의 정치 이상을 주제로 한 것처럼, 각 편마다 주제가 있기는 하나, 용어가 통일되지 않았고 같은 문장의 중복도 있다. 특히 전반(前半) 10편을 상론(上論), 후반을 하론(下論)이라고 하는데, 그 사이에는 문체나 내용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논어는 효경(孝經)과 더불어 한(漢)나라 이후, 지식인의 필수 서책이며, 그 해석의 전거(典據)가 된 것은 《논어집해(論語集解)》(古註라고도 한다)이다. 송(宋)나라 때에는 유교의 공맹사상(孔孟思想)에 의한 집주 통일화(集註統一化)가 이루어졌고, 특히 주희(朱熹:1130~1200)가 《사서(四書)》로 추존(推尊)하고, 이를 통일하여 《논어집주(論語集註)》(新註라고도 한다)를 저술한 후에는 이것이 고주에 대체되었다. 중화민국 초기에는 구문화(舊文化) 개조를 위하여 공교(孔敎)·논어 비판이 행하여졌고, 그 후에도 계속되고 있으나, 연구가 지속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한국에도 일찍부터 도래(渡來)되어 한학(漢學)의 성행으로 널리 보급되고 국민의 도덕사상 형성의 기본이 되었다.논어의 1장 학이(學而)부분 중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有朋이 自遠方萊면 不亦樂乎아 人不知而不溫이면 不亦君子乎아” 에 대해서 서술하고자 한다.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이 문장은 가장 흔하게 가장 많이 알려진 논어의 내용이 아닐까 싶다. 두 가지 관점으로 정리 하였는데 우선 제 1관점, 지혜의 관점에서의 학(내면적 학습)으로 내면적인 깨달음에 초점을 맞춘 해석과 제 2 관점, 지식의 관점에서 학(외향적 학습)으로 사회적 현상적인 배움에 대한 지식 습득에 초점을 맞춘 해석으로 풀이 해 보겠다.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첫 번째 글자 학(學)은 첫 번째 관점인 지혜의 관점에서 본다면 학이란 문자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인생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며, 사람으로서 행동하고 일하는 과정에서 체험하는 것 즉, 스스로 느껴 깨달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이 잘못하는 것을 보고,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반성하는 것, 이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학 인 것 같다. 하지만 두 번째 관점인 지식의 관점에서 본다면 학이란 "무지로부터의 탈출"이며 "미지의 새로움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이다. 즉, 새로운 것을 익히고 터득해 더 나은 더 높은 내가 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공자의 일생을 통해 추구된 학(學)의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학문"이 아닌, "禮(예)·樂(악)·射(사)·御(어)·書(서)·數(수)"로 통칭되는 육예(六藝)를 말한다. 그것은 문무의 구분이 전혀 없는 매우 실용적인 개념이라 볼 수 있다.두 번째 단어인 시(時)를 첫 번째 관점에서 본다면 언제 어디서나 생각을 해야 하며, 언제 어디서나 반성할 수 있는 이것이 바로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내가 학을 하면 자연스레 그 때를 알게 되고 온다는 것이다.(그 시기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유동적이라는 것.) 그러나 두 번째 의미에서 본다면 배움에는 때가 있으니 그 시기를 맞추어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시기를 정해 놓은 것처럼 그 공부를 할 시기가 있다는 관점에서 본 것 이다.마지막으로 습(習)을 첫 번째 관점에서 본다면 내면적으로 학을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도덕적수준의 향상을 뜻하는 것 같다. 배움으로써 스스로 느끼고 그래서 실천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관점에서 본다면 습(習)은 실천의 세계 즉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구분되어 있고 이것이 종합된 합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배웠으므로 실천 하는 것 즉, 첫 번째처럼 자연스레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 인식에 의해 하는 것을 말한다.이 첫 번째 문장은 간단히 해석한다고 하면 매우 쉽다. 배우고 때에 실천한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이다. 인생의 경험으로부터 알게 되는 깨달음이 어떤 시기에 도달하여 자연스레 실천으로 옮겨진다면 그것이 얼마나 자신에게 기쁨을 주겠는가라고 말이다.두 관점을 비교하는 다른 예로는 위인지학(爲人之學) 과 위기지학(爲己之學) 차이점을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위기란 자아의 성숙을 추구하는 것이고, 위인이란 남들로 부터의 인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옛날의 학자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공부했으나, 결국은 세상을 개선하는 일에 이바지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학자들은 남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공부하지만 그 귀결은 자아의 상상일 뿐이다. 여기서 내적 성숙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우선 붕(朋)에 대해 살펴보자. 첫 번째 관점인 지혜측면에서 본다면 붕이란 자신의 뜻을 알아주는 이 일 것이다. 단지 친구로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 즉,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를 떠나서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같은 것을 공부하는 사람들 끼리를 나이차이가 난다고 해도 학형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관점인 지식적 의미에서 붕을 해석해 본다면 이것은 친구 즉, 학문적 동지를 의미하는 것일 것 이다. 자기와 같은 것을 배우고 같이 지식을 습득하는 사람들을 말이다.다음 원(遠)에 대해 생각해 보자. 첫 번째의 의미로 해석해 보자면 단순히 공간적으로 멀다라는 뜻이 아니라 뜻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가까이에 사람이 많아도 나와 뜻이 통하는 사람이 없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멀리 있는 나와 뜻이 통하지 않았던 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두 번째 의미로는 공간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군자가 되면 멀리서도 사람들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다고 해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외국에서 한국 사람을(같은 민족) 만나면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같은 한국 사람을 만나면 한국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더 반가운 것처럼 그 공간적인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한국 사람이다라는 것을 뜻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느낌인지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마지막 단어인 락(樂)도 마찬가지로 첫 번째의 의미로 보자면 락은 인간과 인간관계에서 성립하는 즐거움, 다시 말해서 내가 바른 마음가짐과 행동을 함으로서 내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들게 되어 기쁘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또한 그 기쁨은 굳이 사람들이 모여 들어서 겉 표면적인 즐거움과 기쁨이 아니라 나의 내면적인 곳에서부터 오는 즐거움, 기쁨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두 번째의 의미로 보자면 공동체적인 사회적 기쁨으로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이 공부하고 나와 같이 뜻으로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것으로 말이다.흔히 이 문장은 사람들이 벗이 먼 곳에서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즉, 멀리서 찾아온 벗과 함께 배움의 길로 걸어가면 얼마나 즐겁겠는가? 등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우리 조는 위의 단락과 마찬가지로 첫 번째 관점에 초점을 맞춰서 나와 다른 뜻을 혹은 거리가 있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같은 뜻을 가지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어 (그 사람이 나이가 많던 적던 상관없이)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배우게 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기쁘겠는가?(내가 바른 생각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확인도 된다고 생각과 함께 한다는 내면적인 기쁨 의미)라고 해석을 했다.이 문장에 대해 두 가지 관점에서 쉽게 한 가지씩 예를 들어 보자면 첫 번째의 예로는 종교를 믿지 않는 공간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었던 친구가 나의 포교로 인해 같이 그 종교를 믿고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될 때의 내면적인 기쁨을 의미하는 것인 듯하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생각과 뜻이 멀었지만 이젠 같은 종교를 믿고 또한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에서 오는 경험을 누구나 한번 씩 해봤듯이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의 예로는 만약 내가 줄기세포라는 것을 연구하는데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외국의 사람이 같이 공부하러 오는 것. 또한 거기서 느껴지는 자부심과 기쁨을 의미한다고 생각해보았다. 공간적으로 멀리 있는 사람이 혹은 문화적 격차 같은 것 까지도 있는 사람이 내 지식에 같은 뜻을 가지고 배우기 위해 혹은 함께 공부하기 위해 온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 같은 것 말이다.
    인문/어학| 2006.11.05| 4페이지| 3,000원| 조회(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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