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동기는 내가 막 제대하고 교회 대학부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허둥댈때 당시 대학부 담당 목사님께서 나에게 추천 해주신 책이다. 이 책을 읽은 계기로 나는 나눌 수 있는 조를 만났고, 같이 교제하며 허물없이 지낼 수 있었다.이 책의 초점은 목적이 이끄는 삶의 중요성보다는 인간 존재 목적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크게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기독교적 견해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그 첫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인간은 우연에 의한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창조한 존재이다. 모든 발명품은 발명자의 목적과 의도가 있듯이 인간도 인간 고유의 존재 목적을 인간의 창조자인 하나님을 통해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간과 삶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영원히 살도록 지어졌으며 이 땅에서의 삶은 일시적인 것이다.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삶과 인간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또한 이 책은 목적이 이끄는 삶의 유익과 인간 존재 목적 5가지를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인간 존재 목적은 5가지이다. 예배, 교제, 성장, 섬김, 선교가 바로 그것이다.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뜻깊게 읽은 부분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라는 부분이다.이 것을 읽고 나름대로 나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컴퓨터 업계에서 가장 큰 인물?, 명문 대학원 또는 명문기업 취업, 성공적인 결혼, 행복한 삶 등등 많은 것이 나의 삶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것들 중에서는 하나님 중심으로 세워진 목적이 하나도 없었다. 적어도 교회를 20년 이상 다녔고, 교회에서도 교사이며,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믿어왔었는데 이러한 나의 삶의 목적부터가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내 중심이라니... 정말할 말을 잃었고 그 자리에서 다시 목적을 수정하였다. 수정하는 것은 목적을 세우는 것보다 너무 쉬운 일이었다. 기존의 나의 삶의 목적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바꾸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위해 컴퓨터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되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달란트를 잘 사용할 수 있는 직장구하기 또는 대학원 가기, 하나님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배우자와 결혼하기 등등으로 수정할 수 있었다.그리고 내가 이것을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을 위해 지식을 쌓는 것에 힘쓰며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었다.아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내 형편에서 하나님이 나를 단련시키실 일들이었다.첫날부터 이렇게 많은 은혜와 목적을 잡아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또 한번 놀랐다.또한 “우리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이 파트를 읽고 문득 어릴 때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자식이다. 그래서 니가 그렇게 말을 안듣는거 같다.” 이러한 말이 생각났다. 부모님에게 많이 들었고 거기에 대해서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물론 크면서 이것이 농담 이였다는 걸 알게 되지만 그때는 사뭇 진지하게 받아드렸다. 이 말처럼 인간은 실수나 계획없이 태어날 수 있고, 태어난 후에도 아무런 계획과 목적없이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하나님은 무작정 움직이시지 않으신다. 철저한 계획 가운데 나를 인도 하신다. 책에서 아인슈타인이 한 말 중 ‘하나님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으신다’ 라는 말을 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 목적 없이 태어날 수도 없고 하나님 목적 없이 살아갈 수도 없다. 하지만 우매한 인간들은 이것을 잘 알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관계를 맺기 시작할 때만이 우리의 삶 속에서 그 의미와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우연의 산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과 계획 속에 창조된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잊지 말고 더욱 더 가치 있게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읽고학과 : 정보미디어학부학번 : 200010562이름 : 문형우지금은 공학계열이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는 인문계였고 꿈도 경제학과를 졸업해서 경제 선생님이였던 만큼 경제학 쪽으로 관심이 많았었다. 그래서 피터 드러거의 책을 많이 접할 기회가 있었다. 프로페셔널 조건, 변화 리더의 조건은 그 중에서 우리교회 목사님께서 필독서로 지정하셔서 읽었었고 그 외 Next Society는 경제학쪽으로 진학하려고 했을 때 읽었었고,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는 이번 학교 리포트 때문에 읽어보았다.피터 드러거의 책을 읽을 때 마다 느끼는 건 어체가 딱딱하고 보기가 어렵지만 읽고나면 뭔가 머릿속을 맴돌고 생각해야만 하는 그 느낌이 매력이 있다. 이번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도 그러하였다.이 책에서 피터 드러거는 역사는 주기적인 변화가 있다고 전제한 뒤에 21C 초에는 우리가 지식사회에 살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지식사회는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인데 지식이라는 생산요소는 지식근로자와 서비스근로자의 탄생으로 과거의 자본가와 노동자의 적대적 상하 계급구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대변하는 관계로 부각된다고 하였다.또한 이러한 지식을 가진 사회가 지식사회이고, 이 사회의 주도적 역할을 할 사람이 풍요한 중산층, 즉 지식인들이다. 지식인은 단순한 기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기술과 논리를 겸비한 사람이며, 부의 유일한 창출자이고 국가 산업 기업의 경쟁력 우위를 결정하는 주체이다. 그래서 그는 교육받은 사람은 새로운 요구와 새로운 도전, 그리고 새로운 책임에 직면하게 된다고 주장한다.지금 시대를 보면 우리는 저 두 주기의 중간쯤 되는 사회를 살고 있는 거 같다. 지금은 주식을 투자하려면 뛰어난 정보지식과 엄청난 자본이 있어야 거기에 부합하는 돈을 벌 수 있다. 비단 주식뿐만 아니라 부동산, 회사 경영등 모든 분야에서 돈만 있으면 되는 시대는 끝이 났다. 돈에 부합하는 지식이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서 돈은 있지만 지식이 없는 자본가들은 전문 경영인(CEO)를 고용하여 기업경영을 맡긴다. 이러한 현재 정황으로 볼때 머지않은 미래에는 지식이 곧 돈이 되는 사회가 올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볼 수 있다.또한 이 책에서는 재미있는 예를 들어서 책임에 기초한 조직을 설명하는데 1930년대 루이스라는 사람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오른팔과 같은 사람이었다.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되고 루이스는 그의 곁을 떠나서 미국 석탄노조 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다. 한참 전쟁으로 인하여 석탄이 필요할 때 루이스가 이끄는 석탄노조는 최저임금을 받고 많은 일을 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파업을 하였다. 이때 루즈벨트가 루이스에게 국익을 위해 파업을 그만둘 것을 요구했지만 루이스는 루즈벨트가 국익을 위해서 일하듯이 자신도 석탄노조의 노동자들을 위해 일한다며 단언지하에 거절하였다. 이것은 결국 석탄노조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루이스는 거기에서 자신의 명성과 권력을 모두 잃었다. 여기서 나는 루이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책에서 루이스는 궁극적으로 노동자에게 좋은 것은 미국에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전쟁 때는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필요할 때이고 그만큼 노동자들이 권한이 높아질 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급료를 올려달라는 요구가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뒤에서도 언급지만 내가 생각할 때 루이스는 작은 조직은 알았지만 큰 조직인 국가를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루이스를 비판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입장에서는 가장 현명한 판단을 했지만 그 조직이 받는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본다. 책의 뒷 부분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언급된다.?조직의 사회적 책임 - 경제적 성과가 기업의 유일한 책임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교육이 학교의 유일한 책임은 아니며, 치료활동이 병원의 유일한 책임이 아니다. 권한은 항상 책임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재가 된다. 또한 책임이 없는 권한은 항상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게 된다. 조직은 권한을 갖고 Dlt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사회적 권력이다.?또 이 책에서는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내가 7~8년전 고등학교 재학 중에 그 때 대통령들과 정치인들의 공약조건은 항상 작은 정부였다. 공무원 수를 줄이고 정부의 역할을 줄여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 준다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큰 정부는 간섭만 극대화해서 필요 없고 작은 정부가 올바른 방향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참 딱딱하게만 느껴졌고, 과연 다 읽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부터 하게 되었다. 하지만 생각밖에 책의 내용이 신문이나 사회의 이슈등 우리가 접하기 쉬운 소재들로 되어 있었고, 특히나 반가웠던 것은 지금도 배우고 있고 쭉 관심이 있었던 고대 문화와 사회의 사상에 대해서 많이 언급을 하여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1장 ‘물의 권세 물의 세상’에서는 내가 참 많이 의아해하고 풀리지 않았던 부분들을 많이 해결해 주었다. 나는 각종 자연재해 특히 홍수에 대해서 인간이 이길 수 없는 재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홍수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인간의 원인에 대한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홍수로 인해 죽은 게 아니라 그들의 죄 때문에 망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성경의 홍수 사건에 비추어서 우리의 수해와 비교해 몇 가지 메시지를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가장 가슴에 와닿는 메시지는 세 번째 ‘수해는 인간이 아무리 과학문명이 바벨탑을 구축하더라도 그것으로 결코 지상 유토피아와 같은 낙원이 도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라는 메시지였다. 나는 하나님을 믿음에도 문명의 발달은 곧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인간이 나중에 모든 자연재해와 질병들을 다스릴 수 있는 날이 곧 도래할거라 믿고 있었다. 이 부분을 읽고 나서 “내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나.” 라고 느꼈다. 그리고 내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되세겼다.또한 많이 헷갈렸던 부분도 있었다. 수해를 매년 일정한 시기에 오는 것과 ‘인간의 원인에 대한 결과’라는 부분에서 인간의 원인이 무엇이고 왜 그것이 반복되는가? 에 대한 것인데 책(성경)에서는 인간의 원인이 되는 부분을 패괴라는 단어로 언급하고 있었다. 패괴를 찾아봤지만 사전에는 패괴(敗 패할 패, 壞 무너질 괴)를 부서지고 무너짐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영어성경으로 단어를 찾아보니 corrupt라는 단어가 나왔다. 이 단어에는 뜻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보이는 것이 사람의 행동으로 부패하는 것과 사람의 행동으로 공기나 물등을 오염시키는 것이라고 나와 있었다. 이것을 보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해한 것이 인간의 원인이라는 것은 비단 우리의 죄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스리라고 주신 자연을 오염시키는 행위도 포함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년 악화되고 있는 자연오염으로 인하여 수해가 갈수록 커지고 인간의 죄를 반성하라는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수해를 주신다는 결론을 조심스럽게 내려보았다.또 2장에서는 만저라는 사람의 실종사건을 통해 가난한 자들의 슬픔과 약한사람들의 아픔을 위로해주는 것이 진정한 의로움과 정의로움이라고 설명하면서 현재 교회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 무언으로 언급하고 있었다. 나 자신도 상당히 공감을 많이 했던 부분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전도는 문명의 쓰레기를 나르는 일이 아니며 문명화란 타락한 인류들에게는 종종 죄악화의 길일 수도 있다’에서 요즘 기독교가 타락하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페낭족에는 그들의 삶은 비록 각종 의료시설을 이용하지 못하여 평균수명은 짧았고, 각종 기근에 시달라고 있음에도 싸움도 없고 분쟁도 없으며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고 만저는 이야기 했었다. 나는 생각해 봤을때 이러한 곳에 기독교 시설이 복음이 없이 들어간다면 페낭족은 문명의 쓰레기에 희생자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교회에서는 이러한 오류를 많이 범하고 있다. 물론 취지는 좋지만 무분별하게 추진하여 많은 지역에서 이러한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종종 본다. 정말 복음이 필요한 곳에 복음이 없는 이러한 오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또 인간의 육체에서는 우리의 육체를 건강하게 유지해야 할 목적을 알게 되었고, 그것의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편이라서 항상 주변에서 몸관리를 하라고 하는데 게을러서인지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부터 나의 몸관리를 잘해서 하나님의 귀한 일을 하기 위해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해야 겠다는 것을 느꼈다.또 6장 신뢰의 조건에서 많은 걸 느꼈다. 요즘 선거철이라서 교회를 가보면 정치인들이 찾아와서 인사를 하곤 한다. 평소에는 교회 등록만 하고 코빼기도 안보이던 분들이 선거철만 되면 한표 부탁한다고 찾아온다. 그리고는 교인들 앞에서 일이 바빠서 예배에 잘 참석하지 못했다. 다음부터는 빠지지 않고 잘 출석하겠다고 또 다짐을 한다. 이 장은 이런 사람들을 무척이나 싫어했던 나에게 정말 확신을 가져주는 장이었다.이 책에서는 미국의 예로 들지만 더 나아가 요즘 한국에도 현대 자동차를 예로 들면 CEO의 부정행위로 기업의 존폐위기에 놓여있다. 이것이 이 장에서 말하는 신뢰의 조건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CEO가 기업을 위해서 비자금을 조성했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재산을 도적질 하는 행위와 똑같은 것이다. 이러한 행위로 신뢰를 잃게 되면 도산하기는 정말 쉬워진다. 이 책에서는 CEO뿐 아니라 정치인, 종교지도자 등 각계각층의 지도자들도 이러한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6가지의 방법을 이 책에서는 기술했다.첫 번째 무엇보다 먼저 진실과 정직함을 회복하는 것과 두 번째 안정성 내지 안정감이 있어야 신뢰가 구축되고 세 번째 변함없는 사랑이 신뢰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불식이 야기되었을 때에 그것을 다시 불식시킬 수 있는 최상의 방책은 한결같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네 번째 말씀과 능력을 갖춘 지도력이 있어야 한다. 다섯 번째 내가 먼저 마음문을 열고 그들을 신뢰해야 한다. 그리고 여섯째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인거 같다. 우리의 지도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인간사이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현대 테러의 폭력에서는 현대에 문제되고 있는 테러행동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얼마 전 9.11 테러로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한 사건이 있다.이 때 미국 정부는 바로 전쟁준비를 한다고 선포했고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해서 무참히 부수고 주민들을 살해했다. 이것은 미국이 초 강대국의 자존심이 무너졌다는 자괴감과 처참한 파국에 대한 격정적인 분노로 행해진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러한 무고한 인명들을 살상한다면 그것 역시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될 뿐 아니라 정의롭지도 못한 것이라고 했다. 물론 아프카니스탄이 잘못을 했다고 하지만 거기에 노인들이나 어린 아이들까지 피해를 보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었다.또한 미국인들이 전쟁을 일으키기 전 'GOD BLESS AMERICA' 외치며 합심하여 기도했다는 문구를 보고 참 할말을 잃을 정도였다. 이것은 미국인들 내에 비신앙적인 보복심을 기독교에 반영하는 것 밖에 되질 않아 보였다. 이것은 어떠한 이유이건 간에 분명히 전쟁은 하나님께 달린 것 이라고 성경에도 나와 있지만 그것을 자국의 상황에 합리화 시킨 미국 자신의 행위에 먹칠하는 행위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칫하면 전쟁의 하나님으로 인식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이 세상의 외양은 눈에 보이는 문명의 껍데기들이 치장하고 있지만 그 배후에는 영적인 전쟁과 소용돌이가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무든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건의 배후에 있는 영적인 의미를 해독하는 지혜를 지녀야 한다.’ 라는 구절은 참 많은 걸 느끼게 해주었다.또 죽음이라는 단원에서는 인간의 죽음과 살인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특히 예로 나와 있는 미국의 한 가정집에서 자신의 아이들 5명을 죽인 사건은 요즘 들어서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느 사건이다. 얼마전에도 출산 우울증으로 자신의 아이를 방치하여 죽음으로 이르게 한 부모도 있었다. 과연 이러한 사건들이 왜 일어나는가? 이것은 마귀들이 유혹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마귀는 하나님같은 힘은 없지만 상당한 힘을 행사하면서 증오와 복수, 질병과 고통, 공포와 광기, 살상과 전쟁을 일으킨다. 이러한 마귀를 이겨야 하고 이길 능력이 있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마귀들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하다. 우리는 이러한 마귀들의 이길 능력을 발휘하여 마귀의 권세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긍정의 힘을 읽고나서...이 책은 교회 목사님부터 친구들까지 주변에서 많이 추천을 해 준 책이라서 시간이 나면 꼭 한번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이번 과제를 계기로 읽게 되었는데 읽으면서 역시 추천 수만큼이나 많은 생각을 남겨주었고 나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책을 읽기 전 나는 책 표지에 ‘긍정’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긍정에 의미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봤다. 나는 평소 긍정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쓰기는 많이 썼는데 막상 의미를 생각하자니 특별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봤는데 긍정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았다.‘긍ː정 (肯定) [명사] [하다형 타동사] [되다형 자동사] 어떤 사실이나 생각˙설 따위를 그러하다고 인정함.’긍정의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였다.하지만 내가 책을 읽고 난 후 ‘긍정’의 사전적 의미를 다시 봤을 때 알 수 없는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떠돌고 있는 책에서 말하는 긍정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내의 정리는 책에서 말하는 ‘긍정’이란, 물론 사전적 의미와는 비슷하지만 “무엇을 인정하느냐?” 에 초점을 맞추기에 크게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책에 있는 조엘 오스틴 목사님과 사모님에 대한 예를 들어 보면 목사님은 아름다운 집에서 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사모님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사모님의 이런 긍정적인 생각은 현실이 되어서 정말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기서 살게 되었다. 이 예에서 내가 정리한 긍정이란 ‘하나님이 중심에 계시는 긍정’과 ‘내가 중심에 있는 긍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사모님이 아름다운 집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중심에 계시는 긍정’으로써 중심에 계신 하나님께 모든 걸 내어놓고 부어주실 하나님을 소망하며 기대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집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이다..만약 저 상황이 ‘자신이 중심에 있는 긍정’이었다면 다만 저 아름다운 집에서 사는 것은 허황된 꿈에 불과했을 것이다. 부어주실 하나님을 소망하지 않고 세상의 한탕을 기대했을 것이다. 정리하면서 이것을 알게되는 순간, 여태껏 내가 했던 긍정들이 다 내가 중심에 있는 긍정임을 느꼈고 교사를 지망하는 한 학생으로서 이러한 긍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교회에서는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라고 조언하며, 더 나아가 앞으로 지도할 학생들에게도 내가 중심에 있는 긍정을 가르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한심해 보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교차했다.또한 이 책에서는 그러한 긍정의 생각을 가지기 위한 자세에 대해서 말하는데 내가 가장 공감하고 깨달았던 부분이 많이 있는데 소개를 한다면 첫 번째가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라.’는 단락이었다.나는 참 끈기가 없는 편이다. 그래서 항상 무슨 일을 하면 빨리 끝내려하거나 쉽게 포기해버리는 경향이 짙은 편이다. 이 부분을 읽고 생각해 보았을 때 어떠한 제목으로 가장 오랫동안 기도를 했던 적이 일주일을 넘어간 적이 없었던 거 같다. 용돈, 성적에 대한 기도를 해도 응답을 받지 못했던 이유를 (물론 기대수준을 높이거나, 나의 비전을 키우거나 하는 등 준비를 못한 점도 있지만) 알 수 있었다. 때로는 너무 조급하게 결정을 해버리고, 때로는 그 응답이 아닌 것에 상처도 받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여태까지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지 못한 것을 반성하며 모든 것이 완벽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신앙을 지켜나간 다윗처럼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다짐도 했다.두 번째는 “씨앗을 뿌리는 것이 우선이다.”라는 단락이다.나는 이 책을 읽기 몇 일전에 은행에 문의를 했다. 자동이체를 해지 하려면 어떠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필요한 서류는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올해 초 고신대학교에 “기아대책기구”라는 사단법인에서 후원자를 모집을 한 적이 있다. 거기서 영상에 나오는 굶주리고 병에 걸려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도 흘렸다. 그리고 내가 조그마한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후원하는 쪽에서 계좌이체로 월 1 만원을 후원하겠다고 후원서를 제출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내가 일주일에 한번씩 금식하면 금액을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개월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각종 자동 이체들이 나의 통장에서 빠져나갔고 그 때마다 유독 아깝다고 느껴진 것이 바로 월 1 만원 밖에 안 되는 기아대책 후원금이었다. 핸드폰 요금은 3~4만원 이상 나오고, 인터넷 쇼핑으로 자동 이체 되는 돈도 꽤 되는데, 유독 기아대책 후원금 만원이 나간다고 생각하니 돈이 너무 아까운 것이었다. 그래서 은행에 문의를 했고 시험이 끝나면 가서 해지를 하겠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책을 읽고나서 잠시라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아이들에게도 부끄럽고 나 자신에게도 부끄러웠지만 내가 후원을 해지하지 못하도록 책으로 나를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더 부끄러웠고 죄송스러웠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아낌없이 주셨고 이 세상에 단 한 분뿐이신 독생자 예수도 주셨고, 앞으로도 계속 주실 예정이다. 즉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런 것을 나의 마음대로 사용하려고 했던 것이 부끄러웠고 책의 예화에서도 보듯이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아버지처럼 자신의 교회도 어렵지만 다른 교회를 도와주었을 때 하나님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채워주신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교회를 15년 이상 다닌 내가 가져서 될 생각인가? 라는 부끄러운 마음도 들게 하였다.
처음 이 책을 명단에서 보았을때 여느 새벽형 인간에 대해 쓴 책들과 다름이 없을 꺼라는 선입견을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큰 기대없이 책을 신청했다.책이 도착 했을때 이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먼저 읽게된 동기는 ‘목적이 이끄는 삶’, ‘그리스도와 문화’ 등등 한번에 읽기에는 약간 부담스럽거나 Q.T 형식으로 되어 매일 묵상형식으로 되어있는 책이라서 몇일 뒤 감상평을 써내야 하는 입장인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 책 뿐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을 읽은 목적은 감상평을 쓰기위해 읽었었다.하지만 오정현 목사님의 머릿말부터 나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주었다.새벽에 일어나서 교회를 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나도 청년회 특별 새벽기도회나 어떤 일이 닥칠때 새벽기도로써 대비하거나 나가긴 하지만 그때마다 내 삶의 패턴은 무너지기 일쑤였다. 또한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몸이 너무 피곤하고 ‘아프다고 핑계대고 가지말까?’라는 생각까지 날 정도로 그 다음날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리곤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나의 행동에 대해 일침을 놓는 부분이 있었다. 제일 첫 주제에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어야 기적을 체험한다.’ 라는 부분이다.또한 책에서 나의 행동을 참 절실하게 깨닫게 해준 문구가 있다.?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영적으로 게으른 자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받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새벽에 잘 일어나지 못하는 육체의 한계를 돌파하여 새벽에 부르짖어 진정한 인생역전을 체험하십시오. ?도구는 갈고, 닦고, 깨어지고 할 때 비로소 훌륭한 도구가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하지만 내가 도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갈고, 닦고, 깨어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이 부분에서 하는 말은 훈련과 연단 없이는 하나님께 쓰임 받을 줄 생각마라. 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의 도구라고 외침에도 불구하고 내가 연단 없이 쓰임 받을 줄 알고 있었다. 또한 아무런 노력없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고 있었다. 또한 새벽기도만 나가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 할 수 있을꺼라 생각했다.하지만 그것 역시 잘못된 생각인지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은 우리를 새벽기도회로 인도하시는 것은 우리가 가장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힘든 시기에 불러 내셔서 우리가 그것을 이기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비로소 은혜를 부어주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계속 반복되면 은혜의 선순환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또 나의 행동에 대해서 반성하게 만든 부분은 ‘영적성공’이란 부분이다. 물론 이 책에서는 ‘영적 성공을 위해서는 뜨겁게 기도를 하라.’라는 주제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영적성공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사는 것인가? 에 짧지만 나름대로 깊은 생각을 해보았다. 영적성공 =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이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또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의문점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내 스스로 결론을 내었다. 기도, 그것이 내가 생각해낸 올바른 삶에 방법이었다. 기도 없이는 올바른 예배가 있을 수 없고, 기도가 없이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으며, 기도 없이는 하나님과의 대화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감상평이 다른 방향으로 비켜 나갔지만 다시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중요한 기도를 내가 자신을 이기고 한다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다시 한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