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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희곡
    서론우리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文學)이란 것이 처음부터 문자(文字)라는 형태를 갖고 발전한 것이 아니라 거슬러 올라가 보면 'Ballad'라는 일종의 가무(歌舞)형태에서 그 기원을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을 배워왔다. 보편적으로 산문(散文)보다는 운문(韻文)이 먼저 발전했던 문학의 발전과정에서도 그런 사실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문학(中國文學)의 이해(理解)를 수강하는 가운데서도 음악과의 관련성이 깊은 시경(詩經)을 처음으로 배웠고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레 음악과 문학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또한 본래 가(歌)와 무(舞)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불가분의 관계임으로 가무(歌舞)와 문학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런 의구심을 풀기 위해서는 가무(歌舞)와 문학과의 상관관계가 잘 나타나 있는 장르를 찾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시(時)에서도 음악과 문학과의 관계성을 찾을 수 있겠지만 가무(歌舞)와의 관계로 그 범위를 조금 더 확장 시킨다면 무대에서 공연되는 공연예술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경극’(京劇)이라는 두 글자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고전적인 중국 연극의 형태로 경극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현대극(現代劇) 보다는 그 상관관계를 찾는데 훨씬 더 용이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렇게 경극에 관하여 조사하고 공부하는 가운데 중국의 희곡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경극에 이르기 까지 수 많은 형태의 극(劇)이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음을 알 수 있었다. 송원남희(宋元南戱))나 조극(潮劇)), 명전기), 원잡극(元雜劇)등 대략적인 중국의 희곡의 기원과 변천과정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는 가운데서 특별히 원잡극에 대하여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에 필자는 지금부터 원잡극의 형성(形成)과 그것의 특성에 관하여 원잡극의 대표적(代表的)작품(作品)인 두아원(竇娥寃)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또 그 작품을 읽고 난 후의 감상과 간략하게 나마 작품의 작가인 관한경(關漢卿)에 대해서 쓰고자 한다.본론Ⅰ. 중국 樂者, 象成者也. 總干而山立, 武王之事也. 發揚蹈?, 太公之志也. 武亂皆坐, 周召之治也. 且夫武, 始於北出, 再成而滅商, 三成而南, 四成而南國是彊, 五成而分陝, 周公左, 召公右, 六成復綴而崇. 天子夾振之, 而駟伐, 盛威於中國也. 分夾而進, 事蚤濟也. 久立於綴, 以待諸侯之至也.이것은 주공이 섭정할 때 무왕이 주를 정벌한 것을 대무의 악장으로 만들어 종묘에 연주한 것이다. 무왕이 덕을 닦은 다음 은나라의 폭군인 주(主)를 쳐부수고 천하를 태평하게 한 여섯 단계를 6성(成)으로 나누어 연출한 것이라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면 는 상당히 규모가 큰 대형 가무였고, 상징적인 동작을 통하여 복잡한 줄거리를 연출하여 서사성이 풍부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무를 물론 희곡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따를 것 같았지만 ‘가무로써 이야기를 연출'하였고, 무무에 비하면 '사람이 사람의 행위를 연출'하는 단계로 발전한 것은 부인 할 수 없을것이다.살펴본 바와 같이 고대의 가무는 서사성과 희곡성이 강하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희곡이 될 수도 없고, 또 그것이 곧장 희곡으로 연결될 수도 없었다. 이것과 희곡의 형성 사이에는 많은 기간이 소요되었고, 다양한 형태의 예술 형식이 존재하여 미래 희곡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희곡의 형성과 관련하여 또 하나 언급해야 할 것은 선진 시기의 창우들의 활동일 것이다. 일본인 학자 청목정아가 무(巫)를 희곡의 방계(傍系)로 보는 한편, 창우의 골계를 희곡의 정통으로 간주한 것을 보았다. 한 예를 들자면, 춘추전국 시기에 봉건 제후국의 군주들은 오락적인 수요로 전용 광대(倡優창우)를 양성하였고 이 광대들은 골계성이 짙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가지고 군주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한 예를 들면, 楚, 장왕이 아끼던 말이 죽자 대신(大臣)의 예로써 말을 장사지내려 하였다. 많은 신하들이 간언을 하여 극구 만류하였으나 왕은 신하들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왕의 휘하에 있던 광대 우맹은 왕에게 "제 생각으로는 군주(君主)의 예를 갖추어 장사지내고 지 못하였는데 스스로 낭중이라고 불렀다. 술을 좋아하여 술에 취하기만 하면 그 처를 구타하였다. 처는 원한을 품고 이웃 사람들에게 호소하였다. 사람들이 그것을 조롱하여 남자가 부인의 옷을 입고 천천히 걸어서 입장하며 노래를 부른다. 한 단락이 끝날 때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몸을 흔들거리면서 어디에서 오는가? 답요낭 무엇이 고통스러운가?'라고 소리친다. 천천히 걸으면서 천천히 노래를 하기 때문에 '답요'라 하고 그녀가 "고통스럽다"고 하기 때문에 "고(苦)"라고 한다. 그녀의 남편이 뒤따라오면서 두 사람은 서로 때리고 싸우는 동작을 하여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北齊有人, 姓蘇, ?鼻, 實不仕, 而自號爲郎中. 嗜飮?酒, 每醉輒毆其妻. 妻銜悲, 訴於隣里. 時人弄之. 丈夫着婦人衣, 徐行入場. 行歌, 每一疊, 傍人齊聲和之云, "踏搖, 和來! 踏搖娘苦, 和來!" 以其且步且歌, 故謂之 "踏搖", 以其稱寃, 故言苦. 及其夫之, 則作毆鬪之狀, 以爲笑樂답요낭은 극중 인물, 플롯, 가창, 대사, 부부가 서로 때리고 싸우는 희곡성이 풍부한 무도, 화장이 있다는 점에서 희곡의 기본 요소를 갖추었다. 단순한 각저의 표현이 아닌 각저, 무도, 골계가 종합된 연출로서 이나 에 비하면 확실히 발전된 양상이다. 그러나 이 또한 송원남희나 원잡극과 같은 완전한 희곡의 형식과는 아직 거리가 상당히 있는 것 같았다.이상에서 살펴본 , , 은 모두 남북조시기에 발생하여 수, 당대까지 계승되어 당대 사람들의 기록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을 미루어 보면 당시의 인기 있는 가무희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중국 희곡 형성 과정을 엿보게 해준다.한대의 각저희는 각저를 무도화한 무도로써 고사를 표현했다. 수와 당의 가무희는 한 단계 더 발전하여 가와 무를 결합시켜 가창(歌唱)과 가무(歌舞)로써 고사를 표현하였다. 이것은 희곡의 발전선상에서 본다면 미래에 태어날 희곡에 중요한 표현 수단을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엄격히 말하면 가무로써 이야기를 표현했다기보다는 간단한 이야기의 가무 표현들을 계승하여 이루어져, 각 개별 예술의 특성들이 잔존하고 있다. 원잡극의 구성 요소인 가창, 반주, 무도화된 동작, 골계적 연기, 잡기 무술 등은 그전에 그것들이 분화된 상태에서 연출되었던 강창, 잡기, 가무희, 골계희의 형식이 계승, 수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제요소를 종합하여 원잡극을 조망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극양식적인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1. 배경이 없는 무대와 그 상징성서구의 전통 희곡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실생활을 무대 위에 옮겨간다"는 형식상 재현주의에 입각하고 있다. 원잡극의 무대는 이와는 달리 텅 빈 공간으로 어떠한 배경도 설치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인(詩人)이나 소설가(小說家)가 글을 적는 백지와 같아서 배역의 연기를 통하여 어떠한 배경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즉, 하나의 텅 빈 공간에 배역이 등장하여 동작, 대화, 노래 등의 연기를 하면 관객은 배역의 연기를 통하여 극중 인물이 처한 장소, 사건의 진행을 형상화시켜 간다. 따라서 원잡극의 무대는 배역이 등장해 연기 활동을 하면 극중 인물의 활동 장소가 되고 퇴장하면 또 빈 공간이 된다.채노파 : (등장하여 시를 읊는다.)……제가 채노파입니다. 초주 사람으로 세 명의 식구가 있었는데 불행히도 남편이 세상을 떠나 지금은 여덟 살 난 아들과 둘이 살고 있지요. 집안에는 꽤 많은 재산이 있어 작년에 이 지방에 사는 두서생에게 은전 20냥을 빌려주었는데 지금은 40냥이나 됩니다.…… .두천장 : (충말로 분하고 정단으로 분한 단운을 데리고 등장해 시를 읊는다.)……소생이 두천장인데 장안경조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유학을 익혀 많은 책을 읽었지만 시운이 닿지 않아 공명을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아내가 일찍 죽고 이 딸아이 하나를 남겨 놓았습니다. 아명이 단운이라고 하는데 세 살 때 어미를 여의고 지금은 일곱 살입니다. 소생은 너무나 가난하여 이 초주 지방에 이사와 살고 있습니다.…….(蔡老婆上, 詩云)…… 老身蔡婆婆是也, 楚州人氏, 嫡親三용하는 것은 원잡극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인데, 때때로 백과 창의 내용이 중복될 수도 있다.소첩은 성이 두이고 아명이 단운으로 조상은 초주 사람입니다. 저는 세 살 적에 모친을 잃고, 일곱 살 때 부친과 이별하였습니다. 저의 부친께서는 저를 채노파 집에 며느리로 주어 이름을 두아로 고쳤습니다. 열 일곱 살이 되어 남편과 혼례를 올렸지만, 불행히도 남편은 죽고, 삼 년의 세월이 흘러 저는 지금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이 지방 남문밖에 새노의가 살고 있는데 그는 저의 시어머니께 빚을 져 본전과 이자가 이십 량이 됩니다. 수 차례 돈을 받으러 갔지만 갚지 않아 오늘 시어머니가 또 빚 받으러 갔습니다. 두아야, 너의 운명은 참으로 고달프구나. (노래한다.)마음 속 가득한 시름, 여러 해 겪어 왔는데, 하늘은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이 내 속사정 아신다면 하늘도 어찌 몸 여위지 않으리.滿腹閒愁, 數年禁受, 天知否. 天若是知我情由, ?不待和天瘦. ( 第一折 [點絳脣])인용문은 두아가 자신의 신세를 장황하게 서술한 후, 자신의 감정을 운문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 또한 설화, 제궁조(諸宮調) 등의 강창 형식을 그대로 보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3. 동작의 상징성과 그 양식화원잡극에서 과(科)는 배역의 동작을 말한다. 극본에서는 "주행과(걷는 동작)", "주사과(사례하는 동작)", "하마과(말에서 내리는 동작)", "주추문과(문을 여는 동작)" 등과 같이 일상생활의 동작에서부터, "주탄과(탄식하는 동작)", "주비과(슬퍼하는 동작)와 같은 감정 표출 동작, "안규과(기러기 우는 소리)"와 같은 음향효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동작은 오늘날 경극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상징적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말을 타는 동작은 채찍을 휘두르며 허리와 다리로 말을 타는 듯한 무용적인 동작을 하는 것으로 상징하는 것과 같다.채노파 : (등장하여) 내가 며느리에게 성밖에 사는 새노의에게 빚 받으러 간다고 했다. (가는 동작) 모퉁이를 돌고 집을 돌아서 이미 그의
    인문/어학| 2008.02.06| 19페이지| 2,000원| 조회(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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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소설 발표(쿵이지)
    孔乙己 (쿵이지)1. 창작 시기▶ 이 작품은 《狂人日記》가 발표되고 나서 거의 1년 만인 1919년 4월, 『신청년』 제 6권 4호에 발표되었다.노신이 이 작품을 집필했을 때에는 5·4 운동이 일어난 해로 孔乙己와 같은 인물이 몰락해야 하는 사회에 대한 질타라고 할 수 있다.2. 줄거리▶ 이 소설은 관리 지망생의 몰락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과거를 공부하던 선비가 중도에 몰락하여 나중에는 자신의 생계조차 영위할 수 없는 폐인이 되어 시골마을의 웃음거리가 되는 광경을 함형주점의 사환인 소년의 눈을 통하여 조명하고 있다.그 소년이 바라보는 孔乙己는 장삼을 입고 서서 술을 마시는, 행동과 옷차림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의 놀림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다. 그는 붓글씨로 남의 책을 베껴주며 삶을 이어나가지만, 이후에는 그마저 하지 못하고 도둑질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 그는 그의 도둑질을 “책을 훔치는 것은 도둑질이 아니라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청렴을 주장하고, 문어체의 말을 사용하여 주변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 그러나 그는 체면을 중시하는 습성이 남아 있어, 도둑질보다는 외상값 이름이 올려져 있는 것을 참지 못해 가게에서 그의 품행은 아주 훌륭하게, 외상을 한번도 미루지 않았다. 이후 그는 정거인 영감 집에서 도둑질을 하다 다리가 부러져 오지 못하다가 어느 날 거적대기를 끌고 거지꼴로 나타나 남은 돈으로 술 먹은 후 사라져 생사를 알 수 없게 된다.3. 작품 감상▶ 만청(晩淸)시기 과거제도에 찌들린 건달 지식인을 통해 양반의 위선과 식인적(食人的)인 봉건?현학적인 외형을 풍자한 작품이다. 봉건제도 밑에서 육체적?정신적으로 심한 박해를 받은 하층 지식인들이 봉건제도의 희생물이 되어가면서도 끝내 각성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일생을 마감하는 내용을 다룬 작품이다. 노신은 이 작품에서 그들의 불행과 비참한 운명에 깊은 동정을 보내면서도 그들에게 그 어떤 희망도 걸고 있지 않다.4. 원문 보기▶幸而寫得一筆好字,便替人家??書,換一碗飯吃。可惜他又有一樣壞脾氣,便是好吃懶做。坐不到幾天,便連人和書籍紙張筆硯,一齊失?。如是幾次,叫他?書的人也沒有了。孔乙己沒有法,便免不了偶然做些偸竊的事。但他在我們店里,品行?比別人都好,就是從不拖欠좶雖然間或沒有現錢,暫時記在粉板上,但不出一月,定然還淸,從粉板上拭去了孔乙己的名字。다행히도 글씨를 잘 쓰는 덕으로 남의 책을 베껴주고 이럭저럭 끼니를 이어갔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술을 좋아하고 일하기 싫어하는 고약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남의 책을 베껴주는 일을 시작한지 며칠 안되어 책이며, 종이며, 붓이며, 벼루며 가지고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곤 하였다. 이런 일이 몇 번 거듭 되다 보니 책을 베껴달라는 사람도 없게 되었다. 孔乙己는 하는 수없이 이따금 도적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술집에 와서는 누구보다도 행실이 좋았고 외상을 꾸는 법이 없었다. 어쩌다가 돈이 떨어져서 얼마동안 칠판에 이름이 적혀 있을때도 있었지만 한달도 못가서 죄다 갚아버리기 때문에 철판에서 孔乙己라는 이름이 지워지곤 하였다.故鄕 (고향)1. 창작 배경▶ 이 글은 1921년 5월, 『신청년』 제 9권 1호에 발표되었다.노신은 1919년 말에 노신이 고향에 돌아가서 시골집을 정리하고 온 가족이 북경으로 이사한 일이 있는데 당시 고향에 돌아갔을 때의 일을 허구적 요소를 가미하여, 작품화한 것으로 여겨진다.2. 줄거리▶ 주인공 ‘나’는 이사하기위해 돌아온 고향의 모습에서 쓸쓸함을 느끼나, 閏土(윤토)라는 사람을 매개체로 아름다운 고향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만, 그러나 현재의 閏土는 주인공인 ‘나’에게 “나으리”라고 부르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고단함에 쌓인 소작농의 모습으로 변해있다. 주인공과 閏土와의 사이는 소원해졌지만 자신의 조카 굉아와 閏土의 아들 수생이가 예전의 자신과 閏土 같아서 그들은 자신을 닮지 않기를 바라면서 희망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희망이란 땅 위의 길과 같아서 걷는 사람이 많으면 길이 되는 법이다!”3. 작품 감상▶ 노신의 작품 중에서 고향은 그 구성이나 묘사법이 뛰어난 걸작 중의 한 편으로 꼽힌다. 이 작품에는 고향의 현재와 과거, 주인공 나와 어렸을 때의 친구 閏土와의 현재와 과거, 우리들 현시대의 좌절과 희망, 우리의 다음 세대인 조카와 閏土의 아들에게 거는 미래의 희망 등을 다룬 작품이라 하겠다. 지금은 좌절의 시대에 살고 있으나 미래에 대하여 어렴풋이나마 희망을 거는 내용으로 노신의 작품 중에서는 드문 묘사라고 하겠다.4. 원문 보기▶ “老爺” 我似乎打了一個寒?: 我就知道,我們之間已經隔了一層可悲的厚障壁了。我也說不出話。“나으리”나는 온몸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나는 우리들 사이에 벌써 서글픈 두터운 장벽이 가로막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我?里,聽船底潺潺的水聲,知道我在走我的路。我想:我竟與閏土隔絶到這地步了,但我們的後輩還是一氣,宏兒不是正在想念水生?。我希望他們不再像我,又大家隔膜起來뀉然而我又不願意他們因爲要一氣,都如我的辛苦展轉而生活,也不願意他們都如閏土的辛苦麻木而生活,也不願意都如別人的辛苦恣?而生活。他們應該有新的生活, 爲我們所未經生活過的。자리에 누워 배전을 철썩 철썩 때리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는 지금 내 갈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 나와 閏土 사이는 마침내 이렇게 멀어지고 말았구나. 그러나 우리의 후대들은 여전히 한마음으로 이어져 있다. 굉아는 지금 수생이를 그리워하고 있지 않는가. 나는 그들이 나를 닮지 말기를 바라며 사람들 사이에 장벽이 생긴지 말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하여 나는 그들이 한마음으로 잇닿아 있기 위하여 나처럼 고난에 시달리면서 방랑 생활을 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또 그들이 閏土처럼 고난에 시달리면서 아무 희망도 없는 생활을 하는 걸 원치 않으며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처럼 고난에 시달리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마땅히 우리들이 아직 겪어보지 못한 그러한 생활이 있어야 한다.祝福 (복을 비는 제사)1. 창작 배경▶ 1924년 3월, [동방잡지(東方雜誌)] 제21권 6호에 발표되었다. 농촌의 가난하고 무지한 과부가 봉건 사회의 윤리도덕의 희생물이 되어 결국은 죽음이라는 비극에 이르는 내용이다.이 작품은 소설적인 기교가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며 농촌을 소재로 한 소설적인 작품 중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제1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에 비하여 매우 냉정하고 침착하게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으며 과부의 처참한 생을 잔인할 만큼 냉철하게 추적하고 있다.“祝福”이라는 제목은 소설의 내용에 나오다시피 우리가 보통 말하는 '축복'이 아니다. 중국 농촌, 특히 소흥(紹興)지방에서 섣달 그믐에 부엌신을 하늘로 보내고, 새해에는 더 많은 복(福)을 내려주십사 하고 비는 제례(祭禮)의 일종이다.2. 줄거리▶ 이 소설 속에 처음은 음력 설을 새느라 분주한 로진을 배경으로 시작하고 거기에 지식인 ‘나’가 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상린수와 마주쳐서 상린수의 이상한 질문에 애매한 답을 해주고 또 그 일이 있은 후에 상린수의 죽음을 통해 과거를 회상한다. 상린수가 어떻게 넷째 아저씨 댁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지, 시어머니에게 팔려가 남편과 아이를 얻고 또 어떻게 잃었는지를 알 수 있고, 또 그 일 이후에 일 잘하던 상린수가 어떻게 변하였는지 잘 알 수가 있다. 그 후에 사람들에게서 버림 받은 상린수는 결국 지식인 ‘나’를 만나고 죽음을 맞게 된다.3. 작품 감상▶ 지식인인 ‘나’가 해야 할 일은 상린수 같은 사람을 봉건 예교나 질서에서 구하고 그사람들을 이끌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피해 버렸다. 노신은 ‘나’를 통해 지식인의 민중에 대한 무책임함을 말하고 있다.4. 원문 보기▶“說不淸”是一句極有用的話。不更事的勇敢的少年,往往敢于給人解決疑問,選定醫生,萬一結果不佳,大抵反成了怨府,然而一用這說不淸來作結束,便事事逍遙自在了。我在這時,更感到這一句話的必要 ,則使和討飯的女人說話,也是萬不可省的。“딱히 모릅니다.”이 한마디는 아주 쓸모 있는 말이다. 세상경난을 별로 겼어 보지 못한 용감한 젊은이는 남의 의문을 풀어주려고도 하고 앓는 사람에게 의사를 청해다 주기로 하지만 만일 그 결과가 나쁘게 되면 대개는 도리어 원망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딱히 모른다는 이 한마디로 만사를 대한다면 언제나 무탈하고 마음이 편안하다. 나는 이때에 이 말의 필요성을 더울 절실히 느꼈다. 비록 밥을 빌어먹는 여자에게 한 것 이였지만 이 말은 없어서는 안될 말이라고 생각하였다.
    인문/어학| 2008.02.06| 5페이지| 1,000원| 조회(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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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신 발표
    서 론20세기 초 중국은 온통 비극적인 사건으로 얼룩진 참담한 상황이었다. 바야흐로 봉건세력이 붕괴되고 새로운 세력이 산생되었는데, 아직 낡은 것이 철저히 청산되지 않고 새 것이 제자리를 잡지 못한 과도기적 시기였다.위대한 문학가이자 혁명가인 노신은 이 비극적인 시기에 태어났으며, 소년 시절부터 몰락하는 가정의 비극을 직접 목도하였다. 넉넉하게 살다가 가난에 쪼들리게 되면서부터 세상사람들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된 노신은 농민들과 접촉하는 가운데서 그들의 삶과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상류사회의 타락상과 하층사회의 불행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다. 노신은 암울한 중국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비극을 목도하면서 일개인의 차원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통을 일반 대중의 고통으로, 조국과 민족의 불행으로 긴밀히 연결시켰다. 냉혹한 사회의 비극은 노신으로 하여금 민족과 국가에 대한 강력한 애증을 불러 일으켰으며, 모순과 질곡에 빠진 암울한 중국을 개혁해야 한다는 혁명정신을 촉발시켰다.더욱이 비타협적인 반제·반봉건적인 5.4정신은 노신의 강력한 정신과 예술적 열정을 불러 일으켰다. 마침내 노신은 끓어 오르는 열정으로 1911년 신해혁명 전후 시기와 5.4 시기의 비극적인 역사를 《납함》과 《방황》에 수록된 총 25편 중 불과 몇 편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비극 작품인 것은 그러므로 자연스런 현상이라 하겠다.본 론1. 魯 迅 (1881~1936)(1) 노신 소개노신의 원명은 周樹人(주수인)으로, 노신은 1918년 [新靑年] 4권 5호에 “狂人日記”를 발표하며 사용한 필명이다. 그는 1881년 9월 25일 浙江省(절강성) 紹興(소흥)의 東昌坊口(동창방구)에 있는 周氏(주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노신이 태어난 때에 노신의 집안은 약간의 점포를 소유한 전형적인 封建小地主(봉건소지주)의 가정이었다.노신은 소년시절인 6세때 집에서 초보적인 독서를 하다가 12세때 三味書屋(삼미서옥)에 들어갔으나, 13세 되던 해에 조부가 하옥되고 부친은 병으로 드러눕는 집안의 우환이 생겼다. 이후 노신은 거의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周揚(저우양)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空轉)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그의 저작은 일찍이 《魯迅全集(루쉰전집)》(20권, 1938), 《루쉰 30년집》(10권, 1941)으로 출판되었고, 중국에서도 상세한 주석을 가한 또 다른 《루쉰전집》(10권, 1956~1958)이 간행되었다.(2) 노신의 시대적 상황중국의 전통적 사회 질서는 ?洲族(만주족)이 입관하여 통치권을 확립한 후에도 계속 명맥이 유지되어 오다가, 이족통치에 대한 중국민중의 계속적인 항거와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제 분야에 걸친 침입이 개시된 후부터 그 근저가 흔들리기 시작 하였다. 결국, 외세에 의한 중국 전통경제의 파괴와 이에 대한 반동에서 발단 된 아편전쟁과 중국 자체내의 興漢運動(흥한운동)인 太平天?의 난을 계기로 국력이 크게 소모되었다.이때부터 대두하기 시작한 개혁에 관한 논의는 개량과 혁명이라는 두 형태로 나뉘어 지면서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洋?運動(양무운동), 戊戌變法(무술변법), 辛亥革命(신해혁명) 이다. 그러나 양무운동은 이를 주도한 계층이 정치적, 경제적 내지는 생활습관상 외세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천진조약 이후의 군벌, 매변, 관료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까닭에, 비록 주관상으로는 중국 자본주의의 발전을 꾀하였으나 中?戰爭(중불전쟁)과 中日戰爭(중일전쟁)을 거치는 동안 안전히 몰락하고 말았다. 무술변법(1898)은 이를 부도한 계층들이 百日?新期?中(백일위신기간중)에 공업 및 농업 발전과 새로운 군사조직의 수립등을 촉진코 저 하였으며 객관적으로는 중국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하고자 했으나, 이들의 시도를 봉건의 통치 질서의 전면의인 부정이라고 인식한 완고파의 무력행사에 의해 저지되고 말았衆運動(대중운동)의 가능성과 함께 중국에 流入(유입)된 서구의 思潮中(사조중)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했던 마르크스주의가 觀心(관심)을 끌게 되어 啓蒙思想(계몽사상)은 社會主義的(사회주의적)인 것과 부르주아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두 방향으로 分化(분화)되었다.1919년 5월 4일의 愛國示威運動(애국시위운동)은 위에서 지적한 경제적, 사회적, 사상적 변화의 결산이며, 中國近代史(중국근대사)의 한 分界點(분계점) 이었다. 5.4運動 2년 후인 1921년에 上海(상해)에서는 中國共産黨(중국공산당)이 성립 되었고 1923년에는 國共(국공)의 합작이 이루어 졌다. 이들은 공통의 노력으로 廣東(광동)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國民革命軍(국민혁명군)을 창설하여 北部(북부)의 軍閥勢力(군벌세력)을 타도하려고 했으나 國民黨(국민당) 左派(좌파)와 共産黨系(공산당계)를 제외한 국민당 右派(우파)의 독자적인 북벌이 1926년 7월에 시작되어 1927년 武漢(무한)에 국민혁명군 정부를 수립하였으나, 이해 4월 上海(상해)에서 발생한 정변은 결정적으로 국공간의 分裂(분열)을 초래하였다. 이에 국민혁명군 정부는 帝國主義(제국주의)의 지원을 받던 북부의 군벌과 연합하여 공산당 탄압에 나서게 되며 국민당은 파벌 간의 불열로 격렬한 정권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1928년 南京(남경)에 北方軍閥(북방군벌)의 표면적 지지를 받으며 국민정부가 수립되었으나 1929년에서 ‘33년에 이르는 세계적인 經濟危機(경제위기)는 중국에도 영향을 미쳐, 국민경제는 날로 惡化(악화) 되었고 군벌간의 전쟁은 더욱 그 규모가 확대 되었다.세계경제의 위기는 帝國主義(제국주의) 국가들의 군사적 모험을 조장하여 1931년 일본은 瀋陽(심양)을 점령하면서 중국에 대한 무력 침략을 개시했고, 다음해인 1932sys 2월에는 上海를 침공 하였다. 일본의 중국에 대한 침략이 本格化(본격화) 되자, 중국 내에는 지식인, 공인, 농민들을 중심으로, 대규모의 抗日(항일) 示威(시위)와 일인 경영 기업체에 근무하는 공인들의 파업이 계속 일어중심은 아니였다. 노신이 쉴새없이 반복해서 표현한 것은 각성하지 못한 군중과 하층 지식인이다. 이는 노신이 시종 광범한 인민군중의 사상계몽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표명하는 동시에, 중국의 반봉건 사상혁명의 주요한 대상을 구현한 것이다. 납함과 방황에서 각성하지 못한 인민군중의 형상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특징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지위에서의 인간과 사상과 관념에서의 인간이 불합리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2) 납함 속의 작품 (15)외침은 1923년 8월, 베이징에서 발간된 노신의 첫번째 창작집으로 1918년부터 22년까지 쓴 단편 15편을 모은 것이다. 중국 문학자 사이에서 누구는 “납함”으로 누구는 “눌함”으로 표기하였다. 원제 “?喊”은 전장에서 적진에 돌격할 때 지르는 소리처럼 기세를 돋우고자 환성을 올린다는 의미이다.1) 自序 (자서) : 원저나 번역본에는 ‘自序(자서)’가 맨 먼저 실리나, 집필연대는 가장 늦어 1922년 12월에 쓴 것이다. 우리식으로는 ‘머리말’과 같은 것으로 사실은 저서전적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노신은 그 글에서 ‘적막’이라는 말로 자신의 문학을 표현했다.1918년 이전의 노신은 오랫동안 ‘희망’을 갖지 못했다. 앞에서 보았듯이 24세에 희망을 가지고 의학공부를 시작했다가 포기하고 27세에 문예운동에 몸 담았으나 잡지 발간에 실패하여, 마침내 그 자신이 말하는 ‘적막감’에 사로잡혀 30대 후반에는 몇 년간 옛날 비문만을 베끼고 살았을 정도엿다.2) 狂人日記 (광인일기) : 중국 최초의 구어체로 쓴 현대 창작소설 작품으로, 노신이 38세 되던 1918년에 노신이라는 필명으로 에 발표 되었고 [납함]의 맨 앞에 실렸다. 1918년은 노신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전환기이다. 광인일기는 그 인물묘사에 문제가 많아 예술적 형상화가 부족하고 문제의식의 제시나 사상적 주장이 앞섰다는 비판을 받는다3) 孔乙己 (쿵이지) : 광인일기 1년 후에 발표된 쿵이지는 노신 자신도 자기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 작품도 신청년머리털 이야기) : 이 소설에서 머리털은 중화민국 건국일인 쌍십절과 중첩도어 묘사된다. 1911년 중화민국이 탄생한 날은 당연히 기념되어야 허너, 소설이 씌어진 1920년에는 이미 군벌이 다스리는 나라로 변해 있었다. 1911년 자체가 기념할 만한 날이 아니었다. 달력에 쌍십절은 기념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무표시가 없다는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8) 風波(풍파) : 이 소설에서도 변발이 소재로 등장하는데, 논설조인 머리털 이야기와는 달리 변발을 둘러싼 시골 생활의 풍파를 묘사한 소설로서 뛰어난 문학성을 보여준다. 세상이 바뀌어 위안스카이가 황제가 되어 변발을 강요하나 할머니의아들인 칠근이는 그것이 없어한숨을 쉰다.9) 故鄕(고향) : 노신의 나이 40세인 1921년에 쓴 이 자전적인 이 작품은 20년 만에 고향과 이별하기 위해 고향을 잠시 찾은 사람의 이야기인데, 노신 자신이 1919년 북경으로 이사하기 위해 20년 만에 고향을 찾았던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10) 阿Q正傳 (아큐정전) : 노신의 대표작인 이 소설은 9개장으로 이루어진 중편이다. 여기서 주인공 이름을 아큐라고 한 것은 중국어로 귀신을 뜻하는 鬼를 ‘퀘이’라고 읽기 때문이다. 제 1장 ‘서’에서는 글의 이름에 대해 설명한다. 공자가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한담이 아닌 정전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어 소설의 내용은 아큐가 혁명을 처음에는 모반으로 생각했다가 봉건관료와 토지제도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혁명당원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심리과정을 보여준다.아큐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맞지만 의기양양하다. 그는 현실에서는 언제나 실패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승리했다고 믿는다. 바로 정신 승리법이라는 자기만을 통해서 이는 노예근성의 대표적 증상이다 .당시의 중국이 외세에 시달리면서도 외세를 면시하는 것도 그런 증상이다.11) 端午節(단오절) : 주인공은 관료이면서 베이징 대학교의 교수를 겸하는 자이므로 노신 지신이었다. 주인공은 과거에 사회의 불합리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나, 군벌
    인문/어학| 2008.02.06| 17페이지| 2,000원| 조회(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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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자 평가A+최고예요
    “동양의 프로메테우스 순자”순자는 중국의 유학자로 사람의 타고난 본성은 악이라고 생각하는 윤리사상인 성악설을 주장한 사람이다.“凡性者, 天之就也” - 범성자, 천지취야“사람의 본성은 자연히 형성된 것이다.”“人之性惡, 其善者爲也” - 인지성악, 기선자위야“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다, 선한 것은 후천적이며 인위적으로 형성된 것이다.”순자의 성악설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감성적인 욕망에 주목하고, 그것을 방임해두면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악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수양은 사람에게 잠재해 있는 것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가르침이나 예의에 의하여 후천적으로 쌓아 올려야 한다고 하였다.이런 점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디선가 순자를 동양의 프로메테우스라고 한 것을 본적이 있는데 그 비유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 밑에서 불을 다루는 거인이었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가 널리 알려진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한 사건에서 시작되는데, 간략히 이야기를 하자면 프로메테우스가 어느 날 제우스를 속여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주고 불을 갖게된 인간들은 그때부터 신의 영역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인간사회의 모습을 보고 화가 난 제우스는 판도라라는 아름다운 여자를 만들어서 인간 세상에 내려 보내고, 신들은 판도라에게 예쁜 상자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판도라가 호기심에 상자를 열자 상자 속에 질병과 재앙의 영들이 나와 온 세상에 퍼지게 되고 인간을 고통 받게 했는데, 그렇지만 상자 구석에는 한 조각의 희망이 남아 있었다.또 제우스는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에게도 벌을 내렸는데 그 벌은 독수리가 간을 쪼아 먹게 하는 것이었다.하루가 지나면 간이 다시 생겨나서 매일 고통이 끊임이 없었다.이렇게 프로메테우스는 하늘로부터 버림 받았지만 인류의 문화를 일으킨 사람으로 평가된다.프로메테우스가 훔쳐다 준 불은 인류의 문화를 상징하고, 순자는 여러 면에서 프로메테우스와 유사하다. 순자 이전의 사상가들은 대부분 모든 것의 근원을 하늘에서 찾았다. 만물을 낳아 준 것도 하늘이고, 주재하는 것도 하늘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은 만물 생성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인간 도덕의 근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순자는 인간과 하늘의 관계를 끊어 버렸다. 하늘이란 비가 오고, 바람 부는 자연현상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을 낳아 준 존재도 아니며 더구나 인간의 도덕적 행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이런 생각에 부합되는 글이 있다.“天有常道矣, 地有常數矣” - 천유상도의, 지유상수의“하늘에는 그의 고정된 규칙이 있으며, 땅에도 그의 고정된 법칙이 있다.”하늘과 땅을 분리하고, 자연과 사람은 구별이 있다는 뜻으로 순자가 한 말이다.이렇게 되고나니 그 이전까지 하늘에 기대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하던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대신에 인간은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홀로서기의 어려움이 생겼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순자의 생각은 인간의 지위와 실천을 극대화 시킨 인문정신의 완성이었다.하늘과의 관계를 끊어버린 순자의 눈에 보인 인간의 참모습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존재였을 뿐이다. 이것이 순자의 성악설이다. 순자의 성악설은 판도라의 상자인 셈이다. 그러나 순자의 판도라 상자 속에는 악한 본성을 이겨나갈 숭고한 인간의 의지가 남아 있었다.“, , .”“본성은 우리들의 인위에 따라 형성된 것이 아니지만 그를 개조할 수 있다.”순자의 철학이 인문정신의 극치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본 그 한가지 이유만으로 순자는 마치 프로메테우스처럼 뒷날 많은 학자들에 의해 두고 두고 비판 받는 고통을 당해야만 했다.
    인문/어학| 2008.02.06| 2페이지| 무료| 조회(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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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어 교욱론
    1. 제1언어 제2언어와 모국어 외국어의 교차 대응관계*제일어언, 제이어언, 모국어, 외국어우리는 대부분 한국인으로 제일 먼저 학습하고 습득한 언어는 한국어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언어이므로 모국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중문과 학생으로서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민족의 언어가 아닌 외국어이다. 이것을 우리가 학습의 선후 순서에 따라 구분하면 한국어는 제 1언어가 되고 중국어는 제 2언어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 1언어와 모국어, 제 2언어와 외국어의 관계를 간단한 대응 관계로만 볼 수 있을까? 한국에서 사는 화교의 예를 들어보자. 그들은 한국에서 출생하여 한국어를 먼저 배우게 된다. 그들에게 한국어는 제 1언어이지만 모국어는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중국어를 배우게 된다면 이는 그들의 제 2언어이자 모국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발생한 서로 다른 개념으로 봐야할 것이다.? 모국어는 친속관계의 각도에서 나온 것으로 일반적으로 자기 민족의 언어이고 외국어와 타민족 언어와 대응된다.? 제 1언와 제 2언어는 학습의 선후 순서의 각도에서 본 것으로 서로 대응한다.? 외국어는 국가의 다름이란 면에서 발생한 것으로 외국의 언어를 가리키는 것이고, 자기 나라의 언어와 상대된다.안학습순서구분안학습순서、친속관계화국별구분제일어언제이어언안학습순서、국별화친속관계구분모어외어외어모어안친속관계화국별구분이러한 개념으로 보면 제 1언어와 모국어, 제 2언어와 외국어는 상호 교차적인 대응관계를 형성함을 알 수 있다.위의 설명에 따라 모국어와 제 1언어, 제 2언어, 그리고 외국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해보자.? 모국어는 자기 민족의 언어이다.대다수 사람들이 출생 후에 가장 먼저 학습하고 습득하는 언어이다.? 제 1언어는 출생한 후에 가장 먼저 학습하고 습득하는 언어이다.대다수 사람들의 제 1언어는 모국어이다.? 제 2언어는 제 1언어 이후에 학습하고 사용하는 기타 언어이다.제 1언어를 습득한 이후에 학습하고 사용하는 자기 국가 기타 민족인 목적- 교사 혹은 번역가가 되기 위해서, 목표어를 연구하는 활동에 종사하기 위해서.? 직업의 수단적 목적- 직접적으로 제2언어를 사용하여 외교, 외무, 일에 종사하기 위해서,혹은 그 밖의 관련 있는 일에 종사하기 위해서.? 기타목적- 목표어 국가에 단기여행, 임시로 머무는 것, 사교활동을 위해서, 호기심 등.→ 제2언어를 학습하는 목적은 꼭 한가지로 제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고정되어서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양성 및 가변성의 특징)→ 학생의 학습에 대해서 검사와 독촉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며, 특히 학생들이 학습목적을 명확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한 그들의 학습 흥미를 높이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하고, 그들이 정확한 학습방법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학습 중 어려움을 만났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3) 이해화접수능력불동〈第一?言〉유아들은 지적능력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고, 이해능력 또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동시에 몇 가지 언어기능(?,?,?,?)을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제1언어를 습득할 때에는 기나긴 과정을 거쳐야 하고, 언어기능은 차례로 습득하며, 이 몇 항의 언어 기능을 습득하는 순서는 변화할 수 없고, 모든 두 가지 언어기능을 습득하는 중간에는 일정한 시간적 간격이 필요하다.〈第二?言〉성인들이 제2언어를 배우는 경우, 그들은 이미 한 언어를 마스터했고, 이미 지적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였기 때문에, 비교적 강한 이해력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 따라서 제2언어를 배울 때에는 일정한 시간 내에 동시에 몇 가지 언어기능을 배우고 습득할 수 있으며, 추상적인 개념을 대표하는 단어도 시작 단계에서 습득할 수 있다.(4) 어언습득과정불동1)〈제일어언〉유아들이 제1언어를 학습하는 것은 말과 개념 및 개념과 개념의 관계를 함께 결합하여 학습하는 것이다. 언어를 학습하고 습득하는 과정도 개념을 세우고, 사상과 사유능력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모방으로부터 창조에 이르는 과정이다. 유아들의 서 기초구조에 속한다. 기초구조는 제2언어교수의 교수이론과 교수법 및 그와 관련된 기초이론을 포함하며, 또 언어이론, 언어학습이론과 일반적인 교육이론 등을 포함한다.(3) 주체결구주체구조는 총체적계획, 교재집필(혹은 선택), 교실교수와 시험의 4개의 부재로 구성되어있다. 이 4개의 부재는 제2언어교수의 모든 교실실천활동을 포함하며, 우리들은 통상 이것을 제2언어교수의 4대환절 이라고 일컫는다. 다른 교수와 마찬가지로 제2언어교수의 표현형식은 교수실천활동이므로 4대환절을 상술하는 것이 바로 제2언어교수의 주요 구성이다.우리들은 언어교수와 구조를 연구함에 있어서 먼저 이 주체구조를 확실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의 중심을 바로잡지 못하게 된다.(4) 상층결구상층구조는 교수원칙을 가리킨다. 교육원칙을 규정하는 것은 총체적계획의 임무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교육원칙은 또한 총체적계획의 내용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총체적계획의 기타 내용과 같은 평면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총체적계획의 외부에 있는 교수법의 구성부분이며, 교수법의 기타 구성부분과 공통되는 지도는 총체적계획이 포괄하는 모든 교수실천활동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총체적계획의 내부에서 또 교수유형, 교수 대상의 특징, 교수목적, 교수내용의 제약을 받는다. 이로 보아 교수원칙은 하나의 특수한 부품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교수실천활동의 객관적인 규율을 반영하며 교수실천활동에 대하여 높은 곳에서 굽어보는 지도작용을 발휘한다. 제2언어교수의 구조표에서 이것은 가장 상층에 위치하므로 이를 상층구조라고 부른다.-위의 설명으로 알 수 있듯이 제2언어교수의 4대부문 사이와 각 부문의 각각의 부재간에 복잡하게 뒤섞인 관계가 존재한다. 각각의 부재는 모두 교수효과의 변인을 결정한다. 제2언어교수를 연구하려면 먼저 각 부품과 부재간의 상호관계를 연구해야하고, 각각의 부품과 부재가 전체구조 중에서의 일으키는 작용을 분석해야하며 어떠한 방면과 어느 정도로 제2언어교수의 효율과 성공률에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해야한다 선택과 운용등 교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한다. 하지만 이때 학생의 연령 특징과 문화정도, 제2언어와 목표어의 관계, 학습목적과 실천 수요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즉 학생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원칙; 교사가 주도적 역할을 하되 학생이 중심이 된다.)(2) 교수내용과 교수 방법의 관계주요 문제는 “교수내용에 근거하여 교수 방법을 결정하느냐, 아니면 교수 방법에 따라 교수내용을 결정하느냐”이다. 언어 교수는 적어도 5가지 내용(언어 요소, 화용 규칙, 문화배경 지식, 언어기능과 言?교제기능)을 포함해야 한다. 우리가 교수법을 연구할 때는 가장먼저 어떻게 이 다섯 가지 방면의 내용을 통일 시켜야하는 가와 각 내용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가를 연구해야 한다. (원칙; 교수내용이 교수방법을 결정한다.)(3) 교수 내용중의 언어와 문화의 관계학생으로 하여금 배운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어요소의 교수와 언어기능,언어교제 기능의 훈련이 결합되어야 한고 또한 관련된 문화배경의 지식의 교수도 잘 결합되어야 한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문화 배경 지식은 바로 언어와 언어 교제 가운데 존재하기 때문에. 교수방법상에서 문화배경지식의 교수는 당연히 언어요소의 요소 및 언어기능과 언어교제기능 훈련에 속하고, 언어요소의 교수 및 언어기능과 언어교제 기능의 훈련은 굳게 결합되어 진다.(원칙; 언어 교수와 문화 교수의 결합)(4)형식구조 교수와 의미구조 교수의 관계사람들이 언어를 학습할 때는 반드시 형식구조와 의미구조의 관계를 건립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교수를 할 때에는 반드시 형식구조의 교수와 의미구조의 교수를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원칙; 형식구조 교수와 의미구조 교수의 통일)(5)언어요소의 교수와 언어기능과 언어교제 기능 훈련간의 관계한사람이 언어를 장악할 때에는 최종적으로는 言?기능과 언어교제기능의 상에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어요소의 교수는 언어교재나 교실교수 중에 어떠한 것이라도 모두 言?기능과 언어교제기능의 훈련을 중심에 단어를 말하면, 곧장 상응하는 모국어 단어로 번역된다. 이렇게 전체의 외국어 교수과정 중에서 학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2개의 언어(모국어와 배우는 외국어)와 접촉한다.프랑스 언어학자인 동시에 교수법가인 ??(Louis Marchand)은《一科?方法?授?代外??》의 한 글에서 "번역교수법은 바로 본국언어로 외국언어를 번역해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번역법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의하며 아래의 공식을 사용하여 설명하였다.I 대표 본국어 중의 "생각"M 대표 본국어 중의 "글자"m 대표 외국어 중의 "글자"번역 교수법은 외국어 중의 글자(m)을 본국어 중의 글자(M) 옆에서 가서 놓고, 곧바로 외국어 중의 "생각"으로 해버린다.17,18세기의 교수법가는 이론과 실제 상에서부터 번역법에 대해여 연구를 진행하여 번역법의 이론을 명백히 논술하였다. 그 당시의 기계적인 언어학은 번역법의 형성과 발전에 매우 큰 연향을 끼쳤다. 기계적인 언어학자는 모든 언어가 한 종류의 언어에서 기원한다고 여겼다. 그들은 또한 언어와 사유는 동일한 것이라 생각했으며, 인류는 공통의 사유법칙이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각종 언어의 어법도 공통적이며, 각종 언어의 어휘는 표현하는 개념, 뜻과 단어의 조합도 똑같다. 각종 언어 어휘의 차이는 단지 단어의 발음과 쓰는 방식만 다를 뿐이다.번역법은 위에서 서술한 이론에 근거하여 단어 하나하나의 직역을 외국어 교수법의 기초원칙과 설명, 언어교재를 견고히 하는 기초 수단으로 삼는다. 단어 하나하나를 직역할 때 학생은 언어재료에 대하여 정확한 이해가 모자라게 된다. 따라서 이 종류의 번역은 다만 2종류 언어의 기계적인 대비와 대조를 할 수 있을 뿐이다.번역법은 총체적인 이름이며, 그것은 또 다음에서 열거한 3가지 종류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나뉘다. ; 어법 번역법, 어휘 번역법과 번역 비교법번역법은 형성부터 발전과정을 겪었다. 고전의 어법 번역법부터 근대의 번역법 까지 발전에 따라 당연히 다른 시기의 번역법에 대한 다른 평가를 진행하여야만 한다.어법 번역법과것이다.
    인문/어학| 2008.02.06| 17페이지| 1,500원| 조회(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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