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현대 사회와 기록관리 수업을 들으면서 기록 관리라는 분야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 수업을 수강하면서 기록물의 중요성과 분류, 평가 방법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번 레포트를 통해 내가 직접 나의 기록물을 분류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성격상 주변 물품을 잘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내 주변에는 정리되지 않은 기록물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들과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분류하여 정리하는 것은 내 주변 정리를 위해 꼭 필요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무작정 모아두기만 하고 정리를 하지 않아서 만약 시간이 더 흐르게 되면 지금까지 내가 모아둔 자료들은 기록물로서 가치를 잃게 되고 쓰레기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고등학교 이전의 나와 관련된 기록물들은 양이 적을뿐더러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 있었기에 대학시절 위주로 정리를 해 볼까 한다. 나와 관련된 물품들 중에 양이 많거나, 앞으로 양이 점점 많아질 자료들 위주로 정리 할 것이다. 분류, 기술, 평가 등의 절차에 따라서 기록물들을 정리 할 것인데 먼저 분류과정에서는 내 대학생활중 가장 큰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학업과 여자친구에 대해 가장 큰 개념인 Fond를 부여하였고 그 하위로서 Series 로는 학업에 대해서는 전공공부와 영어공부로, 여자친구에 대해서는 시기별로 대학시절과 군대시절로 나눴다. File은 전공공부의 경우 각각 과목으로 나눴으며 영어공부는 학원에서와 개인공부의 부분으로 나눴다. 여자친구의 경우 대학시절과 군대시절을 각각 의미있는 시기별로 세분화 하였다. Item은 각각 파일마다 세분화 하여 내가 가진 자료의 최종단계까지 표현하였다. 후에 기술단계에서는 각각의 퐁, 시리즈, 파일, 아이템별로 생산연대, 생산자, 간단한 내용정리, 보관위치. 보존기간 등을 설정하여 내 자료에 대해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였고 평가단계에서는 각각 기록물에서 영구보존 으로 책정한 기록에 대한 사유를 적어 정리하겠다.2. 분류 기준표FondSeriesFileItem학업전공공부일반생물학수업자료족보미생물학수업자료족보세포생물학수업자료족보유전학수업자료족보분자생물학수업자료족보유전공학수업자료족보영어(Toeic) 공부학원수업자료강의녹음자료개인공부교재필기여자친구대학생군입대전(1,2학년)편지사진선물군입대후(3,4학년)편지사진선물군대시절이등병,일병편지사진상병,병장편지사진3. 기술? Fond참조번호제목생산연대생산자내용약술보관위치1학업2002.03~2008.02나,친구,학교,학원대학생활중 학업과 관련된 기록물들침대밑(박스1, 박스2), 책장맨윗칸2여자친구2002.10~2008.08나.여자친구여자친구와 만난 후부터 남겨진 모든 기록물쇼핑백,작은박스1,작은박스2,? Series참조번호제목생산연대생산자내용약술보관위치1-1전공 공부2002.03~2008.02나,친구,학교대학교 전공공부와 관련된 기록물박스1,박스21-2영어(Toeic)공부2006.02~2008.06나,학원학원,자습 등으로 했던 영어공부 기록물책장맨윗칸,하드디스크2-1대학생2002.10~2004.02 , 2006.02~2008.08나,친구,여자친구여자친구를 만난 후 부터 현재까지의 기록 중에 군대시절을 제외한 기록물작은박스1,작은박스2,쇼핑백2-2군대시절2004.02~2006.02나,친구,여자친구여자친구를 만난 후 군대시절 동안에 있었던 여자친구와 관련된 기록물작은박스1,작은박스2,쇼핑백? File참조번호제목생산연대생산자내용약술보관위치보존기간1-1-1일반생물학2002나,친구교수님대학시절 일반생물학에 관한 자료들박스15년1-1-2미생물학2003나,친구교수님대학시절 미생물학에 관한 자료들박스15년1-1-3세포생물학2003,2008나,친구교수님대학시절 세포생물학에 관한 자료들박스15년1-1-4유전학2007나,친구교수님대학시절 유전학에 관한 자료들박스25년1-1-5분자생물학2007나,친구교수님대학시절 분자생물학에 관한 자료들박스25년1-1-6유전공학2008나,친구교수님대학시절 유전공학에 관한 자료들박스25년1-2-1학원2006~2007나,학원강사대학시절 영어공부중 학원에서 공부했던 기록물들책장,하드디스크3년1-2-2개인공부2006~2008나,친구대학시절 영어공부중 혼자 공부했던 기록물들책장3년2-1-1군입대전(1,2학년)2002~2003나,친구여자친구여자친구를 만난 후 군입대 전에 생성된 기록들작은박스1,쇼핑백영구2-1-2군입대후(3,4학년)2006~2008나,친구여자친구여자친구를 만난 후 군입대 후에 생성된 기록들작은박스1,쇼핑백영구2-2-1이등병,일병2004~2005나,군대동기,여자친구여자친구를 만난 후 군대시절동안에 이등병,일병 시절에 생성된 기록들작은박스2,쇼핑백영구2-2-2상병,병장2005~2006나,군대동기,여자친구여자친구를 만난 후 군대시절 동안에 상병,병장 시절에 생성된 기록들작은박스2,쇼핑백영구? Item참조번호제목생산연대생산자내용약술보관위치1-1-1-1수업자료2002나,교수님일반생물학 수업중 필기한것들, 참고자료박스11-1-1-2족보2002나,친구일반생물학 중간,기말고사 족보박스11-1-2-1수업자료2003나,교수님일반미생물학 수업중 필기한것들, 참고자료박스11-1-2-2족보2003나,친구일반미생물학 중간,기말고사 족보박스11-1-3-1수업자료2003,2008나,교수님세포생물학 수업중 필기한것들, 참고자료박스11-1-3-2족보2003,2008나,친구세포생물학 중간,기말고사 족보박스11-1-4-1수업자료2007나,교수님유전학 수업중 필기한것들, 참고자료박스21-1-4-2족보2007나,친구유전학 중간,기말고사 족보박스21-1-5-1수업자료2007나,교수님분자생물학 수업중 필기한것들, 참고자료박스21-1-5-2족보2007나,친구분자생물학 중간,기말고사 족보박스21-1-6-1수업자료2008나,교수님유전공학 수업중 필기한것들, 참고자료박스21-1-6-2족보2008나,친구유전공학 중간,기말고사 족보박스21-2-1-1수업자료2006~2007나,학원강사영어학원에서 배웠던 교재,필기내용들책장맨윗칸1-2-1-2강의녹음자료2006~2007나,학원강사영어학원에서 날짜별로 강의 녹음하드디스크(D:W)1-2-2-1교재2006~2008나학원외의 개인 자습교재책장맨윗칸1-2-2-2필기2006~2008나개인자습했던 필기&정리내용책장맨윗칸2-1-1-1편지2002~2003나,여자친구군입대전(1,2학년)때 편지들작은박스1,쇼핑백2-1-1-2사진2002~2003나,친구,여자친구군 입대전(1,2학년)때 사진들작은박스1,쇼핑백2-1-1-3선물2002~2003나,여자친구군 입대전(1,2학년)때 받은 선물작은박스1,쇼핑백2-1-2-1편지2006~2008나,친구,여자친구군 입대후(3,4학년)때 편지들작은박스1,쇼핑백2-1-2-2사진2006~2008나,친구,여자친구군 입대후(3,4학년)때 사진들작은박스1,쇼핑백2-1-2-3선물2006~2008나,여자친구군 입대후(3,4학년)때 받은 선물작은박스1,쇼핑백2-2-1-1편지2004~2005나,여자친구군대시절(이등병,일병)때 받은 편지들작은박스2,쇼핑백2-2-1-2사진2004~2005나,군대동기군대시절(이등병,일병)때의 사진들작은박스2,쇼핑백2-2-2-1편지2005~2006나,여자친구군대시절(상병,병장)때 받은 편지들작은박스2,쇼핑백2-2-2-2사진2005~2006나,군대동기군대시절(상병,병장)때의 사진들작은박스2,쇼핑백4. 기록물의 평가보존기간 “영구“ 로 책정된 기록물에대한 이유/사유.참조번호영구보존의 이유2-1-1여자친구와 함께 생산해 낸 추억의 산물이며 군 입대 전인 대학교 1,2학년 때의 모습에 대한 기록물중 일부분이다. 또한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여자친구와 함께 과거를 돌이켜 볼 수 있게 해주는 기록물들이기 때문에 보존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 하여 영구보존 하게 되었다.2-1-2여자친구와 함께 생산해 낸 추억의 산물이며 군 입대 후인 대학교 3,4학년 때의 모습에 대한 기록물중 일부분이다. 또한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여자친구와 함께 과거를 돌이켜 볼 수 있게 해주는 기록물들이기 때문에 보존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 하여 영구보존 하게 되었다.2-2-1평생에 한번뿐인 군대생활이고, 이 기간동안에 여자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나 사진은 매우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라도 나에게는 이때 형성된 기록물의 경우 가치는 점점 더 중요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2-2-2평생에 한번뿐인 군대생활이고, 이 기간동안에 여자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나 사진은 매우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라도 나에게는 이때 형성된 기록물의 경우 가치는 점점 더 중요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5. 사진< 개인공부 토익자료 >
“한국 국가기록 관리의 이론과 실제“ 이 책은 제목에서 나타내는 것과 같이 한국의 국가 기록 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공공기록 관리에 대한 문제점과 중요성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6장으로 구성 되어있으며 각각의 장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파악, 분석하고 기록 관리에 대한 생각에 대해 기술 하는 것으로 구성하겠다.먼저 아카이브즈에 대한 개념을 알아보면 공공기록, 역사기록이 보존된 장소 또는 역사기록 자체를 의미한다. 모든 기록이 아카이브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다고 생각 되는 것만이 아카이브즈로 평가되는 것이다. 기록은 세단계의 주기를 갖는데 이것을 라이프사이클이라고 한다. 이 단계에는 현용기록, 준현용기록, 비현용기록이 있으며 효용성과 역사적 가치에 따라 이러한 주기를 갖게 된다. 각각 주기에서 기록관리기관에서는 기록의 가치를 평가하게 되는데 이러한 평가를 하는 사람에는 아키비스트와 기록 관리자가 있다. 이들에 의해 기록물의 가치가 평가되며 기록물의 최종단계인 아카이브즈로 지정 되는데 에는 이들의 주관성이 개입되는 만큼 아키비스트의 임무는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1장 역사기록관에 ‘기록이 없다’ 에서는 과거의 역사기록을 봤을 때 문제점에 대한 내용이다. 1999년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 전까지의 기록 관리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특히 기록에 대한 중요성을 낮게 보았는데, 신속성, 능률성, 표준화, 간소화 들이 목적이며 이것을 통해 행정능률의 향상을 꾀하였던 만큼 정부정책의 투명성을 남기고 역사기록을 보존하겠다는 의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기록 관리의 문제점을 조직적인 폐기구조에 대한 내용으로 다루고 있는데, 먼저 보존기간 책정의 비전문성을 들 수 있다. 보존기간은 기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데 이러한 기간책정의 권한이 기록을 생산한 기관에 주어져 있었다. 때문에 기록을 남겨 역사적 가치를 중요시하기 보다는 행정적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었던 이유로 된다. 폐기는 기록관리 전문자에의해 가치의 평가와 선별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전에는 이러한 사항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4년 정부공문서 규정 에 의해 영구기록을 정부기록보존소로 이관하는 규정이 만들어 지며 정부기록보존소는 처음으로 역사기록관으로서 제한적인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2장 공공기록관리법은 ‘개혁적’인가 에서는 공공기록관리법의 개혁적인 사항들을 소개하면서 반면에 개혁의 한계점과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1980년대 후반부터 기록 관리에 대한 대책수립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1999년1월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었다. 기록 관리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구와 인력확보, 경제적인 보존방식의 활용, 정보전환 차원으로 전환하여 필요한 기록을 즉시 찾아볼 수 있도록 함, 중요 정보보고기록에 대한 철저한 수집, 전문 인력 참여 확대, 세계 각국과의 교류협력을 강화할 것 등의 사안이 기록보존법에서 논의 되었고 보완 과정을 거쳐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이 제정되게 되었다. 공공기록 관리법의 개혁성에대해 보면 역사적 가치평가를 위한 새로운 진전이었다. 제도의 도입으로 예전에 생산기관에서 자의적으로 혹은 규정의 미비로 인하여 폐기되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던 기록물 관리법의 체제가 갖추어졌다. 이는 기록이 생산단계에서부터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었던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록의 등록과 생산 의무도 생기게 되었는데 공공기관에서 업무의 모든 과정과 결과를 기록으로 남으로 있도록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내용이다. 예전의 기록을 남기지 않던 관행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로서 직접 중요기록을 생산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지방역사기록관 등 기록 관리기관을 설립하였는데 예전의 잘못된 기록관리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적극적인 시도였다. 기록관리 기관에는 전문가가 존재하여 기록 관리업무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기록관리 선진국에서는 일찍이 기록관리 전문가를 양성하여 배치하였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기록관리 전문 격상시키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법 제정에는 정부기록보존소의 위상이 높아지거나 그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해결되지 못했다. 정부기록보존소장의 위상문제도 있었는데 34년 동안 정부기록보존소의 역대 소장직을 지낸 사람은 모두 26명으로, 평균 재임기간이 1년 3개월에 지나지 않으며 특히 공공기록 관리법 시행직후 3년 동안의 평균 재임기간은 약10개월로 매우 짧았다. 이렇게 정부기록보존소장을 임기제로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자주 교체될 것이며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전문성을 띄기 힘들며 업무에 대한 적응이나 기록관리 업무의 효율을 얻기 힘들 것이다. 또한 소장의 직급이 낮은 것도 개선되어야 할 문제점이다. 또한 모든 공공기관에서 기록을 수집, 보관한다는 공공관리법에 맞지 않게 일부에서 예외를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 또한 한계점이다. 이러한 예외는 공공기록관리법의 개혁적인 성격을 제약하고 관리체제의 통일성과 일원적 관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것은 또한 정부기록보존소의 위상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3장 정부기록보존소 변혁을 위한 원칙들 에서는 현대사회의 기록관리 에서의 전문성, 독립성, 주체성에 대한 내용으로 이러한 성격들을 개선해 나가야 기록관리가 제대로 될 것이라는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먼저 기록 관리의 전문성에 대해 알아보면 기록 관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는 아키비스트에대한 전문성 문제를 알아보고 있다. 아키비스트의 기록물평가, 분류는 기록유산의 형성이라는 창조행위이며 현재의 모든 것을 미래에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키비스트는 정보와 기록의 종류를 분별하는 훈련과 경험을 쌓는 등 전문성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기록보존소에서 기록 관리의 전문성과 정부기록보존소장의 전문성 문제도 매우 중요하다. 역시기록관이 수행하는 업무 중 기록물의 정리와 기술 작업들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영구 기록물의 관리는 출처주의원칙에따라 계통별로 기술되는 체제가 필요하다. 즉 fonds부터 item까지 계통이 정확히 나뉘 나타내는데 중국의 경우 기록 관리의 정책과 집행기능을 분리하여 수행하는데 한국의 정부기록보존소는 이 두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는 문제점이다. 기록 관리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책과 집행기능을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마지막으로 주체성은 한국과 다른 나라들의 다름을 알고 독자적으로 기록관리 모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외국의 기록 관리와 비교하여 우리나라의 자체적인 역사기록을 남겨야 하며 우리나라에 맞는 기록 관리 원칙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록학계, 역사학계, 문헌정보학계, 시민사회 등과 협력하여 기록 관리체제의 변화를 모색하고 주체성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4장 지방의 기록문화는 기록관리 기관 설립에서 시작된다 에서는 지방기록관리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공공기록관리법 제정 이후로 기록 관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서울, 경기지역의 생산량과 비교했을 때 지방 기록생산량은 1%정도밖에 되지 않아 지방으로 갈수록 기록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영구보존해야할 기록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므로 지방역사기록관 설립문제는 시급한 중요한 과제이다. 지방역사기록관은 지역사회의 측면에서 지역의 기록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역사문화기구를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기록정보의 탈 중앙집권화를 통해 지방분권화에 도움을 제공하여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기초가 된다. 또한 국가기록관리체제 개혁의 관점에서 새로운 기록 관리 주체를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고, 정부기록보존소 입장에서는 지방역사기록관과 경쟁체제를 이루어 상호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므로 지방역사기록관 설립문제는 중요한 과제로 생각해야 한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역사적 전통이 있는 곳의 경우 별도의 지방역사기록관을 설립하여 영구기록을 자체 보관, 관리한다면 해당 지역사회의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에 기여한다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기록관의 설립 방향에 대해서도 제시해 주고 있는데 기록관을 설기 하고 라이프싸이클에서 영구보존할 가치가 있는 기록을 분류하는데에 아키비스트의 역할이 강조되었었다. 아키비스트는 영구히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는 사회적 데이터를 역사기록으로 전환시키는 행위를 수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러한 역할을 보면 기록관리전문가의 양성과 전문가들을 각급 공공기관의 기록관에 배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수 있다. 기록물 관리전문요원제도는 공공기록관리법의 개혁적 성격을 드러내는 부분이지만 앞에서 나온것과같이 아직은 제도화되지 못하고 있다. 원인으로는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의 자격문제에 있다. 여기에는 법적인 모순도 있으며 제도적인 문제점에 원인이 있다. 전문요원의 확보와 배치에 따른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며 먼저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여 각 지방단체들의 변화를 요구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아키비스트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그들의 윤리규약또한 확고하다. 우리 전통시대의 사관정신을 보면 역사를 두려워하고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전통을 그들 스스로 만들어 나갔음을 볼 수 있다. 아키비스트의 윤리규약을 보면 증거를 조작하여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시키려는 모든 압력에 저항해야 한다는 정신이 있는데 이부분은 역사의식을 갖고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전통 사관정신과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아키비스트와 기록관리기관이 이러한 윤리규약을 인식하고 실천한다면 한국의 기록문화도 성숙한 단계에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아키비스트 스스로 사명감과 헌신성을 갖추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한다.마지막장에서는 대통령에 관한 기록관리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다. 기록관리에 있어서 대통령에 대한 영역은 우리 역사를 후세에 전하는 좋은 기록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려면 대통령 기록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대통령 기록에 관한 규정이 확립되지 않아서 대통령 비서실에서 생산된 중요 기록들이 관리되지 않은채로 유실되었으며 일부만이 정부기록보존소에 수집되어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었다.
북유럽 여행기(관광명소 찾기)일반적으로 북유럽 지방은 스칸디나비아 3국(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과 핀란드·아이슬란드의 5국을 가리킨다. 북유럽 지역은 반도와 대륙이 서로 붙어 있고 모여 있어 여행하기에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여행을 즐길 수가 있다. 그래서 가장 효율적으로 북유럽을 여행할 수 있는 코스로써 이 지역의 주요도시와 관광명소, 각각의 특징들을 알아보았다.● 북유럽 지역의 특징먼저 북유럽을 여행하기 전에 그 지역에 대하여 충분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이 지역의 다양한 방면에서의 특징들을 알아보면, 이 북유럽 지역의 기후 특징은 여름은 짧고 서늘하며, 겨울은 길지만 고위도인 데 비해서는 비교적 따뜻하다. 여름에는 해가 길며 북쪽에서는 백야(白夜)가 계속되는데, 겨울에는 일조시간이 짧고 북쪽에서는 낮에도 태양이 나타나지 않는 시기가 있다. 유럽에서는 가장 인구가 희박한 지역인데 생활수준은 높고 비교적 고르다. 사회복지가 철저한 나라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적은 인구에 비해 철광석·수산·삼림·수력·관광 등 자원이 풍부하여 소득이 높다. 주민은 게르만계 민족(핀란드는 핀족)이 많고 프로테스탄트교도의 비율이 높다.● 북유럽 여행의 특징북유럽에는 이렇다 할 역사적인 유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여행자들이 북유럽을 찾는다. 그 이유는 오로지 서유럽과는 전혀 다른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기 위함인 듯하다.대개의 북유럽 여행 코스는 핀란드 헬싱키, 스웨덴 스톡홀름, 덴마크 코펜하겐, 노르웨이 오슬로 등 북유럽 4개국의 수도를 하루씩 돌아보고, 노르웨이에서 송네 피오르드를 추가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코스로는 북유럽의 뛰어난 자연경관을 충분히 즐길 수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북유럽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물가로 악명이 높다. 때문에 여행 경비를 낮추기 위해 많은 명소들이 생략되곤 한다.< 노르웨이 >◆ 오슬로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바다를 낀 지리적 이점을 잘 살린 상업과 무역의 도시. 중세에 북유럽 무역상인의 조합,한자동맹의그의 작품세계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대표작가 백미. 길을 걷다가 갑자기 빨갛게 변해버린 하늘을 보고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한 경험이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고 한다. 다리 난간에서 귀를 막고 소리 지르는 모습이 해골을 연상시키고, 감정으로 굽이치는 선과 부자연스러운 원근감이 내재된 불안과 공포를 표현하는 듯하다. 이 작품은 한때 도둑맞은 것으로 더 유명하다. 그 밖에 노르웨이 작가의 작품 4만여 점과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이르는 덴마크, 핀란드 화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바이킹 박물관백색 외관이 교회를 연상시키는 박물관이다. 피오르드에서 건져 올린 3척의 바이킹 선박과 그 안에서 발견된 보석 상자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이 선박들은 모두 수장을 위한 장례용 선박이였다고 전해진다. 가장 먼저 방문객을 반기는 오세베르크호는 834년에 축조되어 1904년에 발굴된 이집트 여왕의 선박이다. 이 배는 돛의 길 리가 21.5m로 배를 움직이는 데에만 32명이 필요하였다고 한다. 그 왼쪽에는 900년대에 활약한 고크스타드호가 있는데 선체의 곡선이 무척 아름답다.? 시청사오슬로의 상징인 시청사는 오슬로 시 창립 900주년을 기념하여 1931년에 착공했으나 전쟁 등 우여곡절 끝에 1950년에 완성되었다. 항구에 위치하며 2개의 탑을 가진 아름다운 건물로 많은 예술품들로 장식이 되어 있다. 중앙홀 한쪽 벽 전체가 벽화로 이루어져 입장객들을 압도하고 있으며 2층에는 뭉크의 ‘인생’이라는 그림이 걸려있다.- 오슬로 시청사는 매년 노벨 평화상이 수여되는 곳이기도 하다. 12월 10일은 노벨의 사망일이며 매년 이날 수상식이 있다노벨상은 물리학, 화학학, 생물학, 생리학, 의학, 문학, 평화 부문의 상들이 있는데, 이중 평화상만 이곳 오슬로에서 수상식을 해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초의 노벨상 수여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있으며 평화상 외에 다른 부문의 상들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수상식을 하고 있다. 단, 경제학상은 노벨 기금과는 별도로 스웨덴 국립은행 주관으로 이루어진오르드는 ‘협만, 협곡’이라는 뜻인데,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녹아내린 빙하에 의해 산이 깎여 형성된 지형을 말한다. 노르웨이에는 여러 피오르드가 있는데 그중에서 총연장 204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송네피오르드의 아름다움은 신비함 그 자체다. 마치 칼로 베어낸 듯 날카롭게 깎인 계곡 사이를 굽이굽이 돌며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데, 탁 트인 바다 위로 솟아오른 절벽과 그 위에 지어진 예쁜 집, 그리고 말로 형언하기 힘들 만큼 아름다운 광경은 많은 이에게 사랑 받고 있다.? 송네 피오르드송네 피오르드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세계 최대, 최장의 피요르드이자 피요르드 관광의 핵심이다. 웅장한 피요르드와 맑은 물에 비친 그림 같은 노르웨이의 전원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오슬로에서 출발하여 베르겐을 야간열차 포함 1박2일에 다녀올 수도 있다. 송네 피오르드의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다 펴면 지구를 반 바퀴 돌만한 거리라고 하니 누구라도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을 금치 못할 코스이다.● 나르빅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철도역이 있는 곳으로 북극권 지역에 속하므로 여름에는 한밤중에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위도는 높지만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바다가 얼지 않는 부동항이며 북극권 여행의 기점이 되는 곳이다.? 백야고위도 지대에서는 여름에 태양이 거의 지지 않는다. 이는 과학적으로 볼 때 일출과 일몰시 태양의 자취가 지평선과 이루는 각이 작기 때문에 태양이 지평선 아래 18도 이하로는 도달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여름철 북극권 주변의 고위도 지방에서 일단 지기 시작한 태양은 지평선 근처를 이동해서 다시 떠오르는데 이를 바로 ‘백야’현상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현상은 고위도로 올라갈수록 더욱 확연하게 나타난다. 특히 북극권의 백야는 북극해를 오렌지 색으로 물들이는 장관을 연출한다.? 오로라오로라의 어원은 고대 로마신화의 ‘새벽빛의 여신’인 아우로라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는 중위도 지역에서 오로라가 새벽빛과 비슷하게 보였기 때문에 붙여 다리와 많은 터널이 인상적인 도시이다. 중세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구시가 감라스탄 등 13세기의 거리에서부터 고층빌딩과 고속도로 등 현대적 면모까지 고루 갖춘 도시이다.? 스칸센 야외 박물관1891년 문을 연 세계 최초의 야외 박물관으로 마차를 이용하여 스웨덴 방방곡곡에서 통째로 운반해온 150여 채의 건물과 옛 모습을 재현한 정원과 농가 등이 광활한 대지에 들어서 있다. 밖에는 늑대, 곰, 사슴 등을 키우는 동물원과 열대 수족관이 있다. 스칸센은 스웨덴어로 ‘요새’를 뜻하는데, 박물관이 언덕 위에 자리잡은 요새처럼 생겼기 때문의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드로트닝홀름 궁전멜라렌 호의 로뵌섬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스웨덴 국왕이 살고 있는 곳으로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해 만든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아름다운 정원과 궁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감라스탄 지구빽빽이 들어찬 유서깊은 건물 사이로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지는 구시가. 13세기에 요새가 세워지면서 형성되기 시작해 16~18세기에 최대의 번영을 구가했다. 구시가라는 이유로 허름한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금물이다. 스톡홀름의 재력가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고급 주택가로 사랑받고 있다. 그런가하면 유서깊은 건물은 식당, 디스코텍 등으로 변신해 신흥상업지구로 발전하고 있다. 저녁이면 가스등이 아련히 켜지는 감라스탄 거리를 걷는다면 낭만적일 것이다.? 시청사이딸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건물. 스웨덴의 건축가 라그나르 오스트베리에 의해 1923년 완성됐다. 106m높이의 탑과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데 지금은 노벨상 수상자를 위한 축하 파티가 열리는 장소로 유명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블루홀 이라는 실내 광장이 나타나는데 여기까지가 무료입장이며 이후는 가이드투어로만 들어갈 수 있다. 시청탑에 올라가 스톡홀름 시가지를 감상할 수 있다.● 웁살라스톡홀름에서 북쪽으로 90km떨어진 고도 웁살라는 스웨덴 제 4의 도시다. 도시의 형성은 6세기 무렵 오늘날의 웁살라에서 북쪽으로 4없는 도시로 변한다.? 웁살라 대학1477년 창립된 북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대학으로 창립 당시에는 신학, 철학, 법학, 의학 등 4개 학부로 출발하여 이후 7개 학부로 분야를 늘려 종합 대학으로 승격하였다. 6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세계적인 식물학자인 린네를 배출하였다.? 웁살라 대성당성 에릭 광장의 남쪽에 위치하였으며 북유럽 최대규모로 높이 120m의 2개의 첨탑이 인상적이며 건립하는데 무려 150년이 걸린 성당이다. 스웨덴의 왕위 수여식, 유명인의 장례식 장소로 이용되어 왔는데 스웨덴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구스타브 바사왕과 그의 부인이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핀란드 >● 헬싱키‘발틱해의 아가씨’라 불리는 헬싱키는 그 표현만큼이나 상큼한 자연과 소박하면서도 평온한 면모를 갖춘 핀란드의 수도다. 스웨덴의 지배를 받던 1550년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브 1세가 러시아 무역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이 도시에 권력을 집중시켰으며, 1812년 투르쿠를 제치고 새로운 수도로 자리잡았다. 이후 헬싱키는 핀란드 제일의 항구이자, 러시아의 쌩 페테르스부르크를 연결하는 국제철도의 거점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헬싱키 중심의 분주한 마켓 광장과 에스플라나다 공원 주변에는 제정 러시아 시대에 세워진 네오 클래식 양식의 건물이 가득해 식민시대의 애절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우스펜스키 교회1868년 러시아 점령기에 완성된 정교회 건물로 비잔틴 슬라브 양식을 따랐다. 붉은색 벽돌 건물과 청회색 지붕, 황금색 첨탑이 아기자기하다. 핀란드에서 가장 큰 정교회 건물이며 신도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바이킹 라인 부두에서 마켓 광장 쪽으로 걷다보면 오른쪽 언덕에 있어 쉽게 눈에 띈다.? 헬싱키 대성당1852년 카를 앵겔 이라는 건축가가 네오 클래식 양식으로 지었다. 핀란드인 대다수가 믿는 루터파 교회의 총본산. 밝은 녹색의 돔과 웅장한 상아빛 건물, 그리고 푸른 하늘의 조화가 완벽하리만치 아름답다. 내부의 화려한 샹들리에와 파이프 오르간이 볼만하다.? 시벨리우스 공원다.
제 13 장. 유체일상생활에 이용되는 과학 중에는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던 많은 부분들이 있다. 우리가 알고있는 아주 쉬운 개념들이라도 물리학적 개념들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실생활에 일어나는 일들을 잘 관찰하고 연구하더라도 많은 물리학적 개념들을 알고 이해할수 있다. 그중 유체와 뉴턴의 법칙들에 관한 내용과 골프공의 홈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깊게 알아보았다.※개념* 유체(Fluid)는 전단응력(Shear Stress)이 작용하면 평형상태를 유지할 수 없는 물질이다. 유체는 주로 기체(gas)및 액체(liquid)이나 일부의 고체도 포함된다.유체역학은 유체정역학(Fluid Statics)과 유체동력학(Fluid Dynamics)으로 나뉜다. 유체 정역학은 정지상태, 즉 전단응력의 작용을 받지않아서 평형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를 다루는 것이다. 반면에 유체 동력학은 움직이는 상태, 즉 전단응력을 받는 상태에서 유체를 다루는 것이다.* 회전하는 야구공,탁구공,골프공은 Bernoulli의 원리를 따른다.물리시간에 회전하는 공을 예로 들면서 Bernoulli의 원리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즉, 회전하는 공은 주위의 공기 층을 끌어단기고 이 공기 층이 외부의 공기와 상호 작용하여 압력이 낮아져서 공이 휘게 된다고 설명한다. 물론 공의 휨을 정성적으로는 올바르게 설명한다. 그러나 정량적으로는 올바르지 못하다.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Bernoulli의 원리보다 Newton의 제 3법칙을 적용해야 한다. Newton의 제 3법칙에 따라 공기가 위 방향으로 공에 힘을 작용하게 되어 야구공이 위쪽으로 휘게 되는것이다.* 난류란 기체 또는 액체(이를 통틀어 유체라고 부른다)가 어느 정도 이상의 속도를 가지고 흐르게 되면 유체는 매우 복잡한 현상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수도꼭지를 천천히 틀어 보면, 물이 수도꼭지에서 부드럽게 흐른다(층류운동, larminar flow). 조금 더 틀게 되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은 매우 불규칙하게 흐르게 된다(난류유동, turbulent flow). 수도꼭지의 물 흐름을 가만히 지켜보면 한번도 같은 형태의 물줄기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만약 한번이라도 같은 형태의 물줄기가 발견된다면, 그것은 난류유동이 아니라 층류유동이다.우리가 보고 다니는 또는 느끼는 유체의 흐름은 대부분 난류유동이다. 자전거나 자동차 또는 배를 타고 갈 때 주위에 흐르는 공기나 물의 흐름은 모두 난류라고 보면 된다. 겨울철에 벽에서 나오 는 스팀으로 방안의 공기가 따뜻해지는 것도 바로 스팀이 난류유동이기 때문이다. 만약 스팀이 층류유동이라면 방안의 공기를 데우는데만 며칠이 걸릴 것이다.유체의 흐름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뤄졌다. 층류와 난류 구분에 대한 실험은 1883년 레이놀즈에 의해 행해졌다. 그는 파이프를 흐르는 물에 물감을 투입해 층류유동과 난류유동을 분명히 보여 주었고, 두 흐름을 구분짓는 변수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제시했다. 그 변수는 그의 업적을 기리어 레이놀즈 수(Reynolds number)라고 불린다. 레이놀즈 수는 유체유동을 공부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왜 골프공에는 흠이 있는가?운동경기에 사용하는 공들의 크기는 서로 다르지만 표면이 매끄럽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골프공은 이상하게도 표면이 옴폭하게 패어 있다. 골프공을 매끈하지 않게 만든 이유는 공을 쳤을 때 공중에서 생기는 공기저항을 줄여 더 멀리 날아가도록 하기 위하여 과학적인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표면이 곰보인 골프공이 매끈한 골프공보다 두 배 이상 멀리 날아간다. 울통불퉁한 형상을 딤플(Dimple)이라고 한다.골프공은 원래 회양목으로 만든 나무공이었다. 그러나 회양목으로 만든 골프공은 골프채로 칠 때 멋진 소리를 냈지만 멀리 가지는 못했다. 그 후 쇠가죽을 바느질해 만든 껍데기 속에 삶은 깃털을 채우고 돌덩이처럼 말린 후 나무망치로 두들겨 둥그렇게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골프공은 나무공보다 멀리 날아갔다. 새로 산 매끄러운 공을 자꾸 치다보면 공이 닳게 되고 표면이 거칠게 변했고 이런 공들이 새 공보다 멀리 날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골프공이 한없이 날아가지 못하는 것은 공기의 저항을 받기 때문이다. 공기 저항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공의 앞 뒤 표면에 작용하는 압력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형상저항으로 이것은 물체의 모양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두 번째는 공기와 공의 마찰로 인해 발생하는 마찰저항이다. 공은 형상저항이 전체저항의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형상저항을 줄여주면 공은 멀리 날아간다.공이 날아갈 때 공기는 공의 표면을 따라 흐르게 된다. 그러나 공의 속도가 커지면 공기의 흐름은 공의 중간쯤부터 표면에서 멀어진다. 그러면 공의 중간 이후부터 공기의 속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공기 흐름의 방향이 바뀌어 공 뒤쪽의 압력이 떨어진다. 그러면 공의 앞쪽에는 높은 압력이 나타나고, 뒤쪽에는 낮은 압력이 발생하여 큰 형상저항이 형성되므로 공은 멀리 갈 수가 없다.공의 표면에 돌기를 주면 앞 표면에서 난류가 발생하여 공기의 섞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것이 공의 뒤쪽에서만 이루어진다. 마찰항력이 증가하지만 압력항력을 현저히 떨어뜨릴수 있게된다.(마찰항력의 영향이10%미만인반면 압력항력의 영향은 90%). 이렇게 되면 낮은 압력이 나타나는 공의 표면이 줄어들게 돼 공의 형상저항이 감소하여 공은 멀리 날아 갈 수 있게 된다.
200200527김 승모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본적은 별로 없었던것같다. 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내어서 되돌아볼 생각을 안했었던 것 같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간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며 변해간다. 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모두 위인들이나 혹은 유명인들처럼 파란만장하고 특별한 업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사람들중에 환경적요인이나 유전적요인이 전부 일치하는 사람은 단 한 쌍도 없을것이기 때문에 각각의 삶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몇일간 짧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나역시 그다지 특별한 위인,유명인 들의 삶과는 다른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20세의 아직 적은 나이 이지만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잘못된 일을 고쳐나간다면 먼 훗날에는 지금의 나 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을것이라고 믿으면서 이 글을 시작해 볼까 한다.나는 1983년 05월 21일에 성모병원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고있다. 우리 가족은 아빠,엄마 그리고 누나와 내가 있다. 누나는 세살 위로 가금 나와 다투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면 항상 내가 잘못했고 누나는 나를 위해줬던 것 같다. 물론 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태어날때부터 부모님을 많이 힘들게 했었다. 이유인즉, 보통의 아이들은 10개월간 엄마 뱃속에서 크다가 나오지만 나는 7개월만에 나온 것이다. 세상이 뭐가 좋아서 일찍 나오고 싶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7개월만에 나온 탓으로 죽을뻔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찍 나온 아이들이 인큐베이터에서 자라는 동안 눈이 멀거나 다른 장애를 격게 되는 일이 많다고 하는데 나는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게 된게 다행이라고 한다. 인큐베이터에서 내가 너무 작고 약해서 태어난 05월 21일에 신고를 못하고 나중에 병원에서 나와서 신고를 하게 되어서 지금 나는 주민등록번호를 831115- 로 가지고 있다. 물론 지금의 나는 못 느끼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스무살 인생중에 가장 힘들었던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어릴때 우리집은 내가 몸이 약해서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누나는 친척집에 가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나는 항상 엄마 등에 엎혀 병원을 들락날락 했었다. 유아기때의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지만 한가지 특징은 보통의 아이들보다 약해서 주위의 사람들과 내가 고생했다는 것이다.내 기억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춘천 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릴때 포일리에서 아빠의 직장이 춘천으로 발령이 나서 춘천에서 살았었다. 호반의 도시 춘천 은 어릴때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추억의 공간이다. 춘천에는 눈이 많이 와서 겨울마다 그때의 내 키에 허리정도까지 눈이 차올라서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곳에서 국민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YMCA 에 다녔었다. 이곳에서 연극도 하고 약간의 공부와 체력을 기르는 운동 등을 했었다.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1학기를 마치고 아빠의 직장이 다시 발령나셔서 서울, 지금 살고있는 잠실 로 이사오게되었다. 이곳에서 지금 동네의 신천초등학교 에 입학하였는데 어렸을때와 마찬가지로 몸이 약했었다. 국민학교 1학년때 체중에 18Kg라고 하던데 이정도면 보통의 아이들보다는 한참 작은 아이였던 것이다. 국민학교가 내가 살고있던 동네에서 멀지 않아서 같은 동에 살던 친구들과 같이 다니면서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다. 이 시절 나는 팽이돌리기와 제기차기 또는 매미,잠자리 잡기 등을 하며 동네를 누볐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시절이 아무 거리낌없이 가장 편하게 친구들과 지낸 시절이다. 요즘은 어린 아이들이 팽이,제기 등을 가지고 놀지 않지만 내가 어릴때는 다른 아이들도 많이 했었는데 그중에 나는 제기를 가장 잘차는 아이들중 한명에 속해있었다. 국민학교 저학년때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모형 비행기를 만들어서 고무줄을 감아 날리는 대회에서 학교에서 1등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더 큰 대회에 나갈수 있었지만 그때의 사정에 의해서 포기했던 아쉬움도 가지고 있다. 이 때 한때는 조립식 프라모델 만들기에 정신이 빠져서 지금도 그때 만들었던 비행기나 탱크같은 모형 작품들이 있다. 국민학교 5학년때 윤창진 이라는 친구가 그때의 나를 많이 변화시켰던 친구다. 창진이와는 우리 엄마와 창진이네 엄마가 성당에서 알게되면서 우리도 성당에 다니면서 친해졌다. 성당에 다니면서 매 주마다 창진이와 놀러 다니고 성당에 빠지면서 친구들과 놀면서 성당에 다니는 시간을 노는시간으로 많이 소비했었다. 그러면서 그때까지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창진이와 다른 친구들과 성당에서 오는길에 테니스공으로 축구를 하고 농구도 하며 소심했던 나 자신을 어느정도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담임선생님인 신웅 선생님도 기억에 남는데, 나와 친구들이 그때 말썽을 많이 피우고 소위말하는 나쁜 아이들 이었다. 그래서 신웅 선생님께 야단도 많이 맞았고 혼도 많이 나서 아무래도 지금까지 가장 고마웠던 은사님중 한분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신웅선생님을 생각하며 나도 나중에 나이가 먹으면서 누군가의 존경을 받고 누군가의 기억속에 자리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점점 자라서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중학교 역시 집에서 그다지 멀지않은 잠신 중학교 라는 곳이었는데 이때 큰 변화가 있었다. 바로 우리집에 컴퓨터가 생긴 것이었다. 컴퓨터는 지금까지도 안하는 날이 없을정도로 푹 빠져있는 것 중 하나이다. 국민학교때 동네를 누비며 팽이,제기,야구,축구 등을 하며 돌아다녔다면 중학교때는 친구들과 컴퓨터 얘기를 많이 나눴었다. 그때 배운 컴퓨터 실력을 바탕으로 지금도 왠만한 컴퓨터 고장이나 프로그램정도는 고칠수 있을 정도이다. 중학교때 한번은 엄마 아는분이 다른 동네에서 집에 컴퓨터가 고장나셨다며 나를 차에 태워서 데리고가서 컴퓨터를 고치고 다시 집에 온적이 있었다. 그때 엄마도 나를 자랑스러워 했었고 나도 기분이 좋고, 컴퓨터를 정말 잘 할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당시에 내가 우리 반에 어떤 아이와 싸워서 그 아이가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엄마가 그 아이의 엄마를 만나고 오셨는데 나를 크게 꾸짖이실줄 알고 풀이 죽어있던 나에게 괜찮다고 다음부터는 싸우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그때의 일을 너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중학교때의 일은 생각해보면 컴퓨터 프로그래밍 배운일과 친구들과 컴퓨터에 대한 토론을 한 일들 외에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중학교때의 성적은 국민학교때 상위권 그룹이었던것에 비해 중학교때는 중 상 정도 했었다.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정말 힘들었던 것이 초, 중학교는 집과 가까웠지만 고등학교는 먼 곳으로 배정받은 것이었다. 그것도 왠만한 내 또래 우리동네 애들은 가까운 잠신고등학교로 배정 받은 반면에 우리 반에서 나를 포함해서 두명만이 영동 고등학교 로 배정 받은 것이다. 영동 고등학교는 남자고등학교로 집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쯤 걸리는 곳에 있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집앞에 배정받아서 우리 동네만 알고 우물안 개구리처럼 생활하는 것 보다 차라리 먼 고등학교에 배정받아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환경에서 생활 했던 것이 나의 생활력을 높여주지 않았을까? 생각 해 본다. 고등학교때도 역시 그 좋아하던 컴퓨터 때문에 학업에 많은 지장을 주었다. 그것도 컴퓨터를 잘해서 그것만으로 대학에 진학할수 있는 실력이 아닌 다른 분야 즉, 게임에 빠졌던 것이다. 고등학교때는 역시 집에서 멀기 때문에 동네에 같은 국민학교,중학교를 나온 나와 친한 몇몇 애들과 같이 다니게 되었는데 이 애들과는 계속 연락하며 친목을 다지고 있다. 특히 국민학교때부터 계속 친해왔던 몇몇은 나와 가장 친한 친구 로써 나의 마음 한구석을 튼튼히 채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