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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기 목사 이단성 연구
    조용기 목사의 이단성 연구목 차Ⅰ. 서 론Ⅱ. 본 론1. 조용기 목사의 이력2. 조용기 목사의 신학3. 조용기 목사의 이단시비와 사이비성 규정4. 조용기 목사가 이단성에 대한 비판5. 조용기 목사 신학 비판Ⅲ. 결 론부록1)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동국대 강연 전문부록2) "조용기 목사 동국대 특강 발언 파문과 관련한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이승구 교수의 인터뷰 전문"Ⅰ. 서 론한국 사람이라면 조용기가 누구인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사람이다. 물론 그가 이룬 업적은 상당히 놀라운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였고 선망의 대상이 또한 되었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는 조용기 목사를 고운 시선으로만 바로보고 있는 것이 아니며, 이것은 한 두 해 된 일이 아닌 아주 오래된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한국 기독교계는 조용기 목사에 대해서 능동적인 면 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면 뒷 수습하기 바쁜 상황에 늘 처해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파악이 되지 못하고 권위 없는 권징은 아무런 효과도 없으며 더 나아가 이단 시비가 단지 개인적 입장 차이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조용기 목사는 기독교계에 한 가지 놀라운 숙제를 하나 던져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조용기 목사의 동국대 강연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 조용기가 이런 교계의 반응에 위협을 느끼거나 혹은 관심이나 가지고 있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한국 기독교 역사 100년을 돌이켜 볼 때 분명 눈부신 발전이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성장이라는 깃발을 높이 든 많은 교회가 양적인 성장을 했었고, 처음엔 아무 문제없는 것으로 보이다가도 최근에 와서 본체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광림교회가 그랬고 금난교회가 그랬으며 그 외 많은 교회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형의 교회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닌 담임 목사의 주관적 판단으로 교회를 세습이라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아들을 후계자로 삼으려는 수고(?)를 서슴 예언 등을 통해 신앙을 확인하게 되면 성경은 자동적으로 무시된다. 삼중 축복 원리가 기적을 구하는 원리이지만 사실 성경 자체가 기적(살후 3:17)이다.셋째, 민간 신앙화 한다. 삼박자 축복원리 강론의 핵은 “복”이다. 한국 사람은 “복”을 참으로 좋아하는 민족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오복을 말할 때 훌륭한 아내를 맞는 것, 잘 사는 것, 편안한 삶, 덕을 쌓는 일, 죽을 때 뜻을 이루는 일등을 말한다. 그래서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신관은 “복과 화를 내리시는 분”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복을 비는 것이며 구속의 복음을 전하는 선경 말씀보다는 돈 벌고 병 낫고 물질 축복을 받았다는 카리스마적인 체험간증이 더 환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교회의 특징은 헌금을 강요하는데 헌금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하여 마음과 몸을 바치는 뜻에서 드리는 제사”임에도 불구하고 소원성취를 위하여 계약금 형식으로 헌금을 내도록 종용하게 되고, 이 소원 헌금은 배금주의 사상을 교회에 끌어들이는 무서운 결과를 낳게 하였다.넷째, 성서를 너무 한편으로만 일방적으로 보게 한다. 성경을 너무 영적으로만 보아서도 않되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성경이 축복을 말하기도 하지만, 심판도 말한다. 좋으신 하나님뿐 아니라 엄위하신 하나님도 소개해야 하며 성경을 보는 눈도 성숙되어야 할 것이다.3. 조용기 목사의 이단시비와 사이비성 규정조용기 목사의 이단시비는 1981년5월 조용기 목사의 교단인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 실행위원회에서 ‘조용기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면서 표면에 들어나기 시작했고 그해 3월 김덕환 목사가 서울시내 교역자 1천명을 대상으로 ‘조용기 목사에 대한 앙케이트 조사’를 토대로 10월31일 ‘조용기 목사 그는 과연 이단인가?’ 라는 교리 비판서를 저술하여 전 교계와 사회에 조용기 목사 이단시비 돌풍이 일어났었다”)예장 통합측의 발표는 1983년 제68회 총회를 통해 장로교(통합)에서 조용기 목사를 교리는 진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는 복음이 죄 사함보다 더 많은 것을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적절한" 믿음이 있다면 분명히 기적을 경험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믿음에 대한 조용기의 견해는 다소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기적이 없다는 것은 믿음도 없다는 것을 말한다.5) 잘못된 죄론(doctrine of Sin)죄에 관한 교리와 관련해서, 조목사는 인간이 죄로 향하는 성향을 간과하고 있다. 그는 상상력과 사고력을 포함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가짐으로써 인간이 무한의 잠재력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개념은 믿는 사람조차도 자신의 옛 인간성과 새 인간성간의 다툼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강조하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것이다. (롬 7:15-24) 조용기는 인간의 죄를 인간 주권으로 대체하고 있다.6) 잘못된 천사론(doctrine of angelology)천사론에 대한 조용기의 교리는 그를 이원론과 신비주의로 이끌어 온 그 자신의 "사차원"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악의 사차원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그는 마귀의 영향을 마귀 들린 것과 혼동하고 있어서, 모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거나 마귀가 들어가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조목사는 모든 죄와 병을 마귀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7) 잘못된 교회 성장학(Church growth)조용기 목사는 시각화가 되지 않으면 교회가 성장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모든 목회자들이 시각화(사람의 정신 속에서 환상 혹은 꿈의 영상이 기적이나 능력을 가져오는 과정)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우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법은 비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알려진 신비술적 기법 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서, 수 천년 전에 무당이나 마술치료사가 사용했던 것이다. 그것은 우선, 근거가 비성경적인데, 조용기 목사는 그의 이상한 이론에 맞추기 위해 성경의 구절을 곡해하고 있다. 그는 또한 꿈과 환상의 위험성과 속임수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다.(신명기 1의 목사로써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현재 재적 75만 명의 성도가 저희 한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습니다. 제가 소속한 교단은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로서 약2천 교회에 150만 성도들이 모여 있고 세계적인 단체로서는 세계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라고 해서 세계총회에는 한 5천만 명이 되고 오순절적인 우리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의 전체 연합은 약 2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교단에서 제가 소속되어 있는 것입니다.저는 원래부터 예수 믿는 환경에서 자란 것은 아닙니다. 전적으로 기독교와는 관계가 없는 완전한 불교 문화권에서 태어났었습니다. 경상남도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 31번지니까 바로 우리 집에서 북쪽으로 가면 선남사가 있고 조금가면 경주불국사가 있고 부산으로 내려가면 양산 통도사가 있고 완전히 절 가운데에 우리 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절간에 종소리 듣고 잠자리 들어가고 아침에도 종소리 듣고 깨는 그러한 분위기고 우리 할머님은 양산 통도사에 극락화라는 이름을 받고서 그곳에 소속된 분이었고 아버님은 평생을 선불교를 연구하신 어른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어릴 때 제가 장님이니까 참선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늘 저보고 하신 말씀이 "심시불 이다, 부처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까 직지인심견성성불하라. 그냥 깨닫고 나면 부처가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아버님께서는 늘 저보고 계유불성 이기 때문에 벌레 한 마리 속에도 불성이 있다. 그러므로 살생 하지 마라 이런 말씀을 늘 듣고 교육을 받으면서 제가 자라났습니다.그런데 제가 17살 될 때에 1953년도 6.25전쟁이 막 끝났을 때에 폐병3기에 걸려서 피를 많이 토하고 쓰러졌습니다. 6.25때에 우리 국민 전체가 공격을 당하는 시대였는데 우리도 빨치산의 공격을 받아서 집이 다 불타버리고 살지 못하고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왔습니다. 부산에 내려와서 살 수 없을 때이기 때문에 많은 노동을 하고 고생을 하는 중에 영양실조에 걸리고 피를 많이 토하고 고등하교 1학년 때 제가 쓰러졌는데, 병원에 가서계신 것이다. 부처님이 계신 곳이 천당이고 낙원이고 극락이 되야지 죽고 지금은 생지옥이 되어 있으면서 나중에 죽고 난 다음에 가겠다 그러면 거짓말 아니겠는가? 그럼 그 여자 말대로 현재 그 천국이 와야 한다. 사실 그 여자가 지옥에 살고 잇다. 그럼 내가 그 여자에게 무슨 말씀을 증거할 것인가, 우리 기독교에서는 여러분, 소망을 주는 것을 굉장히 중점을 삼고 있습니다. 소망의 종교라고 그러는데 왜 소망을 주냐며는 기독교의 교리에서는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시고 에덴 낙원을 지으시고 그 속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 속에 두었는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가져온 3대 재앙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재앙은 죄를 지어서 영원히 죽고 마귀의 종이 되고 그래서 말미암아 모든 부정과 부패, 더러움이 생기고 둘째는 환경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고, 생활고에 허덕이게 되었으며 셋째는 늙고 병들고 몸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3대재앙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는 태어날 때부터 3대 재앙 속에 살면서 죄짓고 마귀의 종이 되고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고 고통당하고 죽는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은 이 3대 재앙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오셨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윤리나 도덕이나 종교를 가르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오신 주님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원리가 그런 것입니다..교리나 율법이나 계명은 뒤에 오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구속을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짐과 저주와 질병과 죽음을 짊어지고 죽음으로 우리를 속량해 주셨다. 그러므로 남녀 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저는 그 원리가 우리 아버님이 저 어릴 때 원효대사에 대해 얘기 한 것과 너무나 일치하더라구요, 원효대사님이 "불교에 너무 계율이 많은데 그 계율을 다 지켜서 구원을 받을 수 없는데 나무아미타불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원효대사의 외침이 그거
    인문/어학| 2010.05.25| 22페이지| 2,000원| 조회(1,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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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교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청중 심리 연구
    설교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청중 심리 연구Ⅰ. 서 론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설교를 통하여 그의 백성들을 함께 불러 모으시고 세우신다. 설교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가장 중심적인 수단이 되어왔으며, 설교가 강력하게 행해지던 시대는 영적으로 충만했고 교회도 건강했다. 반면 설교가 무기력하게 진행되던 시대에는 교회는 쇠퇴해갔다. 이러한 점 때문에 교회는 설교를 새롭게 하려는 노력을 계속했었고, 또 다른 요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설교자가 다양한 설교 형태를 활용하여 설교를 준비한다는 것은 가족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주부가 그날의 메뉴와 식사할 사람을 고려하여 다양한 형태의 용기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중요한 일이다. 아무리 음식을 잘하는 주부라고 할찌라도 가족 구성원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먹지 않아서 결국 버려지게 될 것이다. 설교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많은 준비와 열심을 가지고 설교자가 준비를 했다손 치더라도 청중의 닫힌 마음에 소리쳐 외친다면 그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어떤 사람은 예전의 선지자들의 외침에 대한 것에 의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들은 그저 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외쳤던 것은 그 당시에 상황에 적절한 외침이었고, 또한 많은 파장을 일으켰으며, 더 나아가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한 자들의 외침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가정주부는 10년이건 20년이건 어떤 음식이든 동일한 그릇에 담아 식사를 내놓지 않는다. 그 날과 음식의 종류와 사람들의 원하는 것에 맞추어서 음식을 만들고 담는 것처럼, 설교자는 다양한 설교의 형태와 설교의 내용 그리고 청중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연구하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어떤 구조를 통해 작성하여 청중들로 하여금 그것을 듣게 하고,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렇게 설교 형태는 설교 작성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며, 말씀의 커뮤니케perience)과 관계된 말인데, 단순한 생각이나 아이디어의 착상이 아니라 다양한 세상으로부터 세계를 형성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단순히 몇 가지 사실을 인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을 제시하시는 분에 의해서 형성되는 종합적인 통일성(synthetic unity)”이다. 그러므로 의식은 단순하게 지나가는 마음의 생각이나 일시적인 기분(fancy)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 경험하는 세계를 세우는 “계획된 행동”(the act of intentionality)이다.)70년대 이후 형성된 “새로운 설교학 운동”을 통해 제시된 대표적인 설교 이론들과 방법론을 정리해준 리차드 에슬링거(Richard Eslinger)는 버트릭의 설교 방법론을 소개하며 “현상학적 방법론”(a phenomenological method)라고 명명한다.) 비록 그의 방법론이 “현상학적”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에 대해서 버트릭은 그렇게 반가워하지 않은 듯하다. 왜냐하면 그는 현상학자도 아니고 현상학에 근거해서 그의 이론을 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독교 설교는 본질적으로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중점을 두지 않고, 설교를 통해 청중들의 마음의 건반을 누를 때 “무엇이 일어나는가”에 주안점을 두고 전개되기 때문에 어쩌면 에슬링거의 평가는 적절한 것이다. 설교가 선포되고 들려지는 과정과 결과는 현상학적인 특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현상학의 방법론을 추구하거나 그것이 그 뿌리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설교학 이론에는 이러한 주장들이 강하게 배어있고, 어렵지 않게 그것을 찾을 수 있다.2) 청중에 대한 이해Reginald H. Fuller에 말에 따르면, “설교자는 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현 시대와 그 문화에 대해서 많이 알 필요가 있다.”고 했다.) Fred B. Craddock은 이러한 과정을 ‘연구의 두 초점’ 이라고 불렀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초점은 청중에게 맞추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그들의 개인적,으로 나눌 수 있다. 한 그룹은 구약의 선지자들이고, 다른 한 그룹은 신약의 설교자들이다. 우리가 표적으로 삼은 청중을 어떻게 추적할 수 있을 지, 선지자들과 설교자들이 보여준 예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1) 구약의 선지자들사람들이 구약의 선지자들을 언급할 때마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그들이 한결 같이 뜨거움과 요기와 역동적인 품성을 지닌 거룩한 진리의 선포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그 당시 정치, 사회, 종교적인 지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발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역사를 해석해 주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꿰뚫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상화에 따라 그들은 거기에 맞는 영원한 하나님의 섭리를 알려 주었다.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했다. 구약 전체를 통해서 선지자라는 말 속에는 예언이라는 개념이 들어있지만, 하나님의 사자들은 우선적으로 자기 시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 했다. 그들은 미래를 예언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행하심과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하는 데 주력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예언자라기보다는 “앞에서” 말하는 자였다.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자신들이 사회적인 전통과 여론에 얽매이지 않을 뿐 아니라 누구와도 타협할 수 없는 개인주의자들이라고 거듭 밝혔다.선지자들은 단순히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탄핵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은 단순히 메시지를 기록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을 대변하였다. 때로는 그들 자신이 선포되는 메시지가 되기도 했다. 그들은 어디를 겨냥해서 선포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았으므로 선포할 때마다 표적의 중심을 맞추었다.2) 신약의 설교자들신약 시대의 설교자들은 도시 한복판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 대중의 관심을 기독교로 향하게 했던 하나님의 사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를 기독교인들에게는 물론 이방인들에게도 선포했다.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자들은 이방인들에게는 보다 긴급하고 복잡한 영적인 문제들을 다루었다. 신약의 설교자들은 교회에서 나타났던 신학적접근하시는 기지를 발휘하셨다.예수님의 설교를 들어보면 사람들이 가려워하는 것을 정확하게 긁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은 자신이 표적으로 삼은 청중을 추적할 수 있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표적으로 삼은 자의 관심사들로부터 시작하여 그것들을 진리 쪽으로 옮겨 가셨다.3. 청중의 공통적인 심리1) 청중은 고향을 그리워한다.도시 교회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신이 속한 교회에 많은 사랑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원히 거할 곳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거쳐지나갈 교회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신도시의 교회들이 일 년에 새로 등록하는 숫자와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성도의 숫자를 비교해보면 그 현상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특히 젊은 부부가 많이 사는 작은 평수의 아파트촌에선 더욱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사람들은 낯선 곳으로 옮겨와 생활하게 되면 활동을 멈추게 되고 상실감과 외로움과 무력감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한 때뿐이다. 일단 뿌리를 내려서 여러 가지 관계가 형성되고 일상적인 일에 틀이 잡히면 활기가 넘치기 시작한다. 이것에 관해서 Oswald Chambers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있는 곳에서 성장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면에서 교회는 적극적으로 새신자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특히 새로 등록을 하는 성도는 분명한 설교자의 가치관과 교회의 구성원으로써의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일정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야 할 것이다.2) 청중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다.사람들은 늘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을 해서 모든 것을 이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설교자의 설교를 설교자의 의도나 목적과는 상관없이 모든 것을 자신의 이해의 척도에 따라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청중은 설교자의 설교를 다 이해 했다고 스스로 자부하기도 할 것이다.3) 청중들은 두려워한다.청중들은 인생에서 두려움의 문제로 늘 고민한다는 것이다. 서 해결하길 원하며, 또한 소속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그래서 설교자는 청중 앞에 설 때, 그들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어야 한다.4. 청중 이해와 적용1) 청중의 주의를 사로잡아야 한다.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위해선 청중의 주의를 재빨리 사로잡아야 한다. 설교를 듣는 청취자로써의 청중은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 또는 주의 집중이 떨어지는 내용이 전개될 때는 특히 본인이 관심 없어하는 것에선 다른 것을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설교자의 처음 설교 개시 2-3분이 청중의 관심을 지속시켜야 하는 중대한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다.(1) 청중을 사로잡는 다섯 가지 단계스피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청중을 사로잡아야 하는데, 청중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제 1단계, 청중의 주의나 관심을 모으는 단계이다. 제 2단계, 청중의 흥미를 일으키는 단계이다. 제 3단계, 청중에게 감동을 주는 단계이다. 제 4단계, 청중을 설득시키는 단계이다. 제 5단계, 청중의 행동을 유발시키는 단계이다.(2) 청중의 돌출 행동에 대한 대응스피치를 시작하기 전에 청중을 관찰한다. 사전에 파악한 청중 분석과 부합하는지 살펴보고, 변동 사항이 있다면 재빨리 변화된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3) 청중을 집중시키는 방법① 궁색한 변명으로 시작하지 말라.② 신선하고 부드럽게 말하라.③ 스피치 시간을 엄수하라.④ 패기 있는 목소리로 말하라.⑤ 긴장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⑥ 온몸으로 말하라.⑦ 유머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라.⑧ 말의 간격을 유용하게 이용하라.⑨ 압도하는 분위기로 임하라.2) 기대를 만족시켜라.메시지는 반드시 청중의 관심을 만족시켜야 한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이 몸담고 있는 일이나 관심 있어 했던 것이나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셔 관심을 복음 선포로 이끌었다는 것을 이미 앞에서 다루었다는 것이다.설교가 장례식의 장송곡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설교를 지루하게 이다.
    인문/어학| 2010.05.25| 8페이지| 2,000원| 조회(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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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잡지를 통한 기독교의 전도
    신문잡지를 통한 기독교 전도1. 서론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다.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 말씀을 통해 타락한 인간과 창조주와의 소통이 가능했다. 그것은 영원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니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질 영원한 미래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 말씀은 직접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주시기도 했고, 때로는 선지자를 통해서, 그리고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에게 가르침으로, 그 후로는 여러 사도들을 통해 내리셨다. 지금도 그 말씀은 여러 가지 방법과 양식으로 세상에 전해진다. 그 일에 믿는 우리들이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문서선교의 의의가 있다.초대교회 선교역사를 살펴본다면, 오직 사도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힘을 얻고 세계 곳곳으로 나가서 말씀을 가르치면서 선교했다. 특히 우리 민족은 이 문서를 통해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도 민족적으로 다행이다. 그러나 개화 이후 서구 근대문화 수용과정에서, 또는 식민지 정치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문화적 상황에서, 기독교 선교가 다양한 양식으로 기능을 담당해왔고, 그 결과가 우리들의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긍정적인 업적을 남긴 것을 부인할 수 없다.한국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문서선교에 주력, 좋은 선교 모델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문서 선교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한국교회의 문서선교가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문서선교의 참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문서선교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살펴본다.현대의 전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조짐을 보여 온 한국 교회성장의 정체현상은 교회지도자들에게 긴장을 주었으며, 대부부의 교회성장이 수평이동에 의한 것으로 진단되면서 전도가 힘들어졌다는 자조적 한숨을 쉽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에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런 상황에 맞는 전도 프로그램을 여러 각도로 소개하려고 한다. 그래서 일부는 서구 교회에서 수입되었고, 또 다른 일부는 국내 전도자들과 모범적 전도 사역을 한 교회들에 의해서 생산되곤 ‘농리편설’의 난을 두어 농사법을 계몽하였고, 가내수공업적인 면을 지도하였으며, ‘국가문답’ 등의 문답란을 통하여 한국인을 계몽하였다. 특히 5권 37호(1901. 9. 12) 이후에는 한국의 역사를 소개하는 고정란을 두고 있으며, 김유신·정몽주·발제상 등의 인물을 소개하고 있는 점이 한말이라는 시대상황에 비추어 주목된다.2) 민주주의의 도입과 민족 운동개화기 기독교 출판의 역할 중 하나는 유교를 기반으로 하여 구축되었던 전제봉건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기독교적인 윤리와 정신을 기반으로 한 서구 민주주의 유입과 정착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초기 기독교 신문이나 잡지는 이 문제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창간사를 보면 알 수 있다.도 같은 취지를 밝히고 있다.서양의 새로운 학문과 지식을 소개하고 그 실천운동을 통해 개화를 추구하려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취지에서,나 은 성경이나 교회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과 함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에 관한 폭넓은 기사를 수록하고 있다.‘충군애국’(忠君愛國)으로 표현되는 구한말의 애국운동에 교회 신문들이 크게 공헌하였는데, 이 1898년 8월 22일에 고종황제 탄생일을 기념하는 호외를 발간하고 정기 구독자에게 황제 사진을 증정한 것 등이 그것을 증명한다. 1898년 8월에도 서울 시내 교회 연합으로 황제탄신기념집회를 가졌는데, 가 과 함께 이를 자세히 보도하였다.외세, 특히 일본의 경제적, 정치적 침략에 직면하여 민족 자주와 독립을 추구하는 방향에서 구한말의 민족운동이 정립되어 나갔는데, 이 과정에서 기독교 신문 잡지는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하지만 합방을 전후로 하여 선교사들이 내걸었던 교회의 비정치화 내지는 정교분리 정책으로 국가 및 사회 현실에 대한 신문, 잡지의 비판 기능은 약화도리 수밖에 없었음을 또한 알 수 있다. 1905년에 장·감 연합신문으로 발족된 이후 에 이르기까지 종교적인 것으로 거의 모든 내용이 구성된 점이라든가 1909년에 창간된 이 창간호에서 “아모던지 우리 병사는 치상등 다양하게 취급되었다.? 기독신문: 1938년 8월 16일 기독신문사에서 창간한 기독교 주간신문. 일제 말기 개신교 연합신문으로 창간되어 기독교 신문의 통합을 시도했다. “그러나 점차 일제의 강압 하에 발행되는 신문으로써 기독교 정론지로서의 정통성을 잃고, ‘전도보국’이라는 표어 아래 여러 내용에서 변질된 교회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42년 4월 23일 통권146호로 폐간 되었다.(2) 월간신문?『구셰신문』(THe War Cry): 1909년 구세군에 의해 창간된 월간신문으로써 발행인은 호가드(Hoggard). 이것은 구세군의 교리, 조직, 활동 등을 소개하고 있다. 1918년부터는 부인들을 위한 별도의 난이 신설되었고, 1929년에는 영어뉴스, 청년, 여학생, 가정부인, 사회사업 란 등이 새로 등장하였고, 1940년 11월부터 1942년 12월까지 일본어가 혼용되었고, 1944년 1월까지는 어용 기독교 종합지인 『기독교신문』에 흡수되어 폐간 상태가 되었다. 1921년 3월호부터 발행된 ‘금주 특집호’등은 한국 기독교 절제운동에 큰 공헌을 했다. 이 신문은 아직 현존하는 기독교 최장수 신문이다.?『면려회보』(The Christian Endeavor Bulletin): 1931년 1월 9일 창간, 경성기독교청년 면려회 조선연합회에서 앤더슨을 발행인으로 발행. 한국기독면려회가 1924년 전국 연합회를 조직하고 장로교 선교부와 총회의 지원으로 운동이 본 궤도에 올랐는데, 이때 그 회지 발간의 필요에 따라 발간되었다.?『복음과 종교교육』: 1931년 5월 18일 조선예수교장로회의 경남노회 종교교육협의회에서 맥레(F. J .L. McRae)를 발행인으로 창간한 기독교 월간신문이다. 주된 내용은 복음 정신의 구현과 종교교육의 이론적 뒷받침을 위한 기고들이 많다. 1937년 제호를 『경남교회보』라고 고쳤다. 이것의 권두언에서 “본보는 적으나 트나 불상한 생명의게 주님의 구원을 전해주난 사명을 한다면 이로써 만족으로 아는 까닭이라...”고 그 간행 취지를 밝히고 있다 사명을 다했다. 또 한국 역사와 문화에 관한 논문과 한국 기독교사에 관한 논문, 한국선교와 교회성장에 관한 자세한 보고와 자료를 수록. 1940년에 폐간? The Korea Review: 1901년 감리교 선교사 헐버트가 발행. The Korea Repository의 후속 성경이 강하다.? The Korea Field: 1901년 장로교의 빈튼에 의해 발행된 것으로 장로회 선교부 기관지 성경이 강하다. 1904년 남북감리교 연합으로 발행한 The Korea Mission Field로 통합되었다.? The Korea Magazine: 1917년에 창간. 발행인은 크램(W. G, Cram), 편집인은 게일과 벡크(S. A. Beck)이다. 이 잡지는 한일합방 이후 소멸되어 가는 한국 고전 및 문화를 재발견하려는 국학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한국학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시도한 점에 있어 큰 공적을 남겼다.(2) 한글잡지① 월간잡지: 신학월보(1900년 12월-한글잡지의 효시, 미감리회 선교사 존스가 인천에서 발향. 이 잡지는 교회소식 뿐 아니라 신학 내용까지 포함하여 초기 한구교회의 신학 형성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은혜진리(1904년-플리머드 현제하 선교사 노리마츠에 의해 발행된 월간 전도 잡지), 가뎡잡지(1906년 6월-발행인 유일선, 발행처는 경성 남대문안 상동청년학원 가정잡지사. 순수 민간잡지, 이 잡지는 당시 발행되던 다른 잡지들과는 달리 순 한글 내려쓰기로 편집을 했고, 주로 가정 미담을 통해 가정교육, 자녀교육, 소아교육, 가정교육 위생 등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보급하여 가정부인을 깨우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성경잡지(1918년 창간-본윅(G. W. Bonwick)이 발행, 게일이 편집인이며, 조선예수교서회에서 발행, 국한문혼용, 이 잡지는 발행경비도 선교부의 지원을 받아 창간되었다. 선민(1919년 1월 30일 창간-이 잡지는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민족 갱생, 독립운동의 열의를 북돋아 주시 위해 발행된 것으로 그러한 목적이 선교8일), 설교(1936년 6월 19일-신사참배 반대로 설교를 중지당하고 교회를 사임해야 했던 김규당 목사가 문서선교를 할 계획으로 개인잡지 형식으로 간행했다. 일제의 검열로 인한 끊임없는 어려움으로 1941년 11월 강제 폐간), 새사람(1937년 1월 1일), 복음운동(1937년 1월 1일-논문과 시, 수필, 소식 등이 실림), 십자군(1937년 5월 1일-자유주의 신학자로서 배척을 받았던 김재준의 개인잡지 형태), 십자가(1937년 6월 20일), 신앙세계(1938년 7월), 부흥(1945년 12월 10일-삼백만 부흥운동의 기관지 형식으로 발행되었다. 6.25를 계기로 이 운동이 중단됨에 따라 기관지 발간도 중단)② 계간잡지: 신학잡지(1916년 2월 창간-발행처는 감리교 협성신학교 교수회, 이 잡지는 계몽과 연구지의 구실도 알차게 했고, 주일학교, 여성문제 등 도 깊이 있고 폭넓게 다루었으며, 일제 당시 한국 기독교 신학운동의 중요한 일맥을 형성하고 있다.), 신학지남(1918년 3월 창간-이 잡지는 한국 보수주의 신학의 형성과 발전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성경조선(1927년 7월-이 잡지는 조선성경연구회의 중심 인물인 함석헌, 김교신 등의 노력으로 창간된 무교회주의 계열의 신앙잡지이다. 일본에서 우찌무라 간조 문하에서 지도를 받은 한국 유학생들의 성경연구모임 동인지 성격을 띤다.), 우리집(1931년 12월 10일-이 내용으로는 육아법, 위생, 질병 예방법, 요리, 가정 예절, 동화, 성경이야기 등이 내용으로서 기독교인의 생활 개선을 목적으로 간행한 것이다. 이는 전국 감리교회 가정일의 교재로 사용), 영남성보(1934년 7월 창간-성결교 목사 천세봉의 개인잡지였다. 이는 영남 지역의 고세 확장과 성결운동을 목표로 했다.), 주교지남(1935년 4월 30일-경성성결교회 유년부 주일학교 기관지)③ 연간잡지: 배화(1929년 5월 10일-이는 초기의 기독교 학교의 교지이지만, 문예 중심의 단순한 여학교 교지의 성경을 뛰어넘어 여성 종합교양지러서의 성격.
    사회과학| 2010.05.25| 14페이지| 2,000원| 조회(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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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적 입장에서 본 문화
    기독교적 입장에서 본 문화글 목차1. 문화의 정의,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2. 형식과 의미3. 개인과 문화4. 물질문화와 기술1. 문화의 정의--문화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좁은 의미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가 포함되지 못하는 나머지 부분이요, 넓게 말하면 우리 삶의 전반을 포괄하는 말이다. 현대 문화에 대한 시각과 이론의 전개는 이 두 가지 관점에 기반을 두고 발전해 왔다.오늘날 문화에 대한 논의가 끝없이 확산되는 이유는 문화에 대한 불분명한 개념과 그것이 갖고 있는 몇 가지 특징과 무관하지 않다.첫째, 현대 사회에서 문화는 우리의 일상이나 사고나 행위 전체를 포함하는 일반적이고도 매우 광범위한 개념으로 확산, 사용되고 있는 까닭에 문화의 실체 파악이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멋대로 해석이 가능하고 자의적인 설명이 행해질 수 있다. 실제로 현대사회의 문화 현상을 진단하는 이론이나 시각들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엄청난 간극을 보여 주고 있다.또 다른 특징은 문화가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의 삶이나 사고방식이 바뀌는 것처럼 문화도 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매번 새로운 이론이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현재 문화에 대해서 갖가지 주장과 논의가 난무하고 있는 것은 위의 두 가지 특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문화’라는 말은 “경작하다.” “개간하다.”(‘to till’ or ‘cultivate’)라는 뜻의 라틴어 ‘colore’에서 온 말로써 “개화된다.”(having culture) 또는 “문명인이 된다.”는 말과 같이 협의로 사용된다.문화의 개념을 규정함에 있어서 H. Rookmaker는 “문화란 용어는 지적이고 심미적인 탐구들에 제한되어져서는 안 된다. 그러한 이중성은 우리의 근대 문명의 부조화의 기초가 되고 있다. 생활은 하나여야 한다. 그리고 문화는 단순히 우리의 자연과 그 자원에 대한 이용뿐만 아니라 생활의 형식과 습관과 제도의 창조이다. 한 농부가 밭을 갈 때 그의 7) 문화는 문화적 개념과 행위가 생성되는 것을 기초로 한 기초적 관점들(세계관)로 구성되어 있다.2) 문화의 부가적인 특성(1) 문화는 복잡하다.(2) 문화는 세계관을 중심으로 다소 견고한 통합을 이루려 한다.(3) 문화는 다른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총체적 밑그림을 제공해 준다.(4) 문화는 적응 체계 또는 대처를 위한 메커니즘이다.(5) 생물학적 실재들과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거나, 사람들이 제기하는 모든 의문에 완벽하게 답변할 수 있는 문화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6) 문화는 그것이 절대적이고 완전한 것인 것처럼 인식하도록 교육된다.(7) 문화는 해당 문화에 속한 요소들에 의미를 부여한다.(8) 문화 행위들은 그룹 혹은 ‘다수인들’(multi-personal)의 합의를 기초로 이루어진다.(9) 문화는 과거의 유산이다.(10) 문화는 사람들에게 삶을 규정하는 방식을 제공한다.(11) 문화는 혼잡한 도로들로 묘사될 수 있다. 그리고 문화에 대한 설명은 그러한 길들에 대한 지도로 묘사될 수 있다.(12) 문화에는 의식적인(또는 명백한) 문화와 무의식적인(또는 함축적인) 문화가 있다.(13) 문화에는 이상적인 문화와 현실적인 문화가 있다.3) 성경에서 말하는 문화(1) 문화주체로서의 인간? 인간과 문화적 책임: 창세기 1-2장에덴동산에서의 ‘인간의 문화적 책임’은 ‘다스리다’(dominion),) ‘정복하라’(subdue),) ‘다스리고 지키라’)는 것에 표현되어 있다. 여기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첫째로 인간이 문화적 책임을 지닌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땅으로부터 만들어졌으며 땅에 대한 특별한 책임을 가지는 ‘문화적 존재’이다. 둘째로 인간의 이 문화적 책임은 하나님의 뜻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삶과 관련이 있는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실존구조 안에서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째로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바른 반응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문화적 책임을 ‘문화명령’(c다시 시작하시며 새 창조하시기를 준비하셔서 인간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인간의 문화적 책임의 갱신: 창세기 9-11장인간은 다시금 “생육하여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창 9:1)는 명령을 받게 된다. 여기에 모든 피조물이 “매우 좋았더라.”(창 1:31)하는 처음의 ‘가치판단’은 생략되었다. 이미 창조의 질서(Hamony of creation)가 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반역과 스스로를 즐겁게 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이 새로운 시작에서도 그의 본질적인 성향으로 남아 있게 된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문화를 발전시킬 수 없음을 보여준다. 단지 이 세상에 희망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백성인 셋(지금은 셈)의 계열을 통해서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2) 성경에서 계시하는 문화성경에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그 계시를 듣는 사람 자신의 문화를 통해서 주어졌다.) 신약성경의 언어와 사고형태는 유대적, 헬라적 문화에 깊이 물들어 있고, 바울에게도 또한 희랍철학의 어휘로부터 뽑아낸 것이 있다. 그러나 성경기자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배경으로부터 단어와 비유들을 빌려서 창조적으로 사용하는 과정은 성경에 의해 인도되었으므로, 성경기자들은 그릇되거나 악한 의미들은 씻어내고 진리와 선을 전달하는 매체로 변형시켰다.)4) 그리스도와 문화하나님과 문화와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이 문화를 창조하는 인간을 지으셨기에, 그에게 문화가 전혀 무관한 것일 수 없고, 무책임할 수도 없다. 하나님을 문화에 초월하신 분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은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의 문화를 매개체로 삼는 사실을 볼 때, 문화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의 매개체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초월자이신 그 분을 인간 문화에 속박시키는 것도 불가할 것이다.그리스도와 문화와의 관계)에 이어서 H. Richard Niebuhr는 다음과 같이 견해를 말하고 있다.(1)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Christ Against Culture)이것은 하나님은 문화를 반대한다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n Paradox)니버의 신과 문화사이의 관계개념은 “신은 문화를 초월한 존재”로 보며 또한 ”그러나 신은 문화를 신과 인간과의 상호관계의 매개체로 사용하고 있는 분“으로 보고 있다.) 이 견해는 그리스도나 문화가 다같이 순종되어야 할 권위이며, 믿는 자는 두 가지의 원리를 함께 존중해야 함으로 긴장 가운데 처한다는 것이다.)(5) 문화의 변혁자이신 그리스도 (christ and Transformer of culture)이 견해는 문화란 타락한 인간의 산물이므로 분명히 죄성을 나타내며, 그리스도로 인간이 속량 받을 때, 문화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그리고 그의 뜻을 실현시키게끔 된다는 것이다.하나님은 문화를 통하여 역사하신다. 문화는 통로(Vehicle)로써 인간에 의해서만 아니고 하나님, 그리고 사탄에 의해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문화의 형태를 가지고 기독교적인 것과 비기독교적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거룩한 형태가 따로 없는 것이다. 그것을 기독교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2. 형식과 의미문화의 형식은 외부적인 것이고, 때로는 관찰 가능한 것이다. 반면에 의미는 개인적인 부분인데, 사람들이 문화적 형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근거한다. 사람들은 항상 문화적 행위를 해석하며 그 문화에 대해 의미를 부여한다.문화 자체가 만들어 내는 것들이 아니라 문화를 사용하는 사람을 이해 한다면, 문화에 용도의 측면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문화 속에 내재하는 용도 잠재력은 문화를 산출한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며, 사람과 문화와의 상호작용은 문화적 구조를 통해 사람들이 창출한 용도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용도는 문화의 특징이 아니라 사람의 특징인 것이다.의미 역시 구조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문화적 현상 그 자체 내에 어떤 의미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문화 현상에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부여되는 의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문화적 형식들을 배워 나가는 과정에서 공동 형식을 다른 사회에서 받아들일 과저에서 최소한 몇 가지 면에서 다른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4) 본질적으로 동일한 의미가 다른 두 문화 속에 소개되어질 때, 상당히 다른 형식들을 통해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5) 우리가 한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 갈 때, 해당 사회 속에서 적절한 문화 형식을 선택하여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사용하던 문화형식을 그대로 차용하게 되면, 우리가 전하고자 샜던 의미와는 다른 의미를 전달하게 될 것이다.3. 개인과 문화인류학자들은 다른 학문 분야들이 학문을 진행함에 있어 지나치게 개인적 차원에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다. 심리학자들은 인류학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1) 개인과 문화의 관계인류학자들이 문화화, 사회화, 또는 교육이라고 부르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 과정을 밟아 나가면서 실재에 대해 인식하고, 행동하고, 사고하는 등에 대한 일련의 특별한 습관들을 익히게 된다. 이러한 습관들을 익히는 과정에서 자동적으로 또 다른 일연의 습관들을 버리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다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의 습관적 행위와 습관적 인식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문화결정론(cultural determinism))은 B. F. Skiner와 같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관련이 있다. 특히 그에게 있어서 인간은 전적으로 결정된 존재라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자유의지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2) 인성일부 인류학자등의 능력과 관심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문화가 적용되는 개인적 차원의 특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유전적으로 중진 것과 부모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운 문화 경향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반응의 결과로 만들어진다. 이는 상호작용 과정인제, 특히 사회가 구성원을 해당 사회의 문화 경향에 일치시키려고 압력을 가함으로 인해 나타난다. 이로 인해, 유전적 차이와 개인적 선택의 결과로 나타나는 상당수의 다양성과 어떤 특정 다.
    사회과학| 2010.05.25| 12페이지| 2,000원| 조회(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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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직 목사 설교연구
    이명직 목사의 신학사상과 설교연구Ⅰ. 서론이명직 목사는 한국성결교회의 성경학자요 행정가이며 저술가이고 목회자이며 부흥사요 신학교육자였다.) 그리고 기성과 예성이 공히 존경할 만한 성결교회의 어른이라는 것에는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성결교회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를 교단의 사부요, 성결교회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그는 한국성결교회의 초석을 놓고, 교단을 성장 발전시켰으며, 그의 성결한 삶과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기독교인의 귀감이 된다. 그러므로 이명직 목사의 생애와 사상을 재조명하고 그의 설교를 연구하는 것은 연구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Ⅱ. 본론1. 이명직 목사의 출생과 성장그는 1890년 12월 2일 서울에서 전통적인 유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명직의 아버지 이승태는 대한제국의 대궐 주전원 전무과의 주사로 근무하였다. 이명직의 조부는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고 하는데 확인된 바는 없다. 대개의 한국가정이 그러했듯 이명직은 완고한 유교사상에 물든 부모 밑에서 7세 때인 1897년부터 서당과 가정에서 한학을 수학했는데 이런 유교교육은 후에 그의 사상에서 국가와 기존 질서에 대한 순응적 경향성과 적지 않은 연관성이 있다. 또한 설교에서의 윤리적 엄격성에 대한 강조나 설교어법의 훈시적 성격 역시 이런 초기 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그가 처음 기독교에 접한 것은 종로에 있는 황성 기독교 청년회 학관에 입학하면서 부터였지만 기독교에 본격적으로 몰입하게 된 것은 1909년 정치학공부를 하기 위해 무단가출 형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에서 YMCA총무로 있던 김정식을 만나면서 부터였다. 같은 해 김정식의 안내로 동경성경학원에 입학한 이명직은 그때까지 세례를 받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1909년 5월 3일 성령강림절에 나카다 주우지 감독으로부터 세례를 받게 된다. 이로서 이명직은 김상준 정빈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세 번째로 동경성경학원에 입학한 인물이 되었다. 이 수학 기간 중 이명의 교수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던 이명직에게 사중복음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입장에서 신학을 정립하고 있음 알 수 있다.그는 1930년 「활천」5월호에서 사중복음의 의미를 정리하였으며, 1952년 『기독교의 4대 복음』이란 저술을 통해 한국성결교회에서는 두 번째로 사중복음의 신학적 의미를 체계화하였다.)그의 글인 1935년 「활천」5월호에 실린 “데살로니가 전서에 나타난 사대복음연구”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어느 때에 구원이 나타날 것인가 하면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때 인데, 이 재림은 산 소망이나라. 고로 본서는 매 장 재림의 사상을 고조하니라.”) 즉 재림의 사상이 고조되는 성경에서도 그는 사중복음을 연결 짓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또한 그의 글 가운데 “듸모데전서에 나타난 사대복음연구”), “듸모데후서에 나타난 사대복음연구”), “디도서에 나타난 사대복음연구”)를 보면 그 제목에서부터 이미 성경을 사중복음이라는 잣대로 나누어보고자 하는 인위성을 발견할 수 있다.그는 성경을 애써서 사중복음이라는 잣대로 나누어보고자 하는 인위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사중복음(사대복음)이 성결교회가 전하는 순복음의 내용이요, 이 순복음을 웨슬레 운동의 줄기라고 할 수 있는 19세기 미국의 만국성결운동에서 유래되었다고 이명직은 이해하였다.)이명직의 사중복음 이해는 김상준의 사중교리를 통해 교단의 교리형성의 기초석이 놓여지고, 이명직의 기독교 사대복음을 통해 체계화되었다.3. 이명직 목사의 설교1) 이명직 목사의 성경 해석적 방법이명직 목사가 오랜 기간을 교단 교역자 양성에 실질적인 책임자로 활동했었으므로, 신학뿐 아니라 설교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영향력과 모범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조용기 목사의 말투와 억양을 그의 속한 교단의 후배 목사들이 따라하는 것처럼 한국 성결교회에 있어 선생으로 그리고 대내외적으로 부흥사로 유명세를 떨친 이명직은 후배들에게 있어서 그의 영향은 분명 있었을 것이며, 그의 설교는 분명히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이명직의"그리스도의 삼현(요일 3:1-12)")이라는 설교에서도 기독론을 다룬다."주의 재림과 우리의 준비"), "롯의 처를 생각하라")에서는 임박한 주의 재림을 시대적 상황을 들어 설명하면서 성도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재림론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죄악을 대적하라")와 "회개에 대한 강화"), "죄"), "내속에 거하는 죄"), "회개")에서는 인간의 부패성과 죄의 문제를 다룬 죄론을 설교의 주제로 삼으면서 성도의 회개를 촉구한다. "큰 구원"), "중생"), "음부가 구령자로 변함"), "성결을 어떻게 체험할까")에서는 구원론과 성결론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밖에도 "이심(二心)"), "구인(舊人)")등의 설교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심도 있게 파헤친 인간론을 다루고 있다.(2) 중생 성결 재림이라는 주제가 나타남그의 설교를 교리적이라 규정했는데 실상 그의 모든 설교의 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이러한 세 가지 요소이다. 그의 설교를 읽다보면, 단 한 가지 색을 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것은 바로 ‘중생’, ‘성결’, ‘재림’이라는 것이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으면서 모든 설교의 기저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명직 목사의 설교는 철저히 중생의 복음과 성결의 복음만을 강조하고 있고, 그것은 다시 주의 재림을 위한 전제로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별히 「활천」에 수록된 초기의 설교로 올라갈수록 ‘재림’이라는 주제가 매우 빈번하게 강조되면서 중생과 성결을 범주화시키는 구조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그 당시 한국 성결교회가 주장했던 복음의 성격이 바로 ‘재림’을 중심으로 한 중생과 성결에 모아졌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신학이나 신앙 그리고 설교의 특색이라는 것은 철저히 ‘재림’에 모아졌고, 이 ‘재림’을 전제한 중생과 성결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 당시 일제의 통치 하에 삶의 의미나 보람 장래에 대한 희망이 단절된 상태에서 유일하게 성도를 지탱시키고 의미 있게 살아갈 이유를 제공하는 유일한 대안이 곧 ‘재림’이었음을 나타 하는 일이 있다하니 말지니라. 주의 성명을 더럽히지 말지니라. 연극장은 죄인의 공회석이요 죄악의 매개소이니 거룩함을 입은 육체로는 그러한 처소에 출입함이 일종의 죄악이라 아니할 수 없느니라")이러한 엄격한 신앙의 실천은 결국 성결이라는 성도의 정체성을 이루기 위한 필요조건이며 세상 속에서 살되 구별되게 살아야 하는 성도의 자세를 일컫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일제 하에서 시민의식이 저급한 상태에 있던 일반의 상황과 식민지상황 하에서의 자포자기적 삶의 행태가 만연했던 것을 염두에 두면, 비록 오늘의 시각에서는 과도한 감이 없지 않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시대적인 정당성을 갖는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청교도적 윤리의 엄격성에 따라 다니는 새로운 율법화의 위험과 문화접맥적 시도의 책임을 안고 있는 기독교 신학의 차원에서 보면, 이런 엄격성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4) 목회자와 교회에 대한 관심과 권고이 부분은 아마도 이 목사의 지도적 입장을 염두에 둘 때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지적하는 내용을 보면 이미 선교초기에도 오늘날의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지적되는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물론 회개치않고도 세례문답이나 외면 세례를 받을 수 있고 성경공부만 하면 교역자가 될 수도 있으나 이후에는 주를 만날 때에는 큰 문제가 되느니라".)"육체를 행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깨끗할지니 가령 어떠한 소위 교인 소위 교역자 중에는 바둑 두고 장기 두는 것을 여전히 하며 심지어는 화투까지라도 하면서 신성오락이다하며 돈내기는 아니라하나 참외 또는 과자내기를 한다는 말을 들었다".)"금일에 어찌하야 신자에 부흥이 없는가하면 기도가 없는 까닭이며 교회에 부흥이 희한한 까닭은 기도가 없는 까닭이라. 신자 개인이 기도를 알지 못하고 교역자도 기도를 등한히 생각하고 안일만 탐하고 교회도 기도에 능력을 잃어버린 이상에 다시 부흥이 임할 기관이 없느니라".)"만일 금일에 심령계가 부진하고 능력과 승리, 혼인의 약속 등 3개의 대지 속에서 다양한 성구를 토대로 전개한다.)따라서 이명직 목사의 설교 형식을 결정짓는 가장 큰 특징은 '주제적 제목설교'라 할 수 있다. 이런 설교 방식은 단 한가지의 주제를 한편의 설교를 시종하여 다룬다는 점에서 전달적인 면에서의 장점을 가질 수 있다. 또한 당시의 회중들의 지적 수준이 오늘에 비해 낮았던 것을 생각하면 적절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의 설교에 하나의 본문을 정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설교의 진행이 설교자 자신의 사고에 주로 의존하게 되는 이런 종류의 설교는 성경적 설교를 지향해야 하는 강단의 당위에서는 지양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2) 연역적 구성그는 설교서두에 자신이 다루려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밝히면서 설교를 시작하여 그것을 논리적인 연결의 맥으로 연결한다. "회개"(마 3:2)라는 설교를 보면 먼저 회개란 무엇인가를 서론에서 다룬 뒤 회개가 한 개인의 신앙에서 갖는 역할을 두 가지로 정리한 뒤 회개를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의 문제로 차분히 풀어가고 있다.) "중생"(요 3:1-15)이라는 설교 역시 동일한 방식을 보이는데 서두에서는 중생의 정의를 규정하고 중생의 방법을 다섯 가지 소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이처럼 그의 설교는 설교의 명제를 서두에서 처리하고 그것을 구체적인 성경의 예증이나 경험상의 예화를 들어 설명하는 연역적 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이것은 다시 대지를 중심으로 설교의 몸 말을 만들어 나가는 한국교회 설교의 전통적인 본론 서술 방식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의 설교는 거의 예외 없이 2-6개의 대지로 세분되어 있다.모든 설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대지 설교의 경우는 세밀한 논리의 전개라는 특징이 장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데 이 목사의 설교는 아마도 그런 논리적 구성의 전형으로 꼽힐 수 있을 것이다. 대개 이러한 연역적 구성에 대지로 몸말을 만들어 가는 설교구성은 교육적 측면에서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특히 회중들의 지적 수용도가 낮을 경우.
    인문/어학| 2008.06.09| 11페이지| 1,500원| 조회(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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