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학교 리더의 꿈들어가며「신약의 제자훈련」을 들으면서 나는 그동안 관심 있던 제자 훈련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복음서에 나오는 제자도의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저자의 의도에 따라 나타나는 제자도는 다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훈련을 시키셨다. 그래서 나는 모든 신앙생활의 기본은 훈련이라 생각한다.오늘날 하고 있는 제자 훈련은 복음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예수님 시대에 친히 행하신 제자 훈련이 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모습과 형태로 제자 훈련이 있어 왔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각 선교 단체와 교회에서 자기에게 맞는 제자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행 중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도 각 기관에 맞는 훈련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나는 주일학교 전도사로서 특히 관심이 있는 것이 어린이 훈련이다. 어린이 훈련을 통해 말씀에 대한 적응력을 기르고 자연스럽게 말씀을 접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자기보다 낮은 학년의 친구들에게 리더로서의 역할을 하게하며 어릴 때부터 리더쉽과 신앙의 기초를 잡는 것이다.그래서 여기에서는 교회 학교 어린이들의 리더로 키우기 위한 나름대로의 프로그램 모형과 훈련을 만들어 보았다.■ 리더 운동● 한사람을 키우는 운동 : 개인의 삶이 평생 하나님 앞에 헌신되도록......교회가 정체되는 이유는 5가지(공동체성, 양육, 상호책임, 지도력, 전도)가 균형 있게 자리 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조직이 필요로 한다. (마태복음 28;18)아이들이 졸업 때까지 3가지는 가지고 졸업하게 한다.1. 하나님과 바른 관계의 중요성(영성)2.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법(섬김)3.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을 발견하고 개발한다(은사).● 한 사람이 커가는 자리? 한사람 → 소그룹 → 초등학교 → 세상을 책임지는 리더아래 은 기본적인 구조 만들기이다. 이는 개인영성, 공동체, 운동성이 있다. 세 가지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기본 구조이다. 세 가지 기본.ㄴ.제자도(양육)1)삶의 전 영역에서 주되심 인정2)홀로서기(자기생존)3)헌신된, 창조적, 온전한 기독 학생인4)문화변화의 주체*점검사항= 영성 + 공동체성 + 운동성-->QT + 기독교 정신ㄷ.선교(해외선교): 문화가 다르고 복음이 없는 지역-->10%를 보내려고 하고 있다.예1)정지숙-->선교모임, 선교여행, 단기선교핵심원리 목표로는 전도, 제자도, 선교가 있다. 전도는 세 가지 과정이 있는데 삶의 방식으로서의 존재, 새 가족 전도로서의 선포방식, 관리하기위한 변증으로 구성한다. 삶의 방식으로서의 존재는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하는 것의 본이 됨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가 예수님 때문이란 것이다.새 가족 전도의 선포방식은 우리의 본을 보고 교회에 들어온 새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삶의 모습과 말씀의 가르침이 병행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왜? 라는 물음에 순종함으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씀대로 살아야 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다음은 관리하기위한 변증으로 복음의 확실성의 변호이다.제자도는 크게 개인영성과 공동체성과 운동성 그리고 지도력과 꿈 만들기를 포함한다. 개인영성은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를 말한다.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를 통해서 삶의 전 영역이 ‘내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공동체성은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모임이 말씀과 같이 한 지체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며 관계를 나누면서 함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소그룹과 대그룹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서 지체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섬기고, 사랑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하나됨’의 공동체를 이야기 한다.운동성은 공동체 안에서 하나됨을 통하여 은사의 개발과 활용을 말한다. 이것은 셀 사역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문화 변혁을 꾀하는 것이다. 지도력은 리더에 대한 순종과 신뢰 그리고 공동체에 리더쉽 마인드를 형성하는 일들을 한다. 그래서 전체적인 ‘꿈 만들기’는 는 공동체ㄷ.선교..실천과 교육의 부재 ->-->선교모임 형성 예1)정지숙■ 꿈 만들기 운동에 있어서 핵심■ 리더 운동에 있어서 핵심1) 집구조운동을 통한 성장세상을 향한 영향력지붕관계를 통한 성장일대일소그룹대그룹기둥개인을 통한개인(영성)성장J.X의 인격과 사역=Q.T경건의 삶새벽기도(기도)지하(기초)새 생명, 주되심헌약집구조는 리더운동 사역 전체의 도식화이다. 크게 지하기초와 기둥, 그리고 지붕으로 나눌 수 있다. 관계적인 측면에서 지하기초구조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다.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의 시작을 말한다. 이 새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경건 생활을 필요로 한다.경건 생활을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의 생활이 기초가 된다. 말씀은 매일의 묵상이다. 새벽 기도는 마가복음 1장에서와 같이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모습이다. 이에 새벽 기도는 생명을 자라게 하는 하나님과 깊은 관계의 시간이다.기둥 구조에 있어서 하나님과 관계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 관계 확장을 말한다. 크게 일대일과 소그룹과 대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기둥구조에서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확장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형제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일대일 관계는 친밀함과 양육의 집중성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대그룹은 친밀성은 없지만 공동체성을 만들어 가며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다. 소그룹은 일대일 관계와 대그룹의 중간적 관계로 일대일의 장점과 대그룹의 장점을 다 소화 할 수 있다.■ 어떻게 이 꿈과 비전을 이루어 갈 것인가?새가족반제자양육1제자훈련2리더지도자훈련대 상①NON-CH②구원의 확신 없이 교회 다니는 사람①예수님을영접함②BUT 구원의 확신이 없는자③예수님에게 자기의 삶을 헌신하지 못한자①기초신앙정리를마친자②초보적인 복음전파 및 섬김이 단계①구원의 확신②기초신앙정리③제자훈련마침④본격적인 리더생활을 시작한자①섬김이 경험이 있는 사람②섬김이를 돕는일을 감당할 수 있는 자NON / 1-6어느 정도 독립하게 되고(결혼을 하면 완전히 독립), 사회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재생산을 시작한다.ㄹ) 배가자를 돕는 단계는 부모가 되는 단계이다. 이제는 자기만의 삶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아내, 아기)에 대한 책임이 주어진다.우리는 지금 배가자를 돕는 위치에 있지만, 앞의 세 단계를 우리가 계속해가는 일(인격)과 이러한 삶을 살아오는 사람을 돕는 일(사역)이 우리의 할 일이다.1) 초신자(새가족반)(1) 정의 : 예수님을 알지 못하거나 아직 확신이 없는 사람(2) 양육내용 - 하나님과의 관계 형성(경건의 시간); 1단계이것이 잘못되면 기형아가 나온다.(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과 제자)(3) 리더의 할일ㄱ.보호벽(절대적인 리더쉽) : 관심을 집중하고, 함께 시간을 가져 준다.-->하나님과의 관계에 방해되는 장애물을 제거해 준다.(지난날의 상처, 궁금한 것, 의심 가는 것, 현실적인 어려움)예1)태아가 자라가는 것은 ‘양수’라는 보호벽ㄴ.영양공급예1) 로히트1.2 + 로히트 이유식 + 40가지 곡물(4) 실례ㄱ.경건의 시간을 돕는 법(한 사람..181): 복음을 소개하고(객관적인 사실들),하나님과의 교제를 연결해준다.(인격적인 관계로 인도함): (중매쟁이)ㄴ.상처 입은 사람을 돕는 법우리는 상담에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제자가 될 대상을 이쪽 강 너머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다리와 같은 역할이다.-->총체적인 문제아...가정으로 다가가라.(관계 중심의 나눔)*우리가 경험하는 중요한 상처들1.적성의 문제(전공,재수,) / 신체적인 문제2.가정의 문제(이혼..20% / 귀남이 사상 )3.교회(지도자와의 갈등, 일이 많음)4.학교(동문회, 술 담배, 신앙의 회의)*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들1. 듣기 ; 들어주면 문제의 70%가 해결된다.(상처 입은자들은 이야기할 상대가 없는 것으로 인하여 거부당함을 느낀다.)2. 도움주기 ; 공동체의 도움은 하나님께 용서받은 표시이다.2) 제자(1, 2)(1)정의; 종교인 --> 태에 있는가?내가 맡았던 조원은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 아이사역사역; 준비사역, 전투사역, 지원사역 개발▶ 사역을 돕기 위한 특수사역1)전도와 선교팀.(등록아이 - 아이들 간의 정감 있는 교제를 개발하고 새 친구에게 교회를 소개하는 팀이다.) (가장 효율적인 전도와 선교를 연구하는 팀이다.)심방1. 전화심방 - 교사는 모든 어린이에게 주일에 한 번씩 전화심방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2. 문서심방 - 장기 결석자에 대해서는 편지나 엽서를 보낸다.3. 특별심방 - 병원에 입원시나, 직계가족 사망시 등 특별경우에 심방을 한다.4. 직접심방 - 장기결석자중 부모가 심방하기를 원하는 경우 직접 심방을 한다.2) 예배팀.(교회의 음악과 찬양을 담당하며 설교자료 준비의 지원과 예배와 관련된 안내 등최고의 예배를 준비하다.)1. 찬양: 월간계획표, 예배 순서지 작성, 주제별 찬양곡 선정, 찬양팀 선정, 싱어 선정어린이 찬양팀 훈련, 찬양 및 율동 확충2. 반주: 어린이 반주자 훈련, 반주 계획, 연습계획3) 양육팀.(예배는 성장을 위한 예배로 준비하며 여러 가지 성경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아이들 의 양육과 훈련으로 성장을 위한 소그룹을 운영한다.)1.제자훈련(경건생활정착) 2.제자훈련(섬김과 사랑의 정착)3.사역 (예수님의 사랑을 지역사회에 나타내기 위한 사역팀을 개발하고 진행하는 팀이다.셀 리더 훈련1) 6학년을 대상으로 한 리더 훈련이다. - 성경공부를 통한 깊이 있는 교육훈련2) 전반기(3월-6월), 후반기(9월-12월) 2회에 걸쳐 있습니다.3) 반별로 교육훈련 참여 유도4) 7,12월에 셀리더 M.T (1박 2일)4) 홈피팀한주간의 삶을 관리하고 아이들 간에 교제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5) 관리팀.(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여 모든 아이들이 반드시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다.)차량운행(처음과 끝), 시설적인 것(냉?온방), 환경적인 것, 장기적 시설준비.1. 예배준비: 헌금바구니, 예배당 청소, 마이크 및 음향시설 점검, 환경물 점검비품목.
『개혁 신앙과 교회』「개혁신앙과 교회」를 저술하신 김길성 교수님은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목사후보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조직신학 교수로서 일관된 검소함과 성실함은 많은 후학들에게 강한 도전을 주고 있다. 「개혁신학과 교회」에 이어 본서를 저술함으로서 개혁주의 입장에서 교회가 어떠한 신앙과 신학적 명분 위에 서야 하며, 어떠한 신학이 바른 신학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요약 정리하는 목사후보생으로서 지식과 실천면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얻었음을 밝힌다.조직신학자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1. 박형룡 박사의 신학적 배경박형룡 박사의 신학은 구 프린스톤 신학(Old Princeton Theology)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일제 하 식민지통치에서 신학을 했고 한민족의 교육과 개화에 힘썼던 평양 숭실 전문학교에서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선교사의 도움으로 중국 금릉대학에 입학한 것 등으로 비추어볼 때 당시 선교사들의 영향이 젊은 박형룡의 혈맥에 깊이 자리했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의 배경은 그가 신학사, 신학석사를 마친 1923년에서 1926년 사이 프리스톤 신학교에서 구체적으로 비롯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프리스톤 신학교가 설립된 1812년부터, 프리스톤 신학교의 이사회의 재편성으로 말미암아 동 신학교가 신학교 설립 이래로 표방해온 역사적 개혁주의, 정통 칼빈주의 신학을 포기하고, 그 시대의 사상적 흐름이었던 종교다원주의를 신학교의 나아갈 방향으로 정한 1929년까지 동 신학교에서 주장되고 교수된 신학을, 1929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교수 되어온 신학과 대조하여 구 프린스톤 신학이라고 부른다.구 프린스톤 신학전통 대표자들로는, 프린스톤 신학교 설립과 더불어 첫 교수였던 아치볼드 알렉산더로부터 찰스 하지, 아치볼드 알렉산더 하지, 워필드, 메이천 등이 있다. 박형룡 박사는 1923년 근본주의 대 근대주의 논쟁에 휘말렸던 시기에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수학했다정”이라고 말했다.선친의 입장을 취한 박아론 교수는 1976년 「신학지남」가을호 권두언에서 총신의 신학적 전통은 곧 한국교회의 신학적 전통이 되는 ‘보수주의 신학’이라고 하고, 이 ‘보수주의 신학’을 “청교도 개혁주의 정통신학”이라고 하였다.2. 박아론 박사의 신학적 사상1) 기독교 변증학박아론 박사는 외국의 대표적 신학자로 헤르만 도이빌트(1894~) 교수와 코넬리우스 반틸(1895~1987) 교수를 들고, 특히 반틸의 전제주의적 입장을 충실하게 따랐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하지만 박아론 박사는 도이빌드의 기독교 철학이 갖는 약점을 몇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첫째로 도이빌드가 ‘이분설적 인간론’을 거부하고 영혼의 실재에 대해서 회의를 표명한 것과, 둘째로 도이빌드가 기독교철학을 기독교신학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기독교철학이 기독교신학의 원리와 기능을 결정짓는 것처럼 말하여, 하나님의 계시진리보다도 철학우위의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 점과, 셋째로 도이빌드는 그의 종교론에서 종교의 영역을 교리연구나 예배행위에 국한시키지 않고, 인생의 전 영역에서 인간이 신을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여, 역사적 기독교의 계시주의 입장을 벗어나고 있는 점을 들었다. 이런 점들 때문에 도이빌드를 “ 좌경하는 기독교 철학의 기수” 또는 “급속히 좌경하는 기독교 철학의 기수”로 부르고 있다.하지만 박아론 교수는 외국의 대표적 변증신학자로 도이빌드 외에 코넬리우스 반틸 교수를 들고, 특히 반틸을 “진정한 기독교철학의 기수”로 이야기 한다. 박아론 교수는 1955년에서 1957년 사이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반틸의 현대신학 강의를 경청했다. 그 후, 박아론 교수는 총신에서 기독교 변증학, 험증학, 현대신학을 강의하면서, 반틸의 전제주의적 변증론을 도입하여 가르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박아론 교수는 반틸의 변증신학 또는 기독교철학을 세 가지 주제로 이야기 한다. 1) 탕자와 같은 현대인가 2) 기독교철학과 비기독교철학의 대결 3) 신지식에 호소 등으로 요약한다.현대인간이 소원하는백주의 전통미국의 개혁주의 전통에서 첫 번째 두드러진 형태는 청교도 유산속에서 주로 발견되는 고백주의(Confessionalism)이다.미합중국 장로교회의 거의 초창기로부터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와 대소요리문답의 위치는 논란의 초점이 되어 왔다. 미합중국 내에 프란시스 마케미(Francis Makemie)의 지도아래 첫 장로회 노회가 조직된 것이 1706년이었다.이 노회는 독노회(the General Presbytery)와 필라델피아 노회(the Presbytery of Philadelphia) 라 불려진다. 1716년에 대회는 조직되었으나 교회의 표준문서는 1729년에 채택된다. 왜냐하면 뉴잉글랜드 지역의 교회들과 스코틀랜드와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 교회가 교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오직 성경만이 충족한 표준이라는 주장과 교회의 교리적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장로교 표준문서에 서약하는 일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맞부딪혔기 때문이다.이 논쟁에 대한 해결책이 1729년의 “채택안”(the Adopting Act)이었는데,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의 채택을 건의한 1727년의 헌의안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러나 채택안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하는 문제로 대회는 또 논쟁에 휩싸이게 되었다.문제는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 제20장과 23장에 있는 구절들로, 국자적 위정자들이 대회에 권위를 행사하는 일과 교회의 권징을 행사하는 권위를 가진다고 하는 구절들이 유일한 “거리낌”(scruples)으로 선포되었기 때문이다.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건너온 이민자들이 과거 본국의 왕정 아래에서 박해와 고난을 받아온 것을 이해한다면 이날의 결정은 쉽게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동일한 날짜에 채택된 두 가지 안에 대하여 후대의 학자들은 서로 상반된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위의 두 견해 중에 전자는 같은 날 오전에 채택한 “예비안”에 강조를 두고 있으며, 반면에 후자는 같은 날 오후에 채택한 “동의안”에 강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윌리엄 바이커 교수의 입장은 1729년학적 대화, 현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복음주의적 비평, 복음주의적 협동을 위한 깊은 계획 등을 촉구함으로써, 이 운동의 지도자였던 해럴드 오켄가 만큼이나 변화를 겪었으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실상 “신복음주의 운동”의 요람이 되었고, 결국 이들이 비판해 마지않던 세계교회 협의회(W. C. C)와 친선관계를 추구하게 되었다.해럴드 오켄가가 초대학장을 지낸 풀러 신학교(1947년 설립)는 초기에는 훌륭한 복음주의 신학교였으나, 차츰 에드워드 카넬(Edward J. Carnell)의 유신진화론의 수용과 1970년 성경관의 변질로 말미암아 신학적 좌경으로 흘렀다. 하지만 그래도 풀러 신학교의 세계선교 대학원은 복음주의 입장을 견지해 왔다.그러나 복음주의 운동에 있어서 개혁주의는 결코 유일한 신학사상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종말론에 있어서도 다양한 입장을 수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복음주의자들의 지배적인 신학적 전통을 개혁주의 또는 칼빈주의라고 하는 사실 역시 인정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2. 미국의 개혁주의 신학자들미국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프린스톤 신학교의 설립부터 신학교 이사회의 재편성으로 말미암아 동 신학교가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수용할 때까지 1812년부터 1929년까지의 구프린스톤 신학(Old Princeton Theology)전통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구프린스톤 신학전통의 신학자들로는, 프린스톤 신학교의 첫 교수였던 아치볼드 알렉산더(Archibald Alexander, 1772-1851)를 포함하여, 찰스 하지(Charles Hodge, 1797-1878), 아치볼드 알렉산더 하지(Archibald Alexander Hodge, 1823-1886),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 Warfield, 1851-1921), 그리고 구 프린스톤 신학전통의 마지막 주자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설립한 잔 그레스햄 메이천(J. Gresham Machen, 은 누가 복음 첫 두 장은 칠십인역을 모방하여 누가 자신이 직접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한데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반박하고자 쓴 논문이었다.2) 누가복음 첫 두 장의 기원메이천은 “누가복음 첫 두 장의 기원”이란 논문을 통해 누가복음 1장과 2장에 기록된 사건들을 각각 다른 사건들로 보려는 자유주의자들의 견해에 반대하고 그리스도의 탄생기사의 통일성을 일관성 있게 옹호하였다. 후에 학자들은 메이천의 이 두 논문을 통해 메이천은 역사적인 견지에서 성경을 연구하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게 되었다. 또한 그의 역사적 성경관은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하려는 의도를 입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활동초기부터 성경에 대한 역사적 접근법을 통해 신앙은 모든 증거들을 배제한 비이성적 도약이 아니라, 오히려 정확하게 해석만 된다면 그 증거들과 완전히 일치하는 확신이라고 하는 정의를 내리게 되었다.3) 2세기의 동정녀 탄생 전통“2세기의 동정녀 탄생 전통”은 프린스톤 신학평론에 실린 그의 세 번째 논문이었다. 그의 논문에서 동정녀 탄생에 관한 확고하고도 잘 정리된 신앙은 이미 2세기 초기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2세기를 시작하면서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신학적 움직임은 참된 역사적 전통보다는 철학적, 교조적 선입관에 기초하고 있다고 단정을 내렸다. 논문에서 그의 결론은 특수한 현상들에 대한 역사적 설명을 요구하는 그의 후기 논거의 근거가 되며 성경에 대한 그의 역사적 탐구라고 하는 접근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었다. 메이천은 자신이 가졌던 기독교 정신에 근거한 철학적 전제들을 이용해, 당시 역사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던 기존의 많은 사람들과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가 선택한 논의는 역사적 방법은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역사가들에 의해 채택된 일부 전제들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메이천은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 기사들에 대해 개연성 있는 설명만 아니라 보다 정확한 설명을 요구하는 역사적 접근법을 고수하였다.4) 예수와 바울메이천은 자유주의자들이 바울은 예수님의 였다.
기독교 변증론APOLOGETICS[코넬리우스 반틸 저. 이창우 역. 기독교문화 협회]1. 기독교의 진리체계변증론이란 여러 가지 다양한 비기독교 체계의 철학의 대항하여 기독교의 철학을 변호하는 이론이다. 변증론은 기독교의 문제들 보다는 하나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험증학은 신의 문제보다는 기독교의 근본문제를 다룬다. 그러므로 변증론은 철학의 문제요 험증학은 사실의 문제라고도 한다.이들의 문제가 강조의 차이에 있으며 분리의 문제가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 유신론(기독교와 신의 문제)이 동일한 문제라고 하는 사실에서 그런 것이다. 기독교와 유신론은 서로를 내포하고 감싸고 있다.참으로 이제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정통 교리를 이해 할 수 있고 죄에 대한 정통교리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교리가 다른 규정을 내리는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 교리는 언제나 일정한 신관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에 대한 교리와는 결코 분리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결국 기독교 유신론은 일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 유신론 전체를 현대적인 무기로 사용하여 기독교 진리를 아마 변호해야 할 것이다. 단순한 사실만을 논의함으로써 역사적 종교인 기독교를 변호하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가치하다.하지만 실용주의 철학자는 기독교의 논리적 전개를 따르려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실제로 무덤에서 살아났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인간 예수”에게서 일어난 특별한 사건이라는 것 그 이상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실용주의 철학은 우주의 만물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예수의 부활은 그 부활 자체는 사실이라 하더라고 이천년 후의 우리에게는 별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는 주장이다.이렇게 볼 때 참으로 우리가 기독교를 역사적 종교로 변호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동시에 기독교가 기초하고 있는 유신론을 변호해야만 한다. 이것은 우리를 철학적 논쟁으로 끌어들인다. 역사적 사실을 해 것에도 관련되었거나 의존적이 아니라는 것이다.(요5:26; 행17:25) 그는 스스로 자족하신 하나님이시다.2. 하나님의 불변성 - 하나님은 변하지 않고 변할 수도 없다(말3:6; 약1:17)3. 하나님의 무한성 - 이것을 시간과 관련하여서는 하나님의 영원성이라 부르고, 공간과 관련하여서는 하나님의 편재성이라고 부른다. 영원성이란 하나님의 존재나 의식에 있어서 시작과 끝과 시간의 흐름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편재성이란 하나님께서 전체 공간 위에 계시지만 그 공간 어느 부분에도 빠짐없이 임재 하여 계시는 것을 말한다.4. 하나님의 단일성 - 하나님의 속성은 오직 한 하나님 원존재의 양상으로만 생각되어질 수 있다. 존재의 기반은 부분이 전체를 형성한다. 하나님의 통일성과 다양성은 동일한 기초가 되며 상호 의존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에 참여할 수가 없다. 다음은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에 대해서 살펴본다.하나님의 지식하나님의 지식 문제는 변증론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나님은 하나의 영원한 지식을 아는 지적 행위의 장본인이시며 그 자신은 모든 깊은 것까지 통달하여 아신다.하나님께서는 무지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전지한 존재이며 그의 지식의 가능성은 모든 지식의 실재와 일치하며 그의 지식의 잠재성은 현실적으로 일치한다. 하나님의 지식은 인간의 지식처럼 전수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의 존재가 완전무결하기 때문에 완전한 지식이다. 하나님은 그의 지식의 대상이 사실이기 이전에 그 사실에 대한 지식을 완전히 갖추고 있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식은 분석적 지식이다.하나님의 의지하나님의 의지는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지식에서 연유된다. 하나님은 자기 존재에 대하여 자기 충족성을 가지고 있고 자기 완전성을 갖고 계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자신과 모든 피조물들을 직관이라고 하는 자기 내관적 행위에 의하여 안다. 하나님은 그의 존재와 지식에 있어서 절대 능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는 교리를 삽입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 존재의 깊은 심연까지 이해하려고 한다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되기 전에는 불가능 하다. 인간은 오직 나타난 현상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할 수 있다.2. 기독교의 우주관과 인간과의 관계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이것을 알고 난 다음에 인간을 둘러싼 우주와도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음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이 창조된 세계 속에서 고작해야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예언자, 사제, 왕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비기독교적 이론은 인간과 우주의 변천이 단지 우연적으로 그리고 부차적으로만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3. 인간의 타락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어서 창조시에 부여한 율법에 따라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인간은 죄에 빠졌다. 인간이 타락한다는 것은 인간이 모든 면에서 하나님 없이 행하려고 하는 시도 때문인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잘못된 자기 지식의 이상을 구상하였고 불필요한 미완의 지식을 알려고 항상 가설을 재창하였다. 그러나 잘못된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 지식에 대하여 인간이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인간은 스스로 자기 제한성을 탓하게 되었다. 인간은 자기 제한성을 죄와 결부시켰다. 이와 같이 인간은 현실의 형이상학적인 청명과 윤리적 측면을 혼동하고 있다. 인간은 그들의 자기 제한성을 그들의 죄의 탓으로 돌리려 하지 않고 인간은 그를 둘러싼 그 자신 속의 문제를 환경의 탓으로 돌렸다. 인간은 그 자신의 궁극적인 기준을 자율성으로 보려한다. 하지만 인간은 실제 정통주의 신학 입장에서 주장하는 존재론적 삼위일체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자기 충족적이고 자율적인 하나님임을 변증하여야 한다.C. 기독론인간이 다시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재결합을 시도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께로 회복시키기 위하여 오셨다. 이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는 참으로 인간이 되어야만 하였다. 본질상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하시며 성부 하나님과 결론이다.1. 역사철학인간은 단독으로 움직이는 자연계시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없다고 한다. 하나님의 자연계시에 또 하나 더해진 계시가 있는데 그것은 초자연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시이다.처음부터 역사는 그 성격상 언약적인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연계시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발생하는 진화의 과정을 위한 하나의 역사의 광장이 되었다. 하나님은 아담과의 언약의 조건이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함으로 생기는 새롭고 특별한 자연 계시에 관해 우리는 약간 들어서 알고 있다.이와 같이 처음 언약의 행위자가 불복종이라는 결정적 행위에 따라 하나님은 언약대로 자연가운데 그의 진노를 발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노와 함께 그의 은총(은혜언약)이 나타나게 되었다.우리는 자연 계시와 성경에 나타난 계시가 둘 중에 하나라도 제외된다면 그것은 상호 무의미하게 되며 그것들이 결합될 때만 상호 의미가 있다고 하는 처지에서 통합되고 정돈 될 수 역사철학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전체 역사의 통일성을 조망하고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역시 계시의 필요성, 권위성, 충족성, 확실성 등에 상응하는 자연계시의 필요성과 그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2. 자연 계시의 필요성우선 자연 계시의 필요성을 말하려면 우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언약의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인간의 조상인 아담이 낙원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명령이 초자연적인 것으로 들어나기 위해서는 자연은 어디까지나 자연 계시에 의하여 들어나야만 했다. 그러므로 진정한 계시는 예외 없이 규칙적인 법칙성이 전제되어야 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이 세상 모든 일에 있어서 스스로 자의식을 가지고 순종하도록 명령을 내리셨다. 여기서 자연 계시가 필요한 이유인데 하나님의 계시는 자연 계시와 역사 발전의 과정 이전에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나게 한다.지금까지 우리는 자연 계시의 필요성을 이야기해 오면서 들은 삼위일체론적 하나님을 증거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 한다. 가톨릭 신학은 그의 의지대로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그런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개의 인간들은 의롭지 못한 속에서 진리를 억압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변증론자들이 호소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신의식, 즉 하나님에 관한 지식인데 바울은 모든 사람이 이것을 가지고 있으나 모든 죄인들이 이것을 억압하려 한다고 말한다(롬1:19~20).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일반적인 추론방법을 따라서 자연인도 단지 이성을 사용함으로써 자연 계시를 바로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자연인이 이미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 나타나는 자기 충족적인 하나님의 계시를 둘러싼 모든 생각은 인간이 자신을 자율적이고 자기 충족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 인간 자신이 그 내적 구조에 있어서 계시적이 아니면 그는 외부로부터 오는 어떠한 계시도 받아들일 수 없다.개혁주의적 입장로마 가톨릭이나 아미니안주의적 입장의 최대의 결점은 인간에게 궁극성이나 자기 충족성을 부여한다고 하는 점이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은 인간정신은 파생적이라고 주장한다. 본래 정신은 그 자체로써 하나님의 게시와 접하고 있다. 그것은 오직 계시에 의해서만 둘러싸여 있다. 그것은 원래 그 자체가 계시적이다. 그것은 자신을 의식할 때마다 본성적으로 그의 피조성을 의식하게 된다. 인간에 있어서 자기의식은 하나님 의식을 전제한다.하나님의 자연 계시는 그의 주권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속에도 있었다.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성은 인간 자신이 계시에 인간의 본성은 인간 자신이 계시에 책임성 있게 반응해야 할 존재임을 계시해 준다. 자연계시 그 자체는 불완전하다. 그것은 처음부터 초자연적 계시로 보충될 필요가 있다.인간은 본래 진리를 받아들일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진리 자체를 실재 소유하고 있다. 이것법이다.
“밭에 감추인 보화와 진주를 찾는 상인 비유”1. 비유란?예수님의 비유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는 다면 기독교 학자들이 연구하고 발표했던 자료를 찾아보면 된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 통일된 공리와 학설은 없다.비유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비유의 수에 대하여는 학자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지만 대체로 비유는 예수님의 기록된 가르침에서 3분의 1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예수님의 교훈과 가르침 가운데 비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비유에 관심을 갖게 하며 또 이를 연구하도록 자극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비유를 연구하는 중요한 이유는 비유가 메시지라는 사실에 있다.우리는 대체로 비유를 가르침의 수단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비유는 가르침을 위한 하나의 도구인 틀이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비유를 비비유화 함으로써 비유의 틀을 벗겨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가르침 곧 메시지를 찾아내고자 노력한다.그러나 비유 안에 예수님이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유 그 자체가 곧 가르침의 내용이다. 비유 안에 계시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유가 곧 계시이다. 비유는 내용을 설명하는데 필요한 도구가 아니라 내용 그 자체이다. 이 때문에 비유는 메시지의 설명 도구이므로 -다시 말해서 설명이므로-설명될 필요가 없다는 견해는 일축된다. 비유는 해석을 연구를 필요로 하는 메시지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유를 연구한다는 말이 비유의 틀을 벗겨내어 그 안에 들어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찾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비유가 곧 예수님의 가르침의 내용이라고 할 때, 이 내용을 변함없이 유지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형식이다. 형식은 내용에 압력을 가한다. 어떤 이야기에서든지 내용은 형식에 의하여 결정된다. 형식은 내용의 조직화이다. 내용은 형식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형식의 변화는 내용의 변화를 초래할 사용하신 것이다. 천국이 비유의 기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천국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을 현실감 있게 설명하기 위해서 비유를 사용하셨다.이런 비유는 청중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다. 바로 청중의 수준과 상황, 관심에 따라 사용 된다. 비유에 사용되는 자료는 청중들에게 친밀한 것이다. 비유는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도구이기에 선택된 것이다.)당시의 보물 얘기들보화나 진주는 예수님 당시 근동에서 흔한 이야기 주제로 등장했다. 밭에 숨겨진 보화 얘기는 그것을 발견한 자가 으리으리한 궁정을 지었다든지, 그것을 발견한 자가 노예들을 줄줄이 거느리고 시장 나들이를 했다든지, 발견자의 아들이 밭주인의 딸과 결혼해야 된다는 현명한 판사의 판결이 났다든지 등의 구도로 되어 있었다.진주 얘기는 특별하게 경건하게 살던 사람이 그 보상으로 진주를 발견 했다든가,어떤 상인이 강도들에게 붙들려 갔는데 진주가 그의 생명을 구해주었다든가 등의 구도로 되어 있었다.예수님은 당시에 이렇게 흔하게 떠돌아다니는 얘깃거리를 들어서 천국을 가르치신 것이다. 사람들이 생소하다고 느끼기보다는 ‘아, 그 얘기?!’라고 하면서 친군하다고 느낄 수 있는 소재를 택해서 천국의 일면을 인각(印刻)시키신 것이다. 그러면서도 당시인들이 흔히 기대하는 위와 같은 내용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내용으로 짜서 말씀을 전하셨다. 당시에 얘깃거리로 천국을 설명하시다가 보니 얘깃거리(Bild)와 천국의 실재(Sache)간의 차이를 얘깃거리를 바꾸는 식으로 메우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2. 밭에 감추인 보화와 진주를 찾는 상인이상으로 비유가 무엇인지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복음서중 마태복음의 천국 비유가 많은 13장에서 ‘감추인 보화와 진주’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마태복음 13:44~46 “천국은 마다 값진 보화이며, 가치에 있어서 모든 것을 능가하는 진주인 것이다. 따라서 이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그리고 오직 그 진정한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을 소유하기를 기뻐하는 것이다.)2)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13:44)비유의 요점은 -밭에-숨겨 있는 것을-찾아-소유하게 되는-보물이다. 금이나 보석 같은 값진 보물을 숨기는 일은 고대에, 특히 동방에서 전쟁과 통치자의 변동 등 때문에 빈번했다. 「트랜취」는 부자들이 재산을 삼부분으로 나누어, 하나는 장사용으로 했고 또 하나는 도망갈 때 갖고 가기 위해 보석으로 바꾸었고, 또 하나는 안전한 곳에 묻어 두었다고 기록했다. 이리하여 어떤 부자가 죽는 일이 생길 수 있었고, 그와 함께 묻힌 보물의 모든 자취도 우연히 그 누가 그곳을 발견하기까지 잃어버려져 있는 일들이 있었다. 이것이 본 비유의 상황이다.)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의 비유는 마태복음에서만 기록되어 있는 비유이며, “쌍둥이 비유”라고 말한다. 두 비유는 제자들에게 천국의 귀중한 가치와 천국의 내적인 면을 보여 줌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본 비유를 통하여 제자들에게 하나님 사역에 대한 동기를 주셨다. 이 두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발견한 후 그 귀중한 가치를 바라보며 소비되더라도 그것을 위해 결단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이 비유는 팔레스틴의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밭에 보화를 묻는 것은 예수님 당시에 잘 알려진 내용으로 은행이 없을 때 도난을 방지하는 가장 안전한 방비책이며, 잦은 전쟁의 약탈로부터 좋은 대비책이었다. 비유 속에서 보화를 발견한 행운아는 밭주인의 종이 아니라, 날품노동자였을 것이다.비유 속의 주인공이 보화를 발견하고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서 형식상 합법적으로 소유한 행동은 주목할 만하다. 중요한 것은 보화를 발견한 일꾼이나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에서는 진주가 아니라 진주를 찾는 상인이 천국에 비유된다. 또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에서는 일꾼이 밭에서 일하다가 우연히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는데 비해, 이 비유에서는 천국에 비유된 상인이 좋은 진주를 열심히 찾던 중에 최상품의 진주를 구하게 된다.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에서는 천국의 가치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주를 찾는 상인 비유에서는 그 귀한 천국을 찾아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에서는 천국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수동적이요 그 숨어 있는 직접동작자는 하나님이신데 반해, 진주를 찾는 상인 비유에서는 천국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능동적이요 인간의 자발적인 행동과 열정이 강조된다.감추인 보화의 비유는 가난한 자가 우연히 발견한 경우이며, 값진 진주의 비유는 부유한 상인이 오랫동안 신실한 탐구의 결과로 발견한 것으로 이 두 비유는 상호보완적이다. 그리고 이 두 비유는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면과 그 물건을 얻기 위해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팔아서 샀다는 것이 같다. 세상에 진주는 많으나 최고의 가치와 가격을 지닌 것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진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갈수 있는 곳은 어디든 갔다.이 비유는 역사적 상황을 비유의 재료로 사용했는데, 1세기에 진주는 재력 있는 사람들의 신분의 상징이었으므로 진주의 수요가 급증했다. 상인들은 진주를 구하러 홍해, 펠,시아만, 인도까지도 갔다. 자신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나아갔을 때 그 발견의 값어치는 최고의 것이 되는 것이다. 이 값진 진주의 비유는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성을 보여준다. 우리들의 삶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발견은 최고의 가치이며, 그 예수를 발견했을 때 놀라운 변화가 있는 것이다. 진주 장사가 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했을 때 놀라운 변화가 있게 되는 것과 같다. 진주 장사가 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 했을 때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을 샀을 때 그의 목적을 이루었듯이, 예수야 마땅하다. : “…한 보물(상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천국의 경우도 그러하니라.”2) 그 무대적 배경과 대상으로 말해지는 사람들그 무대적 배경도, 가라지 비유에 대한 해석을 지배하는 주재료들도, 감추인 보화와 진주의 비유들을 위해 동일하게 남는다. 제자들, 혹은 교회가 이 두 단락들의 수혜자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가 그 해석에서 명시하는 바로 그 권계적 관심이 여기서도 현재하리라는 걸 예상할 수 있다.3) 감추인 보화의 비유의 반편표상감추인 보화의 비유의 반편표상에는 석의자들을 다소 혼란시키는 것으로 입증돼 온 한 가지 특징이 있다. : 어느 사람이 자기 소유가 아닌 밭에서 보화를 발견하고 자기가 발견한 걸 그 밭주인에게 누설치 않고 그 밭을 매입하는데, 그 결과 그 사람이 자위적 방법으로 그 보화를 손에 넣는 것 같다는 것. 이 사항을 해결키 위한 표준적 설명은, 그 이야기의 주안점에 관심을 두는 게 틀림없는 해석자에게는 그 비유의 이 특징은 별로 중요한게 아니므로, 그 점은 마땅히 그 이야기의 장식쯤으로 돌려져야 한다는 것이 되어 왔다. 어떤 학자들은 심지어 문제의 그 사람이 최소한 율법의 경계를 벗어난 건 아니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외견상 악한 상황을 구출하려 시도키조차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 입장은 그 사람의 행동의 도덕성에 관한 문제는 해결치 못한다.매우 계도적인논문에서, 데레트(J. D. M. Derrett)는 특히 이 문제를 거론하여 앞에서 언급된 그 해결들을 거부하고, “그 발견자는 그가 행했던 바를 할 도덕상, 법률상의 완전한 권리가 있었다. 그 처신은 온당했고, 정말로 불가피했다.”고 결론짓는다.데레트는 그 비유를 분석하고 이 이야기 속에는 “들어 올림”의 원리가 작용하는 것일 거라고, 즉 누가 이동시킬 수 있는 어느 물체를 소유하려면 그는 그것을 육체적으로 붙잡아 옮겨야, 다시 말해서, “획득할 의도로[그것을] 그 위치에서 이동시켜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그 보화는 “울이 없는 땅”에, 그리고 거의 틀림없이 “토기 단지
성경의 방어자 워필드 (Warfield, B.B; 1851-1921)1. 벤자민 워필드의 생애1951년 11월 5일 켄터키의 렉싱톤 근교에서 부농인 아버지와 목사이며 교육가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1871년 뉴저지 대학(프린스톤 대학교전신)을 우등생으로 졸업 -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관심1876년 프린스톤 신학교 졸업, 앤 피어스와 결혼, 독일로 신혼여행 중 아내가 벼락을 맞아 죽을 때까지 마비되었다. 그의 아내에 대한 사랑과 보호가 극진하여 사람들이 성령의 사역의 가장 탁월한 현시로 언급1876년 펜실바니아 일리제니(Allegheny)에 있는 웨스턴 신학교에서 강의 시작1881년 4월 장로교지에 A.A 핫지와 유명한 논문“영감”을 출판1887년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강의 시작, 북장로교 전체에 있어서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 변증학 교수로 봉직1915년 그의 아내 앤 피어스가 세상을 떠남1921년 2월 16일 뉴저지의 프린스톤에서 세상을 떠남2.방법론1) 시대적 배경19세기말 ~ 20세기 초는 성경 권위의 싸움이였다. 워필드는 초자연주의를 부인하고 기독교를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려는 학자들, 그리고 기본 교리들을 다소간 변경시키려는 자유주의자들 등 여러 분파들과 맞서 투쟁하였다. 특히 독일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었던 전자의 사상이 미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보기 드문 분석력과 박학다식한 지력을 빈번히 쏟아 부었다.워필드는 기독교가 단지 또 하나의 자연 종교에 불과하다는 급진적 비평가들의 주장과 관련하여, 그러한 주장은 성경자체에 대한 연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비평가들이 자신들의 성경 연구에 도입한 자연주의적 전제들로부터 나왔음을 분명하게 보여 줌으로써, 그들의 이론을 무력하게 만들어 놓았다. 성경 비평가들과 신학자들은, “신앙의 현대화” 또는 “현대적 관점에서 기독교를 충분히 사색함” 등과 같은 제목 아래, 기독교를 자신들의 철학에 맞추어 개조하는 것을 당연시 하였다. 이에 대한 워필드의 명백한 답변은 이것이다. 즉 신앙의 현대화 요청이 모든 시대에는 “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에, 비평가들은 기독교와 기독교의 그 시대 상황적 표현 간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주의와 현대주의 논쟁 가운데 성경의 권위를 사수하려는 전투자적인 벤자민 워필드의 등장배경과 방법론 그리고 사상을 살펴 보려한다.2)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상현대는 17세기 계몽주의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계몽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이성의 능력을 무한히 신뢰하고 강조한 것이 특징이었다. 계몽주의는 인간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이성을 진리의 척도로 간주하는 현대 정신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현대 정신은 전통 기독교에 큰 도전이요 위협이다. 그것은 서구 세계를 신 중심적 관점에서 인간 중심적 관점으로, 그리고 교회중심 문화에서 세속주의 문화에로 전환시켰다.계몽주의는 자유주의 신학 형성에 중요한 자원을 공급했다. 자유주의 신학은 계몽주의와 조화하여 또는 계몽주의의 관점으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해석한 것이다. 그것은 최고의 권위를 성경 자체가 아닌, 인간의 이성과 경험에 둔 것이다. 자유주의의 성서 비평은 기독교가 계몽시대의 새로운 학문과 학문방법에 적응해 보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은 문학비평과 역사비평에 근거하여 복음서 기록의 역사성을 문제시하고 성경의 무오성을 부인하며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부활, 승천, 기적과 같은 성경의 초 자연성을 부정했다.3)워필드가 기독교 변증가로 등장하는 배경알렉산더가 프린스톤 신학을 이끌어 갈 때는 그의 신학은 목회 신학적 경향으로 기울였다. 알렉산더 뒤를 이은 하지는 조직 신학으로 묶어 신학적 기초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이에 워필드에게 이르러 학립된 신학을 변호하는 사명이 주어진 것이다. 워필드가 프린스톤에서 가르치기 시작할 무렵 하지의 신학은 사방에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개혁주의 인간론에 정면으로 도전하였고,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였다. 슐라이마허(scheiermacher)의 영향으로 신의 내재성이 초월성보다 강조되었고, 계시의 자리금 방어의 신학자요, 기독교의 변증가로 나서게 하였다.4) 성경의 권위를 지키는 워필드와 변증관세계 3대 칼빈주의 학자 중 일인이라고 칭송되는 워필드는 변증학 연구에 탁월한 존재였는데, 그는 '변증학'(Apologetics)이란 논문에서 변증학의 5구분을 제시했다.변증학이 이 위대한 사실들 - 하나님, 종교, 계시, 기독교, 그리고 성경이라는 사실들 - 을 우리에게 부여해 주어야 (그래야만), 우리는 더 나아가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신지식을 설명하고, 이 세상에서의 그 작용의 역사를 추적하고, 그것을 조직화하며, 그것을 세상에 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변증학의 기본적 구분은 다섯 가지이다. 편의를 위해서 세 번째 것을 그와 밀접히 관련된 것과 함께 취급하지 않는다면 말이다.① 첫째는 ‘철학적 변증학’(Philosophical Apologetics)이라 불리워질 수 있는 것으로서, 이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격적영이요, 창조주요, 보존자요, 만물의 통치자로 수립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반신론적 이론들에 대한 논의와 함께 유신론의 큰 문제에 속한다.② 둘째로는, ‘심리학적 변증학’(Psychological Apologetics)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사람의 종교적 본성과 그의 종교의식(Religious Sense)의 타당성을 수립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심리학, 철학, 종교 현상학 등의 논의를 포함한다. 따라서 이는 소위 ‘비교 종교학’ 또는 ‘종교사’라는 것도 포함될 수 있다.③ 세 번째 것에는 역사 내에서 초자연적 요소라는 실재의 수립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실제적 관계의 규정, 그리고 합리적 피조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방법, 그리고 그들에게 당신을 알리시는 방법에 대한 규정이 포함된다. 그것은 인격적인 영으로서 그가 당신을 표현하시는 경우에만 알려질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지식의 조건으로서 계시의 사실을 수립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래서 신학은 그 대상이 주체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이라는 점에서 신학과 이몬드는 ‘유신론적 변증학’(Theistical Apologetics)이라고 본다.④ 넷째로는, ‘역사적 변증학’(Historical Apologetics)이라고 불리워질 수 있는 것으로, 특별한 의미에서의 계시의 종교인 기독교의 특별한 기원을 수립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흔히 ‘기독교의 증거들’이라고 하는 제하에 속하는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⑤ 다섯 번째로는, ‘성경적 변증학’(Bibliological Apologetics)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것으로서, 죄인들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계시의 문서로서 기독교 성경의 신뢰성을 수립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특히 성경의 신적인 기원, 그 형성 에서의 신적 작용의 방법, 하나님의 구속행위에서와 계시과정에서의 성경의 위치, 영감의 본성, 방식, 그리고 그 효과와 같은 제목들과 관련된다. - 이것을 때로는 ‘논쟁학’(Polemics)이라 하며, 워필드 자신이 이에 전문가였다.결과적으로 워필드는 이 모든 영역의 증거가 신약 저자들의 교리 교사들로서의 신임성에 관한 것이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는 성경의 신성과 기독교 신앙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내증과 외증을 구분할 것을 주장했다. 초기의 프린스턴 신학자들이 외증을 신앙의 길에 들어서기 전에 찾아오는 초보적인 의심을 제거하는 일에 사용 했던데 반해 워필드는 외증을 완벽한 변증학으로 발전시켰다.5) 기독교의 확실성에 대한 워필드의 견해워필드는 성경저자들의 신임성을 입증해 주는 자료중의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성경은 신적인 것으로 자증하며 최소한 어떤 근거에서 의심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 따라서 무오한 것으로 증언한다는 단호한 전제위에서 그들을 썼다. 워필드는 축자영감과 불일치 하다고 주장되는 현상, 즉 ‘비평’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주장을 신약 교리의 이름으로 도전하고, 그런 주장의 신임성을 요구해야 한다. 그런 주장은 이런 도전에 대응할 만한 신임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에 고 비평가들이 말하는 소위 모순되는 현상들, 오류에 대해서는 “해결되어야 할 난제들”이라고 본다. 또 그는 오랫동안 흔히 ‘구 프린스톤’ 변증학이라고 일컫게 된 것에 대한 대표적 옹호자였다. ‘구 프린스톤’ 변증학의 방법은 개인적 헌신과 믿음에 앞서서 적절한 증거 토대위에 기독교 신앙의 타당성을 위한 근거를 세워, 불신자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용어로 제시하려는 것이다.워필드는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의 온전한 영감과 권위를 인정케 하려고 한없이 노력했다. 워필드와 하지는 맹목적인 신앙이 아닌 그 근거를 밝히려고 추구하는 신앙과 신비주의와 투쟁하는 신앙을 반영하고 있다. 워필드는 기독교 성경이 자증적(自證的), 즉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든 권위를 가지고서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자증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확언하고, 이 첫 원칙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변증을 해 나갔다. 이런 변증은 성경과 일치하며, 칼빈, 개혁신앙,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과 동일 선상에 서는 변증일 것이다.개혁주의의 표준 신조들은 성경의 자증적 성격을 명백히 확언한다. 워필드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믿는 바는 우리의 신조 가운데 있는 이 확언이다. 워필드 자신은 성경의 계시적 성격이나 신적 영감에 대해서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의 변증방법에 의해서 ‘구 프린스톤’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개신교 전통 중에서 버틀러(Butler)의「종교의 유비」(Analogy of Religion)의 전통에 서는 전통적인 실증적 변증학파의 대표자이기도 하다. 이 방법은, 불신자들의 신앙의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 만한 실증적 증거를 찾는 시도에서, 자연인을 ‘자율적인, 능력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그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불신자들에게 의식적으로, 부끄러워함 없이 기독교 신앙의 첫 원칙, 즉 하나님께서 성자와 성령을 통해서 우주의 창조 안에서, 또 그것을 통해서 그리고, 그의 세상의 역사 안에서 말씀과 행위로, 가장 극적으로는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자증적으로 당신을 계시하셨다(히 1:1-3)는 원칙을 신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