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6
검색어 입력폼
  • [행정] 북한 행정체계의 변천과정
    Ⅰ. 머리말북한의 현재 행정체계를 살펴보면 최고인민회의가 입법부의 역할을, 내각이 행정부의 역할을, 그리고 중앙검찰소와 중앙재판소가 사법부의 역할을 담당하는 3권 분립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양새는 겉치장에 불과할 뿐 사실상 그 권한의 행사는 김정일 1인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 김일성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헌법이 적용되고 이와 함께 행정체계가 변화되었다. 마찬가지로 후계자인 김정일의 시대에도 이러한 모습이 보여지는데 그 과정에서 특기할 만한 모습이 보여진다. 앞으로 북한의 행정체계를 중앙행정체계와 지방행정체계로 구분하여 그 변천과정과 특이사항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중앙행정체계1. 북한권력기구의 작동원리북한은 헌법 제5조에 “모든 국가기관들은 민주주의 중앙집권제) 「민주주의 중앙집권제」란, ① 최고국가권력기관 및 지방권력기관은 인민의 선거에 의해 구성되고, ② 모든 국가기관은 이러한 국가권력기관에 의해 구성되며 그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또한 그 사업을 보고하며, ③ 국가권력은 궁극적으로 최고권력기관에 집중되고 상급기관의 결정은 하급기관을 구속하며, ④ 각 기관에서 소수는 다수에 복종하고 지방은 중앙에 복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원칙에 의하여 조직되며 운영된다”고 규정하고 있듯이 '절대적 중앙집권제'임을 알 수 있다. 「민주주의 중앙집권제」는 그 이름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와 「중앙집권주의」라는 두 개념의 결합체라고 하겠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국가기관들을 조직하고 운영할 때 주권자인 인민대중의 의사에 따라 조직하고 운영한다는 것을, 중앙집권제는 상급기관이 하급기관들을 직접 통제하고 상급기관에 의해 결정된 정책이 하급기관에 대해 구속력을 갖는 체제를 의미한다. 요컨대 공산국가에서 행정기관의 주요 조직원리이자 운영원리인 「민주주의 중앙집권제」 원칙은 민주주의와 중앙집권주의를 대등하게 결합시킨 것처럼 보이지만 그 핵심은 중앙의 통일적이며 계획적인 지도라 하겠다.2. 정부를 수상제에서 주석제로 변경하였다. 그 결과 주석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게 되었다. 1992년 개정 헌법에서는 주석이 최고인민회의로부터 소환될 수 있고, 군 통수권이 국방위원장에게 이관되는 등 주석권한이 다소 약화되었으나 과거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후 북한은 1998년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 회의에서 헌법을 수정하였다. 주석제를 폐지하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제를 신설하였으며, 국방위원장을 '실질적인 국가수반'으로 격상시켰다. 이러한 헌법의 수정과 함께 행정체계의 변화를 표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표1} 헌법 변화에 따른 행정체계의 변천과정 및 내용) nk조선 시사백과에 나온 표에 별도의 내용을 추가 :http://nk.chosun.com/glossary/glossary.html?ACT=word&encres_id=570&enc_id=157&INDEX=16&mode=char개정/수정연도내용제헌헌법48. 9. 8▶내각제 채택(책임자는 수상)1차수정54. 4.23▶지방행정단위 중 면(面) 폐지, 읍(邑)과 노동자구 신설2차수정54.10.30▶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임기 연장(3년→5년)▶지방주권기관인 '인민위원회'를 '인민회의'·'인민위원회'로 분리3차수정55. 3.11▶'리 인민위원회' → '리 인민회의'로 수정▶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구성정수를 부위원장 2명, 위원 17명에서 부위원장 약간명, 위원들로 수정▶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권한 중 '외국과의 조약비준'을 '외국과의 조약비준 및 폐기'로 수정▶내각 '결정, 지시 공포'→'결정, 명령 공포'로 수정4차수정56.11. 7▶선거권 및 피선거권 연령을 20세에서 18세로 낮춤5차수정62.10.18▶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출기준 수정(인구 5만 명당 1인→인구 3만 명당 1인)▶내각 채택 결정의 '수상 서명·공포' 조항을 '수상 부수상, 관계상 서명·공포'로 수정사회주의헌법제정72.12.27▶사회주의적 소유제도의 확립▶주체사상의 헌법 규범화▶국가주석제 도입 및 권한 강화▶내각을 폐지하고 집행기관, 곧 내각의 역할을 대신해 왔다.북한의 내각은 8차례에 걸쳐 변천해 왔다. 1998년 9월 중앙인민위원회와 정무원이 폐지되고 내각이 부활했는데 정무원에 비해 기능이 강화되었으며, 정무원 당시 41개에 달했던 각 부처가 31개로 통폐합되었다. 부총리도 9명에서 2명으로 축소되었으며 각 부처의 상들도 70~80%가 경제전문관료들로 교체되었다. 과거 정무원의 상급기관이었던 중앙인민위원회 폐지에 따라 이 위원회 직속기구였던 국가검열위원회를 국가검열성으로 개편해 내각의 한 부서로 편입시켰다. 정무원 산하의 11개 위원회 가운데 국가계획위원회 1개만을 남기고 모두 폐지 또는 성(省)으로 개편, 실무 능력을 강화했다. 대표적인 부서 통폐합의 사례로는 광업부와 석탄공업부, 전력공업부 등을 전기석탄공업성으로, 상업부와 양정부를 관장했던 인민봉사위원회를 없애고 대신 수매양정성을 만들었으며 철도부와 해운부를 관장하던 교통위원회 대신 육해운성을 뒀다. 도시경영부와 국토환경보호부를 합쳐 도시경영, 국토환경보호성으로 만들고 대외경제위원회를 없애고 대신 무역성을 신설했다. 그러나 국토환경보호성은 얼마뒤 다시 도시경영성과 국토환경보호성으로 분리됐다.이밖에도 기계공업부와 금속공업부를 합쳐 금속기계공업부를 신설했고 건설부와 건재공업부를 통합해 건설건재공업성을 만들었으며 국가건설위원회는 국가건설감독성으로 이름을 바꿨다. 또한 1999년 11월 3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을 통해 체육성을 내각 체육지도위원회(현 국가체육지도위원회)로 고쳤으며, 11월 25일에는 전자공업성을 신설했다.[그림2] 현재 북한의 내각 구성도) http://nk.chosun.com/images/glossary/138/naegak.gif 인용·편집4) 중앙인민위원회의 변천과 폐지중앙인민위원회는 1972년 12월 사회주의헌법에 의해서 신설되었다가, 1998년 9월 헌법의 개정에 의해 폐지된 '국가주권의 최고지도기관'이다. 중앙인민위원회는 주석, 부주석, 중앙인민위원회 서기장, 위원들로 구성되었다. 주석 및 부재까지 약 60차례의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으며, 최근에는 과거보다 행정구역 개편이 빈번해졌다. 북한에서는 행정구역을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령토의 지역적 구획"이라고 정의하며, 행정구역 설정의 원칙과 기준을 "국가적 지도를 아래에 접근(지시사항을 하부기관에 전달)시키며 중앙의 통일적 지도를 강화하고 지방의 창발성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것"에 두고 있다.[그림3] 행정구역의 변화) http://www.kumsung.co.kr/text/high_school/korgeo/korpic/korpic60.htm을 인용·편집1) 도(직할시) 급북한의 행정구역 개편은 46년 9월 평양을 특별시 겸 직할시로 승격시키고 경기도에 있던 연천군 일부와 함남의 원산시, 문천군, 안변군을 분리하여 강원도에 흡수 통합한 것이 최초이다. 이후 48년부터 북한 전역의 행정구역을 재조정하여 지역적 특성 반영 및 국토의 효율적 관리라는 명분하에 면적이 넓은 행정구역을 2개 이상으로 세분하였다. 이에 따라 도 단위의 경우, 자강도·량강도를 신설하고 황해도는 남도와 북도로 나누었다. 또한 직할시의 경우, 평양(46.9)을 필두로 개성(55), 남포(79.12), 라선(2000.8) 등이 직할시가 되었으며, 함흥시와 청진시는 직할시로 되었다가 일반시로 환원되었다.2) 군(시·구역) 급북한은 52년 12월 한국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한 복구사업 및 변화된 환경의 적응을 목적으로 행정체계와 행정구역을 획기적으로 개편하였다. 즉, 도(직할시), 시·군, 읍·면, 리(동) 등 기존의 4단계 행정구역체계에서 읍·면을 폐지하여 3단계 행정구역체계로 개편하였다. 이 당시의 개편은 행정구역체계의 중간단계인 읍·면을 폐지하는 반면, 군의 기능을 확대하여 종전의 94개군을 168개로 증설하였다. 이후 수 차례에 걸쳐 군의 통·폐합, 신설, 명칭 변경이 있었으며, 특기할 만한 사항은 70년대 후반부터 김일성 부자와 가계우상화와 관련된 지명 변경을 들 수 있다.한편, 북한에서 군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행정구역은 군 외군, 상원군 평양시에 편입1965. 1. 15▶평남 평성구 신설, 량강도의 부전군을 함남에 편입1972. 11. 18▶평남 순안군을 평양시에 편입▶평남 평성구를 평성시로 승격▶함흥시, 덕산, 퇴조구역을 군으로 변경▶강원도 문천군을 원산시에 편입1974. 1. 21▶함남 일부군 폐지-인흥, 신창, 흥상, 신상, 수동, 덕산군 폐지1974. 5. 31▶평남 은산군 폐지▶평북 청성군 폐지▶함남 광천군 폐지▶함남 유선군 폐지1976. 6. 10▶원산시 일부를 분리, 문천군 신설1977. 4▶함남 영흥군을 금야군으로 개칭1977. 9▶함북 경흥군을 은덕군으로 개칭1977. 11▶청진시에 무산군과 경성군을 편입, 직할시로 승격(1985. 8 환원)1978. 3. 29▶평남 강서군을 폐지하고 강서군과 용강군 일부를 통합해 대안시 신설1978. 8. 7▶량강도 5호지구와 삼지연 일부, 함북 연사군 일부를 통합하여 대홍단군 신설1980. 3. 1▶남포시에 대안시와 룡강군을 편입, 직할시로 승격1981. 8. 17▶량강도 신파군을 김정숙군으로 개칭1981. 10. 22▶함북 웅기군을 선봉군으로, 명간군을 화성군으로 개칭1981. 11▶함남 오로군을 영광군으로 개칭1982. 9. 30▶함남 단천군을 시로 승격▶함남 퇴조군을 락원군으로 개칭1983. 4. 30▶평남 강동군을 평양시에 편입▶남포직할시에 대안시와 남포구역을 폐지하고 5개 구역 신설1983. 11. 6▶평남 순천군을 시로 승격1985. 8. 2▶청진 직할시를 폐지, 청진시, 경성군, 무산군으로 분리, 각각 함북도에 편입1987. 4▶청진시 부령구역을 분리, 부령군으로 개편1987. 8▶평남 안주, 덕천군을 시로 승격1988. 7▶평북에 신도군 신설1988. 8. 25▶자강도 후창군을 김형직군으로 개칭1989. 12▶신의주시에 3개 구역(강안, 남, 광명) 신설1990. 8▶량강도 풍산군을 김형권군으로 개칭1990. 9▶평남 개천군을 개천시로 승격, 황남 평천군을 봉천군으로 개칭1990. 12▶함남 수동구 신설. 함흥시 개칭
    사회과학| 2003.12.11| 15페이지| 2,500원| 조회(939)
    미리보기
  • Utopia에서 묘사한 이상국가는 평가B괜찮아요
    Utopia에서 묘사한 이상국가는?1. 들어가면서유토피아의 의미는 처음에 ‘아무데에도 없는 나라?에서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국가’로 쓰이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책의 2권에서 묘사하고 있는 유토피아 섬의 제도나 생활이 우리가 흔히 바라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라는 데에서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 이상국가인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쉽게 알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본인의 입장을 간략히 전개해 보고자 한다.2. 대략적인 요약과 서평내용은 서문과 1, 2권으로 나뉘어져 구성되어 있다. 이를 살펴보면, 서문은 주로 저자의 소개로서 그의 생활상이나 업적 그리고 평가, 주변인물들과의 관계 등을 보여주고 있다. 1권은 ‘피터 자일스’와의 대화를 통해 그 당시 영국의 사회생활을 비판하고 있다. 사유재산으로 인해 빈부격차가 발생하는데 주목하여 소수의 권력층에게 부가 집중됨으로써 가난한 자의 소유권이 박탈되고 이로 인한 실업과 궁핍이 범죄행위로 나타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범죄행위에 대한 사형집행에 반대 입장을 보이면서 타국의 처벌을 예로 들어 노동으로 대가를 치러도 얼마든지 사회질서를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권력층으로서 특권을 누렸음에도 자신 또한 교회에 대한 왕의 지배를 인정하는 선서를 거부함으로써 사형을 통해 생을 마감했다. 빈곤층이 도둑질하는 것과는 다른 행위이지만 잘못된 제도를 비판하고 이에 굴복하지 않는 저자의 굳은 심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상을 꿈꾸고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유토피아(아무데도 없는 나라)라는 용어를 선택하게 된지도 모른다. 2권은 앞서 1권에서의 비판과 의견을 반영하여 ’라파엘’이라는 선원을 통해 가상의 섬 유토피아를 묘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공무원을 선출함에 있어서 추천과 투표로 이루어지고, 소수(노약자, 학자 등)를 제외하고는 남녀 모두가 반드시 일을 해야 하며, 각 시의 인구는 규정된 정원을 초과할 수 없이 균등하게 배정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법에 의해 관리?통제된다. 이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주로 공동체와 통일성을 강조하고, 구체적인 행동양식까지 묘사하고 있다.3. 이상에 대한 비판적 견해이 책은 사회를 비판하는, 풍자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당시 현실과는 정반대의 상황을 설정해 놓고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상향에 대한 갈망만이 아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모티브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벌써부터 오늘날 이데올로기의 한 축인 사회주의의 출현을 암시하고 있었다는 느낌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회질서에 대해 오늘날 이상적이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사고로써 사회질서를 실험하고 거기서 나온 규칙을 현실에 적용시켰을 때 괴리가 있다는 것은 개개인의 가치관과 욕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개개인의 사고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생활은 모두 이러한 차이를 배제하고 동일한 인격체로 보여지고 있는 듯하다. 즉, 유토피아에서는 정당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모두가 건전하고 순응적인 태도를 보이고 탐욕 또한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오늘날 비슷한 원리로서 사회주의가 건설되었음에도 결국 실패한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고 만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그 이상향이라는 것이 개성있는 것이 개성없는 것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모두가 동등한 조건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인간의 탐욕 또한 끝이 없고 이로 인해 부패와 범죄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것이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동등한 조건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탐욕 없이 모두가 만족하면서 살아간다면 사회에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유토피아는 현실에 적용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과학| 2003.03.28| 2페이지| 1,000원| 조회(375)
    미리보기
  • [북한] 북한지도자에 관한 연구목록
    ▣ [북한 지도자 목록] 작성에 있어서 개요와 출처혁명적 수령관에 입각한 북한 사회의 최고의 지도자인 수령은 '인민대중의 최고의 뇌수이며 통일 단결의 중심이며 자주성을 위한 혁명 투쟁의 최고 령도자'로 규정된다. 더 자세히 종합해보면 수령의 개념은 '위대한 사상리론가', '탁월한 령도자',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 '위대한 혁명가', '최고 뇌수' 등으로 요약 할 수 있다. 이와같이 북한에서 수령은 일반적인 정치 지도자나 당의 최고지도자라는 의미를 뛰어 넘는 전지전능한 카리스마의 의미를 갖는다. 북한에서 반세기 동안이나 유일권력을 행사 해 왔던 김일성은 지금 죽어서도 '유훈'이라는 망령을 통해서 북한 사회를 다스리고 있다.그는 죽었지만 '가짜 김일성', '김일성 우상화' 등 그 만큼 다양하게 인식되고 평가받아온 인물도 드물 것이다. 1980년대 말부터 김일성과 관련한 일제 관헌자료가 학자들 사이에 공유되고 중국에서는 개방과 개혁에 따르는 '실사구시'가 대두되면서 서대숙 등 국내외의 학자들에 의해 기존 연구와는 다른 새로운 모색이 있었다.1997년 10월에는 김정일이 당총비서로 추대됨으로써 실제적인 지도자임을 표방한 것과 같은데 그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 사회에서는 다른 나라와 확연히 다르게 지도자(김일성, 김정일)의 역할과 성격, 지휘 등 수령으로서의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 지도자에 대한 연구가 없이 북한 사회를 알아본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자료에서는 북한 지도자를 연구하는데 있어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 「북한 지도자」에 관한 목록을 작성하였다.사실 북한 지도자와 체제를 구분한다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북한 사회가 존재하는 것에 대한 김일성과 김정일의 권력과 역할, 영향력 등, 말 그대로 '지도자'를 중심으로 조사하였다. 그래서 '북한 사회의 전망'이나 '체계', '사상' 등은 다루지 않을려고 했고 김정일 시대인 만큼 김정일의 자료에 대해 더 비중을 두었다. 또한 일반적인 자료가 아닌 잘 알려지지 않은 자료를 중심으로 찾으려고 했고 근래에 출판된 책과 논문을 다루려고 하였다. 자료 조사는 북한자료센타와 국립중앙도서관, 동국대중앙도서관, 한국교육개발원, 각각의 서점에서 수집하였다.북 김한체 일제의 성- 김일성서집과 저작집, 전집·김일성선집, 1∼4,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53·김일성선집, 1∼6,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60∼1964·김일성저작선집, 1∼7,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67∼1978·김일성저작선집, 1∼44,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76∼1996·김일성전집, 1∼27,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92∼1999년말 현재·김일성, 세기와 더불어, 1∼6,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2∼1995·김일성, 세기와 더불어, 7∼7,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96∼1998- 원전·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 당력사연구소, 인민의 지도자,1·2,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1965·백능기,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e동지의 당, 근로자, 1997년 제 3호·〔사천만의 아버지(2)〕, 조선로동당 출판사, 평양, 1970·〔수령님에 대한 충성심은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의 최고 표현〕, 평양, 1975·〔수령님에 따사로운 보살핌속에서; 제일 동포 생활수기(2)〕, 조국통일사, 평양, 1973· 박영철,〔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사회정치적 생명체〕, 조선노동당, 1990·〔언제나 수령님과 함께; 항일 혁명 투쟁시기〕, 로동자 신문사, 평양, 1975·〔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령도사〕, 조선노동당, 평양, 1985·〔은혜로운 사랑속에〕, 삼학사,· 조국통일사,〔위대한 수령을 우러러; 민족의 태양 김일성 동지에 대한 남조선 인민들의 다함없는 흠모와 충성〕, 동경: 구월서방, 1973· 박길용·김국후, 김일성 외교비사, 서울: 중앙일보사, 1994-국내외 서적·와다하루키. 이종석 역, 김일성과 만주항쟁, 서울: 창작과비평사, 1992.·서대숙.서주역 역,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 서울: 청계연구소,1989··이종석, '북한 지도자 연구:김일성과 김정일 3부', 「현대 북한의 이해」, 역사비평사, 1997·중앙일보 특별 취재반, 「한반도의 절반 상속인 김정일」, 서울: 중앙일보사,1994,·도흥렬·허동찬·이기봉외,[김일성 정권], 서울: 남북문제,1992·이호청,〔김일성 정권의 확립 과정에 관한 연구(1945∼1961)〕, 경남, 1994·김인숙,〔김일성 주석과 민족〕,서울: 동비사, 1992·정현수, 김용환 공저 "11장 김일성 체제", [북한정치경제론] ,신영사·허동찬 ,〔김일성 평전〕, 서울: 북한 연구사, 1987·최완규,〔북한은 어디로; 전환기 '북한적' 정치 현상의 재인식〕, 경남대, 1996·김남식, [북한의 권력 구조], 사회과학연구 제12집,1986·코르트코프, 가브릴저, 이건주역, [스탈린과 김일성],집문당,1987·양성철, [박정희와 김일성], 한울, 1992권 력승 계과 정·김홍태,〔김정일 권력 승계에 관한 연구〕, 연세대학원, 1993·최성한,〔북한의 권력승계와 군부역할에 관한 연구〕, 고려 정책과학 대학원, 1994·정용길, "북한의 권력 승계와 체제 상관성", [안보 연구]제21호, 동국대안보 연구소,1992.·유석렬, "김정일의 대두와 권력 승계", [북한 정책론], 법문사,1989.·이명철, 차두현, "북한의 권력승계과 정치변동:김정일의국방위원장 취임을 중심으로[국방논 집], 한국국방연구원,1993년 겨울 제24호·문내우,〔김정일의 권력승계과정과 전망〕, 원광대학교, 1996·염희정,〔김정일의 권력 승계 과정과 대외 정책 방향에 관한 연구〕, 경희대, 1996·김명수, [김정일 권력 승계와 정책변화 전망], "통일문제연구 1997 하반기", 평화문제연구소·〔김일성 부자 세습체제 구축 관련 동향〕, 국토통일원 조사연구소, 1984·〔김일성 부자 세습체제 정책방향〕, 국토통일원 조사연구소, 1984·〔김일성 후계 체제와 김정일〕, 국토통일원 조사연구소,·통일문제 학생발표토론,〔후계체제 형성과정과 통일전망〕,동국대 안보연구소, 1995·〔김일성 후계자 문제 종합분석〕, 국토통일원, 1976·김유민, [후계자론], 동경: 구월서방, 1986·김재천,〔후계자 문제의 이론과 실천〕, 1989·이동훈외, [북한학], 박영사, 1996·이강석, [최근 북한], 팔복원, 1994·최성, "김정일 후계체제의 형성 과정에 관한 연구", [북한 연구], 대륙 연구소,1994.겨울김정일의권력 기반·이관세 ,〔김정일 후계체제에 관한 연구〕,고려대, 1990·최진욱,〔김정일의 당권장악 과정 연구〕, 민족통일, 1996·정규번외,〔김정일의 정치의 등장과 정책 전망〕,민족통일 , 1994·임은,〔김일성 王朝 必史〕, 한국양서, 1982·박형아 ,〔김정일의 권력 기반의 특성에 관한 연구〕, 연세, 1996·통일원 정보분석실,〔김정일의 권력기반과 체제 유지 능력 평가〕,민족통일원, 1995·김현준,〔김정일 정권의 권력 엘리트 형성〕, 민족 통일, 1995·최시중,〔북한의 권력 구조 분석; 김정일 체제의 구축과 전재를 중심으로〕, 국토통일원 교육홍보실, 1981·김남식, [북한의 권력구조], 사회과학연구12집, 1986·양성철, [북한 정치연구],박영사,1993·박찬옥,〔김정일의 정치적 리더쉽에 관한 연구〕, 동국, 1993·최진,〔김정일의 정치적 리더십에 관한 연구〕, 고려, 1995·정현준,〔김정일 리더십 연구〕, 민족통일, 1994김정일과군부·고상진,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선군정치의 근본특징], 철학연구, 1999년 제1호·정영태,〔김정일의 권력기반; 군부를 중심으로〕, 제38차 통일문제 국제학술 세미나 제 2주제 발표논문 영·남대 통일 문제 연구소, 1994
    사회과학| 2002.11.27| 5페이지| 1,000원| 조회(423)
    미리보기
  • [외교] 북한과 EU관계
    〈북한의 대외관계〉북한과 EU관계< 목 차 >Ⅰ. 문제의 제기Ⅱ. 대서유럽 정책의 환경요인Ⅲ. 對서유럽과 북한관계1. 냉전기 북한의 對서유럽 정책과 서유럽과 북한관계- 물적 인적 교류를 통한 접근, 일부 서유럽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수립2. 1970년대 이후 북한의 對서유럽정책과 서유럽과 북한관계- 경제협력 증진3. 90년대 북한의 對서유럽정책과 서유럽과 북한관계- 새로운 단계로의 발전 시도4. 최근의 북한과 EU관계- 북한의 EU국가들과의 수교와 북한의 외교속도전5. 스웨덴 페르손 총리의 북한방문Ⅳ. 북한의 對EU관계개선과 우리의 자세Ⅰ. 문제의 제기올해 5월 14일은 북한과 유럽연합(EU)이 수교를 맺은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은 '지역적 발전과 통합의 길로 나가는 유럽동맹'이라는 보도물을 통해 "EU는 미국의 일극 세계화 책동을 반대배격하고 국제관계의 다각적인 발전과 다극화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독선적인 미국의 정책에 반발하고 중동문제를 비롯한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악화되고 있는 북·미관계를 EU와의 관계개선을 통해 대외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EU와의 관계를 정당화시키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수교 이후 북한과 EU 관계가 '좋게 발전하고 있고 유익한 사업들이 진행됐다'라고 북한 스스로가 평가하고 있는데 북한과 유럽연합(EU)의 관계발전이 지난해 6월 이후 다소 둔화되기는 했으나 향후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보조적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할 것임을 확신시켜 주는 것이며, 북한의 변화에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역사적으로 북한의 대외관계에서 북한의 對유럽정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정치의 구조와 성격, 서구의 對북한정책, 그리고 서구와 남한과의 관계 등에 훨씬 더 크게 연유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북한의 對유럽정책은 북한의 내적 요인보다 외적 요인에 의하여 훨씬 더 크게 영향을 받았다. 국제정치의 기본구조와 성격이 체제가 붕괴되어 유럽에서 냉전체제가 막을 내렸다. 이러한 세계정세의 변화가 북한의 對서유럽 정책에 영향을 미쳤음은 당연하다. 대외경제면에서 볼 때 북한이 한국에 비해 외국에 훨씬 덜 의존적인 정책을 수행하여 왔음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북한이 주장하는 자력갱생이 외국과의 무역이나 원조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북한이 취한 서유럽외교에서 이미 오래전에 나타났으며, 1984년 합영법 제정이후에는 유럽국가들로부터 직접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이다. 외국경제와 관계를 맺고 있는 북한의 대외정책도 국제경제상태의 변화(경기 상태, 원유 및 원자재 가격변동, 국제금융 상태 등)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Ⅲ. 對서유럽과 북한관계1. 냉전기 북한의 對서유럽 정책과 서유럽과 북한관계- 물적 인적 교류를 통한 접근, 일부 서유럽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수립동·서냉전기에 있어서 국제관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국가들 간의 友·敵관계가 협의의 국제이익을 기반으로 하여 형성되기보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우선적인 기반으로 하여 형성된 것이다. 또한 냉전기에 있어서 북한의 對서유럽정책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요소는 1950년의 한국전쟁과 서유럽의 남한지지정책이다.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UN이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UN이 침략자를 격퇴하고 남한을 방위하기 위하여 UN 회원국들이 남한을 지원할 것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가결하고 미국이 한국전쟁에 적극적인 군사개입을 단행함에 따라 영국·프랑스·베네룩스 3국·그리스·터키 등은 한국전쟁에 직접 참전하였으며, 직접 참전하지 않은 유럽국가들도 대부분 정신적 및 물질적으로 한국을 지지하였다.냉전기의 이데올로기 중심의 국제관계, 미국을 비롯한 유럽국가들과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 간의 불신·대립관계, 북한의 외교정책과 소련 및 중국의 정책에 대한 북한의 동조지지, 남한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일방적 지지·지원정책과 북한에 대한 이들의 적대적 정책으로 인하여 냉전기에 있어서 북한의 對서유럽 정책은 극히 필요성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략 이상과 같은 배경과 동기 및 목표에서 북한의 對서유럽 외교활동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서유럽국가들 가운데 단 한 나라와도 수교하지 못하였고, 서유럽 몇몇 나라에 무역대표부 혹은 통상대표부를 설치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서유럽국가들과 북한간의 교역량은 이 시기에 극히 미미한 것이었다.2. 1970년대 이후 북한의 對서유럽정책과 서유럽과 북한관계- 경제협력 증진1970년대 들어와 북한은 서유럽국가들에 대한 접근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고, 또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1960년대 말 이후 특히 1970년대 초반에 급속히 일기 시작하였던 동서간의 화해 조류와 1970년 들어서면서 남한이 북한을 포함한 공산권에 대한 정책) 남한은 1970년 8월에 북한에 대하여 체제 경쟁을 제의하였고, 1971년 8월에는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하였고, 1972년 7월에는 7·4 남북공동성명을 실현시켰으며, 1973년 6월에는 6·23선언을 발표하고,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을 주장하였다. 1974년 1월에는 남한은 북한에 대하여 남북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할 것을 제의하였다.을 대폭 수정한 것이 북한에 대한 서유럽국가들의 정책 변화를 가능하게 하였고 촉진하게 한 주요한 요인의 하나였다.1972년 말 유럽의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 등은 외무성의 고위관리를 단장으로 하는 정부대표단을 북한에 파견하여 이들과 북한간의 외교관계수립을 협의하였고, 1973년 3월에 오슬로에서 개최되었던 스웨덴·핀란드·아이슬란드·노르웨이 등 5개국 외상회의에서 남북한과 동시 수교하기로 지지하였다.1970년 대 서유럽의 국가들과 북한은 각각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여 접근하였다. 1970년대에 서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공산당 및 좌파정당들의 세력이 현저히 증대되었던 북한으로 하여금 서유럽 국가들과의 접근을 강력히 추진하도록 만든 중요한 원인이었다.) 1973년 3월의 총선거에서 프랑스의 사회당과 공산당이 좌파연합을 형성하여 의석수를 배이상 증가시켰고, 1974년 대통령 선거때문이다.(1971.12), 스웨덴(1973.4), 핀란드) 1960년대 말 이후 동서관계에서 중립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핀란드는 공산국가는 아니지만,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어쩔수 없이 친소노선을 지속하는 국가였다.(1973.6), 덴마크(1973.7), 아이슬란드(1973.7), 노르웨이) NATO회원국들인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3국을 포함한 북구 5개국들이 1973년도에 북한과 수교한 것은 이들 5개국들의 공동결정에 따른 것이었다.(1973.8), 스위스(1974.12), 오스트리아) 스위스와 오스트리아가 북한과 수교한 것은 이들의 친유럽 국가들이면서 중립정책을 기본적 외교노선으로 하는 국가들이었기 때문이었다.(1974.12) 그리고 포르투칼) 포루투칼이 북한과 수교한 것은 1974년 4월에 군부 쿠테타 이후 포루투칼의 군부 지도자들이 공산당과 제휴하였기 때문이다.(1975.2)과 각각 수교하였다.서유럽 26개국 국가들 가운데 9개국이 북한과 수교하고 있기는 하나 북한은 다른 서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해서도 여러 교류를 발전시키면서 접근을 추진하였고, 특히 서유럽 여러 나라의 공산당 및 사회당 등 좌파정당들과의 접근을 통하여 수교를 하려하였다. 1970년대 이후 북한은 서유럽국가들과 수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고 수교나 정부간 접근이 불가능한 서유럽국가들에 대해서는 문화·스포츠·경제 교류를 추진하였고, 특히 이들 나라의 공산당 들과 유대강화를 통하여 북한과의 수교를 유도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1970년대 이후 북한은 서유럽 국가들에 대하여 정치적 접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서유럽 국가들과의 경제관계 발전 특히 자본재의 도입을 활발히 추진하였다.그러나 서유럽에 대한 북한의 정치경제적 접근 정책은 다음의 두 가지 문제로 인해 타격을 받았다. 하나는 서유럽 여러 나라들에 대한 북한의 외채상환문제, 다른 하나는 서유럽국가들을 비롯한 서구 국가에서 북한 외교관들의 조직적인 밀매행위였다.1970년대 상반기 중에 북한은 일본, 서독, 프랑스 등 서방국가들스웨덴·아이슬란드·이탈리아·스위스 등 여러 나라에서 북한외교관들이 마약·담배·시계 등의 밀매행위) 덴마크 주재 북한대사 김홍철외 3명은 마약 175kg 및 담배와 술 등의 밀매행위로 기피인물로 선고받아 1976년 10월에 추방되었다. 노르웨이 주재 북한대리대사 박기필외 4명과 핀란드 주재 북한대리대사 장대회외 3명 역시 마약·술 등의 밀매행위로 1976년 10월에 추방당하였다.를 자행하여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결국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1976년 북한대사관 전원을 추방하였으며, 핀란드와 스웨덴에서 북한 대사관은 자진 철수하였다. 이로써 1973년 이후 북한이 북유럽에 구축한 대서유럽의 거점은 파국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후 북한은 외교교섭을 통하여 1977년 말에 이들과 외교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1970년대 이후 북한이 서유럽국가들을 상대로 접근정책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북한이 서유럽국가 9개국과 수교를 하였으나 이것은 북한의 외교활동의 결과이기보다는 이들 서유럽국가들의 대한반도 정책의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북한은 1970년 이후 서유럽국가들과의 경제·기술협력을 과감히 추진해 보았으나 결과는 이러한 협력이 북한의 경제발전에 거의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엄청난 외채부담만 지게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서유럽과 북한 사이의 경제·기술협력은 거의 중단되었다. 이에 북한은 1984년 9월에 합영법을 제정·공포하고 북한은 프랑스·서독·스웨덴·오스트리아 등 서유럽국가들과 합작투자사업을 활발히 전개되었으나 성공한 것은 프랑스회사와 관광호텔을 건립하기로 한 단 1건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규, 「북한의 대서방경제접근 동향분석」, 국토통일원, 통일논총, 1985년 5권 1호 pp.172∼174 재인용.서유럽국가들이 북한과의 합작투자를 기피하는 것은 북한의 철저한 폐쇄체제 등 여러 이유에도 연유하지만 북한의 국가신용도 문제에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3. 90년대 북한의 對서유럽정책과 서유럽과 북한관계-새로운 단계로의 발전 시도90당했다.
    사회과학| 2002.11.27| 12페이지| 1,500원| 조회(597)
    미리보기
  • 북한탈북자 실태보고
    북한이탈주민관련 봉사활동 보고Ⅰ. 개괄최근 북한이탈주민들) 최근에 민주당 김성호의원에 의해 제기된 '자유이주민', 기존에 사용된 귀순자, 귀순북한동포, 탈북난민 등 북한을 탈출한 북한주민에 대한 용어에 대한 논란이 많다. 하지만 용어설정에 있어 이들의 성격과 탈출상황, 그리고 거주지역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므로, 본장에서는 보다 탈 이데올로기적이며, 객곽적·포괄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북한이탈주민'으로 일치시키겠다.(탈북자)이 중국내 국제기구나 외국공관으로 뛰어드는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선양의 일본총영사관에 진입하기 위해 시도한 한 탈북자가족의 처절한 몸부림은 20세기 이념적 대립이 초래한 피해자들의 발버둥이자 분단현실의 아픔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탈북자문제를 더욱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국내법)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은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북한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은 물론 북한을 탈출하여 제3국에 체류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도 국내법상 '대한민국 국민'에 해당된다.상으로 북한주민은 우리의 국민이기 때문에 우리정부는 국내 탈북자들뿐 아니라 해외에 있는 탈북자들에게도 대한민국 국민(재외국민)으로 대우해야할 의무를 지니게 된다. 굳이 이러한 보호와 의무를 따지지 않더라도, 분단의 희생양이라 할 수 있는 탈북자들을 도와주어야 하고, 탈북자의 수가 해마다 증가하는 있고 이들의 사회부적응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통일 후를 대비해서라도 북한이탈주민들의 남한사회 적응은 매우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특히 탈북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정서적 불안시기에 있는 사춘기에 사회일탈을 미연에 방지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민간차원의 봉사활동을 활성화 할 필요가 있다.따라서 본장에서는 국내 정착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중 청소년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자원봉사의 경험을 근간으로 그들의 인성을 파악하고 생활정도를 진단함으로서 남한사회에 올바로 적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다.Ⅱ. 민간 자원봉사활동의 의 대체로 경제적인 자립과 성취에 주력하는 것에 비해, 민간의 자원봉사활동은 탈북자들의 사회적, 심리적 적응을 도와주기 때문이다.2) 남북한 사회통합의 기반 형성남북한 사회통합의 기반을 형성한다는 거시적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남한사람들이 탈북동포에게 자원봉사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접촉하고 상호작용한다는 것은 제일 먼저 북한주민과 북한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게 하여 우리의 오해와 편견을 수정하게 만든다. 그 편견이 상대방에 대해 긍정적인 것이었든, 부정적인 것이었든,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인식을 확대시킨다는 것이다. 남한주민과 탈북동포와의 직접적인 교류는 남한주민에 의한 일방적 원조의 과정이 아니라 상대 앞에서 서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공동의 변화를 유발하게 한다. 이것이 사회통합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3) '다름'에 대한 포용력을 길러주는 훈련자원봉사활동은 남한사회가 가진 이질적인 것에 대한 배척과 배제의 습관들을 바꾸고 사회내 '다름'에 대한 포용력을 길러주는 훈련을 하게 한다. 남북간의 동질성의 회복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이미 약화된 동질성을 억지로 강조하고 부여잡기보다는 남북간의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탈주민 대상 자원봉사활동은 장차 올 남북간 사회통합의 예비 테스트이며 포용의 훈련이 된다.Ⅲ. 사례분석1) 탈북청소년들의 인성탈북청소년의 나이가 어릴수록 쉽게 그리고 순진하게 남한의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나이가 많을수록 북한에서 이미 형성된 정체성 때문에 남한청소년들과의 관계에서 예민성과 피해의식에 고통받고 있다. 그들은 남한청소년들이 남북청소년에 대해 오해나 편견을 가지고 차별화 하지않을까 우려하고 있으면서 자신들이 어떻게 비쳐질까에 대해 더욱 조심하고 신경쓰는 것 같았다.대부분은 남한생활중 가장 싫었던 것에 남한사람들이 자신들을 깔보고 무시한다고 느꼈을 때라고 말한다. 물론 남한생활 초기에는 남한사람들에 대해 신기해하고 부러워했으나 점차 남한사회 적응하는데서 나타는 문제점들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실행하고 있는 가정방문학습지도와 하나되는 나들이는 남한에 정착하고 있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매주 1일 학습지도와 두달에 1회 고궁이나, 전시회 등을 방문하여 현장학습 및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대부분은 청소년들로, 봉사활동을 통해 그들과 더욱 가깝게 지낼 수 있었고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봉사자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수퍼비젼' 프로그램을 통해 탈북청소년들의 남한생활 정착에 대한 어려움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1. 학교생활북한에서 온 청소년 대부분은 생활난으로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고 또한 탈북 후에도 상당기간의 유랑생활로 교육기회를 놓쳐 남한 입국후 학교생활의 어려움은 이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이다. 이런 이유로 같은 나이 친구들보다 3-4년 밑으로 학교에 들어가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에 따른 어려움, 같은 반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지만 종종 웃음거리가 되곤하는 이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탈북청소년들은 북한에서 온 것을 숨기며 중국에서 왔다고 말한다.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영어, 역사(사회), 국어 등이다. 대부분 북한에서는 선택 외국어중 영어대신 노어(러시아)를 배우고, 똑같이 배운 역사지만 남한에서 배우는 역사는 북한과 너무 달라 헷갈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어는 잘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이들 대부분이 제3국, 중국에서 체류한 적이 있기 때문에 중국말은 매우 잘한다. 더욱 열심히 해서 중국어과에 입학하겠다는 친구들도 있다.이렇게 학교를 다니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청소년들도 많다. 어린애들에게 놀림받으며 힘들게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검정고시를 준비해 졸업장을 받겠다는 것이다.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온 탈북청소년들 대부분은 대학가기를 원한다. 북한에서는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많다.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쳐 실제로 졸업하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2. 가정생활최근 증가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의 가족입국 사례에 따라 청소년들의 입국도 증가되는 추세이다. 대부분 탈북청소년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한참 예민한 시기에 북한에서 식량난으로 그야말로 '생존과의 투쟁'을 벌인 정신적인 충격과 제3국에서의 방랑, 너무나 다른 남한현실 속에서 방황을 하게 된다. 그 나이에 알지 않아도 될 것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셈이다. 또한 가족단위의 입국이 증가하게 되자 세대간의 갈등도 있어나고 있다. 청소년들이 학교생활, 인터넷 등을 통해 기성세대보다 비교적 새로운 사회에 잘 적응함에 따라 북한에서 겪었던 어른들의 경험과 지혜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자 가족간에 충돌이 생기고 어른들은 권위를 잃게 되어 가족간의 갈등이 빚게 된다.반면에 부모들이 남한사회 적응으로 바빠 아이들에게 소홀하게 되자, 학교에서도 힘든 아이들은 집에서도 보호를 받지 못해 방황하는 아이들도 많다. 이는 다양하게 나타나는 현상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학습지도를 통해 만난 두 학생들 통해 살펴보겠다.Ⅳ.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우리의 과제국내 북한이탈주민 대상 자원봉사활동은 민간의 통일운동 선상에 있다고 본다. 현재의 정부의 통일정책은 민간부문을 통일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또한 통일의 물꼬를 트는 정치외 남북교류 등의 선행작업을 민간에 할애하고 있다. 국내 탈북자 대상 자원봉사활동은 남한 내에서의 하나의 남북교류라 할만큼 균형 잡힌 통일운동을 확장, 전개해 가는데 중요한 매개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더욱이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봉사활동은 단순한 불우이웃돕기 차원을 넘어서 차차 이루어질 남북통일을 대비한다는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사회가 '물질주의'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에게 대가없는 '봉사'의 개념은 우리사회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실제 대부분 처음에는 '봉사'라는 개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의심하게 체의 운영에 따른 인적·물적 자원의 부족과 단체의 전문적인 사업의 불명확성 등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사업실행에 있어서 서비스가 편중되어 있거나 대상에 있어 중복지원, 누락 등으로 민간단체로부터 지원받은 북한이탈주민의 그 정도의 편차가 심하다. 도시지역에 서비스가 집중되고 지방에서는 서비스가 부재되는 상황도 있다. 또한 민간단체간 실시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유사한 경우가 많아 북한이탈주민 한 사람이 각기 다른 단체에서 진행하는 유사한 프로그램에 중복 참가해야 하기 때문에 행사에 참여하기도 바쁘다거나 여러 단체에서 프로그램을 같은 기간에 진행하므로써 각 단체의 행사가 풍요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 프로그램에 참가할 북한이탈주민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 경우 등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초래되는 이유는 민간단체가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고 상호협력하는 태도가 부족한데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해 민간단체는 사업 계획 및 실행에 대한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협력하여 북한이탈주민들의 당면한 문제부터 실질적이고 효율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또한 탈북자를 지원하고 있는 민간단체의 경우 반북체제의 성향으로 북한체제 비난의 한 축으로 이들을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탈북자문제를 해결하고 북한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체제를 비난하기 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남북화해·협력 틀속에서 국내외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하고, 북한을 도움으로써 주민들이 충분한 식량 등 기본인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 더이상 남한으로의 탈출을 선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서동만 교수의 지적처럼)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지난 5월 10일 미국 노틸러스연구소 홈페이지에 기고한 '탈북자와 남북간 화해협력' 글에서 유럽연합(EU)은 북한과 수교를 하고 경제적 지원을 하면서도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얘기했고, 북한도 유.
    사회과학| 2002.11.27| 7페이지| 1,000원| 조회(733)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3
3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2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23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2:38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