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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정치론]Government by the People 평가A좋아요
    GOVERNMENT BY THE PEOPLE1. CONSTITUTIONAL DEMOCRACYAMERICAN GOVERNMENT AND POLITICIANS IN CONTEXT☞ 권력의 이양; 한 정당에서 다른 정당으로 평화적인인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선거를 통해서 이루어져야함.☞ 정부의 역할; 국가안보(테러 방지)와 국내문제(인종차별, 종교적 자유, 경제적 차이, 총기폭력, 기본적인 의료 및 교육 혜택)를 해결해야함. 따라서 자유와 복지와 평화는 선거의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침.☞ 현대 민주주의의 기원은 미국.☞ 미국의 민주주의는 고대그리스(직접 민주주의)와 프랑스대혁명의 결과와 차이를 보임→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강조☞ 미국의 민주주의 요약① 모든 사람에 대한 신념; 다수의 의견이 중요. 그러나 소수의 건전한 비판도 필수→ 개인이나 소수에게 권력의 집중을 방지하기 위함. 즉, 다수에 대한 맹신 비판.② 입헌 민주주의; 자유, 평등,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헌법 제정③ 대의 민주주의; 대표자에 의해 다스려 져야함. 즉, 권력은 선거에 의해서만 유지되어야.DEFINING DEMOCRACY☞ 다수를 기반으로 권력을 획득. 전제군주, 독재자 등의 개인 또는 소수에 의한 지배 견제☞ direct democracy;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민주주의 → 다수의 폭정으로 변질☞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국민투표, 소환 등)의 혼합형☞ 입헌 민주주의; 선거에서 승리해야만, 즉 헌법적인 절차를 만족해야만 권력 획득 가능☞ constitutionalism(입헌주의); 견제와 균형, 권력 분립, 절차적 정당성, 법 원칙 등에 의거해 모든 정치적 행위(입법, 정책결정 등)를 해야 함.Democracy as a System of Interacting Values☞ 민주주의의 몇 가지 가치① personal liberty; 생명, 행복 추구권 등 개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든 개인은 기회를 가져야함.② respect for the 대와 매우 제한된 정부를 주장 ex) 무정부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등☞ 모든 정부의 정책 반대, 모든 국가 기관 폐지 주장 ex) 헬멧 착용, 안전벨트 착용 반대A Word of Caution☞ 유럽과 미국의 liberal은 다른 의미, 또한 미국 내 보수와 진보의 차이점 불명확POLITICAL IDEOLOGY AND THE AMERICAN PEOPLE☞ 미국은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고정된 이념적 기반이 없음. 또한 상당히 많은 미국인은 중도 또는 이념적인 성향이 낮음 → 정당 역시 선거의 승리에 초점을 맞추고 이념은 약함5. THE AMERICAN POLITICAL LANDSCAPEA LAND OF DIVERSITY☞ 대부분 나라는 같은 언어, 비슷한 종교적 취향, 공통된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 구성☞ 미국은 다인종, 다민족 등이 American Dream을 꿈꾸며 살아가는 나라 →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이질적인 것에 대해 적대적 → 소수민족들이 오랫동안 정치, 경제에서 차별 받음Geography and National Identity☞ 미국은 지형적으로 방대하며, 역사적으로 고립되었던 나라 → 미국 발전을 가능하게☞ 인구에 비해 방대한 영토 → 정치적 갈등이 전국적 문제화되기 힘듦☞ 대서양과 태평양을 동시에 접근 가능, 각종 천연자원풍부Sectional Differences☞ 남부 vs. 북부(농업 vs. 상업과 제조업) → 건국 이후, 노예제도를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 남북전쟁 → 북부(공화당)의 승리 → 점차적으로 남과 북의 정치적 견해 차이 감소ex)1960 the Civil Rights 제정, 베트남 전쟁 당시 남부의 보수파 몰락, 인구의 이동 등State and Local Identity☞ 각 지역은 저마다의 독특한 정치적 전통과 정치문화 소유, 또한 선거 방식도 다름ex) 캘리포니아. 하원 53 명, 선거인단 55명 → 다른 20개주들의 합보다 영향력 큼WHERE WE LIVE☞ 4/5이상이 대도시와 그 주변에 거주 → 중심부는 슬럼화, 근교는 백인ties as Institutions① National Party Convention(전국 대의원 대회); 4년마다 개최☞ 대통령 후보 결정, 강령 및 규칙 제정 , 부통령 후보 선출, 전국 위원회 위원 결정② National Committee(전국 위원회); 각주 출신 위원들로 구성. 정치적 영향력은 낮음☞ 주요업무는 전국대회를 준비하는 것과 대통령 선거를 돕는 것 등③ Campaign Committee(선거위원회); 상, 하의원들의 재선을 위해 조직☞ 자금 조달, 유세 지원자 파견 → 그러나 후보자들이 예비선거에 의해 결정되므로 영향력은 낮음④ State and Local Levels; 실질적인 정당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 각 조직은 주에 따라 다양 (∵ 선거가 주 및 지방 수준에서 독립적으로 결정됨)Parties in Government① The Legislative Branch; 후견제도에 의해 다수당이 실질적으로 지배② The Executive Branch; 대통령이 수많은 관료의 임명권 → 집권당이 유리③ The Judicial Branch; 정치적인 독립기관이나 실제로는 정당과 복잡한 이해관계④ State and Local Levels; 대체적으로 중요한 역할 담당Parties in the Electorate① Party Registration;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하며, 이때 선호정당 기입② Party Activists;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candidate activists, issue activists등의 활동Party Identification☞ 어릴 때부터 가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 → 성인이 되어서도 변화 적음Partisan Realignment and Dealignment☞ 선거제도는 단순 다수결제도이고, 양당이 이념 보다는 실용적인 것 강조(별 차이가 없음)ARE THE POLITICAL PARTIES DYING?Campaign Finance Reform and Political Parties☞ 이익단체는 부② negative advertising; 후보자들의 비방, 폭로위주의 방송, 사생활 위주의 방송11. CONGRESS☞ 미국은 권력 분립의 원칙에 기반한 대통령제 아래의 의회 → 독립적으로 행정부와 권력을 공유 → 행정부와 상호 견제 및 균형 유지☞ 양원으로 구성 → 상, 하원 의원이 거의 대등한 권한을 지님(연방제이기 때문)CONGRESSIONAL ELECTIONS☞ 상원(100명-30살이상, 9년이상 시민권자)과 하원(435명-25살이상, 7년이상 시민권자)Who Elects the Congress?☞ 헌법; 각주는 상원 2명과 인구비례에 따른 하원을 보유하도록 명시☞ 선거구 재조정 문제; 10년에 한번 행해지는 인구조사에 의해 선거구의 크기(인구수 ÷ 435)와 주별 의원 수를 결정 → 하원 선거구의 크기와 구획으로 야기되는 갈등이 정치적인 문제ex) Gerrymandering(1811); 메사추세츠 주지사가 특정 의원의 당선을 보장하기 위해 지리적, 행정적 구획을 무시하고 도마뱀 모양으로 선거구 재조정 → 현재도 이러한 문제 존재☞ 상원; 인구비례에 상관없지 모든 주는 2명의 상원의원 → 작은 주의 권한도 동등하게 대표Predicting Congressional Elections☞ 상원; 2년마다 1/3 선거 → 하원에 비해 매우 경쟁적이며, 많은 선거 자금 필요☞ 현직의원; 의회선거는 후보 중심적인 경향 → 대부분의 현직의원이 재선되는 경향THE STRUCTURE AND POWERS OF CONGRESSA Divided Branch☞ bicameralism(양원제); 건국때부터 유지 → 의회내의 권력 분립 효과The Powers of Congress☞ 헌법적으로 세금의 징수와 화폐의 제조, 입법 활동, 군대 육성, 통상 조절, 입법 기능, 헌법의 수정, 탄핵 등의 권리 보유MAKING CONGRESS WORKLeading the House of Representatives① speaker(하원의장); 하원 다수당에 의해 선출 → 실질적인 다수당의 이 기여하기 힘든 부분이나 관료조직에 의한 경영이 비효율적일때 일반적인 정부기관이 가지지 못하는 행동의 자유 및 신축성 부여할 목적 → 그러나 사실상 정부의 소유, 기본적인 통제 ex) 체신공사, 철도공사, PBS 등Leading the Bureaucracy☞ 각부의 장은 대통령이 임명 → 의회동의(600명), 대통령의 전적인 권한(2400) 등① Presidential Appointee; 대통령이 친밀한 사람이나 정당원들 중 후보자 지명 → 자격과 결격사유를 조사하는 청문회 → 대통령이 지명자 이름을 상원에 제출 → 본회의 표결☞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임명권을 존중 → 최근 양당간의 대립으로 임명 승인은 까다로움How the Bureaucracy Evolved☞ 초기; 대통령의 해임권에 대한 논쟁 → 워싱톤의 논쟁승리 → 3개 부서 설치 → 제퍼슨 대통령의 영토구입 → 행정부확대의 필요성 제기☞ spoils system(엽관제); 초기의 관료 임명제도 → 선거에서 승리한 정치세력이 관직 독점→ 정치적 후견(patronage), 관료의 전문성 부족, 독립성 결여 등의 문제점☞ merit system(능력제); 계속되는 능력제의 시행 논의 → 가필드 대통령의 암살 → 여론의 관직충원 제도 개혁 요구 → 오늘날 90% 이상이 능력제로 충원ex) Office of Personnel Management(OPM) → 행정관료의 임용 관리WORKING FOR GOVERNMENT☞ 대다수는 능력제에 의해 고용 → 정치적 분쟁 감소, OPM의 관리하에 개별적인 인력 충원☞ Hatch Act(1939); 행정부의 관료는 어떠한 종류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도 금지THE BUREAUCRACY'S JOB☞ Implementation; 의회에서 통과된 법률을 현실에 적용해서 집행하는 것ex) administrative discretion(행정판단); 단순히 법률의 글자대로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집행과정에서 현실에 적용가능 하도록 시행규칙을 규정하는 준입법적 기능 또는 어떤 분야에서는 으로
    사회과학| 2006.04.18| 42페이지| 2,000원| 조회(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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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정치]미일 동맹의 재정의
    미일 동맹의 재정의미일 동맹의 출발 -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동아시아 상황1949년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지역에서는 역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들이 많았다. 이해 8월에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 미국과 군사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였고 이는 1947년 이후 계속된 미국의 봉쇄정책을 상당 정도 후퇴시켰다. 또 10월에는 중국 대륙에서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 대신 모택동이 지도하는 공산당이 혁명을 성공시켰다. 이는 동북아 지역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중공의 등장으로 중국 대륙을 발판으로 소련을 봉쇄하고 아시아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고자 했던 미국의 꿈이 깨지고, 혁명의 불길이 아시아 대륙으로 번져 가는 격동의 시기가 도래했다. 이미 북한은 급진적인 사회개혁을 통해 공산주의 진영으로 자리 잡았고 미국의 지배 하에 놓였던 나머지 국가들도 그 지배질서가 급속히 붕괴되었다. 미국은 이러한 사태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였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의존했던 것이 군사력에 의한 무력해결이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1949년에는 패전국인 일본을 아시아의 후방 병참기지로 전환시키고 한반도, 대만, 베트남을 각각 군사적 진공을 위한 교두보로 삼으며 최종적으로 중국 대륙의 회복을 목표로 한다 라는 전략방침이 수립되었다. 즉, 한국전쟁 직전에 미국은 한국을 우선 목표로 하고, 일본에 정치·외교·군사적 체계를 강화시켰다. 이로써 일본은 확고한 미국의 병참기지이자, 아시아에서의 반공을 위한 무기고로 자리잡게 되었다.미일 동맹의 변화 - 시대별로 구분제 1기 - 초기의 미일동맹1951년 재정된 미 일 안보조약은 양국관계를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기능.미일안보조약 체결 이후 1950년대~1960년대 일본은 미국 주도하의 국제정치환경 하에서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보호 받음. 일본은 미국주도의 국제정치환경 아래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지 않았다.군사면 - 전략 핵 전력 및 극동 군사력에 있어서 미국의 압도적 우위, 일본의 무력침공 가능성 희박,경제면대한 폭넓은 지지기반을 형성되었으며, 1994년 전후 최초로 미일 정상회담이 결렬되는 사태가 일어남..결국 미국의 아태 지역 담당 원스턴 로드가 내부고발서한을 제출한 사건을 계기로 미일 관계의 기본방침 재검토에 적극적 착수1991년 걸프전을 계기로 미국이 리더십을 발휘하고 일본이 재정 및 후방 지원을 담당하는 형태가 지속 될 수 있으며 지속 되어야하는가가 미일 안보 재정의의 중요한 과제가 됨미일 동맹 재정의의 과정 및 쟁점.나이 보고서에 나타난 미일동맹의 중요성-미국은 냉전후의 군사전략으로서 두 곳의 지역분쟁에 동시에 대처하는 것을 방침(한반도,페르시아만)-미국의 국익의 관점에서 동아시아 지역은 미국 무역총액의 36%이상을 차지하는 중요한 지역이므로 군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이익확보를 위해서라도 미국의 주둔을강조-지역을 초월한 돌발사태에 대처할 태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힘의 공백이 발생하여 급격히 전략적 균형이 붕괴되지 않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미 일 안보 공동선언의 성격 및 의의1996년 4월 미 일 안보 공동선언 발표를 통해 냉전후의 미일 동맹의 존재의의와 일본의 군사적 역할증가에 대한 인식을 확인.1997년 9월에는 신가이드라인(미일 방위협력을 위한 지침)에 합의 이를 위한 관련법안으로 주변사태법이 성립함으로써 미일 안보 재 정의는 완결. 특징-미일 안보체제의 목적을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전의 확보로 규정-아시아 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전의 확보에 목적을 둠-극동유사에 대처하기 위해 미일 양국이 방위협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명확히 내세움이런한 방침은 신가이드라인과 주변사태법을 제정을 통해 구체화함. 또한 주변의 개념을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고 정의하여 미일 봉맹의 범위를 사실상 극동에서 아시아 태평양 전역으로 확대함.미일 안보공동선언에 대한 우려와 비판극동유사 개념의 헌번상의 위헌성을 비판 즉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를 상기하면서 일본이 국제적으로 군사적 역할을 확대하는 것에 대한 경계와 비판이 전개미일 동맹 재정의의 문제점과 의미1 안보체제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 유용성은 인정, 아·태지역의 협조적 안전보장체제 구축을 위한 과도기적 상태로서의 미일동맹이 협조적 안보체제와 공존해야한다는 입장. 미일동맹체제가 중심이 되어 협조적 안보체제 구축을 위한 시도를 단순히 동맹관계를 보완하는 것으로 위치 지우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보충자료북핵과 일본의 핵무장■■북한은 번번이 중국의 계획을 망쳐왔다. 이번이 한국전쟁에 이어 두번째다. 1950년 6월 중국은 대만 해방을 목전에 두고 있었지만 김일성의 오판 때문에 물거품이 됐다. 지금 중국은 미사일 방위 저지에 필사적이다. 이런 판국에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했고, 그 덕분에 주저하던 일본이 미사일 방위 계획에 적극적인 자세로 기울었다. 중국으로서는 골칫거리일 것이다.■■ 대포동 발사 직후인 1998년 9월.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청문회에서 행한 제임스 릴리 전 주한, 주중대사의 발언이다. 증언에서 ■■정보계의 노병(老兵)■■을 자처한대로 정보통 출신인 릴리는 레이건, 부시 등 역대 공화당 정권의 아시아 정책의 중심에 있었으며, 폴 월포비츠 현 국방차관과도 가까운 전형적인 매파이다. 이 발언은 당시 클린턴 정권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관대한 무시■■(benign neglect)라 일컬어진 공화당 매파의 정책대안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나왔다. 증언 자체는 그다지 상세하지 않다. 그러나 강경파들의 공통된 인식과 전략을 상징적인 표현으로 집약하고 있다. 그 골격은 ■■맞춤형 봉쇄정책■■, ■■적대적 무시■■라고 불리는 현 부시 정권의 정책에도 이어진다. 초점은 두 가지다. 첫째로, 북한이라는 ■■골칫거리■■를 중국에 더욱 밀어붙이는 것이 북한의 변화, 나아가서는 붕괴를 촉진하는 첩경이라는 인식이다. 미국이 관여할 필요는 없으며, 북한을 몰아세우면 세울수록 북한체제를 연명시키는 경제적 부담도 중국 몫이며,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카드도 중국에 전략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 부담이 한계에 달했을 때에만 중국은 북한을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아니면 최략의 서곡'이라고 규탄하는 이북도 일본이 군사대국화를 중단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가이드 라인 개정과 유사입법의 의도겐모치 가즈미 기술평론가내가 오늘 말하고 싶은 키 포인트는 일본이 전전, 전후 일관하여 전연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제국 일본은 오늘까지 그 그늘을 끌면서 더구나 재생의 길을 걸어 왔다. 현재 가이드 라인 재검토 작업 과정에서 '집단적 자위전'이 서서히 기성사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헌법의 평화주의가 사멸하는 전야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유사를 상정하여 자위대가 또 다시 한반도 등 아시아에 진출하려고 기도하고 있는데 그것은 가능한 것인가. 독일은 엄한 자기 반성 아래 새로 태어났지만 일본은 나치의 '하켄 그로이츠'와 동시기의 깃발 '히노마루'를 아직도 내걸고 있다. 그 일본 자위대가 아시아에 진출하면 아시아 민중에게 과거의 꺼림칙한 침략전쟁을 방불케 할 것이 분명하다. 또 다시 비참한 희생을 당하지 않을까 아시아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자위대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일본은 하려는 것이다. 일본의 당국자는 일본이 전쟁에서 진 것은 구미에서였지 아시아가 아니다는 인식을 아직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진정한 반성이나 사죄를 아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아시아 민중이 입은 다대한 희생에 대해 보상할 마음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가이드 라인 재검토는 미일에 의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지배의 큰 역할을 수행하는 도구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민중은 그것은 또 다시 피해자의 길을 걷게 되는 것과 이어진다고 인식하고 있다. 재검토 작업은 미일 안보조약의 실질적 개정이다. 즉 무척 구체적으로 들어간 미일군의 아시아·태평양, 특히 한반도에서의 작전행동을 나타내고 있다. 분명히 말해서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당연히 국내적인 법정비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유사입법의 제정이다. 지금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내세종연구소 연구위원) soung@sejong.org미국과 일본에 새로운 정권이 수립되어 미일관계가 변화하는 가운데 양국의 신정권은 미일동맹강화를 수차례 천명하였다. 미일동맹강화 현상은 미국의 공화당 정권과 일본이 장기간에 걸쳐 신뢰관계를 쌓아 온 것과, 미국의 신국방전략 및 MD구상과 일본의 보통국가화, 즉 헌법개정과 군사력증강에 미일안보동맹이 커다란 지원이 되는 상호 이해관계에 기인한다. 미국의 공화당 부시 정권은 방위산업체와 연계하여 MD구상 등을 통한 군사력 증강을 꾀하는 동시에 일본과 TMD 공동연구 등 동맹강화를 통하여 동북아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입장을 취한다. 부시 정권에는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을 대표로, 제임스 켈리 국무부 아태담당차관보, 토켈 페터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수석국장, 마이클 그린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관,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담당보좌관, 폴 월포위츠 국방 부장관 등 지일파가 두루 등용되어 있다. 특히 지일파의 핵심인물인 아미티지 국무 부장관은 미사일방위망 구축을 축으로 하는 부시 정권의 신안보전략 중 미일동맹강화를 토대로 하는 대일정책 입안·수행의 중심인물이다. 그는 일본으로 하여금 영국에 필적하는 동맹국으로 거듭나도록 요구해 왔다. 고이즈미 내각은 자민당 모리파의 연계로 보수성향을 띠고, 일본 정치사회의 총보수화 현상과 함께 헌법개정과 군사력증강을 도모하는 ■■보통국가화■■ 또는 군사대국화의 노선을 계속 추구할 것이며, 미일동맹강화가 이를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고이즈미 내각의 출범과 높은 지지도는 장기간의 경기침체에서 벗어나 강한 국가 일본을 희구하는 일본 국민의 개혁 및 변화에 대한 강한 기대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지난 6월 30일 미국에서 있은 부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수상의 정상회담은 양국의 동맹관계를 돈독히 하는 매우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져 「안전과 번영을 위한 파트너십」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의 내용을 살펴보면, 평화와 안정을 위한 협력을 위해 전략대화 강화의 중요성에 합의하고 지역협의명했다.
    사회과학| 2006.01.05| 14페이지| 1,500원| 조회(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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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자치]재,보궐선거 - 2004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중심으로
    ▣ 들어가며2004. 06. 05일 보궐선거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개인적인 생각에 단순한 부산시장 보궐선거보다 조금 더 중요한 선거였다고 생각된다. 이는 4.15총선, 탄핵 기각 등의 정치적 사건과의 관련성이 크며, 특히 이번 보궐선거의 결과로 향후 정국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보궐선거는 미니총선이라 불리웠을 정도이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접전, 민주노동당의 도약 등이 선거의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선거는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여당과 야당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계기로 작용하는 측면이 상당히 강하였다. 따라서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통해서 여러 가지 사항을 유추해볼 수가 있을 것이다.▣ 재보궐 선거란?○ 재선거 : 선거에서 당선인이 없거나 불법선거 등으로 당선의 무효판결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 해당 선거 전체 또는 해당 선거구에 대해 실시하는 선거○ 보궐선거 : 유효 적법한 선거로 당선됐지만 당선인이 그 임기시작 후 사망 등의 이유로 궐위(闕位) 또는 궐원(闕員)된 경우에 실시하는 선거부산 재?보선 유권자 279만명○ 부산시의 6.5 보궐선거 : 총 선거인수 ▶279만5천300명, 남자 ▶136만2천130명, 여자 ▶143만3천170명, 연령 대 선거인수 비율 ▶40대 24.0%, 20대 22.8%, 30대 21.6%, 50대 15.7%, 60대 15.9%.▣ 2004. 06. 05 재?보궐선거의 특징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그리고 지방의회의원선거만 실시되었다. 이번에 실시되는 재?보궐선거를 사유별로 살펴보면, 광역단체장선거는 사직?사망으로 인한 보궐선거가 3곳, 당선무효로 인한 재선거가 1곳, 기초단체장선거는 사직?피선거권상실 등으로 인한 보궐선거가 14곳, 당선무효로 인한 재선거가 5곳, 지방의회원은 광역의원 38곳, 기초의원 54곳으로 총 92개의 선거구에서 실시되는데 이중 보궐선거가 66곳, 재선거가 26곳이었다.□ 선거기간은 5월 23일부터 6월 5일까지 14일간 이었으며, 5월 21일과 22일 이틀 동시 준비⑻ 영광도서앞 복개천의 복원사업으로 하천 살리기 추진⑼ 대중교통활성화를 위한 대중교통공사 설립, 추진⑽ 고속철도 2단계 사업 조기 건설로 부산발전 촉진3. 「삶의 질이 높은 복지도시」에 대한 10대 공약⑴ New Job Busan Plan으로 연3만명 일자리 창출⑵ 부산국제영화제의 세계5대영화제 육성⑶ 복지예산 20%로 복지수준 업 그레이드⑷ 노인복지쿠폰 발행으로 시니어복지도시 구현⑸ 장애인 전용택시제 등 장애인이동권 보장⑹ 직업능력개발과 보육지원을 통한 여성이 일하기 좋은 도시 만들기⑺ 여성개발원 설립을 통한 여성복지의 체계적 추진⑻ 한부모가족지원센터를 통한 행복한 가족 조성⑼ 청소년개발원 설립으로 청소년복지의 종합적 지원⑽ NGO센터 건립으로 NGO공동의 장 마련- APEC유치부산시민들에게는 APEC 유치의 중요성을 알리고 대외적으로는 APEC 유치에 대한 부산 시민의 열망을 전하기 위해 행정부시장으로써, 또 시장권한 대행으로써 첫 번째로 벌인 것이 APEC 유치 100만인 서명운동 이었습니다. 부산 출신의 각계 유력 인사 200여명을 초청, 서울지역 출향인사 간담회 를 열어 APEC유치를 위해 힘써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부산 국제영화제 기획 및 추진부산시 내무국장시절 프랑스 외곽의 조용한 휴양도시 깐느가 영화제 하나로 세계적인 도시로 각인되고, 각종 국제적인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도시들이 엄청난 경제적인 유발효과를 가져오는 것을 보며 마냥 부러워 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름대로 각종 해외 영화제에 대한 공부를 한 후, 市가 계획을 제시하고 영화인들이 그 계획에 따라 실제 업무를 담당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월드컵이야기대한민국을 온통 축제분위기로 들뜨게 했던 월드컵 4강 신화의 첫 시작은 부산이었습니다. 월드컵이 시작하기 전, 제가 할수 있는 일이 뭘까를 생각해봤습니다. 행정자치부에 1억5천만원을 요청하고, 그것으로 붉은악마 티셔츠 몇만개를 부산시민에게 무료로 드렸습니다. 드디어 한국의 첫 경기인 2002년 6월 4은데 그 분들이 모두 부산 시장 선거에 올인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쪽에는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이 1명밖에 없기 때문에 매우 어렵다. 그러나 좋은 점은 부산시민들의 정치적인 균형 감각이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한나라당을 압도적으로 밀어주었지만, 시장은 행정 선거, 일꾼을 뽑는 선거이기 때문에 여당 출신이 해야 한다는 심리가 상당히 커지고 있다. 부산 발전을 위해서는 양 날개, 여와 야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생각들이 확산되고 있다.-부산 시장 재보선 선거가 갖는 정치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해석하는지?지금까지 약 20여년 간 한나라당 출신이 시장, 구청장, 시의원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고인 물은 오래되면 썩을 수도 있는 거다. 시민들 사이에 그러한 한나라당 일색의 분위기를 이제는 바꿔야 되겠다는 분위기가 많다. 이번 선거가 그 분수령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한나라당 허남식 후보는 거여 견제론을 중요한 선거전략으로 삼고 있는데, 오 후보는 여당으로서 어떤 선거 전략을 갖고 있나?지방 선거에서 거여 견제론이라는 것이 왠 말인가. 부산에는 한나라당 일색인데, 어떻게 해서 거여 견제론이라는 말이 나오는지 잘 모르겠다. 부산 발전을 중앙 정치의 볼모로 잡고 있는 한나라당쪽의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부산 시민들은 엄정한 심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부산에 상주하다시피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기 후보가 인물과 명분에서 밀려서 결과적으로 지지율에서 뒤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결국 이런식으로 나가게 되면 이번 보선은 OK 오거돈 대 박근혜 대표의 싸움으로 진전되지 않겠나. 이것은 아주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만약 김혁규 전 지사가 총리로 기용될 경우 부산 시장 선거 표심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김혁규 전 지사는 한나라당에 있을 때는 대권 후보로까지 거론된 아주 능력 있는 분이다. 이런 분이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한나라당에서 열린우리당 쪽으로 왔다고 해서 무조건 이것을 정략적 차원에서 반대하는 것은 상생의 정치에 어긋나며 어떤 의미에서는 후보 지지선언 [한겨례 2004-05-31 11:03]6.5부산시장 보궐선거의 공식선거운동 돌입 9일째인 31일 열린우리당 오거돈 후보와 한나라당 허남식 후보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부산지역 기업인과 문화예술인들이 무더기로 오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나서 선거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 같은 특정 후보 지지선언은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부산지역에서 노 무현 후보 지지선언이 각계 각층에서 잇따랐던 점을 감안할 때 부산시장 보궐선거일 전까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오 후보측은 이 같은 각계 각층의 지지선언을 이끌어내 오 후보만이 부산발전을 위한 유일한 후보라는 대세론을 굳혀 나간다는 전략이다. 이호중 부산중소기업협동조합 협의회 회장과 오종수 부산여성기업인협회 명예회장, 윤소남 계육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전영석 직물조합 이사장 등 부산지역 기업인들은 31일 오전 11시 부산상공회의소 소회의실에서 부산경제 살리기 위한 2000명 부산발전론 지지 선언 을 했다. 기업인들은 이날 오 후보와 오 후보의 부산발전 공약 지지선언 기업인 2041명의 명단도 함께 공개했다. 이들 기업인은 지지 선언을 통해 날로 심각해지는 부산기업의 공동화 현상을 극복하고 APEC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지도력과 행정력을 겸비한 시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이어 "부산시장은 부산경제를 살리는 일을 자신의 일로, 자신의 집안을 일으키는 일처럼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이번 부산시장 선거를 한나라당이냐 열린우리당이냐 하는 정치논리가 아닌 부산이 발전할 수 있느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소중한 기회로 만들어 가야 한다 고 말했다. 부산민예총 강영환 회장을 비롯한 부산지역 문화예술인 102명도 이날 오전 10시 부산시장 보선을 맞은 우리의 입장 이라는 성명을 통해 "특정 당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는 부산발전을 가로막는다"며 "부산시장만은 여당후보를 뽑아야 한다"며 오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 지지선언에는 동해안 별신굿의 김 시작 초기인 1993년 10월 공직자 윤리법에 의해 처음으로 시행된 4급 이상 공무원 재산등록공개 당시 당시 동구청장으로 재직하던 오 후보 소유의 타지역 2곳에 대한 부동산 투기 여부를 조사한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며 "허 후보는 부정과 연루된 업자 돈 2천만원을 수수한 과정과 사용처, 검찰이 부산시에 통보한 내용 등을 숨김없이 밝혀야 한다"고 물고 늘어졌다. 성명은 또 "허 후보가 시장에 당선되더라도 도덕성 문제로 시장 권위를 상실하게 되고 공무원노조, 시민단체 등의 퇴진압력에 직면하게 됨으로써 시정 운영이 어렵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허다"고 덧붙였다.오거돈 후보측, "한나라당 허위 폭로정치 즉각 중단하라" [한겨례 2004-05-26 11:15]6.5부산시장 보궐선거 한나라당 허남식 후보측이 열린우리당 오거돈 후보에 대한 부동산 투기의혹을 집중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오 후보 선대위는 26일 한나라당은 허위 폭로정치를 즉각 중단하라 고 촉구했다. 오 후보 선대위는 이날 성명을 통해 그 동안 허 후보측에서 제기한 의혹들에 대해 해명하면서 오히려 허 후보의 동성게이트 관련 기관통보 내용을 즉각 자진 공개할 것을 다시 요구했다. 오 후보 선대위는 이를 통해 허남식 한나라당 후보측이 이미 15년도 넘은 오 후보의 부동산 매입 건을 두고 부동산 투기라고 공격하는 것은 이른바 허 후보의 동성게이트 연루에 대한 부산시민의 비난을 무마하기 위한 정략적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고 반박했다.이어 허 후보측에서 제기한 오 후보의 전북 군산시 산복동 3591-2 대지(441㎡) 취득 의혹에 대해선 취득 당시(88년1월) 지목상 임야였으나 취득 이전에 이미 구획정리사업지구로 지정돼 있었고 구획정리사업결과 대지로 변경됐다 며 임야에서 대지로 지목변경 정보 사전입수 의혹을 일축했다. 또 이 대지는 당시 회사를 경영하는 절친한 친구가 농공단지내 사택과 사무실 용도로 구입코자 했으나 자금부족으로 공동매입을 요청해와 3인이 공동 매입한 것일 뿐이다 고 설명했다. 오 다.
    사회과학| 2006.01.05| 19페이지| 2,000원| 조회(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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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철학]노자의 생애와 도덕경의 특징
    老子의 생애와 『도덕경』의 특징기원전 6세기부터 5세기 전후에 동양에서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세 명의 위대한 사상가가 나타났다. 이는 중국의 노자, 공자 그리고 인도의 석가모니이다. 이들의 사상 조류는 ■■유,불,도 3교■■라고 일컬어지며, 동아시아 문화 전체에 영향을 끼쳐 이른바 ■■동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하였으며 동아시아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특히 춘추 말기 이후 도가는 중국 민중,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도가의 창시자인 노자의 사상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고 하겠다.老子는 누구인가?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 ■■노자라는 이는 초(楚)나라 고현 여향 곡인리 사람이다. 성(姓)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子)는 백양(伯陽)이고, 시호(諡號)는 담(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노자는 일찍이 동주(東周) 수장실의 관리, 즉 문헌 자료의 수집과 보관을 관장하는 관직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자는 주나라가 쇠퇴함을 한탄하며 이에 관직을 버리고 서쪽으로 갔다. 함곡관으로 가는 길에서 이후 역사에 남을 《도덕경(道德經)》이라 이름 붙은 상하 두 편의 글을 저술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전하는 바에 따르면 노자는 160여 세 혹은 200여 세를 살았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사마천의 시대에도 이미 노자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정보밖에 얻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 그의 행적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老子의 기본 사상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 우주론의 측면에서 자연과 사회, 인생의 문제를 고찰한 중국 최초의 사상가이다. 즉, ■■천하만물은 유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無爲而治 - 무위란 목적도 없고 의식도 없고 작위도 없고 욕망도 없음을 뜻한다.소국과민(小國過敏) - 적은 국민에 작은 나라.도덕경(道德經)이란 무엇인가도덕경은 도와 덕에 관한 성전(聖典)이라는 뜻이며, 책명은 한나라 시대에 붙여진 것이다. 현재 전하는 도덕경의 원문은 상하 2편 81장으로 나뉘며, 상편은 도경(道經:도에 관한 경전)으로 불리고, 하편은 덕경(德經: 덕에 관한 경전)으로 불린다. 그러나 도덕경은 제자백가의 원천이라고 할 초기 고대의 여러 유파들로부터 각각 일정량을 빌려온 격언과 경구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도덕경은 현재 전해지는 형태로 언제, 어느 곳에서 편집되었는지에 대해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경의 내용은 치밀하게 구상된 하나의 사상 체계를 반영하며, 전체적으로 보아 일관성이 있다. 따라서 도덕경의 저자인 노자란 실제로는 여러 명의 사상가를 지칭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06.01.05| 2페이지| 1,000원| 조회(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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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정치]RED COMPLEX
    目次Ⅰ. 序論Ⅱ. 本論1. 미군정기 이데올로기 갈등의 전개2. 반공 이데올로기의 고착화 - 한국전쟁3. 박정희 체제의 지배이데올로기4. 그 이후5. 붉은 악마의 유래 - 고대 신화를 중심으로Ⅲ. 結論▶ 參考文獻RED COMPLEXⅠ. 序論현재 우리민족은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이며, 냉전이 해소된 지금도 자본주의 對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대립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이러한 반공이데올로기는 점차 쇠퇴하고 있으며, 현재는 이러한 대립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해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반공이데올로기의 구속은 여전하다. 이는 국가보안법을 통하여 법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으며, 아직도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파고 들어있는 대북 적시관 등으로 우리의 삶을 여러 면에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반공이데올로기의 교육을 받으면서 붉은색이라 하면, 거부감을 일으켰다. 빨갱이, 빨치산 등 우리는 빨간색을 곧 공산주의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우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거치면서 왜 자발적으로 형성된 국민 응원단의 이름을 ‘붉은 악마’라고 말하였을까? 이것은 우리 사회가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붉은색을 꺼리게 되었을까?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상황을 만들었을까? 왜 우리는 아직도 붉은색을 무서워하는가? 이러한 여러 가지 물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다는 것은 우리가 서서히 민족의 통합, 즉 통일에 대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따라서 우리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기 위한 밑바탕으로써 ‘Red Complex’를 벗어나야 할 것이며, 북한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이러한 ‘Red Complex’가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Ⅱ. 本論분단 이후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이데올로기들 중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던 것이 바로 반공이데올로기였다. 이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모든 사회전반을 규정하는 지배적 이념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된 상황이며, 전쟁이 종결된 상태가 아닌 일시휴전 상태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아직까지 북한이 개방되지 않음에서 알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Red Complex는 앞으로의 미래, 즉 민족의 통일에 장애물이 될 것이기에 하루 빨리 청산해야할 민족의 숙제라고 할 수 있겠다.따라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그 동안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반공이데올로기에 대한 강요를 받아왔던 우리의 역사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살펴보고, 이를 통하여 가치판단이 배제된 반공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로써 우리는 민족통합의 가장 걸림돌인 ‘Red Complex’를 벗어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1. 미군정기 이데올로기 갈등의 전개우리 민족의 단절은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족적 수탈과 억압은 반만년의 단일 민족이었던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게 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사회통합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남아있다. 따라서 반세기 정도의 기간동안에 무엇이 우리민족을 이렇듯 단절시켰으며, 또한 무엇이 단일 민족의 분단을 고착화시켰는지 알아볼 필요성이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는 남한 내의 ‘Red Complex’를 논의하므로 남한 내의 상황을 위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1945년 해방의 시점에서 볼 때, 일제 식민지배가 남긴 이데올로기적 지형은 극히 양극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민족적 모순을 심화시킨 일제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하루아침에 무너졌고, 이를 대체하여 민족해방의 저항이데올로기 속에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등장하게 되었다. ‘민족주의’는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과 반대의 모든 것을 포괄했고, 따라서 그것은 해방의 새 질서를 건설하기 위한 공통의 기반을 의미했다. 또한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억압, 탄압 등으로 시종된 일제의 정치적 지배에 대한 대안으로서, 해방의 새 정치를 조명하는 기본원리로서 비추어졌다. 해방 이후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하나로이에 남한 내부의 좌파세력은 거센 반발을 일으켰고, 이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이승만과 그의 후원자인 미국에 의해서 철저히 탄압받게 된다. 요컨대, 남북한 분단정권의 수립은 해방 당시 어느 정도 합의되었던 ‘민족’과 ‘민주주의’의 개념을 분열시켰다. 즉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을 포함했던 민족주의는 이제, 남한에서는 소련의 선동으로 반민족적인 행위를 일삼는 공산주의자를 배제하는 개념으로 왜곡되어버렸고, 북한에서는 미 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인 민족반역자들의 책동에 대항하는 개념이 되어버린 것이다. 즉, 우파들에게는 공산독재를 배제하는 모든 조치가 민주적인 것으로 잘못 해석되어버렸고, 이에 반공이데올로기 즉, ‘Red Complex’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2. 반공 이데올로기의 고착화 - 한국전쟁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남한은 미국의 2년 뒤에 일어난 6?25는 한?미 혈맹(血盟)관계를 만들었고 이에 남한은 정부수립 초부터 미국의 민주주의 모델을 수용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모방식 민주주의이고 교조적 민주주의이다. 미국의 한국 정책은 제대로 된 신생 국가를 만들기보다는 세계 경영의 차원에서 사회주의 세력과의 대립, 나아가 소련의 세력권을 막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우리는 냉전의 중심에서 철저한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는 우리 민족의 통일을 막는 것은 물론이요, 지구상에서 사회주의를 뿌리 뽑으려는 미국의 정책과 맞물려서 우리의 정체성을 왜곡시켰다. 그리고 이는 친일 기득권세력에 의해 교묘히 이용되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되게 하는 방편으로 이용되었다.물론 한국전쟁은 물질적?정신적인 피해가 상당했다. 그러나 이면에는 미?소의 세력다툼이 숨어있었고, 게다가 우리 민족의 이념대결도 도움이 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현재 한국 사회를 주도하는 보수세력들은 전후 세대이다. 그들은 전쟁을 겪으면서 하나의 민족보다는 개인의 가족과 사회를 초토화시켜버린 전쟁의 휴우증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깨닫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된다.3. 박정희 체제의 지배이데올로기박정희는 한국근대화의 주춧돌을 놓았고, 그 위에 한국형 고도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사람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세계에서 유례없는 고속성장을 일구어낸 탁월한 정치지도자라는 찬사는, 고속성장의 음지에서 돋아난 사회적 폐단과 해악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로 곧 상쇄된다. 또한 이 시대에 생겨난 어려가지 폐단은 아직까지 우리의 사회문제로 남아있으며, IMF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4?19 혁명 이후 민중을 기반으로 수립된 장면 정권을 힘으로 전복시킨 박정희 정권이 당면했던 가장 큰 과제는, 쿠데타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자신의 권력기반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내세운 것은 ‘조국 근대화’였고, 이를 구체화할 방법으로 산업화를 택하였다. 그러나 근대화를 내세우면서 반공을 국시로 삼고, 진보세력에 대한 철저한 탄압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 시대 우리는 상당히 굶주려 있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것은 물론 근대화였으나, 그 과정을 겪음에 대중들은 이제 Red Complex를 추종하게 된다. 조국의 근대화와 대북관계 등을 이유로 유신헌법이 통과되게 됨으로써 Red Complex는 극에 달하게 된다. 이는 1960년 대 말부터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투쟁의 세력이나 혹은 자신의 지배를 위협하는 정치가, 그리고 독재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반공이라는 이름아래 탄압하게 하는 구실을 제공했다.즉, 박정희 정권하에서의 지배이데올로기는 반공이데올로기를 정점으로 성장이데올로기와 권위주의 이데올로기가 접합되어 그 기능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시기 반공이데올로기는 여타의 상황이 취약해지는 시점에서 지배체제에 대한 위기국면을 사회통제의 물리적 정당화를 통해 종결되도록 하는 최후의 안전판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박정희에게 있어 반공이라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이를 정점으로 반공이라는 것은 당연시 되었으며, 대중 또한 반공이라는 것이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이에 우리 민족의 분단은 더욱 단구 응원단 역시 대공 수사와 격렬한 항의를 받았을 것이다. 즉, 이러한 반공이데올로기의 쇠퇴는 부르주아가 실질적 지배 세력으로 힘을 갖추어가는 1987년 이후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는 본래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 자본주의로 대체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반공 이데올로기는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일련의 사회 사건들 - 이익제 씨 편지사건, 양심수 논쟁, 대선 후보 사상 검증 대 토론회 등은 비이성적 ‘Red Complex’에서 아직까지 자유롭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정권의 색깔을 문제 삼는 친일청산 문제와 국가보안법 철폐는 우리의 Red Complex를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즉, 경제?문화적인 측면에서의 Red Complex는 상당히 쇠퇴하고 있지만, 사회의 상부구조인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아직도 Red Complex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머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통일에 대해 한 걸음씩 나아갈수록 쇠퇴해야할 분명한 대상이 Red Complex이기 때문이다.5. 붉은 악마의 유래 - 고대 신화를 중심으로그러면 이러한 Red Complex는 어떤 것에 기원을 두고 나온 말이었을까? 원래 붉은색은 세계적으로 공산주의를 표현하는 색깔이기도 하다. 소연방과 중공의 국기가 빨간색을 바탕을 둔 것이나, 혁명을 암시하는 색깔 역시 빨간색임을 고려할 때 Red Complex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Red Complex는 다른 사회의 그것보다 훨씬 심각한 데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우리의 역사는 Red Complex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사회전반을 왜곡시켰음이 명백한 것이다.원래 붉은색을 뜻하는 ‘The Reds’는 사전적인 의미로 공산주의자를 뜻하는 단어이다. 그러면 우리가 월드컵 때 외친 "Be The Reds(To be the Reds)"라고 외치는 것은 ‘공산당이 되자’라는 문구로 해석을 해야하는 것일까
    사회과학| 2006.01.05| 7페이지| 1,000원| 조회(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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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23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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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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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