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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고대문학]서주문학-시경과 서경
    선진(先秦) 서주(西周)시기의 문학1. 선진(先秦)문학 개관중국의 황하 유역은 세계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이다. 중국인들은 이 유서 깊은 지역의 역사에 대한 고대의 전설적인 기록들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전설에 따르면 고대의 역사는 삼황(三皇)과 오제(五帝)시대를 거쳐 하(夏)나라와 상(商)나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라 때까지의 역사는 객관적으로 입증되기 어려운 전설적인 시기이다. 중국대륙은 상나라 이후부터 본격적인 역사시기로 접어들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도읍지의 이름을 따라 은(殷)나라라고도 불리우는 상나라는 대략 기원전 17세기부터 11세기까지 존속했다. 상나라는 특히 갑골문(甲骨文), 금문(金文)과 함께 동기(銅器), 도기(陶器)와 대리석 건축물 등 수많은 정교한 유물과 유적을 남기고 있으며, 노예제 사회이기는 했지만 화폐경제가 상당히 발달했고, 역법도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왕위의 적자계승제도가 확립되어 있었다. 고대의 역사적 기록 가운데에는 상(商)대에 이미 시가가 상당히 유행했다는 언급이 가끔 보이지만 원문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글들이 본격적으로 확인되는 시기는 상(商)의 뒤를 이어 기원전 11세기 무렵 건국된 주(周)이후부터이다. ‘중국문학지조(中國文學之祖)’라 불리는 《시경(詩經)》에는 이 시기의 작품으로 보이는 것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으며, 대체로 춘추 중엽까지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산문으로는 《시경》과 함께 중국문학의 기원이 되는 《서경(書經)》이 전해진다. 주나라는 천자(天子), 제후(諸侯), 대부(大夫), 사(士), 서인(庶人)으로 이어지는 계급제도에 기반을 두어 독특한 고대적 봉건제도를 확립하였으며, 기원전 11세기부터 기원전 8세기 무렵까지 안정된 시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주나라는 기원전 8세기에 이르러 서쪽으로부터 침입해 온 견융족(犬戎族)을 막아내지 못하여 국가의 기반이 와해되었으며, 동쪽 낙읍(洛邑)으로 수도를 옮겨 가까스로 왕조의 틀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이후로는 중국 대륙에(國風) 160편, 소아(小雅) 74편, 대아(大雅) 31편, 송(頌) 40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때문에 옛날에는 《시경》을 ‘시삼백(詩三百)’이라고도 불렀다. 《시경》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작자와 시기가 미상이며, 노래의 가사가 대부분으로서 원래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후세 사람들의 손을 거쳐 편집, 기록되었다.중국문학의 출발 초기 중국문학은 그 지역적 특성 때문에 남방의 문학과 북방의 문학이 서로 다른 문학적 특성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었다. 초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남방문학의 대표가 초사라고 한다면, 북방문학의 대표는 《시경》이라 할 수 있는데 시경은 황하를 중심지로 생겨났으며, 현실 생활에서 우러나온 감정 같은 것을 질박한 언어로 읊고 있다.1)《시경》의 편찬과정 ? 편찬자《시경》의 편찬과정에 관해서는 전하는 기록이 불확실한데, 《한서(漢書)》 등 고대의 기록을 보면 주나라 때에는 중앙의 천자가 각 지방의 풍속과 민심을 살피기 위해, 그리고 제후나 지방 관리들의 통치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 각지에 민가(民歌)를 채집하는 임무를 맡은 관리인 ‘채시지관(采詩之官)’을 두었으며, 채시관은 민가를 수집하여 태사(太師)에게 바치면 태사가 그것을 군주에게 들려주어 정치의 득실을 살피도록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록이 사실인지를 확인시켜 주는 객관적인 증거는 없으나 이러한 문헌의 기록들은 《시경》당시의 시들이 문학작품보다는 정치적 자료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또 근대 이전까지 《시경》의 편집은 공자(孔子)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사기(史記)》의 기록에 의하면 ‘옛날에는 시 3천여 편이 있었는데, 공자 때에 이르러 중복되는 것들을 버리고 예의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을 골라 305편을 편찬하였다’고 했는데, 공자가 《시경》의 편집에 직접 관여했다고 하는 이 설을 ‘공자산시설(孔子刪詩說)’이라고 한다.그러나 이 ‘공자산시설’은 《시경》에 수록된 시가 반드시 예의에 합당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어울릴 수 있게 하고, 원망 할수 있게 한다. 가까이는 아버지를 섬길 줄 알게 하고, 멀리는 임금을 섬길 줄 알게 하며, 새 와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도 많이 알게 한다.)공자의 뒤를 이어 《시경》에 대한 인식과 해석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맹자(孟子)와 순자(荀子)로 대표되는 전국시대의 유가사상가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상가들과의 논쟁 과정에서 자신들의 논리 속에 《시경》의 구절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논거로 삼기도 하였는데, 이는 《시경》이 그만큼 권위있는 경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볼 수있다.한(漢)대에 들어와서는 《시경》에 대한 해석이 한층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유가사상이 왕조에 의해 공식적인 정치이념이 됨에 따라 《시경》의 해설 또한 당시의 정치체제를 합리화하고 정치적 현실을 옹호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서한(西漢)때에는 후세에 삼가시(三家詩)라고 일컬어졌던 노시(魯詩), 제시(齊詩), 한시(韓詩)라는 서로 다른 세 가지 해설이 나오기도 하였다.오늘날 전해지는 《시경》의 틀은 한대에 나온《모시(毛詩)》에 의해 비롯되었다.《모시》란 서한(西漢)의 모공(毛公)이 전한 것인데, 《모시》역시 《시경》을 경전으로 인식하면서 윤리적?정치적인 관점으로 《시경》에 대한 해석을 하고 있다. 국풍(國風) 주남(周南)의 남녀관계를 노래한 민가들을 왕비의 덕을 노래한 것으로 해석한다든가, 사회적인 불만을 노래한 민가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는 소남(召南)을 전부 부인(夫人)의 덕을 노래한 시라고 해설하는 경우가 그 전형적인 예이다. 이 밖에도 유가적인 윤리의 입장만으로는 해설이 어려운 경우들이 많은데, 그에 대해 《모시》는 정변설(正變說))이라든가 육의설(六義說)), 사시설(四始說)) 등의 추상적인 논리를 제기하여 무리한 해설을 시도한 경우도 있다.《시경》에 대한 이와 같은 전통적인 인식은 어쩌면 ‘시집’으로서의 《시경》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것일 수 있으며, 또 그 내용에 있어서도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고대의인식이 한편으로는 시형이 사언(四言)으로 다듬어져 있고, 압운(押韻)이 고려되어 있으며, 여러 가지 수사기교가 고도로 발휘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문학적 수준이 고대에 이미 높은 단계에 도달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그 중에서도 시의 내용으로 보면 국풍 중에는 남녀관계를 다룬 서정시가 가장 많은데, 정경(正經)이라고 하는 주남(周南), 소남(召南)에도 이런 내용의 시가 많이 수록되어 있으며, 변풍(變風)이라고 불리는 정풍(鄭風), 위풍(衛風)으로 가면 남녀관계를 훨씬 더 노골적으로 그리고 있다. 아래 시 는 젊은 남자(군자)가 이상적인 이성(숙녀)을 그리는 시가 분명한데 《모시》에서는 이를 “후비(后妃)의 덕을 읊은 시”로 해석하였다.關關雎鳩 在河之洲 구욱구욱 물수리는 강가 숲 속에서 우는데窈窕淑女 君子好逑 대장부의 좋은배필 아리따운 아가씨는 어디있는고參差荇菜 左右流之 올망졸망 마름풀을 이리저리 헤치며 찾노라니窈窕淑女 寤寐求之 자나깨나 그리운 아리따운 아가씨 생각求之不得 寤寐思服 그리워도 얻지 못해 자나깨나 생각노니悠哉悠哉 輾轉反側 그리움은 가이없어 이리뒤척 저리뒤척參差荇菜 左右流之 올망졸망 마름풀을 이리저리 헤치며 따노라니窈窕淑女 琴瑟友之 금슬좋게 벗하고픈 아리따운 아가씨 생각參差荇菜 左右芼之 올망졸망 마름풀을 이리저리 헤치며 고르노라니窈窕淑女 鐘鼓樂之 풍악 울리며 즐기고픈 아리따운 아가씨 생각이 시는 매 구절이 네 자로 되어 있고 압운(押韻)을 하고 있으며, 첩자(疊字), 첩운(疊韻), 쌍성(雙聲) 등의 기교가 다 동원되어 있다. 또한 셋째줄과 넷째줄, 일곱째줄과 여덟째줄, 아홉째줄과 열째줄이 모두 완벽하게 대구(對句)를 이루고 있다. 이로써 본다면 이미 《시경》의 문장도 후세의 문장 못지 않게 수사를 통한 미(美)의 추구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남녀 관계를 다룬 시에 비해서 그 양은 적지만 국풍에는 어려운 생활상과 사회의 모순을 다루고 있는 시도 적지 않다. 유가사상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경》에 대해 사회교화적 효용을 중시해 다. 송대의 철학자 주희(朱熹)는 《시집전(詩集傳)》에서 소아(小雅)는 연회의 음악이며, 대아(大雅)는 회조(會朝)때쓰이던 의식용 음악으로 보았다. 이렇듯 소아와 대아는 궁중을 중심으로 하여 사대부들 사이에서 주로 유행했던 시가가 대부분인 듯하다. 이러한 까닭에 서정 위주의 국풍(國風)보다 형식적이고 교훈적이며 서사적인 작품들도 있다. 그리고 소아보다도 대아가 더 형식적이고 설교적이 경향이 강하다. 시의 생동감이라는 측면에서는 국풍이 가장 앞서고 그 다음이 소아이며 대아가 가장 추상적이라고 하겠다.대아의 일부 작품은 주나라 초기 왕들의 업적을 노래한 서사적인 시가들로서 서주(西周)초기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것들도 있으나 대부분 작품의 성립시기가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다.文王在上 於昭于天 문왕께선 위에 계시는데 아아, 하늘에 뚜렷하시니周雖舊邦 其命維新 주나라는 오래된 나라라 하지만 그 명은 새롭기만 하네有周不顯 帝命不時 주나라 임금은 매우 밝으시니 하느님의 명은 바르게 내리셨네文王陟降 在帝左右 문왕께선 하늘땅을 오르내리며 하느님 곁을 떠나지 않으시네?(생략)③ 송(頌)‘송(頌)’에 대해 청대의 학자 완원(阮元)은 ‘頌’이 ‘용(容)’의 뜻이었는데, ‘容’은 형용(形容)을 뜻하고 이는 다시 또 무용(舞容)과 통하여 ‘송(頌)’은 춤과 노래를 결합시키는 종합예술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던 고대의 음악 형태를 가리킨다고 해설하였다. 이렇게 볼 때 송(頌)의 시들은 노래의 가사이면서 동시에 춤의 가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송은 다시 주송(周頌), 노송(魯頌), 상송(商頌)으로 나뉘므로 송을 ‘삼송(三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주송(周頌)에는 모두 31편의 시가 있는데(, , ...) , 대체로 주대 초기의 작품으로 본다. 여기에는 신이나 조상을 제사지낼 때 부르던 노래들이 있는데, 길이도 짧고 분장(分章)도 이루어져 있지 않으며 표현 또한 세련되지 못하고 기교도 소박하다. 그러나 시기상으로 매우 빠른 시가라는 점, 또한 서주 초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역사적 자료라는 점에.
    인문/어학| 2006.03.15| 8페이지| 1,000원| 조회(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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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 비교 고찰]<운영전>과 <백학선전>비교
    과 비교중어중문학과 2002007030백민영은 궁녀인 운영과 김진사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주인공 운영은 안평대군의 총애를 받는 궁녀들 중의 한 명이었다. 안평대군은 궁녀들의 궁 밖 출입을 일체 금지시키고 있었는데 운영은 안평대군을 찾아오는 소년 선비 김진사를 열렬히 사랑하게 된다. 김진사는 밤만 되면 높은 담을 넘어가서 운영과 사랑을 속삭인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안평대군에게 탄로가 나고 만다. 운영은 만사를 단념하고 옥중에서 자살을 하고 김진사는 운영의 장사를 치른 후에 운영의 뒤를 따라 자살한다. 이렇게 해서 두 남녀의 사랑은 비극적 종말로 끝이 난다.은 대체로 권선징악의 교훈을 남기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고전소설 중에서 아주 드물게 비극적 결말로 이야기를 맺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구성은 매우 특이한데, 몽유소설 안에 다시 액자소설이 들어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유영이 수성궁터에서 노닐다가 꿈을 꾸게 되어 김진사와 운영의 이야기를 듣는데, 이 꿈 속의 일이 작품의 대부분으로 서술자 유영이 꿈속에서 김진사와 운영의 말을 듣는 액자형 구성을 택하여 작품 내부를 구성하였다. 또한 작품 안에서 등장 인물에 대한 개성적 성격 표현이 두드러지고, 대화체의 문체를 사용함으로써, 생동감 있는 구성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은 천상에서 죄를 지어 적강한 두 남녀가 못다한 인연을 지상에서 이루기 위해 서로를 추구한다는 내용이다. 적강한 이 두 남녀 유백로와 조은하는 길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를 흠모하게 되고 유백로는 조은하에게 애정의 징표로 가보인 백학선에 시를 지어준다. 이후 둘은 재회를 위해 거듭된 고난을 겪게 되는데, 결국은 출정한 유백로가 위기를 당하자 조은하가 남장을 한 채 전쟁터로 달려가 유백로를 구출함으로써 다시 만나게 되어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된다.이 소설은 천상에서 적강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적강소설이자 영웅소설이고, 애정소설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고대소설의 표제가 거의 주인공의 인명으로 되어 있는데 반해, 이 작품은 백학선이라는 물건명을 표제로 한 점이 특이하다. 이 소설의 구조는 남녀 주인공이 천상계의 인물이며, 사건 전개가 지상계와 천상계 두 개의 공간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병렬적 이원구조의 형태를 띠고 있다.과 두 작품은 모두 애정소설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 사랑의 과정에서 두 작품 모두 남자 주인공의 역할보다는 여자 주인공의 역할이 더욱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점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이 더욱 그러하다. 여주인공 조은하 가 자신이 사랑하는 유백로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전장에 나아가 승리하여 그를 구출하여 사랑을 이루는 모습에서 그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에서는 운영 이 자신의 사랑을 먼저 내보이고 봉서를 전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데 반해, 김진사 는 이러한 운영에 비해 운영을 사랑하면서도 과감히 행동하지 못하고 또한 자신의 종인 특 에게 속고도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소심한 인물로 그려진다.또한 이 두 작품 모두 당시의 조선 사회에 입각해 비추어 봤을 때 작품 내에 비교적 진보적인 사상을 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진보 의 방향은 두 작품이 사뭇 다른 듯하다. 물론 두 작품 모두 작품 전체에 걸쳐 두 남녀의 애정의 관철이 큰 줄기를 이루지만, 은 그 애정의 관철 속에서 사회의식의 진보를 드러내고 있으며, 은 오로지 두 남녀의 애정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어 그 속에서 당시의 애정의식의 진보를 발견할 수 있다.에서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작품의 백경이 되는 구속적인 궁중생활에서 비롯된다. 안평대군은 아름답고 재주가 뛰어난 궁녀 10명을 뽑아 시와 문을 가르치고, 이들을 수성궁 안에 가두어 두고 이들에게 궁 밖에 나가서도안되며, 궁 밖의 사람들 가운데 궁녀의 이름을 아는 자가 있어서도 안 된다는 엄명을 내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궁녀들은 자신들이 감금상태에 있음을 느끼고 자신을 구속하는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봉건성과 지배자의 강제와 억압으로 이를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바로 여주인공 운영 과 김진사 의 사랑에 의해 이러한 내면적 갈등이 표출되기에 이른다. 결국 이들의 사랑은 안평대군에게 탄로 나게 되지만, 운영 은 안평대군에게 용서를 빌어 다시 궁녀의 제자리로 돌아간다거나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되고, 김진사도 곧 운영을 따라 자살한다. 운영은 결국 감금의 환경을 탈출하고자하는 절실한 소망을 자살이라는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옮긴 것으로 이는 당시의 윤리질서가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이자, 신분적 해방을 부르짖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은 기존 소설들이 상투적으로 그리고 있던 사랑의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머물게 하지 않고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장시켜 내면서 애정의 관철을 통해 사회의식의 진보를 표현했다.은 철저한 애정소설로서 작품 내에서 당시 사회적 통념에 비추어 봤을 때 상당히 진보적인 애정관을 보여준다.먼저 매파에 의한 중매와 부모의 주혼이 있어야만 사회적으로 공인을 받았던 당시 조선시대의 혼인관이 이 소설에서는 맞아 들어가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혼인에 있어서 부모나 임금의 뜻보다는 주인공들의 의사가 더 존중되는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여주인공 조은하 가 싸움터에 자원하여 나아가는 것이 국가나 군왕에 대하여 충성하고 부모에 대해 효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애인을 찾기 위해서라고 하는 여성의 적극적인 애정성취과정이 당시의 가치로서 음행으로 비판받음직 하나 이를 열(烈)로 인정하는 점 등을 통해 전통적 윤리에 가려져 있던 남녀간의 정욕, 애정이 봉건적 입장에서 벗어나 자아의 의지가 존중되는 근대적이고 진보적인 애정관으로 발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이 두 소설의 여주인공(운영, 은하)은 모두 애정에 있어 적극성을 표출하고 사회의식과 애정의식에서 진보적인 면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들은 모두 남성 못지 않은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운영 은 시적인 재능과 학문적 능력이 뛰어났고, 은하 는 전장에 나가 애인을 구하고 공을 세울 정도의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이렇게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주인공은 봉건적인 남성중심의 조선사회에서 살고 있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애정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 두 여주인공이 그 시대 환경 속에서 자각하는 여성 의식 이라는 면에서 면밀히 검토해 보면 서로 차이점이 있음을 곧 발견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05.12.01| 3페이지| 1,000원| 조회(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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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사회]교육과 사회와 나의 관계
    교육과 나와 사회의 관계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교육에 참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자기 자식의 일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학부모는 물론이거니와 나라의 지도자들, 정치자들...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화제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이 교육이다. 그만큼 교육은 개인의 성장, 발달에 결정적인 작용을 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사회, 국가의 발전과 번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교육의 중요성은 개인의 차원에서나 사회, 국가적 차원에서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는다.하지만 이러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교육은 잘되고 있다 는 말보다는 이래서는 안된다 는 부정적인 평가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나 또한 아직도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이긴 하지만, 여태껏 내가 받아온 나의 교육사 를 되돌아보아도 만족스러운 부분보다는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고등학교 때는 소위 말하는 이해찬 1세대의 교육과정을 밟으면서 참 혼란스러웠던 점들이 많았다. 수능에 얽매이는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의 적성에 맞는 환경에서 학생들의 인성을 키워주기 위한 목적으로의 열린교육 이라는 이상적인 취지였지만 오히려 이러한 정책으로 학생들의 학업 성취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는 비판과 함께 끝에 가서는 더욱 수능에 얽매이게 되버린 것 같다.나뿐만 아니라 이렇게 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사회에 팽배해 있기 때문인지 사회교육학의 이론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요즘은 학교교육에 대한 기능주의 이론보다는 갈등주의 이론에 보다 더 많은 힘이 실리는 듯하다. 그렇다고 학교교육의 기능론적인 측면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번 교육사회학 수업을 들으면서, 그리고 이 레포트를 쓰면서 교육에 대한 나의 생각과 내가 여태껏 받은 교육에 대한 흩어져 있는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들을 이론적인 틀 안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교육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그 이론들을 나의 교육사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 이생들이 하나씩 가져온 학급의 비품들을 학급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등의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되어지는 것들도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내온 학교생활 중에서 이미 몸에 베어버려 저절로 학습된 것이다. 아마 학교라는 것이 없었다면 이러한 것들을 이처럼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후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비교적 수월하게 적응할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가정교육을 통해서도 이러한 사회화 교육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고작 많아야 대여섯명인 현대의 가정 안에서 여러 학생들이 모인 학급에서처럼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서 얻는 그런 효과는 얻기 어려울 것이다.다만, 내 생각에 현대의 학교 교육이 분명 기능론적인 측면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실제적인 학교교육에서 그 효과성을 발하지 못하고 사실상 우리 사회가 그 기능론적인 면들을 교육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는 다소 모순적인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자꾸 학교교육 속에서의 불평등이나 갈등론적인 측면들이 다소 부각되는 것이다.내가 받은 교육에서만 보더라도 정말 그런 점을 확연히 느낄수 있다. 기능론의 학교 교육을 통해 능력에 따른 사회적 선발과 배치가 이루어진다 라는 것은 어찌보면 사회와 관련된 학교교육이 당연히 수행해야 할 부분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기능론자들은 이러한 효과적인 능력개발을 위해 아동들에게 적성에 맞는 학습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해찬 1세대의 나와 같은 세대들이라면 아마 고등학교 1, 2학년때 방과 후에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 대신 특기, 적성 교육 이라는 이름의 수업을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특기, 적성 교육으로, 물론 교과적 차원의 수업들(영어, 수학...)도 없는 것은 아니였지만, 십자수, 중국어, 볼링,,,등 그 전에 비하면 가히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수업들을 듣고 싶은대로 자신이 선택해서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수업은 왜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을 실시하지 않느냐는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고, 다른 주변학생들 또한 별다를 것 없는 수업에 집중하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자기의 편의를 위해서 못하는 C반보다는 잘하는 A반을 서로 맡으려 한다고 하였다. 나 또한 A반에도 있어 보았고 B반에도 있어 봤지만 두 반에서의 학업수준이나 선생님의 교육 방법에 그다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였다. 오히려 시험성적이 안 좋아서 B반으로 가게 됐을 때는 어떤 열등감마저 느끼게 되었다. 결국 학교에서도 수준에 따른 반편성을 하는것이나 그냥 성취도를 고려하지 않고 한 교실에서 수업 하는 것이나 학업 성취 결과면에서 큰 차이가 없자, 후에는 A,B,C반을 없애고 그냥 한 교실에서 수업을 하였다.결국 기능론적 취지에서 시작되더라도 교사와 학생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능력에 따라 가르침으로써 그 학습효과를 더욱 극대화할수 있다는 기능론적인 원래 의미가 살아날수도 있고, 학업 성취 변화에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고 오히여 A반 학생들에게는 우열감을 주고 C반 학생들에게는 열등감을 주는 역효과를 불러와서 선발과 분배기능만 합리화 한다는 갈등론적인 입장이 더욱 부각될 수도 있는 것이다.갈등론에서는 기능론의 능력에 따른 사회진출이라는 능력주의 교육관은 자본주의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고, 기존의 질서를 재생산함으로써 사회 불평등을 지속시킨다고 주장한다. 사실 내가 경험한 교육을 회상해 보더라도 확실히 교육이 사회 평등에 이바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뚜렷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교육에 대해서 비판하는 부분도 이 사회평등이라는 부분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또한 가장 민감한 부분이기도 한 것 같다.물론 기능론자들은 교육기회의 균등화를 통해 삶의 기회를 공평하게 해주어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수 있다고 하지만, 요즘같이 사교육이 판치는 세상에서 교육기회가 균등하다고 결코 말할 수는 없다.그리고 이러한 사교육은 부모님의 경제력과 직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또한 고3때 수학과외를 받은 적이 있다. 우리집은 갈등론에서 말하는 소위 지배계급에 속하는 가정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하위계층에 속한다고 러한 불합리한 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학교교육이 기회 균등의 기능을 해주기는커녕 사회, 경제적 지위가 재생산되도록 도와주는 하수인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나도 고등학교 시절에 과외를 하였고, 대학생이 된 지금 나의 생계비의 1순위가 과외를 통한 수입이지만, 또한 미래에는 공교육을 통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자 이렇게 교직수업을 듣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 경제적 대물림을 조장하고 있는 사교육에 감히 반기를 들 수도 없고 감히 찬성 할수도 없는 정말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하지만 아마도 우리나라처럼 교육열이 높은 나라에서 입시라는 이름이 없어지기 전까지는 아마도 이런 과외 문제는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 같다.나는 학교 다닐 때 음악시간에는 왜 다장조, 사장조...하는 서양에서 온 음악체계나 서양음악사같은 것들만 배우고 시험도 리코더, 멜로디언, 단소 이런 실기시험들만 치는 것인지 항상 불만이었다. 음악시간에 하는 음악감상은 매번 서양의 이름 모를 클래식들이었고, 그 시간은 항상 나의 취침시간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여기에 더해 수행평가 과제가 한 학기에 반드시 2회 이상 음악회에 가서 감상한 후, 감상문을 적는 것이었다. 물론 극소수였지만, 정말 음악회가 보고 싶어서 직접 가서 음악을 감상한 후에 감상문을 써서 낸 학생도 있었지만, 가짜로 팜플렛 내용만 대강 보고 감상문을 적어낸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마 음악 수행평가 과제에 가수들의 콘서트를 보고 난 후에 감상문을 적어내라고 했으면, 아마 정말 잘 할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음악시간마다 10분씩 있는 음악감상 시간에 그런 이름 모를 클래식 대신에 가끔 한번씩만이라도 요즘 유행하는 유행가를 들려줬더라면 그 음악감상 시간이 그렇게 매번 나의 취침시간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평소에 클래식에 관심이 있고 조예가 깊은 학생이라면 그 시간이 자신의 관심 문화가 바로 학교에서의 교과활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될 것이다.이러한 클래식이라는 서양음악이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고급학생들이다. 그래도 학교에서 또 사회에서 영어 라는 문화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중학교 때 내 친구 한 명은 다른 과목은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수학 하나는 굉장히 잘했다. 알고보니 그 친구 엄마가 대학교 수학과 교수였던 것이었다. 어렸을때부터 수학 학원 하나 다니지 않고 엄마한테서 기초적인 산수부터 배웠다고 한다. 그 친구는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수학 이라는 문화적 자본을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부분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만약 부모님이 식료품 가게를 한다면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교과 과정 중에서 어떤 문화자본을 소유할수 있을까?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부모님의 경제력 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문화자본이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도 결코 적지 않은 것 같다.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만약 선생님이 되어 교단에 서서 어떤 입장이나 이론을 가르칠 때 두 개의 반대되는 입장의 이론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a, b양쪽 이론에 똑같은 시간을 할애하고 똑같은 어조와 태도로 가르칠수 있을까? 교사라면 자신의 생각은 제채두고서라도 그렇게 해야하고, 그 마지막 옳고 그름에 대한 최종 판단만 학생들에게 맡겨두어야할까? 그런 교육이 사람들이 말하는 균형 있는 교육일까?갓 대학교에 입학하여 1학년 때 한국사 교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수업은 한국사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정치학 수업을 방불케했다. 교수님의 강의의 80%는 우리나라 정치에 대한 이야기와 비판들이었고, 항상 결론은 은연중에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 세력에 대한 옹호로 흘러갔다. 물론 나 또한 정치에 대해 아는바가 별로 없고, 그렇다고 한나라당 지지자는 아니였지만, 항상 되풀이되는 그런 정치 이야기들과 은연중에 반복되는 정치적 옹호의 문제를 논하는 교수님이 너무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그래도 어느 정도 체계적인 자신의 입장을 가진 대학생이라면 교사가 자신의 견해를 중심으로 강의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비판의식은 가질 수 있을 것이다이다.
    교육학| 2005.12.01| 7페이지| 1,000원| 조회(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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