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시간은 한번 지나면 사라져 없어져 버리는 일화성과 동시에 어느 정도 유사한 반복성을 가지는 신비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제를 바라보고 역사를 소중해 한다. 그것은 오늘을 알 수 있는 지혜를 주고 때론 내일을 예측 가능케 하기도 한다.건축계는 어떠한가? 우리가 흔히 아는 세계적 스타뿐 만이 아니라 이름도 생소한 수많은 건축가들이 책을 통해, 저널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작품을 알린다. 너무나 다중 다양한 작품이 등장하기에 이를 몇 가지 사조로 묶는다는 것이 오히려 어색한 일이 되고 만다. 수많은 작가와 작품이 등단하지만 이들 중에 시간이라는 엄정한 시험관을 통과하여 시대를 뛰어 넘는 작품은 과연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스턴트 식품과 요즈음의 요란한 광고처럼 이내 명멸하는 불꽃놀이인가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이를 판별할 것이다.우리는 다행히 약 100년 전 비슷한 상황을 맞이한 선배들을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은 현재 건축의 4대 거장이라고 일컬어지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와 월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르 꼬르뷔제(Le Corbusier) 그리고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r Rohe)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1869년 미국 태생으로 미스보다 한 세대 앞섰던 반면 1883년 독일에서 태어난 발터 그로피우스와 1887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르 꼬르뷔제는 1886년 독일에서 태어난 미스와 같은 세대의 인물들이다. 이들 모두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를 맞이한 현대 건축계의 거장들이다. 이 중 군더더기 없는 건축을 하는 미스 반 데 로에를 통해 거장으로서 건축적 사고를 확립해 가는 지혜와 미스의 건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미스의 생애미스는 1886년에 독일의 국경에 있는 아헨(Achen)에서 태어났다. 아헨은 신성로마제국의 최초의 수도였으며 초기 중세시대 동안에는 서양 문화의 중심지였다. 아헨의 거리는 네델란드의 국경에 가까웠고 그 주민들의 대부분은 네델란드인 특유의 냉정하고 침착한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이후 1969년 작고할 때까지 뒤에 소개할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미스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1. 신고전주의적 측면(1) 슁켈(K.F. Schinkel)로 부터 받은 영향신고전주의 건축은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왕성하였던 복고풍의 양식으로서, 이상적이고 영원한 추상과 완벽성을 추구하였으며, 그리이스 건축을 이상적인 모범으로 삼았다. 그러나 1830년에 접어들면서 고대건축은 아무리 자유스러운 처리를 하더라도 그 당시 건축에는 적당치 않다는 견해가 등장하였으며 그로 말미암아 과거의 건축을 모범으로 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거부되었다. 그 당시 새 건축예술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던 슁켈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그리고슁켈은 그의 대표작품인 고대박물관(Altes Museum)의 설계에 있어 눈부실 정도로 단순하고 논리적인 회랑(colonnade)과 함께 그의 천재성과 순수한 주의를 자유로이 구사하였다. 한편 슁켈의 고대박물관은 미스의 건축적 사고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구조와 그것을 둘러싼 것이 실제적 분리를 예시한 것으로, 이것을 후에 미스가 골조구조의 원리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 착상의 원천이 되었다. 이에 대하여 미스는 고 말하였다.그리고 미스의 유명한 코너디테일, 건물의 주요본체를 높여진 기단위에 올라놓는 수법등은 슁켈의 작품으로부터 직접 유래하고 있다. 또한 미스는 슁켈의 영향으로 재료가 시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건축이 가능한가를 생각하게 되었으며 실천활동에서 형태, 비례와 그리고 스케일이 갖는 의미를 계속 추구하였다.(2) 피터 베렌스(Peter Behrens)로부터 받은 영향베렌스는 20세기초에 독일에서 활동하던 건축가로서 아르누보의 지도적 제창자들중의 한사람이었다. 아르누보운동은 1890년대에 있어서 최초로 과거의 모든 양식들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시도하였다. 단시일내에 그 운동은 식물의 형태나 일본의 그림책자로부터 이끌어낸 장식적인 주제들을 건축과 응용예술에 부과하였다. 그러나 건축에 있어 이러한 양식의 장식적인 곡선은 구조 뒤크와 마찬가지로 이론가였으나, 한편으로는 창조적인 건축가였다. 베를라헤의 최대 걸작은 1930년에 완공된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로서 그 시대의 가장 훌륭한 건축중의 하나였다. 이 건물의 외관은 사용된 재료와 구조에 의존하고 있으며, 명확하고 정직하게 벽돌로 만들어진 건축임을 말해주고 있다. 베를라헤는 건축재료란 중세에서 실천되었던 바와 같이 잇는 그대로 피복하지 않고 그 성질에 따라 사용하여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에서 그는 벽체의 표면을 평탄하게 유지하려는 신중한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이전에 베렌스와 함께 형태를 만드는 일에 전념한 미스는 베를라헤로부터 구조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미스 건축의 시대적 구분미스 반 데 로헤의 건축활동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시기로 구분되고 있다. 1915년까지의 슁켈 모방시기(1911-1925), G그룹 활동기(1919-1925), 복합적인 유럽활동기(1925-1938), 미국으로 이주한 IIT시기(1938-1950), 기념비적인 기술성의 실현기(1950년 이후)이다.미스의 건축은 첫 활동기인 1920년대 초까지 슁켈의 전통과 베렌스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1925년대까지 계속되는 그룹 G의 활동으로 아방가르드 예술의 영향을 수용하고 있었다.그룹 G의 활동으로 미스는 표현주의와 신조형주의, 그리고 절대주의 등 아방가르드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새로운 이념으로 시작한 1925년경의 작품은 벽돌 건축으로 실현되고 있었다. 이후 1927년에는 유리와 철강의 직접적인 구축적인 가능성으로 전환하고 있었다. 1929년 은 이러한 아방가르드와 전통사이의 갈등과 조화가 공간적으로 실현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1938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 IIT 캠퍼스 계획은 건축보다는 building art로서의 구축성 개념이 구체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에서 표준화된 강철 프레임의 기념성은 1945년 이후 복합적인 체계로 발전하고, 과 에서 성숙되고 있었다.미스의 생애에서 마지막 20년 간은 기술적인 기념성에 몰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속하는 것이며, 진실로 그 시대를 해석할 때만 건축으로서의 이름을 부여받을 가치가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미스는 개인적인 명상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건축가 한 개인이 자기나름대로의 판단과 유희로 건축을 창조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였으며, 그의 이같은 입장에 따른다면, 건축에 있어서는 모든 개인적인 표현은 부정되고 오로지 시대적인 표현만이 남게된다.또한 미스는 이성과 객관성으로써 기술과 건축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통찰하였는데, 객관성은 제한을 의미함과 동시에 비개인적이로 일반화되고, 추상화된 형태를 시사한다. 즉 미스는 자신의 표현을 추구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대상의 성격과 사용한 구조 및 재료의 표현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미스는 건축의 이익을 위해 가끔 기능과의 융합을 보류한다. 그는 건축물의 구조를 건축물의 기능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의 설명에 의하면, 기능이 보다 변하여도 구조는 그대로 남는다는 것이다. 미스는 고 주장하면서 건축의 기능주의를 극한까지 추구해감으로써 역으로 건축미의 순수성에 도달하였다.미스에게 있어 순수예술의 영역이란 순수미의 세계였다. 결국 미스는 건축미를 기능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건축은 긴 생명을 가지므로 많은 건축은 당초의 기능을 낳고 마치면 다음의 새로운 기능에 자신을 적응시켜야만 한다. 그래서 기능주의의 이념을 관철하는 한 가장 기능적인 건축이란 다양한 기능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가장 기능적인 건축은 일체의 기능을 갖지않는 건축이라는 것이된다. 이것은 바로 의 개념이다. 그리고 미스의 건축에 있어 기능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어떻게 변화하더라도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건축을 구조(construction) 와 공학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함으로써 명학한 구조(clear construction) 라는 하나의 건축적 개념을 디테일과 비례라는 건축적 수단을 사용하여 끊임없이 단순함과 명쾌함속에서 발전시킨 결과 생겨난 구조(structure)의심지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미스는 자신의 교육이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교육의 첫째 목적은 학생으로 하여금 실제적인 생활을 위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둘째 목적은 그의 인격을 발전시켜 그가 이러한 지식과 기술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진실한 교육이라는 것은 실제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가치에 관계하고 있다.미스의 이러한 인간교육의 원리와 목표는 그 뒤로 그 학교의 교육방침을 이끌어 갔다. 그리고 그는 다음의 말 속에서 그의 교육이념을 강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만의 건축작품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였으며, 작품에 나타난 그의 포부를 알 수 있도록 하였다.여기서 우리는 미스의 방법론의 투철함과 하나의 에술로서의 건축에 대한 완전한 전념을 엿 볼 수 있는데, 교과과정은 1학년에서는 드로잉의 연습으로 상상력을 기르고, 2학년에서는 벽돌, 나무, 돌의 단순한 구조에 대한 훈련으로 매스와 비례의 연구를 하며, 3학년에서는 분석능력과 단순한 주택의 기능에 대하여 가르친다.건축교육, 계획, 시각훈련(visual training)의 융합을 통하여 건축의 예술적 요소를 탐구하는 것이 미스의 교육이념의 본질이며, 미스에 의해 공식화된 건축의 5개 원칙은 다음과 같다.가) 건축적 요인으로서의 구조, 그 가능성과 한계나) 공간의 건축적 문제다) 건축표현의 수단으로서의 비례라) 재료의 표현가치마) 회화와 조각과 건축과의 관계이러한 몇가지 원칙들은 시대와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참된 원리로서 받아들여 질 수 있었다.미스의 건축 구성 요소들의 특성과 공간1. 건축 구성 요소들의 특성(1) 기둥미스의 건축은 구조와 외피의 기능의 구별이 개념적으로 완벽하였다. 즉 미스는 고전적인 조적조 건물과는 달리 구조적 기능 즉, 하중지지체로서의 기둥과 단순한 외피로서 공간을 한정하는 기능을 갖는 벽체를 엄격하게 구분하였다.미스 건축에 있어 독일시대의 기둥은 원형이나 십자형단면의 기둥이었으며, 미국시대식
디아더스(The Others)를 보고2002년도 개봉작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출연: 니콜 키드만, 피오눌라 플래나건, 알라키나 만제임스 벤틀리, 크리스토퍼 에클레스톤장르: 공포,스릴러디아더스는 2002년도 초에 개봉한 영화로 겨울철에 보기 드문 공포영화였다. 디아더스를 보기전에 언론매체에서는 식스센스와 디아더스를 비교하면서 마지막 반전에 주목하라고 했다. 때문에 영화를 감상하는내내 그 반전이 무엇인지 찾기위해 열중하면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영화의 줄거리를 보면, 독실한 기독교도 그레이스는 햇빛을 보면 알러지가 생겨 죽는 희귀병을 가진 자녀들과 살고 있다. 남편은 전쟁에 나가고 외로이 자녀들과 살고 있다. 그레이스는 아이들을 지키고 위해 커튼을 항상 치고 지낸다. 새로 들어온 하인들의 등장과 함께 커텐이 사라지거나, 창문이 열리고, 문이 갑자기 닫히는 괴이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불안한 그레이스는 신경질적으로 행동하며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힘쓴다. 새로 들어온 하녀중 늙은 하녀가 뭔가를 계속 암시하며 그녀를 안심시킨다. 결국 하녀는 그녀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주려 한다. 결국 하인들이 유령이란걸 깨닫지만 자신은 유령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있는 방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이 유령을 부르는 의식을 치루고 그들과 만나게 된다. 사실 그레이스는 독일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베개로 아이들의 입을 막다가 아이들이 죽게 되고 이로 인해 자신도 자살을 했던 것이다.주인공 그레이스는 자신이 죽은자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과 그가 인식하는 세계의 현실에 대해 아무런 의심이 없다. 그레이스는 살아있는 사람들과 한 집에서 동거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를 보지 못하고 그레이스와 아이들 또한 사람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차원에 공존하는 것이다. 이 공존시스템이 종종 살아있는 자들과 죽은자의 세계를 한 공간에서 마주치게 되는데 이 때 그들은 서로를 귀신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죽은자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관객들은 죽은자의 세계를 영화의 거의 끝까지 산 자의 세계로 인식하고 바라보면 주인공이 느끼는 공포를 공유한다. 또한 주인공을 맡은 니콜키드먼이 연기해내는 항상 긴장감에 가득찬 표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공포감을 증대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나이든 하녀는 이 영화를 풀어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배우의 대사를 들으면서 그레이스에게 해를 입히는 인물이겠구나 예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고 하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영화초반에는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나이든 하녀의 등장으로 엉켜있던 실타래의 실이 풀리든 하나 하나 이야기가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결국 그레이스가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게 영화의 결말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이 영화에도 앞의 내용을 짐작하게 하는 소재들이 등장한다. 피아노, 커텐, 창문, 비석, 죽은자의 사진등이 영화 중반부까지 보여진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소재들은 좀처럼 앞의 내용을 추리하기 힘들게 하고 있다. 아마도 공포영화라는 특성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부에 가면서 이 모든 소재들이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제 역할을 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식스센스를 보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레이스가 사는 집은 항상 안개가 자욱하게 끼여있다. 이 안개는 아마도 그레이스의 세계와 안개 밖의 현실세계를 차단하는 일종의 경계선인 것 같다.
'체 게바라'에 대하여------------------------------------------1928년,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에서 아일랜드계 귀족의 후손인 건축가 아버지와 스페인계 군인 집안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때로는 심한 발작증세까지 일으킬 만큼 괴롭혔던 천식을 어릴 때부터 안고 지내 가족의 보살핌이 특별했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할머니를 생각하며 암을 정복하고 싶다는 야망을 가지고 1947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의대에 입학할 때까지 그는 부유한 중산층 자제로서 생활했다. 대학 시절인 1950년 그는 아르헨티나를 자전거로 여행하게 되는데, 자전거가 고장나 도보로 그리고 노숙을 하면서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환경과는 다른 인간 삶의 모습을 보게 된다. 다분히 낭만적으로 시작한 여행에서 얻은 경험을 계속하기 위해서, 그는 1952년 1월 초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오토바이로 시작한 여정에서 칠레와 페루, 콜롬비아, 카라카스를 거쳐 미국 마이애미까지 8개월간의 여행을 한다. 미지에의 경험이라는 대륙 종단의 이 여행은 중남미는 물론 유럽과 미국의 당시 중산층 젊은이들이 꿈꾸던 가장 낭만적인 경험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 여행은 단순히 한 젊은이의 낭만적인 경험을 넘어서는, 게바라로 하여금 중남미인의 척박하면서도 숨겨진 역사와 삶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훗날 그를 혁명가의 길로 이끄는 바탕이 된다. 이 여행은 그가 평탄한 삶이 보장된 조건을 벗어나 이후 역사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보이지 않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여행 중 그를 감동시켰던 마추피추에 대한 인상기를 보면 그가 얼마나 이 기간 동안 중남미 대륙의 역사와 현실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중남미의 가장 강력한 인디오 문명의 본래적 모습 앞에 마주 섰습니다. 정복자 군대의 창칼이 미치지 못한, 이제는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석축과 그를 둘러싼 형언할 수 없는 정경은 한 몽상가를 황홀경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초혼(招魂)의 거대한 보석과 같습니다." 그는 여행기간 내내 일서 두 번 자신이 향유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버리는데 그 첫 번째가 이것이다.그가 볼리비아 행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 볼리바아가 에스텐소로 대통령이 집권해 개혁을 추진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바라가 목격한 현실은 그의 기대와는 다른 것이었다. 개혁은 일반 민중의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었고, 실망한 그는 과테말라의 혁명적인 아르벤스 정권에 희망을 품고 베네수엘라, 페루, 에콰도르를 거쳐 1953년 12월 과테말라로 들어간다. 과테말라는 1950년 하코보 아르벤스가 지휘하는 과테말라 혁명당이 선거에서 승리해 신(新)혁명정부가 개혁을 단행하고 있었다. 게바라는 여기에서 아르벤스의 유명한 연설, "인간은 물질적으로 굶주렸을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에 굶주려 있다"라는 말을 자기 삶의 명제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혁명정부에 자신이 가장 일조할 수 있는 일, 의사로서 봉사하려고 했다. 그러나 곧이어 미국의 조종으로 아르벤스 정권이 붕괴되고, 그는 새 정권에 의해서 수배를 받게 되면서 멕시코로 망명한다. 당시 멕시코는 스페인 내전 후에 망명한 스페인 정치가, 사상가, 지식인뿐 아니라 트로츠키로 상징되는 많은 사회주의 정치, 지식인들의 망명활동 무대였던 점에서 게바라가 혁명이론과 활동을 준비하기에는 적합한 나라였다.멕시코로 망명한 게바라는 그곳에서 마르크스-레닌 사상을 탐독하며 본격적인 혁명가의 길을 준비한다. 사상적 준비과정과 함께 그는 인생에서 중요한 두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첫 번째 부인이었던 일다 가데아와 피델 카스트로가 바로 그들이다. 일다 가데아는 페루 출신으로 게바라와 마찬가지로 과테말라에서 활동하다가 멕시코로 망명한 아프라(APRA) 당원 출신의 진보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게바라의 어려운 멕시코 체류 시절 인간적, 사상적 동지로서 동반자 역할을 해주었던 여인이었다. 일다 가데아는 게바라가 게릴라전에서의 동료였던 두 번째 부인이 된 알레이다 마르츠 델 라 토레와 사랑에 빠진 것을 인정하고 1959년 이혼을 한다.게바라와 함께 다.아르헨티나에서 시작한 게바라의 '여정'의 1단계는 쿠바 상륙으로 마감한다. 이 긴 여정에서 그는 '낭만주의적 청년'에서 총을 든 '게릴라'로 변화해 있었다. 1960년 한 연설에서 그는 자신의 변화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행을 통해서 나는 가난, 기아, 질병과 직접적으로 접했다. 그러나 나는 병든 아이들을 충분히 치료할 능력이 없음을 깨달았다. 내게는 충분한 약품과 도구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계속적인 압제로 생긴 그들의 비굴한 모습을 보았다. 거기에서 내게 분명해진 것은 유명한 학자나 의학에 훌륭한 공헌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음을 안 것이다. 이 억압받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었다."쿠바 혁명은 중남미 현대사에 있어 대내외적으로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외적으로 쿠바 혁명은 서구세계에 대하여 중남미가 근대성이 부재한 비(非)역사적 진로를 걷고 있는 대륙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킨다. 쿠바 혁명이 있기 전까지 서구는 중남미를 단지 이국적 풍물의 대상 정도로 취급하면서, 서구 계몽주의 이식이 실패한 이후 자신의 역사 전개를 위해서 좌절하며 투쟁하는 중남미인들의 자기 모색의 과정에 무지했다. 중남미는 그들에게 정체성이 없는 하나의 대륙일 뿐이었다. 언젠가 카스트로가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아직 세례조차 받지 못한 대륙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듯이 중남미는 서구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이름이 이베로 아메리카, 라틴 아메리카, 이스파노 아메리카 등으로 붙여져야 하는, 고정된 자기 이름을 가지지 못한 종속된 대륙이었다. 이 대륙에서 발생한 쿠바 혁명은 따라서 서구인들에게는 하나의 충격이며,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대내적으로 쿠바 혁명은 중남미 정치변혁사, 특히 중남미 좌파운동사에서 과거와 질적으로 차별되는 중요한 점을 내포하고 있다. 카스트로가 아바나에 입성하기 전까지 중남미 좌파는 사회변혁에 있어서 개량주의적, 점진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무력을 통한 혁명적인 승리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사례가 되었다.1959년 1월 아바나 입성 후, 게바라는 혁명정부에서 예기치 않게 경제분야를 담당하게 된다. 그는 '전국농업개혁위원장', '중앙은행 총재', '산업상'등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경제문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한다. 경제문제와 관련하여 그는 인간이 물질, 특히 화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경제정책을 꿈꾸었다. 그는 '인간의 욕망이 물질로부터 자유롭고, 노동이 유희가 되는 경제'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는 화폐, 기업, 국가 개념을 부정했으며, 이러한 시각에서 당시 사회주의권 국가간의 경제교류가 국가 사회주의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 거부했다. 한 예로 그는 쿠바 경제 지원책으로 소련이 제공하는 유상차관을 비판했는데, 이는 그의 근본주의적, 국제 사회주의적 관점이 반영된 것이다. 그의 근본주의적 이론은 현실적으로 경제정책을 실행하는데 있어 대내외적으로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고, 계획된 정책들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소련이 게바라의 경제정책을 비판했고, 노동자, 농민도 임금의 삭감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쉽게 동의해주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소련, 중국, 동구권 및 북한 등 사회주의권 국가를 순방하며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관한 이론과 실천의 문제를 토론하고 집필했다.한편 1962년 소련 미사일 위기로 그는 동부지역 군 사령관직까지 수행하며 자신의 게릴라 전략을 전 세계에 이식시키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이 기간에도 유엔, 아프리카 등을 누비며 쿠바의 자립경제, 전 세계적인 반제투쟁의 고무, 지원 등을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게바라의 근본주의적 경제정책은 앞서 지적한 대로 대내외적인 비판과 어려움에 봉착했다.이 시점에서 그는 다시 자신의 모든 현재적 조건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1965년 4월 카스트로에게 작별 편지를 남긴 채 아프리카의 콩고로 게릴라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조용히 쿠바를 떠난다. 그가 의사직을 버리고 볼리비아로 떠난 이후 두 번째의 일이다. "피델, 나는 지금 많은 것들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안토의 혁명정신, 제국주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투쟁한다는 가장 성스러운 의무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쿠바 혁명에서 분출하는 의무감을 제외한 모든 짐으로부터 나는 쿠바를 자유롭게 하고자 함을 다시 밝힙니다. 어느 하늘 아래서 나의 최후를 맞이할 때라도 나는 끝까지 이 민중과 특히 당신을 생각할 것입니다."9개월간의 콩고 체류 중 게바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중남미에서의 혁명을 위해서 1966년 11월 변장한 모습으로 볼리비아로 잠입한다. 당시 볼리비아는 바리엔토스 군사정부가 집권하고 있었는데, 게바라는 볼리비아 공산당 지도자인 마리오 몽헤와 연합해 중남미 대륙에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정부의 건설을 계획하고 있었다. 1966년 11월부터 이듬해인 1967년 10월까지 11개월간 게바라가 볼리비아의 산악지대에서 게릴라 거점을 확보하면서 투쟁해나가는 과정은 그의 [볼리비아 일기]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그의 일기는 어느 전기 비평가의 표현대로 "로빈슨 크루소 표류기와 같은 생존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산악에 거주하는 농민을 지원세력으로 확보하려는 시도, 비트의 건설, 정부군과의 전투와 심리전, 대원들 간의 갈등 등을 게바라는 비교적 건조한 문체로 기술하고 있는데, 그런 중에도 이 혁명과업이 실패로 귀결될 것 같은 예감을 느끼게 하는 구절들이 여러 곳에서 눈에 띈다. "몽헤(볼리비아 공산당 지도자)는 내 예상대로 처음에는 핑계를 대더니 끝내 우리를 배반했다. 이미 볼리비아 공산당에서는 우리를 반대하는 선전을 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다."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처음 계획했던 게릴라군과 공산당의 연대는 끊어졌고, 게바라의 게릴라 전략을 비판했던 소련의 비협조, 그로 인한 쿠바의 지원 약화, 대원들의 사기 저하등으로 그의 게릴라전 준비는 고전의 연속이었다.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게바라의 처음 예상을 뒤엎고 상황을 악화시킨 중요한 요인은 농민의 게릴라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였다. 쿠바 혁명이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동력 중있었다.
상처 입은 치유자저 자 : 헨리 나우엔헨리 나우엔은 이 책에서 우리가 지닌 상처를 네 개의 큰 분류로 나누어 문제를 진단하고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대안은 없는지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책의 대략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1. 단절된 세상에서의 사역(세상의 상태) - 핵시대의 고뇌하는 세계1) 핵 인간이 당면한 어려움현대인들의 특징을 핵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핵 인간은 물질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삶의 방향과 의미 및 목적을 찾고 있다. 그들이 알게된 고통스러운 사실은 인간이 이 지상의 생태계와 복구 가능성마저 파괴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것이 일부 인간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그리고 한시적 시간이 아닌 역사 자체를 파괴할 가능성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 심리학자 로버트 제이 리프톤은 핵 인간이 처한 어려움을 역사적 단절, 단편화된 이데올로기, 새로운 불멸의 추구 등으로 특징 지었다.역사적 단절이란 문화적 전통 가운데 존재하는 필수적이고 유익했던 모습들과 관련된 상징들에 대해 인간이 느껴온 연대감의 단절이다. 핵 인간은 창조적 삶을 사는데 필수적인 연속 의식이 결여되어 있고 순간만을 중요시한다. 따라서 인간 자신을 의미 있는 역사적 존재로 보는 전제 조건에 근거하고 있는 기독교는 핵 인간에게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우리 시대의 가장 현저한 현상 중 하나는 상반된 사상, 전통, 종교적 확신, 생활 양식 등을 사람들이 너무 많이 접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은 하나의 사상이나 개념, 사교 체계를 가지고 상반된 이미지들을 묶어 삶에 대한 일관된 전망을 도출해 낼 수 있으리라는 자기 기만적인 생각은 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하나의 관념이 되어버린 기독교가 자신의 삶과 적절한 연관성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생각한다.창조성의 원천은 불멸 의식이다. 인간이 자신의 죽음 이후를 바라볼 수 없고 자신의 삶이 존재하는 시공을 넘어서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 때 인간은 창조의 욕구를 상실하게 되고 자신이 인간이란 것에 대한 기쁨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불멸하기 위한 전통적 방법은 핵 인간에게는 효력이 없고 핵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을 바라보도록 도와 줄 수는 없다.2) 핵 인간이 해방되는 길이러한 방법으로 핵 인간에게 대두되고 있는 것으로 신비주의적 방법과 혁명적 방법이 있다.신비주의적 방법은 내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내적 삶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의 실체', '존재의 근원', '침묵의 순간'과의 관계를 찾으려고 한다. 그 곳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에 혁명적 방법을 찾는 사람들은 기존의 질서를 철저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뒤엎고, 과감히 방향을 전환하는 것만이 모든 것의 종말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예수님 안에서는 신비주의적 방법과 혁명적 방법이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적 초월 방식이 양면이라는 확신과 이것이 거듭남이라는 개인적 혁명과 마찬가지라는 확신 또한 강해진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싶어하는 이기적인 욕구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세상의 끔찍한 상황을 두려움 없이 직시해야 한다. 그들은 똑같은 비전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급진적 자기 비판과 급진적 행동주의를 야기하는 것으로 단절된 연계성을 회복시킬 수 있고, 단편적인 이데올로기에 통일성을 부여할 수 있으며, 죽을 수밖에 없는 자아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다.2. 뿌리 없는 세대를 위한 사역(시대의 상태) - 고뇌하는 젊은이1) 내일의 세대의 특징내일의 크리스천 리더십은 내일의 세대가 공통적으로 갖는 적어도 세 가지 특징 내향성, 아버지의 상실, 강박성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이 세대는 내향적 세대로 개인적인 것에 절대 우위를 부여하는 세대이며, 자아 속으로 움츠러드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대이다. 이제 어떤 권위나 제도, 외적이며 확고한 어떤 실체도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불안과 고독을 덜어주거나 그들을 자유롭게 해 줄 힘이 없다. 따라서 그들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길은 내면으로 향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향성은 고차원적인 위선이 될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영역의 실체를 발견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또한 이 세대는 아버지를 거부하는 세대, 권위를 주장하고 제도의 적법성을 거부하는 세대이다. 이 세대의 젊은이들은 사람의 가치는 아버지들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며, 신앙은 전통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태도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이 세대의 새로운 위험성은 그 자신의 포로가 되는 것으로 죄의식의 문화에서 수치심의 문화로의 전환이라는 큰 결과를 초래한다. 이들은 아버지의 명령, 기대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으나 또래들의 관심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이러한 세대는 자신의 속한 사회에 대해 마음속 깊은 곳에 불만을 품고 있다. 그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는 있지만 효과적인 대안이 없다. 이런 틀에서 젊은이들이 엉뚱하며 방향성이 없는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헌신할 수 있는 비전과 이상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다.2) 내일의 지도자미래의 기독교 사역에 대한 우리의 조망하는 의미를 알아보면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지도자, 긍휼의 사람으로서의 지도자, 묵상하는 비평가로서의 지도자의 세 가지 역할들이 우리의 관심 대상이다.내향적인 사람에게는 새롭고 철저하게 행해야 할 임무가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사실들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제는 내면에 계신 하나님께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인데 이러한 내적인 삶을 실험해 보는 것은 위험하다. 이러한 위험성, 내적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때의 엄청난 혼란을 해소하는데 핵심이 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자신의 경험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정확한 원천이 된다.또한 아버지를 상실한 세대가 찾는 새로운 종류의 권위는 긍휼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긍휼은 권위가 있으며 그 권위는 인간이 그 형제를 용서할 수 있게 해 준다. 긍휼의 사람은 사람들을 억압하는 수치심의 사슬로부터 벗어나 다시 그들 자신의 죄책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기독교 지도자의 과제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최선을 끄집어내 인간을 보다 인간다운 공동체로 이끄는 것이다. 따라서 긍휼이 없는 전문성은 하나님의 왕국을 진실 되지 못한 것으로 만들뿐이다.또한 기독교 지도자는 묵상하는 비평가이어야 하는데 여기서의 묵상은 매우 활동시키고 각성시키는 형태의 묵상이다. 이러한 묵상가가 강박적 세대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즉각적인 욕구와 즉각적인 만족의 악 순환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조작된 세계의 환상적 가면을 벗겨 버리고 실제 상황이 어떤지 보여 줄 수 있는 용기가 있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소망과 약속의 표징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3. 소망 없는 사람들을 위한 사역(개인의 상태) - 죽음도 삶도 똑같이 공포에 차있 는 희망없이 살아가는 인간크리스천 리더십의 기본적인 원칙으로 개인적 관심, 가치와 의미에 대한 확고한 믿음, 적극적 소망이 그것이다.고통받고 있는 인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태도는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사역자들은 그들의 곤경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 크리스천의 리더십의 핵심은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는 것이다. 한 사람을 위해 다른 많은 사람을 잊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의 표시이다. 우리는 용기를 내어 가장 고유하고 개인적인 인생의 체험을 하게 될 때 공동의 핵심을 접할 수 있다.두 번째는 절망과 죽음에 직면해서도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모든 경험에서 새로운 약속을 발견하고 모든 만남에서 깨달음을 얻으며, 모든 일에 새로운 메시지를 얻는다. 이러한 약속, 깨달음, 메시지는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해야 하고 눈에 보이게 만들어 져야 한다.다른 사람들을 미래로 인도하는 가장 깊은 동기는 소망이다. 기독교 지도자는 소망의 사람이며, 궁극적으로 그의 힘은 그가 받은 약속에 기인한다. 크리스천 리더십은 낙관주의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던 역사적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4. 외로운 사역자의 사역(사역자의 상태) - 고뇌하는 사역자의 상태1) 상처 입은 사역자예수님처럼 해방을 선포하는 사람은 자신의 상처뿐 아니라 남의 상처도 돌보아야 한다. 또한 자신의 상처를 치유 능력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주위에서 우리는 서구 사람들이 외로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 사용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접한다. 그러나 그 상처는 우리 존재의 표면에 깊이 새겨져 끊임없는 아름다움과 자기 이해의 원천이 된다. 기독교적 삶의 방식은 외로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보호하여 값진 선물로 소중히 간직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참을성을 잃고 외로움을 포기함으로서 단절감과 불 완전성을 극복하려고 서두르면 우리는 몹쓸 기대감을 안고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기 쉽다. 그러나 사역자가 이러한 환상을 갖는다면 외로움을 인간 이해의 원천으로 삼을 수 없고 자신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섬길 수 없다.사역자는 인간으로써 뿐만 아니라 직업으로 독특한 어려움 때문에 외로움이라는 상처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있지만 사건의 주변 부에만 맴돌며, 결정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자리에 마지못해 앉는다. 따라서 사역자는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것보다 더 주의 깊게 이 상처를 싸매야 한다. 자신의 고통을 깊이 이해할 때 사역자는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꿀 수 있으며 헤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치유의 원천으로 제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